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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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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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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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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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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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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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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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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이 삶이 되다_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주신 말씀_ 신명기 8: 2~3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내일은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날, 복받는 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영광에 대하여, 예배드리는 날! 삶의 진정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날! 세상의 떡은 아무리 맛있어도 육신을 후패하게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은 날로 내 영을 새롭게 하시며 기쁨을 주시며 평강과 사랑과 행복을 더하여 주시지.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 하늘에서 내려진 떡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떡이며 육신의 생명임을 알게 하려 하신거다.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라! 그걸 깨우치는 데 장장 40년이 걸린 것이다. 나도 참 오랜 시간 눈치도 못 채고 깨닫지도 못하고 살았다. 말씀이 곧 떡이요, 생명인 것을 ...!! 아멘 20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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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9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9_ 새로운 수도원 운동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ermon to the Birds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새로운 수도원 운동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시대에 새로운 종류의 수도원운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바람을 탄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떨어져 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수도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탁발수도사(friar)니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frater에서 온 말이다. 탁발수도사들은 함께 모임을 갖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백성들과 함께 보냈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지도자는 프란체스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 아시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자 상인이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는 통설과 달리 프란체스코는 부자가 되기를 꺼렸다. 세상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사람들이 부를 얻고자 몸부림치며 싸우는 데서 비롯된다고 프란체스코는 믿었다. 그리고 교회의 어려움은 수도원들이 너무 부유해지고 너무 편안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데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 양』(Lady Poverty)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는 날마다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결코 가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는 화폐 가치가 있는 선물은 어떤 것도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입을 옷과 먹을 음식만 받았다. 그는 노동을 했지만 입고 먹는 것 이상의 임금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최상의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것을 위해서 구걸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입으려고 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빌었다. 또한 그는 내일의 것이 아니라 그날에 필요한 오늘의 것만을 위해 구걸했다. 그는 몸의 건강조차도 자신의 소유에 속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나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을 기꺼이 찾아갔다. 그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들이건 도시건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우리 찬송가 가사따나 아골 골짝 빈들에도 그는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도시들이 성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모본을 따라 사는 실체를 몸소 보여주며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었다. 프란체스코는 물건 소유를 포기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소유한 부유함을 느꼈다. 프란체스코의 손과 발에 나타난 흔적들을 스티그마타 즉 성흔이라고 한다. 스티그마타(stigmata)의 복수형이다. 그 흔적들은 붉은 반점들인데 프란체스코가 그리스도의 상처들을 너무도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tigmatization 성흔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 프란체스코는 날아다니는 새들을 앉혀 놓고 행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방주 속에서 구원해 주셨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너희한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너희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둥지를 만들어 살라고 너희에게 큰 나무들을 주셨다. 너희는 누에를 치지도 않고 목화를 심지도 않았는데 너희에게 털옷을 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작은 자매들이여,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도록 해라』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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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24
  • 성경이 삶이 되다_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기도
    주신 말씀_ 역대하 7: 14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기도 ‘기도 ’는 신앙 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하다. 기도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내 뜻을 하나님께 상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께 기도드려 그 뜻을 이루는 위대한 기도자들의 사례가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자기 주인 아브라함의 뜻을 이루는 엘리에셀의 기도. 얍복 강가의 야곱의 기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중보하는 모세의 기도.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한 여호수아의 기도. 한나의기도. 다윗과 솔로몬의 기도. 다니엘의 기도. 이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땀이 피가 된 기도. 그들의 기도에는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초점이 맞춰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받으시고 원하고 계실까? 깊이 묵상해보자. 나는 매일 기도를 한다. 살펴보면 거의 내 형편을 아뢰고 응답하신 일에 감사하고 결국 결론으로 가서 복 주실 것을 바라는 기도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속에 기도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 지금까지의 내 기도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기복적이었음을 자복한다. 하나님의 ‘손’ 만을 구하고 그 ‘얼굴’은 찾는데 소홀하였다. 주님의 얼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그 뜻을 먼저 이루길 바라는 큰 기도, 그런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약속을 깨닫는 하루다! 아멘. 202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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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2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교회교육
    논쟁하는 학자들 교회교육 언제는 쇠뜨기 풀이더니 이제는 소금이 유행이다. 건강에 소금물 복용이 그만이란다. 그것에 관한 강습회도 있고 가르침대로 따랐더니 효과를 봤다고 여기저기 퍼치는 소금 전도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에 반해 정신건강을 위한 방법 개발에는 늘 잠잠하다. 정신이 저마다 건강해서인지 아니면 생명 연장에 정신건강이 별 소용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다. 우리네 정신건강은 실로 나쁘기 그지없다. 검사가 검사한테 잡혀가 구속당하고 목사가 목사의 고발로 구치소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전직 대통령들은 외출도 못하고 자기들 보호를 위해 발사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학들은 부정입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돈으로 해결하려고 사람들은 돈돈 하겠지… 아이를 체벌하는 수도사 배우고자 소년들이 선생인 수도사한테 몰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록이 있다. 소년들: 선생님 저희 어린이들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저희를 가르쳐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선생: 배울 때 매도 맞아야 할텐데? 소년들: 무식하기보다는 매 맞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괜히 매를 때리지 않으신다는 걸 저희는 알고 있어요. 선생: 너희는 무슨 일을 하니? 첫 번째 소년: 전 수도사가 될래요. 하루에 일곱 번씩 형제들하고 노래를 불러요. 그 사이에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요. 선생: 이 친구들은 무얼 하는지 알고 있니. 첫 번째 소년: 농부도 있고 양치기도 있고 소치기도 있고 사냥꾼도 있어요. 그리고 어부, 행상, 상인, 구두 만드는 사람, 빵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선생: 농부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농부: 아주 고된 일을 열심히 합니다. 새벽에 소를 몰고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합니다. 날마다 2천 평 이상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소년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는다. 소년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라고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선생: 자 조용히들 하려무나. 각자 서로를 도와주어라.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사제이든 수도사이든 평신도이든 군인이든 누구라도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 일에 힘쓰고 분수를 지키도록 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점잖게 행동해라. 교회 종소리를 들을 때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서서 같은 음으로 찬송을 하고 죄 용서를 구하도록 해라. 교회는 어린 소년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학생들도 가르쳤다. 교회의 주도로 신학을 가르치기 위한 대학교들이 설립됐다. 대학교는 하나님에 관해 가르쳤고 우주를 이해시키기 위해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법학과 의학도 가르쳤다. 대학교 선생들은 석사나 박사로 불리웠다. 그들은 서로 논쟁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폈다. 학자의 논쟁이 줄어들고 눈치 보기만 한껏 늘어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단이 기승을 부리고 목회자들은 괜한 일에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닌다. 2022-01-18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18
  • 성경이 삶이 되다_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주신 말씀_ 민수기 6: 24~27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화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몇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민 14: 22) 위 말씀은 가데스바데아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선발된 정탐꾼 열두 명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정탐한 후 돌아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제사장 나라’ 계약을 파기하고 애굽의 노예로 살기를 선택하자 하나님이 보이신 분노의 말씀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열 하루면 가고도 남을 가나안 땅을 40년을 돌아서 가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한 출애굽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하나님은 40년간 변함없이 만나를 내려주셨고 저들의 의복을 헤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항상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게도 수없이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은혜와 영광을 보면서도 쉽게 믿음에서 약해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인생! 그는 바로 ‘나’일 수도 있다. 내 인생 모든 날은 차치하고 근래 3년간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적과 은혜만은 단 한 시도 잊어서는 안되리라! 아멘. 2022-01-16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16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이단 아닌 이단
    Lutherdenkmal Petrus Waldus 이단 아닌 이단 황하의 흙바람이 한반도까지 밀려와 호흡기를 간질인다. 이런저런 일에 몸이 지쳤는지 열이 오르고 코가 막히고 가래를 돋우는 기침을 한다. 몸살을 앓으며 높으신 분이 하신 말을 되뇌어 본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해자를 피해자더러 그냥 대뜸 용서해주되 그 한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란다. 용서하기도 어려운데 또 그 치가 떨리는 일을 삼삼하게 기억하고 있으라니 도시 영문을 모르겠다. 어느 한 가지만 하라고 해도 여의치 않을 텐데 두 가지를 다 하라고 대통령께서 부탁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면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리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단 심문관이 유죄라고 판결한 죄인은 정부 당국에 넘겨져 형벌을 받았다. 그 형벌이 말뚝에 매달려 화형당하는 것일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한 끔찍스러운 형벌을 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신념에 근거하고 있었다. 이단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몹쓸 범죄이다. 하나님은 이단 때문에 화가 나셔서 세상에 고통을 주실 것이기에 이단들을 불태워 없애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단들이 죽은 다음에는 영원히 지옥에 빠져 신음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미루어 헤아린 교권을 쥔 사람들은 이단박멸에 눈을 흡뜨고 설쳤다. 또 한 지상에서 이단들을 쓰레기 소각하듯 불태워 죽이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이단에 현혹되지 않고 영혼을 보존하도록 겁을 주기 위한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의 가장 슬픈 부분은 교회가 어떤 경우에는 교회의 협력자들이 될 사람들을 이단으로 내모는 경우였다. 이를테면 남부 프랑스에는 피터 왈도(Peter Waldo)라고 하는 부자 상인이 있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들한테 복음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순결을 내세우는 카다리파를 교회로 되돌리는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그가 신학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도를 못하게 금지 시켰다.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힌 왈도는 성직자들의 잘못된 처사에 굴하지 않고 한걸음에 로마로 달려가서 교황한테 청원을 했다. 교황 역시 여느 성직자들과 마찬가지로 도토리 키재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왈도는 재차 전도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는 그런 명령은 따를 수 없다고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교회로부터 출교 처분을 받았다. 추종자들이 왈도한테 몰려왔다. 그는 얼마 안 있어 왈도파라고 하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알프스 고지대의 비옥한 계곡에 은신처를 구했다. 알프스에서는 지금도 왈도파 후손들이 발견되고 있다. 일단의 무리는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한때 이단으로 몰려 심한 박해를 받았던 왈도 파는 본질적으로 칼빈 주의자였다. 가톨릭교회는 이단을 거스려 신앙을 지키는 더 나은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교육이었다. 교회는 학교와 대학의 어머니였다. 수도사들은 교사였다. 그들은 계속 소년들과 청년들을 교육시켰다. 그 가르침은 문자뿐만 아니라 생활도 관련이 있었다. 2022-01-12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12
  • 성경이 삶이 되다 _ 내가 가게 될 천국의 문
    주신 말씀_ 마태복음 4: 17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내가 가게 될 천국의 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맡으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4: 17)였으며 설파하시는 복음의 중심은 ‘천국’에 관한 말씀이셨다. 즉 4 복음서의 키워드는 바로 천국이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내 삶과 신앙의 목적이자 소망이 아닐 수 없다. 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자체이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마음을 알고 그분을 닮기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거룩하신 희생으로 말미암아 나같이 자격 없는 자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천국’의 영원한 절대 기쁨과 절대 사랑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사망이 없고 아픈 것이 없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그곳, 새 하늘과 새 땅!! 나는 그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기에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오직 예수만 믿고 예수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 나아갈 것이다. 신비한 것은 예수님을 사모하여 그분이 내 안에 와 계시면 이 땅에서도 내 심령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내 가정에 천국의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20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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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9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7_ 순결한 사람들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되었고 아크레의 기독교도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 순결한 사람들 바람결에 하얀 씨앗이 눈발처럼 날린다. 왕성한 생명의 섭리는 매연 가득한 하늘을 메우며 뿌리 내릴 곳을 하늘거리며 찾는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늘 혼탁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될까? 혹시라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금슬 좋은 부부처럼 살고 있지는 않을까? 순결하고 순수한 카다리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달리지 않은 평범한 십자가 사용조차도 꺼렸다. 정말 순수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꽉 막혀서 그런 건지 한번 단추를 잘못 끼운 카다리파는 영판 이상한 데로 흘러갔다. 그들의 가장 나쁜 가르침은 자살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즉 완전한 삶에 도달한 사람들은 더 살다가 혹시라도 그들의 순결한 기록을 더럽힌다거나 어떤 잘못을 범하는 걸 막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극소수이긴 했을지라도 실제로 자살한 사람들이 있었다. 잘못된 교리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그걸 오늘날도 도처에서 실감할 수 있다. 카다리파의 행동거지는 일부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나은 점이 있었다. 카다리파는 근면하게 노동을 했고 아무도 속이지 않았으며 그리고 누구하고도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없었다. 카다리파는 교회 쪽에 대해서는 입이 걸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를 도둑놈들의 소굴이라고 하고 교황들은 베드로의 후계자가 아니라 콘스탄틴의 후계자들이라고 몰아붙인 것 때문에 박해를 당했다. 그러나 카다리파의 사상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확실히 비기독교 성향이 농후했다. 카다리파가 박해받던 당시의 교황은 위대한 이노켄티우스 3세였다. 그는 카다리파에게 전도자를 보내 신앙으로 되돌이키려고 노력했다. 성 도미니쿠스가 전도자들의 새로운 수도회를 만들도록 허락을 받았다. 도미니쿠스의 이름을 따라 도미니크 수도회가 결성됐다. 도미니크 수도 회원들은 허름하게 옷을 입었다. 교황은 도미니크 수도사들이 카다리파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보다 건전한 사상을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불행하게도 일이 꼬였다. 전도자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북부 프랑스는 남부 프랑스를 집어 먹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당시 북부나 남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국가였다. 이제 십자군 사상은 터어키족에서 이단자들 즉 『잘못된 도를 믿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십자군이 박멸하고자 하는 대상이 외부의 회교도에서 내부의 이단들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북부 프랑스는 남부 프랑스로 밀려 내려와 약탈과 살육을 저질렀다. 인노첸시오 3세는 알비 십자군을 통해 카타리파를 평정하였다. 북부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인 동시에 불신자들을 도살함으로써 그들의 왕국을 확장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교황 이노켄티우스는 그런 야만적인 행위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잘못된 열정의 방향을 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북부 프랑스는 카다리파를 뿌리째 뽑아버렸고 카다리파의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단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이단들은 흩어졌다. 특히 그들은 카다리파와 가톨릭교도 간에 결혼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스며들었다. 그것 때문에 이노켄티우스 이후로 교황들은 이단을 심문하기 위한 『이단 심문관』을 임명했다. 202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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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2-01-04
  • 성경이 삶이 되다_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주신 말씀_ 시편 97:12 12.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어제 송구영신 예배 말미에서 신년을 축복하기 위해 주시는 ‘말씀 바구니’에서 내게 주신 축복의 말씀은 바로 시편 97:12절이다. ‘의인이여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나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신 하나님……! 이보다 큰 축복의 말씀이 어디 있겠는가? 눈곱만큼도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나를 의인이라 인정해주신 하나님! 내가 한 것이라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인데,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오직 은혜로 ‘의인’ 삼아 주신 것이다. 금년에 나는 수지맞는 삶을 살 것 같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수없이 많은 기적을 내 생활 속에 경험하게 하시며,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시고 대적의 눈앞에서 내 공의를 드러나게 하셨으며 승리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 나는 오직 그런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였을 뿐인데 의인의 축복으로 신년 초를 시작케 한 것을 보면 나는 금년에도 ‘엄청난 복’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의인으로서 금년 일 년을 살아 보자! 뜻을 정한바, 하나님 중심의 삶을 기록하고 나의 선한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게 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영성의 하루가 365일이 되게 하리라! 그래서 내 인생의 2022년도는 가장 복 받는 한해로 기록될 것을 믿는다. 아멘.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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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2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6_ 믿음을 지킨 사람들
    1209년에 카르카손에서 추방되고 있는 카타리 신자들 믿음을 지킨 사람들 이맘때면 벚꽃 같은 어린이 세상이 되곤 했다. 공휴일의 어린이날에 서울 시내 고궁을 어린이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5월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푸른 어린이 세상일 수 있었다. 홍제동에서 창경원까지 걸어서 원숭이며 호랑이를 구경하러 왔다. 집에서 밥을 먹고 출발한 뒤로 무엇으로 허기와 갈증을 누르고 다녔는지 기억이 아슴하지만 어쨌든 즐거운 하루의 어린이날이었다. 요즈막 어린이들에게는 도무지 눈만 껌벅거려질 일이겠지만… 허기사 30년이 지난 과거 지사이기두 하구. 사람들의 기억에서 마르세이유를 떠났던 소년 십자군 5천 명은 까마득히 잊혀졌었다. 그런데 18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사람의 생존자가 나타났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18년 어간에 일어났던 일을 말한 실상은 이랬다. 일곱 척의 배에 5천 명이 나눠 타고 마르세이유 항구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줄 바다로 나아갔다.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폭풍우가 밀어닥쳤다. 두 척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했다. 승선했던 소년들은 전부 죽었다. 배를 내준 친절한 상인들은 야비한 노예장사꾼들로 돌변했다. 그들은 나머지 다섯 척에 승선한 소년들을 죄다 모하메드 교도들에게 팔아넘겼다. 성인이 되어 돌아온 생존자는 눈을 빛내며 사람들한테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 길고 모진 세월 속에서 노예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좀 낫게 할 요량으로 신앙을 버렸다는 소년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모하메드 교도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알라 신앙을 받아들이라고 우리들을 끊임없이 회유했죠." 소년 십자군은 거룩한 땅을 결코 보지도 못했지만 신앙을 지켰다. 눈곱만한 이익만 눈에 보여도 신앙의 도리를 헌신짝 팽개치듯 하는 요즘 세태에 비한다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카타리 신자들에 대한 화형 교회는 신앙을 지키고자 무진 애를 썼다. 십자군의 실패는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거룩한 땅을 이교도에게서 탈환하는데 실패하고 패잔병으로 집에 돌아온 많은 십자군들은 지치고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의기소침해진 그들은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정말 선하신지 어떠신지를 의아히 여겼다. 그러한 의심이 마음에 박힌 그들이 귀향길에 불가리아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세상이 악하고 육체도 악하다는 것을 믿는 옛날 영지주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상심한 십자군들은 이런 사상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카다리파라고 불렀다. 카다리는 순수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카다리파는 악하다고 규정된 세상과 육체와 되도록 관계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프랑스 북부로 돌아갔고 곧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그들은 십자군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에 어떠한 전쟁에도 나가려 들지 않았고 심지어 닭 모가지를 비트는 일조차도 질겁했다. 그들은 결혼조차도 꺼렸다. 비록 그러한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주 소수이기는 했을지라도 말이다. 육체가 악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육체의 형상도 만들지 않았다. 각기 이유가 다르긴 하지만 카다리파는 성상 파괴주의자들과 닮은 데가 있었다. 2021-12-29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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