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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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총회선거법 전환 의견
    산업시대 이전에 창궐한 질병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위생적인 시설도 없었거니와 의학 기술도 덜 발전하여 치료제도 없었고 영양 결핍으로 면역력 또한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질병은 과잉에서 비롯된다. 재판 몸살에도 이재명이 설치는 신자유시대의 질병은 우울증이다. 상품과 화폐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꿈꾼다. 이를 위해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Yes, we can!”). 그러나 누구든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 문화는 외부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자아는 피곤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우울증을 낳는다.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가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드는 시대에 개인은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구실'이 되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구청 직원 같은 이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이재명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한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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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더굳뉴스] 성석교회의 길
    7부 16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는 비자발적 기억에 대해 고찰한다. 그 유명한 ‘마들렌 에피소드’가 소개되는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비자발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아주 오래전 기억도 익숙한 냄새, 맛, 소리, 촉감 등 여러 가지 감각에서 환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면의 굴곡이 많아 험한 길이 기구(崎嶇)다. 산길처럼 다니기 고단한 길은 험준(險峻)이나 험조(險阻)라고 적는다. 굽이가 많아 에돌아가거나 통행이 까다로운 길의 상황은 우회(迂回)와 곡절(曲折)이다. 평평한 길로 보이지만 성석교회 안에는 구덩이가 팬 곳이 많다. 중국에서는 그 구덩이를 감가(坎坷)라고 곧잘 표현한다. 아예 함정(陷穽)으로 적기도 하고, 혹은 요철(凹凸)로도 부른다. 요즘 중국 매체들이 잘 쓰는 말은 김화경의 '걍'이 아닌 ‘갱(坑)’이다. 구덩이를 일컫는데, 단어로는 광산의 갱도(坑道)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성어로는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땅에 산 채로 묻었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친숙하다. 이제는 아예 유무형의 함정을 파서 사기를 치거나 해코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언뜻 평탄해 보이는 김화경의 길에는 이런 ‘구덩이’가 참 많을 것 같다. 총회나 성석교회 실세들이 통제를 잃으면서 생긴 윤리의식의 위축은 그를 더 심화했다. 그래서 성석교회라는 갱에 들어선 길은 늘 만만찮다. 신중하게 나서야 할 성석교회의 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5-7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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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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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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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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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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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실시간 G.OPINION 기사

  • 제105회 세움 총회 허실
    아일랜드의 최초 노벨상 수상(1923년)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년 6월 13일 ~ 1939년 1월 28일)의 시 가운데 이런 글이 있다. “나는 내가 맞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위해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목사의 의무. 목사는 기본적으로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켜야 한다. 노동자들이 해주는 옷을 입고 농민들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있는데 밥값 해야 한다. 목사들이 자기 영역에서 자기 일들만 하면 사회가 잘 굴러가게 돼 있다. 목사가 갑자기 정치와 결탁하면서 기득권 공유하며 어용으로 변해간다든지 하면 ‘기생충’이 되는 거다. 목사도 인생은 한 번밖에 없는데 자기를 배려해야 한다. 진정으로 교단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장 훌륭한 비판은 대안이니까. 자기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맨날 정치 싸움하는 게 총대 역할인가. 지금 교단은 자기 개혁을 해야 한다. 혁신(革新)은 동물의 표피에 무두질을 해서 전혀 새로운 가죽으로 만드는 일이다. 쇄신(刷新)은 옛것을 긁어 없애 아주 새롭게 탈바꿈토록 하는 행위다. 갱신(更新)은 아예 새로 바꾸는 일이다. 보수 교단의 개혁(改革)은 제도나 체제 따위를 성경에 맞게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이다. 선거법이 있어도 성경에 벗어난 신앙생활을 하니 신앙양심이 일반인보다 못하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몸도 그와 같아서 새 양분을 들이면 이전의 그것은 자리를 비켜야 한다. 이른바 신진대사(新陳代謝)다. 새것[新]과 옛것[陳]이 차례대로[代] 사라짐[謝]을 가리킨다. 시간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하면 지나가는 해 보내면서 다가오는 해를 맞는 일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회고(懷古)의 정서도 얼핏 읽히지만 사실은 다가오는 새것을 향한 주목(注目)이 더 강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성어가 그렇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아가자는 취지지만 ‘온고(溫故)’의 실제 목적은 새것을 알아가자는 ‘지신(知新)’이다. 총회실행위원회는 11월 19일 라움호텔에서 제105회기 1차 회의를 열었다. 가수 나훈아처럼 광대를 자처하는 소강석 제105회 총회장은 기관지 기독신문을 통해 광야의 소리 세례 요한 같은 전광훈 목사에 대해 대통령 문재인과 좌파 성향의 현 정부가 좋아할 팩트를 말했다. 기자는 팩트만 주면 된다. 팩트가 가장 위대한 비판이라 생각한다. 기자가 하는 최대의 비판은 팩트이기 때문이다. 기독신문 기자가 전하는 제105회 총회장 소강석의 팩트는 이렇다. “위원회가 전광훈 목사에 대해 이단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전광훈은 이단성이 없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단 교리를 설파하거나 책을 낸 것이 아니다. 말 실수를 했으며, 과도하게 정치에 함몰됐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광훈 목사는 공교회 앞에 사과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엄중 경고해야 한다. 차제에는 그런 행사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강석 목사는 총회 산하 교회와 목회자들도 우려했다. 그는 “총회 산하 목회자들과 성도들 중에 전광훈 목사의 애국 운동에 동참한 인사들이 있다. 만약 전광훈 목사를 이 자리에서 이단으로 처리하면 총회 산하 목회자와 성도들도 이단에 동조한 자들이 될 수 있다”라면서 “따라서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20년 9월 7일 자 기사는 전광훈 목사에 대해 이런 팩트를 전했다. 법원의 ‘보석 취소’ 결정에 따라 재수감이 결정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가 경찰의 수감 지휘 집행 아래 다시 구치소에 수감됐다. 7일 오후 3시 30분께 진행된 경찰의 수감 지휘 집행에 따라 마스크를 쓴 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전 목사는 “대한민국이 전체국가로 전락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 목사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사람을 이렇게 구속시킨다면, 이것은 국가라고 볼 수 없다”라며 “저는 다시 감옥으로 가지만 반드시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에서 자꾸 제가 방역을 방해했다고 분위기를 조성해서 재구속 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보수 교단의 총회장이라면 쿨한 것까지는 봐주겠는데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보수적인 점잖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인 소강석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예이츠가 1920년 쓴 ‘재림’은 20세기 창작된 시 가운데 시적 형상화가 무척 두드러지는 시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그 중심은 무너진다.오직 혼돈만이 지상에 가득하다.온 누리에 핏빛으로 얼룩진 조수가 퍼지고순결한 의식은 물에 잠긴다.선인은 주저하고 악인의 열정은 가득하다.” 이 시에서 ‘선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물질주의의 바람 앞에서 전통문화를 지키는데 무능력했던 기존의 기득권층이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역사는 반복되고 당시 사회는 순환하던 역사가 마무리되고 새롭게 기독교가 성장하는 시대였다는 예이츠의 믿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마침내 때를 맞이하여 태어나고자 베들레헴으로뚜벅뚜벅 걷고 있는 저 상처 입은 짐승은 누구인가?” 성경에 근거해 기존 보수 전략의 문제가 무엇이며 새로운 개혁 세력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입을 막으면 돌들이 일어나 외치게 되어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9:40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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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0
  • 정계규 목사의 아들
    시성(詩聖) 조지훈(1920∼1968)이 ‘행복론’이라는 시를 썼다. 멀리서 보면 / 보석인 듯주워서 보면 / 돌멩이 같은 것울면서 찾아갔던 / 산 너머 저쪽아무 데도 없다 / 행복이란스스로 만드는 것 /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혼자서 들여다보며 / 가만히 웃음 짓는 것.(후략) 1967년 10월 27일. 한 일간지에 조지훈의 시 ‘행복’이 실려 있었다. 그로부터 53년이 흘렀고 쉰 세 번의 가을이 우리를 스쳐 갔다. 그 사이에 사람은 죽고, 사람은 태어나고 사람은 울고 사람은 웃었다. 그때와 같은 가을이되 실상은 전혀 같지 않은 가을이라는 사실이 참 묘하다. 53년 전의 행복은 53년 후의 행복과 어떻게 달랐던가. 아니, 53년 후의 행복은 53년 전의 행복과 어떻게 같으려나. 2020년 10월의 마지막 날이 아쉬워 일부러 10월에 탄생한 시를 읽어 본다. 11월에는 행복해지고 싶고 올해 우리가 행복할 날은 겨우 두 달도 다 남지 않았으니. 말이 굼뜬 조 바이든이 수다쟁이 트럼프를 누른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책상 위엔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조그만 액자 하나가 놓여있다고 한다. 액자에 담긴 건 두 컷짜리 만화. 그는 평소 "이 만화가 필요할 때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만화는 미국 유명 작가 딕 브라운(1917~1989년)의 '공포의 해이가르'다. 주인공인 해이가르는 거칠지만 가정적인 바이킹이다. 그는 자신이 탄 배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에 맞아 좌초되자 신을 원망하며 하늘을 향해 외친다. "왜 하필 나입니까? (Why me?)" 그러자 신은 그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왜 넌 안 되지? (Why not?)" 영국 유명 언론인 피어스 모건은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뒤인 11월 7일(현지 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 만화에 얽힌 사연을 전했다. 모건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은 2015년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모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건에게 "피어스, 조 바이든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모건은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지만, "개성 있는 목소리"를 듣고 그가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했다. 바이든은 모건에게 "아들에 관해 쓴 기사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라고 했다.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낸 보는 46세에 요절하기 전까지 바이든의 정치적 후계자로 꼽혔다.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의 죽음을 접한 모건은 '보 바이든은 미국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이때 모건에게 이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이든 당선인은 29세였던 1972년 상원의원이 되자마자 부인과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들 보와 헌터도 이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그는 신을 원망하며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그 이유를 거듭 묻고 있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모건과의 통화에서 "당시 아버지는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화를 넣은 액자를 건넸다. 그 만화가 바로 딕 브라운의 '공포의 해이가르'였다. "아버지는 내가 낙심해 있을 때마다 '얘야, 세상이 네 인생을 책임져야 할 의무라도 있니? 어서 털고 일어나'라고 말해 줬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 만화는 나에게 ‘이미 일어난 일은 합리화할 방법이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불행은 찾아올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아버지의 방식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 만화를 통해 "아무리 나쁜 일처럼 보여도 많은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일을 겪고 있고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과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힘든 일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털고 일어서지 않으면 일어난 일에 짓눌려질 것이다. 나는 처음엔(아버지가 만화를 주었을 때)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들 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됐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아버지 조셉 바이든 시니어(1915~2002년)는 보일러 청소와 중고차 판매 일을 했다. 그는 선거 운동을 하면서 "아버지는 항상 제게 '사람을 평가할 땐 그가 얼마나 자주 쓰러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섰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자주 말해왔다. 바이든은 자신의 아들을 기리는 칼럼을 쓴 모건에게 "내가 당신에게 빚을 졌다. 언젠가 갚을 수 있길 바란다"라고 했다. 이에 모건은 "당신은 내게 진 빚이 없다. 보에 대한 글은 내가 그렇게 믿기 때문에 쓴 것이다. 보의 죽음은 당신의 가족뿐 아니라 미국에도 크나큰 손실"이라고 답했다. 2020년 10월 30일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게재했다. 예장 합동 교단 총회장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최근(9월 27일 새에덴교회 저녁 예배) 요한기념사업회에 선교 후원금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요한기념사업회는 경남 사천시 사천교회 정계규(62) 목사의 외아들인 고 정요한씨를 기리는 단체. 2010년 당시 24세로 성균관대에 재학 중이던 정씨는 말레이시아령(領) 보르네오섬으로 단기 선교를 떠났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자동차로 다시 3시간, 도보로 2시간을 가야 하는 오지였다. 사고는 봉사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발생했다. 봉사단 여성 3명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리자 정 씨와 동료 김성현(당시 20세 연세대) 씨가 바다에 뛰어들었으나 여성들은 구하고 자신들은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정 씨는 의사자로 지정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정 씨는 예배 전 은행에서 새 지폐로 헌금을 바꿀 시간이 없을 땐 헌 지폐를 다리미로 다려서 낼 정도로 신앙심이 독실한 청년이었다. 정 씨는 어떤 예감이 있었는지 단기 선교를 떠나기 전 예금 통장을 깨끗이 정리해 잔액을 5,209원만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 정 목사는 아들 장례식에서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손양원(1902~1950) 목사의 9가지 감사 기도에 한 가지를 더 보태 10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 손양원 목사는 여수 애양원에서 나환자를 돌보다 여순 반란 사건 당시 두 아들을 반란군에게 잃었다. 그러나 가해자를 용서하고 양자(養子)로 받아들였고 6·25 당시 공산군에게 희생됐다. 정 목사의 10번째 감사 기도는 ‘천국이 얼마나 그리운지 이제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린다’라는 것이었다. 정 목사는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에 사비를 보태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보르네오 현지에 아들 이름으로 네 교회를 건축했다. 또 현지 대학생 10명에게 4년간 장학금을 지급했고 현지 지도자와 어린이들을 한국에 2차례씩 초청하기도 했다. 숟가락을 사용해본 적이 없을 정도의 오지 마을 사람들의 여권 만들기부터 모든 과정을 도왔다. 기념사업에 드는 비용은 전액 정 목사가 따로 마련해왔다. 정 목사는 본지 통화에서 “아들 사후에 들어보니 일주일에 이틀 이상 금식(禁食)하면서 모은 금액을 어려운 주변 사람들과 나눴다고 한다”며 “새에덴교회의 기부금은 현지에 선교센터를 건립하는 데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님은 막막한 세상에서 소망을 찾아 산자락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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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0
  • 총신 사태와 재단이사장 후보 소문
    바이러스는 모든 종교를 강타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수천 년 내려온 절기의 전통을 중단시켰다. 순례객으로 그득해야 할 메카와 예루살렘은 적막하다. 소중한 전통과 제의를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신도들은 상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신이 주는 본질 회복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 걸고 지키려 해 온 종교의 가치가 성지나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담담히 성찰할 때가 아닐까. 그렇기에 비어 있는 메카의 모스크와 예루살렘 성전 통곡의 벽과 로마 베드로 성당 그리고 세계 곳곳 교회의 모습은 묘한 감동을 준다. 물리적으로는 비어 있지만 공허하지 않다. 빈 공간은 사람의 안전을 위한 공동 노력을 상징한다. 신도 간 거리 두기와 공간의 비움을 통해 유월절의 해방, 부활절의 생명, 그리고 추수감사절의 수확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움이 곧 영성인 즈음이다. 기도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통찰을 얻어 하나님의 뜻 확장하는 게 기도의 핵심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살피는 대화일 뿐 하나님의 뜻이 내 것이 돼야 한다. 총신을 졸업하지 않은 법학박사 소재열의 ‘리폼드뉴스’는 10월 17일 발 빠르게 총회 산하 교회 교역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세워 운영해온 총회의 관여를 달가워하지 않는 적반하장의 총신대 사태를 이렇게 전했다. 총신대 신대원 자율기관, 전직 이사들 정이사 선임반대, '수업거부 결의 여전히 유효'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총회신학원 제38대, 제39대 원우회, 제11대 여원우회 자율기관들이 지난 17일 총신대 법인 이사회 정상화와 관련하여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의하면... "이전 재단이사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라는 사실을 경계하며 "학내사태와 관련된 전현직 재단이사들의 정이사 선임을 절대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만일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아니할 때 "신대원 자율기관은 어떤 경우에서도 정이사 체제를 반대하며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수업거부 결의를 여전히 해제하지 않은 채 총회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라고 하며 수업거부 사태가 재연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졸업거부자 선배님들이었다"라며 "그분들의 희생을 시작으로 많은 물결들이 일어나 학교를 지키기 위해 뭉쳤으며 그렇게 우리는 추운 겨울, 제대로 수업을 듣지도 못한 채 강의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학교를 지켜야 했다"라며 정상화를 호소했다. 그들의 말대로 학교 건물 입구마다 컨테이너로 막고 투쟁한 덕인지 2018년 10월 5일 당시 총회장 박무용 목사에게 건넨 2천만 원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된 총신대학교 김영우 총장이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총신 사태는 종결됐다. 난마같은 총신 사태 해결 공로는 실상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와 당시 막후 실세 허활민 목사의 공로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부 파송 일반 관선이사와 제103회 총회장 이승희가 가려 뽑은 앞을 못 보는 국내 최초 장애인 대학 총장 시대가 전개됐다. 그런데 총회 산하 교역자가 되기 위해 총신에 들어온 학생들이 대한민국 교육부의 관선이사 시대를 마감하고 총회 파송 재단이사가 운영을 하려는데 반대를 한다. 그런 와중에 추미애의 검찰 감찰 사태로 어수선한 2020년 10월 28일 신임 재단 이사장에 사랑의교회 오정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총회 신임 총무 고영기가 하고 다닌다는 말을 총회에 정통한 인사에게서 들었다. 그래서 2020년 10월 29일 12시 21분에 총무에게 문자로 확인을 위해 물었더니 12시 22분 곧바로 ‘그런 일 없고 뜬 소문’이라는 답장이 왔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이전부터 신학대들이 경영난으로 학교를 팔아 몸집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차제에 총회 참여를 거부하고 관선이사 체제를 선호하는 신학생들과 신학 교수들과 그 구성원들과 그 후원자들을 통해 총신이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총회와 총회 산하 교회에 재정 요청을 할 것이 아니라 관선 이사를 통한 교육부를 통해 재정 지원을 받아 살을 깎는 자체구조 조정의 자구책으로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현 이재서 총장은 밀알선교단을 자립시킨 경력의 소유자이니 자신만이 아닌 수많은 직원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총신 재정 확충에 큰 능력으 발휘하리라 믿는다. 코로나로 어려운 총회 산하 교회에 기인 소강석 총회장 같이 선선한 후원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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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9
  • 김종희 칼럼 - 총회장 이취임식에 대한 견해
    그동안 우리 총회는 총회가 끝난 후 총회장 이취임식을 거행하였다. 지난 제104회 총회 때는 총회장 이취임식을 총회 기간에 가졌다. 그런데 이번 제105회는 총회장 이취임식을 가지지 않고 새에덴교회에서 총회장 취임식(감사예배)을 드렸다. 문제가 있는가. 전혀 없다. Ⅰ. 이취임식으로 권한이 이동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① 총회장은 선관위원장이 총회장 당선자를 총회장에게 상정하여 공포하므로 총회장으로 확정되고 직전 총회장으로부터 성경과 헌법과 고퇴를 물려받으므로 권한이 이동된다. 사실상 총회장 이취임식과 관계없이 이때부터 총회장이다. 총회장 이취임식을 해야지만 비로소 총회장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 총회 때 사회를 보며 처리한 모든 안건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취임식과 관계없이 총회장의 신분과 권한은 총회 때부터이다. ② 역시 이임하는 총회장도 후임 총회장에게 성경과 헌법과 고퇴를 물려 줌으로 이임이 된다. 반드시 이취임식을 해야지만 이임이 되고 취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Ⅱ. 이취임식이 아니라 사실상 감사예배이다. ① 이취임은 이미 총회 석상에서 이루어졌다.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지 이취임식은 아니다. 그러므로 감사예배의 장소를 꼭 총회회관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총회장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드리는 것도 의미 있는 예배가 된다. ② 감사예배를 드린 것은 법리상으로도 문제가 전혀 없다. 총회 선거규정 제29조에 ‘당선 확정 후 30일 이내에 총회 임원회에 당선무효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총회가 끝난 후 30일이 지난 때에 감사예배를 드린 것은 잘한 일이다. Ⅲ. 아쉬운 점은 보충하면 된다. ① 이미 취임식(감사예배)을 드렸는데 이제 와서 이취임식을 다시 한다면 웃을 일이 아닌가. 또한 취임식만 하였기에 이임식을 한다면 이것도 웃을 일이다. 이임을 먼저하고 취임을 하는 것인데 이미 취임을 하였는데 이임을 나중에 한다는 것도 맞지 않다. ② 그러나 이임하는 총회장에게 섭섭함이 있고 감사예배에 총회의 직책을 맡은 인사들을 초청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 “신구총회장 환영 및 위로 만찬”의 자리를 만들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이임사와 취임사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별도의 모임을 만드는 것이 부담이 된다면 총회가 소집하는 모임이 있을 때 진행해도 될 것이다. 김종희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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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김종희 칼럼 - 헌법자문위원회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나
    필자는 얼마 전 헌법자문위원회 설치를 보류하자는 글을 썼다. 그 이유는 헌법자문위원회가 유권 해석을 내리는 대로 총회의 각 기관이 따르기는 쉽지 않고 법을 다루는 부서에는 법을 판단하고 유권 해석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헌법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건과 이번에 ‘자문’이란 단어를 넣어 헌법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맥락이 다르다는 의견으로 필자를 설득하여 맡게 되었다. 헌법위원회는 해 위원회가 내리는 결정이 헌법재판소와 같이 구속력을 가지는 반면 헌법자문위원회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문이란 의미가 “어떤 일을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 그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에 의견을 물음”이므로 참고하여 일을 바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의견이 분분할 때 그냥 두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참고할 수 있도록 의견을 내는 기관이 있으면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헌법자문위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위원의 한 사람으로 제시하여 본다. 첫째 법의 보편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을 참고하면 ‘법은 원칙적으로 불특정 다수 인에 대하여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므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의 표준적 의미를 밝혀 객관적 타당성이 있도록 하여야 하고, 가급 적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파격적인 해석이 아니라 일관성과 안정성의 기조를 유지하도록 하여 법 자문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불러오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둘째 법을 해석함에 있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역시 대법원 판결을 참고하면 ‘어떠한 법률의 규정에서 사용된 용어에 관하여 그 법률 및 규정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중시하여 문언의 통상적 의미와 다르게 해석하려 하더라도 당해 법률 내의 다른 규정들 및 다른 법률과의 체계적 관련성 내지는 전체 법체계와의 조화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법 자문이 같은 법체계 하에서 다른 법률과 관련하여 조화가 무시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법을 취급하는 부서와 소통이 필요하다. 재판국은 총회의 위탁을 받아 헌법과 권징조례를 해석하고 적용하여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헌의부는 부당한 서류를 기각하거나 적당한 헌의를 총회에 제출할 수 있다. 그리고 총회 서기는 총회로 오는 서신, 헌의, 청원, 보고, 문의, 소송 등 모든 서류를 접수하여 헌의부에 전한다. 여기서 ‘접수(接受)’라는 말의 의미는 신청서나 신고 따위를 일정한 형식 요건 아래 받는다는 말이다. 일정한 형식을 갖춘 문서인가, 받아도 되는 요건을 갖춘 문서인가를 법리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런 법리를 다루는 부서들과 소통을 한다면 헌법자문위원회는 원만한 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헌법자문위원회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부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성민교회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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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0
  • 김종희 칼럼 - 부전지 붙은 상소장 구별 잘 해야 한다
    D 노회의 K 목사 “치리회가 다른데 상대방 치리회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는가.” 즉 A 노회가 B 노회를 걸어 총회에 고소 고발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또 N 노회 J 목사 “치리회가 다른 회원 간에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느냐.” 즉 A 노회의 ‘갑’ 회원이 B 노회의 ‘을’ 회원을 걸어 ‘을’ 회원이 소속한 B 노회에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할 수 없다. 그 이유를 아래에 언급하고자 한다. Ⅰ. 고소 고발은 치리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① 헌법적 규칙 제3조 교인의 권리에 보면 1항 “교인은 교회 헌법대로 순서를 따라 청원(請願), 소원(訴願), 상소(上訴)할 권리가 있다.” 2항 “교인은 지 교회에서 법규대로 선거 및 피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무고히 6개월 이상 본 교회 예배회에 계속 출석치 아니한 교인은 위의 권리가 중지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치리회 안에 있는 회원도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모든 권리가 중지된다. 하물며 다른 치리회에 속한 자는 치리회 안에서 주어진 권리가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고소 고발을 할 수 있나. 고소 고발은 치리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② 권징조례 제15조에 보면 “기소인이 치리회에서 선정한 위원이 아니요, 자의(自意)로 소송하는 자의면 개심(開審)하기 전에 치리회는 먼저 경계하되 ‘송사가 허망하여 너의 악의와 경솔한 심사가 발현되면 형제를 훼방하는 자로 처단하겠다’ 언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치리권 밖에 있는 자의 고소 고발을 받을 경우 송사가 허망한 것이 발견된들 무슨 권한으로 처단할 수 있나. 그러므로 치리권 밖의 사람이 고소 고발하는 것은 받을 수가 없다. 치리권이란 고소, 고발자와 피고소, 피고발자에게 다 같이 미쳐야 한다. 그런데 다른 치리회 회원이 고소, 고발하면 그 회원에게 잘못이 있어도 치리권이 미치지 못하므로 받아서는 안된다. ③ 권징조례 제10장 제106조 “본 치리회 내 결의 사건에 대하여 투표권이 없는 자는 이의서와 항의서를 제출하지 못하고...”라고 하였다. 같은 치리회 안에서도 자격이 제한되고 있는데 하물며 다른 치리회 회원이 다른 치리회에 이의나 항의할 수 없다. ④ 정치 제10장 제6조 2항 “노회는 각 당회에서 규칙대로 제출하는 헌의와 청원과 상소 및 소원과 고소와 문의와 위탁 판결을 접수하여 처리하며...”라고 하였기에 소속되어 있는 하회 치리회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고소, 고발을 받을 수 없다. ⑤ 제102회 총회 결의에 “산서노회장 조영기 씨가 헌의 한 특정 개인이나 교회 및 타노회를 상대로 한 무분별적 긴급동의안 처벌 규정의 건은 현행대로(타 노회가 소속이 안 된 회원을 처벌할 수 없음) 하기로 하다.”이므로 타 노회원을 처벌해 달라고 할 수 없다. Ⅱ. 권징조례 제38조를 오해하면 안 된다. ① 권징조례 제38조 “목사가 본 주소에서 떠나 먼 곳에 있어 피소된 때 그 본 노회가 실정은 알 도리가 없고 그 소송 발생한 지방을 관할하는 노회가 유죄 한 줄로 생각하면 그 사건의 성질이 어떠한 것을 당연히 그 본 목사의 노회에 통지할 것이요, 본 노회는 그 통지를 접한 후에 그 사건이 종교상 명예에 관계되는 것이면 즉시 재판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② 위 조문을 오해하여 A 노회 목사가 B 노회에 속한 목사를 B 노회에 고소, 고발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위 조문이 말하는 내용은 이렇다. B 노회에 속한 ‘갑’이라는 목사가 자신의 소속 노회 지역이 아닌 A 노회 관할 지역에서 죄를 범하여 B 노회에 피소가 되었다. 이때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본 노회인 B 노회가 알 길이 없다. 이럴 때는 A 노회에서 ‘갑’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B 노회에 통지해 주는 것에 의하여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③ 더 부연하면 B 노회에 소속된 ‘갑’이 미국에서 일어난 일로 같은 B 노회 ‘을’에 의하여 피소가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B 노회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런때는 미국의 그 지역을 관할하는 노회에서 ‘갑’을 유죄로 인정하여 B 노회로 통지하여 줄 때 그 사건이 종교상 명예에 관계되는 것이면 즉시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관할 지역 노회가 B 노회에 ‘갑’을 고소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조문은 다른 치리회 회원을 걸어 그 치리회에 고소나 고발을 할 수 있다는 조문이 아니다. Ⅲ. 치리회 간에 소원은 할 수 있다. ① 권징조례 제84조에 규정된 ‘소원’이라 함은 “서면으로 상회에 제출하는 것이니 하회 관할에 속하여 그 치리권에 복종하는 자 중 1인 혹 1인 이상이 행정 사건에 대하여 하회가 그 책임을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위법한 행동이나 결정에 대하여 변경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원도 치리회 안의 사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② 또한 권징조례 제114조에 ‘치리회 간의 재판 규례’는 “어느 회든지 그 동등된 회를 상대로 소원할 일이 있으면(제84조, 제93조 참조) 한층 높은 상회에 기소할 것이나 이런 경우에 사건 발생 후 1년 이내에 피고 된 회의 서기와 그 상회 서기에게 통지한다”라고 규정되었다. 그러므로 동등한 다른 치리회 간에 소원은 할 수 있으되 고소 고발은 할 수 없다. ③ 분명하게 권징조례 제114조의 치리회 간의 재판규례는 고소, 고발하여 재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말한다. 제114조의 조문에 제84조, 93조를 참조하라는 토를 달았는데 이 84조와 93조는 소원을 말하는 조문이기 때문이다. 소원이란 행정 건을 바로 잡아 달라는 것이지 누구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소원은 가능해도 누구를 처벌해 달라는 고소 고발은 불가능하다. Ⅳ. 부전지 붙은 상소장 구별 잘 해야 한다. ① 하회에서 고소, 고발을 받아 주지 않으면 부전지를 붙어 상회에 상소하는 경우가 있다. 본 교단 헌법은 권징조례 제94조에 부전(附箋)하여 상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A 노회의 ‘갑’ 회원이 B 노회의 ‘을’ 회원을 걸어 ‘을’ 회원이 소속한 B 노회에 고소, 고발하였다가 B 노회가 거절하면 부전지를 붙여 총회에 상소하려고 할 것이다. ② 이럴 때 총회 서기는 부전이 붙은 서류이니 합법적인 서류라고 인정하여 헌의부로 보내서는 안된다. 헌의부도 이런 서류를 재판국으로 보내도 안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전지는 상소인이 소속된 하회가 상소를 거부할 때 붙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③ 권징조례 제94조 3항 “상소인이 소속된 하회가 상소인의 상소통지서 접수를 거부하면 부전(附箋)하여 상회에 상소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이 소속되지 않은 남의 치리회에 고소, 고발하였다가 안 들어 준다고 부전지를 붙여 상소는 할 수 없다. 부전지는 자신이 소속한 치리회가 받아 주지 않을 때 붙이는 것이다. Ⅴ. 결론 소속이 다른 치리회가 받아 주지 않았다고 부전지를 붙여 한층 높은 상회에 상소할 수 없다. 치리회가 다르면 서로 고소나 고발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동일 치리회가 한층 높은 치리회에 행정소원은 할 수 있다. 행정소원은 잘못된 행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것일 뿐 누구를 처벌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서로 다른 치리회 간에 고소, 고발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상대방 치리회에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 고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리회가 다르면 고소, 고발을 받아 주면 안 된다. 안받아 준다고 부전지를 붙여 상회로 가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이런 질서가 확립되어야 무분별한 소송이 난무하지 않아 시끄러운 총회를 방지할 수 있다. 김종희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성민교회)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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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7
  • 김종희 칼럼 - 편목의 정회원권 문제
    질문; M 노회의 K 목사께서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의를 하여 답변한다. ① 타 교단 목사가 본 교단에 가입할 때 언제부터 정회원이 되는가. 노회에 가입할 때부터인가. 강도사 인허를 받고 난 후부터인가. ② 그리고 시무 연한을 따질 때 타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시무한 기간을 인정해야 하나. 본 교단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은 날부터 인정해야 하나. Ⅰ. 강도사 인허를 받고 난 후부터 정회원이 된다. ① 정치 제15장 제13조에 의하면 “다른 교파에서 교역하던 목사가 본 장로교회에 속한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본 장로회 신학교에서 총회가 정한 소정의 수업을 한 후 총회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여야 한다. 한국 이외 다른 지방에서 임직한 장로파 목사도 같은 예(例)로 취급한다. 또 한 본 장 10조에 규정한 각 항의 서약을 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다. ② 위 조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 총회가 정한 소정의 수업을 한 후 ⒝ 총회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여 노회에서 인허를 받아야 하고 ⒞ 인허를 받을 때 정치 제15장 제10조에 해당하는 목사 서약을 하면 정회원이 된다. ③ 그러나 상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노회에 가입한 경우는 정 회원권을 줄 수 없다. 제104회 총회 결의 “동한서노회장 채종성 씨가 헌의 한 ‘타 교단 목사가 교회와 함께 정치 제15장 제13조 가입 시 교회 대표 건은 임시로 인정한다.’라는 결의 청원의 건은 허락하기로 가결하다.”로 받았다. 본 결의의 의미는 확실한 정회원일 경우는 대표권을 임시로 인정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정회원이면 대표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회원이 못되므로 임시로 교회 대표자의 자격을 인정해 준 것뿐이다. ④ 예외로 제92회 총회에서 “황동노회장 장 융 씨가 헌의 한 총회 산하 정치 제15장 13조로 가입한 회원에게 단 일회적으로 정회원 자격부여의 건은 제90회(2005년 9월) 총회에서 영입한 개혁교단 목사회원 전원에게 정 회원권을 준 바 있으므로 이와 동등한 자격을 주되 교단 가입 후 5년 무흠 만45세 이상 된 분으로 해당 노회에서 심사하여 처리하기로 가결하다.”의 결의가 있었다. 그러나 단 일회적으로 끝났기에 지금은 정치 제15장 제13조를 이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강도사 인허를 받고 목사 서약을 한 후에 정 회원권이 인정된다. Ⅱ. 강도사 인허를 받고 난 후부터 시무 연한이 계산된다. ① 제82회 총회 “군산노회장 정주우 씨가 청원한 편목의 목사 임직과 위임기간에 관한 질의 건은 정치 제15장 13조에 의하여 하기로 가결하되 ‘강도사 인허 때부터 교단 가입으로 한다’를 삽입키로 하다.”로 결의하였다. 그러므로 이 결의에 따라 교단에서 시무 연한은 강도사 인허 때부터 시작된다. ② 그러므로 타 교단에서 시무한 연수는 본 교단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는 원칙이다. 헌법 제4장 제4조 4항 “동일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한 목사가 연로하여 노회에 시무 사면을 제출하려 할 때는 본 교회에서 명예 적 관계를 보존하고자 하면 공동 의회를 소집하고 생활비를 작정하여 원로목사로 투표하여 과반수로 결정한 후 노회에 청원하면 노회의 결정으로 원로목사의 명예직을 준다. 단 정년이 지나면 노회의 언권만 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동일한 교단’이라는 단서는 없다. 그러나 단서가 없다고 해서 동일한 치리회가 아닌데 교단을 달리한 시무 연한을 인정한다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 ③ 또한, 안 되는 이유로 총회 선거규정 제3장 제10조 1항에 “합법적인 분립 및 합병의 절차를 거친 교회는 동일교회로 간주한다.”라고 하였고 2항에 “합법적인 분립 및 합병의 절차를 거친 노회는 총회 보고 이전이라도 동일 노회로 간주한다.”라고 하였다. 이 규정의 이면에는 합법적인 분립이나 합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교회는 동일 교회로 볼 수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합법적인 분립이나 합병의 절차로 본 교단에 들어온 편목은 이전 교단의 교회와 함께 들어온 경우 시무 연한을 인정받을 수 있겠으나 개별적으로 본 교단에 들어온 편목은 이전 교단의 소속으로 있을 때 교회의 시무 연한을 인정받을 수 없다. ④ 또한 제74회 총회에서 “서울노회장 이덕수 목사가 청원한 정치 5장 4조 장로 자격을 무흠 5년에 대한 질의는 본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무흠 5년으로 해석함이 옳다고 가결하다.”로 하였고 제96회 총회에서 “서중노회장 민경대 씨가 헌의 한 헌법 정치 제5장 제3조 장로의 자격에서 무흠 5년이 타 교회 출석 기간 포함인지 해 교회 출석만 인정하는지에 대한 질의의 건은 본 교단에서 이명서를 첨부하여 이동한 경우에 인정하기로 가결하다.”로 하였다. 그러므로 시무 연한을 계산할 때는 본 교단 안에서 시무한 연한으로 계산하는 것이 총회 결의 정신이다. Ⅲ. 결론 편목으로 본 교단 노회에 가입한다고 곧 바로 정회원 권이 부여될 수 없다. 총회가 정한 소정의 신학 과정을 공부하고 강도사 고시에 합격한 후 인허를 받고 목사 서약을 해야 정회원이 된다. 그리고 시무 연한은 강도사 인허 때부터 본 교단 가입이 인정되므로 그때부터 시무 연한이 시작된다. 본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와 다른 점은 본 교단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때부터 목사 시무 연한이 시작되지만 편목은 본 교단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은 때부터 목사 시무 연한이 시작된다. 그리고 합법적인 분립이나 합병으로 인한 경우가 아니면 이전 교단에 있을 때 시무 연한은 인정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본 교회가 이전 교단에 있을 때 시무 연한과 본 교단에서 시무 연한을 합하여 원로목사로 추대하려고 하고 노회가 명예를 보존해 주기를 원할 때 시비가 없고 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없다면 어찌하겠는가. 김종희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 성민교회) 20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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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4
  • 목사 소강석 가수 나훈아
    농담을 하는 어릿광대(jester)나 궁정 광대(court jester)는 중세 및 문예 부흥기에 귀족이나 군주의 궁정에 고용되어 고용주 및 그 손님들의 오락에 봉사한 사람이다. 궁정뿐 아니라 정기 장날이나 시장판 같은 곳에서 평민들을 대상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설교단의 목사 소강석 같이 중세 어릿광대들은 노래, 음악, 스토리텔링, 농담 등 다종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구사하는 연예인이었다. 중세 어릿광대의 행색을 흉내 내는 현대의 예능인들도 어릿광대라고 부른다.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목포에서 낙선한 박지원 신임 국정원장이 2020년 8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교회 갑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렵니다.” 한국 현대 정치판 불세출의 여우 박 신임 원장이 간 교회는 소강석 목사가 담임하는 새에덴교회였다. 8월 2일 광대를 자처하는 소강석 목사는 박지원이 참석한 예배 설교단에서 개그 하듯 설교했다. “제가 왜 저 어른을 존경하고 사랑하느냐. 주군을 위해서, 이번에도 청문회 할 때 버럭 화를 내실 때는 DJ 대통령이 거론이 되니까 DJ 대통령을 위해서 온갖 충성과 온갖 성심을 다해서 모셨고 그 분을 위해서 수감 생활(2006년 5월 25일 대북송금과정에서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의 실형 법정 구속)까지 하셨고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니까 청문회도 잘 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끝나고 전화를 올렸어요, 그 위트와 지혜 저도 좀 달라고, 저에게 어떻게 좀 안수를 해주시겠습니까. 신임 원장님이 되셔서 취임하시면 제일 먼저 우리 교회를 오신다고 하셨는데, 오늘 오시자마자 (박 원장이) ‘내 약속 지켰지요’라고 했습니다. 약속을 지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남북문제, 우리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도록 축하와 격려 박수를 한 번 해드립시다. 박지원 원장님, 많은 분들이 전문가들이 목포에서 떨어진다고 했지만 ‘나는 될 것이다’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돕고 또 후원했습니다. 그런데 떨어지셨습니다. 떨어졌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찾아가서 위로해 드리고 ‘대표님, 대표님의 지금까지의 정치적 노하우와 그 경험된 축적의 실력은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는 않을 겁니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위해 한 번 두 번 이상 반드시 쓰임받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의 종의 말을 이렇게 이루어주시더라고요, 야 이거 내가 점쟁이를 해야 되나,,,” 2020년 9월 21일 광대를 자처하는 소강석 목사는 제105회 총회장이 되어 회기 중 주안점에 대해 기독신문 주필 김관선 목사에게 광대답지 않게 말했다. “미래전략입니다. 우리 교단에 개혁신학을 시스템화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는 정규오·이영수 목사님 같으신 분들이 나와야 합니다. 저에 대해 적어도 돈을 밝히거나 의심스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정치적 안목보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의 열정과 지혜를 조직화해서 총회의 미래를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자 합니다. 총회 파회 전에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 교단의 발전과 부흥의 발자취, 그리고 교단의 미래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벤트성 총회로 흘러왔습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연구보고가 사장되지 않고, 정책의 연속성을 세워가는 일을 하겠습니다. 총회가 발전하고 부흥할 것인가에 관심 가질 것입니다.” 일주일 뒤 9월 27일 매일경제 기자에게 빨간 코가 없는 진지한 광대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교회가 성장하다 보니 화석화돼 가고 있습니다. 생기를 잃어버리고 꼰대가 돼 가고 있는 거예요. 목회자라면 꼰대가 되느니 차라리 광대가 돼야 합니다. 주류 출신들은 옷에 때 묻을까 봐 광대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어요. 욕을 하면 욕을 먹겠습니다. 목사들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목사들이 `헌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로 들어가야 합니다. 광대 자처하는 목사 소강석은 훈장도 받았다.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7년 캄보디아 국왕 훈장 9월 30일 오후 KBS 2TV에선 2020 한가위 대기획으로 방영된 나훈아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가수 나훈아(74)는 목사 소강석(58)과 달리 자신을 가수라고 했다. 가수라고 자처하는 트로트 가수 나훈아는 가수답지 않게 말했다. 10월 1일 조선일보 기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무려 15년 만에 TV에 출연해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친 가수 나훈아의 눈매는 여느 때보다 인자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무게감은 상당했다. ‘제2부-사랑’ 편에 청바지에 통기타를 들고 등장한 나훈아는 ‘깜짝 MC’로 등장한 김동건(82) 아나운서와 대화 중에 공영방송 KBS를 에둘러 쓴소리했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 소신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훈아는 코로나 방역의 영웅인 의사와 간호사들을 칭송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가수답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많이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면 제가 살아오는 동안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 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가수 나훈아에게 질문했다. “나라가 주는 훈장을 사양했다고 하더라.” 가수 나훈아는 또 가수답지 않게 말했다.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삽니까.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 6:43-45 20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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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1
  • 교황 23세와 제105회 총회장 소강석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있다. 2019 가을부터 2020 가을에 이른 지난 1년은 해도 해도 너무한 한 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 한 해였다. 진보를 앞세운 자들의 잘난 부모들의 뻔뻔스러운 특권 질, 황당 궤변으로 제 식구 감싸기, 오만·방자함, 돈 추문, 성폭행, 막가파 행태가 하늘을 찌른 한 해였다. 코로나는 디지털, 바이오테크 기반의 혁신이 모두의 운명을 가른다는 진실에 국가와 기업과 우리의 교회 현실을 냉정히 직면케 했다 . 이는 역사의 잔인한 진리이기도 했다. 총을 든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168명 스페인 병사들은 돌, ·나무곤봉으로 맞선 잉카 제국 만여 명을 진압했다. 구멍 낸 사슴뿔로 굉음을 낸 화살, 명적(鳴鏑)의 몽골은 유라시아를 공포로 지새우게 했다. 단파 송수신기 개량 중 우연히 발견한 기술, 레이더로 미국은 나치의 U-보트와 전투기를 무력화시켰다. 미국방부가 군사적 소통용으로 개발한 인터넷, 인간의 지식 기반을 넓혀준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등 국가·기업의 성쇠를 결정한 건 기술 혁신이다. 나라 세운 지 72년. 보수는 58년 집권했다. 공산주의에 맞선 힘든 건국, 보릿고개를 면케 해 준 산업화 공로도 컸다. ‘반공’과 ‘성장’을 축으로 나라 창업해 이끌어 온 오랜 주류였다. 그러나 평등·공정·인권 등 진보적 가치의 쓰나미에 보수 정치는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섰다. 총선 참패의 충격이 컸을 터다. 하지만 72년, 58년의 시간이 흘렀다면 진즉 보수는 시대를 수용한 창조적 파괴와 쇄신을 도모해야 했다. 오죽했으면 팔십 줄 노구의 비대위원장에게 “이제 보수란 말도 쓰지 말라. 시비도 말라”는 꾸지람을 듣게 됐는가. 미래통합당의 적(敵)은 바로 변화하는 시대이자 시대를 놓친 자신들 뿐이다. 이 세상 가장 보수적인 곳은 이제 칼빈주의를 외치던 우리 교단이 아니다. 우리가 마귀의 본산이라고 하던 가톨릭 교회 본부인 바티칸이다. 전 세계 8억 명을 다스리는 이 작은 나라를 근원적으로 뒤바꾼 교황 요한23세(1958~63 재임)의 도전은 막 개혁의 걸음을 뗀 우리 보수 정치가 도움받을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전통·규율의 엄한 수호자로 20년 재임한 비오12세의 임종 직후인 1958년의 콘클라베. 11번째 투표 뒤 빈농의 아들인 77세의 요한23세가 선출됐다 . 땅딸막한 체구에 맞는 교황 옷조차 없어 앞쪽 단추만 채우고 등 쪽 솔기를 뜯어내야 했다. 별 볼일 없는 ‘과도기 교황’이란 빈축에 그는 “지상의 우리 모두는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무표정하게 웅얼거렸다. 청장년기 그는 예전 우리가 교계에서 좋아라 하며 흔히 듣던 ‘꼴통 보수’였던 것 같다. 신학교 때는 “아무래도 위험하니 절대 여자들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써놓곤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그와는 색다르게 트로트 가수 설운도는 어머니가 "여자를 돌같이 알아라" 했다고 수석을 취미로 삼아 많은 돌을 집안 가득 모아놓기도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교황이 될 운명의 그는 카드·주사위 놀음은 구경도 않고 ‘바깥 공기’가 들어올 신문조차 보지 못했다. 한 파티장의 노출 심한 젊은 여성에겐 자꾸 사과를 먹으라고 권하면서 “하와는 사과를 먹고 나서 자신이 벗은 몸이라는 걸 알고 부끄러워했다”라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해 줬다고 한다. 그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에 오른 당시는 세계사적 격변기였다. 2차대전·식민시대, 한국전이 막 내린 이후 미·소 냉전은 최고조였다. 무신론 공산주의가 지구 절반을 물들이고 그리스도 교회는 사분오열됐다. 자유·자본의 개방 풍조 속에 가족 붕괴, 이윤 추구, 진화론, 이혼·낙태, 교회의 부패, 동성결혼, 노조를 둘러싼 가치 혼란이 극심했다. 변화와 전통의 극한 대치 속 교회는 더이상 세속의 양떼를 이끌기엔 힘이 부쳐만 갔다. 지금 우리의 총회 정치와 신학처럼…. 로마의 주교가 된 석 달 뒤. 요한23세가 택한 해법은 62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公議會)였다. 93년 만의 공의회 소집이었다. 온갖 피부색, 모든 교회의 주교·성직자와 좌우의 신학자 2,540명을 불렀다. 시대의 문제, 시대가 보는 교회의 문제, 사람들의 불안과 갈망을 난상 토론해 새로운 교회의 길을 찾아보자는 도전이었다. 스스로를 고해하고 재판하자는 결단이다. 교황만 빼곤 난리가 났다. 그의 절친인 밀라노의 몬티니 추기경조차 “이 성스러운 만년 소년은 자기가 말벌의 집을 들쑤시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교황청에 내걸린 사목(司牧) 슬로건이 '항상 그대로(semper idem)’였으니 말이다. “혹 이게 악마의 유혹은 아닐까”라고 흔들리곤 했던 요한23세의 당시 고뇌와 결단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암반 같은 보수의 변화엔 값진 원칙들이다. 첫째 개방.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나쁜 공기도 들어오겠지만 그래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옵니다.” 둘째 포용. “언젠가는 공산주의라는 골리앗도 하나님 뜻에 굴복할 겁니다. 그들을 교회의 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며, 교회에는 원래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변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삶이 충만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기 위함입니다.” 셋째 진취적 도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진리를 무슨 숨겨놓은 보물인 양 지키는 데 급급 하는 건 잘못된 길입니다.” “우리 대표자들은 섬이나 참호, 성 안에 숨어 살려는 기질을 버려야 합니다.” “두려움과 선입견 없이 세상과 다시 만납시다. 분명한 개혁의 목표. “교회가 사람들을 위해 말하지는 않고 교회 자체에 대해서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마지막 넷째 개혁의 ‘취사선택’ 균형. “헐떡거리면서 세상의 뒤를 쫓아가지도 말고, 무비판 적으로 세상에 박수를 보내지도 맙시다.” 1963년 요한23세는 위암으로 임종했으나 유지를 이은 바오로6세가 공의회를 마무리했다. 요즘 한국 가톨릭의 제사 수용, 모국어 미사, 사회정의, 소수 층에의 관심, 폴란드·쿠바 등 교황의 공산권 방문, 타 종교와의 화해·포용, 평신도 존중 등 숱한 변화가 그 성과였다. 요한23세는 기적(奇蹟)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6년 전 성인으로 시성(諡聖)됐다. 이 지난한 개혁에의 도전이 바로 '기적’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자 보수 교단이여. 스스로 광대라 하는 총회장을 맞이하여 요한 23세의 교황청처럼 총회에 똬리를 튼 말벌의 집을 들쑤셔야 할 때다. 대충대충 보수의 개혁이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2020년 9월 21일 제105회 총회장이 될 소강석은 누구인가. 그는 영국의 호국경 크롬웰처럼 믿음의 견지에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지도자이다. 돌발적인 상황에도 감정으로 덧칠하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그는 영국의 호국경 믿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생각하고 설득하고 대처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믿음의 지도자다. 소강석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에는 영국의 청교도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같은 단단하고 빛나는 금강석의 빛이 보인다. 교단과 교계를 이단과 반성경적 사조로부터 수호하고 목회생태계를 단단히 다지기 위한... 제105회 총회 주제는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 근거한 ‘세움(Planting)’의 총회이다. 6월 11일 목요일 11시 총회회관에서 열린 총회준비위원회에서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세움’의 비전을 통한 제105회 총회 정책을 제시했다. 그 정책의 틀은 세 가지이다. 1. 105회 기념사업1) 총회합동 15주년 기념 감사예배 2) 백남조 포럼 3) 터키 포럼 4) 기도 한국 회복 2. 미래 전략1) 미래전략발전위원회 상설화 2) 반기독교 대응교회생태계위원회, 반기독교대응위원회, 이슬람대책위원회 등 통합 운영 3. 교단교류협력사업1) 교단교류협력위원회 재 신설을 통해 연합사업 주도 2) 총회위기관리특별위원회 설치 운영, 교단 협력 3) 총회 소속 목회자 전원 은급재단 가입 추진 시인이기도 한 그는 ‘촛불’이란 시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헌신의 뜻을 세웠다. 타야만 빛이 되고어둔 밤을 밝힘을알았습니다사랑할수록 부족하고드릴수록 목마르기에서러운 눈물만 흘립니다밤새도록 울다가그리움에 사무치며 꺼져야 할시한부 생명이지만이 밤도당신을 위한 사랑의 제단에서춤추며 타오르는 촛불이 되겠습니다 2020-09-19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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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9
  • 시무 7조 상소
    존경하는 제105회 총회장 소강석 목사님. 믿음은 자신의 믿음을 마시지 않고 소망은 자신의 소망을 먹지 않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자신을 비추지 않고 자기를 위해 향기를 퍼뜨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사는 게 믿음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고 그리고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게 이해하기가 어렵더라도 말이지요. 칼빈주의 신앙과 신학 위에서 제105회 세움의 총회를 이루려는 시대의 기인 소강석 총회장님에게 삼가 시무 7조 헌의를 드립니다. 시무(時務)란 그 시대(時代)에 꼭 해야 할 중요하고 시급한 업무를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시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소(疏)의 일종이었습니다. 그러한 상소를 영명하신 제105회 소강석 총회장님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一. 총회 본부 근무자의 사무실과 책상 크기를 총회장, 총무, 사무총장, 국장 등 순으로 구별을 두되 모양과 규모를 화합을 위해 통일시켜 주십시오. 二. 3년 임기의 총무와 사무총장의 업무 효율과 집중을 위해 담임목사직을 겸한 이중 직 금지의 전통을 지켜주십시오. 三.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총회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 교육전도국에 관련된 교육개발원을 병합시켜주십시오. 四. 그간 무능과 직무유기로 은급재단의 부실(같이 출발한 통합 측 5,000여억 원에 비교하기도 부끄러운 400여억 원)을 오랜 세월 19년 동안 끼친 책임자들을 교체해 총회 연금의 활성화와 안정화를 기해 주십시오. 五. 총회 재판국은 제105회 부서기에 뻔뻔하게 나선 허은 목사 식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직권남용의 합의서가 아니라 소송과 분쟁을 법에 준거한 재판으로 판결하는 기능을 고정시켜 주십시오. 六. 총회 근간인 헌법의 가치와 성경적 신앙의 절대적 권위를 지켜주십시오. 七. 마지막으로 이영수 목사 이래 그 모양 그대로 있는 총회 회관의 세계 최고의 위치는 바꾸지 마시고 낡고 빛바랜 외양과 내용을 새롭게 리모델링 해주십시오.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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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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