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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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XXII

제십 계명 탐욕

Tenth Commandment Greed



제발 좀 더 주세요. 올리버 트위스트는 성이 안 찬 표정으로 접시를 내밀었습니다. 무엇이라구. 범블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올리버를 노려보았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는 1837년에 출판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묘사한 굶주림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듭니다. 즉 굶주림은 고아원에 있는 소년들처럼 필사적이고 무모하게 만듭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는 허기를 메우기 위해 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 상속권도 동생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음식에 굶주린 사람이 용감해지듯 돈에 허기진 사람도 필사적이고 무모하게 돈을 갈구합니다. 


중국 공산당이 정부를 수립한 이래 최악의 부패 스캔들로 불리는 화룽자산그룹의 라이샤오민전 회장 집에서 무려 3톤에 달하는 현금이 발견됐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역대 발견된 현금 은닉 재산 중 최고액이라고 전했습니다. 주요 일간지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財新)은 2018년 8월 10일 중국 최대 자산관리회사인 화룽자산그룹의 전 회장 라이 샤오민의 수사 뒷얘기를 전했다. 이달 초 있었던 화룽그룹의 비공개회의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라이 전 회장은 지난 4월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회장직에서 사임했다.

중국 사정 당국이 라이 전 회장 소유의 집 여러 곳을 급습했을 때 방 곳곳에 쌓여 있던 현금 다발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곳에 모으면 무려 3톤에, 부피로는 3㎥에 달하는 양이었다. 중국 100위안(약 1만6500원)짜리 지폐 한 장의 무게는 약 1.15그램이다. 위안화뿐 아니라 외화도 섞여 있어 총 금액은 2억7000만위안(약 444억4000만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자택에 은닉한 재산의 최고액을 경신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2014년 4월 국가에너지국 석탄사(司)의 웨이펑위안 부사장(副司長) 집에서 발견된 2억3000만위안(약 378억6000만원)이 최고액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수사관들이 지폐를 세기 위해 지폐계수기 16대를 동원했는데 이 중 4대가 과열로 고장이 났을 정도였다.

중국 매체들은 라이 전 회장의 집에서 3t 분량의 현금을 압수했지만 이는 전체 횡령 금액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라이 전 회장은 금융업계의 요직을 역임한 인물로 그가 화룽그룹의 회장직을 맡은 2009년 회사의 순자산은 156억위안(약 2조6000억원)에 불과했지만 작년 순자산은 1826억위안(약 30조55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탐내지 말라는 제십 계명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49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enth Commandment


THOU SHALT NOT COVET THY NEIGHBOUR'S HOUSE, THOU SHALT NOT COVET THY NEIGHBOUR'S WIFE NOR HIS MAN-SERVANT, NOR HIS MAID-SERVANT, NOR HIS OX NOR HIS ASS, NOR ANYTHING THAT IS THY NEIGHBOUR'S.


49. The purport is: Since the Lord would have the whole soul pervaded with love, any feeling of an adverse nature must be banished from our minds. The sum, therefore, will be, that no thought be permitted to insinuate itself into our minds, and inhale them with a noxious concupiscence tending to our neighbour’s loss. To this corresponds the contrary precept, that every thing which we conceive, deliberate, will, or design, be conjoined with the good and advantage of our neighbour. But here it seems we are met with a great and perplexing difficulty. For if it was correctly said above, that under the words adultery and theft, lust and an intention to injure and deceive are prohibited, it may seem superfluous afterwards to employ a separate commandment to prohibit a covetous desire of our neighbour's goods. The difficulty will easily be removed by distinguishing between design and covetousness. Design, such as we have spoken of in the previous commandments, is a deliberate consent of the will, after passion has taken possession of the mind. Covetousness may exist without such deliberation and assent, when the mind is only stimulated and tickled by vain and perverse objects. As, therefore, the Lord previously ordered that charity should regulate our wishes, studies, and actions, so he now orders us to regulate the thoughts of the mind in the same way, that none of them may be depraved and distorted, so as to give the mind a contrary bent. Having forbidden us to turn and incline our mind to wrath, hatred, adultery, theft, and falsehood, he now forbids us to give our thoughts the same direction.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십 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출 20:17


49. 이 계명의 목적은, 우리의 영혼 전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므로, 우리는 사랑과 반대되는 욕망을 모두 마음속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웃의 손해를 초래할 만한 탐욕을 우리의 마음속에 일으키는 생각이 엄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대응하는 것은 반대되는 교훈입니다. 즉 우리가 계획하며 숙고하며 결심하며 시도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이웃의 행복과 이익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외관상 심히 복잡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간음과 도둑질이라는 말에는 간음하려는 욕망과 해치며 속이려는 의도가 포함된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따로 다른 사람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금지를 받는 것은 불필요한 것같이 생각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도(意圖)와 탐심의 차이를 생각하면 문제는 곧 해결될 것입니다. 앞에 있는 계명들에 관련해서 우리가 말한 의도는 마음이 정욕에 굴복한 때에 의지가 의식적으로 찬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런 의식적인 찬동이 없어도 탐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마음이 허망하고 패악한 것에 찔리거나 유혹을 받기만 할 때에도 탐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앞에 있는 계명들에서 사랑의 원칙이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 행동을 지배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목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의 생각을 제어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즉 우리의 마음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타락한 생각이나 비뚤어진 생각이 전혀 생기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분노나 증오심이나 음란이나 강탈이나 거짓말 등에 기울어 끌리는 것을 금하신 그는 지금 우리의 생각을 동일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로마 제국에서 부유층은 흥청망청 연회를 벌여 1인당 3kg의 숭어를 먹어 댔지만, 물고기의 진가는 도시 시장과 군대 식당에서 발휘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전성기일 때는 고등어 같은 하급 어종이 선원이나 군인의 식사 메뉴였는데, 가벼워서 대량으로 운반하기가 수월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어부와 어부가 잡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의 문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세우지 못했을 테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도 웅장한 위용을 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초기 문명은 대부분 강어귀, 호수, 연안 아니면 대양에 접근하기 쉬운 자리에서 꽃피었습니다. 작은 무리에서 마을, 도시, 제국, 국가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 중요한데 강어귀나 호수 등은 어부들이 식량원을 지속해서 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곡물을 재배하기 전까지 인류는 사냥, 채집, 고기잡이로 식량을 획득했습니다. 이중 사냥과 채집은 인류가 발전하면서 각각 목축과 농경에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고기잡이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에게 식량 획득 수단으로서 위상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사에서 농경과 목축이 인간의 정착을 이끌었다면, 고기잡이는 탐험, 교역, 항해 등 인간의 이동 생활을 자극했습니다. 물가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나 조개 등 바다 식량원이 고갈되거나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로부터 식량 처가 훼손되면 풍요로운 어장을 찾아 이동했습니다. 또 고기잡이에 수반된 기술, 특히 배와 관련된 기술은 새로운 대륙을 탐험하고 대양을 건너 더 먼 곳에서까지 무역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북돋웠습니다. 게다가 물고기는 건조하거나 염장 처리하면 가벼우면서도 영양분이 풍부한 식품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갖춰 교역자, 탐험가, 정복자 등에게 이상적인 식량원이었습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도 이 고기잡이와 엄격한 관리로 군사들의 식량을 해결했습니다. 


인류는 여전히 물고기를 마구 잡고 있고 어획량은 걷잡을 수 없이 급감했습니다. 저자는 "풍요로웠던 바다를 사막화시키고 싶지 않다면 인류의 탐심을 자제해야 바다에서 계속해 물고기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율법에서 십계명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합니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은 개별적인 죄들을 구체적으로 먼저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완전한 자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자신이 우상 숭배자와 살인자와 간음자와 도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바로 십계명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십계명이 특별히 가치가 있는 것은 종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첫째 판의 계명들은 그리스도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합니다. 이 계명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는 말씀으로 요약이 됩니다. 둘째 판의 계명들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의 범주에 속합니다. 이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9)는 말씀으로 요약이 됩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서 이 요약된 계명들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고 정의하셨습니다.


제십 계명은 모든 계명들 중에서도 가장 계시적입니다. 이 계명은 사람의 마음에 관한 율법의 내적인 성격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악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탐심이 모든 다른 죄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주님께서도 이 죄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5


이 말씀이 교훈하고 경계하는 것은 물질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부리게 되면 다른 사람의 필요에 무관심해지고 냉담해지게 됩니다. 탐심을 가지게 되면 아무리 많은 부를 쌓아도 만족할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의 탐심을 조절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어리석은 부자처럼 많은 것을 쌓았어도 오늘 밤 그 생명을 하나님이 가져가실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 16:26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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