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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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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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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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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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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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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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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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실시간 G.QT 기사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본향을 사모한 믿음의 순례자들
    주신 말씀_히브리서 11:11~16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향을 사모한 믿음의 순례자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따라 죽은 자들을 이 땅에서는 외국인이요, 나그네였다고 말한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과 나라는 하늘에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오직 돌아갈 본향을 사모하며 믿음만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한 노아...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유업으로 받을 땅을 찾아 나아간 아브라함...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믿음으로 홍해를 건넌 모세... 말씀을 믿고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았던 여호수아와 만나 세대 등등. 이 모든 믿음의 증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죽은 믿음의 모범 자였다. 그 소중한 믿음의 증인들은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나 그 본향을 멀리서 보고 사모하며 자기들이 본향을 찾는 자임을 나타내었다. 하늘에 본향을 두고 온 사람들... 하나님은 이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으니 곧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이다. 내가 감히, 그 위대한 믿음의 증인 중의 한 사람과 같이 하늘나라 시민권자 신분을 얻었으니 본향을 사모함에 매일반이라! 그러므로 나는 심히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사람이라! 거저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아멘.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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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8_ 땅에 심은 십자가
    Icon of Saint Patrick, Christ the Saviour Church 땅에 심은 십자가 바람 한 점만 일어도 길 위에 노란 잎이 눈발처럼 내려앉는다. 낙엽이 일렁이는데 그걸 보는 마음이 이리도 감동을 받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런가. 예수그리스도를 이방인에게 전하려면 전하는 사람이 먼저 그걸 자세히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서 패트릭은 아이들이 소리쳐 부르는 아일랜드로 달려가지 않고 먼저 프랑스로 갔다. 그곳의 수도원에 들어가 수년 동안 선교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배웠다. 공부를 마친 패트릭은 교황의 허가장을 받고 아일랜드로 떠났다. 한때 자신을 노예로 삼아 호되게 부렸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패트릭 선교사에 관한 이야기는 전설 빼놓고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이런 이야기가 하나 전해지고 있다. 어떤 왕이 패트릭에게 사람을 보내 귀한 청동 그릇을 전하게 했다. 시종이 돌아오자 왕이 수염을 툭툭 치며 물었다. 『그래 패트릭이 뭐라고 하드냐?』 『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고맙습니다 라고 라틴어로 말했습니다』 왕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찡끗했다. 『그래, 고작 그 말뿐이더냐? 그럼 다시 가서 그걸 돌려달라고 해라』 시종들이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요령 소리 요란하게 다녀왔다. 『그래 이번에는 패트릭이 뭐라 하더냐?』 왕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고맙습니다 라고 라틴어로 씨부리던데요.』 『뭐라고? 받아도 고맙다 뺏겨도 고맙다라고? 음 그럼 이번에는 그걸 돌려주면서 땅을 덧붙여 주도록 해라.』 이야기는 두 가지 점에서 사실이다. 하나는 패트릭이 라틴어를 말할 수 있었고 아일랜드인에게 로마어를 가르쳤다는 점이다. 로마제국이 붕괴되던 바로 그때 교회는 로마에서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로마제국의 군대가 아일랜드에 발을 디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교회선교사들은 로마 관습을 전달했다. 후일 아일랜드의 학식 있는 많은 사람들이 파송되어 유럽인을 가르쳤다. 다른 하나는 왕이 패트릭에게 땅을 줬다는 사실이다. 미개인들의 모든 생활은 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큰 도시가 하나도 없어서다. 그들은 땅을 의지해 살았다. 그들이 교회에 감사를 나타내는 방식은 땅을 헌납하는 것이었다. 그 땅에다 교회는 십자가를 심고 가꾸었다. 추수하는 수도사를 나타내는 Q 문자 패트릭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옛날 돼지를 치며 노예 생활을 했던 산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산꼭대기에 앉아 하나님의 기묘하신 방법을 곰곰 생각했다. 하나님은 패트릭을 노예로 만드시어 이 아일랜드 백성을 알고 사랑하게 만드시고 예수의 이야기를 가지고 아일랜드인들에게 돌아오게 하셨다. 패트릭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그는 자기보다 앞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자기 주위에 모이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감동과 체험이었다. 그는 선배들을 뒤따라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바람이 싸하게 부는 산등성에 오도카니 앉아 있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아일랜드인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아일랜드에서 선교사들이 다른 지역들로 파송됐다. 한 톨의 패트릭이라는 밀알이 아일랜드를 복음의 황금 물결로 일렁이게 했다.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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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8-09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7_ 노예였던 선교사
    Saint Patrick sent to Ireland by the Pope; wall mosaic in St Mary's Cathedral, Kilkenny. 노예였던 선교사 로마제국에 물밀듯이 들어온 야만인들은 거개가 기독교화 되어 있었다. 그들이 정통 보수 니캐아 신앙을 따르지를 않고 아리우스주의를 따르기는 했을지라도 말이다. 양 파를 갈랐던 사상은 대부분 잊혀졌지만 그 차이는 여전히 중요했다. 아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의 지도력을 도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타 야만인들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싸움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에 군침을 흘리게 된 주요한 까닭도 그리스도교가 강력한 로마제국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쑥대머리에 누런 이빨로 이죽거리는 야만인들은 로마처럼 힘이 세지려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깜냥에 머리를 굴렸다. 그리스도교의 어떤 점들은 야만인들에겐 도시 이상하기만 했다. 그들은 죽기 살기로 싸움을 밤낮 일삼았기에 오른쪽 뺨을 얻어맞고 왼쪽 뺨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실천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야만인들의 영웅은 사도 베드로였다. 주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붙잡히셨을 때 베드로가 칼을 쑥 뽑아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단칼에 베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좋은 결혼도 마다하고 세상을 떠나 사는 수도사들을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미친 것만 같았다. 이런 막돼먹은 사람들을 교회는 전도해야 했다. 켈트족은 북부 프랑스와 영국 섬들에 살던 사람들이다. 프랑스와 영국에 사는 켈트족은 옛날 로마제국 시대에 개종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개종이 되질 않았다. 앵글로 색슨족은 켈트족을 웨일즈로 쫓아낸 새로운 야만족이었다. 그 당시 웨일즈족은 영국 섬에 남아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전도 대상이었다. 먼저 아일랜드가 복음화된 경우를 살펴보자.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은 성 패트릭(St Patrick)이다. 그는 아일랜드를 복음화 시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많은 기여를 했다. 아일랜드인을 위해 그가 한 일은 악을 선으로 갚은 경우였다. 아일랜드인은 패트릭을 노예로 삼아 심하게 부려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 주둔하던 로마군단들이 로마를 방어하기 위해 영국에서 철수해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힘의 공백이 영국에 생긴 그때 패트릭은 웨일즈 국경 근방에서 살고 있었다. 아일랜드인은 로마군이 없는 영국 해안을 싹슬이 하고 다니다가 패트릭을 생포해갔다. 노예가 된 패트릭은 아일랜드에서 탕자처럼 돼지를 치며 목숨을 연명했다. 패트릭은 그리스도인으로 자랐었다. 그의 아버지는 집사였다. 부모 슬하에서 편하게 지낼 때 그는 건성으로 교회에 들락거렸다. 어처구니없는 고난이 닥치자 그는 주님께 기도했다.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는 아일랜드 해변에서 개를 운반하는 화물선을 어렵사리 얻어 타고 프랑스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고향이 너무 그리워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집으로 되돌아갔다. 고향에서 행복에 겨워하며 지내던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아일랜드의 아이들이 나타나 지긋지긋한 아일랜드로 돌아와 그리스도를 가르쳐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마음이 움직인 그는 먼저 프랑스로 건너가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노예로 살았던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가 되어 아일랜드로 갔다. 아일랜드인에게 전도한 패트릭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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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8-02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6_ 수도사 생활
    Saint Benedict and the cup of poison 수도사 생활 나뭇잎에 감돌던 팽팽하고 짙은 푸르름은 짧아진 해 길이 마냥 맥이 풀렸다. 길가에는 스산함이 감돈다. 길을 걸으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선뜩해진다. 밝고 뜨겁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상크름하다. 이제 파리한 바위 사이에 붉은 단풍이 고운 자태를 실컷 뽐내겠지. 그러노라면 우리 인생도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 성숙한 알곡을 머금은 곡식이 되겠지. 수도사들은 완전한 침묵에 갇혀 식사를 했다. 조금 일찍 식사를 마친 사람은 자리를 뜨지 않고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겨야 했다. 식사 중에 수도사가 손이 닿지 않는 걸 집길 원한다면 벙어리 마냥 수화에 버금가는 손짓을 해야 했다. 예컨대 사과가 필요하면 주먹에 엄지를 세워 앞뒤로 흔든다. 우유가 필요하면 왼손 새끼손가락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우유가 흐르는 모양으로 아래위로 흔든다. 매큼한 겨자가 필요하면 오른 주먹으로 코를 틀어쥐고 문지른다. 짭짤한 소금이 필요하면 오른손 엄지로 왼손 집게손가락을 툭툭 친다. 침묵 속에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면 낮잠을 좀 잔 뒤 다시 들판으로 일을 나갔다. 해가 떨어져 땅거미가 기지개를 펴려고 나들이를 시작하면 수도사들은 저녁 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허리를 뉘였다. 잠잘 때 젊은 수도사들은 나이든 수도사들 사이사이에 끼여 잤다. 젊은이끼리 자다가 젊은 혈기에 드잡이하거나 싸움질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젊다는 것은 아무래도 성마른 결기를 잘 돋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수도사는 자기 소유라고는 도통 없었다. 그래서 침대와 담요 상의와 하의를 배급받았다. 수도사는 칼 한 자루, 바늘 한 개, 글쓰기 위한 철필 한 자루를 지녔다. 칼을 베개 밑에 둬서는 안됐다. 그것은 싸움이 일어났을 경우에 대비 한 것이었다. 칼부림도 있었던 모양이다. 음식은 평범했다. 어쩌다 한 번씩 고기를 먹긴 했지만 음식물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굶는 사람은 없었다. 요리와 식사 당번은 평수사들이 돌아가면서 담당했다. 한 주일 부엌 담당자는 실수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주말에는 맡았던 부엌을 깨끗이 치워놓았다. 손님에게는 특별한 식탁이 마련됐고 수도원장이 함께 식사했다. 수도원장은 수도원의 아버지였다. 수도원장을 나타내는 애버트(abbot)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람어 압바(abba)에서 왔다. 수도원 규칙은 수도원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도원장은 걱정해서도 안 되고 염려해서도 안 된다. 또한, 그는 너무 요구가 많거나 고집이 세거나 질투심이 많거나 의심이 많아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을 것이다.” 수도사들은 모든 일에 수도원장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독단으로 매사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아주 어린 사람일지라도 수도사들과 의논을 해야 했다. 모든 수도사들은 자신의 잘못을 서로에게 고백해야 했다. 수도원이 은신처 역할을 위해 섬이나 산꼭대기에 세워졌던 것이 점차 야만인들이 사는 곳에 세워졌다. 수도사들이 그들에게 땅을 개간하고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수도사들은 어린애들을 맡아 가르쳤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이라 책들을 베꼈다. Mount St. Benedict monastery, St. Augustine, Trinidad.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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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7-13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죄인임을 고백하고 사는가
    주신 말씀_ 요한일서 1:8~10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인임을 고백하고 사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에 오신 빛이요, 생명이요, 사랑이시다’라고 말한다. 그는 요한복음에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삶을 기록하였고 요한 1~3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생을 마치기 전 밧모섬에 유배되어서 마지막으로 기록한 계시록을 통하여는 장차 있을 하나님의 세상 심판하심과 마지막 남은 어둠 세력과 사망을 멸하시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하나님 백성의 삶을 계시하였다. 그런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주님의 빛 안에 거할 때에만 새 생명을 보장받고 영생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먼저 주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스스로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모든 불의에서 깨끗함을 받을 수 있고나의 죄에 대하여 대신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신 예수님의 공로 안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나는 온전히 주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는가? 아마도 그 고백은 남은 삶을 사는 동안에 쉼 없이 지속되어야 하리라. 왜냐면 내가 발로 밟고 사는 세상은 늘 더러움에 묻혀있고그 땅을 밟지 않을 수 없는 내 발은 그 더러움을 떨쳐내기 어렵기에 항상 죄의 고백으로 씻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멘. 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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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0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5_ 수도사의 일과
    수도사의 일과 이제 어느 길이랄 것도 없이 노상 막힌다. 신호등이 멀쩡하게 눈을 껌벅이는데도 네거리가 곧잘 뒤엉키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우회전한다. 신호등 하나를 받고 나면 좌회전을 받아야 될 사거리가 기다린다. 여기만 넘어서면 다 온 셈이다. 왼쪽 화살표가 나왔다. 골프장 근처의 어수선함만 지나치면 총회회관이다. 차를 주차장에 대놓고 4층까지 계단을 뛰어오른다. 자리에 앉는다. 기도한다. 마주치는 직원과 아침 인사를 건네며 예배실에 들어선다. 묵상에 잠긴다. 하나님께 이것저것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그분의 나직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본다. 성경을 몇 장 본다. 아홉 시 예배시간에 맞춰 직원들이 회의실을 메운다. 찬송을 부른다. 짤막한 설교 말씀을 듣는다. 그날 담당자가 기도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친다. 이제 총회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재편된 새로운 서방세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도원 제도를 바꾼 인물은 성 베네딕투스였다. 그는 이태리에 살았다. 야만인들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휘젓고 다닐 때 베네딕투스는 깎아지른 산꼭대기 절벽에다 수도원을 건립해 피난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 그곳을 몬테카시노라고 한다. 베네딕투스 수도규칙에도 진부한 조항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수도사는 결혼해서는 안 되고 가난해야 되고 절대 복종해야 된다는 조항이 그랬다. 새로운 규칙은 수도사는 수도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은수사들이 유랑자마냥 방랑함으로써 심심치 않게 골치를 썩였다. 성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수도사들은 특별한 허락을 받지 않고는 수도원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수도원은 생활에 필요한 일체의 것을 제공해주어야 했다. 수도원에는 들과 강, 우물, 빵집, 부엌 등이 있어야 했다. 수도사들은 농사를 짓고 나무를 베고 요리를 하고 음식 나르는 등의 노동을 직접 담당해야 했다. 하루를 쪼개서 혼자 할 수 있는 손으로 하는 일, 기도, 명상을 하고 여럿이서는 찬양과 독서, 연구, 식사, 수면을 행했다. 기상을 알리는 종은 아침 두 시에 댕그렁거렸다. 그런데 이게 그닥 무리하지 않았던 것은 취침은 저녁 여섯 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의 구분은 계절에 따라 변했다. 일과표가 이렇다. 아침 2시에서 4시까지 기도 아침 4시에서 4시 15분까지 명상 아침 4시 15분에서 6시까지 기도 아침 6시에서 9시까지 연구 아침 9시에서 12시까지 들판 노동 오후 3시 저녁 식사 오후 3시를 noon이라고 했다. 이 단어는 제9시를 의미하는 라틴어 nona에서 유래됐다. 오전 6시부터 헤아려 보면 오후 3시가 된다. 수도사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제9시인 noon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수도사들은 아무리 뱃구레 쪼르륵 아우성을 쳐도 수도규칙을 바꾼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규칙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시간을 올려 땡겼다. 다시 말해 오후 3시인 noon을 12시로 올려 잡은 것이다. 바로 그게 오늘날 noon이 12시가 된 까닭이다. 만사가 먹자고 하는 노릇이니 수도사들인들 먹기 위해 머리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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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7-05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오직 덕을 세우는 선한 말만 하라
    주신 말씀_ 에베소서 4: 29~30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오직 덕을 세우는 선한 말만 하라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 지혜 등 모든 것을 나타낸다. 또 한 한마디의 따뜻한 말과 위로는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기도 한다. 한편 상처가 되는 말은 별 뜻없이 하였다해도 당사자는 깊이 새겨져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것이다. 옛말에 듣는 귀는 천 년 가고 뱉은 입은 3일 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조심해서 말을 하여야 한다는 뜻일게다. 나도 하나뿐인 동생으로부터 들은 말이 가슴에 대못이 되어 하나 하나 스스로 빼내는데 인고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입으로 글로는 다 용서 하고 잊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예수님 손바닥 못자국처럼 상처가 흉터되어 남아 있음을 느낀다. 나는 60여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런 일은 없었을까! 지난날의 나 역시 보통은 아니였던가 싶다. 뱉은 내 입술은 까맣게 잊고 있지만 혹시 누가 상처를 입어 아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신앙이 견고해지고 내 안에 성령님이 늘 충만히 자리잡고 계시면 내 말에도 주님의 향기가 묻어나고 있음을 자주 체험할 수 있다. 어느날 복지관에서 87세 되신 어르신께 건넨 내 덕담이 그분을 일주일 동안 ‘행복하게’ 하였다는 그 어른의 고백에 오히려 내가 놀라고 은혜가 되었던 일이 있다. 이렇듯 요즘의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과거의 때를 많이 벗은 듯 하다. 선한 말은 예수님의 겸손하심과 온유하신 성품을 배우려 하는 노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부지런히 주님을 닮자! 아멘.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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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4_ 교황의 씀씀이
    Jerome and Gregory 성 예로니모(왼쪽)와 성 대 그레고리오(오른쪽) 교황의 씀씀이 인플레에 좋은 점이 있다면 돈 쓰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네 세종대왕이나 이율곡 선생이 힘을 엄청 발휘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묘하게도 공산주의 나라들인 옛 소련과 중공이다. 어느 목사 한 분이 옛 소련 선교사로 파송되어 모스크바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고려인 교수에게서 요긴한 도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를 인사치레로만 때우지 않고 우리네 돈 30만 원에 해당하는 미국 돈을 건네 주었는데 우리에게는 별 크게 생각되지 않는 그 돈의 액수가 소련에서 그 교수로 하여금 입이 함박 만큼 벌어지게 한 모양이다. 까닭인즉슨 그 액수가 소련에서 그 교수의 일 년 치 봉급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돈의 힘은 묘해서 부자가 하는 농담은 모든 사람이 다 배꼽을 쥐게 한다고 한다. 러시아에 가 있는 한국 선교사들의 주위에는 이런저런 연유로 많은 사람들이 꾀는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인 선교사들이 웃기는 말을 하면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도 덩달아 낄낄거릴 게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교회를 위해 돈을 쓸 때도 있었다. 세례받을 때 입는 세례 복을 마련해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보내주었다. 시내 산에서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수도사들에게는 담요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집트에는 예배당을 지을 때 요긴하게 쓰라고 통나무를 보내주었다. 이집트에 보낸 통나무가 너무 짧다는 보고서가 교황청에 접수됐다. 교황은 양미간을 좁히며 펜을 들어 답장을 보냈다. 『이것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통나무를 배 길이에다 맞추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요즈막에는 긴 배가 잘 없군요. 긴 배가 항해를 하게 되면 그때 다시 기럭지가 긴 통나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집트 교인들은 하는 수 없이 교황이 보내준 키 작은 통나무로 서까래도 짧고 기둥도 낮은 교회를 지어야 했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가끔 기분 내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내렸다. 그는 자상하게 편지까지 곁들였다. 『오리와 오리 새끼를 당신한테 보냅니다. 그것들을 볼 때마다 날 생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옛날에는 정부가 행했던 종류의 일을 위해서도 돈을 썼다. 옛날에는 로마 정부가 로마 시민들의 식량을 공급해줬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교황이 밀 경작지와 화물 수송 선박들을 소유했다. 로마인이 야만인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도 속량 금을 교황이 지불했다. 로마에서 돈을 넉넉하게 가진 사람은 오직 교황뿐이었다. 교황은 야만인 롬바르드족하고도 조약을 맺곤 했다. 이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교황은 이태리 반도의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교황은 이런 과업들을 스스로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교황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 간여했다. 교황은 그 영향력이 갈수록 증대됐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여러 지방들, 콘스탄티노플에 자리 잡은 로마 황제, 그리고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지의 야만 왕국들하고 교제를 나누며 싫든 좋든 정치를 논해야 했다.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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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6-14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주신 말씀_ 고린도전서 10: 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영광’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보드’라 한다. 이 말에는 풍부, 다수, 무거움, 부유함, 가치, 명성 등의 의미가 담겨있다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 14) 라는 말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을 뜻하는 단어로 ‘키보드’를 사용하였다.(통성경에서) 인간의 창조된 목적은 바로 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배웠다. 그러므로 하박국은 자신이 어떤 비참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합 3: 18)고 노래하였다. 하나님은 이미 완전하신 분이고 영광 자체이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나같은 미물같은 존재가 무슨 일을 한들 하나님께 영광이 될수 있겠는가! 한때, 내가 매일같이 하나님 찬양과 감사와 기적의 체험에 대한 글을 쓰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큰 착각이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나같이 부족한 자가 글을 쓰는 것이 하나님께 오히려 누가 되면 되었지 어찌 영광이 되겠는가? 이글은 분명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다. 하나님을 매일 내 삶 속에 모셔들이고 그 은혜를 맛보며 기쁨을 누리고 싶은 갈망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는 세상에서 나의 성공과 세상에서 누릴 행복을 목적으로 열심히 살아 왔다. 그러나 지금은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보고 난 후부터의 나의 삶의 목적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 가운데 즐거움과 기쁨 속에 사는 데 있다. 그렇게 열심을 다하다 보면 혹시 아는가? 내 삶이 진정으로 선하고 아름다울 때 그것이 향기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는지... 이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일이로다! 아멘. 20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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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3_ 교회와 땅
    Matthias Stom_ St Gregory 교회와 땅 세면을 하다 거울을 본다. 머리에 희끗한 서릿발이 늘고 있다. 멜라닌 색소를 생산하는 염색공장이 드문드문 휴업을 일삼는 모양이다. 가을은 깊어가는 데 사위는 어둑할 뿐 소리가 없다. 가을밤이면 섬돌에서 신나게 우짖는 귀뚜라미 합창공연이 뜨내기 약 장수 마냥 찾아보기가 힘들다. 공해 탓에 벌레들이 지구에서 발붙일 곳을 잘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머리털 짧은 수도사들이 세상을 돕는 일은 두 가지로 진행됐다. 첫째가 산꼭대기라든가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 같은 안전한 곳에다 수도원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야만인들이 옛 로마인들을 막무가내로 괴롭힐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아예 더벅머리 야만인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수도원을 세워 그곳을 통해 주위의 어둠을 밝힐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거칠은 세상을 피해 기도원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세상을 위해 데모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복음의 빛을 비추었다는 말이다. 우리네 신학생들은 세상을 위해 데모에 앞장서고 우리네 지도자들은 너나없이 세상을 위해 날틀(비행기)을 타고 세계를 누비기에 바쁘다. 복음의 빛을 비추기보다는 돈 모으고 나누고 하는 일들에 온통 시간을 뺏긴다. 돈이 뭔지 명색이 기름부음 받았다는 사람들의 눈이 벌겋다 못해 핏빛이다. 로마제국의 해체로 재편된 새로운 서방세계에 최초의 위대한 교황이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그레고리 성가로도 드높은 그레고리우스 1세이다. 그는 그레고리우스 대제라고도 한다. 그는 로마의 마지막 위대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활약한 시대를 바로 뒤이어 A.D.590년에 교황이 되었다. 최초의 교황 그레고리 1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서방에서 되찾은 로마의 영지들은 눈 녹듯 사라졌고 야만인들이 다시 이탈리아 전역을 대부분 장악하게 됐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정부는 침략자들을 전혀 다룰 수가 없었다. 로마에 있는 정부는 전혀 힘이 없었다. 그런 판국에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단지 교황뿐이었다. 그가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은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교회에 땅을 헌납해 왔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전해오는 한 가지 기록을 보면 어떤 농부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자기 소유의 땅과 돼지를 교회에 바치려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교회는 당연히 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듯이 원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수 있겠는가! 많은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죄를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할 게다. 그러니 교회가 많은 땅과 많은 돼지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교회 소유 전체 땅 넓이가 물경 백만 평이나 되었다. 그리고 거개가 그 땅이 야만인들이 손대지 못한 이태리 남부나 섬에 있었다. 이 땅에서 교회는 해마다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교황은 이 땅의 경작을 관리해야만 했다. 서기들은 회계를 담당했다. 노예들은 노동력을 제공했다. 노예란 땅에 부속된 소유물이었다. 교회는 노예를 해방시켜 줄 생각은 못하고 잘 대해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2021-05-31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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