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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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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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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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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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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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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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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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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3_ 개구쟁이 어거스틴
    Saint Augustine and Saint Monica 개구쟁이 어거스틴 찬양이 자지러졌다. 지휘자의 손놀림이 불길 삭듯 사그라지자 대원들이 슬며시 앉았다. 백발의 목사님이 설교단에 몸을 드러냈다. 눈은 형형했다. 핼쓱한 볼을 사이한 입술에서 말씀이 울렸다. 총회설립 80주년을 기리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목사 장로들의 눈을 띄우고 마음을 열게 하고 영혼을 밝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말씀을 전하는 나이든 종에게는 이제까지의 드높은 명성을 새삼 되새기게 해주는 기회였다. 80년 된 교단에 딱히 알맞는 주의 종이었다. 날마다 열매 맺는 삶을 시냇물이 흐르듯 전하는 종의 모습은 20여 년 전 삼각산 어느 기도원에서 성결교 교역자들의 심령을 말씀의 불로 희나리 태우듯 하던 그때 그 능력 있는 사자였다. 불땀 좋은 나무처럼 상기된 표정의 한 목사가 전화통에 소리 질렀다. “와 보세요. 나도 이렇게 은혜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생나무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르는 능력 있는 설교자는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종인가! 그런 종을 소속 목사로 두고 있는 교회와 총회는 그게 얼마나 큰 자랑이고 복인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거스틴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다. 그는 자기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났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도통, 한 적이 없었다. The Conversion of St. Augustine by Fra Angelico 소년 시절 어거스틴은 동네 개구쟁이였다. 그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 동네 말썽꾸러기들과 신나게 놀다가 이웃 아저씨네 과수원에 주렁주렁 달린 설익은 배를 서리했다. 그것은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장난삼아 하는 못된 서리였다. 그는 참회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린 배를 닥치는 대로 따 무더기로 쌓았죠. 그러나 하나도 먹질 않았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한번 깨물어 보고 돼지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건 비열한 짓이었지만 난 그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왜 그랬느냐고요? 살인자는 살인 그것만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살인자는 보복을 원하거나 자신이 죽이는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고 싶어 하죠. 우린 전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배나무에 달린 열매를 도둑질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게 아마 나 혼자뿐이었다면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죠. 집단 심리가 우리를 함께 어울려 그런 짓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야 가서 배서리나 하자'고 말했을 때 누구나가 그런 범행에서 몸을 뺀다는 걸 수치로 여겼고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할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린 과수원 주인이 배나무가 도둑맞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면서도 곤한 잠에 떨어져 자고 있을 때 그에게 입히는 못된 장난을 생각하고는 킬킬거렸습니다. 그건 참으로 비열한 짓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걸 생각만 해도 욕지기가 치밉니다.”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늦게까지 이교도였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아들 때문에 무척 속을 썩었다. 그녀는 자기 아들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언제나 소망했다. 속을 태우다 못해 감독에게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더니 감독은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많은 눈물을 흘린 아들을 결코 잃어버릴 리가 없을게요.” 202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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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3-14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주신 말씀_ 시편 97:12 12.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어제 송구영신 예배 말미에서 신년을 축복하기 위해 주시는 ‘말씀 바구니’에서 내게 주신 축복의 말씀은 바로 시편 97:12절이다. ‘의인이여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나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신 하나님! 이보다 큰 축복의 말씀이 어디 있겠는가? 눈곱만큼도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나를 의인이라 인정해주신 하나님! 내가 한 것이라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인데,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오직 은혜로 ‘의인’ 삼아 주신 것이다. 금년에 나는 수지맞는 삶을 살 것 같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수없이 많은 기적을 내 생활 속에 경험하게 하시며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시고 대적의 눈앞에서 내 공의를 드러나게 하셨으며 승리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 나는 오직 그런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였을 뿐인데 의인의 축복으로 신년 초를 시작케 한 것을 보면 나는 금년에도 ‘엄청난 복’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의인으로서 금년 1년을 살아 보자! 뜻을 정한 바 하나님 중심의 삶을 기록하고 나의 선한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게 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영성의 하루가 365일이 되게 하리라! 그래서 내 인생의 2017년도는 가장 복 받는 한해로 기록될 것을 믿는다. 아멘.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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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1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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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3-07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주신 말씀_창세기 1:1~2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역사의 시작, 그리고 오늘 2017년 1월 1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시간은 오늘을 2017월1월 1일이라 지명하고 있다.(아담의 때로, 부터는 약 6천 년이 흘렀다지만) 2017년은 예수님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세월이 흐른 시간의 합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친히 성육신하시어 그분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대 사건을 정점으로 우리 인간은 한 해, 한 해 역사를 계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2017년 첫날 새벽녘에,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라는 존재를 내어놓고 살펴본다. 내 입장에서 볼 때 나라는 사람은... 한줌의 흙덩이? 혹 벌레? 시간 앞에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 죄악 덩어리! 그러나 2017년 전 이 땅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 부르시고 양자로 삼아 상속자의 권리를 주셨으며 나아가 사망을 폐하여 주시고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보장하셨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2017년을 사는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한들 하나님께 갚음이 되겠냐마는 나는 조금이나마 매일, 매일 내게 계신 하나님을 기록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노래할 것이라 ‘주여 지혜와 명찰을 허락하시고,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였으니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2021-03-04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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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4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1_ 암브로시우스의 하루
    암브로시우스의 하루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흐드러지게 웃음 짓는다. 공원마다 벚꽃이 만발해 사람들이 감탄을 내지른다. 일본인이 그 꽃을 국화라고 해서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애꿎은 꽃이 무슨 죄가 있는지..... 일본 사람이 좋아하는 생선도 다 미워해야 될 판이다. 세월이 가고 있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크리소스톰도 죽었다. 안디옥 사람들도 그를 잊은 지 오래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어떤 변화 속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교회를 지킨답시고 경찰을 불러 교회 문에 경비를 세우던 목사님도 세상을 떠났고 뉴욕과 LA를 오가며 전 세계 선교가 어쩌구하던 젊은 목사도 돌연히 하늘로 차출 당했다. 어떤 손 큰 여자는 감방에서 10년을 공양드리고 나오더니 거부가 됐단다. 세상 참 재미있다. 그 여자 그 재미에 감옥 한 번 더 들어갈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돈이라면 애비 자식 간에도 싸우고 돈 때문에 재판하는 사람의 판결도 오락가락하는 판인데 말이다. 서방교회가 로마제국으로 물밀듯 밀려드는 야만인들 때문에 심한 홍역을 앓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이야기를 좀 말해야 될것 같다. 로마인은 변경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로마는 경계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행정부를 이태리 반도 상부에 있는 밀란으로 옮겼다. 이 지역을 담당한 관리는 암브로시우스였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세례는 받은 적이 없었다. 밀란의 감독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의 교인들을 돌보아야 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했다. 삼위일체니, 아니니 하는 아리우스 논쟁이 아직 어떤 결말을 본 상태가 아니라서 니캐아 파와 아리우스파가 각기 자기파 사람을 밀란의 감독자리에 앉히려고 했기 때문에 큰 분란이 일어났다. 암브로시우스는 폭동을 우려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교회로 갔다. 그가 교회로 걸어 들어갈 때 한 아이가 외쳤다.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그러자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소리 질렀다.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교인들의 소리를 가라앉힐 수 있는 말을 암브로시우스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세례도 받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세례와 성직자의 기초 과정을 대충 마치고 일주일 만에 감독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그는 제롬이나 크리소스톰처럼 수도사 생활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수도사들을 존경은 했었다. 어느 날 공무 수행차 교회에 들렸다가 인생행로가 바뀐 암브로시우스는 감독이 된 후 수도사들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암브로시우스는 교회 일에 참견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통치자들에 맞서는 데는 크리소스톰과 같은 용기를 그대로 지녔다. 그리고 그는 수도사로서보다는 행정 관리로서 더 많은 훈련을 받았던 터라 그런 일에는 어떤 성직자보다도 더 성공적이었다. 그가 맞닥뜨린 가장 큰 최초의 싸움은 유스티나 황후와 벌인 것이었다. 유스티나 황후는 아리우스파를 지지했다. 그녀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파를 위해 바실리카예배당을 하나 밀란 시에 마련해달라고 암브로시우스에게 요청했다. 그는 일언 지하에 거절했다. 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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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2-2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0_ 변함없는 황금
    변함없는 황금 설교를 마치고 교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악수를 할 때 교인이 “은혜 받았습니다”를 말하며 고개를 숙이면 설교자는 으쓱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그런 말을 듣지 못하는 날이면 괜스리 심사가 편치 못하다. 크리소스톰이 설교를 마치고 번들번들한 머리를 약간 숙이고 강단에서 내려왔다. 우르르 교인들이 몰렸다. 사람마다 그의 손을 잡으며 “은혜 받았습니다”느니 “감명 받았습니다”느니 했다. 대머리 설교자는 꼬깃꼬깃한 회색 수염의 입에 웃음을 머금고 말을 받았다. “당신의 행동으로 은혜받았음을 보여 주시오” 그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주머니 단속을 잘 하고 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창문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갈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는 교회 안에서 소매치기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안디옥과 달랐다. 안디옥에서처럼 아무나 교회를 들락거릴 수 없었다. 교인들의 대다수가 지체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머리 설교자는 황금의 입이었기에 변할 수 없었다. 황금의 진정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크리소스톰에게 반드시 좋지만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은 크리소스톰을 몰랐다. 그래서 그가 안디옥에서 했던 것처럼 부자들 귀에 거슬리는 설교를 스스럼없이 했을 때 사람들은 입이 나올 대로 나와 툴툴거렸다. 그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차림을 비판하자 그게 생활이다시피 한 황후와 지체 높은 여인들은 샐쭉해졌다. 그럼 우린 뭘 하며 살라는 거냐며 입방아들을 호되게 찧었다. 못생긴 게 꼴값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설교를 굉장히 잘 한다고 해서 납치까지 해서 데려다 놨더니 설교를 잘 하기는커녕 심사만 뒤틀게 만든 괴이한 위인이었다. 황후가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는 옆의 동전 그림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성직자들에게도 자기처럼 엄격하게 살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성직자들은 뜨악한 표정을 짓고 그가 없는 데서 갖은 불평을 다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밥술이나 먹고 행세깨나 하는 사람 쳐놓고 크리소스톰이라고 하면 고개를 젓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더군다나 멀리 있는 이집트 알렉산드라의 총대주교도 몸이 달아 있었다. 크리소스톰 때문에 자신이 따논 당상격인 콘스탄티노플교회를 못 맡는다고 애가 달아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한통속이 됐다. 그들은 고개를 맞대고 크리소스톰을 어떻게든 몰아내기로 작당을 했다. 정계와 경제계와 교계가 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쳤다. 기회를 엿보았다. 틈을 노렸다. 구실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탈탈 털었지만 그는 먼지 하나 나지 않았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되지를 않았다. 몸이 달대로 단 모략꾼들과 말쟁이들과 수다쟁이들은 말도 안 되는 죄를 크리소스톰에게 들씌웠다. 결국 크리소스톰은 죄를 뒤집어썼다. 4백4년 그는 다른 곳의 교회도 맡을 수 없게 중죄인으로 정죄 받아 면직과 동시 유배당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혼자 사는 수도사로서 죽었다.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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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2-21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9_ 돈과 황금 입
    John Chrysostom confronting Aelia Eudoxia 돈과 황금 입 오토바이 모는 경찰관이 점심 먹으러 집에 가다 그만 물에 빠져 죽었다. 교통 경찰관의 교통사고인 셈이었다. 시체안치실로 가족과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번들번들한 장화를 벗겼다. 물기 먹은 파란 지폐가 꼬깃꼬깃한 모습으로 땅에 떨어졌다. 그걸 시작으로 몸의 곳곳에서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 둘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고골리의 희곡 ‘검찰관’이라는 작품에 돈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짜 검찰관 흉내를 내는 백수건달에게 뇌물을 들고 온 한 녀석이 이렇게 뇌까렸다. “돈이란 참 좋단 말이야. 떨어뜨려도 찢어지거나 깨지는 법도 없고 손에 쥐고 있으면 화끈거리기까지 한단 말씀이야.” 돈에 찌든 사람들에게 거미처럼 생긴 황금의 입 크리소스톰이 이렇게 권면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보,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으름뱅이 같으니라구. 아 글쎄 저 건너 집 남자 좀 보세요. 저 사람은 방울소리만 달랑거리던 빈털터리었는데 지금은 번듯하잖아요. 그는 모험두 하구 배도 탔죠. 그러더니 한밑천 벌어 부자가 됐잖아요. 부인은 보석을 있는 대로 주렁주렁 매달구선 노새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나다니는 데 당신은 배알두 없수.’” 크리소스톰은 목소리를 바꾸어 말을 이었다. “부인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남편도 이렇게 말할 겁니다. ‘돈 많고 가문 좋은 여자랑 나도 결혼할 수 있었다구. 젠장 누군 뭐 그런 걸 몰라서 안 한게 아니라구. 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당신을 졸졸 따라 다니다 결혼한거지. 당신도 예쁘고 얌전하고 얼마나 상냥하오. 돈이란 먹고 살 정도면 되는 게요. 저 친구야 한 밑천 잡았다지만 돈 욕심에 이웃집 녀석처럼 두 밑천 잡겠다고 뱃길 나섰다가 언제 고기밥 될런지 알 수 없는게요. 나 이렇게 건강하고 당신 보석으로 안 꾸며도 이렇게 예쁘니 얼마나 좋소.’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천국에다 소망을 두고 사십시오. 그러면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크리소스톰은 말하기 곤란한 것들도 아무런 부담 없이 말했지만 안디옥 사람들은 그의 말에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너무도 잘 알았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대머리 크리소스톰의 명성은 로마제국 전역에 퍼졌다. 그의 진짜 이름은 요한이었지만 황금의 입이라는 뜻의 크리소스톰으로 통하게 되었다. 그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자리가 공석이 됐다. 총대주교라는 말은 족장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로마나 콘스탄티노플 같은 대도시의 감독을 높여 부르자는 데서 비롯됐다. 중요한 자리라 걸맞는 명성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내노라 하는 당시의 교역자들이 그곳을 맡고 싶어 몸이 달았지만 가장 주목받는 크리소스톰은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안디옥을 사랑했고 안디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느 날 보쌈을 당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권력자들은 크리소스톰을 회유하고 으르대어 총대주교에 취임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축하했지만 그는 덤덤했다. 20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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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2-13
  • 기독교강요 영어 수업_ 칼빈의 마지막 안녕
    Lesson XXIII 칼빈의 마지막 안녕 Calvin’s Final Farewell 칼빈의 만년(15551564)에 그의 권위는 실제로 겨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자로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다른 국제적인 평판을 누렸습니다. 칼빈의 전기 작가 파커(Parker 2006, pp. 161164)는 그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Last illness In late 1558, Calvin became ill with a fever. Since he was afraid that he might die before completing the final revision of the Institutes, he forced himself to work. The final edition was greatly expanded to the extent that Calvin referred to it as a new work. The expansion from the 21 chapters of the previous edition to 80 was due to the extended treatment of existing material rather than the addition of new topics. Shortly after he recovered, he strained his voice while preaching, which brought on a violent fit of coughing. He burst a blood-vessel in his lungs, and his health steadily declined. He preached his final sermon in St. Pierre on 6 February 1564. On 25 April, he made his will, in which he left small sums to his family and to the collge. A few days later, the ministers of the church came to visit him, and he bade his final farewell, which was recorded in Discours d'adieu aux ministres. He recounted his life in Geneva, sometimes recalling bitterly some of the hardships he had suffered. Calvin died on 27 May 1564 aged 54. At first his body lay in state, but since so many people came to see it, the reformers were afraid that they would be accused of fostering a new saint's cult. On the following day, he was buried in an unmarked grave in the Cimetire des Rois. The exact location of the grave is unknown; a stone was added in the 19th century to mark a grave traditionally thought to be Calvin's. 1558년 칼빈은 열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강요』 마지막 판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일에 매달렸습니다. 마지막 판은 그것이 새 저작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양이 늘어났습니다. 이전 판의 21장에서 새로운 주제들을 더하는 정도가 아니라 현존하는 자료를 광범위하게 다루어 80장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병 회복 직후라 칼빈은 발작적인 심한 기침을 유발하는 설교를 할 때 목소리를 억제했습니다. 그는 폐의 피를 한 통이나 쏟았고 그의 건강은 꾸준히 나빠졌습니다. 그는 1564년 2월 6일 세인트 피에르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4월 25일 그는 가족과 대학에 약간의 돈을 남기는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교회 목사들이 그를 방문했고 목사들과의 고별 대화(Discours d'adieu aux ministres)에 기록된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는 제네바에서의 그의 생활을 조목조목 말하면서 그가 겪은 고통과 역경을 간간히 씁쓸하게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칼빈은 1564년 5월 27일 54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처음에 그의 유해가 공개적으로 안치되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묘지를 보러 오는 바람에 개혁자들이 새로운 성자숭배를 조장한다는 비난이 생길까 두려웠습니다. 그 다음 날 그는 시메티에르 데 루아(Cimetire des Rois) 공동묘지에 표시가 없는 무덤에 묻혔습니다. 무덤의 정확한 장소는 아무도 모릅니다. (300여년이 지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전통적으로 칼빈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는 무덤 하나에 돌을 하나 세웠습니다. 칼빈은 느보산의 모세처럼 그 무덤을 아는 자 없이 죽었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신명기 34:1-6 2021-02-08
    • G.QT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2021-02-08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8_ 목회자 크리소스톰
    11th-century conch mosaic of John Chrysostom from the south-east apse of the nave of the Hosios Loukas monastery 목회자 크리소스톰 바람이 한결 더워졌다. 장로도 정치꾼도 재벌도 대통령 될 꿈에 너나없이 바쁜 시절이다. 이제 봄이 무르익었으니 평양 사람들일랑 금빛 우상 배불뚝이 김일성 형상을 광내기에 바쁠 것이다. 통일은 언제나 되는 건지. 비숍(Bishop)이란 헬라어 에피코포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감독이란 뜻이다. 교인의 생활을 돌본다는 뜻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를테면 초대 교회의 관행을 따른다면 오늘날의 목사란 감독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감독은 목사이다. 대머리 크리소스톰이 감독의 길을 택했다는 것은 목사의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감독으로서의 목자의 삶은 수도사로 맨땅에 잔다거나 목욕하지 않고 나다니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수도사는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신경 뚝 끊고 혼자 지내면 됐지만, 감독은 끊임없이 사람을 상대하고 복닥거려야 했다. 크리소스톰은 안디옥에다 성직자의 영웅적인 삶의 터전을 잡았다. 그가 감독하고 돌보는 교인들은 사도 시대의 활수한 관용을 굴뚝 검뎅이 마냥 까먹었다. 크리소스톰은 사도 시대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힘을 기울였다. 꼬깃꼬깃한 회색 수염을 움찔거리며 황금의 입은 교인들에게 말했다. “돈이란 물과 같은 걸 명심하십시오. 물이 흐르지 않고 괴어 있으면 썩고 말듯이 돈도 그런 것이요. 금식으로 몸을 괴롭게 한 걸로 당신이 할 바를 다 했다고 생각지 마시오. 당신이 금식하는 걸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만일 피의 대가를 치루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런 아름다운 것들은 요구하지 마십시오. 이런 사실을 생각해보십시오. 배에는 여러 준비가 필요합니다. 갑판을 책임진 사람, 조타수, 노를 저을 사람 등이 있어야 합니다. 배가 대양으로 미끄러져 나갑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뒤에 남게 됩니다. 상인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야만인의 땅에 가서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을 겪습니다. 그게 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게 다 당신이 신은 슬리퍼를 잣을 색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냄새나는 그 알량한 발을 덮을 때깔 나는 덧신을 위해서란 말입니다.” 말마다 금과옥조라는 황금의 입 크리소스톰이 눈을 떼록 거리는 신자들에게 혀로 입술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당신의 돈을 아주 효용 있게 가난한 사람에게 쓰십시오. 안디옥에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5만 명은 족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1만 명이나 됩니다. 나머지는 유대인이거나 이교도들이지요. 이제 그리스도인이 물건을 가져와서 사도들처럼 서로 나누어 쓴다면 수도원에서도 그렇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가 돌보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모든 식사가 전체를 위해서 일시에 이루어진다면 경비가 훨씬 싸게 먹힐 겁니다. 수도원에서 배우도록 합시다. 이제까지 수도원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멀쩡한 교회를 때려 부수고 수십억을 쌀자루 털듯 교인들을 들쑤셔 마련해 성전을 봉헌했던 목사님이 지금은 2층에 세를 얻어 감독 생활을 하고 계신다. 예배당 건축에 쏟는 십분의 일이라도 가난한 자와 어려움을 당한 자에게 기울인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부조리에 허덕이지는 않을 성싶다. 일을 안 해도 땀이 솟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큰 교회와 담임목사님들은 냉방기 걱정이 앞설 것이다. 2021-02-06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02-06
  • 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십 계명 탐욕
    Lesson XXII 제십 계명 탐욕 Tenth Commandment Greed 제발 좀 더 주세요. 올리버 트위스트는 성이 안 찬 표정으로 접시를 내밀었습니다. 무엇이라구. 범블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올리버를 노려보았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는 1837년에 출판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묘사한 굶주림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듭니다. 즉 굶주림은 고아원에 있는 소년들처럼 필사적이고 무모하게 만듭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는 허기를 메우기 위해 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 상속권도 동생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음식에 굶주린 사람이 용감해지듯 돈에 허기진 사람도 필사적이고 무모하게 돈을 갈구합니다. 중국 공산당이 정부를 수립한 이래 최악의 부패 스캔들로 불리는 화룽자산그룹의 라이샤오민전 회장 집에서 무려 3톤에 달하는 현금이 발견됐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역대 발견된 현금 은닉 재산 중 최고액이라고 전했습니다. 주요 일간지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財新)은 2018년 8월 10일 중국 최대 자산관리회사인 화룽자산그룹의 전 회장 라이 샤오민의 수사 뒷얘기를 전했다. 이달 초 있었던 화룽그룹의 비공개회의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라이 전 회장은 지난 4월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회장직에서 사임했다. 중국 사정 당국이 라이 전 회장 소유의 집 여러 곳을 급습했을 때 방 곳곳에 쌓여 있던 현금 다발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곳에 모으면 무려 3톤에, 부피로는 3㎥에 달하는 양이었다. 중국 100위안(약 1만6500원)짜리 지폐 한 장의 무게는 약 1.15그램이다. 위안화뿐 아니라 외화도 섞여 있어 총 금액은 2억7000만위안(약 444억4000만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자택에 은닉한 재산의 최고액을 경신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2014년 4월 국가에너지국 석탄사(司)의 웨이펑위안 부사장(副司長) 집에서 발견된 2억3000만위안(약 378억6000만원)이 최고액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수사관들이 지폐를 세기 위해 지폐계수기 16대를 동원했는데 이 중 4대가 과열로 고장이 났을 정도였다. 중국 매체들은 라이 전 회장의 집에서 3t 분량의 현금을 압수했지만 이는 전체 횡령 금액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라이 전 회장은 금융업계의 요직을 역임한 인물로 그가 화룽그룹의 회장직을 맡은 2009년 회사의 순자산은 156억위안(약 2조6000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 순자산은 1826억위안(약 30조55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탐내지 말라는 제십 계명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49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enth Commandment THOU SHALT NOT COVET THY NEIGHBOUR'S HOUSE, THOU SHALT NOT COVET THY NEIGHBOUR'S WIFE NOR HIS MAN-SERVANT, NOR HIS MAID-SERVANT, NOR HIS OX NOR HIS ASS, NOR ANYTHING THAT IS THY NEIGHBOUR'S. 49. The purport is: Since the Lord would have the whole soul pervaded with love, any feeling of an adverse nature must be banished from our minds. The sum, therefore, will be, that no thought be permitted to insinuate itself into our minds, and inhale them with a noxious concupiscence tending to our neighbour’s loss. To this corresponds the contrary precept, that every thing which we conceive, deliberate, will, or design, be conjoined with the good and advantage of our neighbour. But here it seems we are met with a great and perplexing difficulty. For if it was correctly said above, that under the words adultery and theft, lust and an intention to injure and deceive are prohibited, it may seem superfluous afterwards to employ a separate commandment to prohibit a covetous desire of our neighbour's goods. The difficulty will easily be removed by distinguishing between design and covetousness. Design, such as we have spoken of in the previous commandments, is a deliberate consent of the will, after passion has taken possession of the mind. Covetousness may exist without such deliberation and assent, when the mind is only stimulated and tickled by vain and perverse objects. As, therefore, the Lord previously ordered that charity should regulate our wishes, studies, and actions, so he now orders us to regulate the thoughts of the mind in the same way, that none of them may be depraved and distorted, so as to give the mind a contrary bent. Having forbidden us to turn and incline our mind to wrath, hatred, adultery, theft, and falsehood, he now forbids us to give our thoughts the same direction.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십 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 49. 이 계명의 목적은, 우리의 영혼 전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므로, 우리는 사랑과 반대되는 욕망을 모두 마음속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웃의 손해를 초래할 만한 탐욕을 우리의 마음속에 일으키는 생각이 엄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대응하는 것은 반대되는 교훈입니다. 즉 우리가 계획하며 숙고하며 결심하며 시도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이웃의 행복과 이익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외관상 심히 복잡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간음과 도둑질이라는 말에는 간음하려는 욕망과 해치며 속이려는 의도가 포함된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따로 다른 사람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금지를 받는 것은 불필요한 것같이 생각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도(意圖)와 탐심의 차이를 생각하면 문제는 곧 해결될 것입니다. 앞에 있는 계명들에 관련해서 우리가 말한 의도는 마음이 정욕에 굴복한 때에 의지가 의식적으로 찬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런 의식적인 찬동이 없어도 탐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이 허망하고 패악한 것에 찔리거나 유혹을 받기만 할 때에도 탐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앞에 있는 계명들에서 사랑의 원칙이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 행동을 지배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목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의 생각을 제어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즉 우리의 마음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타락한 생각이나 비뚤어진 생각이 전혀 생기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분노나 증오심이나 음란이나 강탈이나 거짓말 등에 기울어 끌리는 것을 금하신 그는 지금 우리의 생각을 동일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로마 제국에서 부유층은 흥청망청 연회를 벌여 1인당 3kg의 숭어를 먹어 댔지만, 물고기의 진가는 도시 시장과 군대 식당에서 발휘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전성기일 때는 고등어 같은 하급 어종이 선원이나 군인의 식사 메뉴였는데, 가벼워서 대량으로 운반하기가 수월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어부와 어부가 잡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세우지 못했을 테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도 웅장한 위용을 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초기 문명은 대부분 강어귀, 호수, 연안 아니면 대양에 접근하기 쉬운 자리에서 꽃피었습니다. 작은 무리에서 마을, 도시, 제국, 국가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 중요한데 강어귀나 호수 등은 어부들이 식량원을 지속해서 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곡물을 재배하기 전까지 인류는 사냥, 채집, 고기잡이로 식량을 획득했습니다. 이중 사냥과 채집은 인류가 발전하면서 각각 목축과 농경에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고기잡이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식량 획득 수단으로서 위상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사에서 농경과 목축이 인간의 정착을 이끌었다면, 고기잡이는 탐험, 교역, 항해 등 인간의 이동 생활을 자극했습니다. 물가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나 조개 등 바다 식량원이 고갈되거나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로부터 식량 처가 훼손되면 풍요로운 어장을 찾아 이동했습니다. 또 고기잡이에 수반된 기술, 특히 배와 관련된 기술은 새로운 대륙을 탐험하고 대양을 건너 더 먼 곳에서까지 무역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북돋웠습니다. 게다가 물고기는 건조하거나 염장 처리하면 가벼우면서도 영양분이 풍부한 식품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갖춰 교역자, 탐험가, 정복자 등에게 이상적인 식량원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도 이 고기잡이와 엄격한 관리로 군사들의 식량을 해결했습니다. 인류는 여전히 물고기를 마구 잡고 있고 어획량은 걷잡을 수 없이 급감했습니다. 저자는 "풍요로웠던 바다를 사막화시키고 싶지 않다면 인류의 탐심을 자제해야 바다에서 계속해 물고기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율법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합니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은 개별적인 죄들을 구체적으로 먼저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완전한 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바로 십계명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십계명이 특별히 가치가 있는 것은 종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첫째 판의 계명들은 그리스도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합니다. 이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이 됩니다. 둘째 판의 계명들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합니다. 이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이 됩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이 요약된 계명들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고 정의하셨습니다. 제십 계명은 모든 계명들 중에서도 가장 계시적입니다. 이 계명은 사람의 마음에 관한 율법의 내적인 성격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악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탐심이 모든 다른 죄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주님께서도 이 죄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5 이 말씀이 교훈하고 경계하는 것은 물질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부리게 되면 다른 사람의 필요에 무관심해지고 냉담해지게 됩니다. 탐심을 가지게 되면 아무리 많은 부를 쌓아도 만족할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의 탐심을 조절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어리석은 부자처럼 많은 것을 쌓았어도 오늘 밤 그 생명을 하나님이 가져가실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6 2021-02-01
    • G.QT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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