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주신 말씀_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에 대하여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하였다. 

 

‘이처럼’은 어느 정도와 어떤 형태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제물로 삼으실 만큼의 크기의 ‘사랑’이신 것이다.

 

그 옛날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제물로 독생자 이삭을 향해 칼을 들었을 때 놀라 소리치시며 말리셨던 하나님이 정작 당신의 독생자를 ‘독사의 자식들’(마 3:7)과 같은 죄악 덩어리 인간들을 위하여 그 고귀하신 몸임에도 사람의 몸으로 보내시어 대속의 제물로 삼으신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 ‘사람’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배신과 아픔을 겪으셨던가?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된 불순종과 죄악은 하나님을 한탄과 근심 끝에 ‘노아의 홍수’의 징벌을 내리게 하셨으며 그로부터 다시 시작된 인간의 타락은 바벨탑의 교만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까지 세상에 가득하여 지매 하나님께서는 결국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열방을 구원할 꿈을 계획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으로 맺으신 ‘제사장 나라’의 계약은 저들의 배반과 속절없는 타락 속에 파기되고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만 ‘돌아오라’는 메아리로 허공에 가득했던 것이다.

 

그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꿈의 민족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눈앞에서 홍해를 갈라지게 하고 태양과 달을 멈추게도 하였으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하심은 물론 듣도 보도 못한 만나도 먹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수많은 대적을 앞서 물리쳐 주시기도 하였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등 수없이 보낸 하나님의 사자들의 ‘회개’의 설득과 ‘돌아오라’는 호소는 하나님의 간절하신 사랑의 표현이셨다.

 

그 깊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어찌 말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의 패악은 말라기에서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말 1:2) 하는 조소 섞인 반문으로 하나님을 어이없게 만들고 말았다.

 

어찌하였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한의 말씀은 짧은 한마디로 온 성경을 요약한 핵심 요절로서 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하나님의 깊고 깊은 마음이신 것이다.

 

더군다나 ‘이처럼’의 뒤에는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 따르고 있으니 거저 주시는 ‘선물’ 치고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닌가?! 

 

오직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처럼’의 은혜 안에 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택하심’의 영광 안에 들어가 있는 몸이니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 아닌가! 

 

‘이처럼’의 사랑 속에는 사망 권세를 파하고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기가 막힐 은혜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에 깊이 안겨본다. 아멘.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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