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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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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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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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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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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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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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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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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훈련이다
    주신 말씀_ 요한복음 16:23~24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세상은 누리고 즐기며 살다가 가는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훈련을 받는 곳이며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 섬기며 사랑을 나누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젊은 시절, 나는 장교로 임관하기 위해 고된 훈련을 받은 바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받기 위한 사람은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주님 가르치심대로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 훈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기도’ 훈련이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방법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평점을 받는 과목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틈만 나시면 ‘기도’의 본을 몸소 보이셨고 기도에 관련된 말씀을 가르치셨다. ‘기도’는 신비한 능력을 보이는 힘으로써 내 마음과 하나님 마음을 소통시키는 유일한 통로이자 수단이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내 필요한 것으로 얻는 것이다. 또한 ‘기도’는 나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며 나를 단련하여 하나님께 ‘쓰임’의 도구로 발탁 받을 수 있는 등용문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기도’가 나의 삶을 지배하게 하여야 하며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쉼이 없어야 한다. 기도를 쉬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기도가 막힘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 훈련’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첫째, 하루의 가장 소중한 시간에 기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 훈련을 하여야 한다. 셋째, 기도의 실력을 키워서 세상의 문제와 도전을 이겨나가야 한다. 그런 기도가 이루어지면 기도는 곧 기쁨이며 유익이며 능력이며 힘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축복의 특권이다. 아멘.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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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9
  • 성경이 삶이 되다_ 찍힌 바 된 참 감람나무 유대인
    주신 말씀_ 로마서 11:17~24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 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아브라함을 택하신 후 천육백 년이란 역사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그동안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셨던 소회를 말씀하셨으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 후 피폐하고 지리멸렬한 삶을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대답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 사뭇 냉소적이며 원망 가득한 반응이었다. 아마도 하나님은 이들의 대답에 크게 충격을 받으신 듯 그 후 4백 년 동안 침묵하신다. 갑갑한 세월이 흐른 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항변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 하시며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세상에 보내시는 ‘이처럼의 사랑’을 답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넘어지고 말았다. 하나님께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들은 그 많은 선지자의 예언과 예수님의 표적과 기적을 보면서도 메시아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만 것이었다. 그들의 ‘실족’에 큰 덕을 본 사람은 돌감람나무로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인 우리들이였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롬 11:11) 곧 아브라함 때로부터 참감람나무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의 백성은 찍혀 떨어져 나가고 그 덕택(?)으로 우리 이방인이 그 풍성하신 구원의 은혜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의 사도로 큰 쓰임을 받은 바울은 동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늘 가슴에 있어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에게 ‘교만’치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원가지도 아끼고 아니하셨은즉...’(21절) 그러나 어찌하랴! 그 참감람나무 유대인들은 주님 오신지 2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예수님을 영접치 않고 모세에게만 붙들려 있다 하니 혹시 하나님은 아직도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천 명'에게 기대하고 계시지 않는지 궁금하다. 아멘. 20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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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2
  • 성경이 삶이 되다_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주신 말씀_ 요한복음 14:12~1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주님 가르치신 말씀을 행하기에 쉬운 것은 없지만 본문 말씀은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것이지만 주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어찌 해낼 수 있다는 말씀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불치병 자를 고쳐주셨음은 물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고 광풍과 바다를 잠잠하도록 꾸짖으시며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자 창조주 그 자체이신 분 아닌가? 역사 이래 이 지구상에 난 자 중에 누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조금이라도 흉내 낸 사람이 있었는가! 더 놀라우신 말씀은 ‘또한 그보다 큰일을 하리니....’이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말씀을 제자들 앞에서 주님은 죽음을 앞두시고 ‘고별사’로 하고 계신 것이다. 그 ‘할 수 있다’라는 이유를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답하신다. 곧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셔서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예수님이 직접 행하시겠다는(13절)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직접 행하시겠다는 말씀에서는 이제 수긍이 된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과 기도’ 여하에 따른 것이라 이해된다. ‘믿음의 기도’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은 무엇을 구하든지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창조주이신 주님이 무슨 일이든 못하실 게 있으랴! 그것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우는 일이라도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의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마 17:30)이다. 헌데 우리들의 보통의 기도는 대부분 세상 정욕에 아직도 많이 치우쳐 있다. 세상 삶에 필요한 재물, 건강, 자녀 등등!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가 우선이 됨을 다시 깨닫는다. 아멘.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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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6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믿음이 능력이 된다
    주신 말씀_ 마가복음 9:22~29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분명히 믿음이 있는 자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말씀하셨으니 믿음을 가진 자는 말씀으로만 보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주님 곁에 있으면서 주님을 온전히 믿던 제자들은 아이를 잡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이에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기도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 9:29) 하시며 기도의 힘과 능력을 가르치셨다. 곧, 믿음을 능력으로 만드는 방법이 ‘기도’라는 말씀인 것이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가 생활화 습관화 체질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기도로써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생활 속 기적을 체험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씀하고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동안 습성화되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으로 보이신 것이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과 힘’에 대하여는 성경이 증거하는 엘리야와 히스기야 등 기도에 의해 하나님께로 받은 기적을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근대사를 바꾼 ‘기도’의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남북전쟁 시 기울어가던 전황을 단숨에 역전시킨 계기를 만들었다는 1863년 4월 30일 링컨 대통령과 전 국민의 하루 ‘금식기도’가 그렇고 세계 2차 대전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영국 수상 처어칠이 이끈 영국 국민의 ‘금식기도’는 작전지역의 기상을 연합군 쪽에 유리하게 변화시켜 독일 군대가 효과적 대처를 못 하게 함으로써 상륙 작전을 성공케 하고 나치의 독일군이 패망케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한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하는 금식기도는 세계사마저 뒤바꾸는 힘이 있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히 11:1) 곧 바라는 믿음을 실상으로 만드는 방법은 ‘기도’요, 기도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멘.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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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8
  • 성경이 삶이 되다_ 범사에 감사하라
    주신 말씀_ 데살로니가전서 5:18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어느 학자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조사하였더니 ‘사랑’이란 말보다 ‘감사’란 단어였다 한다. 또 미국이 역사도 짧은데 어찌 저렇게 빠른 시일 내에 부강하게 되었고 세계 일등 국가가 되었나를 분석하니 모든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땡큐’(감사)를 제일 많이 하는 것이 그 비결이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감사라는 말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감사’는 조건이 있는 감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함은 무 조건적인 감사를 하란 말이기도 하다. 범사...? 우리 일상의 범사에는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겠으나 아프고 괴롭고 짜증 나고 두려운 일들도 많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모든 상황을 막론하고 ‘감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도를 하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였는데 그것은 대체로 ‘...해 주셔서’의 감사였다. 곧 좋은 은사를 베풀어 주심에 대한 조건적 감사였던 것이다. 만약 몇 년 전 같은 기막힌 웅덩이에 빠져들어가는 환난을 당하거나 갑자기 죽을 병에 걸리거나 자식들에게 큰 문제가 닥쳤을 때라도 진정한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박국 선지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은 감사’를 하며 춤추고 노래가 가능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결론은 이제는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기적이 일상이기에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체험이기도 한 일이라 또한 ‘감사의 끝’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말세에는 사람이 돈, 자기, 쾌락을 사랑하므로 감사가 없어진다(디후 3:2)라고 한다. 못된 사랑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더욱더욱 사랑하면 만사는 ‘감사’로 바뀌는 것이다. 아멘. 2023-11-12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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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2
  • 성경이 삶이 되다_ 창세 전에 나를 택하신 하나님
    주신 말씀_ 에베소서 1:3~6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은 그 어느 것도 거저 주는 것이 없고 까닭 없이 택하여 선심을 베푸는 일은 더욱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창세 전부터 나를 택하셨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그 택하심은 내가 세상에 티끌로도 존재치 않을 때부터이니 미리 예정하신 섭리 안에서의 택하심이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 그런 택하심을 받을 만큼 귀한 자도 아니요, 선행을 쌓은 자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왜 나를 택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은 불경스러운 일이다. 오직, 무조건적 거저 주시는 은혜 안에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는 위함이므로 감사만이 필요하리라. 나의 할 일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있으면 된다. 택하심의 중심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그 사랑 안에서 나 같은 자도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시어 결국에는 자기의 아들로 삼으려는 기쁘신 뜻이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7:1) 그것은 바로 구원의 본질이다. 구원은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기뻐하고 감사하여 영광의 삶을 살라는 하나님 명령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구원 받은 자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은 성령이 도우시는 아홉 가지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다. 구원은 ‘변화’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누더기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변화를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는 항상 아벨의 제사를 드려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찬송하리로다!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한 뼘 짧디짧은 세상 삶에서, 끝없이 영원한 구원의 영생을 선물로 주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아멘. 2023-11-05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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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5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
    주신 말씀_ 시편 50:23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 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 예배(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첫째,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곧 내가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신이심을 받드는 언약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5절) 둘째, 나를 지으셨으며 보호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경외함을 올리는 일이라 하겠다. 구약시대에는 소제, 번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등 다섯 가지 제사를 통하여 제사의 종류와 형식에 따라 죄 사함을 받고 생명의 헌신과 재산의 헌신, 이웃과의 화목의 제를 올렸으나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활짝 열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드림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시편 기자인 아삽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신의 직무처럼 ‘제물’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우선 ‘감사의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하긴,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피조물 인생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겠는가? 무엇을 제물로 드린들 기뻐하실까. 온 천지 만물이 다 손으로 지으신 것이고 하나님 것이며 그것들의 주인이신데 우리 인간들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10~12절)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고 오직 마음이 가득 담긴 영적 예배를 말씀하고 있다. 예배를 드리며 십일조와 헌금을 행여 내 것인냥(?) 착각하고 드렸으니 은혜에 감사의 보답을 한 예배였다는 교만이야말로 ‘가인의 제사’인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가 온전히 실린 나의 전부인 몸을 드리는 예배일 것이다. 더불어 ‘환난 날’에는 하나님을 부르라 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건지실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이다! 아멘.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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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9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하는 기도
    주신 말씀_ 빌립보서 4:6~7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하는 기도 얼마 전에 주님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기도’에 대해 깊이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께 상달 되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이며 ‘주기도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뜻을 깨달은 바 있었는데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늘 덮치고 있는 ‘염려’라는 문제에 대하여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평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다. ‘염려’에 관하여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한다.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조로 말씀하시는가 하면 예수님은 ‘네가 염려한다고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마 6:27)고 반문하시며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한 염려는 다 이방인이 하는 것(마 6:32)이라고 ‘염려’의 부질없음과 괜한 수고임을 강조하셨다. 참으로 그렇다! 수개월 전에도 지난 3년 전의 일들을 돌아보면서 깊은 근심과 염려로 인하여 잠 못 들고 진액이 빠지는 고통 속에 묻혔던 나날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던 일들이요,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해결될 문제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어 참 부질없는 염려도 생고생하였구나! 하고 회고한 바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 이상 염려를 온전히 버리고 살 수는 없다. 염려는 자연스런 삶의 일상이기 때문에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 방법에 대해 사도 바울은 ‘기도와 간구’를 택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즉, 염려냐? 기도냐? 선택의 문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기도’를 택할 것이되 ‘감사함으로 구할 것을 아뢰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경험상 더할 것이 있다면 기도를 하되 ‘간절하고 집중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곧, 한두 차례의 간구로 끝내서는 안 되고 마음에 확신이 설 때까지 끈기있는 기도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야곱이 얍복강 강가에서 한 기도가 그런 기도이며 한나의 기도, 모세의 기도, 히스기야의 기도 등등 기도의 승리자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런 기도는 ‘염려’를 ‘감사’로 바꾸며 ‘감사의 기도’는 ‘기적’으로 체험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아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마 7:7) 하시며 간구에 응답하실 주님의 의지를 보여주고 계신다!! 아멘.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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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2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신 말씀_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에 대하여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하였다. ‘이처럼’은 어느 정도와 어떤 형태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제물로 삼으실 만큼의 크기의 ‘사랑’이신 것이다. 그 옛날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제물로 독생자 이삭을 향해 칼을 들었을 때 놀라 소리치시며 말리셨던 하나님이 정작 당신의 독생자를 ‘독사의 자식들’(마 3:7)과 같은 죄악 덩어리 인간들을 위하여 그 고귀하신 몸임에도 사람의 몸으로 보내시어 대속의 제물로 삼으신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 ‘사람’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배신과 아픔을 겪으셨던가?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된 불순종과 죄악은 하나님을 한탄과 근심 끝에 ‘노아의 홍수’의 징벌을 내리게 하셨으며 그로부터 다시 시작된 인간의 타락은 바벨탑의 교만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까지 세상에 가득하여 지매 하나님께서는 결국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열방을 구원할 꿈을 계획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으로 맺으신 ‘제사장 나라’의 계약은 저들의 배반과 속절없는 타락 속에 파기되고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만 ‘돌아오라’는 메아리로 허공에 가득했던 것이다. 그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꿈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눈앞에서 홍해를 갈라지게 하고 태양과 달을 멈추게도 하였으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하심은 물론 듣도 보도 못한 만나도 먹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수많은 대적을 앞서 물리쳐 주시기도 하였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등 수없이 보낸 하나님의 사자들의 ‘회개’의 설득과 ‘돌아오라’는 호소는 하나님의 간절하신 사랑의 표현이셨다. 그 깊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어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의 패악은 말라기에서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말 1:2) 하는 조소 섞인 반문으로 하나님을 어이없게 만들고 말았다. 어찌하였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한의 말씀은 짧은 한마디로 온 성경을 요약한 핵심 요절로서 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하나님의 깊고 깊은 마음이신 것이다. 더군다나 ‘이처럼’의 뒤에는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 따르고 있으니 거저 주시는 ‘선물’ 치고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닌가?! 오직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처럼’의 은혜 안에 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택하심’의 영광 안에 들어가 있는 몸이니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 아닌가! ‘이처럼’의 사랑 속에는 사망 권세를 파하고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기가 막힐 은혜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에 깊이 안겨본다. 아멘.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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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5
  • 성경이 삶이 되다_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주신 말씀_ 마가복음 11:22~24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도 받은 줄로 믿으라 그 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과 기도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이다. 믿음 없이 백날 하는 기도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하고 달라고 기도해 놓고 설마 진짜 주실까? 하고 의심하는데 하나님이 들어 주실 리 만무한 일이다. 그러니 믿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으면 반드시 들어 주실 것임을 믿으라는 주님의 가르치심일진데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게 사실이다. 주님의 말씀처럼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 유의 기도를 했다고 해서 산이 그렇게 바다에 던져질 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보다 더한 홍해를 갈라지게 한 기도를 하였고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을 중천에 머물게 했던 기도를 하였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믿음의 기도는 역사함이 많다는 것을 주님이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삶 속 대부분의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주기도문’의 중심 테마와 같이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의를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겠지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질병과 고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이 절박하게 필요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때의 기도가 사욕을 떠난 순수한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바라고 올리는 기도라면 구하고 나서 절대 의심치 말고 받은 줄로 믿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폐부까지 살피시며 작은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라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자녀 된 자가 떡을 달라는데 독을 주실 하나님이 아니시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마 7:9~10;눅 11:11~13) 예수님은 비유까지 들어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밝히셨다. 아들을 구하는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사무엘이란 걸출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시며, 병 낫기를 간구한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징표로 해시계까지 뒤로 움직여주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한나가 기도 후 얼굴에 수심이 없이 온전히 믿었듯이 믿음! 곧 받을 것을 믿는 믿음의 기도가 전제된 것이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의 기도’(눅 17:6), 그만큼 기도는 믿음이 뒷 받침 되어야 하리라! 어쨌든 인생의 모든 문제 앞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만이다. 다가올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5분 뒤에 죽음조차 모르는 게 인생이다. 오직 쉬지않는 기도로 주님의 도우심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환난 날에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고, 도우심을 구하고 믿었으며, 내 두서없는 중언부언의 기도조차 다 들어주신 하나님을 나는 수없이 체험하였고, 그 결과로 지금 인생의 가장 복되고 평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멘.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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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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