• 최종편집 2024-03-28(목)
 




St. Augustine in His Study by Vittore Carpaccio, 1502-580px.jpg

St. Augustine in His Study by Vittore Carpaccio, 1502

 

정원의 하루


사위가 어둑해진다. 창을 연다. 바람이 슬며시 들어오고 개구리의 왁자한 울음소리가 뒤따른다. 이맘때면 20년 전 사당동 골짜기의 총신이 생각난다. 해만 지면 호야 불을 밝히는 총신 교정을 청개구리나 두꺼비의 떠들썩한 외침들이 그득 채웠다.

 

그 시절 우리는 소금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하늘나라를 주절거리고 사시사철 양복 한 벌로 교회에 나가 전도사랍시고 꺼떡거렸다. 시집오겠다는 처녀도 드물던 질펀한 사당동 골짜기 시절이었다. 정말 그 시절 풍족했던 것은 모기와 개구리의 외침들뿐이었지 않나 싶다.

 

어거스틴은 울적한 심사를 달래러 홀로 정원에 나갔다. 한적한 곳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다가 그는 생각했다.

 

“이상한데. 손더러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라면 말을 잘 듣는다. 그런데 어째서 마음에 뭔가를 시키면 도통 듣지를 않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근처에 있는 집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의 소리를 어거스틴은 듣게 되었다. 아이는 어떤 말을 싫증도 내지 않고 고무줄 노래 마냥 되풀이했다.

 

“손에 쥐고 읽어라. 손에 쥐고 읽어라”

 

어거스틴은 의자를 하나 발견하고 엉덩이를 걸쳤다. 의자 모서리에는 신약성서 한 권이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그는 그걸 집어 들고 펼쳤다. 사도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그 말씀에 거꾸러졌다. 그는 이렇게 당시를 술회했다. '나는 헐거운 멍에를 목에 걸었고 가벼운 짐을 어깨에 짊어졌다.'

 

이 모든 일에서 어거스틴은 자신을 초월한 어떤 힘이 자신을 인도하고 있었음을 느꼈다.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하노라고 해 보지만 인생이 걸어가는 길은 결국 하나님과 그의 은총에 달려 있다.

 

‘은총’이라는 말은 거저 주는 선물을 뜻한다.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 및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장소와 사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도 어거스틴은 깨달았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였다. 그는 정원에서 허리를 펴고 일어나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심상찮은 아들의 모습에 움푹 패인 눈을 크게 뜬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 되시며 구원이 되신다고 그는 고백했다.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흐느껴 울었다. 소란스러움에 어리벙벙해진 아들은 영문도 모르고 훌쩍거렸다.

 

며칠 뒤 어거스틴은 아들과 함께 존경하는 밀란의 감독 암브로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이제 부푼 꿈을 안고 아들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고향이 성령의 손짓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면 궂은 일도 있는 걸까? 눈물의 어머니 모니카가 병들어 죽었다.


Triunfo_de_San_Agustín-580px.jpg

Triunfo de San Agustín

 

2021-03-29

태그

전체댓글 0

  • 8313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5_ 정원의 하루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