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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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rich vor Canossa 카노사의 하인리히 (1862)

 

교황과 황제의 싸움


형님이라는 별호를 지니신 형님 같은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이 대부분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하는 전도사들한테 왜 그런 칭호로 불리시게 됐는지는 알길 바이없다.

 

그러나 그 교수님은 정말 정 많고 자상하고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성정을 지니신 은사이셨다. 세상이 요상스러운 것은 그분한테 은덕을 입은 전도사들이 적지 않은데 나중 은사에게 곱지 않은 말을 뇌까리는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바람결에 들리는 소식이 형님 같으신 은사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시단다. 세월이 살처럼 빠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 교단 기독교 교육학의 길을 열고 닦으신 은사께서 늘 동안의 모습으로 활기차게 제자들을 키워 오셨는데 활동이 여의치 않으시다니 세월의 속절없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다.

 

소망하고 기도드리기는 작년 인천 총회에서 기쁘게 뵈었듯이 금번 총회 석상에서도 놀라는 표정으로 만나 뵐 수 있도록 해야겠다.

 

Hugo-v-cluny_heinrich-iv_mathilde-v-tuszien_cod-vat-lat-4922_1115ad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토스카나의 마틸데, 클뤼니의 후고. (1115년)-web.jpg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토스카나의 마틸데, 클뤼니의 후고

 

아무리 성직자라도 죽으라면 죽을지언정 한 몸 이룬 마누라를 포기하라는 교황의 명령은 따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황금알을 낳는 땅을 물려줄 자식까지 없어질 판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상의 지배자와 싸움을 벌인 교황은 그레고리우스 7세였다. 그 대상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헨리 4세였다.

 

교황은 두 가지 명령을 무기로 휘둘렀다. 삼중관을 쓴 교황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독일의 모든 주교들은 황제가 아니라 교황한테서 주교 지휘봉을 받아야 된다. 그리고 독일의 모든 주교들은 한사람 빠짐없이 마누라를 포기해야 한다.』

 

독일 성직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마누라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이게 교황의 첫 번째 명령에 대한 성직자들의 답변이었다. 두 번째 명령에 대한 황제의 답변은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통치자다웠다. 황제는 암브로시우스의 옛 도시 밀란에서 주교를 직접 임명했다.

 

성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_web.jpg

성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

 

이에 교황은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성 베드로의 이름으로 황제를 교회에서 출교 조치해버렸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칙령을 공포했다.

 

교황의 영적인 명령은 무서웠다. 헨리 4세는 자신이 더이상 황제일 수 없다는 사실에 뜨악해졌다. 백성들은 황제의 명령에 고개를 외로 꼬았다.

 

이 엄청난 사실의 변화에 황제는 숨을 제대로 몰아쉴 수 없을 정도로 기가 찼다. 이러한 예기치 못한 사태를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교회와 화해하는 일뿐이었다. 칼이 없는 교회의 힘이 이토록 셀 줄을 황제는 예전에 미처 몰랐다. 내심 놀라기는 교황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헨리 4세는 허겁지겁 로마를 향해 출발했다. 그 해는 이미 많이 지나간 끝 무렵이라 라인강은 꽝꽝 얼어 있었다. 12월에 헨리는 적은 무리의 수행원과 알프스를 넘었다. 말의 발이 묶여 있어서 그들은 눈이 덮인 산등성을 다리를 질질 끌며 오르락내리락했다. 살아서 로마 평원에 도달한 사람은 몇 안됐다.

 

그 사이에 교황은 회합이 있어 교황청을 떠나 북쪽 이탈리아에 있는 카놋사 요새에 도착했다. 교황청에서 헛걸음친 황제는 추레한 꼴로 카놋사 요새까지 황망히 달려왔다.

 

20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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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8_ 교황과 황제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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