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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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김서권 목사 예수전도
    전도는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데려오는게 아니다 여러분 몸에서 그리스도라는 영향력이 나타나야 성찬식 빈 잔은 주님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강대상 슬리퍼 한 짝도 주님을 사랑하였다 금식으로 버림받은 접시도 그 낭만적 사랑을 주님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무덤은 주님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그들 모두 긴 그림자를 남기고 예수는 그리스도 사랑으로 되돌아갔다 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사는 내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런 까닭에 몇몇 국어학자들은 ‘살다’와 ‘사람’을 같은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행복한 삶은 오래된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인연을 곱게 이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서초동 예수사랑교회 김서권 목사가 입을 열었다. "전도는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데려오는게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영향을 줘야 합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라는 영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흑암 권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겁니다. 요셉은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겁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는 유일성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거에 굉장한 신학과 교리를 알고 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빌립보서 3장 8절 말씀대로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다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최고로 여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목사는 나 중심으로 안 살아요. 육체 중심으로 살지 않아요. 나는 교회당 건축하려고 하지 않아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전 세계로 퍼지게 할 겁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여러분이 이웃을 살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결론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기도는 한가지입니다. 여러분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으면 부요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바로 세 가지를 꺾어버립니다. 나는 이것을 오직 할 것이다. 이 사람만이 하나님의 청빙을 받으리라. 이 사람에게는 히브리서 1장 14절의 천사들이 수종을 들 것입니다. (회중 아멘)" 미래는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세상에 닿아 보면 알게 된다. 정말이지 온 마음을 뒤흔들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거나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목련이 풍성한 봄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으면 부요하게 되고 변화되니' 김서권 목사의 예수사랑 믿음으로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할 때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히 1:14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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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4
  • 윤석열 대통령과 윤희원 목사의 부활절
    트럼프 정부에서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Lighthizer·77)는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라며 “1960년대 경제 규모가 40억 달러에 불과했던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지금은 캐나다 수준이 됐는데 이것은 꽤 놀라운 성취”라고 했다. 그 대한민국이 2024년 4월 10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총선을 앞두고 있다. 선거와 송사, 이것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이다. 승리의 두 가지 축은 투지와 결단력이다. 그러나 ‘이기는 것(win)’과 ‘지지 않는 것(not lose)’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건은 승부처를 보는 눈, 즉 형세 판단이다.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같은 하수는‘형(形)’인 숫자(지지율)를 보고 윤석열 대통령 같은 고수는 ‘세(勢)’인 이승만 대통령 같은 인물과 그 신앙을 본다. 다만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선 질 수 있다. 특히 미리 패배를 받아들이는 순간 절대 이길 수 없다. 모든 승리의 원천은 믿음에서 우러난 자신감과 용기다. 대한민국 정의와 자유의 횃불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3월 31일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담임 김하나 목사, 원로 김삼환 목사)에서 오후 4시 열린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예배는 합동 교단 총회장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의 진중한 사회로 진행됐다. 장종현 목사의 대회사를 시작으로 명성교회 찬양대 할렐루야 찬송, 이철 목사 설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예장대신 총회장 임병무 목사가 성경 요한복음 11:25-26을 봉독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것을 네가 믿느냐 사회자 오정호 목사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가 공연되면 자리에서 일어나겠지만, 오늘은 그냥 자리에 앉아계시기를 정중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명성교회 연합찬양대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이 작곡한 ‘메시아’(Messiah)는 줄거리가 있는 곡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고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오라토리오다. 헨델의 대표적 작품인 ‘메시아’는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 구절에 곡을 붙인 합창곡이다. 메시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2부의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 '할렐루야'이다. 이 곡은 밝고 힘찬 악상과 금방 친숙해지는 멜로디로도 인기가 있지만, 런던 공연 당시 있었던 일화로 더 많이 알려졌다. 1743년 3월 23일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있었던 연주에서 당시 참석한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가 연주되자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왕이 일어나자 청중 모두가 따라서 일어나서 연주를 들었고 이후 '메시아' 공연에서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면 청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전통을 극장의 공연이 아닌 교회당의 부활절 연합예배 성가대의 찬양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고 개혁주의 목회자인 오정호 목사가 잠재운 것이다. 부활하신 전능의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세상 나라들 영원히 주와 그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왕의 왕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 오정호 목사가 외쳤다. “부활하신 주의 날이 우리의 영원한 찬송을 받으실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회중 큰 아멘)” 기감 감독회장 이철 목사의 ‘네가 믿느냐’ 설교를 했다. 예장고신 총회장 김흥석 목사의 집례로 성찬예식을 거행했다. 특별기도 순서가 이어졌다. 사회자 오정호 목사가 단에 섰다. “오늘 이 자리에는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신 윤석열 대통령님께서 한국교회 부활절 예배를 축하하기 위하여 예배를 드리러 오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2024년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해주셔서 한국교회를 대표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윤석열 대통령께서 나오셔서 축하 인사를 해주시겠습니다. 대통령님 나오셔서 큰 박수로 환영합니다.” (회중 환호와 큰 박수가 오래 이어졌다.) 대한민국 정의와 민주주의의 투사 윤석열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늘 나라와 국민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한국교회 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회중 큰 아멘) 1947년 남산에서 한국교회가 첫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 이후 매년 열리는 이 부활절 연합예배는 우리 국민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축복의 자리가 되어왔습니다. 이 뜻깊은 예배를 여러분과 함께 드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 연합예배를 준비해주신 대회장 장종현 목사님과 귀한 말씀을 주신 이철 목사님, 그리고 장소를 마련해주신 김삼환 원로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연합예배를 준비해주시고 축도와 찬양 특별 순서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나라 안밖으로 심각한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이 점차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북한의 위협과 국제 정세의 불안으로 나라 사정도 밝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부활의 참뜻을 되새겨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회중 큰 아멘) 모두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사랑과 연대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부활의 참뜻을 이루어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회중 큰 아멘)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보호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북녘까지 자유를 확장해서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구현해야 합니다. (회중 큰 아멘) 우리가 주도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의 나라를 열어갈 수 있도록 기도와 헌신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회중 큰 아멘)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 여러분! 지난 140년 동안 한국교회는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를 해왔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눈물의 기도와 아낌없는 헌신으로 새롭게 일어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라의 안정과 국민의 행복을 이루어나가는 데 앞으로도 기독교회가 앞장서서 노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회중 큰 아멘) 저와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국민의 아주 작은 목소리도 귀 기울이겠습니다. (회중 큰 아멘 함성 긴 박수) 저와 우리 정부는 어렵 (회중 큰 아멘 함성 긴 박수) 저와 우리 정부는 어렵고 힘든 분들이 일어서실 수 있도록고 힘든 분들이 일어서실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살피고 그분들에게 힘을 드리겠습니다. (웃음과 박수)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갈라디아서 5장 1절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회중 큰 아멘 함성 긴 박수) 다시 사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의 가정과 온 이 땅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감사드립니다. (회중 함성 긴 박수)” 윤 대통령은 예배에 앞서 장종현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대표총회장), 이철 한국교회총연합 공동 대표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이영훈 한국교회총연합 직전 대표회장(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대표총회장),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김진표 국회의장 등과 환담했다. 이날 예배에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예배당에서 한동훈 위원장, 김부겸 위원장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열두 제자의 발을 손수 씻겨주신 예수께서 “너희 가운데 한 명이 나를 팔리라”고 말하자 그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길 계획인 가룟 유다가 문제가 아니다. 예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장담하는 베드로는 예수의 말 그대로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게 되고 나머지 열 명도 대동소이하게 된다. 그들은 예수께서 울부짖으며 기도할 적에 쿨쿨 자고 그들 중 누가 더 큰 자인가를 두고 옥신각신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인간이란 다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위선형 범죄 정치꾼’들이 이 시대의 지배종(支配種)이고, 그 토대는 그 어떤 ‘내로남불’도 내 편이면 괜찮다는 유권자 대중이다. 내 편이라는 게 착각이다. 노예는 쇠사슬에 묶인 자가 아니다. 거짓말쟁이를 못 알아보는 자다. 한국 정치는 마술로도 미신으로도 치유 못 한다. 우리가 우리의 가룟 유다가 돼선 안 된다는 자각만이 희망이다. 22대 국회는 내로남불, 소시오패스들이 국민을 우롱하는 막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믿는 우리에게 기도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1948년 대한민국의 제1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자 반공산주의고 그게 국가 정체성의 뿌리였다. 6·25전쟁에서 300만의 피로 지켰다. 1980년대 학생운동·노동운동이 마르크스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에 장악되었지만, 공식 제도권에는 진입하지 못한 이유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종북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48년 체제의 근본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1987년 민주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한 ‘보수적 민주화’였다. 6·29 선언이 물꼬를 텄고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렇게 1960년대 이후 흘러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물줄기가 합류했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이 그걸 공고화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87년 체제는 4·10 총선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87년 체제의 와해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다. 노 정부는 보수적 민주화를 야합으로 부정했다. 한국 역사를 노론, 친일파, 친미파의 특권과 반칙이 지배한 실패의 역사로 매도했다. 친노는 그 뒤 광우병 촛불 시위로 이명박 정부를 흔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적폐 청산으로 200여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 이제 백낙청 교수는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고 제2기 촛불 정부를 세워 촛불 혁명을 완수하자고 부르짖는다. 우리 국민은 1948년 이후 세 차례 위대한 선거 혁명을 일으켰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을 물리치고 민주당 장면을 선택했다. 그것이 4·19로 이어졌다. 1978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공화당을 1.1% 이겼고 유신 체제 종결로 나아갔다. 1985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87년 민주화를 발화시킨 불씨였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 정치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절묘한 선택을 했다. 운동권이 아닌 국민이 민주화의 진정한 주체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는가. 우리 교단 총회와 호남의 양심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가 ‘2024년 고난주간 기도회 초대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의 신비가 신앙을 인격적으로 직조해 냅니다.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고난주간에 대한 기록은 마태는 21장에서 24장, 마가는 11장에서 15장, 누가는 19장 28절에서 23장, 요한은 12장 12절에서 19장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서는 요한복음에서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만나보며 그때 거기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안나스의 집 뜰에서 여종이 로마군에 잡히신 예수의 제자라고 하자 “나는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 거기에 있었던 예수의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를 오랫동안 묻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음습한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해골) 언덕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도 아니하시고 그저 인간들은 아주 단순히 자기의 역할만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보통은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어도 죽음과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한계상황(限界狀況) 속에서는 닫힌 마음은 오직 은혜로만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완고하고 무지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한계상황에서 넘쳐납니다. 우리가 이걸 알지 못할 때 위기가 닥쳐도 자급자족과 자립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결국은 자립의 삶이 바닥이 나고 그럼 우리의 자아도 무너져 내립니다. 이때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상실되었음에도 더 넉넉하게 더 자유롭게 우리 자신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것을 기대하지도 환영하지 아니해도 예기치 아니할 때 우리 속에 이 세상 속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이 가장 끔찍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그때 거기의 사람들에게나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사실 거기의 그들에게나 여기의 우리에게나 여전히 딜레마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신뢰할 수 있을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실까?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는 열두 제자들은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었던 신앙적 확신도 요한에게 있었던 인간적 사랑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 있었던 믿음도 한계상황 속에서는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리는 믿음, 신학적인 확신, 인간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숱한 의문과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요 12:19)를 시작으로 헬라인 몇 사람이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요 12:21), 요한은 “주여 누구니이까”(요 13:25),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14:5) 묻는 질문으로부터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묻는 다양한 질문과 의문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이며 질문하는 것들입니다. 고난주간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이 죽으시면서 신비를, 질문과 의문을 통해 우리에게 이해시키지 않고 합리적으로 증명하지도 않으시면서 우리의 감정에 신비를 직조해 느끼게 하시고 이성에 신비가 영성으로 스며들게 하여 알게 하시고 의지에 신비가 피어나게 하시어 행동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때 거기의 사람들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7:2)"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이 인격적인 신앙으로 신비가 감정에 직조되고 이성이 영성으로 변화되며 의지가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고난주간에 이 신비의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길 소망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인용한 성경은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 1:24-26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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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윤석열 대통령과 윤희원 목사의 부활절
    트럼프 정부에서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Lighthizer·77)는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라며 “1960년대 경제 규모가 40억 달러에 불과했던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지금은 캐나다 수준이 됐는데 이것은 꽤 놀라운 성취”라고 했다. 그 대한민국이 2024년 4월 10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총선을 앞두고 있다. 선거와 송사, 이것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이다. 승리의 두 가지 축은 투지와 결단력이다. 그러나 ‘이기는 것(win)’과 ‘지지 않는 것(not lose)’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건은 승부처를 보는 눈, 즉 형세 판단이다. ‘형(形)’은 보이는 것이고 ‘세(勢)’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 같은 하수는‘형(形)’인 숫자(지지율)를 보고 윤석열 대통령 같은 고수는 ‘세(勢)’인 이승만 대통령 같은 인물과 그 신앙을 본다. 다만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선 질 수 있다. 특히 미리 패배를 받아들이는 순간 절대 이길 수 없다. 모든 승리의 원천은 믿음에서 우러난 자신감과 용기다. 대한민국 정의와 자유의 횃불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3월 31일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담임 김하나 목사, 원로 김삼환 목사)에서 오후 4시 열린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예배는 합동 교단 총회장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의 진중한 사회로 진행됐다. 장종현 목사의 대회사를 시작으로 명성교회 찬양대 할렐루야 찬송, 이철 목사 설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예장대신 총회장 임병무 목사가 성경 요한복음 11:25-26을 봉독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것을 네가 믿느냐 사회자 오정호 목사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가 공연되면 자리에서 일어나겠지만, 오늘은 그냥 자리에 앉아계시기를 정중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명성교회 연합찬양대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 ~ 1759)이 작곡한 ‘메시아’(Messiah)는 줄거리가 있는 곡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고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오라토리오다. 헨델의 대표적 작품인 ‘메시아’는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 구절에 곡을 붙인 합창곡이다. 메시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2부의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 '할렐루야'이다. 이 곡은 밝고 힘찬 악상과 금방 친숙해지는 멜로디로도 인기가 있지만, 런던 공연 당시 있었던 일화로 더 많이 알려졌다. 1743년 3월 23일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에서 있었던 연주에서 당시 참석한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가 연주되자 감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왕이 일어나자 청중 모두가 따라서 일어나서 연주를 들었고 이후 '메시아' 공연에서 '할렐루야' 합창이 나오면 청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전통을 극장의 공연이 아닌 교회당의 부활절 연합예배 성가대의 찬양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고 개혁주의 목회자인 오정호 목사가 잠재운 것이다. 부활하신 전능의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세상 나라들 영원히 주와 그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왕의 왕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 오정호 목사가 외쳤다. “부활하신 주의 날이 우리의 영원한 찬송을 받으실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회중 큰 아멘)” 기감 감독회장 이철 목사의 ‘네가 믿느냐’ 설교를 했다. 예장고신 총회장 김흥석 목사의 집례로 성찬예식을 거행했다. 특별기도 순서가 이어졌다. 사회자 오정호 목사가 단에 섰다. “오늘 이 자리에는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신 윤석열 대통령님께서 한국교회 부활절 예배를 축하하기 위하여 예배를 드리러 오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2024년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해주셔서 한국교회를 대표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윤석열 대통령께서 나오셔서 축하 인사를 해주시겠습니다. 대통령님 나오셔서 큰 박수로 환영합니다.” (회중 환호와 큰 박수가 오래 이어졌다.) 대한민국 정의와 민주주의의 투사 윤석열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늘 나라와 국민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한국교회 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회중 큰 아멘) 1947년 남산에서 한국교회가 첫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 이후 매년 열리는 이 부활절 연합예배는 우리 국민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축복의 자리가 되어왔습니다. 이 뜻깊은 예배를 여러분과 함께 드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 연합예배를 준비해주신 대회장 장종현 목사님과 귀한 말씀을 주신 이철 목사님, 그리고 장소를 마련해주신 김삼환 원로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연합예배를 준비해주시고 축도와 찬양 특별 순서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나라 안밖으로 심각한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이 점차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북한의 위협과 국제 정세의 불안으로 나라 사정도 밝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부활의 참뜻을 되새겨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회중 큰 아멘) 모두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사랑과 연대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부활의 참뜻을 이루어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회중 큰 아멘)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보호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북녘까지 자유를 확장해서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구현해야 합니다. (회중 큰 아멘) 우리가 주도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의 나라를 열어갈 수 있도록 기도와 헌신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회중 큰 아멘)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 여러분! 지난 140년 동안 한국교회는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를 해왔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눈물의 기도와 아낌없는 헌신으로 새롭게 일어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라의 안정과 국민의 행복을 이루어나가는 데 앞으로도 기독교회가 앞장서서 노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회중 큰 아멘) 저와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국민의 아주 작은 목소리도 귀 기울이겠습니다. (회중 큰 아멘 함성 긴 박수) 저와 우리 정부는 어렵고 힘든 분들이 일어서실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살피고 그분들에게 힘을 드리겠습니다. (웃음과 박수)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갈라디아서 5장 1절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회중 큰 아멘 함성 긴 박수) 다시 사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의 가정과 온 이 땅에 충만하기를 빕니다. 감사드립니다. (회중 함성 긴 박수)” 윤 대통령은 예배에 앞서 장종현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대표총회장), 이철 한국교회총연합 공동 대표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이영훈 한국교회총연합 직전 대표회장(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대표총회장),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김진표 국회의장 등과 환담했다. 이날 예배에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예배당에서 한동훈 위원장, 김부겸 위원장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열두 제자의 발을 손수 씻겨주신 예수께서 “너희 가운데 한 명이 나를 팔리라”고 말하자 그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길 계획인 가룟 유다가 문제가 아니다. 예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장담하는 베드로는 예수의 말 그대로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하게 되고 나머지 열 명도 대동소이하게 된다. 그들은 예수께서 울부짖으며 기도할 적에 쿨쿨 자고 그들 중 누가 더 큰 자인가를 두고 옥신각신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인간이란 다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위선형 범죄 정치꾼’들이 이 시대의 지배종(支配種)이고, 그 토대는 그 어떤 ‘내로남불’도 내 편이면 괜찮다는 유권자 대중이다. 내 편이라는 게 착각이다. 노예는 쇠사슬에 묶인 자가 아니다. 거짓말쟁이를 못 알아보는 자다. 한국 정치는 마술로도 미신으로도 치유 못 한다. 우리가 우리의 가룟 유다가 돼선 안 된다는 자각만이 희망이다. 22대 국회는 내로남불, 소시오패스들이 국민을 우롱하는 막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믿는 우리에게 기도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1948년 대한민국의 제1 건국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자 반공산주의고 그게 국가 정체성의 뿌리였다. 6·25전쟁에서 300만의 피로 지켰다. 1980년대 학생운동.노동운동이 마르크스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에 장악되었지만, 공식 제도권에는 진입하지 못한 이유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종북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48년 체제의 근본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1987년 민주화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한 ‘보수적 민주화’였다. 6·29 선언이 물꼬를 텄고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그렇게 1960년대 이후 흘러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물줄기가 합류했다. 1990년 3당 합당, 1997년 DJP 연합이 그걸 공고화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87년 체제는 4·10 총선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87년 체제의 와해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되었다. 노 정부는 보수적 민주화를 야합으로 부정했다. 한국 역사를 노론, 친일파, 친미파의 특권과 반칙이 지배한 실패의 역사로 매도했다. 친노는 그 뒤 광우병 촛불 시위로 이명박 정부를 흔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적폐 청산으로 200여 명이 구속되고 5명이 자살했다. 이제 백낙청 교수는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고 제2기 촛불 정부를 세워 촛불 혁명을 완수하자고 부르짖는다. 우리 국민은 1948년 이후 세 차례 위대한 선거 혁명을 일으켰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을 물리치고 민주당 장면을 선택했다. 그것이 4·19로 이어졌다. 1978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공화당을 1.1% 이겼고 유신 체제 종결로 나아갔다. 1985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87년 민주화를 발화시킨 불씨였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 정치의 고비 고비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고 절묘한 선택을 했다. 운동권이 아닌 국민이 민주화의 진정한 주체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는가. 우리 교단 총회와 호남의 양심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가 ‘2024년 고난주간 기도회 초대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의 신비가 신앙을 인격적으로 직조해 냅니다.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고난주간에 대한 기록은 마태는 21장에서 24장, 마가는 11장에서 15장, 누가는 19장 28절에서 23장, 요한은 12장 12절에서 19장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서는 요한복음에서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만나보며 그때 거기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안나스의 집 뜰에서 여종이 로마군에 잡히신 예수의 제자라고 하자 “나는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 거기에 있었던 예수의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이었고 어떤 의미였을까를 오랫동안 묻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음습한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해골) 언덕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도 아니하시고 그저 인간들은 아주 단순히 자기의 역할만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보통은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어도 죽음과 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한계상황(限界狀況) 속에서는 닫힌 마음은 오직 은혜로만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완고하고 무지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의 한계상황에서 넘쳐납니다. 우리가 이걸 알지 못할 때 위기가 닥쳐도 자급자족과 자립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결국은 자립의 삶이 바닥이 나고 그럼 우리의 자아도 무너져 내립니다. 이때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상실되었음에도 더 넉넉하게 더 자유롭게 우리 자신을 다시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것을 기대하지도 환영하지 아니해도 예기치 아니할 때 우리 속에 이 세상 속에 들어옵니다. 예수님이 가장 끔찍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그때 거기의 사람들에게나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사실 거기의 그들에게나 여기의 우리에게나 여전히 딜레마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정말 신뢰할 수 있을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실까?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는 열두 제자들은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었던 신앙적 확신도 요한에게 있었던 인간적 사랑도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 있었던 믿음도 한계상황 속에서는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리는 믿음, 신학적인 확신, 인간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숱한 의문과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요 12:19)를 시작으로 헬라인 몇 사람이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요 12:21), 요한은 “주여 누구니이까”(요 13:25), 도마는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14:5) 묻는 질문으로부터 빌라도의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고 묻는 다양한 질문과 의문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품고 있는 의문이며 질문하는 것들입니다. 고난주간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이 죽으시면서 신비를, 질문과 의문을 통해 우리에게 이해시키지 않고 합리적으로 증명하지도 않으시면서 우리의 감정에 신비를 직조해 느끼게 하시고 이성에 신비가 영성으로 스며들게 하여 알게 하시고 의지에 신비가 피어나게 하시어 행동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때 거기의 사람들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도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7:2)"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이 인격적인 신앙으로 신비가 감정에 직조되고 이성이 영성으로 변화되며 의지가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고난주간에 이 신비의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길 소망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인용한 성경은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 1:24-26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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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3
  • 2024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대 회 사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죄와 고통으로 죽어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종교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사랑과 용서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할 때에도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믿음의 기도로 극복하였습니다. 기도는 나라를 지키는 힘이며, 기도는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으로 하나 되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때입니다. 모든 갈등과 분열의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무너뜨리고, 교회는 다시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기도성령운동에 힘써서 이 땅에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워 모든 백성들이 정직과 성실함으로 풍요로운 삶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나라, 모든 성도들이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어 나갑시다. 오직 부활의 능력이 한국교회의 소망이며, 오직 생명의 복음이 민족의 희망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열방의 소망으로 우뚝 서서 부활의 기쁜 소식과 예수 생명의 복음을 우리 민족에게 전할 때 대한민국은 희망이 넘치는 새로운 국민의 나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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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차금법 폐기 촉구
    이승만은 식민지로 망한 터에 공산주의 물결을 막아내는 방파제(防波堤) 국가를 세웠다. 박정희는 금고(金庫) 안에 먼지밖에 쌓인 게 없는 나라를 부자 국가로 일으켜 세웠다. ‘공칠과삼(功七過三) 평가 이론’을 적용하면 위대한 정치가다. 민주당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전쟁 목표는 당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재명의 민주당’에겐 계승해야 할 유산(遺産)이 아니라 끊어내야 할 멍에고 족쇄가 됐다. 겉으론 레닌을 받들면서 속으론 지워갔던 스탈린 권력 장악 과정과 닮았다. 두 사람 냄새는 당사에 사진을 걸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인 것 같다. 전국17개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포괄적차별금지법(차금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2023년 3월 8일 능력 있는 목회자이고 대표적 세계 장로교 대표 교단 합동 총회 중진 총대 오범열 목사 시무 안양 성산교회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 공동대표회장(공동대표회장 오범열, 김종우 목사) 사무총장(이승준 목사) 연석회의를 열었다. 공동대표회장 오범열 목사가 주재한 연석회의에 앞서 진행된 예배에선 서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심하보 목사가 설교했다. 충북기총 사무총장 박병식 목사가 성경 요한복음 8:31~32을 봉독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본문에 근거해 심하보 목사가 ‘KS마크 BS마크’ 제목으로 설교했다. “한국산업표준 즉 KS(Korean Industrial Standard) 마크가 붙은 생산품은 우리나라 정부가 품질을 인증하는 제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받아야 할 인생의 인증 마크는 성경표준 즉 BS(Bible Standard) 마크입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니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곧 성경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친목 하려 모인 게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엔 목회자가 필요 없습니다. 악법을 막기 위해 진리이신 주님을 믿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각 지역 사무총장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회장 이승준 목사가 광고했다. 울산기총 대표회장 권규훈 목사가 축도했다. 이어진 연석회의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총연합회는 22대 국회에 차금법안 폐기를 비롯해 생명 존중 입법 요구를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또 오는 7월 예정된 인천여성영화제에 대해 “시민의 세금이 동성애 영화 홍보에 쓰여선 안 된다”며 “동성애는 가정·부부관계를 무너뜨리고 양성평등 정책과도 거리가 멀다. 인천여성영화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1-27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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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권순웅 목사 저출산 대책
    저출생·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인구 통계는 점점 드라마틱해진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3년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 추월했다. “하나님 저출산 문제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년 9월 18일 ~ )는 소설 ‘웃음’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꼽은 적이 있다. 2세 때는 대소변을 가리는 게, 3세 때는 치아가 나는 게,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2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것 등이 자랑거리다. 그런데 인생이 반환점을 돌면 자랑거리가 뒤집힌다. 60세 때는 섹스할 수 있다는 게,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80세 때는 치아가 남아 있다는 게, 85세 때는 대소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 등이 자랑거리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통과하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는 다시 대소변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2024년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마주한 도전은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심화되고 대만해협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과 양극화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국력이 피크를 지났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2024년 세계는 전쟁 2개와 50여 국의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50여 국에서 선거로 정치적 전쟁을 치를 예정이다. 20억이라는 숫자는 세계 경제 총생산의 60%에 해당한다(뉴욕타임스 집계).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미국·대한민국 그리고 유럽 27국(의회) 등이다. 우리는 여전히 ‘배달의 민족’일 뿐 아니라 ‘바람의 민족’이기도 해서 바람이 불면 죄다 그쪽으로 쏠리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새 방향을 좇는다. 이런 데 자유가 있을까. 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수긍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자유, 원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항상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자유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체험 또한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중이구나’라고. 맞다. 당신도 믿음의 자유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대로. 2024년 2월 18일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가 ‘한국교회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전국연합기도회’를 경기도 화성시 10용사로 532 육탄10용사 공원 근처 주다산교회에서 드렸다. 진용훈 목사(중앙위 서기)의 인도로 케리그마 및 기도회가 진행됐다.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는 오는 5월 19일 생명존중 주일이 있는 날까지 100일 기도 행전을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권역별로 지역교회가 연합해 ‘특별기도회’로 모일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밝혔다. 인문고전을 읽는 천재들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은 보통 보이는 것(sight)에 주목한다. 그러나 천재들은 보이지 않는 것(insight)에 주목한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insight”는 “sight”에 “in”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통찰력이란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의 총회 불꽃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강단에 서자 청년과 장년 신자들이 환호했다. 그가 그 가운데 외쳤다. "샬롬! 저한테 너무 큰 박수하면 오해합니다. (회중 웃음) 지금 대한민국은 축구협회를 고발했습니다.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야구계를 고발하려 합니다. 대한민국 야구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종범(李鍾範, 1970년 8월 15일 ~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 외야수) 감독 때문에 이 야구계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분의 아들이 이정후(李政厚, 1998년 8월 20일 ~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외야수) 선수입니다. 이정후 선수가 1490억 이상 그렇게 전속계약이 된 선수입니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이런 뛰어난 아들을 한 명밖에 못 낳았다는 것입니다. (회중 큰 웃음)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둘 낳고 다섯을 낳았으면 한국 야구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3년 전 저출산 극복 헌신예배에서 ‘홈런 가족’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야구를 보면 안타가 있는데 야구의 꽃은 홈런입니다. 우리가 가족을 보면 이 저출산 환경에 아기가 없는 가정은 스리(three) 아웃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 다산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면 홈런입니다. 여러분 출산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런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출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번성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애굽에 살 때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핍박 가운데 살지라도 하나님은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바로(Pharaoh)가 이스라엘인의 출산을 압박해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기도로 시작한 국가입니다. 애국가가 찬송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난 줄 압니다. 크게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저출산 국가로 전 세계의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 협력 개발 기구) 가운데 가장 먼저 인구가 소멸이 될 국가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라질 제1위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녀본 제삼세계(第三世界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을 일컫는 말)가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지만 아이들이 거리마다 가득합니다. 어디가 못사는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습니까,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 생각에 한국교회가 그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산아제한을 했습니다. 맬서스주의(Malthus主義: 맬서스가 저서 ‘인구론’에서 주장한 학설로 인구와 식량과의 관계에 관한 이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빈곤과 악덕이 불가피하게 초래된다’라는 내용)를 따라 한국이 주창한 ‘산아제한’과 정부의 실책에 한국교회가 침묵했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 신학교 갈 때 신학교 전도사 한 분이 ‘산아제한, 하나님 앞에 범죄입니다’라는 대자보를 크게 써 붙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창 1:28)대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이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 19:14). 그렇듯이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잘못을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불순종한 죄를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여러 시책을 제안하고 여러 사람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주셔야 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생각, 돈을 더 사랑하는 생각, 쾌락을 더 사랑하는 생각, 우상을 버리지 않는 미련을 경고하지 않는 한국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이 민족에게 성령의 바람으로 말씀 순종할 수 있도록 불붙는 마음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이여, 하나님 주신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후손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한 복된 가정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 한국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입니다. 우리 총회다음세대 운동본부에서는 이 일을 지금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다산교회부터 시작해 전국 교회가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였습니다. 먼저 느헤미야같이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가 불순종하고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를 바르게 세우지 못한 죄를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회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나타나도록 우리가 선포하고 섬기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이어서, 2강 ‘다자녀 출산의 복’은 이승준 목사(경기총연합회 사무총장) 부부가, 3강 돌봄시설 입법화는 강유진 교수(총신대학교)가, 4강 비혼주의 극복은 이용희 교수(에스더기독운동 대표)가 강연했다. 이승준 목사 부부는 네 자녀를 세 번의 제왕절개와 한 번의 인공수정을 통해 어렵사리 출산했던 경험을 간증하며 하나님의 복을 전했다. “인간적인 환경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응답을 통해 태의 열매를 다시금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적이자 은혜였습니다. 아이는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다음 세대가 누리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해중 장로(회계)의 헌금기도와 김영구 장로(부총회장)의 사명자 구호제창이 있었고 김진하 목사(부본부장)의 축도로 마쳤다. 우리나라 초저출산은 그 수준(2021년 기준 0.81로 OECD 최저, 홍콩 제외 세계 최저)과 지속기간(2002년부터 1.3 미만 21년 지속) 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 약 86.4% 감소하여 전 세계 217개 국가·지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로 인구 통계를 꼽는다. 지방대학의 붕괴, 주거 불안, 연금 고갈, 노년 부양비 등은 모두 인구문제와 연관돼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인구 감소로 5년째 출산율 0%대의 ‘초저출산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문제는 ‘마땅한 대응 방안이 있는가’일 것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회개와 더불어 다음의 교회 사례를 보면 그 방안이 있을 것 같다. 2023년 11월 8일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시작은 벽보 한 장이었다. ‘한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다른 아이는 어찌하십니까? 위급하고 답답할 때 아이를 정성을 다하여 돌보아 드립니다. 믿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당진 동일교회 이수훈 목사.’ 27년 전인 1996년 충남 당진의 야산 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개척한 이수훈 목사(67)는 인근 아파트에 이런 벽보를 붙였다. 야산에서 캔 칡으로 차를 끓여 가가호호 나누며 전도에 애썼지만 비닐하우스 교회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때 그 자신 육아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아이 돌봄’ 벽보를 붙인 것. 붙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이런 비닐하우스 교회에 누가 아이를 맡길까?’ 며칠 후 두세 살짜리 아이 셋을 데리고 주부 둘이 찾아왔다. ‘시장 다녀올 동안 1시간 정도만 맡아달라’던 엄마들은 해가 진 후에야 나타났다. 미안해했지만 얼굴엔 해방감 가득했다. 이후로 아이를 맡기러 오는 부모가 줄을 이었다. 다 받았다. 부모가 천안, 대전, 서울의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킬 땐 안 아픈 아이를 며칠씩 이 목사 부부가 먹이고 재웠다. 돌봄 수요는 계속 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끼리 품앗이 돌봄도 이뤄졌다. 2004년 주 5일제가 도입될 때 ‘토요 돌봄’을 시작한 것도 부흥의 한 계기가 됐다. 현재 등록 교인 1만 5천여 명, 평균 연령 29세, 2자녀 이상 가정 3천 세대, 평균 자녀 수 2.07명, 당진 초등학생 12% 정도가 출석하는 교회, 어린이집 2백 명, 비전스쿨(방과 후 학교) 2백 명이 매일 교회 안에서 자라며 ‘저 출생 극복의 모델’로 전국 교회의 탐방이 끊이지 않는 당진 동일교회의 시작은 소박했다. 이 교회는 어린이가 중심이다.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엔 어린이집, 왼쪽엔 교육관(비전스쿨), 정면엔 비전센터(청소년수양관)가 자리 잡았다. 예배당 건물 따로 없이 비전센터 강당 8백석을 대예배실로 쓰는데 주일 오전 9시 ‘온 세대 예배’에서도 어린이들이 주요 역할을 맡는다. 어린이들은 예배 시간에 성경 구절을 암송해 봉독하고 어린이 찬양대가 찬양하고 매주 1명씩 자기 ‘꿈’을 발표한다. 다른 교회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어린이집과 비전스쿨은 오후 7시 반까지 돌본다. “불 꺼진 빈집에 부모보다 아이들이 먼저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자”가 ‘교회 이모’ 마음이다. 비전스쿨은 교회 버스가 하교 시간에 맞춰 당진 초등학교 10곳을 돌면서 교문 앞에서 교회 마당까지 안전하게 데려온다. 영어, 수학뿐 아니라 인성 교육도 강조한다. ‘명심보감’을 전 학년이 배우고 밥상머리 예절도 지도한다. 어린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워 3학년 때와 졸업할 때 연주회도 갖는다. 방학이면 영미권 대학생들을 교사로 초빙해 영어 회화 교육을 한다. 2017년엔 ‘시내산 중고등학교’라는 대안 학교도 열었다. 이 교회 성장 비결은 ‘역발상’이다. 20~30년 전만 해도 개신교계 사역은 장년 위주였다. 저 출생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도 않았다. 이수훈 목사는 말했다. “개척 당시는 한보철강이 들어왔다가 부도나면서 당진 경제가 휘청하고 어려운 가정이 많았을 때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자신과 이웃에게 정직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목회의 핵심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한 생태계로 봐야 합니다. 정확히 어린이 양육에 예산이 쓰여야 저 출생 문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 127:3-5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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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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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구 박사의 신학논단 - 도둑질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구원함을 받은 거룩한 무리들, 즉 성도(聖徒)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행해야 할 일들 가운데 또 하나로 도둑질하지 말 것을 명하는 명령은 구약에서부터 주어져 있습니다(출 20:15; 레 19:11; 신 5:19). 구약 성도들도 이 말씀을 듣고 지켜야만 했고, 신약의 성도들도 그런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이를 명령하시는 것은 구원받았다고 해서 도둑질할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그 순간에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평생 싸워나갈 일의 하나가 바로 부패한 인간성의 발로의 하나인 도둑질하려는 성향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성령님에 의지해서 힘쓰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이런 잘못된 성향에 따라 가기 쉬운 것입니다. 지난번에 생각했던 살인, 간음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 -- 하지 말라”는 부정적 형태의 금령은 우리의 상황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상황 가운데서 우리가 어떤 방향을 나아가야 하는 지를 제시하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악의 현실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룹니다. 죄악된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도 성경이고, 그 죄악과 그 결과로 주어진 비참함으로부터 구원받음을 유일하게 제시하는 것도 성경이고, 구원 받음 인간의 불완전함과 죄악을 잘 드러내는 것도 성경이고, 그런 부패한 인간성과의 힘 있는 투쟁의 필요성과 그 현실을 잘 제시하는 것도 성경인 것입니다. 이 투쟁을 돕기 위해 주어진 금령 중의 하나가 이번에 우리가 생각하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이 말씀의 의미에로 들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금령의 단순한 의미 이 금령은 일차적으로 그 어떤 형태의 도둑질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정황에도 적용되지만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공동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도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로는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을 한이 없어서 어떤 방법으로라도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도와 그런 행동이 나타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 인간의 의도를 잘 알기에 성경은 그런 시도를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금령의 적극적 의미 그렇다면 이 금령은 그저 그렇게 남의 것을 불법적인 방도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의미만을 지닌 것일까요? 이 금령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많으면 그렇게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절대로 남의 것을 자신이 사취하지 않는 것은 그 한도 내에서는 옳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의 것을 불법적으로 사취(詐取)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들은 이를 다 지켰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기 쉽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어떤 관리는 이 계명을 포함한 말씀을 듣자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고 담대히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눅 18:21, cf. 막 10:20). 이 금령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모든 논의가 이루어진 후에 결국 그 사람은 이 계명을 다 지킨 사람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실제로 도둑질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이 금령의 더 적극적 의미를 잘 생각하지 않고, 그저 쉽게만 생각했었다는 말이지요. 우리들도 더 깊은 의미에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이 사람처럼 이런 금령은 “우리가 다 지켰습니다”라고 잘못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금령을 우리에게 내셨을 때는 단순히 그 정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더 나아 가서 생각한 분들이 있지만 특히 16세기와 17세기 우리 개혁신앙의 선배들은 이 금령의 적극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예를 들어서 ,17세기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41문에서는 “제 8 계명이 요구하는 의무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일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 8계명이 금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142문보다 적극적 의미를 더 앞에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아주 적극적인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제 8계명에서 요구된 의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과 거래에서의 참됨과 신실함과 정의이고,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며, 합법적 소유주로부터 불법적으로 점유된 것들을 그 본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이고, 우리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거저 주고 빌려주는 것과 세상 재화에 대한 판단과 의지와 감정의 조절(moderation)이고, 우리의 성질의 유지와 우리의 조건에 적합한 필요하고 적절한 재화들을 얻고, 보존하고, 사용하고, 없애는 일에 대한 신중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합법적인 직업과 그에 대한 열심, 절약, 불필요한 소송이나 보증이나 그와 같은 관여를 피하는 것, 모든 정의롭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우리 자신들의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얻고,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일에 대한 열심입니다. 이를 잘 살펴보면, 우리들은 17세기 우리 선배들이 얼마나 깊이 있게 그리고 바르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포괄적인 지를 생각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재물관이 어떠해야 하며, 직업관이 어떠해야 하며, 이 세상에서 사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배우게 됩니다. 제 8계명의 적극적 의미의 기본적인 원칙이 제일 앞에 천명되는데,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기본적 원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약과 거래에서의 참됨과 신실함과 정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 가운데서 사는 데 그 때 그 모든 관계 가운데서 참됨(truth)과 신실함(faithfulness)과 정의(justice)를 자기고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관계 속에서 내가 참으로 참된지를, 참으로 신실한지를, 그리고 참으로 정의로운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우리의 모든 것이 죄인 것이고, 그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의 참됨과 신실함과 의로움을 지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 받은 우리의 삶은 적극적으로 그런 참됨과 신실함과 의로움을 간직하고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구원 받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적극적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참됨과 신실함과 의로움을 간직하고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구원 받았음의 증거가 있고, 구원 받음 결과인 진정 구원받은 자 다운 삶이 있는 것입니다. 참됨과 신실함과 정의 드러냄의 구체적 의미 이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첫째로,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합당한 것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일을 했을 때 그에게 보수를 주는 것은 내가 선심을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고 그에게 적합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업체의 주관자들이 그 사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보수를 줄 때에 우리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각자가 일한 것에 대해서 그에게 합당한 몫을 받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들의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레 19:13)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저 임금 체불을 하지 말 것을 명하는 정도가 아니고, 그 임금을 그가 받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정당하게 생각하지 않고, 바르게 행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일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도 지니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과 그에 대한 열심히 제 8계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무 가운데 하나로 있다고 하는 것은 17세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신앙을 얼마나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합법적인 직업을 가지고 그에 열심을 내는 것이 우리들이 마땅히 할 바이고, 그로부터 우리가 마땅한 몫을 받은 것은 합당한 것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필요하고 적절한 재화들을 얻고, 보존하고, 사용하고, 없애는 일에 대한 신중한 관심과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가 재화에 온통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았던 우리 선배들은 “세상 재화에 대한 판단과 의지와 감정의 조절(moderation)”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나치게 재화의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감당하되 우리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고 말씀하신대로 살며,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히 13:5). 또한 구약의 신실한 성도와 같이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에서 적절함(moderation)을 추구하는 것이 구원함을 받은 성도의 마땅한 바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절약하여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 이 계명의 함의에 포함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불필요한 소송이나 보증이나 그와 같은 관여를 피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법정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고전 6:4)에 대한 고려와 함께 이런 소송이 대개는 재화를 더 얻으려는 마음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감안한 생각인 것입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도 상대편이 고소하여 법정에서 다투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될 수 있는 대로 세상 법정에 호소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만일에 다른 분들이 갑자기 재화를 필요로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에도 “우리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거저 주고 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고백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능력에 넘치게 거저 주고 빌려 주는 것은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하여 자신과 상대 모두를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에 넘치는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으면 다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에게 재화가 주어진 중요한 목적들 가운데 하나가 결국 사람들을 잘 돕도록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편이 되는 데로 이 런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과연 왜 우리가 재화를 소유하는 지를 잘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은행 같은 것이 발달된 상황에서 그 어떤 이자도 받지 않는 것이 옳거나 더 정의롭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잘 아는 개인 간에는 능력의 한계 내에서 거저 주고 빌려 주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재화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전혀 이를 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집착하지 않을 때 우리는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거저 주고 빌려주는 일에서 인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는 이런 일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회복시켜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절약과 검소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8계명의 적극적 의미의 요약 이제까지 말한 8계명의 적극적 의미를 요약한다면 그것은 “모든 정의롭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우리 자신들의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얻고,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일에 대한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에 자신들의 재산을 정의롭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얻고,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일에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을 근원적으로 잘 미루어 살피는 사람들의 놀라운 추론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8계명을 범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재산이 정의롭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얻어지고, 보존되고, 증진되도록 하기도 해야 합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재화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화도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합법적으로, 그리고 정의롭게 재산이 얻어 비고 보유되고, 증진 되는 것에 항상 신경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의 증진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재산이 증진 되는 것을 막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참으로 합법적이고 정의로운 경쟁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어떤 형태의 “도둑질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의 재산이 합법적으로 그리고 정의롭게 얻어지고, 보유되고, 증진 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마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리하듯이 재화 자체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것이 주께서 자신들에게 부탁하고 맡기신 것이라는 것을 잘 의식하기에 주께서 맡기신 것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각자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깊이 있게 살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재물과 재화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는 지를 말입니다. 그런 욕심이 전혀 없이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 가는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11문은 이 계명의 적극적 의미에 대해서 다음 같이 묻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문: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답: 내가 할 수 있고 해도 좋은 경우에는 나의 이웃의 유익을 증진시키며,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ㄹ은대로 이웃에게 행하고,더 나아가 어려운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다.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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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0
  • 웨스트민스터 한국총동문회 2013년 동창회와 송년의 밤 행사
    웨스트민스터 한국총동문회(회장 정규남 박사) 2013년 동창회와 송년의 밤 행사가 2013년 12월 26일(목) 오후 4시 대치동 소재 서울교회(원로목사 이종윤)에서 열렸다. 30여 명이 참여한 모임은 1부 등록 2부 예배 사회 정규남 회장 3부 동문회 활동 보고: 박응규 총무 4부 동문 인사 및 만찬 사회: 안명준 협동총무 5부 동문 목회 특강 사회: 오덕교 부회장 강사 정영교 동문(산본양문교회 담임목사) “나의 목회, 나의 노래” 6부 동문 좌담회: “웨스터민스터와 나의 삶과 사역” 사회 황규명 부회장 좌담 참석자: 박형용, 전호진, 김성환, 박노철 7부 합심 기도회 인도: 안창운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모임 마무리 때 총장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형용 박사가 필라델피아 소재 모교의 재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100만원씩 후원하자고 제안했다.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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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20
  • 합신목회대학원 2014 동계강좌
    2014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부설 목회대학원이 주최하는 2014 동계강좌가 2014. 1. 6(월) 오후 1:30 ~ 1. 17(금) 오후 12:30까지 열렸다. 합신 생활관 대세미나실에서 열린 동계강좌에는 합신교단과 타교단 목회자 100여명이 등록해 강의를 수강했다. 1월 6일 1:30 목회대학원 원장 이승구 박사의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로 시작된 강좌가 1월 17일 11:10 ~ 12:30 강의로 끝났다. 목회대학원 4학기 이수자는 목회대학원 수료증을 받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총동문회 정회원 자격을 가지게 되는 특전이 있다. 이번 동계강좌의 강사와 강좌는 다음과 같다. 주강사 이복우 합신 교수 (목회자를 위한) 요한복음 해석과 설교강영만 서강대 교수 목회자를 위한 어거스틴의 고백론 읽기권호 국제신학대학원 교수 시편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회 회장 기독교 생명 윤리 운동과 목회안상혁 합신 교수 교회사의 터닝포인트와 설교이승구 합신 교수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이승진 합신 교수 구원의 서정과 설교현창학 합신 교수 잠언과 바른 생활 주요보직자 현황 (2013-2학기 기준)총 장 : 조 병 수 박사원장 : 오 덕 교 교무처장 : 현 창 학학생처장 : 김 학 유 연구처장 : 송 인 규도서관장 : 이 승 진 경건훈련원장 : 이 승 진목회대학원장 : 이 승 구평생교육원장 : 김 은 미 주요 연혁▶1980. 11. 11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을 이념으로 하여 참신한 개혁주의적 신앙운동과 생활운동을 펴 나아갈 것을 염원하면서 서울시 강남구 반포동 271-45 소재 남서울교회당에서 합동신학원을 개원▶1980. 11. 18 합동신학원 초대원장에 박윤선 박사 취임▶1981. 2. 24 제1회 졸업식이 거행되고 48명 졸업▶1982. 4. 30 교육부로부터 신학교 설립 계획 승인▶1982. 11. 9 수원시 원천동 산 42-3 소재 학교부지(75,085㎡) 매입▶1983. 9. 9 교육부로부터 학교법인 ‘자유학원’ 인가▶1984. 12. 21 교육부로부터 신학과(40명) 신설인가, 교명을 합동신학원에서 합동신학교로 변경▶1985. 3. 5 제2대 교장에 신복윤 박사 취임, 박윤선 박사를 명예교장에 추대▶1985. 4. 20 본관 건물(2,598㎡) 완공 후 준공예배▶1987. 12. 9 교육부로부터 목회학과(40명) 증과 승인▶1989. 4. 18 제3대 교장에 김명혁 박사 취임, 신복윤 박사를 명예교장에 추대▶1989. 11. 6∼7 제1회 정암신학강좌 개최▶1990. 9. 14 생활관(3,635㎡) 개관▶1993. 4. 16 제4대 교장에 윤영탁 박사 취임▶1993. 12. 8 정암신학연구소와 칼빈사상연구소 설립▶1994. 3. 2 본관 건물(2,598㎡)에 4층(1,065㎡) 증축▶1996. 12. 11 교육부로부터 합동신학대학원대학으로의 전문대학원 승격 인가▶1997. 3. 4 제5대 학장에 신복윤 박사 취임▶1997. 11. 10 교명을 합동신학대학원대학에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로 변경▶1998. 2. 2 생활관 옆 부지(28,463㎡)를 교육용지로 매입▶1999. 4. 15 Th.M.과정(정원 10명) 신설 인가▶2000. 6. 싸이버신학교육연구소를 설립▶2001. 3. 6 제6대 총장에 박형용 박사 취임, 신복윤 박사를 명예 총장에 추대▶2001. 12. 28 평생교육원 인가를 받아 여자신학연구과정, 기독교상담과정, 성경 연구과정 개설▶2003. 10. 21 박사과정(정원 6명) 신설 인가▶2004. 3. 2 변화산기념도서관(1,700㎡) 개관▶2005. 3. 22 제7대 총장에 오덕교 박사 취임▶2008. 9. 9 본관 4층에 설교센터 개관▶2009. 3. 3 제8대 총장에 성주진 박사 취임▶2011. 10. 18 본교 도서관에 10만 장서 확보▶2012. 6. 12 경기도시공사와 토지교환 계약 체결▶2012. 11. 1 영자신학연구지『H·T·R』창간호 발간▶2013. 2. 26 제9대 총장에 조병수 박사 취임▶2013. 11. 5 제25회 정암신학강좌 개최▶2013. 11. 7 개교 33주년 기념감사예배 주요 시설 ▶설비▶건물 : 본관(강의실 및 교수 연구실, 행정실, 강당), 도서관, 생활관 등 3개동▶교육용지 : 101,497㎡ 부속 기관 목록▶도서관▶목회대학원▶박사원▶싸이버신학교육연구소▶상담실▶생활관▶선교연구 훈련원▶설교센터▶신학정론사▶정암신학연구소▶출판부▶칼빈사상연구소▶평생교육원▶합동소식사 20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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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0
  • 개혁주의의 본산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바른 신학과 교회와 삶이 살아 있는개혁주의의 본산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1월 7일 수원 영통구 광교중앙로 50 길가 산자락에 자리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경이었다. 들어가다 생활관 앞 잔디에 바위가 우뚝 서 있는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이 학교의 초대 총장 박윤선 박사의 얼이 느껴지는 바위였다. 한국의 세계적 주경신학자 박윤선 박사의 호 역시 정암이시다. 다가가 보니 나다니엘 호오손의 소설에 나오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듯한 그 바위는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 검게 새겨진 비석이었다. 비석에 새겨진 이 글은 합동신학교의 설립이념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1980년 11월 11일 개교한 합동신학교의 설립이념을 이어받아,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교육이념으로 교회의 교역자와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이다. 그 이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바른 신학 "바른 신학"이란 칼빈주의 신학(혹은 개혁주의 신학)을 의미하며 성경의 객관적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롬 11:36)을 높이는 신학을 의미한다. 바른 교회 "바른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와 주인(엡 2:22)임을 인정하고 그 통치를 받는 교회를 의미한다. 바른 생활 "바른 생활"이란 신앙과 윤리가 일치한 생활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마 16:24) 한국교회가 상실한 내적인 성결과 겸손으로 주님의 삶을 닮아 가는 생활을 의미한다. "바른 신학ㆍ바른 교회ㆍ바른 생활" 등 3대 개혁이념의 구현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재확인하고, 그리스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교회를 세우며, 신앙과 윤리가 일치하는 경건 생활을 정착시키는 일이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설립이념이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시간이라며 시간을 내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조병수 박사는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소탈해 보이고 크지 않은데 부드러운 위엄이 있었다. 그에게 성경 읽기는 무엇일까? 그는 그것에 대해 그의 저서 히브리서신학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이제 많이 알겠다 싶으면 또 다시 깊은 신비의 세계로 초대한다. 때로는 그 황송한 은택(恩澤)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탄을 발하지만 때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이 당황한다. 성경이 보여주는 신비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희열이며 전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이며 통증이다. 기쁨에 떠는 까닭은 전에는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은총을 허락 받기 때문이며, 부러지며 아픈 까닭은 다시금 하나님의 요청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저 너머에 있는 무변(無邊)한 세계는 절대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말씀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저쪽의 영역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조금 더 침잠하기 위해서 오늘도 살이 마르고 머리가 희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이며 통증이다. 기쁨에 떠는 까닭은 전에는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은총을 허락 받기 때문이며, 부러지며 아픈 까닭은 다시금 하나님의 요청 앞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한 성경 연구의 시간을 빌려 조병수 총장과 그의 신앙과 삶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어떻게 총신에서 합신으로 가게 됐습니까? “총신대 4년 재학 동안 신림동 교회(길자연 목사 시무)에서 교육전도사를 했어요. 79년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부에 입학한 뒤 군대를 갔어요.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려고 와보니 80년 11월에 설립된 합동신학원으로 신망 있는 교수들이 다 가버리고 안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결정을 못하고 1년 이상을 휴학하고 번역을 하며 지냈어요. 그런 뒤 82년에 합신으로 복학하게 됐어요. 총신생은 그냥 받아주었거든요.” 조병수 총장과의 인터뷰 준비를 하다가 그의 저서 겨울 그리고 봄의 머리말을 읽게 되었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나는 나의 인생에 가장 어려운 일을 겪어야 했다. 그러니까 1996년 11월 21일 목요일 오전 8시, 나의 사랑하는 아내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결혼한 지 15년 7개월 하고 몇 날이 지난 그때... 아내는 반년에 걸친 무섭고 지겨운 항암치료 앞에서 온 몸을 전율했다. 얼굴은 초췌해지고 몸은 수척해졌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이 초췌해져도 나는 더욱 그녀를 사랑한다. 아내의 몸이 수척해져도 나는 오직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줄곧 아내를 머릿속에 떠 올렸다. 아내는 한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다. 작년 가을에 홍콩 애진교회(양영학 선교사 담임)에서 사경회를 인도했을 때 아내가 모처럼 동행하였는데, 집회를 인도하던 중 주위 사람들의 극성스러운(?) 요청에 못 이겨 아내는 바이올린 독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나는 그것이 당분간 마지막 연주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자주 아내의 바이올린을 생각했다. 그것은 참으로 나에게 신기한 힘이 되었다. 사색이 이어지지 않을 때 아내의 바이올린은 선처럼 나에게 사색의 줄이 되었다. 나는 끊임없이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한다.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이 사랑의 글을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드린다. 1997년 8월 북한산 자락에서 -제가 알기로 사모님이 아프시다고 하던데. “아 지금은 괜찮습니다. 재발 우려가 없는 상태입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섭생과 운동이 도움이 됐어요. 95년 녹번동에 있는 염광교회를 맡아 7년 동안 목회를 했어요. 그 기간 신학교는 시간 강사로 강의를 했어요. 목회하랴 강의하랴 참 바쁜 나날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 해 11월 말 아내가 입원을 하게 되었죠. 그때서야 깨달은 게 있었어요. 고린도전서 7장 4절의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라는 말씀이었어요.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성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의 몸을 잘 관찰해 보살피고 관리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게으르면 병에 걸리게 됩니다. 목회는 주님 뜻에 맡기고 아내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사모님하고는 어떻게 사랑하시게 되었나요? “내가 전도사로 시무하는 신림동 교회 유년부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음대 바이올린 전공 학생이라 교회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했어요.” -그 당시 그 교회에 그런 게 있었습니까? 신림동 교회가 제 기억으로는 언덕 끝에 자리한 작은 교회였는데요. “그건 아주 옛날이죠. 그리고 길자연 목사가 음악은 잘 몰라도 형식은 좋아하잖아요. 제 아내가 권사님 딸이었고 부서의 봉사를 아주 열심히 했어요. 저 역시 제가 맡은 부서뿐만 아니라 청년과 대학생들을 그룹별로 조직해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제 아내 집은 바로 교회 뒤에 있었죠. 장인께서 서울대 약대 교수시라서 관악 캠퍼스 때문에 신림동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각 팀을 집에서 성경을 가르쳤는데 아내가 속한 팀은 아내 집에서 하게 되었어요. 아내가 성경 공부에 열성적이고 저 역시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던 터라 자연스레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저는 수업이 끝나면 매일 서너 시간씩 성경연구를 했어요. 아침 식사는 떡 두 개 차 한 잔으로 마치고 어디든 성경 강의를 갔어요. 성경 공부에 열성적이니 누구나 호감을 가졌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내하고의 관계는 성경 공부를 중심한 신앙의 일치가 사랑의 뿌리가 된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는 무엇일까요? “성경적 개혁주의는 포괄적이긴 하지만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죠. 즉 God centered theology입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 중심 신학입니다. 저는 개혁주의를 성경 중심의 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교회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혁주의는 Bible centered theology입니다.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신학은 신학이 아닙니다. 그러한 신학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개혁주의라 외친들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신학은 무늬만 개혁주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를 따르는 목사라면 자신이 성경 연구와 성경 암송에 절어 있어야만 합니다. 루터와 칼빈이 그랬습니다. 개혁주의 전사들이 다 그랬습니다. 성경의 사람이 개혁의 사람이지 개혁의 사람이 성경의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신학이 의미가 있습니다.” -총장님의 사표가 되는 분은 누구인가요? “대학 때 학문에도 굶주렸고 기도에도 굶주렸습니다. 양용의 교수와 새벽 6시 공부와 기도를 하는 팀을 만들고 기도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이는 그 시간이면 박윤선 박사님이 학교 뒷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시는 모습을 늘 마주하게 됐습니다. 50년 연상의 스승님의 경건과 마주치는 체험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윤선 교수님은 50년 차이라 사표가 되어도 늘 실루엣이었습니다. 제가 34세 때 84세로 박윤선 교수님 소천하셨습니다. 그 나이의 격차가 대화의 상대가 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학 때 제 사표가 되신 스승님은 홍치모 교수님이셨습니다.” -홍치모 교수님이라고요? “네. 제게는 홍치모 교수님이 사표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학생에게 자신을 맡기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2학년 때 홍 교수님은 자신의 방의 열쇠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교수님 방에서 자고 라면을 먹고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다 허락하시고 우리를 믿으셨습니다. 목사님도 아니시고 학문도 엷으시지만 선생과 학생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사표가 되어주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영향으로 저 역시 제 방과 책을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허용합니다. 그리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는 Rese 교수님이 학문하는 자세와 강의하는 자세의 사표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분의 학문의 자세는 아침 6시부터 12시까지 아무도 안 만나고 공부에 몰두하십니다. 또 그분의 강의 자세는 반드시 노트가 되어 있는 강의를 하십니다. 한 학기 강의안이 다 노트에 담겨 있습니다.” 조병수 총장은 갑자기 화제를 박아론 교수에게로 돌렸다. “박아론 교수는 강의 시간에 언제나 15분 늦게 들어오고 15분 일찍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박 교수 방으로 찾아가 면회 신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절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찾아갔습니다. 결국 만나서 등록금을 계산해서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30분씩 날짜 계산해서 돈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박 교수가 막 야단치더라고요. 안 물어주면 다시 찾아온다고 당차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조교에게 저 학생 이름 적으라고 말하더군요. 저희 합신 교수는 종치기 전에 교실에서 학생을 기다리고 종치면 마칩니다.” -어떻게 합신 교수가 되셨습니까? “합신 전통은 학생이 재학 시절부터 암묵적으로 교수 요원을 양성합니다. 자질이 있다고 인정되는 학생이 발견되면 계속 관찰합니다. 그리고 조교 생활을 거치게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교수로 합당하다고 인정이 되면 교수 자격을 갖출 때까지 계속 기다립니다. 저 역시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되어 귀국했는데 먼저 교인 500명의 염광교회를 맡아야만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시간 강사로 봉사하게 되었지요.” -총신은 총장을 4년마다 선임하는데 합신은 어떻게 선출합니까? “합신은 전통적으로 순번으로 돌아가며 총장을 맡게 되어 있습니다. 교수 전체가 수직적인 순위가 직급과 학번에 따라 결정이 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초창기부터 연장순으로 총장직을 맡은 전통을 따르게 된 결과죠. 그래서 역대 총장이 박윤선 박사, 신복윤 박사, 김명혁 박사, 윤영탁 박사, 박형용 박사, 오덕교 박사, 성주진 박사 등으로 이어져 저까지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학교 재정은? “등록금 비율이 40%, 후원금이 60%입니다.” -장학금이 항목이 상당히 많은데 어떻게 모금이 됩니까? “교회와 단체와 개인의 후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합신 출신 목회자들이 앞장서 학교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학생이 다 장학혜택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 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순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입니다.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내부적으로 목회자 문제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목회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지배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낮아져야 합니다. 둘째 목회자는 양을 이리와 맹수로부터 지키고 돌보기 위한 목양자 즉 목자입니다. 셋째 목회자는 명예와 부를 좇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날마다 죽어야 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인이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존재를 내세워는 안 됩니다. 우리 역시 고린도교회에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없어져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한국 교회의 외부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기독교를 공격하는 안티 기독교 세력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강하기까지 합니다. 둘째 자유주의 정신이 강하게 압박해 오고 있습니다. 셋째 이단이 흥왕합니다. 넷째 타종교가 강세입니다.” 조병수 총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장을 잠시 응시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내부적인 문제로 목회자의 치유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단 목사가 되면 치유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서 소수의 정예를 키워야 합니다. 안티 기독교 세력처럼 저희 합신은 동아리 모임을 적극 권장하고 또 다양합니다. 성경 연구, 선교, 여러 학회 등의 동아리를 비롯해 사회문제를 다루는 동아리, 청소년 문제를 위한 동아리 등의 전문 분야로 나뉘어 활동을 하게 합니다. 교수가 적극 나서서 감독하고 지도해 줍니다. 그들이 나중에 안티 기독교 세력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총신의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무엇보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단과 학교가 명예에 대한 집착과 크기에 대한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작게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교수들도 문제입니다. 홍치모 교수님은 학식이 낮으셨지만 스승의 인격과 태도가 높아 학생과 일대일의 대응관계가 가능하셨고 제자의 신뢰와 존경을 얻을 수 있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아 하시는 성경 말씀이 있다면? “사도행전 24장 16절입니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사람이란 하나님 앞에서는 양심이 거리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아 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진노가 더디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바로바로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우리는 다 같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2014-01-20
    •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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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20
  • 하나님의 연애편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리고 오랜 기간 헤어져 있을수록 전달되어온 편지야 말로 그 내용이야 어떻던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깊이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온 편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성경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보내시는 연애편지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에 어느 연인들이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을 그렇게 쉽게 내 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한마디로 그런 얘기다. 성경을 전체로 여러 번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구구절절한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한 사랑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죄를 범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원수를 위해서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원수를 위해서 대신 죽게 하시고, 그 원수를 아들로 삼아서 영원히 함께 사시겠다는 사랑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받게 되면 내용이 아무리 길어도,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단숨에 읽어버린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다가 나중엔 다 외워 버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성경)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너무도 좋아서 읽고 또 읽고, 그래서 마침내 그 내용을 다 외워 버린 사람이 인류역사가운데서 과연 몇이나 될까? 하나님께서는 자주 자주 우리 자신들의 행복과 형통함을(수1:8) 위해서 날마다 읽고, 마음에 새기고(잠3:3), 묵상하며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다.(신6::4-9)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사랑하셔서 20여년 전부터 요한선교단을 세우시고 성경전체를 한자도 빼지 않고 사람이 다 읽고 암송하는 성경통독암송훈련의 운동을 일으키셨다. 처음에는 일주일간, 다음에는 5박6일, 다음에는 4박5일, 그리고 현재는 3박4일, 때로는 2박3일에 신구약 전체를 통독하게 하셨다. 단숨에 하나님의 사랑의 연애편지를 읽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르겠다. 우리 사람들은 연애편지를 받아 읽고 기뻐하고 감격해 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리고 반드시 답장을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답장을 기다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을 여러 번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답장을 얼마나 기다리고 계신지를 알게 된다. 너무 너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더욱 더욱 사랑해 주시고 싶으셔서 그러하시단다(요14:21). 그 답장은 무엇일까? 말씀대로 구하는 기도가 아닐까(요15:7)?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로 파송된 선교사님들이 현지에서 현지어로 성경을 통독하고 암송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마침내 제2의 종교 개혁을 일으키시기를 원하신다. 이 일이 요한 선교단에게 주신 사명이지만 또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이라 확신한다. 2014-01-12
    • G.MISSION
    • G.SERMON
    2014-01-13
  • 이승구 박사의 신학논단 -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단순한 말로 표현된 제칠계명은 상당히 포괄적인 함의를 지닌 명령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포괄적인 제1계명과 제10계명과 함께 7계명이 십계명 가운데서 가장 많이 범해 지고 있는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계명의 말씀이 얼마나 포괄적인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계명의 적극적 의미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제 7계명의 가장 적극적 의미가장 적극적인 의미에서 생각하자면 제7계명은 하나님께서 내신 성적인 정체성과 성적인 관계를 가장 제대로 드러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의도를 가지셨고(창 1:26),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창 2:18)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창 1:27; 2:7, 18-22).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으로는 남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로서의 특성(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성성)을. 그리고 여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자로서의 특성을(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성성)을 가장 충분히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조차도 무엇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성성인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성성인지 잘 모르고 제대로 드러내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심지어 하나님을 잘 섬겨나간다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과연 하나님이 의도하신 남성성, 하나님이 의도하신 여성성이라는 것이 별도로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까지는 남자는 하지 못하는 일인 아이를 낳는 것에서만 여자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를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극치 상태에서는 아이 낳는 일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다 중성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아이 낳음 이외에 남자의 남자로서의 특성, 여자의 여자로서의 특성이라는 것이 아이 낳은 일이과 그것과 연관도 기능들과 상관없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고 하나님의 의도에 비추어서 남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답게, 여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자답게 나타나는 일에 힘을 쓰고, 급기야 부활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남성성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성성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모든 사람이 다 똑 같은 특성을 가지지 않을 것이므로 극치 상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도 다양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기 다른 남자들이 참으로 다르지만 모두가 참된 남성성을 드러낼 것이고, 각기 다른 여자들이 역시 각기 다르지만 모두 참된 여성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몸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늘 낙원에 있는 상태에서도 남자의 영혼은 남자의 영혼으로서의 특성을 드러내고 여자의 영혼은 여자의 영혼으로서의 특성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몸의 형태와만 연관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람의 모습을 잘 드러내되 하나님의 창조에 따라 어떤 사람은 남자로서의 인간적 특성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여자로서의 인간적 특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남자로 창조된 사람들은 남자로서의 사람의 온전한 특성을 드러내고, 또 여자로 창조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여자로서의 특성을 드러내려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인간적 특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의식하고 구현하는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어린 아이들도 해야 할 일이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해야 할 일이며, 하늘에 있는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혼도 하는 일이며, 부활한 사람들로 할 일입니다. 우리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드러냄은 우리들의 고유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땅을 사는 동인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우리들의 정체성을 잘 구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춘기에 이른 청소년들과 혼인 이전의 청년들도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의 한 부분인 성정체성을 잘 의식하고, 앞으로 혼인하여 살 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적인 관계를 잘 이루기 위해서 자신들을 순결하게 하며 잘 준비하여 가야 합니다. 그것도 7계명을 잘 지켜 가는 일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이른 사람들은 이런 특성의 따라서 서로를 갈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나 혼인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와 여자의 하나됨의 실현을 모든 측면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같이 추구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이 땅 가운데서 구현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고, 심리적으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적인 하나됨과 심리적 하나됨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sign)와 상징(symbol)으로 물리적인 하나됨(육체적 하나됨)인 성적 관계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의식하면서 성적인 관계를 하는 것이 제 7계명의 적극적 함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적 관계는 혼인 관계 안에서만 허락된 것입니다. 혼인 관계 안에서 주어진 여러 축복들 가운데 하나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일입니다. 혼인한 사람들은 함께 하나님을 섬겨가며, 함께 공동의 사명을 이루어 가며, 함께 약속의 열매요 생명의 열매를 받아 양육하는 은혜도 얻으며, 평생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돕고, 사랑하며, 가장 가까운 친구로 있는 복 등의 여러 복을 누리도록 축복 받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각자의 정체성을 분명히 의식하며 드러내는 것의 한 부분으로 자신의 창조 받은 성적인 정체성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혼인 관계 아래 있도록 하신 기간 동안 영적, 심리적 하나됨의 표로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에 따라 성적인 관계를 잘 누려 가는 것이 7계명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적인 관계는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문화 명령을 수행하여 가는 하나님을 섬기는 부부가 하나님 섬겨가는 일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관련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과 관계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관련 없이 그 사람과 혼인하여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사실은 하나님과 관련 없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제7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후에 언급할 것들만이 7계명을 범하는 죄가 아니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행위 전체가 다 7계명을 소극적으로 범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제 7계명을 적극적으로 범하는 일그렇다면 제7계명을 적극적으로 범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혼인 관계 밖에서의 모든 성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할 때 인간은 모든 타락한 마음의 생각에 그대로 노출되어(롬 1:21-32) 온갖 성적인 범죄를 범하게 되는 데 그것을 막는 명령이 제 7계명입니다. 물론 가장 현저한 것이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을 “간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혼인 관계 밖에서의 성적인 행동만이 간음이라고 하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그런 경향을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말씀하시면서 타락한 인간들의 문제를 잘 드러내신 것입니다. 혼인 관계 외의 있는 사람에게 대하여 마음속으로 성적인 생각을 하여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는 이 말씀의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혼인 관계 밖에서의 모든 성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 7계명을 어기는 죄라고 한 것입니다. 과거의 거의 모든 시대와 마찬 가지로 우리 시대에도 성적인 죄를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성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우리들에게도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성적인 일탈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시대에 더욱 더 기도하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를 따라 가는 것은 언제나 심각한 문제라고 성경이 늘 경고하고 있는 것인데(롬 12:1-2), 우리 시대에 우리들도 그런 상황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이 시대를 따라 가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경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부터 잘못된 생각이 나타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원칙에 충실해야만 우리들은 7계명을 범하는 일에서 멀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들과 적극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1) 우리 마음을 늘 하나님으로 가득하게 하는 일이 최선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에 대한 책들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 보며, 그런 세계관에서 세상과 관여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을 잘 누려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3) 건전한 교회의 구성원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여 가는 일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를 역할을 제대로 하여가면 하나님과 함께 살며, 제대로 된 가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 역할을 하지 않고, 건전한 가정을 누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교회의 지체 역할을 하여 나가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을 잘 지키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동성애 문제와 7계명그런 뜻에서 보면, 남성이 남성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급기야 성적인 관계를 가진다든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성적인 관계를 가기게 되는 이른 바 동성애적 정향과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내신 창조 원리에 반하는 정향과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로마서 1장 26절-27절을 잘 묵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동성애적 정향과 동성애는 7계명을 범하는 성향과 행동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죄악된 성향과 죄악된 행동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이를 인간의 악의 목록 가운데서 현저한 것의 하나로 여기면서 논의하였다는 것은 이것이 현저한 죄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만이 7계명을 어긴 죄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동성애도 타락한 사람들의 성적인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모든 죄를 다 심각한 죄로 여겨야지 그 중의 어떤 것만이 더 큰 죄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 동성애를 비롯한 특정한 죄를 아주 심각하게 여기면서도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죄 속에 있음을 잘 고발하는 소설들이 잘 드러내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우리가 경멸하듯이, 우리들이 동성애 같은 것을 심각한 죄라고 하면서도 우리들 가운데 심각한 죄가 있으면 이 세상은 우리들을 경멸하고, 안타깝게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경멸하고, 심지어 하나님도 경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동성애만이 아니라, 동성애를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혼인 관계 밖에서의 모든 성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 7계명을 적극적으로 어기는 죄악이라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동성애적 성향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도와 관련해서 자신들의 성향을 고쳐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바르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소극적으로는 그런 성향이 실제화 되지(practice)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들은 온전히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 대하여 의도하신 삶은 "영적이며-심리적이며-육체적인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게끔 애쓰는 것이 7계명을 잘 지켜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가정을 잘 드러나게 하는 일이 우리가 힘써 행할 일의 하나라는 말입니다. 가정 안에서 사랑도 있고, 같이 식사하는 일도 있듯이, 성 정체성도 있고, 성적인 관계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포함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7계명의 적극적 의도를 더 깊이 묵상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남자들과 여자들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과 자녀와 하나님의 의도하신 자녀 교육과 가정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7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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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3
  • 필리핀 재난 그리고 교회 건립
    전국남전련 필리핀 개척교회 기공예배 전국남전련 회장 양성수 장로와 대한교회 윤영민 목사(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이재천 장로(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11월 8일(현지 시각)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 중부 지역은 폐허로 변했다. 사상 최고 속도의 태풍이 불어닥치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해일이 도시 전체를 뒤덮으면서 피해 지역은 아비규환이 됐다. 하이옌이 관통한 필리핀 중남부의 섬 지역이 직격탄을 맞았다. 레이테섬의 최대 도시 타클로반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인구 22만명의 타클로반에서 1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시 관계자가 말했다. 인근 사마르섬에서도 사망·실종자가 2300여명에 이르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하이옌이 지나간 피해 현장은 참혹한 상태라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시신이 물에 떠다니고 무너진 건물 잔해와 쓰러진 나무가 진흙더미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타클로반 공항은 쓰레기장처럼 변했다. 현지 주민들은 태풍이 지나간 지역은 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마누엘 로하스 필리핀 내무장관은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보니 해안에서 내륙으로 1㎞쯤 되는 지점 사이에는 서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며 "마치 쓰나미(지진해일) 현장 같다"고 말했다. 현장을 둘러본 유엔 재해조사단 관계자는 "22만명이 희생된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참사 못지않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인명 피해 규모가 크게 늘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명 관광지 보라카이에서도 관광객들이 긴급 대피했으며 일부는 일시적으로 고립되기도 했다. 피해 지역은 전기와 수도가 끊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부상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 지역에 도착한 한 구조대원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으며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는 하이옌의 위력 때문이다. 미국 관측 자료에 따르면 하이옌은 순간 최대 풍속이 시속 379㎞(초속 105m)로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록됐다. 이재민들로 가득 찬 대피소 여러 곳이 태풍에 휘말려 무너지기도 했다. 태풍으로 쑥대밭이 된 타클로반의 거대한 무덤에 아이들이 시체를 나르고 있다. 큰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필리핀에 전국남전련(회장 양성수 장로}은 12월 2일부터 5일까지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방문, 무슬림 지역인 제너럴산토스에 ‘남전교회’ 건축 기공예배를 드렸다. 제너럴산토스는 민다나오 다바오 시에서 자동차로 4시간 이상 걸리는 오지이자, 무슬림 반군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사지(死地)라 불린다. 또 교회조차 전무한 곳으로 전국남전련은 대한교회(윤영민 목사)와 힘을 합쳐 대지 600평에 건평 100평 규모의 예배당과 학교를 세울 예정이다. 예배당과 함께 세워지는 학교는 대한교회의 지원으로 컴퓨터 교육 등이 진행된다. 전국남전련은 예배당 건축 외에도 주민들을 위해 우물 파기와 농구대 설치도 약속했다. 4일 현지에서 열린 기공예배는 전국남전련과 대한교회 방문단을 비롯 현지인 300여 명이 참석해 은혜롭게 진행됐다. 예배는 양성수 장로의 사회, 이재천 장로(증경회장) 기도, 강만제 장로(서기) 성경봉독, 윤영민 목사(대한교회) 설교, 김상천 선교사 인사, 박영수 장로(총무) 광고 순으로 진행됐다. 전국남전련 회장 양성수 장로는 “전국남전련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예배당을 세우게 돼 감사하다”며 “이번 회기 동안 해외개척교회 건축에 더욱 힘쓰겠다”고 인사했다.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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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23
  • 이승구 박사의 신학논단 - “살인 하지 말라”
    “살인 하지 말라” 제 육계명은 십계명 안의 많은 금령들과 같이 “-- 하지 말라”는 금령의 형태로 되어 있지만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결국 진정한 생명 신학과 생명 운동의 적극적 기초가 되는 말입니다. 현대 사회와 같이 인간의 생명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무시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들이 강조하고 나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 진술과 운동의 근거가 여기 있다고 여겨집니다. 먼지 이 계명의 단순한 의미를 생각해 보고, 더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 본 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해 가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살인 하지 말라”는 금령의 단순한 의미 일단 이 계명이 명령하는 바는 매우 단순하고 분명합니다(straightforward).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거나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금령을 생각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지 않기만 하면 그의 생명을 해하여도 이 금령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찬동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금령을 듣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빼앗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에 그 어떤 해를 가하는 것 모두를 이 금령이 금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금령은 모든 살인과 살인 교사, 그리고 자살과 사람들을 자살에 이르도록 하는 모든 것을 금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금령은 인간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살인 하지 말라”는 금령의 좀 깊은 의미 여기서 좀더 나아가 보십시다. 그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거나 빼앗지 않으면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일까요? 이 금령을 주신 하나님의 입법자의 의도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 명령의 법의 정신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법을 내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밝히시면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 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고(마 5:23), 형제들과 화목하고 사화(私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24, 25절).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드러내주신 입법자의 의도에 의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분노하거나 욕하거나 무시하는 그 모든 일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분노의 대상, 욕의 대상, 비하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화목해야 할 상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법자의 의도에 의하면 사람들의 사회는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대립하고 욕하고 비하하는 관계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 사회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 의하면 인간들은 서로가 화목하고, 용서하고 감싸 주고, 서로를 높이고 존중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는 관계를 가지여 한다는 것입니다. 욕하는 우리 사회, 서로 비방하는 우리 사회, 서로 비하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이런 입법자의 의도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살인 하지 말라”는 명령의 더 적극적 의미 더 나아가서 “살인 하지 말라”는 명령은 그저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 이에서 더 나아가서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성경의 독자들은 언제나 이 명령에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들은 그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하지 않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이 명령의 적극적 함의를 생각해서 우리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유지되고, 더 나아가 증진되도록 하는 일을 하도록 명령받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저 해를 가하지 않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를 지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창 4:9 참조). 자신과 형제의 생명이 보존되고, 더 좋게 되도록 힘쓰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질(quality of life)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이 있도록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의미 이 모든 것의 기독교적 함의는 매우 분명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이 가장 온전한 상태에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기독교적으로 볼 때 우리 생명의 가장 온전한 상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지닌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은 결국 생명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보려는 모든 노력은 다 죄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맹목(盲目)인 채 인간의 생명 그 자체에만 몰두 하는 것은 결국 진정한 생명을 빼앗는 일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물리적 생명과 그 생명의 질에 대한 몰두가 어떻게 하면 죄이고, 사실은 진정한 생명을 앗아 가는 것이 되는 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고서 인간 생명의 질을 발전시키는 노력, 인간을 발전 시켜보려는 교육이 사실은 인간을 파괴하며 그들을 진정한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를 통해서도 잘 보아 왔고, 근자의 우리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피부에 와 닺게 아주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 생명의 증진시키려고 노력을 하여 진정한 생명을 죽이는 자들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단이 사람을 찔러 죽이거나 하지 않고서도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된 것처럼(요 8:44), 우리도 여러 방식으로 살인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을 기독교적으로 실현하려고 할 때는 결국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게 되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여기 에서 진정한 생명 운동의 출발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엡 2:1, 5).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영적으로 다시 살아 난 사람이 그 안에 진정한 생명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그 안에서 약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 생명인 영생을 가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생명, 즉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하는 것입니다(요 17:3).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의 더 깊은 의미 속으로 날마다 들어가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생명적 교제 관계를 계속 자져 나아가기에 날마다 더 “풍성한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더 깊이 있게 하나님과 교제하여 나간다는 말뿐이 아니라, 그 결과 이 세상 속에 진정한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잘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여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고 있는 이 진정한 생명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어서 그들도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일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며, 그 일을 위해 힘을 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전도와 선교에 힘을 다하는 이유는 이것이 진정한 생명을 전달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생명이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은 인간의 물리적 삶(physical life)은 무시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물리적인 사람도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선의 상태에 있도록 애를 씁니다. 일단 물리적 삶이 있어야 그 안에 진정한 생명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의도에 의하면 그 어떤 사람의 물리적 생명도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물리적인 삶도 이 세상에서 일정한 한도 내에서 증진되기를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의 유지와 복지(wellbeing)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병원을 세우고, 구호 기관을 마련하고, 학교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보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존중 되어야 하고, 그 삶의 질이 점점 더 나아져야 하겠다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생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물리적인 삶은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는 수정 순간부터라는 것을 아주 자명한 것으로 여기기에 수정난과 배 속의 배어와 태아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도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낙태 반대 운동에 힘쓰고, 이혼모들이 아이를 낳도록 권면하고, 입양에 앞장서며, 그 모든 것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과 재정적 지원을 감당하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끝은 영혼이 몸으로부터 떠나가는 순간인 심폐사의 순간으로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형태의 안락사에 찬동하거나 동의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존엄사가 진정 존엄사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신 물리적 생명이 자연스럽게 그쳐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니고 생명의 근원이시요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생명의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육계명과 성경 전체의 뜻에 근거해서 이 땅 가운데 진정한 생명 운동에 힘쓰는 사람이 됩니다. 진정한 생명운동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시작하여 창조와 구속으로 지금까지 하고 계신 일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생명 운동, 살리시며 살아가게 하시는 살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생명 운동, 참된 살림의 꿈틀거림은 인간 스스로가 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운동을 발견하고 하나님에 의해 살게 되었고, 스스로 죽었으나 다시 살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리시는 살림 운동에 동참하여 가는 일일 뿐입니다. 일반은총적 함의: 사회적 생명 운동의 토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그 생명이 참으로 인간 생명답게 되도록,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 경배 하며 찬양하고, 기도하고 의존하며, 그 하나님의 뜻을 가르침 받아서 그 뜻이 이 땅 가운데 구현 되도록 하는 일에 힘쓰지만, 불신자들은 믿고 돌아 올 때까지는 계속해서 서로 죽이고 미워하고 비난하는 그 런 사망운동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깊이 있게 살펴보면, 결과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이 복음에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지옥과 같은 사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죄악이 성행해도 지옥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나아가면 지옥에 던져진다는 사살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궁극적 지옥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아직은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 차이가 있지만, 첫째로 이 세상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생명 운동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작용해서 죄악이 극단적인 상황에 까지는 가지 않도록 억제 하시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살인 하지 말라”는 금령의 일반은총적 함의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살인하지 말아야 하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주 극악무도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느슨한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일반 은총 가운데서 이 사회가 그래도 유지되도록 하신 죄의 억제의 한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가 주어질 때 저할 할 수 없는 특별은총과는 달리, 일반은총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저항할 수 있으므로, 어떤 사회에서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좀 더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어떤 사회에서는 그것이 상당히 무시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로서는 위에서 언급한 기독교적 관점에 근거해서 사람들의 생명을 해하지 않고, 더 온전히 해 가는 진정한 생명 운동의 길로 나아가면서, 그것을 일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따라 오도록 하는 폭 넓은 사회 운동을 하게 됩니다. 같은 생명 운동인데 그것이 그리스도인 안에서는 구속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헌신하여 하나님의 생명 운동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지만, 이 세상 속에서는 그저 인간 생명을 존중하게 그것을 위한 운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동기가 다르고 궁극적인 방향이 다르지만, 이 세상 속에서는 그저 인간 생명을 위하는 생명운동에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협력해 가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낙태 반대 운동이나 모든 종류의 “생명을 위하는 입장”(pro-life position)에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같이 참여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다른 비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생명을 위하는 활동에 참여 할 수 있도록 권하고 노력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때에는 기독교에서는 인간 생명을 수정 순간부터 심폐사의 순간까지를 온전한 인간 생명으로 보기에 존중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가치를 보급하기도 해야 하지만, 이런 가치를 확산하는 비기독교적 설명도 같이 시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기독교적 이해를 가지지 않고서도 수정 순간부터 심폐사의 순간까지를 인간의 물리적 생명으로 여기면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적기는 하지만 있으므로 그런 분들의 설명의 시도를 도와서 인간의 물리적 생명도 여러 방도로 보호해 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사유와 활동의 종국적이고 분명한 근거는 이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제 육계명은 오늘도 이 세상 속에서 강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2013-11-25
    • G.MISSION
    • G.SERMON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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