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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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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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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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윤희원의 선거 변혁 제안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이 총회 상비부 임원 같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배광식이나 고광석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6일 전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 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표로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했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 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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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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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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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 G.OPINION
    • G.OPINION
    2024-03-18

실시간 G.OPINION 기사

  • 라블레의 15분
    ‘라블레의 15분’ 이란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식사를 한 후에 지불해야 할 돈이 부족한 것을 깨닫고 당황한 순간을 말한다. 프랑수아 라블레는 프랑스 르네상스 최대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1534)를 쓴 프랑스의 대작가이다. 만일 식사 후에 계산대 앞에서 음식값을 지불하려고 가방을 열었을 때 지갑이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시 라블레는 프랑수아 1세의 명령으로 6개월 동안 로마의 사신으로 갔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리용까지 왔을 때 돈이 다 떨어졌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호텔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사정을 이야기 하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장난기가 발동한 그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모면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기를 15분,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그는 우선 아무도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철저히 분장했다. 그리고 오랜 연구여행에서 돌아온 의사라고 알리고 중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다고 마을의 모든 의사들이 모이게 했다. 강연회 자리에서 꾸며낸 목소리로 아주 어려운 의학내용에 대해서 긴 연설을 하던 도중, 열심히 듣는 청중 앞에서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강연장의 모든 문을 잠근 후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의 내용은 절대 비밀입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께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약봉지가 두 개 있습니다. 이쪽에는 '왕에게 줄 독' 다른 한 쪽에는 ‘왕비에게 줄 독'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저는 먼 이탈리아까지 독극물을 연구하러 갔다 왔습니다. 이 두 주머니에 담긴 독약은 아주 소량으로 한순간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심지어 해독제도 듣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파리로 가서 국왕과 왕비 그 자녀들까지도 이 독을 마시게 할 작정입니다. 당신들을 포함한 모든 프랑스 국민을 위해서 그 폭군 일가를 전부 죽일 계획입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의사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떠났다. 조금 후에 마을의 경찰들이 와서 라블레를 체포했다. 당시 국왕을 해치려는 행위는 곧 국가사범에 해당하였으므로 경찰은 엄중한 감시를 펼치면서 일반 파렴치범이나 잡범과는 달리 정중하게 대우하여 파리로 호송했다. 그동안 묵고 있던 호텔의 숙박요금을 지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용 마차에 호송되어 파리까지 공짜로 배불리 먹으면서 편히 갈 수 있었다. 프랑수아 1세는 대역 죄인을 직접 문초하겠다며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범인의 얼굴을 보자 평소 자기와 친하게 지내던 라블레임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연유인지 물었다. 라블레가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국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껄껄대고 웃었다고 한다. 2013-12-23
    • G.OPINION
    2013-12-23
  • 교단의 조향장치와 제동장치는 정상인가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를 배출한 산정현 교회의 김관선 목사는 이런 글을 썼다. 매우 오래된 일이지만 자동차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빨리 달리게 하는 장치도, 멋진 외관도 아닌 조향장치와 제동장치라는 것입니다. 조향장치란 자동차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며 제동장치는 자동차를 정지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자동차라 할지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자동차가 가지 않는다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자동차라 할지라도 자동차를 정지시켜야 할 때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흉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운전자가 아무리 핸들을 돌려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거나 제동장치가 고장난 자동차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러기에 조향장치와 제동장치를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장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장자 교단도 그렇지 않을까. 얼마나 힘이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있는지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거대한 교단의 방향을 잘 잡아야 될 것이다. 힘도 있고 교세도 뛰어난데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교단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어떤 교단보다 앞서가며 2만 교회를 향해 빠르게 잘 달린다 할지라도 멈춰야 할 순간 멈출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빨리 가는 교단은 그 속도만큼이나 더 잘못될 것이며 더욱이 멈출 능력조차 없다면 그 혼란과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97회 총회 후 교단은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에 혼란은 피했지만 논란은 여전한 총회선거법 개정은 바로 칼빈주의의 본산이고 장자인 교단의 방향성을 생각하게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말들은 무성했지만 몸을 던져 거대한 교단의 제동장치 역할을 홀로 담당한 목사가 있었다. 그는 동평양노회 배광영 목사였다. 배광영 목사와 함께 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던 정중헌 목사는 7월 15일 소를 취하했다.그는 서울중앙법원에 총회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선거법 개정의 가장 큰 쟁점은 후보자 자격 중 총회장과 목사부총회장 후보 자격을 세례교인 500명, 기타 임원 세례교인 300명 이상 교회를 시무해야 한다는 조항 삭제 여부다. 또한 총회임원 상비부장 총회산하 기관장을 역임한 자로 경력을 강화하여 논쟁이 첨예하게 진행됐다. 선거법개정위원회(위원장:유병근 목사)는 총회 내 더 많은 인사가 임원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검증된 인사를 후보로 나서게 해야 한다며 이와 같은 조항을 신설하여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그 속내는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선거법 개정이라는 의혹이 짙었다. 게다가 지난 제97회 총회에서 세례교인수 항목을 결의하여 통과하였는데 시행도 하기 전에 회기 중에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배광영 목사(동평양노회)가 제기한 총회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가 7월 17일 오후 2시 2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0부에서 열렸다. 이날 총회 측 변호사는 총회임원 입후보자 자격을 “세례교인 500명, 300명 이상 교회 시무자”로 한정하는 것은 총대들의 선거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변론했다. 동평양노회 배광영 목사가 제기한 총회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9월 총회에 앞서 각하됐다. 이로써 제98회 총회 임원선거는 총회선거법개정위원회(위원장:유병근 목사)의 개정안대로 실시하게 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1부는 신청인 배광영 목사가 총대가 아님으로 가처분신청 적격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설령 당사자가 적격자라 하더라도 총회 선거법 규정을 놓고 총회 내 다툼이 있지만 개정한 선거규정이 권한범위를 넘어섰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총회실행위원회에서 인준을 받아 공고가 되었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제98회 총회에서 개정된 선거법 인준을 받은 뒤, 선거를 실시하면 모든 것이 치유될 것으로 보인다며 각하취지를 설명했다. 교단의 행보에 제동을 건 배광영 목사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행보에 잠시나마 한 목사가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교단에 제동장치를 시도해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광영 목사 개인의 용기와 인내는 희생적이고 귀감이 될 만한 일이었다. 나중에 10월 14일 개회되는 제173회 동평양노회 정기회에서 배광영 목사의 일이 논의되었다. 그 때 동평양노회 난곡제일교회 박보근 목사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일이지만 한 목사가 교단의 힘에 맞서 소송을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소송에는 고비용의 변호사와 저비용의 변호사의 문제도 곁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배광영 목사가 진다면 소송비 부담은 개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배광영 목사는 굴하지 않고 버티었다.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 어려운 가처분신청 각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총회 현장에서의 선거 결과도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났다. 선거법개정의 저의를 가진 측이 선거에서 참패했기 때문이다. 총회 총대들과 사람들이 소수를 제외하고 저마다 입을 모아 말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이적이 일어났다. 교단의 조향장치와 제어장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정상이었다. 2013-11-25
    • G.OPINION
    2013-11-25
  • 설교의 기술 - 김영배
    설교를 하는 목사라면 설교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소설이나 시나리오에서 독자나 관객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짜임새 있는 플롯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설교 준비 과정을 플롯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일이란 아주 생소한 일이다. 특히 문학의 한 기법인 플롯을 설교에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기까지 도움을 받을 만한 마땅한 책이 없기 때문이다. 설교 역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치려는 회중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일으킬 수 있는 플롯을 상당히 필요로 하는 데도 말이다. 플롯이란 말은 한 조각의 땅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왔다. 더 정확히는 설계도나 평면도 등을 가리키는 낱말의 용법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설계도에는 건물과 부속 건물과 통로와 주차장 등의 배치가 설계되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이나 시나리오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사건의 배열이 곧 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롯은 사건과 사건을 결합시킴으로써 원인과 결과를 생성해낸다. 한 사건의 결과는 또 다른 사건을 발생시킨다. 이야기는 플롯을 지녀야만 결말에 도달한다. 즉 사건이 일어나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플롯이다. 회중은 이 과정을 통해 설교에 흥미를 갖는다. 그러면 좋은 플롯의 설교란 과연 무엇인가? 설교의 도입에 일어난 사건이 회중의 궁금증을 유발해 질문을 던지게 하고 클라이맥스를 거친 후 결말에 이르러 하나님 뜻이 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좋은 플롯의 설교일 것이다. 햄릿의 막이 오르면 관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드라마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여러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나면 관객은 복수를 하지만 햄릿도 죽는구나 라는 답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시작, 중간, 마지막의 올바른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설교의 준비와 구성에 적용해 보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설교는 선지자나 성직자의 연설이다. 설교는 성경과 신학과 도덕의 주제를 전한다. 설교는 주로 성경의 본문 안에서 신앙과 율법과 행동의 의미를 해설한다. 설교의 요소는 해석과 권면과 실제 적용을 포함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가 목에 뭔가 걸려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개를 동물병원에 맞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다녀온 동물병원의 수의사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 수의사는 아주머니의 질문에는 대답을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놀랍고 궁금했지만 수의사가 시키는 대로 이웃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찰차 4대가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집 앞에 섰다. 경찰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는 겁에 질린 채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수의사가 도착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진돗개의 목구멍을 검사해보니 거기에 사람 손가락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개가 도둑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곧 피 흘리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린 채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 숨이 막힌 진돗개 이야기는 플롯의 순수한 표본이다. 장소와 시간을 설명해주는 주어진 환경과 인물묘사는 플롯보다 뒷전으로 밀려 있고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누인다. 첫째 장면은 극적인 사건과 미스터리로 시작된다. 여자가 집에 돌아와서 진돗개가 숨이 막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다. 여자는 개를 수의사에게 데리고 간다. 둘째 장면은 여자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리면서 시작된다. 몹시 흥분한 수의사가 여자에게 집밖으로 나가라고 수리칠 때부터 위험의 요소가 느껴진다.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직감적으로 숨이 막힌 진돗개의 미스터리가 그 위험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두들 추측해본다. 아주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면서 동시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위험으로부터 빠져나온다. 셋째 장면은 경찰의 도착으로 시작된다. 경찰이 급하게 도착함으로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의사가 도착한다. 수의사는 미스터리의 실체를 가장 먼저 확인한 사람이다. 경찰은 도둑을 잡음으로써 개의 목구멍에서 발견된 손가락의 임자를 찾아낸다. 아무도 이 이야기가 날조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숨이 막힌 진돗개라는 그럴싸한 사건의 단서로 시작되며, 수의사의 전화를 통해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피 흘리는 도둑의 소름끼치는 클라이맥스가 있기 때문이다. 구성은 이야기가 제공하는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발전한다. 시작, 중간, 마지막이라는 플롯의 세 대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주머니라는 주인공과 도둑이라는 적대자가 등장하여 긴장과 갈등의 요소도 있다. 이와 같이 설교의 구성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플롯의 세 대목 시작, 중간, 마지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과 적대자가 있어 긴장과 갈등을 증폭시켜야 한다. 좋은 설교는 플롯과 등장인물을 통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회중은 그 설교에 빨려들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축복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 설교에 더해지게 될 것이다. 2013-11-25
    • G.OPINION
    2013-11-25
  • 김영배의 더굳뉴스 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성경의 황금률이다. 로마 황제는 이 문장을 금으로 써서 걸어놓고 있다가 통치의 길을 잃었을 때 바라봤다고 한다. 연인에게 전구(電球)를 선물로 주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빛을 심으려는 손길은 예쁘게 포장한 양초를 건네는 법이다. 고대 이집트의 궁궐에서는 밀랍이나 동물의 기름에 갈대를 섞어 만든 양초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신라와 고려의 왕궁에서도 금동수정 촛대, 청동쌍사자 촛대 등이 사용됐다. 촛불은 오랜 궁정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전기가 널리 보급된 오늘날에는 양초의 쓰임새가 크게 줄었지만 종교용·축제용·장식용의 촛불은 여전히 밝게 빛난다. 부활절 새벽의 촛불예배는 지금껏 이어져 오는 오랜 전통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맨 처음 촛불 장식을 매달았다. 촛불은 결혼식이나 송년 예배에서도 좀처럼 빠지는 일이 없다. 기껏해야 밀랍이나 파라핀에 실 심지를 꼬아 박은 원시적 조명기구, 그 구닥다리 같은 촛불이 이토록 오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소박한 옛것에 대한 그리움, 실바람에도 가녀리게 흔들리는 순수의 이미지,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희생과 헌신의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나룻배에서 촛불을 켜고 책을 읽던 시인 타고르는 촛불과 달빛의 신비한 대조를 경험했다. “촛불을 끄자 신성한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둘러쌌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달빛이 춤추며 흘러 들어와 나룻배 안을 가득 채웠다. … 촛불 때문에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굳뉴스가 지향하는 푯대는 주님이 말씀하신 성경의 황금률이다. 그리고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희생과 헌신의 빛이 되는 촛불의 정신이다. 더굳뉴스의 더는 보태다 더 많게 하다는 뜻이 있다. 더굳뉴스의 굳은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힘을 뜻하다는 굳세다의 굳이다. 영어의 good은 좋다 기쁘다의 뜻이다. 그리고 더굳뉴스의 뉴스는 영어의 news이다. 영어 단어 news는 새로운 것을 뜻하는 new의 특별한 용도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14세기에 발전된 개념이다. 중세에는 그 단어가 newes로 쓰였다. 이것은 새로운 것들을 전한다는 뜻에서 소식의 뜻으로 발전되었다. 성경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한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들을찌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이사야 52:7-9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사실의 규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투명성의 정신이다. 더굳뉴스는 저널리즘의 본질인 사실 확인과 투명성의 정신을 따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더 좋은 소식과 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더 좋고 더 굳센 더굳뉴스가 되고자 한다. 들추고 비판하고 죽이는 소식이 아니라 더 좋게 하고 살리는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고자 한다. 더굳뉴스는 격주로 발행하는 소식지라 지나간 소식을 더 좋고 기쁘게 전해야 하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도 먼저 전할 더굳뉴스는 첫눈 소식이다. 한반도로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당분간 초겨울 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18일에는 수도권 일부와 서해안 등지에서 첫눈이 내릴 가능성도 있다. 기상청은 “17일 낮에 찬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 데 이어 18일 아침에는 기온이 더 내려가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곳이 많겠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18일 낮 동안에도 기온이 평년보다 5~8도가량 낮고, 19일까지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지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북동지방 5㎞ 상공으로 영하 35도 이하의 찬 공기가 밀려와 한반도 쪽으로 찬 공기를 내려 보내고 있는 상태다. 기상청은 또 한반도가 찬 대륙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면서 18일 전국에 구름이 많고, 서해안 등 지역에 따라 비나 눈이 내리는 곳이 있겠다고 내다봤다. 특히 수도권과 충북 등에는 18일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 산발적으로 눈이 날리거나 빗방울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낮 동안엔 소강상태를 보이겠지만 이날 늦은 오후부터 밤 사이에 다시 수도권과 서해안·강원 영서·충북·경북 서부 내륙 등지에서 눈이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그러나 예상 적설량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 서해안과 전북 동부 내륙이 1~3㎝, 경기 남부 서해안과 충남 내륙·전북 서해안·전남 내륙·경남 서부 내륙 등지는 1㎝ 미만이다. 눈(雪)의 계절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첫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설레임의 대상이다. 눈은 무엇일까. 구름 속의 수분이 얼어붙은 상태로 내리는 것을 ‘눈’이라고 한다. 구름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구름 속에 있는 수분은 -20℃ 이하 상태로 얼음결정과 물방울이 뒤섞인 형태다. 온도가 낮을수록 물방울보단 얼음의 양이 많아진다. 눈은 이들 중 얼음알갱이에서 시작된다. 각각의 얼음알갱이와 물방울이 구름 속의 높은 수분 밀도 속에서 서로 충돌하며 점점 덩치가 불어나 눈의 결정이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눈결정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상으로 낙하하게 된다. 눈결정의 크기는 2㎜ 정도. 눈송이는 이런 결정들이 합쳐진 것이다. 결정이 여러 개로 합쳐져 만든 눈송이의 크기는 보통 1㎝ 내외다. 하지만 내리는 도중에 눈결정이 많이 엉겨 붙을 경우엔 1㎝가 훨씬 넘는 큰 눈송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습기가 눈의 결정을 서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방울의 비율이 높을수록 커다란 눈송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함박눈 내리는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함박눈의 큰 눈송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공기 중 물방울이 눈 결정을 이어붙이면서 탄생한다. “함박눈이 내리면 따뜻하고 가루눈이 내리면 추워질 징조”라는 우리 옛말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실제로 함박눈은 온도가 비교적 높은 온대지방에서 주로 내린다. 반대로 가루눈은 기온이 낮은 한대지방에서 주로 내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추운 곳에선 각각의 얼음알갱이가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추운 곳에선 눈의 결정이 서로 부딪쳐도 달라붙기가 어렵다. 대기 중 수분의 많은 양이 얼음알갱이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접착제’ 역할을 해줄 물방울이 부족해서다. 그 결과가 가루눈이다. 반대로 기온이 높은 곳에선 구름 속 물방울의 비율이 높아 눈결정들이 큰 눈송이로 성장할 수 있다. 접착제 역할을 할 물방울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눈은 온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가 낮을 때는 가루눈이 내리고 온도가 높을 때는 함박눈이 내린다고 정리할 수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고운 싸락눈이 내리는 날 외출을 피하는 게 좋다. “완전히 똑같은 눈의 결정은 단 하나도 없다.” 인류 최초로 눈의 결정 사진을 촬영한 미국의 사진가 윌슨 벤틀리(1865~1931)가 남긴 말이다. 흔히 학교에서 눈의 결정은 ‘육각형’이라고 배우지만 그렇지 않다. 눈의 결정은 육각형 모양의 단순한 얼음 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육각형 모양의 얼음결정은 수분이 포화상태인 대기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얼음 결정에서 시작한 눈결정은 다른 얼음결정과 물방울과 계속 부딪치며 복잡하게 성장한다. 각각의 결정이 각기 다른 대기환경과 수분 포화도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결정의 복잡한 가지가 다른 모양을 할 수밖에 없다. 눈결정을 역사상 처음으로 촬영했던 벤틀리는 미국 버몬트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시골소년이었다. 15세 때 생일 선물로 받은 현미경으로 눈결정을 처음 관찰한 뒤 그 모습에 반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1800년대 사진기는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17세 때 사진기를 구했다. 19세 때였던 1885년 그는 눈결정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46년 동안 5000점이 넘는 눈의 결정 사진을 남겼다. ‘완전히 똑같은 눈 결정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이 사진들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겨울철 내리는 눈을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눈점’을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 때 것이 남아 있다. 12월(음력)에 눈이 오기를 기원하는 ‘기설제’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12월에 눈이 많이 내려야 풍년이 온다’는 믿음이 강했다. 눈이 많이 내려야 보리 농사가 잘 되고, 5~6월 비가 많이 내린다고 여겼다. 이런 풍속은 세심한 관찰을 통해 얻어낸 유용한 지식이었다. 실제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밭은 눈으로 인해 단열효과를 갖게 돼 뿌리가 썩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서 각종 병충해가 제거되는 효과도 있는 데다 봄까지 토양의 수분도 적당한 수준을 유지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봄에 내리는 눈은 흉작을 가져온다고 봤다. 추운 겨울에 내리는 눈은 외부의 차가운 대기로부터 아직 제대로 자라지 않은 보리를 보호해 주지만, 봄에 내리는 눈은 외부의 높은 기온을 차단해 보리를 얼어 죽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더굳뉴스는 눈이라면 추운 겨울 같은 세상에 내리는 눈이 되어 아직 자라지 않은 보리를 보호해 주듯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덮어주는 신문이 되고 싶다. 로마의 대정치가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말 잘하는 변호사이고 변론가였지만 자신의 언어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수사학을 공부하러 그리스로 유학을 갔다. 그는 로도스 섬에 학원을 세워 수사학을 가르치는 아폴로니오스 몰론{Apollonius Molon}의 문하에 들어가 수사학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와 키케로를 가르친 몰론은 외국인으로는 전례 없이 로마 원로원에 초청되어 연설한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다. 몰론은 키케로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바로 핵심을 말하라. 청중을 울리고 웃겨라. 청중이 열광하면 얼른 자리에 앉아라. 눈물처럼 빨리 마르는 것이 없다.” 거기서 키케로가 두 계절 배우고 죽기 3년 전에 펴낸 Orator가 서양 사회에 오늘까지 전해지는 수사의 기본서이다. 라틴어로 웅변을 의미하는 오라티오(Oratio)의 어간(몸통)은 이성과 지성이라는 의미의 라티오(Ratio)다. 키케로는 말하는 기술의 웅변이 없으면 지식이 힘을 못 쓰지만, 지식이 없이 입으로만 하는 웅변은 쓸모없다고 가르쳤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로 알려진 카톨릭 인문주의 신학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1466 ? 1536)는 『어리석음의 찬미 The Praise of Folly』라는 책에서 그리스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말을 소개했다. “인간은 두 개의 혀를 가졌다.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혀, 또 하나는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다.” 몰론과 에우리피데스의 경구를 기준으로 보면 오늘 우리 일반 정치인들과 교계 정치인들의 말본새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두 개의 혀 중에서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만 사용할 뿐 진실과 사실 관계는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이제 지난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열린 경기도 병점의 라비돌에서 한국의 장자 교단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98회 총회가 열렸다. 2013-11-23
    • G.OPINION
    201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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