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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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Benedict and the cup of poison


수도사 생활


나뭇잎에 감돌던 팽팽하고 짙은 푸르름은 짧아진 해 길이 마냥 맥이 풀렸다. 길가에는 스산함이 감돈다. 길을 걸으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선뜩해진다. 밝고 뜨겁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상크름하다. 이제 파리한 바위 사이에 붉은 단풍이 고운 자태를 실컷 뽐내겠지. 그러노라면 우리 인생도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 성숙한 알곡을 머금은 곡식이 되겠지.

 

수도사들은 완전한 침묵에 갇혀 식사를 했다. 조금 일찍 식사를 마친 사람은 자리를 뜨지 않고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겨야 했다. 식사 중에 수도사가 손이 닿지 않는 걸 집길 원한다면 벙어리 마냥 수화에 버금가는 손짓을 해야 했다.

 

예컨대 사과가 필요하면 주먹에 엄지를 세워 앞뒤로 흔든다. 우유가 필요하면 왼손 새끼손가락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우유가 흐르는 모양으로 아래위로 흔든다. 매큼한 겨자가 필요하면 오른 주먹으로 코를 틀어쥐고 문지른다. 짭짤한 소금이 필요하면 오른손 엄지로 왼손 집게손가락을 툭툭 친다.

 

침묵 속에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면 낮잠을 좀 잔 뒤 다시 들판으로 일을 나갔다. 해가 떨어져 땅거미가 기지개를 펴려고 나들이를 시작하면 수도사들은 저녁 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허리를 뉘였다. 잠잘 때 젊은 수도사들은 나이든 수도사들 사이사이에 끼여 잤다.

 

젊은이끼리 자다가 젊은 혈기에 드잡이하거나 싸움질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젊다는 것은 아무래도 성마른 결기를 잘 돋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수도사는 자기 소유라고는 도통 없었다. 그래서 침대와 담요 상의와 하의를 배급받았다. 수도사는 칼 한 자루, 바늘 한 개, 글쓰기 위한 철필 한 자루를 지녔다. 칼을 베개 밑에 둬서는 안됐다. 그것은 싸움이 일어났을 경우에 대비 한 것이었다. 칼부림도 있었던 모양이다.

 

음식은 평범했다. 어쩌다 한 번씩 고기를 먹긴 했지만 음식물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굶는 사람은 없었다. 요리와 식사 당번은 평수사들이 돌아가면서 담당했다. 한 주일 부엌 담당자는 실수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주말에는 맡았던 부엌을 깨끗이 치워놓았다.

 

손님에게는 특별한 식탁이 마련됐고 수도원장이 함께 식사했다. 수도원장은 수도원의 아버지였다. 수도원장을 나타내는 애버트(abbot)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람어 압바(abba)에서 왔다. 수도원 규칙은 수도원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도원장은 걱정해서도 안 되고 염려해서도 안 된다. 또한, 그는 너무 요구가 많거나 고집이 세거나 질투심이 많거나 의심이 많아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을 것이다.”

 

수도사들은 모든 일에 수도원장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독단으로 매사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아주 어린 사람일지라도 수도사들과 의논을 해야 했다. 모든 수도사들은 자신의 잘못을 서로에게 고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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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이 은신처 역할을 위해 섬이나 산꼭대기에 세워졌던 것이 점차 야만인들이 사는 곳에 세워졌다. 수도사들이 그들에게 땅을 개간하고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수도사들은 어린애들을 맡아 가르쳤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이라 책들을 베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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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 St. Benedict monastery, 

St. Augustine, Trinidad.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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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6_ 수도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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