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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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詩聖) 조지훈(1920∼1968)이 ‘행복론’이라는 시를 썼다.

멀리서 보면 / 보석인 듯
주워서 보면 / 돌멩이 같은 것
울면서 찾아갔던 / 산 너머 저쪽
아무 데도 없다 / 행복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 / 마음속에 만들어 놓고
혼자서 들여다보며 / 가만히 웃음 짓는 것.
(후략)

1967년 10월 27일. 한 일간지에 조지훈의 시 ‘행복’이 실려 있었다. 그로부터 53년이 흘렀고 쉰 세 번의 가을이 우리를 스쳐 갔다. 그 사이에 사람은 죽고, 사람은 태어나고 사람은 울고 사람은 웃었다. 그때와 같은 가을이되 실상은 전혀 같지 않은 가을이라는 사실이 참 묘하다.

53년 전의 행복은 53년 후의 행복과 어떻게 달랐던가. 아니, 53년 후의 행복은 53년 전의 행복과 어떻게 같으려나. 2020년 10월의 마지막 날이 아쉬워 일부러 10월에 탄생한 시를 읽어 본다. 11월에는 행복해지고 싶고 올해 우리가 행복할 날은 겨우 두 달도 다 남지 않았으니.

말이 굼뜬 조 바이든이 수다쟁이 트럼프를 누른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책상 위엔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조그만 액자 하나가 놓여있다고 한다. 액자에 담긴 건 두 컷짜리 만화. 그는 평소 "이 만화가 필요할 때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만화는 미국 유명 작가 딕 브라운(1917~1989년)의 '공포의 해이가르'다.

주인공인 해이가르는 거칠지만 가정적인 바이킹이다. 그는 자신이 탄 배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에 맞아 좌초되자 신을 원망하며 하늘을 향해 외친다.

"왜 하필 나입니까? (Why me?)"

그러자 신은 그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왜 넌 안 되지? (Why not?)"

영국 유명 언론인 피어스 모건은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뒤인 11월 7일(현지 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 만화에 얽힌 사연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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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은 2015년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모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건에게 "피어스, 조 바이든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모건은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지만, "개성 있는 목소리"를 듣고 그가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했다.

바이든은 모건에게 "아들에 관해 쓴 기사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라고 했다.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낸 보는 46세에 요절하기 전까지 바이든의 정치적 후계자로 꼽혔다.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의 죽음을 접한 모건은 '보 바이든은 미국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이때 모건에게 이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이든 당선인은 29세였던 1972년 상원의원이 되자마자 부인과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들 보와 헌터도 이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그는 신을 원망하며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그 이유를 거듭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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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당선인은 모건과의 통화에서 "당시 아버지는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화를 넣은 액자를 건넸다. 그 만화가 바로 딕 브라운의 '공포의 해이가르'였다. "아버지는 내가 낙심해 있을 때마다 '얘야, 세상이 네 인생을 책임져야 할 의무라도 있니? 어서 털고 일어나'라고 말해 줬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 만화는 나에게 ‘이미 일어난 일은 합리화할 방법이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불행은 찾아올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아버지의 방식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 만화를 통해 "아무리 나쁜 일처럼 보여도 많은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일을 겪고 있고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과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힘든 일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털고 일어서지 않으면 일어난 일에 짓눌려질 것이다. 나는 처음엔(아버지가 만화를 주었을 때)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들 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됐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아버지 조셉 바이든 시니어(1915~2002년)는 보일러 청소와 중고차 판매 일을 했다. 그는 선거 운동을 하면서 "아버지는 항상 제게 '사람을 평가할 땐 그가 얼마나 자주 쓰러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섰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자주 말해왔다.

바이든은 자신의 아들을 기리는 칼럼을 쓴 모건에게 "내가 당신에게 빚을 졌다. 언젠가 갚을 수 있길 바란다"라고 했다. 이에 모건은 "당신은 내게 진 빚이 없다. 보에 대한 글은 내가 그렇게 믿기 때문에 쓴 것이다. 보의 죽음은 당신의 가족뿐 아니라 미국에도 크나큰 손실"이라고 답했다.

2020년 10월 30일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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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합동 교단 총회장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최근(9월 27일 새에덴교회 저녁 예배) 요한기념사업회에 선교 후원금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요한기념사업회는 경남 사천시 사천교회 정계규(62) 목사의 외아들인 고 정요한씨를 기리는 단체. 2010년 당시 24세로 성균관대에 재학 중이던 정씨는 말레이시아령(領) 보르네오섬으로 단기 선교를 떠났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자동차로 다시 3시간, 도보로 2시간을 가야 하는 오지였다. 사고는 봉사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발생했다. 봉사단 여성 3명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리자 정 씨와 동료 김성현(당시 20세 연세대) 씨가 바다에 뛰어들었으나 여성들은 구하고 자신들은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정 씨는 의사자로 지정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정 씨는 예배 전 은행에서 새 지폐로 헌금을 바꿀 시간이 없을 땐 헌 지폐를 다리미로 다려서 낼 정도로 신앙심이 독실한 청년이었다. 정 씨는 어떤 예감이 있었는지 단기 선교를 떠나기 전 예금 통장을 깨끗이 정리해 잔액을 5,209원만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 정 목사는 아들 장례식에서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손양원(1902~1950) 목사의 9가지 감사 기도에 한 가지를 더 보태 10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 손양원 목사는 여수 애양원에서 나환자를 돌보다 여순 반란 사건 당시 두 아들을 반란군에게 잃었다. 그러나 가해자를 용서하고 양자(養子)로 받아들였고 6·25 당시 공산군에게 희생됐다. 정 목사의 10번째 감사 기도는 ‘천국이 얼마나 그리운지 이제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린다’라는 것이었다.

정 목사는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에 사비를 보태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보르네오 현지에 아들 이름으로 네 교회를 건축했다. 또 현지 대학생 10명에게 4년간 장학금을 지급했고 현지 지도자와 어린이들을 한국에 2차례씩 초청하기도 했다. 숟가락을 사용해본 적이 없을 정도의 오지 마을 사람들의 여권 만들기부터 모든 과정을 도왔다. 기념사업에 드는 비용은 전액 정 목사가 따로 마련해왔다. 정 목사는 본지 통화에서 “아들 사후에 들어보니 일주일에 이틀 이상 금식(禁食)하면서 모은 금액을 어려운 주변 사람들과 나눴다고 한다”며 “새에덴교회의 기부금은 현지에 선교센터를 건립하는 데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님은 막막한 세상에서 소망을 찾아 산자락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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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규 목사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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