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4(일)
 

Hugo-v-cluny_heinrich-iv_mathilde-v-tuszien_cod-vat-lat-4922_1115ad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토스카나의 마틸데, 클뤼니의 후고. (1115년)-web.jpg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 토스카나의 마틸데, 클뤼니의 후고. (1115년)

 

 

물레방아 세상

 

야당 시절 닭장차 신세도 심심치 않게 졌던 신임대통령은 취임식 단상에서 성역 없는 부정부패 척결을 외친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부정부패 척결 대상자들도 멋모르고 힘껏 손을 마주친다. 야당인이었던 사람이 정권을 잡았는데 그 시절 야당은 여전히 야당이고 그 시절 여당은 묘하게도 여당인 채 정권이 교체됐다.

 

그래도 정권교체는 교체인지 온고지신을 좋아하는 강토에 신한국을 외치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물레방아가 왜 도는지를 몰라 내력을 물어보겠노라고 노래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물레방아가 왜 도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세태가 왔다.

 

이리저리 칡넝쿨처럼 엉켜 빌붙어 살던 사람들에게 얼굴 뜨거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제 시대에도 자유당 시절에도 군사정권 밑에서도 살아남은 그 끈기로 이번 시련에도 살아남으려고 버둥질을 치겠지.

 

엽전들이 짤랑거리며 사는 세상만큼 재미있는 곳이 있을까 싶다. 법을 전공한 사람이라 법무부 장관이 된 사람의 딸이 한국인임에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유가 참으로 갸륵하다. 미국대학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여자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이 하늘 아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대학을 가지 않고 한국제품을 이용해 준데 대해 상은 주지 못할망정 학교를 자퇴시키고 이 비좁은 땅의 국적을 다시 얻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신한국을 외치는 신명 나는 판국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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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12월에 독일 황궁을 떠났던 헨리 4세는 추레한 모습으로 카놋사 성문에 나타났다. 벌써 시절은 해가 바뀐 1077년 정월이었다. 눈이 땅에 아직도 희끗희끗 남아 있었다. 참회자로서 흰옷을 입고 맨발로 헨리 4세는 성문 앞에 하루종일 서 있었다.

 

굳게 닫힌 카놋사 요새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둘째 날 헨리 4세는 눈 위에 맨발로 서 있었다.

 

성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삭풍이 부는 가운데 지리한 침묵만 감돌았다.

 

셋째 날 헨리 4세는 다시 성문 앞에 나타났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멍청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느물스러운 베드로의 후계자라도 문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거절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드디어 성문이 신음을 토하듯 끼이익 열렸다. 강력한 황제가 체수 적고 다리가 밖으로 휜 교황 앞에 굽신거리며 탄원자 자세로 서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황제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약속을 해댔다. 교황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황제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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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물레방아 같다. 판세가 금새 변했다. 다시 한번 나라를 장악하게 된 황제는 약속들을 저버렸다. 교황은 다시 그를 출교시켰다. 그러나 황제는 이번에는 교황이 너무 지나치다고 백성을 설득했다. 여론의 지지를 업은 황제는 군사를 동원해 로마로 진군했다. 그는 탄원자가 아니라 정복자로 당당하게 교황은 폐위시키고 새로운 교황을 옹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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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을 혼내는 황제

 

종내 또 다른 교황과 또 다른 황제는 싸움의 불씨가 된 문제를 종식 시키는 데 합의를 했다. 즉 주교들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교황과 황제를 다 같이 만족시키고 충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주교들은 마누라도 포기해야 했다. 그때부터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은 결혼을 하지 못했다.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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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68_ 물레방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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