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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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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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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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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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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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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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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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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0_ 법정
    켄터베리의 순교자 토마스 법정 세상 관행은 권력의 끈이 이어지면 바빠지고 끄나풀이 떨어지면 적막감에 싸이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요즈막엔 장로 대통령을 싸고도는 사람들은 얼싸절싸 몰켜 다닌다. 늘 푸르고 키가 큰 월계수처럼 변함없이 힘을 떨치자며 월계수회를 만든 사람은 생일을 당했는데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단다. 세상인심 괴이쩍기 그지없다. 지미 카터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땅콩농장에 돌아왔을 때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자 주위에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회상하고 있다. 일천만 이상이 득실거리는 서울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게 소원이라 수단껏 그 기반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그 좋은 시장을 일주일 하다 그만둔 교회 집사가 있다. 공기 좋은 우면산 기슭에서 텃밭도 한가로이 못 가꾸게 됐고 다락도 폐쇄됐고 입만 불쑥 튀어나오게 됐다. 그리고 어깨춤을 추며 감사헌금까지 냈는데 한 주일 지난 뒤에는 위로 예배를 굴삭기로 잔디를 갈아엎은 집에서 드리게 되었다니 쯧쯧, 주여 굽어살피소서. 교회와 국가가 티격태격할 일은 법정 문제에도 있었다. 교회는 자체 법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법정을 들락거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했다. 그 이유땜새 그런 관행이 점점 자라나 주교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게 만들었고 교회법이라는 법체계가 주교들의 판단을 이끌게 되었다. 국가 역시 계속해서 법정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와 국가가 힘을 합쳐 사이좋게 일할 때 어느 쪽 법정이 어떤 문제를 처리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그닥 까탈이 일어날 수 없었다. 일상적인 협약에 따라 교회는 과부들, 미성년의 고아들, 결혼 등에 관한 사건들을 다루었다. 그런데 교회가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성직자는 어떤 사건이든지 불문곡직하고 교회 법정에서만 재판을 받아야 된다고 공포했기 때문에 국가와 분쟁이 생겼다. 왕은 주장하기를 아무리 성직자라도 죄를 범했다면 그 누구를 무론하고 지엄한 나라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14th-century depiction of Becket with King Henry II 이 알력은 영국에서 곪아 터졌다. 영국 왕 헨리 2세는 교회에 압력을 넣어 캔터베리 대주교로 자신의 오랜 동지 토마스 베케트를 뽑도록 채근했다. 왕도 생각하기를 토마스가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따라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완전히 잘못 봤다. 노래 잘하고 놀기 좋아하고 붙임성 있는 이 왕실 시중꾼은 주교가 되자마자 안면을 싹 바꿨다. 그는 교회를 옹호하는 완강한 투사로 변했다. 왕은 화가 날대로나 분을 삭이지 못해 치를 떨었다. 그는 신하들 앞에서 침을 튀겨 가며 백담사 시절의 머리 벗겨진 사람처럼 툴툴댔다. 『나한테 밥을 얻어먹은 녀석이 나한테 발길질을 해. 내 궁정에 들어올 때는 절름발이 망아지 마냥 설설 기더니 지금은 왕처럼 으스대는 꼴이라니. 그래 이런 고이얀 사제를 혼구멍 내는 신하가 한 놈도 없단 말이냐?』 이 말을 전해 들은 네 명의 우락부락한 기사들이 달려가 캔터베리 예배당에서 토마스를 살해했다. 이 사건은 영국 전역을 흉흉하게 했다. 사세가 불리해진 왕은 순교로 성자가 된 토마스의 무덤에 달려가 참배를 해야만 했다.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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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1-16
  • 성경이 삶이 되다_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
    주신 말씀_ 요한복음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을 왜 믿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 때문이라고 누구나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회 생활을 함으로 정신적 육신적 평안을 얻고 삶 속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로 털어놓고 그의 도우심을 바라기 때문이라 하겠다. 우리 인생들의 삶 속에는 항상 수많은 문제들로 인하여 염려와 고뇌가 반복되고 있다. 질병의 문제, 자녀, 가정의 문제, 재물과 직장의 문제 등 오죽하면 불교에서는 그 문제들로 인한 번뇌가 108가지가 있다 하였다. 그 108가지 번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리 그리스도인과 불교 신자들에게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는 그 번뇌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 수행’이란 것을 권면한다. ‘수행’이라 함은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이 ‘부처 화’ 되기까지 고행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멈춰서 원하는 경지에 이르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극락’이 보장될 것인가? 불교계의 대표적 큰스님이라는 성철스님이란 분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법어를 남겼다. 그러나 정작 죽음 앞에서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숨을 거두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로 볼 때 그토록 오랜 세월의 ‘수행’ 결과에도 사망 앞의 문제와 ‘극락’을 확신하지 못한 것이며 백팔번뇌에 대한 온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불교는 생명의 종교가 아닌 철학적인 종교요, 영광과 기쁨이 아닌 끝없는 번뇌의 종교인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선포하시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맡기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어떤 신이 내가 창조주다, 하나님이다, 부활이요 영생이다! 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증한 바 있는가? 이는 귀신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러므로 백팔번뇌든 사망이든 그 어떤 문제라도 ‘하나님을 만날 때’ 완벽히 해결되는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아멘.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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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3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8_ 물레방아 세상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토스카나의 마틸데, 클뤼니의 후고. (1115년) 물레방아 세상 야당 시절 닭장차 신세도 심심치 않게 졌던 신임대통령은 취임식 단상에서 성역 없는 부정부패 척결을 외친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부정부패 척결 대상자들도 멋모르고 힘껏 손을 마주친다. 야당인이었던 사람이 정권을 잡았는데 그 시절 야당은 여전히 야당이고 그 시절 여당은 묘하게도 여당인 채 정권이 교체됐다. 그래도 정권교체는 교체인지 온고지신을 좋아하는 강토에 신한국을 외치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물레방아가 왜 도는지를 몰라 내력을 물어보겠노라고 노래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물레방아가 왜 도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세태가 왔다. 이리저리 칡넝쿨처럼 엉켜 빌붙어 살던 사람들에게 얼굴 뜨거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제 시대에도 자유당 시절에도 군사정권 밑에서도 살아남은 그 끈기로 이번 시련에도 살아남으려고 버둥질을 치겠지. 엽전들이 짤랑거리며 사는 세상만큼 재미있는 곳이 있을까 싶다. 법을 전공한 사람이라 법무부 장관이 된 사람의 딸이 한국인임에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유가 참으로 갸륵하다. 미국대학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여자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이 하늘 아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대학을 가지 않고 한국제품을 이용해 준데 대해 상은 주지 못할망정 학교를 자퇴시키고 이 비좁은 땅의 국적을 다시 얻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신한국을 외치는 신명 나는 판국에 말이다. 추운 12월에 독일 황궁을 떠났던 헨리 4세는 추레한 모습으로 카놋사 성문에 나타났다. 벌써 시절은 해가 바뀐 1077년 정월이었다. 눈이 땅에 아직도 희끗희끗 남아 있었다. 참회자로서 흰옷을 입고 맨발로 헨리 4세는 성문 앞에 하루종일 서 있었다. 굳게 닫힌 카놋사 요새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둘째 날 헨리 4세는 눈 위에 맨발로 서 있었다. 성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삭풍이 부는 가운데 지리한 침묵만 감돌았다. 셋째 날 헨리 4세는 다시 성문 앞에 나타났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멍청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느물스러운 베드로의 후계자라도 문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거절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드디어 성문이 신음을 토하듯 끼이익 열렸다. 강력한 황제가 체수 적고 다리가 밖으로 휜 교황 앞에 굽신거리며 탄원자 자세로 서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황제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약속을 해댔다. 교황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용서했다. 세상은 물레방아 같다. 판세가 금새 변했다. 다시 한번 나라를 장악하게 된 황제는 약속들을 저버렸다. 교황은 다시 그를 출교시켰다. 그러나 황제는 이번에는 교황이 너무 지나치다고 백성을 설득했다. 여론의 지지를 업은 황제는 군사를 동원해 로마로 진군했다. 그는 탄원자가 아니라 정복자로 당당하게 교황은 폐위시키고 새로운 교황을 옹립했다. 교황을 혼내는 황제 종내 또 다른 교황과 또 다른 황제는 싸움의 불씨가 된 문제를 종식 시키는 데 합의를 했다. 즉 주교들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교황과 황제를 다 같이 만족시키고 충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주교들은 마누라도 포기해야 했다. 그때부터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은 결혼을 하지 못했다. 2021-11-09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1-09
  • 성경이 삶이 되다_ 범사에 감사하라
    주신 말씀_ 데살로니가전서 5:18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 어느 학자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조사하였더니 ‘사랑’이란 말보다 ‘감사’란 단어였다 한다. 또 미국이 역사도 짧은데 어찌 저렇게 빠른 시일 내에 부강하게 되었고 세계 일등 국가가 되었나를 분석하니 모든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땡큐’(감사)를 제일 많이 하는 것이 그 비결이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감사라는 말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감사’는 조건이 있는 감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함은 무 조건적인 감사를 하란 말이기도 하다. 범사...? 우리 일상의 범사에는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겠으나 아프고 괴롭고 짜증 나고 두려운 일들도 많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모든 상황을 막론하고 ‘감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도를 하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였는데 그것은 대체로 ‘...해 주셔서’의 감사였다. 곧 좋은 은사를 베풀어 주심에 대한 조건적 감사였던 것이다. 만약 몇 년 전 같은 기막힌 웅덩이에 빠져들어가는 환난을 당하거나 갑자기 죽을병에 걸리거나 자식들에게 큰 문제가 닥쳤을 때라도 진정한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박국 선지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은 감사’를 하며 춤추고 노래가 가능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결론은 이제는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기적이 일상이기에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는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체험이기도 한 일이라 또한 ‘감사의 끝’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말세에는 사람이 돈, 자기, 쾌락을 사랑하므로 감사가 없어진다(디후 3:2)라고 한다. 못된 사랑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더욱더욱 사랑하면 만사는 ‘감사’로 바뀌는 것이다. 아멘. 2021-11-06
    • G.QT
    • G.QT
    2021-11-06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8_ 교황과 황제의 싸움
    Heinrich vor Canossa 카노사의 하인리히 (1862) 교황과 황제의 싸움 형님이라는 별호를 지니신 형님 같은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이 대부분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하는 전도사들한테 왜 그런 칭호로 불리시게 됐는지는 알길 바이없다. 그러나 그 교수님은 정말 정 많고 자상하고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성정을 지니신 은사이셨다. 세상이 요상스러운 것은 그분한테 은덕을 입은 전도사들이 적지 않은데 나중 은사에게 곱지 않은 말을 뇌까리는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바람결에 들리는 소식이 형님 같으신 은사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시단다. 세월이 살처럼 빠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 교단 기독교 교육학의 길을 열고 닦으신 은사께서 늘 동안의 모습으로 활기차게 제자들을 키워 오셨는데 활동이 여의치 않으시다니 세월의 속절없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다. 소망하고 기도드리기는 작년 인천 총회에서 기쁘게 뵈었듯이 금번 총회 석상에서도 놀라는 표정으로 만나 뵐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토스카나의 마틸데, 클뤼니의 후고 아무리 성직자라도 죽으라면 죽을지언정 한 몸 이룬 마누라를 포기하라는 교황의 명령은 따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황금알을 낳는 땅을 물려줄 자식까지 없어질 판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상의 지배자와 싸움을 벌인 교황은 그레고리우스 7세였다. 그 대상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헨리 4세였다. 교황은 두 가지 명령을 무기로 휘둘렀다. 삼중관을 쓴 교황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독일의 모든 주교들은 황제가 아니라 교황한테서 주교 지휘봉을 받아야 된다. 그리고 독일의 모든 주교들은 한사람 빠짐없이 마누라를 포기해야 한다.』 독일 성직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마누라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이게 교황의 첫 번째 명령에 대한 성직자들의 답변이었다. 두 번째 명령에 대한 황제의 답변은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통치자다웠다. 황제는 암브로시우스의 옛 도시 밀란에서 주교를 직접 임명했다. 성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 이에 교황은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성 베드로의 이름으로 황제를 교회에서 출교 조치해버렸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칙령을 공포했다. 교황의 영적인 명령은 무서웠다. 헨리 4세는 자신이 더이상 황제일 수 없다는 사실에 뜨악해졌다. 백성들은 황제의 명령에 고개를 외로 꼬았다. 이 엄청난 사실의 변화에 황제는 숨을 제대로 몰아쉴 수 없을 정도로 기가 찼다. 이러한 예기치 못한 사태를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교회와 화해하는 일뿐이었다. 칼이 없는 교회의 힘이 이토록 셀 줄을 황제는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내심 놀라기는 교황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헨리 4세는 허겁지겁 로마를 향해 출발했다. 그 해는 이미 많이 지나간 끝 무렵이라 라인강은 꽝꽝 얼어 있었다. 12월에 헨리는 적은 무리의 수행원과 알프스를 넘었다. 말의 발이 묶여 있어서 그들은 눈이 덮인 산등성을 다리를 질질 끌며 오르락내리락했다. 살아서 로마 평원에 도달한 사람은 몇 안됐다. 그 사이에 교황은 회합이 있어 교황청을 떠나 북쪽 이탈리아에 있는 카놋사 요새에 도착했다. 교황청에서 헛걸음친 황제는 추레한 꼴로 카놋사 요새까지 황망히 달려왔다. 2021-11-02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1-02
  • 성경이 삶이 되다_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신 세상
    주신 말씀_전도서 3:11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신 세상 지난 5월의 푸르른 세상이 어찌 그리 아름답게 보이던지... 아하! 참으로 푸르구나! 하고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영의 눈을 뜨고 바라보는 만물의 변화 속에 모습이 드러나는 하나님의 신성은 참으로 놀라웁기만 하다. 같은 공원 길이요 같은 나무들인데 깊이 짙어가는 가을의 풍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흘러간 5개월의 시간 속에 녹여있는 듯 새롭게만 비춰진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하는 솔로몬의 혜안은 놀랍고 깊이 공감이 가는 말이다. 천지창조 시 하나님은 넷째 날 ‘하늘 궁창의 광명체들로 낮과 밤을 나누시고 징조와 계절과 달과 해를 이루게 하라’ (창 1:14) 말씀하심으로 ‘시간’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시간을 먼저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지으심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시간 속에 사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시간이란 틀 속에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모든 삶이 ‘때’라는 섭리 안에 이루어져 가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세상에서 시간의 ‘때’에 가두신 것은 하나님이 허용하신 세상에서의 시간의 삶을 마친 후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 하심에 큰 ‘목적’이 있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세상 삶 동안에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하는 본질적 존재이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안에 들어가는 목적을 이루는 복 받은 삶이라 하겠다. 반면,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인생은 그 삶이 비록 최상의 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사람의 본질적 목적을 모르는 짐승과 벌레의 삶과 다를 바 없다 하겠다. 비록 사는 동안이 마냥 평탄치만 않고 형통과 곤고함이 ‘때’를 따라 달리 찾아오더라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젊을 때는 젊을 때 대로 늙으면 늙어가는 때 대로 더 깊어가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보기에 기쁨이 더해가는 것이리라! 결국, 그래서 하나님도 그 사랑하는 자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게 아닐까? 아멘. 202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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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QT
    2021-10-29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7_ 교황의 무기
    카를로 엠마누엘레의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용서를 구하는 하인리히 4세 교황의 무기 아파트를 헐하게 공급해 주겠다던 회장이 이마에 상처를 받고 느닷없이 정계를 떠났다. 제 돈 가지고 이런들 어떠며 저런들 어떠냐며 코를 벌름거리더니 이런저런 약속을 제 돈 아까워 헌신짝처럼 내패댕이 쳤다. 미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단다. 그러니까 부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정신이 오락가락할 적에 하는 말인 성부르다. 『야, 이 노랭이야. 네 돈인데 왜 안 가져가니』 세상 정치는 그나마 새로움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우리 교회 쪽은 어떤지 모르겠다. 세상에선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며 머리를 맞대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공금을 그것도 신성하기까지 한 하나님의 돈을 제멋대로 쓰고도 어엿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행세를 하고 활갯짓을 치니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인지 모르겠다. 떠나거라. 회칠한 무덤이여 이 봄에 열매 없는 늦은 가을 나무마냥 뿌리째 뽑혀 두 번 세 번 가뭇없이 사라져다오. 공회 앞에서 회술레를 당하기 전에 말이다. 그래도 제 버릇 누구 못 주겠지만. 중세 때 교회와 나라의 말다툼은 왕들이 왕이랍시고 제 기분 내키는대로 결혼하는 걸 못하게 잡도리하듯 간섭할 때 일어났다. 결혼이나 이혼문제에 있어 교회의 중재와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교회는 왕한테 두 가지 무기를 휘둘렀다. 첫 번째 무기는 출교였다. 이 조치는 왕이 성만찬에 참여할 수도 없고 교회의 어떤 위로와 편의도 받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또 다른 무기는 금령이었다. 이 조치는 당사자인 왕의 영토에 적용되는 출교 조치였다. 벌 받을 당사자가 프랑스 왕이라면 교회의 모든 봉사가 프랑스 전역에서 금지됐다. 그러면 왕의 신하들은 자기들 상전이 교황한테 고분고분 말을 잘 듣게 하느라 땀을 찔찔 흘리며 골머리를 썩였다. 교회와 나라의 또 다른 형태의 싸움은 나라가 교회 일에 콩이야 팥이야 하며 나설 때 일어났다. 그 까닭은 교회가 독일과 프랑스 영토의 거의 반이나 되는 땅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땅을 소유하는 게 처음에는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수도사들이 복음을 선교하려고 쑥대머리 야만인들이 북부 유럽으로 갔을 때 수도사들이 생계를 꾸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사용하지 않는 임자 없는 땅을 일구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광대한 개간된 땅이 교회, 즉 교황청 소유가 되었다. 나라와 곤란한 문제들이 생기게 된 것은 땅에서 모든 세금이 나왔고 땅의 소유자들이 군대의 병사들을 대줬기 때문이었다. 주교와 협의하는 교황 자연히 왕은 땅이 돈을 잘 바치고 사람을 공급해 주는 사람들의 소유가 되길 바랬다. 궁리 끝에 왕은 주교와 수도원장들을 직접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고이얀 처사에 교황은 울대를 돋우며 발끈했다. 왕이 주교와 수도원장한테 든든한 배경이 되주었다. 그래서 급기야는 주교나 수도원장이 교황의 아랫것들인지 왕의 졸개들인지 하는 문제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권력이란 모래 같다던가. 아마 모래를 움켜쥐면 쥘수록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속성을 두고 이른 말인 것 같다. 이제 장로 신분의 대통령이 나왔으니 그가 권력을 잘 선용하도록 아부할 게 아니라 기도해야 될 것 같다. 2021-10-26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0-26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살라
    주신 말씀_골로새서 1:9~10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살라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알고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닌 듯하다. 우선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낳게 하시고 나를 향하신 뜻은 무엇일까? 나처럼 비천하고 무지렁이 같은 자에게도 하나님의 뜻은 있으실까? 지난날 내게 닥친 고난에서 나는 기도하며 왜 하나님은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것일까? 하고 여쭈면서 도우심을 간구하였는데 세월이 지나고 그 고난이 기쁨으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아!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었구나!’ 하고 깨닫고 얼마나 감사해 하였는지 몰랐다. 꼭이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주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니 세상에 나온 사람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나타내시고자 하는 뜻은 분명히 있으실 것이다. 문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당사자인 자신이 어떻게 헤아려 아는가에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교인들에게 ‘듣고’, ‘깨닫고’, ‘열매 맺다’라고 말하며(골 1:6)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고 있다’라고 칭찬한다. 즉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듣는 귀가 있었고 그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더불어 말씀을 행하여 열매 맺는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며 지금까지 듣고 배워 말씀을 깨달아 알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는 범사에 주님께 합당하게 매일을 ‘하나님을 아는 것’에 힘쓰며 살아가는 삶! 그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아멘. 20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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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3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7_ 대관식
    Pope Leo III, crowning Charlemagne from Chroniques de France ou de Saint Denis 대관식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처럼 교황들은 왕들에게 기름을 붓고 왕관을 씌워주었다. 프랑크족의 왕 피핀은 교회로부터 왕관을 받았다. 피핀의 아들 샤를마뉴는 교회의 허락을 받아 그의 왕국을 신성로마제국이라 칭했다. view of the vatican basilica from a roof near saint Peter square. 팔백 년 성탄절 샤를마뉴는 로마로 가서 성 베드로 교회에서 기도를 드렸다. 샤를마뉴가 추위를 참으며 베드로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교황이 언 땅을 사뿐사뿐 밟고 샤를마뉴 뒤로 다가가 머리에 왕관을 털퍽 씌웠다. 기름 부음 받은 대관식 답례로 왕들은 교황한테 봉투 하나 디밀고 끝난 게 아니라 왕이나 황제 신분에 걸맞게 처신을 했다. 실례로 교황이 이탈리아에서 쑥대머리 야만인들과 곤란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게 되었을 때 피핀은 불원천리하고 말을 달려와 야만인들을 된통 혼을 내주고 다섯 도시를 빼앗아 그 도시의 열쇠를 교황한테 공손히 건네주었다. Harun-Charlemagne 이것이 한 왕국으로서의 교황권의 시작이 되었다. 754년부터 1870년에 이르기까지 교황들은 이태리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 처음에 교회와 국가는 참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점차 서로의 힘이 커갈수록 서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한 다툼들은 교회와 국가가 다 같이 기독교적이고 거룩하다고 말을 앞세워도 이익에 관련된 문제들이라 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문제의 어려움은 교회와 국가가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는 데 있었다. 교회와 국가의 차이를 아주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말인즉슨 국가는 질서, 재판, 치안 등으로 땅 위 인간의 외적 생활을 다룬다. 국가는 육체와 지상 적인 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말인즉슨 교회는 인간을 천국을 위해 준비시키고 양심, 경외, 마음 등으로 인간의 내적 생활을 다룬다. 교회는 영혼을 돌보아 하늘로 이르게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구분이 아주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즉 영혼이 육체와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고 하늘로 가는 길이 다시 말해 교회가 땅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 자체가 정부인데다 많은 땅의 소유주라는 사실에서는 갑절로 어려워진다. 하루해가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았다가 이제는 좀 개 꼬리만큼은 된성 부르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사람들의 여민 옷이 얇아질 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끈거린다. 영성에 차진 않지만 교회의 편린을 주절거리고 있는 이게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일런가...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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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0-1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5_ 교회와 국가
    13th-century stained glass depiction of Charlemagne, Strasbourg Cathedral 교회와 국가 신학생 시절 주일 아침 서울운동장 앞에 서 있곤 했다. 천호동으로 가려면 당시는 꼭 그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사철 입는 단벌 회색 춘추복에 댕기를 매고 검은 가방을 들고 서 있노라면 영락없는 이방인 행색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동대문운동장으로 바뀐 그곳은 주일 아침이면 등산복 차림의 남녀들로 북적댔다. 그런 북새통에 나만 달랑 그러고 서 있으니 영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사당동 골짜기에 밤이면 개구리 합창에 귀가 서늘해지던 그 시절 신학생들은 눈빛만 형형했지 행색은 영양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채플 때 통성기도를 할라치면 그들은 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를 향해 통곡했다. 사면이 꽉 막힌 시절에 중공과 무슬림에게 나아가 말씀 전할 날을 다짐하며 서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믿음의 눈이 아니면 머리만 갸웃거릴 일이었다. 간혹가다 기숙사 식당에 특식으로 돼지 볶음이 올라오면 줄을 두 번 서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렵던 시절 기도는 즐거웠고 선교 열망은 가슴을 터칠 듯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 새로운 서방 세계를 형성하는데 교회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교황들은 모든 북부지역들에 선교사들과 수도사들을 파송했다. 선교사와 수도사는 거친 북쪽 지역민들에게 한 신앙 그리스도교와 한 언어 라틴어를 전달했다. 유럽 전역의 모든 교육받은 사람은 라틴어를 알아들었다. 이렇듯 교회는 개화된 남부 유럽과 미개한 북부 유럽을 통합시키는 가교역할을 담당했다. Europe around 814 유럽은 현재보다 훨씬 작은 나라들로 바글거렸다. 그래서 싸움도 잦았다. 하나의 강력한 제국 로마가 사라진 후유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에 로마제국에서 누렸던 하나의 통일체를 그리워했다. 그들은 서방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가 하나의 새로운 로마제국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헬라인들이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갔다고 생각한 것처럼 프랑크족은 로마제국이 자신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랑크족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이 신성 로마 제국을 설립했다. 이 나라는 느슨하기는 했지만 유럽의 올망졸망한 여러 나라들을 여러 세기에 걸쳐 하나로 결속시켰다. 그러나 유럽 전체가 다 망라되었던 건 아니다. 영국은 유럽에 한 번도 낀 적이 없었고 프랑스는 잠깐 딱 한 번 포함됐었다. 그러므로 중세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할라치면 한 단일한 정부를 생각할 수는 없다. 하나의 큰 덩치 속에 여러 단위가 있는 아파트 같은 형태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교회와 국가는 한동안 서로 도왔다. 국가는 교회가 백성한테 동일한 신앙과 동일한 언어를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와 교회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왕들은 지배할 힘이 있기에 지배자가 된 5공 시절 머리 벗겨진 사람 같은 강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들은 힘만을 의지해 통치해서는 그 통치가 너무도 힘겹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백성을 다스리도록 맡겨 주시지 않는다면 무지렁이 백성들일지라도 얼마 가지 않아 왕한테 입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었다. 2021-10-05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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