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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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총회선거법 전환 의견
    산업시대 이전에 창궐한 질병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위생적인 시설도 없었거니와 의학 기술도 덜 발전하여 치료제도 없었고 영양 결핍으로 면역력 또한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질병은 과잉에서 비롯된다. 재판 몸살에도 이재명이 설치는 신자유시대의 질병은 우울증이다. 상품과 화폐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꿈꾼다. 이를 위해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Yes, we can!”). 그러나 누구든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 문화는 외부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자아는 피곤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우울증을 낳는다.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가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드는 시대에 개인은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구실'이 되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구청 직원 같은 이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이재명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한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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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더굳뉴스] 성석교회의 길
    7부 16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는 비자발적 기억에 대해 고찰한다. 그 유명한 ‘마들렌 에피소드’가 소개되는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비자발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아주 오래전 기억도 익숙한 냄새, 맛, 소리, 촉감 등 여러 가지 감각에서 환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면의 굴곡이 많아 험한 길이 기구(崎嶇)다. 산길처럼 다니기 고단한 길은 험준(險峻)이나 험조(險阻)라고 적는다. 굽이가 많아 에돌아가거나 통행이 까다로운 길의 상황은 우회(迂回)와 곡절(曲折)이다. 평평한 길로 보이지만 성석교회 안에는 구덩이가 팬 곳이 많다. 중국에서는 그 구덩이를 감가(坎坷)라고 곧잘 표현한다. 아예 함정(陷穽)으로 적기도 하고, 혹은 요철(凹凸)로도 부른다. 요즘 중국 매체들이 잘 쓰는 말은 김화경의 '걍'이 아닌 ‘갱(坑)’이다. 구덩이를 일컫는데, 단어로는 광산의 갱도(坑道)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성어로는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땅에 산 채로 묻었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친숙하다. 이제는 아예 유무형의 함정을 파서 사기를 치거나 해코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언뜻 평탄해 보이는 김화경의 길에는 이런 ‘구덩이’가 참 많을 것 같다. 총회나 성석교회 실세들이 통제를 잃으면서 생긴 윤리의식의 위축은 그를 더 심화했다. 그래서 성석교회라는 갱에 들어선 길은 늘 만만찮다. 신중하게 나서야 할 성석교회의 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5-7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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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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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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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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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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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0

실시간 G.OPINION 기사

  • 70정년제 교단지도력 쇠퇴
    내 젊은 시절의 여인상 구순(九旬)의 최은희는 아직도 정신이 말짱해 2015년 6월 13일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꿈에 매일 나타나는 신상옥 감독, 다음 생엔 남편으로 안 만나고파. 납북·탈북·망명·귀국 ‘영화 같은 삶’ 한바탕 길고 긴 꿈에서 깨어난 듯합니다.” 신 감독을 다시 안 만나고 싶다는 25살 연상의 여인의 말에 65세의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최은희씨는 소녀 같고 장난기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옛 추억을 꺼내니 절로 신이 나요. 30대로 보이게 찍어주세요. 안되겠죠. 하하.” 위임식을 거쳐 목회에 한참 물이 올라 완숙기에 오른 우리 교단의 70이 가까운 목사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아직 청년 같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경력과 영력에 있어서 한창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후임을 물색하는 장로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임기 말 전 대통령의 부인이 노 대통령의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전 대통령의 부인은 이 말 저 말하다 속내를 드러내 말했다. “취임하면 우리 잘 봐주실 거죠.” 노 대통령의 부인은 아무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다. 레임 덕(Lame Duck)은 현직에 있던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누수 현상이다. 즉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거나 먹혀들지 않아서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이다. 임기말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권력자나 지도자가 임기 제한으로 인해 권좌나 지위에 오르지 못하게 되거나 임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경우에 레임덕이 나타난다. 특별히 목회의 경우 70정년제로 한창 힘과 여유와 지혜가 있게 일할 나이인 65세를 전후해서 후계 문제로 자신의 노후를 염려해 그 대책 마련에 눈치가 보이고 힘을 잃게 된다. 그런 현상을 레임덕(lame duck)이라고 하는데 원래 사냥꾼들이 쓰던 말로 총에 맞은 오리가 절뚝거리며 도망가지만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탄약을 낭비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즉, 곧 죽어가는 오리이기 때문에 괜히 힘쓸 필요 없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절뚝거리는 오리(lame duck)를 상징하는 말로 바뀌었다. 정치적 용어로서 레임덕이란 정권 말기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거나 정권 말이 되면 지도자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정권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곧 자리에서 물러날 지도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아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모양새가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된 것은 1980년대로 레이건 대통령 재임당시에 임기가 1년 남은 시점에 상대편 당의 국회의원 등이 대통령의 말에 반하는 행동을 것에서 비롯되었다. 기자로서 여러 목사들을 취재하기 위해 다니다 보니 지도력을 한창 꽃 피워 열매를 맺을 나이에 은퇴 준비나 생각하면서 후임 준비는 교회에 맡기고 여행이나 다니거나, 또는 후임이 될 젊은 목사에게 대부분의 실무를 맡기고 뒷전으로 물러나거나, 또는 은퇴 준비와 후임 인선 문제로 교회와 밀고 당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제 시대가 90년대와 목사들의 건강과 정신력이 아주 양호하다. 심지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2015년 당시 분쟁의 화두로 떠오른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94세임에도 작년 고관절 부상으로 휠체어는 타지만 정신력은 말짱한 모양이다. 우리 교단의 안정을 저해하고 목회 지도력 누수(漏水)를 일으키는 70정년제를 재고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그 대안은 목사와 장로의 시무 연한을 75세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의 정신대로 70세까지 힘차게 목회의 지도력을 발휘하다 그 이후부터 은퇴나 후계 문제를 대비하면 교단의 안정과 교회의 성장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례로 그 연륜이나 건강이 아까울 정도로 왕성한 목사 장로 등의 많은 총회 지도자들이 교계나 교회를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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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0
  • 더굳큐티에 관하여 - 진영정 목사
    바이블리더스 출판사에서 ‘더굳큐티’가 새로 출간되었다. 저자이신 김영배 목사님은 캘리포니아 IRUS 신학교에서 만나 교재하고 있는 분으로 목사님의 성품과 열정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심 있게 ‘더굳큐티’를 읽어 보았다. 성경을 알고 성경을 따르게 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더굳큐티’는 말씀과 목회현장을 연결시켜 묵상하도록 돕고 있고, 성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설명해 준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를 설명할 때 빛이란 원자가 들뜬 상태에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빛에 대한 설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만들어진 들뜬 원자가 빛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안정된 원자를 그릴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안정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한다. 막연한 내용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말씀의 해석이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으신 탁월한 필력이 엿보인다. ‘더굳큐티’는 성경의 설명과 해석을 알기 쉽게 하려는 노력이 여러 군데 보여 독자를 자연스럽게 감동케 하며 제미슨-포셋-브라운 주석을 기초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성경적용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각 장의 서론을 여는 시사적인 설명이 많아서 말씀에 연결되지 않는 설명이 보여 아쉬웠지만 성경단어를 명확하게 설명해서 눈길을 끌게 하였다. 앞으로도 단어 설명이 구체적이고 적용하기 쉽게 많이 풀어주신다면 목회현장의 많은 설교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진영정 목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던 중 37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부르심을 받아 신학을 했다. 미국 Biola University에서 목회상담으로 목회학 석사(M.Div.)를,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부에서 목회학 박사(D.Min.)를, Southern California Seminary에서는 심리학 박사(Psy.D., 산업심리학 전공)를 받았고 담임목사와 신학교 교수로 20년간 살았다. 저자는 2017년부터 대구 대신대학교에서 기독교 상담과 기독교 영성 과목의 교수로, 옥인교회(서울 종로구 옥인동 소재)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또한 미국과 한국에서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받은 많은 목회적 영감으로 집필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아내 진신진 사모와 슬하에 아들, 며느리, 딸이 있다. 저서로는 『억압에서 자유로』 『선택』이 있다. 20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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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2
  • 문재인과 유장춘 방식
    문재인 공로 세 가지 중 하나는 핵 제거는 못했지만 핵 공포증은 말끔히 없애줬다. 제 고모부 박격포로 죽인 김정은이 아무리 바다에 대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국민은 이제 사재기는커녕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또 하나는 조국과 울산 송철호와 자신을 위해 공수처를 애써 만들어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죄가 얼마나 중요한 법치의 뿌리임을 깨우쳐줬다. 공수처를 앞세워 중요한 사건을 덮거나 뭉개면 대통령 범무장관 포함 공무원은 다 고소고발을 통해 기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대법원장 양승태의 경우에서 보듯 현 대법원장 김명수도 온전치 못 할 것이다. 법에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죄는 결코 삭제할 수 없고 선거법처럼 적당히 주무를 수 없는 법의 숨통과도 같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또 세 번째 공적은 천하에 무도한 공산주의자 시진핑 비위 맞추느라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획산 방치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손씻기 위생을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자리 잡아 준 것이다. 어느 국난과 국정 혼란보다 더 심한 이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법 준수와 의료 발전으로 세계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총회는 꾼들의 농간으로 적폐 대상이 된 납골당 총회 고리 사채 담보 지분을 몇 차례의 조사 처리 소동 끝에 손해가 나도 팔라고 결의했다. 받은 돈으로 돈을 준 총신 김영우를 구속시킨 적폐 해결사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은 충성교회 측으로부터의 선취득 매각대금 51억을 제외하고 온세교회 측에 27억 매각 결의를 하고 실행위원회 추인까지 받았다. 그때의 찬성 발언 주역은 총회 몇 안 되는 법학박사 유장춘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납골당 매각 적극 찬성 당사자 유장춘이 포함된 매각 책임 소위원회는 미적거렸다. 그리고 종내 회기를 넘겼다. 그러나 말씀과 신학 보수 일백 년 역사의 총회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무심하지 않으셨다. 2016년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는 납골당 문제를 총회 은급재단 성장과 안정 저해 1호 대상으로 삼고 해결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2017년 9월 18일 8차에 걸친 납골당 매매계약 합법적 체결에 방점을 찍었다. 그 계약서에는 계약 이행과 충성 측의 51억에 대한 총회 위험 부담 조항도 상세히 명기했다. 그 매매계약 체결 이사회의 실무는 전 총무 김창수가 전담해 은급재단 이사 소집 통보 출석 호명 매매계약 의결 총수 확인을 직접 했다. 그런데 총회가 수임한 안건이고 총회 은급재단 법인이 의결한 건을 비법인 총회는 보고만 받으면 끝날 일이었다. 무법 음험한 제102회 무임승차 전계헌은 “총회가 손해가 나도 팔라고 했는데”라고 이죽거리며 유장춘 등이 선동하는 납골당 매매계약 체결 보고 거부도 모자라 총회 결의를 이행하고 적폐를 해소한 공로자들에 대한 출국금지를 포함한 조사저리를 결의했다. 물론 그 조사는 무위로 끝났고 온세교회 측은 납골당 매수 27억 계약금 2억7천까지 지불한 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 과정에 총회 은급재단 측은 이사장 전계헌 지시 내지 묵인 아래 은급재단 김성태 이사 사임 전결 처리 위조를 이사 유장춘 발의, 실무국장 박상범 기안, 전 총무 김창수 날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을 망각하고 지엄한 사법 당국에 위조 서류를 제출해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법원의 고유 업무를 방해하고 농락했다. 온세교회 측에서 나중에 그 사실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자 김창수는 김성태 이사 사임처리 전결한 것을 총회장에게 허락과 보고를 묵살한 것도 모자라 2017년 9월 18일 은급재단 이사회에서 깜박 잊고 사임 처리된 김성태 이사를 호명하고 의결 계수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것 역시 죄에 죄를 쌓는 자신의 사문서위조 의혹에 대한 허위 변명으로 보인다. 양심을 어긴 야심은 고통의 근원일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의 질서와 정치의 질서가 상응(相應)한다고 봤다. 그의 희곡에서 국왕 시해의 결과는 무질서와 천재지변이었다. 작금의 중국 우한 발 코로나19 세계적 재난 역시 문재인과 총회 은급재단 작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구(舊)소련에는 당(黨) 기관지 ‘프라우다’('진실'이라는 뜻)와 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소식이라는 뜻)가 여론을 끌고 갔다. 두 신문 차이를 묻자 소련 관리는 ‘프라우다’에는 ‘새 소식’이 없고 ‘이즈베스티야’에는 ‘진실’이 없소. 그렇게 두 기둥이 ‘진리’와 ‘새 소식’을 막아주기에 나라가 버틴다오." 그렇듯 ‘기독’(크리스천)답지 않게 좋은 소식이 없는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과 ‘진실'이 없는 사설언론들을 대하고 있는 우리 총회 총대들은 자신이 어느 신문의 주인공을 닮았는지 알 것이다. 이제 출판국까지 꿰찬 총회 은급재단 실무 국장 박상범은 집요하다. 해미다 바뀌는 총회장과의 대화는 이어진다. 자신이 만년 실세 총회장이라 행세하는 그는 상황을 자른다. ‘총회 이전과 납골당 수호’로 나눈다. 교묘한 분리로 혼선을 노린다. 그럴수록 납골당 매각 거부의 집념은 너절해진다. 납골당 사태는 권력의 창(窓)이다. 역대 총회장의 내면이 들여다보인다. 권력 교만은 위압적이다. 그 심리는 우월감과 총대 깔보기다. 그들은 하는 말과 달리 실상은 거짓말로 성경과 헌법도 얕잡아 본다. 기관지 기독신문을 비롯한 여론을 통제·관리 대상으로 취급한다. 낡은 관행을 뒤집는 과정에 도덕적 기준이 바뀔 수 있다. 그렇지만 양심을 개인과 집단의 이익 아래에 두어서는 안 된다. 어떤 총회장 회기에서건 잘못한 일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사과하는 신앙과 상식의 틀은 남겨놓아야 한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서 개선하면 된다. 그런데 일본 학자가 지적하듯 약속은 안 지키기 일쑤고 거짓말은 다반사로 하는 문재인은 그럴 생각은 않고 폭탄 테러하듯 자기 마음에 안드는 것은 ‘원전’이고 ‘입시 제도’고 쓸어 없애겠다고 한다. 제100회와 제101회 총회 결의에 따른 총회 은급재단(이사장 김선규 목사)의 합법적 납골당 매매계약을 회기가 바뀌자 김성태 사임서 위조 전결처리로 무효로 만드는 총회 법인국 박상범과 은급재단 이사 유장춘 식이다. 2020-03-20
    • G.OPINION
    • G.OPINION
    2020-03-20
  • 위기 시대 지도자 책임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 기자 박민균은 상대에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일방적 허위사실 작성 연 12프로 월 1프로 5900만원 고리 사채업 은급재단 18년 납골당 착취 제100회 총회 제101회 총회 결의에 따른 납골당 합법적 매매 계약 성사18년 총회 적폐 해소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 심각한 명예훼손 다 같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이 묘한 결과를 만든다. 합창은 내 목소리만 내서 되는 게 아니다. 각자 템포와 호흡이 다르기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조화로움을 이룰 수 없다. 튀어서도 안 되고 자신 없다고 입만 뻥끗거려서도 안 된다. 모두들 최선을 다해 하나 된 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합창단을 하거나 노래를 같이 부르는 이들이 쉽게 친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물 세계의 늑대 무리를 이끄는 대장 늑대는 이런 합창을 통해 모래알처럼 흩어지려는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고 한다. 잘 되는 조직에는 분열을 예방하고 방지하는 나름의 장치가 있다.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게 있다. 그것이 리더다. 총회 지도자들은 마음을 열고 여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부정과 불의가 득세하는 총회 은급재단은 박상범이나 유장춘이나 소재열 등의 간신 같은 사람들 말만 듣고 자기 확신 즉 편향된 생각을 갖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름 자기 확신이 생긴 겁 많은 총회장이 아주 편향된 생각을 ‘조국’ 사태에 대한 문재인처럼 납골당 매매 계약 건을 처리했다. 그 반증이 2019년 10월 15일자 기독신문 박민균이 취재해 게재한 기사이다. 18여 년 총회 적폐를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해소한 납골당 적폐 건을 다시 적폐로 회귀한 고리 사채업자 총회 은급재단 이사회의 10월 14일 회의 관련 기사였다. 104회 총회 파회 후 첫 번째 은급재단 이사회 전체회의가 10월 14일 총회회관에서 열렸다. 신임 이사장 김종준 목사는 사전에 총회본부 담당직원에게 납골당 관련 상황과 소송 진행 과정을 보고받은 듯, 중요한 안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결정했다. 현재 은급재단은 3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납골당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패소한 최춘경과 온세교회 김장수가 9월 6일 대법원에 상고(대법원 2019다272046)한 상황이다. 은급재단이 1심과 2심에서 완벽하게 승소했고, 현재 최춘경 측에서 판결을 뒤집을 특별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까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 은급재단 이사들은 재판 상황 보고를 받고 최종 승소할 때까지 계속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동업계약서를 어기고 납골기 판매금과 관리비를 분배하지 않은 최춘경을 형사고발하는 소송까지 검토해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101회기 은급재단 이사회에서 중단시킨 청산 및 명도 소송도 변호사와 검토해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3년 동안 진행하지 못한 최춘경 관련 안건들을 한꺼번에 처리한 것이다. 이사장 김종준 목사는 “은급재단의 납골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오늘 결정한 내용을 104회기에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편 장부 등 열람허용 가처분 소송을 바탕으로 10월 8일 상임이사 최우식 총무를 비롯해 은급재단 육수복, 유장춘 이사와 이민호 감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와 세무법인 티앤티 직원 등 17명이 납골당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예상한 대로 지난 2월 현장조사처럼 용역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막혀 납골당 내부에 진입을 하지 못했다. 은급재단 관계자들에게 고함과 욕설을 하면서 진입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육수복 이사가 강하게 대응을 하면서 물리적 폭력 상황 직전까지 이르렀다... 사무국 관계자는 “법원에서 장부를 열람할 수 있는 기간을 30일 주었다. 계속 납골당 현장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민균 그 과정을 잘 알지만 표리부동한 유장춘과 육수복의 활약상을 현장 취재 없이 기록한 납골당 기사 말미에 이름을 당당히 밝힌 기독신문 기자 박민균은 이 기사를 상대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일방적인 허위사실을 썼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해마다 바뀌는 총회장 주재의 추악한 은급재단과 18년 연 12프로 고리와 행정적인 횡포에 시달린 납골당 측과 제100회 총회와 제101회 총회 결의에 따라 합법적 매매 계약을 성사시킨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에 대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했다. 그에 대한 민 형사 상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더하여 김선규 총회장 이후 작금의 은급재단이 얼마나 추악한지 그 일면을 보자. 전계헌 때 2017년 9월 8일 제출한 김성태 이사 은급재단 이사 사임서를 은급재단 고위 관계자도 뜬금없다는 도달주의 운운하며 해가 바뀐 2018년 5월 법원에 임기 끝난 총무 김창수가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 법인 국장 대우 박상범이 기안해 올리고 김상윤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당사자 전계헌이 공모내지 방조 혐의가 짙은 그날 전결 처리했다는 사문서 위조 서류를 전 울보 총무 김창수가 법원에 2017년 9월 18일 이사회 당일 김성태 이사 출석 호명 실수였다는 진술서를 첨부해 법원에 제출했다. 그 서류의 동행사로 그들은 법원 업무를 방해하고 납골당 매매계약 이행 청구 1, 2심 소송을 이겨 총회 결의와 일반 상거래에도 역행하는 대법원 판결도 났다. 시민단체 ‘행동하는 자유시민’과 변호사단체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10월 16일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 단체는 또 윤석열 검찰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접대를 받았다고 보도한 한겨레신문·한겨레21 관계자 등도 이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보도내용과 편집 등을 보면 한겨레 측은 매우 의도적으로 기사를 최대한 퍼뜨리려는 의도가 명백하다”면서 “공직자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킴으로써 독자들이 그의 직무수행에 대한 신뢰와 공무원의 품위를 의심하게 했다”고 했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인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한 것”이라고도 했다. 한겨레는 검찰이 ‘윤 총장도 강원도 원주 별장 접대 대상에 포함됐다’는 진술을 윤씨로부터 확보하고도,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수사를 마무리했다고 지난 11일 보도했다. 이어 14일에는 윤씨가 대검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과 면담하며 ‘사업가 임모씨 소개로 윤 총장을 알고 지냈다’는 등 구체적인 진술을 했으며, 이런 내용이 조사단 최종보고서에 담겼다고 후속 보도했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사람들을 참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참된 사람이 아니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총회 지도자 자신이 믿음의 참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총회 정치의 첫째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참된 사람은 겸손하다. 참된 사람이 총회장이 되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훌륭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받들고 존중한다. 그렇게 하면 일반 총대들도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며 닮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가 되면 사람들이 차츰 훌륭해진다. 문재인 치하에서 국격과 국민적 자존심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국격 상실 위에 기독교의 사회적 가치관 빈곤까지 합쳐진 것이 국민 전체의 자부심을 병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지탱해야 할 사회윤리 질서마저도 위협받는 현실이 됐다. 나나 우리와는 상관이 없으며 책임은 제3자에게 있다는 기독교계의 지도자들과 정치인이 있다면 그들이 하나님과 대한민국의 배신자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3800여 년 전 바빌론 광장 비석에 새겨진 함무라비법의 중심 원칙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작금의 총회 지도자들과 은급재단 시레기 이사들과 달리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책임만큼 행동한다. 2020-03-14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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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4
  • 문재인 무리로부터 구해주소서
    류광수 목사 그의 목회 중심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는 성경의 증거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류광수의 효율적 전도를 위한 천사 동원령 주장을 한다. 왜냐하면 류광수는 천사 angel의 원뜻은 전령 messenger를 의미해 그에게 훈련받은 많은 전도자를 동원해 창세기 3:15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성경 말씀을 중점적으로 전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이런 천사 동원령 주장을 이단의 한 근거로 주장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류광수의 제자 김서권 목사가 목회하는 서초동 예수사랑교회에서 설교를 들어보고 그 활동을 살펴보면 사도행전에서 말씀하신 주님의 지상명령 전도 실천을 위한 그들의 신앙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나는 하나님의자녀 모든 문제 끝(창세기 3:15에 근거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치셨기 때문에). 셋째, 마귀야 가라. 반면 총회규칙과 결의를 기만하고 사법을 속인 거짓말쟁이 전 울보 총무 김창수가 류광수 이단 정죄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데 그의 총회 총무로서의 행적에 비해 이율배반적이다. 어쨌든 이단이라고 정죄한 류광수와 교단 정치꾼들을 비교해보면 정말 누가 이단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어쩜 그렇게 길자연을 쏙 빼닮은 교단 정치꾼들의 사역 중심이 거짓의 아비 마귀(요 8:44)를 따라 거짓과 허울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단 정치꾼의 말을 들어보면 순간적으로 그 당시는 그럴듯한데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기에 그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절절한 고백이 없고 재판국 판결과정이나 기독신문 외 기자 입회를 회의 등에서 드러난 그들의 행동과 말은 신앙을 벗어난 사리사욕의 위선과 거짓으로 넘친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태를 살펴보면 거짓의 아비 마귀 자식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요즘 영화 밀정의 주인공 모델이자 북한의 6.25남침 주범 김일성 측근 김원봉을 변호사 출신 대통령 문재인이 국군 뿌리라 주장했다. 그런 문재인의 하야를 용감히 주장하는 전광훈이 우리 교단을 이단이라 규정하는 망언을 했다. 그 망언에 기관지 기독신문은 안 썼다, 그런데 그들의 심정을 이제 이해하게 됐다. 총회 부패한 정치꾼들이 거짓의 아비 마귀를 닮아 거짓을 일삼는 이단 성향을 비난할 수 없는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에 얽힌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위 교계 언론계의 단면이 이런 지경이니 거짓의 아비 마귀를 어떻게 경계하고 교계 부정을 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총신을 어엿이 졸업해 지나친 전도 열정과 사소한 흠결 탓에 전 울보 총무 김창수의 고발에 류광수를 이단으로 몰았다는 정황이 있다. 그런 류광수는 우리 교단에서 배격당한 그 덕에 그 자신 교회의 성장은 물론이고 어엿한 한 교단을 일궈 우리의 이단 정죄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를 향해 맹렬한 전도를 펼치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103회 총회 2017년 9월 18일 20년 적폐 해소를 위한 김선규 제101회 총회장의 제100회 총회 결의에 따른 합법적인 납골당 매매계약 위업을 명품가방 수수 무임승차 제102회 총회장 전계헌이 거부하는 난동을 부렸다. 그럭저럭 또 해가 바뀌어 진행하게 된 납골당 매매계약 이행을 위한 소송을 막기 위해 전 울보 총무 김창수가 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은급재단 이사 김성태 장로 사임서를 총회장이고 은급재단 이사장인 김선규 목사에게 사전이든 사후든 보고 없이 전결 처리한 사문서위조 의혹의 서류를 전 울보 총무 김창수의 이름으로 법원에 제출했다. 그것은 거짓의 아비 마귀(요 8:44)를 따르는 마귀 자손의 지시나 공모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의혹이 짙다. 우리가 거짓을 말하거나 행해서 안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손해나 심지어 순교도 무릅쓰는 신앙을 생명의 규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 간에도 금해야 될 행위를 거룩한 총회가 급기야 국가의 법원을 상대로 위조서류를 냈으니 그 신앙과 양심을 어떻게 감당하고 유지할 것인가. 작금의 문재인이나 총회 부폐 패거리의 말이나 행위를 보면 그들이 거짓의 아비 마귀 자식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우리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전광훈의 망언대로 이단인지 아닌지를. 그래서 우리가 이단이라는 생각이 들면 류광수나 전광훈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류광수와 우리는 다를 바 없는(류광수는 반대하겠지만) 이단인 것이고 우리가 이단이라는 전광훈의 망언이 맞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재인 반대 운동을 펼치다 선거법위반 명목으로 영어의 몸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외침대로 2020년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나님 당신을 부인하고 법도 무시하고 자행자지하는 문재인 무리가 설치고 시진핑의 우한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이 하나님의 나라 국민을 도와주시고 구원해주소서. 2020-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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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3
  • 신천지와 총회 은급재단
    연 12프로 고리 불법 사채업 운영자 겸 불법 사문서위조 단체 총회 은급재단이 최춘경 권사 측에 제소한 '납골당 직무정지 및 직무대행자 선임 가처분 직무집행정지및 직무대행자선임가처분'(대법원 2019마6646)이 2020년 2월 7일 대법원 기각 판결이 났다고 한다. 이 결정은 향후 총회 은급재단의 납골당에 대한 불법 고리 사채 비리와 불법에 코로나19처럼 먹구름과 번개를 동반하게 될 것이다. 많은 국민이 신종 폐렴에 대해 불안해하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들이 매일 보도된다. 대체 이 숫자들의 의미가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 한 명 한 명 서로 다른 사람들이다. 나이·병력 등 수많은 요인이 함께 발병 확률 및 감염 위험을 좌우한다. 그러니 숫자 때문에 너무 불안해하지 말자. 우리의 면역 시스템에도 좋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마음과 태도다. 40대 이상은 입장을 거절하는 "연령 차별주의" 호스텔에선 배낭족들이 "여행자의 세 가지 질문"을 서로 던진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 어느 곳에서 오는 길인가. 어디로 갈 예정인가." 인생은 흔히 여행에 비유된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알 수 없으며 그 끝도 모른다. 누구나 생이 시작된 순간부터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이 찾아온다. 그런 세상 옛날에 우리 총회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다. 조선 왕 선조의 장남 임해군은 악명 높은 사이코패스였다. 백성들의 재물 약탈을 일삼고 노비나 궁녀들을 내키는 대로 겁탈하고 죽였다. 애첩을 빼앗기 위해 수하들을 화적떼로 위장시켜 특진관 유희서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특진관은 왕의 고문격인 데다 유희서는 영의정을 지낸 유전의 아들이었다. 조정이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다. 형조와 포도청의 공조수사 결과 배후에 임해군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해군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잇달았지만 선조는 귀를 막았다. 그 사이 포도청에서 수사 받던 범인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임해군은 무고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선조는 기다렸다는 듯 승정원에 재조사를 지시한다. 승정원이란 왕의 비서실 아닌가. 선조의 뜻대로 포도대장 변양걸과 유희서의 아들 유일에 대한 문초가 이뤄지고, 이들이 장을 맞고 유배에 처해지는 것으로 결말이 뒤집히고 만다. 400여 년 전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조국 사태와 은급재단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와 총회장 공모내지 지시 혐의가 오버랩 되는 까닭이다. 사건이 뒤집힌 뒤 영의정 이덕형은 끝내 참지 못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소를 올렸다. 그러자 선조는 발끈해 비망기를 내린다. 비망기는 임금이 의중을 글로써 밝히는 정치행위다. 사관은 실록에 이를 기록한 뒤 평을 남겼다. 그것이 참으로 서늘하다. 결론으로 대신할 만해 길지만 인용한다. “사신은 논한다. 예부터 충성스럽고 곧은 말 하는 선비는 대부분 배척당했지만 오늘날처럼 심한 경우는 없었다. (...) 성상께서 가상하게 받아들여 용납하는 분부를 내렸다면 천심을 돌리고 여론을 통쾌하게 해 국가 형세를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박하게 자존심만 내세우고 배척하면서 종이 가득히 반대하는 말만 낭자했다. (...) 이런데도 과연 임금의 말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주변의 방자함을 단속하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할 수 있겠는가. (...) 언로를 막고 구차하게 침묵을 지키는 것을 장려함으로써 사론을 위축시키고 국세를 날로 깎이게 하였으니 신은 국가가 필경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다. 그래서 연초의 흰 무지개가 큰 재변이 아니라 오늘의 비망기가 곧 나라를 망칠 분명한 증거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선조 37년 3월 27일) 총회 은급재단이 국장 박상범과 전 총무 김창수 주도의 김성태 이사 사임 전결 처리 위조사문서로 소송에 이긴 것을 정당시했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위조 사실 자체의 인정도 거부했다. 더더욱 전국 교회와 총대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그 사실을 은폐하고 기관지 기독신문에 그 사실을 허위 과장까지 했다. 우리는 그동안 세상과 교계 할 것 없이 얼마나 성장 신화에 매몰돼 살아왔던가. 물질주의와 맘모니즘에 정신과 영혼을 팔아버린 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잡식동물이 된 인간 군상을 우리는 세상 권력과 교권을 쥔 사람들의 민낯을 통해 목도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는 맞춤형 심리상담 설문조사 등으로 마음을 얻으며 접근한다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상처가 많은 젊은이들이 속수무책이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신천지에 빠지는 사람은 대부분 기존 교회에 비판적이고 ‘말씀’ 공부에 목마른 기성 신도들이다. 7개월간 하루 세 시간씩 주 4회 교리 공부를 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신천지 입교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 같은 종교적 열정을 교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신천지 청년들처럼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세태를 위해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다시금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실로 그러하다. 모든 죄의 근원은 탐욕이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 같은 탐욕이 타력에 떠밀려 인생을 추락시키는 원흉이다. 창조의 하나님을 모르면 자연의 이법에 순응하는 낙엽 하나 보면서라도 인격의 향내 나는 정직과 진실과 거룩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나라나 총회나 망하는 확실한 증거는 거짓이 횡행하는 것이다.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런 세상에 대해 말씀환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딤후 4:1​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짜 금장 시계를 찬 이만희의 거짓에 미혹 당하는 자들 같은 총회 은급재단 이사들은 미국 CIA 슬로건이기도 한 말씀을 되새기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2020-03-12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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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2
  • 더굳뉴스 창간 7년
    마스크 사려고 끝없이 늘어선 행렬, 격리된 사람들,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 난민처럼 거부당하는 한국 여권, 그리고 도시마다 휑한 거리... 한국은 지금 코로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이 초래하는 궁핍과 갈등에 숨이 막히지만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나 해보자면 전쟁은 정신력을 단련시킨다는 사실이다. 2020년 3월 5일 오후 1시 납골당 관련 수사 직무유기로 수사관을 고소한 사건의 고소인 진술을 위해 다른 경찰서 수사관 앞에 앉았다. 햇수로 7년 전인 2013년 더굳뉴스를 창간하고 제98회 수원 라비돌 총회 현장에 빌린 카메라를 들고 처음 발을 디뎠다. 그때 2020년 3월 6일 공산주의 국가 대도시 우한 촉발 코로나바이러스 창궐해 하 수상한 시절 더굳뉴스 주필(主筆)로 이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3월 6일 아침 책상 앞에 앉으니 ‘내가 과연 이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만 보던 역사의 무게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일본에 유학하여 공부하다가 귀향을 앞둔 시점에 항일운동 혐의로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중 1945년 2월에 옥사한다. 그의 유해는 고향 북간도의 용정(龍井)에 묻혔다. 주기철(1897년~1944) 목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순교했다. 자기 희생을 통한 신앙실천을 강조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 설교로 기독교 신앙실천과 배일사상 그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했다. 복역 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48세에 순교했다. 겨울의 감방 온도는 보통 영하 20도 정도였다.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당시 이들에게 어떤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기 어렵다. 책상 앞에 앉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기독교 교계는 물론 우리 교단에서도 아주 약한 더굳뉴스라는 기독교 언론이 얄팍한 7년째를 맞는 날 논설 책임자로서 신문과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한다. 신문은 멋진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인을 모으는 설교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대들을 솔깃하게 하는 소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총대들이 반기고 좋아할 내용만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회 실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필자가 7년째 쫓아다닌 것, 지금도 혼자 매일 찾으러 다니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찾기 힘든 것,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닌 것, 왜 찾아다니느냐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찾았더니 믿음과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다. 찾아내 보니 고약한 자를 분노케 해 고소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이나 세력의 증오를 사는 것 때로는 총대의 요구와 다른 것, 어떤 경우에는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事實·fact)이라는 것이다. 더굳뉴스의 7년은 한 줄로 줄여 말하면 믿음에 근거한 사실을 찾다가 성공하거나 실패한 기록이다. 한 줄만 덧붙이자면 그러다 박수받고 비난당한 기록이다. 대부분의 사실은 숨겨져 있다. 몇 겹 껍질 아래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기자 생활 전부는 이 껍질을 벗기는 일이었다. 성공도 있었다. 하지만 못 찾아낸 것, 잘못 찾은 것이 더 많았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납골당 같이 백일하에 드러나지만 곁길로 흐르는 사실도 있다. 누구나 보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믿음에서 벗어나거나 믿음을 왜곡하는 권력의 위압 때문일 수도 있고 총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때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신문으로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사실로 위장한 것들과 벌이는 싸움이다. 위장 사실 가짜 사실은 인터넷을 타고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우병 괴담, 천안함 괴담, 사드 전자파 괴담, 수돗물 괴담, 미네르바 괴담, 총회장 금권 선거, 총신대 총장 선거 담합, 납골당 관련 가짜 뉴스 등 위장 사실은 수많은 총대를 불신의 늪으로 몰고 다닌다. 대부분 뒤에는 총회 정치 세력이 있다. 언론이 괴담을 만들기도 하고 총대 규모가 커지면 다른 언론들이 편승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로 일부 총대들은 실은 성경이 지적하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경우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화나게도 한다. 이익을 챙긴 자에게 좋으면 사실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 한다. 총대가 솔깃해하는 사실은 허구인 경우가 더 많다. 정말 목말라하는 총대가 아무도 없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성경적 사실은 그러나 결국 교회와 총회와 역사를 움직인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사실과 다른 길을 가는 총회가 맞을 결과는 명백하다. 사실은 전투에서 패할 수는 있어도 전쟁에서 지는 법은 없다. 어둠이 빛을 덮을 수 없고 마귀의 거짓이 하나님의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반기지 않아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이 사실을 찾는 일은 힘들지만 보상도 없다. 그래서 언론이 없으면 사실도 없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총회를 위한 나의 사명(使命)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른 소명(召命)이다. 필자의 더굳뉴스에 대한 소망은 더굳뉴스에 났으니 마음엔 안 들어도 사실은 사실일 것이라고 총회 총대와 소수라도 독자들이 믿는 신문이고 싶다. 물론 지금은 못 미친다.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1㎝씩이라도 하나님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려 한다. 마라톤의 40㎞ 지점을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라고 할 때 세상의 저력은 막판에 발휘하는 뒷심 뚝심의 의미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저력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진짜 힘이라는 의미이다. 평소 갈고닦은 힘, 꼭 필요할 때 발휘되는 힘,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 본연의 힘이라는 말이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건 집단이건 결정적 순간에 발휘하는 힘만큼만 힘이 있다고 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근본 힘이 총회와 총대의 저력이며 위기의 순간에 그 저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이 총회 지도자의 자격이자 책무이다. 창간 7년째 되는 해에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약속이다. 그러기 위해 늘 이 말씀을 되뇐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2020-03-07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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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7
  • 은급재단과 돼지
    왕을 위한 정치술을 설파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년 5월 3일 ~ 1527년 6월 21일)가 500년 뒤 2020년 3월 3일 공산주의 독재자에 목마른 문재인의 우왕좌왕을 예견한 듯 말했다. "질병은 초기에는 진단하기 어렵지만 치료하기는 쉽고, 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진단은 쉬우나 치료가 어려워진다.“ 우울한 비관론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근거 없는 낙관론은 세상을 큰 혼란에 빠뜨린다. 중요한 건 현실을 직시하는 판단력이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자. 그리고 기도하자. 나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게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지키는 일이다. 2016년 7월 13일 총회회관 2층 여전도회관에서 열린 제100회 총회 실행위원회(위원장 박무용)에서 몇 안 되는 총회 법학박사 가운데 한 사람 유장춘이 말했다. “법적으로야 잘 아시겠지만 은급재단 이사회에 (납골당 매각에 대한) 법적 권한이 있고 여기는 의결 총수로 충분히 해야 되고 (결의해 주면) 일을 급속도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여론의 문제고 법적인 문제는 은급재단이사회가 팔면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여론을 충분히 청취해야 되고 총회결의는 이미 손해를 보더라도 매각하라는 것이 기본 결의 내용입니다. 여론을 청취한 다음에 이것을 진행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은 최춘경 권사 측에 대한 납골당 매각을 제100회기에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리고 제101회 총회(총회장 김선규 목사)에서 격론 끝에 납골당 문제는 제100회 실행위원회 결의대로 매각 진행하도록 결의가 됐다. 김선규 제101회 총회장은 1월 23일 총회회관에서 신년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 해결 의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그 내부에 관계하고 있는 분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나름의 해법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컨트롤(조정) 가능한 문제들로 보고 있습니다...” 은급재단 이사회(이사장 김선규 목사)는 제102회 총회 개회일인 9월 18일 낮 12시 익산 전복궁 식당에서 전체이사회를 열고, 벽제 납골당을 27억원을 최춘경 씨에게 매각하는 건을 표결에 붙였다. 이날 이사회에는 감사 2명을 제외하고 13명 이사 전원이 참석했다. 표결 결과 3분의 2에 해당하는 9명이 매각 찬성 의사를 표시해 최종 매각이 결정됐다. 앞서 은급재단은 8월 11일 최춘경 권사와 27억원 매매계약서를 작성할 때 은급재단 이사 3분의 2(9명) 동의를 계약 단서조항으로 명기한 바 있다. 2017년 9월 21일 제102회 총회 넷째 날 오전 은급재단 보고 때 제101회 은급재단이사회의 납골당 매매 계약 수용 여부 논란이 일자 전계헌은 말했다. “(제92회) 총회는 어떠한 손해가 있더라도 팔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명한 김선규 은급재단 이사장이나 전 납골당 조사처리위원장을 역임한 박춘근 목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 부당성을 우려하는 기사까지 보냈지만 그는 무시하며 ‘ㅋㅋ’ 문자로 다음 날 드러낼 흑심을 암시했다. 그는 충성 측을 편들고 총회 결의를 어기는 김기철 목사와 유장춘 박사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보고는 기각되고 총회 18년 적폐를 제100회 제101회 결의에 따라 처리한 이사장과 이사들에 대한 유장춘과 이남국 주도의 조사처리위원회가 결성됐다.2018년 1년의 조사결과 아무런 혐의도 발견하지 못했을 뿐안 아니라 그들이 소송에서 제출한 김성태와 강진상의 도달주의 사임 사유가 2017년 9월 18일 은급재단 이사회 결의에서 효력이 없다는 사실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유는 그 당시 그런 서류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총무 김창수 법인국 직원 박상범과 김은미 등이 2018년 4월 민사법원에 증거로 제출하기 위해 비밀리에 은급재단과 공모해 꾸몄고 그 조사처리위원회도 공모했거나 묵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 마땅할 탐욕의 돼지들이다. 2017년 8월 11일 벽제중앙추모공원 매매계약서의 제1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기하고 있다. 1. 갑 또는 을이 본 계약상의 내용에 대하여 불이행이 있을 경우 그 상대방은 불이행한 자에 대하여 서명으로 이행을 최고(재촉)할 수 있다. 단 그 이행 최고가 있음에도 상당한 기한 내에 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라도 제9조(계약의 해제 등)에서 계약해제사유로 정한 것 외에는 본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2. 갑 또는 을이 제9조 각 호 사유 외의 사유로 본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그 이행의 최고를 받은 날부터 이행할 때까지 매매대금 전액의 1000분의 1(270만 원)을 매일 이행 강제금으로 지급하여야 한다. 벽제중앙추모공원 매매계약의 을인 최춘경 권사 측은 상기의 계약 조건에 따라 27억의 1000분 1인 270만 원을 매일 이행강제금으로 지급하라는 요구와 함께 계약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총회 결의를 지키기 위한 각고(刻苦)의 산물 은급재단의 납골당 매각보고를 무임승차 제102회 총회장 전계헌은 기각하고 납골당 16년 적폐 해결하라는 총회 결의 역행하는 흑심(黑心)을 드러냈다.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의 기사 역시 총회 회관 관리책임자인 박상범 국장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지 전게헌의 은급재단이사회처럼 계약해지 된 성결교 충성교회 측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기독신문은 2019년 3월 11일 자에 박민균 기자의 다음의 기사를 게재했다. 김성태 장로 “사실만 썼을 뿐 해가 되는 행동 안했다” 현직 은급재단 이사가 벽제중앙추모공원 매각소송에서 상대편에 유리한 사실확인서를 작성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은급재단 이사회(이사장:이승희 목사)는 3월 7일 총회회관에서 제3차 이사회의를 열었다. 안건은 벽제중앙추모공원(이하 납골당) 관련 소송사건을 점검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내용이었다. ... 은급재단이 진행 중인 중요한 소송이 또 있다. 바로 납골당 소유권이전등기(2018나2064451) 소송이다. 은급재단은 전임 이사장이 상대에게 유리한 사실확인서를 써주는 등 불리한 상황에도 작년 11월 1일 1심에서 승소했다. 최춘경과 온세교회가 항소해서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오는 3월 28일 2차 변론을 앞두고 소유권이전등기(매매계약 이행) 소송에 또 빨간불이 켜졌다. 이사장 이승희 목사는 “상대방에 유리한 서류를 써준 이사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서를 써준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승희 이사장은 해당 이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사들은 크게 분개했다. “이전에도 이런 행위를 한 이사가 있다. 정관에 의거해 공식적으로 정직을 시켰다. 징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사들은 전임 은급재단 이사장도 상대방에게 유리한 사실확인서를 써줘 소송이 힘들었던 점을 상기하며, 2심 재판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에서 해당 이사의 징계는 논의하지 않았다. 취재결과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사는 김성태 장로로 확인됐다. 김성태 장로는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김장수 목사가 검찰조사를 요청해서 거부했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서를 써달라고 해서 써준 것일 뿐”이라며, “진술서를 쓰기 전에 은급재단 담당 국장에게 연락해서 허락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양심에 따라 사실을 썼을 뿐, 은급재단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현 은급재단이사회 이사장 이승희 목사와 이사들은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재단이사장이 제92회 총회와 제100회 총회 결의에 따라 벽제추모공원 매매계약서의 계약 내용의 효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워낙 신용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다시 한 번 그 계약서의 1항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한다. 2017년 8월 11일 벽제중앙추모공원 매매계약서의 제10조(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기하고 있다. 1. 갑 또는 을이 본 계약상의 내용에 대하여 불이행이 있을 경우 그 상대방은 불이행한 자에 대하여 서명으로 이행을 최고(재촉)할 수 있다. 단 그 이행 최고가 있음에도 상당한 기한 내에 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라도 제9조(계약의 해제 등)에서 계약해제사유로 정한 것 외에는 본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최춘경 권사 측의 계약해제사유는 잔금을 치루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는 게 계약의 상식이다. 게다가 그 계약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계약금 2억 7천만 원을 지급해 은급재단이 영수했고 최춘경 권사 측은 27억의 계약 잔금을 언제라도 치를 준비까지 해놓고 있다. 더 나아가 2심에서 최춘경 권사 측에 패소해 계약 강제이행금 징수에 들어가면 빈약한 은급재단의 재정에 막대한 손해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 민사 소송은 거짓 전결처리 서류와 비양심적인 거짓 사실확인서와 뒤늦게 소정한 정관을 참고한 민사재판부에 기각됐다. 양심을 속이는 총회 은급재단 관리직원 박상범 김은미와 김성태와 유장춘 이사는 믿음의 진주를 밟는 돼지들이다. 지금까지 전국 교회는 이런 총회 헌법과 성경에서 크게 벗어난 비양심적이고 비신앙적인 총회 은급재단의 ‘무능과 무책임의 표본’을 본 적이 없다. 총회 은급재단의 부도덕과 무능 논란을 불식시키고 싶다면 제103회 총회 감사부는 부장 최병철 장로가 아무리 충성교회 측과 끈끈한 박상범 장로와 친하더라도 총회 은급재단에 대한 중간 감사를 전국남전도회 수준으로는 해야 전국 교회와 총대의 신뢰를 회복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총회 감사부는 늘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구태를 벗어야 했다. 그러나 역시나 그러지 못했다. 미국 뉴욕의 월 스트리트도 돼지와 관련이 있다. 1653년 뉴욕 맨해튼 주민들은 돼지 떼의 난입을 막기 위해 벽(wall)을 세웠고, 이후 벽을 따라 거리가 형성되면서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총회도 돼지 떼처럼 무리를 지어 총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부패한 자들을 막기 위해 감사의 벽(wall)을 세워 ‘월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얻어야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지도자가 기회를 인식하고 포착할 수 있으며 상대보다 생각이 앞서게 되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運)은 모든 전략전 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운 때문에 최대한 세밀하게 세운 계획이 완전히 뒤집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량 있는 지도자는 가능성이 기회로 변하는 때를 인식하고, 경쟁자나 상대방보다 더 빨리 반응하여 행운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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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3
  • 시진핑과 이만희의 악마
    위기에 몰려 악마 불러낸 시진핑 이만희적그리스도이고 반 기독교 세력의 머리들책임 회피한 악마는 거짓말쟁이 그들 아비 독일 철학자 칸트가 말했다. “시는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예술 장르다.” 다행히 우리는 출근길 거리에서도 시 글줄을 접할 수 있을 만큼 시가 대우받는, 어쩌면 흔한 나라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외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광화문 글판 말이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에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지금 걸린 문안은 윤동주의 동시다. 슬그머니 번지는 미소는 희망을 부른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 글판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척박한 땅을 적셔온 시원한 찬물 한 그릇이다. 기적 같은 그 한 사발 받아들고, 힘내자, 총회.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윤동주를 사랑하는 시인 소강석 부총회장도 있지 않은가. 기술의 발달은 눈부시다. 하지만 철학까지 담보하진 않는다. 마이클 센델이 예로 들었던 것처럼 다수의 성인을 구하는 게 정의인지, 한 명의 어린이를 구하는 게 정의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결국 인간의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신도들 중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2020년 2월 21일 신도들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특별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방송(CBS) 등에 따르면 그는 편지에서 "금번 병마(病魔)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짓"이라며 "이 모든 시험에서, 미혹에서 이깁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라며 "전도와 교육은 통신으로 합시다"라고 말했다. 개신교계에서는 신도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쓴 내부 단속용 편지가 유출된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신천지 이만희처럼 아니면 이만희가 시진핑처럼 둘러댔든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생물로 밝혀지고 이름도 가진 “바이러스는 악마”라며 “반드시 악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에 대처하는 전근대적 상황 인식이 명징하게 드러났다. ‘악마’는 근대의 아침이 밝아오기 전 힘없는 백성을 공포에 떨게 한 광신(狂信)의 상징이다. 15세기 말 교황 이노켄티오 8세가 인증한 마녀사냥 지침서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사람”을 마녀로 규정했다. 재앙이 발생하면 운수 사나운 사람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시진핑은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반(半)생명체인 바이러스를 ‘악마’라고 명명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인민과 유리된 중세의 권좌로 숨어버렸다.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한 현장에도 나타나지 않아 민심과 멀어진 황제임을 실증했다. 2003년 사스 사태 때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서 지휘하던 후진타오와 대비된다. 세계 여론은 “시진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언비어는 바이러스보다 나쁘다”라며 쉬쉬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가장 큰 책임은 완벽한 1인 권력체제를 거머쥔 시진핑에게 있다. 그런데도 ‘악마’를 소환해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 소재를 실종시키고 무오류의 존재로 남으려 한다. 대안의 집권세력이 없는 일당제는 이렇게 위험하다. 우환의 재앙을 감지하고 최초로 문제제기를 한 젊은 의사는 경찰에 체포돼 반성문을 썼고, 진료 중 감염돼 사망했다. 억압적 체제가 초래한 비극이다. 감염자가 발생한 지 50일이 넘어서야 시진핑은 처음으로 총력대응을 촉구하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우한에선 4만 가구가 함께 식사하는 만인연(萬家宴)이 열리고, 봉쇄 전에 500만 명이 연휴를 맞아 타 지역으로 빠져나간 이후였다. 우한 역병은 초기 대응이 잘못돼 지구적 재앙이 됐다. 2002년 사스 사태 때도 중국은 5개월이 지나서야 발생 사실을 인정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우리를 죽이는 건 박쥐가 아니라 정부가 강요한 침묵”이라며 분노한다. 독재국가 중국의 심리와 행동은 미숙하고 그 비용을 전 세계가 치르고 있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까지도 자국 대변인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는데 사무총장은 “중국 정부의 대처로 신종 코로나가 해외로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라고 우긴다. 미국이 예산지원을 줄인 틈을 파고들어 돈의 힘으로 WHO를 장악해서 벌어진 소극(笑劇)이다. 국제기구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흔든 중국의 탐욕은 전 인류에게 독이 될 것이다. 중국은 자국 내 70개가 넘는 도시를 봉쇄하거나 주민의 이동을 제한했다. 이런데도 한국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우습게 알면서 “한국은 운명공동체”라고 한다. 대사의 오만방자한 언행은 19세기 조선을 속국으로 취급하던 위안스카이와 닮았다. 문 정권은 총선 전에 시진핑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저자세를 취했다. “운명공동체” 발언도 문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미국은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중국의 맹방인 북한과 러시아도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했다. 한국은 관광 목적의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마저도 발표 2시간 만에 번복했다. 중국이 그렇게 무서운가. 나를 무시하는 상대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은 노예가 되는 길이다. 중국은 힘이 커지면 은혜를 잊어버린다. 한국은 중국이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천안문 사태로 고립됐을 때 손길을 내밀어 국교를 맺은 나라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자 4년 만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했다. 미국·일본·EU는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핵 위협에 맞서 사드를 들여왔다고 경제보복을 했다. 그런 나라와 운명을 함께할 수는 없다. 악마를 소환해도 역병은 소멸되지 않는다. 중국은 전근대적 주술이 아닌 민주주의와 과학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감염증 정보는 즉시 투명하게 공개해 전 세계가 대처하게 해야 한다. 성경과 그것에 근거한 총회 헌법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악마 소행 운운한 이만희와 시진핑이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자들임을 그들의 거짓말과 위선을 통해 그들이 적그리스도이고 반 기독교 세력의 머리들임을 확실히 깨우쳐야 한다.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뽑아 세운 문재인이 거짓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만희나 시진핑이나 김정은 등과 같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문재인은 시진핑과 김정은을 한국에 불러들이지 못해 애걸복걸 안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2020-02-23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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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4
  • 개혁과 통일
    2016년 11월 8일 미국 대선에 나온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장로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감리교 신자였다. 신앙도 없고 정신도 없는 문재인도 대권을 쥘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아직 대놓고 무신론을 표방하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1546년 2월 18일)가 종교개혁을 촉발하지 않았다면 장로교도 감리교도 없었을 것이다. 2020년은 종교개혁 503주년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오후 2시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의 대문에 면죄부(indulgence)의 문제점을 지적한 ‘95개 논제’를 붙였다. 하나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 면죄부를 ‘망치로 붙였다’느니 ‘접착제로 붙였다’느니 하는 설과 함께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루터에게 불굴의 용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루터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라고 논제(제1조)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복음의 재발견을 면죄부 문제에 적용하여 “교회의 참 보고(寶庫)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제62조)이라고 역설하면서 면죄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님을 천명하였다(제68조). 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루터는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십자가 신학’을 발표하여, 스콜라주의 영광의 신학 즉 힘과 정복을 추종하던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학을 비판하였다. 그의 십자가 신학은 인간은 구원을 받을만한 도덕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던 영광의 신학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을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강조한 은혜의 신학이기도 하였다. ‘십자가의 신학’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진노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하나님의 선물과 복은 십자가 아래, 말하자면 ‘불행과 재난’ 아래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의 눈에는 거짓(Luge)으로 보이고 세상의 거짓은 진리로서 드러난다. 십자가 신학의 사고에 의하면 하나님은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여서 열광하고 설교자가 스타처럼 청중의 환호성을 자아내게 하는 설교단에 계시기보다는 인간적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소수의 무리들이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말씀을 듣는 세상적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설교단에 임재해 계신다. 설교자가 마치 황제처럼 청중들을 종교적 열광으로 몰아가고 번영과 성공을 나누어주는 설교단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을 지닌 소수의 청중에게 재난과 어려움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진실한 설교단에 하나님은 임재해 계신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십자가의 낮아지심과 수치 속에서 인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그의 영광과 존엄성 속에서 인식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길이다. 영광의 신학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 14:8) 라고 간청하는 빌립의 요구에 상응하는 신학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말씀하신다.” 용기는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제국과 교회를 상대로 싸운 루터는 어떻게 그의 선배들과 달리 화형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그리스도교인은 하나님 섭리(攝理)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속인들의 눈은 다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종교의 생존과 부흥을 결정하는 것은 국내·국제 차원의 정치 상황이다. 루터교는 유럽 종교전쟁(1524~1648)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의 이면에는 종교뿐만 아니라 민족주의로 무장하기 시작한 국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럽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년)와 베스트팔렌조약(1648년)을 통해 종교의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스도교는 종교의 자유라는 원칙과 가치의 보호 속에 유럽의 팽창과 함께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도달했다. 2016년 말 발표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는 종교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신자 수에서 개신교(967만6000명, 19.7%)가 불교(761만9000명, 15.5%)를 앞서 1위로 발표됐다. 종교가 없는 국민(56.1%)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는 종교 인구가 차츰 줄고 있는 유럽형 종교 지형을 닮아가고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유럽에서처럼 젊은이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다. 무신론이 유입돼 종교 지형에서 한자리를 확보했다. 역사를 따져보면 다른 측면이 떠오른다. 1945년 광복 당시 2,500만 인구 중 종교가 있는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조선왕조와 함께 붕괴한 유교가 남긴 종교 공백을 일제강점기부터 개신교·불교·가톨릭이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종교의 자유가 중시되는 미국의 영향권에 우리나라가 포함된 덕분에 모든 종교는 친종교 환경을 누렸다. 보수정권이 진행한 산업화 또한 종교의 급성장에 유리했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 발표 이후에 1위 자리를 내준 불교와 자체 집계(565만 명)와 비교했을 때 통계청 수치(389만 명)가 너무 낮은 가톨릭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여진이 좀 있다. 하지만 종교는 부침을 거듭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한때 융성하다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게 종교이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15일 총선을 앞둔 종교개혁 503주년은 개신교에 새로운 개혁을 요구한다. 종교개혁 505주년과 한국 개신교 선교 135주년을 맞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도 개혁이다. 물론 선교·전도를 열심히 하고 바르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신앙인들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개혁은 정치 상황과도 맞아야 한다. 개혁은 통일 친화적이어야 한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정치 흐름을 타면 흥하고 못 타면 쇠퇴할 것이다. 언젠가는 북한이라는 ‘거대 종교 권역’이 열린다. 통일 전후로 종교 순위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각 개신교단이 할 일이 많다. 뭔가 역할을 찾아내면 살고, 못하면 밀릴 것이다. 국가와 정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종교계 1위 개신교단이 일정 부분이라도 김일성 일가 독재 폭정에 시달린 옛 북한 주민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통일준비위원회’(위원장 김재호 목사)는 항상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루터교를 믿는 미국 병사들이 많이 참전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이겨낼 수 있는 병력 자원을 5대호 지역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마침 그 지역은 루터교 신자들이 밀집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종교계에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좌파 정권의 무리한 우파 적폐 청산과 무모한 장기 집권 꼼수 밀어붙이기가 야기한 ‘분노의 정치’에 기독교가 해답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루터는 ‘분노의 사도’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나는 분노했을 때 기도도 더 잘하고 설교도 더 잘한다.” 이 말은 2020년 한국에도 묘한 울림이 있다. 어느 쪽 입장에 속하건 촛불 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감정을 대표하는 것은 분노다. 통일 이후에도 남한 출신이건 북한 출신이건 극심한 분노를 느끼게 될 정국이 들이닥칠 수 있다. 하루빨리 분노를 넘어 한국을 개혁하는 프로세스가 시작돼야 한다. 우리 개혁주의 교단의 활약이 필요한 시대다. 지도자에겐 책임감 못지않게 반응성도 중요하다. 최근 유행하는 농담이란다. 청와대 뒷산이 ‘적폐청산’, 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조로남불’이라고 한다. 권력은 애정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경멸당하거나 미움받는 일을 경계해야 하고 때론 과감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제104회 총회엔 그리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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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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