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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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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2 - 쳇바퀴 세상
Sylvester I and Constantine 쳇바퀴 세상 신문을 펼쳐 든다. 날마다 그렇듯 오늘도 사건으로 지면은 그득하다. 10대 소녀가 괴성을 지르다 밟히고 밟혀 눈이 개개풀어진 사건,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 이주일 귀국, 다리 저는 국회의원이 목욕하고 나오다 칼 맞은 일, 이북에서 올까 싶은 목사들 이야기, 이스라엘 레바논 폭격으로 악명 높은 헤즈볼라의 책임자 무사위가 콩가루 된 사건. 주후 325년에 신문이 있었다면 콘스탄틴 황제가 주최한 니케아 총회를 대서특필했으리라. 한국전쟁 참전을 결의한 유엔총회에 비교가 안 되게 신문지면을 꽉 채웠을 것이다. 이런 소식이 공해로 하늘에 구멍 뚫리는 기사나 국회의원 선거 시사 나부랭이보다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제와 같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됐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은 기지개를 펴며 침소에서 일어났다. 햇살은 밝았다. 만찬 석상에서 박해 때 눈이 뽑혀 애꾸가 된 감독의 눈 자국에 입맞춤했던 정경이 떠올랐다. 만찬장에 감동의 박수가 넘쳤다. 황제는 빙긋 웃음을 흘렸다. 니케아 총회가 파한 뒤 총대들이 콘스탄틴에게 활동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연로한 아리우스를 비롯한 다섯 총대들은 니케아 신조에 서명을 거부했고 유배를 당했다. 이게 난관을 전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토의는 해를 거듭해 한 시대를 넘어 계속됐다. 추방당했던 감독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반대로 아다나시우스가 유배당했다. 인생은 죽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임종 무렵에 세례를 받은 콘스탄틴 황제가 숨을 거뒀다. 세 아들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의 독재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일어났던 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미 오래 전에 본을 보이고 있었다. 황제의 아들들은 황제 자리를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렸을 때 그리도 친했던 형제들이었는데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철천지원수였다. 역사를 보노라면 지금의 사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에 곁들여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의 팽팽한 신념들이 이방원의 넋두리마냥 칡넝쿨처럼 얼키고 설켜 맴돌았다. 승리한 쪽이 반대파의 감독들을 유배시켰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끼리의 싸움을 종식시키고자 콘스탄틴(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 파송했던 연로한 메신저도 유배를 당했다. 유배당한 사람은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항의를 전달했다. “나는 당신 할아버지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콘스탄틴 황제의 아버지는 디오클레티안 치하 때 부황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신이 날 박해하려고 한다면 진리를 부인하기보다는 박해를 달게 받을 것이오. 하지만 이건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제국을 주고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말이오. 우리가 정권을 탈취한다면 그건 우리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게 될게요. 그러나 당신이 교회에 간섭하신다면 당신은 보통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은 니케아파의 지도자가 아리우스파 황제에 대항해 말했다. 드디어 니케아파가 완전히 승리하는 날이 왔다. 더 이상 그런 소모성의 싸움들을 방지하기를 바라는 황제들이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발했다.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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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1 - 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마 직전 총회장이셨던 것 같다. 그는 두루마기 차림의 설교 중에 찬송가를 자작하여 부르시는 목사님이셨다. 우리 교단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이시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총회장이셨다. 그가 이제 바로 뒤를 이은 총회장한테 나무망치와 받침을 물려주고 증경 총회장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셨다. 몇 분 총대 목사님이 이 증경 총회장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만남과 대화는 여느 청년들이 모여 노닥거리는 모양과 진배없었다. 햇병아리 신학생의 눈에는 진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는 진솔한 인간의 모습이 우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즘의 세태처럼 권력과 부귀와 장수 나부랭이보다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한 솔로몬 왕이 이렇게 말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그런데 주 후 325년 니케아에서 인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해 아래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벨탑 이래 인간들이 모이면 쓰잘 데 없는 일을 일삼기 일쑤인데 니케아 총회에서는 전혀 달랐다. 인간들이 웅성웅성 모여 인류 최초로 신에 대한 협의와 결정을 내렸다. 니케아 총회는 부활절 날짜를 결정했다. 부활절은 봄이 시작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지난 첫 번째 주일로 결정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짬뽕 된 것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던 부활절이 확정됐다. 이어서 니케아 총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딱 찍었다. 이것은 아다나시우스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되었다. 이로써 아리우스의 해괴한 주장은 빛을 잃고 불가사의한 삼위일체는 번쩍거리게 되었다. 이 내용을 담은 걸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물론 이 신조가 몇 년 뒤에 작성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그게 니케아 총회의 사상을 참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영국 공동기도서에 번역되어있는 걸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 성자이시며 만세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참되신 하나님이신, 나셨지만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성부와 한 속성을 지니셨고,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되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본디오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성부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나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생명의 주와 수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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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0 - 니케아 총회
니케아 총회 고풍스런 대전중앙교회에 모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모습은 엄숙하고 경건했다. 우리 총신 신학생들은 총대들 틈에 뒤섞이니 이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꼴이었다. 그렇게 높게 보이던 신학부 졸업반 전도사님들도 어설퍼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목사님이 손을 쳐들고 “의자앙!”하며 사회 석 앞으로 어기적 나갔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발언을 했다. “에, 우리가 이렇게 성 총회로 모였으니 어찌 입씨름만 한 대서야 하나님 앞에 면목이 서겠습니까? 낮에는 회의를 하고 밤에는 부흥사경회를 열어 은혜를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동의가 들어오고 왁자하니 재청이 울리고 가부를 묻는 소리가 찌렁하니 예배당을 휘감았다. 기름 부음 받는 자들의 “예”하는 소리가 초등학생들 구령처럼 장내를 울렸다. 해가 뉘였거렸다. 기름 부음 받은 분들의 즐거운 저녁밥이 자위가 돌 무렵 총회에 모인 총대들이 결의한 대로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가라앉은 설교자의 음성이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느라 냅다 외치는 소리에 뒤이어 쿵 하며 대전중앙교회 마룻바닥을 울렸다.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나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보니 한 목사님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주무시다가 의자 밖으로 굴러떨어지신 것이었다. 나라도 하나였고 교회도 하나였는데 그리스도인의 행습은 로마 군인들처럼 일정하지가 못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만 해도 그랬다.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처럼 봄에 달이 꽉 찬 날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스럼 예방한답시고 키들거리며 부럼을 까는 정월 대보름을 부활절로 지키는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교도들이 자연을 지배하는 신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것을 경축했던 봄의 첫날을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부활주간의 부활절날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일요일이라고 주장했다. 삼위일체와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콘스탄틴은 주 후 325년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안양만 한 니케아 시에서 회집하는 총회를 소집했다. 이 모임을 니케아공의회라고 한다. 이건 전체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최초의 집회였다. 전 세계에서 감독들이 꾸역꾸역 니케아로 모여들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샤에서 폰투스, 갈라디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프리지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및 멀고 먼 스페인 등지에서 감독들이 모여들었다. 로마에서는 사제들이 왔다. 역사가는 콘스탄틴처럼 어떤 군주가 자기의 구세주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토록 성대한 축제를 마련한 적이 전무후무했노라고 니케아 총회의 모임에 대해 말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거대한 홀에 운집하여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일어섰다. 그는 하늘에서 보낸 메신저 같았다. 그의 옷을 수놓은 금과 보석들이 빛을 받아 찬란하다 못해 하얗게 빛났다. 황제는 총대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줄을 지어 만찬장에 들어설 때 근위병들이 양쪽에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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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29 - 한 머리와 세 얼굴
Russian icon of the Old Testament Trinity by Andrey Rublev, between 1408 and 1425 한 머리와 세 얼굴 ‘사랑이 뭐길래’라는 연속극이 뭐길래 사람들이 그 시간에 바보상자에 눈길을 모으고 배꼽을 잡기도 하고 혀를 차기도 한다. 어제 대발인가 사발인가 하는 청년이 결혼한 데까지 이른 모양이다. 기독교인이라는 인기작가의 엿가락 같은 이야기 늘림을 어디까지 늘릴런지 사뭇 기대가 된다. 삼위일체 논쟁으로 열 받은 교회들이 모세 앞의 홍해처럼 둘로 좍 갈라졌다. 바로를 피하기 위한 선민의 물 건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제국의 통일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교회의 갈라짐이었다. 로마제국의 통치자 콘스탄틴 황제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뒷짐을 지고 어전을 왔다갔다 했다. 제국의 통일을 공고히 해주어야 할 교회가 갈라서서 성부니 성자니 성령이니 하면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싸우다니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양상은 황제의 정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어떻게 해서 쟁취한 제국인데 도움을 엄청 주리라 생각된 교회가 오히려 여론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을 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사실 콘스탄틴 황제는 삼위일체 논쟁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해되는 게 별로 없었다. 측근들을 통해 설명을 몇 번 들었지만 도무지 장님 코끼리 더듬기였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를 놓고 설왕설래 하느라 눈에 핏발이 서고 목에 힘줄이 돋는 논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온데간데없었다. 논쟁이 뭐길래 교회의 사랑까지 식혀 버리는지. 토론장에 난데없는 폭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드잡이를 하더니 급기야는 치고받았다. 형제요 자매들인 그리스도인끼리 싸우는 꼴을 나비넥타이에 콧수염 기른 김동길 교수가 봤다면 “이게 뭡니까?”하고 코맹맹이 소리를 느물거렸을 것이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데 그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렵사리 마련된 제국의 안정이 교회 싸움에 깨질런지도 몰랐다. 내란이 일어나면 자신의 정치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쟁취한 제국이며 황제 자리인가!황제는 뒷짐을 풀었다. 그는 먼저 메신저를 보내 양 파 지도자한테 항의 조의 나무람을 전달했다. 황제는 말했다. “이게 뭡니까? 이 모든 논쟁은 다투기를 좋아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빚은 결과입니다. 말에 담긴 어리석은 차이 때문에 형제끼리 원수처럼 치고받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만 잘 믿으면 되지 이 무슨 망발들입니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소?” 하나님은 셋이니 둘이니 하고 밤잠을 제대로 못 자며 싸울 때 교인들 사이에는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그림이 유행했다. 이 그림에서 삼위일체가 한 머리와 세 얼굴로 표현되고 있다. 이 그림의 모퉁이에 있는 날개 달린 네 피조물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을 나타낸다. 이 그림은 사실 너무 단순해서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해줄 수는 없다. 현대 의학으로도 감기의 원인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하나님의 실체를 어떻게 인간의 말과 그림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Holy Trinity Template교회 지도자들은 이런 그림을 보면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좋아했다. 신학적인 설명이야 어찌 됐든 삼위일체는 삼위일체라고 잘 설명해주니까 말이다.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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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28 - 삼위일체와 분열
Holy Trinity, depicted by Szymon Czechowicz (1756–1758) 삼위일체와 분열 통일과 화해를 기대하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삐걱거리고 있다. 복면을 쓰고 쇠몽둥이를 든 장정들이 벌건 대낮에 스스럼없이 농부의 아들이 세운 공장을 우우 몰려다닌다. 어린 백성을 정신없는 정신대로 내모는 데 일조를 했던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 하나 나섬이 없다. 대신에 섬나라 자그마한 정치 지도자가 우리 의원끼리 박터지게 싸우던 국회에 나타나 머리만 조아리다 사라졌다. 우리네 지도자들은 정말 이 겨울에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이 되어 애국가와 찬송을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끼리 다른 문제도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의 관계를 놓고 말다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너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점에 있어서는 옥신각신 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의 육신을 지니시고 이 땅에 사셨다. 그는 실제로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정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몸을 일으켜 살아나셨고 그를 믿는 사람들한테 새 생명을 주셨다. 그럴진대 그는 확실히 노대통령 같은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더 나으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신이 두 분이 계시지 않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일하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영도 하나님이시지 않은가? 이럴 경우 신이 세 분 존재하게 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영어참고서 제목으로 채택된 바 있는 이 삼위일체 논쟁이 어느 곳보다도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를 뜨겁게 달구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아리우스라는 이름의 연로한 성직자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인간 이상이었지만 하나님보다는 못했다고 알쏭달쏭한 주장을 점잖게 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서 시무하던 아다나시우스라는 부교역자가 감히 아리우스 감독의 주장이 얼토당토않다고 반론을 폈다. 근간에 위장을 덤덤하게 떼낸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 그는 아다나시우스 같이 바른 말하는 교역자를 좋아하신다. 아마 도망다니던 아다나시우스를 당시 이 목사님이 계셨다면 자신의 교회에 특채해서 거둬 주셨을 것이다. 아마 당신의 의견을 그가 또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Ikone Athanasius von Alexandria어쨌든 아다나시우스의 그 당시 반론은 박수는커녕 그를 밤낮으로 도망 다니게 했다. 당시에 삼위일체를 주장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 이상이셨고 하나님 이하이셨다면 기실 그는 인간도 아니시고 하나님도 아니시게 되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이도 저도 아닌 얼추 묘한 존재가 되시고 마는 것이다. 아다나시우스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하셨다. 하나님의 실재를 완전히 공유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의 실재를 더욱 풍성히 공유하도록 도와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하게 된다. 성령도 완전하게 공유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 한 분 안에 하나님의 실재를 공유한 세 분이 계시다. 즉 만유의 주 성부 하나님, 땅에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성자 하나님, 우리 영혼을 감동 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가르쳐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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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3_ 개혁의 촛불
- Jan Hus at the Council of Constance. 개혁의 촛불 일본 자동차 공세에 밀려 맥을 못 쓰던 미국 자동차업계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이아코카였다. 그는 일약 미국의 영웅이 되었고 그의 경영 철학과 경험은 세계에 물결을 일으켰다. 미국 내에서의 그의 인기는 너무도 대단해서 그는 워싱턴을 넘보는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즈는 칼럼까지 동원해 미국에 필요한 것은 일류 자동차 제조업자지 이류 정치가가 아니라고 호소했다. 『아니 여보게들 아이아코카가 정치를 할 모양이네 정치를 안 하겠다는 말이 영판 정치인 같은 어투로 말하고 있어』 요즘 정치 은퇴를 선언한 사람이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는 말이 각 일간신문에 계속 실리고 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다. 위클리프는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운동은 영국에서 별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보헤미아에서 지지를 획득했다. 그 당시 영국 왕이 보헤미아 공주와 결혼을 했었다. 현재 체코슬로바키아인 그 나라에서 존 후스는 이탈리아의 종교개혁가 사보나롤라처럼 부패한 성직자들을 공격하는 설교를 했다. 성직자들은 화려한 옷에 달린 술을 휘날리며 말을 탔고 은으로 만든 화려한 색상의 곤봉으로 가는 길에 거추장스런 사람들을 쫓았다. 후스는 거침없는 비난들 때문에 이단으로 고소를 당해 콘스탄스에서 열린 공의회에 회부 되었다. 후스는 자신이 잘못 가르쳤다는 정죄에 대해 결코 그런 가르침을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위야 어찌 됐든 후스는 그걸 취소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후스는 눈을 껌벅거리며 도대체 결코 가르친 적이 없는 걸 무슨 수로 취소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후스는 거절했고 유죄 판결을 받아 화형당했다. 화형당하는 후스(예나 약전, 15세기 후반) 그 결과 보헤미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고 성직자들의 뺨은 디룩디룩했다. 개혁의 불빛은 아직 희미했지만 여러 구석에서 촛불들이 타고 있었다. 독일 라인강 계곡을 따라 일단의 조용한 무리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교회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수도원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접촉을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그룹이 홀랜드에 있었는데 스스로를 『공동생활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은 늘 함께 살면서 물건을 함께 나누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르치는데 보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을 교육을 통해 이곳저곳에서 퍼뜨렸다. 특별히 학교와 대학교들을 통해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이 그룹을 통해 책이 한 권 나왔는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성경처럼 읽히고 있다. 이름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다. 어떤 형제가 썼는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토마스 아켐피스로 알려져 있다. 개혁의 촛불들이 희구하는 것은 하나님 교회의 사랑과 선의 회복이었다.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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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3_ 개혁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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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그늘
- 면죄부 판매 죄의 그늘 교황의 아비뇽 유배는 단지 교회의 탐욕만을 증가시켰다. 이유인즉슨 돈을 그러모으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청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교황의 오랜 부재로 토지들을 이웃 통치자들이 마구 짓밟아 못 쓰게 만들었다. 아비뇽에 자리 잡은 교황 요한 22세는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옛것이든 새것이든 온갖 짓을 다 했다. 물론 세례, 결혼, 장례 등과 같은 정식 예식에 돈이 부과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둘로 나눠 두 무덤에 매장하는 것조차도 돈만 내면 교회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 어느 곳에 있든 명색이 주교이면 임지를 받을 때 1년 치 봉급을 고스란히 교황한테 바쳐야 했다. 요즈음 학교 선생이 될작시면 이런 꼴같잖은 일이 있다는데 그 옛날 교황한테서 학교 이사장들이 배운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주교직이 공석이 된다면 교황은 얼씨구나 하고 그 자리를 메우려고 다른 주교를 이동시킬 것이다. 그러면 연쇄적으로 주교직이 한 자리씩 비게 되어 주교들이 전부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다. 그런 뒤 교황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를 옮긴 주교들한테서 부임 첫해의 월급을 모조리 상납받게 된다. 돈을 버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면죄부를 파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죽은 사람이 연옥에서 괴롭게 지내야 되는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교황의 허가증이었다. 그 사상은 연옥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성자들의 공로를 보관한 보물창고를 교황이 소유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이 증서는 타인에게 양도도 가능했다. 가난과 결혼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요한 22세와 같은 탐욕 덩어리 교황한테 지청구를 늘어놓고 교황을 이단이라고 몰아댔을 때 분노의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교황은 화가 지글지글 끓어올라 본보기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몇을 이단 심문관에게 넘겨 화형에 처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이탈리아의 교회 소유 토지를 탈취해가자 교황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들과 전쟁을 일으켜 정말 힘써 그러모은 돈을 태반이나 전쟁터에서 허비했다. 교황은 교회가 교회답게 행해야 될 일에는 쓸 돈이 거의 없었다. 또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런데 쓸 마음이 털끝만치도 없었다. 교황청이 아비뇽에서 70여 년 만에 로마로 돌아온 뒤 사치와 교만의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성직자들은 아주 품위 있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교회당과 그림과 책에 솔찬한 돈을 썼다. 그들은 카드놀이와 잔치에 아주 많은 돈을 활수 하게 지출했다. 그들은 값비싼 의상을 걸쳤고 예배 행렬을 화려하게 꾸몄다. 교황은 강력함을 내보이려고 멋진 의자를 군인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게 했다. 평신도들은 고등종교의 신앙에서 낮은 마법의 주술적 신앙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성만찬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마법의 부적처럼 사용했다. 기독교에 만연된 치명적인 죄와 마법이 교회의 생명을 비칠거리게 했다. 사치의 죄에 빠진 교회 개혁의 외침과 시도들이 유럽 전역에서 불끈거리며 나왔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 어두운 만큼 밝은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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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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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교회 침범
- 서방교회의 분열을 상징화한 14세기의 세밀화 죄의 교회 침범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교황권을 튼튼하게 세운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도 죽고 교회와 세상에 신선하고 감동적인 영향을 미친 프란체스코도 죽었다. 이 세상은 악인만 죽는 게 아니라 의인도 덩달아 죽기 마련이다. 그들 모두가 인간이라 그런 것이다. 인간이 이렇듯 쓰러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거듭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될 텐데. 어쨌든 이노켄티우스 3세와 프란체스코가 죽은 뒤 중세는 내리막길을 마구 달렸다. 일단 지어진 대 예배당은 변함없는 매력을 간직할 수 있었다. 돌로 된 건물은 비바람으로 인한 마모를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을 지닌 인간은 자기 특성을 잃을 수도 있다. 게다가 교회는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가 교회를 침범했다. 그것은 로마 제국을 침범했던 야만인들보다 훨씬 심한 피해를 교회에 끼쳤다. 그러나 야만인들이 로마인을 죄다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 죄들이 교회의 모든 덕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중세의 아주 깜깜한 어둠의 시간 속에서도 신앙의 촛불이 최소한 깜박거리고는 있었다. 교회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교회의 특성과 힘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여러 종류의 시도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 즉 칠죄종(七罪宗: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은 오만 탐욕 사음 노여움 탐식 질투 나태 등을 이른다. 그 가운데 특별히 다섯 가지 죄가 교회를 냅다 쳐들어왔다. 이것들을 이런 모양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탐욕은 약탈 포대기를 싣고 달리는 말로 묘사된다.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통째로 삼키는 짐승으로 표현된다. 사치는 온갖 모양을 내느라 여념이 없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남자도 이 짓을 했다. 노여움은 연약한 처녀의 머리를 칼로 내리치려는 걸로 묘사된다. 교만은 자기 말에서 굴러떨어져 채이는 그림으로 나타난다. 약탈 포대기를 나를는 탐욕 교회의 탐욕은 국가와 아주 심하게 마찰을 빚었다. 국가도 역시 탐욕 덩어리였다. 싸움을 하면서 교회는 더욱 탐욕스러워져 갔다. 주교들과 수도원장들은 부자가 되었고 왕들은 질투로 배가 아파 몸살을 앓았다. 특별히 영국과 프랑스 왕은 강력한 국가를 구축하고 있는 참이라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면 누구에서도 그걸 얻거나 뺏을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5.6공 시절에 살고 있는 셈이었다고나 할까. 영국 왕은 교회 재산 축적에 도움을 줬고 프랑스 왕은 자기 나라의 어떤 돈도 로마로 보내는 걸 아주 싫어했다. 이에 발끈한 교황 보니파키우스 3세는 교회의 재산을 뺏어 가는 어떤 왕도 왕한테 교회 재산을 바치는 어떤 성직자도 출교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프랑스 왕은 아주 시덥잖다는 표정으로 교황을 생포해 프랑스의 한 궁벽 진 촌락으로 교황청을 이전시킴으로써 교황의 으름장에 답했다. 그 촌락 이름이 아비뇽이었다. 교황들이 7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로마에 부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305-1377) 이 시기를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 기간을 본 따 교황청의 바벨론 유수라고 한다.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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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81_ 죄의 교회 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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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9_ 새로운 수도원 운동
-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ermon to the Birds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새로운 수도원 운동 위대한 교황 이노켄티우스 시대에 새로운 종류의 수도원운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바람을 탄 수도사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떨어져 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수도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탁발수도사(friar)니 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frater에서 온 말이다. 탁발수도사들은 함께 모임을 갖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백성들과 함께 보냈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지도자는 프란체스코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 아시시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자 상인이었다.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는 통설과 달리 프란체스코는 부자가 되기를 꺼렸다. 세상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사람들이 부를 얻고자 몸부림치며 싸우는 데서 비롯된다고 프란체스코는 믿었다. 그리고 교회의 어려움은 수도원들이 너무 부유해지고 너무 편안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데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 양』(Lady Poverty)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는 날마다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결코 가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는 화폐 가치가 있는 선물은 어떤 것도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는 입을 옷과 먹을 음식만 받았다. 그는 노동을 했지만 입고 먹는 것 이상의 임금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최상의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것을 위해서 구걸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입으려고 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빌었다. 또한 그는 내일의 것이 아니라 그날에 필요한 오늘의 것만을 위해 구걸했다. 그는 몸의 건강조차도 자신의 소유에 속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나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을 기꺼이 찾아갔다. 그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들이건 도시건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우리 찬송가 가사따나 아골 골짝 빈들에도 그는 복음을 들고 찾아갔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도시들이 성장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모본을 따라 사는 실체를 몸소 보여주며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었다. 프란체스코는 물건 소유를 포기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아름다운 세상을 소유한 부유함을 느꼈다. 프란체스코의 손과 발에 나타난 흔적들을 스티그마타 즉 성흔이라고 한다. 스티그마타(stigmata)의 복수형이다. 그 흔적들은 붉은 반점들인데 프란체스코가 그리스도의 상처들을 너무도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했다. Giotto Legend of St Francis Stigmatization 성흔을 받는 성 프란치스코 프란체스코는 날아다니는 새들을 앉혀 놓고 행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방주 속에서 구원해 주셨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너희한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너희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둥지를 만들어 살라고 너희에게 큰 나무들을 주셨다. 너희는 누에를 치지도 않고 목화를 심지도 않았는데 너희에게 털옷을 입혀 주셨다. 그러므로 작은 자매들이여,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하도록 해라』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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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9_ 새로운 수도원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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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교회교육
- 논쟁하는 학자들 교회교육 언제는 쇠뜨기 풀이더니 이제는 소금이 유행이다. 건강에 소금물 복용이 그만이란다. 그것에 관한 강습회도 있고 가르침대로 따랐더니 효과를 봤다고 여기저기 퍼치는 소금 전도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에 반해 정신건강을 위한 방법 개발에는 늘 잠잠하다. 정신이 저마다 건강해서인지 아니면 생명 연장에 정신건강이 별 소용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들 하는 모양이다. 우리네 정신건강은 실로 나쁘기 그지없다. 검사가 검사한테 잡혀가 구속당하고 목사가 목사의 고발로 구치소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전직 대통령들은 외출도 못하고 자기들 보호를 위해 발사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학들은 부정입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돈으로 해결하려고 사람들은 돈돈 하겠지… 아이를 체벌하는 수도사 배우고자 소년들이 선생인 수도사한테 몰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록이 있다. 소년들: 선생님 저희 어린이들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저희를 가르쳐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선생: 배울 때 매도 맞아야 할텐데? 소년들: 무식하기보다는 매 맞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괜히 매를 때리지 않으신다는 걸 저희는 알고 있어요. 선생: 너희는 무슨 일을 하니? 첫 번째 소년: 전 수도사가 될래요. 하루에 일곱 번씩 형제들하고 노래를 불러요. 그 사이에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요. 선생: 이 친구들은 무얼 하는지 알고 있니. 첫 번째 소년: 농부도 있고 양치기도 있고 소치기도 있고 사냥꾼도 있어요. 그리고 어부, 행상, 상인, 구두 만드는 사람, 빵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선생: 농부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농부: 아주 고된 일을 열심히 합니다. 새벽에 소를 몰고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합니다. 날마다 2천 평 이상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소년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는다. 소년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라고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선생: 자 조용히들 하려무나. 각자 서로를 도와주어라.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사제이든 수도사이든 평신도이든 군인이든 누구라도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 일에 힘쓰고 분수를 지키도록 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점잖게 행동해라. 교회 종소리를 들을 때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걸어라.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제단에 공손히 절을 해라. 그리고 조용히 서서 같은 음으로 찬송을 하고 죄 용서를 구하도록 해라. 교회는 어린 소년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학생들도 가르쳤다. 교회의 주도로 신학을 가르치기 위한 대학교들이 설립됐다. 대학교는 하나님에 관해 가르쳤고 우주를 이해시키기 위해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법학과 의학도 가르쳤다. 대학교 선생들은 석사나 박사로 불리웠다. 그들은 서로 논쟁을 벌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폈다. 학자의 논쟁이 줄어들고 눈치 보기만 한껏 늘어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단이 기승을 부리고 목회자들은 괜한 일에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닌다.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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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8_ 교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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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삶이 되다_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 주신 말씀_ 민수기 6: 24~27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화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몇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민 14: 22) 위 말씀은 가데스바데아 바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 선발된 정탐꾼 열두 명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두루 정탐한 후 돌아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제사장 나라’ 계약을 파기하고 애굽의 노예로 살기를 선택하자 하나님이 보이신 분노의 말씀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열 하루면 가고도 남을 가나안 땅을 40년을 돌아서 가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한 출애굽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하나님은 40년간 변함없이 만나를 내려주셨고 저들의 의복을 헤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다. 항상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게도 수없이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은혜와 영광을 보면서도 쉽게 믿음에서 약해지고 약속을 잊어버리는 인생! 그는 바로 ‘나’일 수도 있다. 내 인생 모든 날은 차치하고 근래 3년간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적과 은혜만은 단 한 시도 잊어서는 안되리라! 아멘.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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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삶이 되다_ 복과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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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3_ 타협하는 교회
- 면죄부 판매 타협하는 교회 교회가 조심성이 없어졌다. 야심만만한 데키우스 황제가 로마 권좌에 또아리를 틀기 전 반세기 동안 교회는 평화에 흠씬 젖어 있었다. 이 기간에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엄격함이 하나하나 풀어졌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이교도인에게 더욱 친근하게 되었다. 불신자와의 결혼도 꺼리지 않게 되었다. 시련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다잡지 않았다. 축복과 평화와 즐거움이 신자의 마음을 차지했다. 많은 신자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엎어졌다. 서둘러 황제 신전에 희생 제사를 드리러 가는 신자가 조금씩 늘어났다. 그곳에서 얼굴을 마주친 신자들은 처음에는 서로 쭈뼛거리기도 했지만 이내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감독들까지도 뒤질세라 이교도 제단에 양 떼를 질질 끌고 갔다. 그런가 하면 이교도의 제단에 허리를 조아리지 않고 투옥되는 그리스도인도 있었다. 잠시 고문을 견디는 그리스도인도 있었다. 아주 곤란하고 난처했음을 나타내는 모종의 행동을 취한 그리스도인도 있었다. 이 약삭빠른 사람들은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희생 제사를 우상에게 드렸음을 말해주는 증명서를 취득했다. 종종 관리들도 신자들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했고 신자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관리는 신자한테 눈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난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걸 알아요. 굳이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요. 뭐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요.(이때 그는 눈을 찡긋했다.) 얼마 내세요. 그럼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증명서를 내드리겠오.” 귀가 솔깃해진 그리스도인은 눈을 말똥거리며 머리를 잽싸게 돌려댔다. “희생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고 감독께서 말씀하셨지. 나 역시 그럴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지. 그렇지만 증명서를 발급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감독이 안 하셨지. 증명서를 갖는다고 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관리는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고 있다. 고맙게도 관리는 내 목을 자르질 않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대한 벌금만을 물릴려고 한단 말이야. 내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을진대 이걸 안 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정작 고통스러운 문제는 그 증명서가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드렸음을 말해준다는 데 있었다. 박해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게 끝나자 발을 헛디뎌 넘어졌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교회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주 예수를 사랑했다. 그들은 교회란 노아의 방주와 같아서 교회 밖에 있으면 모두 멸망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제 이 사람들은 방주로 돌아갔으면 했다. 이런 사람은 달랑달랑 선물을 들고 감독을 찾아가 눈물 콧물 흘리며 애걸복걸했다. 마음이 약해진 감독은 넘어졌던 배교자가 용서받을 수 있는 조처를 취했다. 그 조처란 배교자가 굵은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쓰고 회중 앞에 나와서 자신의 슬픔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을 고백이나 참회라고 한다. 처음에 고백은 회중 앞에서 행하는 공개적이고 공중 적이었다. 나중에 그것이 목사나 사제 앞에서 행하는 은밀한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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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3_ 타협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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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2_ 예배와 예절
- Last supper from Kremikovtsi 예배와 예절 스무 세기 끄트머리쯤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너나없이 새로운 병을 하나씩 앓고 있다. 병명은 교통체증이다. 며칠 전에 살 만치 살았으니 가도 괜찮겠다며 세상 떠난 이브몽땅이 코맹맹이 소리로 노래하던 마른 낙엽처럼, 길마다 차들이 가득가득 뒹군다. 주일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친구들은 들녘이나 산자락으로 승용차를 타고 몰려가 북새통을 이룬다. 또 그리스도인과 친하거나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이 자가용을 타고 교회로 밀려와 교회 마당 내지는 골목을 깍두기 판으로 만들어 놓는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금요일 해 질 녘에서 토요일 해 질 녘까지 이어진 유대교의 안식일보다는 주일(Sunday)에 드려졌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드리는 날을 이렇게 바꾸게 된 연유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뒤 제자들에게 처음 모습을 나타내셨던 날이 바로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이 되면 도시와 지방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꼬박꼬박 함께 모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옹송옹송 모여들면 지도자가 그들에게 구약과 신약을 읽어주고 설명을 해준다. 설교를 마친 뒤 회중은 일어서서 기도했다. 그다음에 떡과 포도주를 들여왔다. 지도자가 감사기도를 드렸고 모든 사람이 ‘아멘’이라고 답했다. 아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서 “그렇게 되게 해주소서(So may it be)”라는 뜻이다. 이 말은 예수 님의 말씀을 그대로 채택한 것인데 헬라어와 라틴어로 변함없이 번역되었다가 나중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한국말로도 원래 말 그대로 옮겨져 사용될 정도로 온 세계에서 공히 사용되고 있고 누구나 알아듣고 뜻이 통하는 방언이 되었다. 감사기도를 드린 뒤 집사들이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일을 봉사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일마다 꼬박꼬박 성만찬 내지는 감사제를 가졌다. 설교자는 회 중에게 신앙의 위대한 진리를 들려주었다. 또 한 설교자는 교인들에게 좋은 몸가짐이나 예절과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예컨대 이 세기 교인이 받은 교훈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설교자는 그를 빤히 바라보는 교인들에게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길 떠나는 사람이 배를 채우듯이 음식을 게걸스레 먹지 마십시오. 입안에 음식을 가득 채우고 우적우적 먹는 모양은 얼마나 볼썽사납습니까. 입에 음식을 넣은 채 말한다든지 동시에 마시고 먹고 하지 마십시오. 웃음을 자제하세요. 사람이 늘 상 웃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웃게 되면 웃는 동물이 되고 맙니다. 말이 늘 상 히잉 거리며 우는 것은 그렇게 울게 되어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여자가 너무 웃음이 헤픈 걸 킬킬거린다고 하고 남자가 그러는걸 껄껄거린다고 합니다. 그런 웃음보다는 미소가 훨씬 낫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뭐 울적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재채기가 날 경우에 느닷없이 폭발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보석으로 치렁치렁 꾸민 여인들에게 그렇지 못한 여인들이 그들의 종들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제발 여자들은 덕지덕지 바른 화장으로 그 고운 얼굴들을 뭉개지 마십시오. 아름다움이란 건강한 모습이 활짝 핀 꽃이랍니다. 너무 사치품들을 쓰지 마십시오. 칼자루에 보석이 없다고 칼이 잘 들지 않겠습니까? 예수 님은 그냥 밥그릇에 밥을 잡수셨고 풀밭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바가지에 담은 물을 좀 달라하셨습니다...” 20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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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2_ 예배와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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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1_ 주님의 만찬
- Christ with the Eucharist, Vicente Juan Masip, 16th century 주님의 만찬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제자들과 더불어 저녁식사를 나누셨다. 요새말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회식을 하신 셈이었다. 그러니 모처럼 제자들로서는 제법 걸게 차린 식사였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과 나눈 마지막 저녁 식사임을 제자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 마지막 만찬을 계속 기념하는 것을 주님의 저녁 식사 즉 성만찬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에서 세례 말고 또 하나의 성례가 되었다. 이 성만찬에 대한 그리스어 명칭이 유카리스트(Eucharist)였다. 그 뜻은 ‘감사한다(to give thanks)’이다. 이를테면 주님의 만찬은 일종의 감사제였다. 처음에는 성만찬이 진짜 식사였다. 감정표현이 솔직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게걸스레 너무 많이 먹고 마신다고 툴툴거렸다. 그래서 사도는 교인들에게 점잖은 권면을 하나 해주었다. 그것은 성만찬을 먹으러 교회에 오기 전에 집에서 뭔가 먹고 배를 좀 채워오라는 것이었다. 사실 20세기 말엽을 한국교회에서 보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보면 매 주일 초대교회식의 성만찬을 즐기고 있다고 봐야겠다. 우리는 늘 상 대 예배를 마치기가 무섭게 예배당의 지하실이나 별실로 몰려가 그들먹한 점심들을 양껏 뱃속에다 밀어 넣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입이 뭐만큼 나와 우리는 기껏해야 국수밖에 못 먹는데 하는 교인도 있겠지만서두... St Michael the Archangel, Findlay, OH - bread and wine crop 어쨌든 얼마 안 가서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성만찬의 진짜 식사는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 대신에 오늘날과 같은 적은 양의 떡과 포도주로 대체됐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감질날 만큼의 떡과 포도주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초대교회 때 성만찬 시 사용된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있다. 먼저 잔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아버지시여 당신의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그 거룩한 포도나무를 알려주셨습니다. 당신에게 영원히 영광을 돌리옵니다. 뗀 떡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 생명과 지혜에 대해 우리의 아버지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에게 영원히 영광을 돌리옵니다. 떼어진 떡이 산들에 씨앗으로 뿌려진 뒤에 함께 모여 한 덩어리가 됐던 것처럼 당신의 교회가 땅의 쪼가리들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함께 모여지게 해주소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권세가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주님과 더불어 식사를 하는 이 성만찬 예식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집례자들이 적지 않다. 감사제로 드리는 이 성례에 참여하는 세례 교인들은 사실 그리스도교의 정식회원으로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된다. 그러나 이 식사를 권하는 사람이 눈물을 섞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게 되면 주님의 식사에 초대받는 세례교인들도 덩달아 목이 메어 얼마 되지도 않은 식사를 보릿고개 넘기듯 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만찬 기도를 통해 엿볼 수 있듯이 이 예식을 통하여 모든 신자들이 한 덩어리 떡이 되고 한 줄기 포도나무가 되는 뜻을 되새겨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신 주님의 만찬에 초대받아 그의 살과 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는 것은 얼마나 객쩍은 일들인지... 20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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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1_ 주님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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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_ 정경과 외경
- CANON Bible malmesbury arp 정경과 외경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비밀 가르침들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을 썼다. 교회는 불가피하게 어떤 책을 받아들여야 되고 어떤 책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되는지를 말해야만 했다. 언행의 일치가 없고 그악스런 영지주의자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시절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없었다. 신약의 책들이 기록되긴 했지만 이런 책들은 참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입장 표명을 교회가 하지 않고 있었다. 차츰 일반교회는 정경(Canon)으로 받아들여야 될 책들과 정경에서 제외 시켜야 될 책들을 결정했다. ‘정경’(Canon)이라는 말은 사물을 똑바로 재는 잣대를 의미한다. 어떤 책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그 책은 잣대에 어떤 표시가 새겨진 것과 같게 되었다. 먼저 바울의 서신들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다음에 네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이 받아들여졌다. 지금의 신약성서의 다른 기록들은 정경 안에 자리를 하나 차지하는데 지금의 어디 당회장 자리 하나 맡는 것만큼이나 더뎠다. 그래서 요한복음 같은 기록조차도 한바탕 싸움을 치루고서야 정경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야고보서 및 요한이서와 삼서 등도 정경 안에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분당 아파트 당첨만큼이나 어려움을 겪은 뒤에 한 칸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들 성경들이 정경이라는 잣대에 어떤 표시를 새길 수 있기까지는 아주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난 뒤 비로소 4세기에 이르러서야 정경 안에 마련된 신약성서들의 주택마련이 마무리되었다. 성령께서 교회와 협력하여 성서들의 보금자리인 정경을 완성하는데 수백 년을 두고 역사하신 셈이었다. 참으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기 위한 걸러냄의 역사였다. 인간의 어떤 발견이 이만한 노력을 끈질기게 기울일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신 성령께서는 결코 서두르시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일들에 얼마나 서두르고들 하는지. 성령께서 수백 년에 걸쳐 걸러내어 확정하신 그 말씀을 전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소홀하고 급한지...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네 복음서들은 구약성서의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에서 나타났던 천국 생물들로 표현되었다. 에스겔 선지자가 신비한 환상 가운데 본 한 얼굴은 소의 형상이었고 나머지 한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 형상들이 복음서들의 저자들이라고 하는 네 전도자들의 상징들이 되었다. 즉 사자는 마가의 상징이고 독수리는 요한의 상징이고 소는 누가의 상징이고 그리고 사람은 마태의 상징이다. 술탄 모하메드 2 세의 외경 서신, Apocryph 정경 안에 어렵사리 주택을 마련하지 못한 책들을 외경(Apocrypha)이라고 한다. 시쳇말로 무주택자들인 이 외경의 기록들은 상상이라는 물레를 돌려 이야기들을 자아냈다. 이것들은 신약성서에 생략되어 있거나 단순히 암시 정도만 되어 있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도들의 인생이 궁금해 성이 차지 않는 부분들을 메우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일례로 외경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심지어 할머니에 대해서까지도 고주알미주알 이야기한다. 또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주절거린다. 어떻게 소년 예수님께서 진흙으로 새를 만드셨으며 손뼉을 딱딱 치시자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갔는지를 너스레 떤다. 신명이 난 부흥사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처럼...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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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_ 정경과 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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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9_ 교황과 베드로
- Christ Handing the Keys to St. Peter by Pietro Perugino (1481-82) 교황과 베드로 거대한 로마제국의 혹독한 박해들이 교회의 성장이 진행되는 것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 밖에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쫓기는 사냥감 마냥 추적과 뒤짐을 당한 게 아니었고 로마 전역에서 동시에 숨돌릴 사이 없이 빈번하게 박해를 받지는 않았다. 예컨대 지금의 프랑스인 골(Gaul 라틴어로는 갈리아)지역에서의 박해가 반드시 아프리카나 그리이스에서의 박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주 후 1백 년에서 2백 년에 이르는 2세기 동안에 여기저기에서 아주 자주 박해가 일어나긴 했지만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발생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주 후 2백 년에서 3백 년까지의 3세기 동안에는 기독교회가 로마 전역에 걸쳐 거의 완전한 평화를 향유한 근 50년에 달하는 두 번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니까 약간의 기간을 빼고는 근 한 세기의 평화를 진력날 정도로 누린 셈이었다. 다시 말해서 3세기가 시작되는 2백2년과 세기의 중간인 2백50년과 3세기가 바로 끝난 직후의 3백3~3백4년에 로마 황제들이 로마 전 지역에 걸쳐 그리스도교를 분쇄하려고 힘을 썼다. 특별히 이 평화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사상을 보다 명확하고 확고하게 틀을 잡았다. 요즘의 통일교 추종자들 같은 그악스런 영지주의자들과 벌인 논쟁들은 누가 옳은지를 어떻게 알 것이냐 하는 문제를 제기시켰다. 눈에 한껏 힘을 준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예수님과 베드로와 바울의 특별한 가르침들을 지키기 때문에 옳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주장했다. 일반(Catholic: 이 단어는 보편적인, 일반적인, universal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혀가 돌아가는 대로 대답하다가 막히면 고개를 갸웃거린 게 아니라 예수님과 베드로와 바울에게 물어봄으로써 맹랑한 이단들의 물음에 답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분들이 어떤 신비한 가르침들을 책임 맡았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들을 돌보도록 선택받은 감독들에게 그러한 중요한 사항들을 맡기지 않았겠는가? 신약성서에 나오는 감독(bishop)이라는 말은 교회를 돌보는 사람인 감독자, 즉 목자(Pastor)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들 감독들 가운데에서 로마의 감독만큼 사도들의 정신과 가르침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감독이 없노라고 교인들이 입을 모아 영지주의자들에게 말했다. 로마교회는 베드로와 바울, 두 사도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2세기 무렵에는 베드로가 로마교회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줬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4세기에 이르러서는 베드로 자신이 로마교회의 첫 번째 감독이었다는 주장이 어지간히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3세기에는 로마의 한 감독이 난데없이 주장을 폈다. 그의 주장은 그리스도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마 16:18, 19)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로마의 감독들에게 줄줄이 전달해준 어떤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시고 계셨다는 것이다. Coat of arms Holy See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독 로마의 감독에게만 포우프(Pope)라는 칭호로 불려졌다. 이 단어는 단순히 ‘아버지’라는 뜻만을 의미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이 칭호가 어떤 주교에게든지 사용되었다. 지금 중간에 소개된 그림은 메달인데 후대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메달의 그림에서 교황(포우프)이 베드로 앞에서 그의 교회를 쳐들고 있다. 202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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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9_ 교황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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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8_ 기독교의 이단
- Titelkupfer Index librorum prohibitorum 기독교 속의 이단 신화 속의 신들이 지닌 신비들을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예수께서 스산해지는 가을이면 가을마다 어김없이 죽으셨다가 싱숭생숭한 봄이면 보란 듯이 부활하시는 또 다른 신쯤으로 생각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 조리에 닿지 않는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계절들의 가공의 신화적 인물이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가망 없는 우리를 위하여 단번에 자신을 드려 혹독한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시어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분이셨음을 똑똑히 배워야 했을 것이다. 로마제국에는 아주 색다른 형태의 종교가 또 하나 있었다. 그 종교는 자연계 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표시들은 그 어느 것이든 보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 종교는 세상은 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그 얇디얇은 날개를 소리 나게 재빨리 퍼덕이는 파리들과 자기 몸의 수십 배를 거뜬히 톡톡 튀는 벼룩들과 고장 난 온도계 같은 열병이 있었다. 복음송 가락에 흥이 겨워 눈을 감고 손을 반쯤 쳐든 오늘의 교인들이 되뇌이기를 좋아하는 좋으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만드셨을 리가 만무했다. 우리의 몸이란 악하다. 우리가 행하는 행위는 우리가 몸을 벗어나지 않는 한 하찮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들은 다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옛 사상들을 얼마간은 끌어들였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몸은 악하고 예수님은 선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몸을 가지실 수 없었다고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실제의 사람이실 수가 없으셨다는 것이다. 몸이란 건 도무지 악하고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해댄 김에 그들은 더욱 신바람이 나서 예수님은 실제로 태어나신 게 아니었다고 - 실제로 고통받고 죽으시고 다시 사신게 아니었다고- 손짓 발짓해가며 떠들어댔다. 무슨 신기한 약이라도 파는 약장사같이 그들은 악다구니를 썼다. 이런 탐탁치 않은 사람들을 도케타이(Docetae)라고 불렀다. 이 말은 헬라어에서 왔는데 허울(to seem)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어설픈 친구들이 예수님이 단지 몸을 허울로 가지신 것 같다고 생떼를 썼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조리에 닿지 않은 언행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작자들을 노스틱주의자들(Gnostics 영지주의자)이라고 했다. 이 말은 헬라어 그노스티코스에서 온 말인데 안다(to know)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친구들이 몸을 초월하는 방법은 더 많이 아는데 있다고 한사코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 점성술 및 마술 등을 알고 즐기고 있음을 상당히 으스대며 뻐겼다. 오늘날에도 노스틱주의자들이 주장하듯 기독교의 허울을 쓰고 기독교 행세를 하고 있는 이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본인은 한사코 손사레를 치는데 구세주처럼 떠받침 받는 자들도 있다. 헛소리를 듣고 그러는 것인지 들림은 듣는 게 아니라 들림은 받아야 한다고 침을 튀기는 자들도 있다. 노스트라다무스 흉내를 내며 밑도 끝도 없는 날짜를 들먹이며 휴거를 준비하자며 책을 팔아먹는 번역쟁이 출신의 이단자도 생겨났다. 그 친구 어줍잖은 책 한 권 번역해 오토바이 타고 이리저리 갖고 다녔다. 그러다가 한 어엿한 교주가 되어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으로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다가 날개없이 추락했다. 그는 자기가 지정한 휴거 예정 한달 전에 금품수수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되고 1992년 12월 4일 항소심에서 징역 1년과 몰수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정말 그가 말하듯 그날에 그만 하늘로 압송되듯 올라갔다면 우리는 남아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여전히 기다릴 수 있었을까.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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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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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8_ 기독교의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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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교회 세계사 17_ 신화 속의 신들
- Greek trinity 신화 속의 신들 그리스도교와 갈등을 빚은 것은 로마 정부와 심술을 일삼는 변덕스러운 민중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종교들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눈초리가 곱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로는 올림푸스의 햇빛 내리쬐는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던 것들이 있다. 개중에는 신들의 대장 격인 주피터와 그의 마누라 주노, 신들의 심부름꾼 머큐리, 여성용품의 대명사 격인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 싸움을 부추기는 무기상 같은 전쟁의 신 마르신, 우리네의 천하지대본인 농사를 담당한 신 새턴(사투르누스라고도 함) 및 그리스신화의 아테나에 버금가는 지혜의 신 미네르바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다섯은 인간들이 제멋대로 망원경으로 발견한 행성들의 이름으로 차용했다. 또한 신은 요일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토요일(Saturday)은 농사의 신인 ‘새턴의 날(Saturn`s day)’이다. 이외에도 다른 신들이 로마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런 것들로는 땅과 지하를 주름 잡는 신들인 아티스, 디오니시우스, 이시스 및 오시리스 등이 있다. 이들 신들의 이야기들은 식물의 시듦과 자람, 여름과 겨울의 변화과정을 설명하는 신화들이 되었다. 이러한 신화들 가운데 오늘날에도 잘 알려진 것으로는 제우스의 딸 페르세포네의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지하의 신 플루토(또는 하데스)에게 땅에서 납치당해 땅 아래로 끌려갔다.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는 곡물의 여신이었다. 데메테르는 세레스(Ceres)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에서 요즘 애들이 우유에다 말아 먹는 시리얼(Cereal)이라는 새우깡 같은 곡식깡의 이름이 비롯됐다. 그녀의 사랑하는 딸이 사라져 없는 동안에는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는 곡식을 성장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페르세포네를 돌아오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땅 아래의 신 플루토(또는 하데스)는 페르세포네가 지하에 있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면 돌려보내겠노라고 동의했다. 그런데 일이 꼬일려고 공교롭게도 그녀는 석류의 씨들을 먹었던 터였다. 플루토는 타협을 해서 일 년의 여섯 달 동안은 그녀를 땅으로 되돌려 보내도록 허락을 했다. 페르세포네가 땅으로 돌아오는 때가 바로 여름 기간이다. 그녀가 플루토와 함께 있을 때가 겨울이다. 이 이야기는 계절들에 대한 설명보다 더 많은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이 여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걸 이 이야기가 약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역시 하나의 종교였다. 사람들은 페르세포네의 사당에서 까닭 모를 의식들을 드림으로써 그녀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 하려고 힘을 썼다. 휘영청 밝은 달빛 속에서 사람들은 납치당한 여신을 찾아 서글피 울부짖었다. 이슥한 한밤중에 사람들은 동굴로 꾸역꾸역 들어가서 그녀의 이야기를 상연하는 연극을 눈을 또록거리며 구경했다. 이것을 봄으로써 사람들은 죽음을 극복한 여신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다. Sandro Botticelli La nascita di Venere 이런 류의 또 다른 종교로는 빛의 신 미트라의 종교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미트라는 황소의 옆구리를 찔러 죽였다. 황소의 상처 난 옆구리에서 밀 곡식이 부수수 쏟아졌다. 여기에 식물의 성장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있다. 즉 식물은 태양의 신 미트라에서 나오는 빛과 열 때문에 살 수 있었다. 미트라의 생일은 태양이 위로 치솟는 진로를 시작하는 12월 25일이었다. 그리고 태양이 살아 돌아오듯 미트라를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고 생각했다.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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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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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교회 세계사 17_ 신화 속의 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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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6_ 초대교인의 한마디
- 초대교인의 한마디 교회는 많은 이유들로 해서 로마제국 내의 여타종교들을 누르고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관해서 신약성서에 기록된 것을 믿었기 때문에 우선 남다른 데가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가운데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냈던 생활 태도 때문에 이러니저러니 하는 여타종교들의 속설과 가르침을 압도할 수 있었다. 예전에 자기 마누라를 심심치 않게 내버렸던 사람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싱글생글 충실하게 아내들과 잘살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이냐 하면 돈이라며 엄지를 곤두세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의 살붙이 같은 재산을 선선히 나눠 가졌다. 다른 종족이라면 얼굴 힘살이 샐쭉거리며 죽이거나 같이 못 살겠다고 고개를 돌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의 원수를 위하여 기도했다. 돈을 벌면 술 마시고 놀고 사치하는데 이외에는 무슨 돈이 쓸데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렵사리 번 돈을 과부와 고아와 노인과 파산당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공동 기금에 아끼지 않고 선뜻 내놓았다. 무엇보다도 시절이 하 수상했던 로마의 평화라고 하던 때라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위하여 서슴없이 죽는 용기에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눈초리를 보내는 이방인들에게 한 초대교인이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가운데 우리가 배운 가르침의 선을 말로 변변하게 설명할 수 없는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과 노동자들과 할망구들을 발견하고 당신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로는 표현을 못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는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발나발 말은 잘 못 해도 선행들을 행합니다. 맞게 되면 그들은 되받아치지를 않습니다. 강도를 당해도 그들은 법에 호소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뭘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늘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꼬거나 기도해 봅시다라고 둘러대는 법이 없이 너그럽게 줍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이웃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합니다.”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에겐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저 개차반 같은 사람이 변할 수 있나를 생각하면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즈음엔 교인이 강물에 빠지면 헤엄을 못 쳐 몸은 다 가라앉아도 입만은 붕어처럼 방실방실 물 위로 내놓고 빠꼼 거릴 수 있다는데. 그런가 하면 미국교포가 듣고 전달해준 이런 얘기도 있다. 어느 날 미국지역의 한 목사가 때가 되어 하늘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그는 그의 믿음과 직분에 걸맞게 하늘나라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미국에 들어갈 때는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에 비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건 가히 식은 죽 먹기였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하늘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예수님께서 신발도 제대로 걸치시지 않고 뛰어나오셨다. 이제 그곳에 막 도착한 신 입주자는 생각하기를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저러시겠지 하면서도 딴에는 겸손을 떨며 말했다. “주님 저같이 먼지만도 못한 것을 이렇게 안 해 주셔도 될 텐데 이러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내가 이러는 것은 이곳에 하도 오랜만에 목사가 와서 그러는 것이느니라.” 이 말씀을 들은 신입 천국 거주자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하던가. 삼위일체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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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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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6_ 초대교인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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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5_ 돌밭에 떨어진 씨들
- 돌밭에 떨어진 씨들 햇살은 한결 눅어졌다. 아직도 끈적임은 여전해서 여름의 기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로마제국 곳곳에서 검거와 고발 선풍이 몰아쳤다. 이 태풍은 다른 신들을 백안시하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을 바퀴벌레 마냥 박멸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체말로 거대한 로마당국은 그리스도인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속속 잡혔다. 그들은 고문과 회유를 당했다. 어떤 속주의 총독이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듯이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악형의 고문과 손쉬운 회유에도 굴하는 법이 도대체 없었다. 그들은 옥살이와 죽음을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담담히 맞아들였다. 그러나 신자들이라고 하면서 개중에는 약한 사람들도 허다했다. 이런 사람들에 관한 주제를 다룬 소설도 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우리의 손에 쉽게 와 닿는 그런 소설일 것이다. 그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시대에 있었던 기독교 박해를 다뤘다. 그 작품에 한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평상시엔 참으로 쓸모 있는 신자이다. 그러나 그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그는 언제나 변절을 일삼았다. 어려움만 없다면 진실로 그는 장로 재목이었다. 그러나 어려움이 그를 늘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어려울땐 믿음의 형제를 고발하고 주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그는 어려움이 잠잠해지면 삽살개 마냥 교회의 울타리로 기어든다. 적지 않은 일본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바라며 죽어갔다. 급기야 그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벽안의 폴랜드 신부가 잡혔다. 관리가 그를 심문했다. 신부 앞에 닳아서 희미해진 동으로 만든 예수상이 놓였다. 심문관은 그것을 밟기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푸른 눈의 신부는 닳아서 희미해진 예수 같지 않은 예수상을 조심스레 밟고 목숨을 건졌다. 순교와 배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순교란 어려움이 있을 때 죽을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배교란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을 부인하고 사는 것이다. 두 결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는 몸은 죽지만 영혼이 사는 것이고 후자는 몸은 살지만 영혼이 죽는 것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또록또록 눈을 굴리며 그를 빤히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또한, 주님께서는 뿌리운 씨들 가운데에는 돌짝밭에 떨어진 씨들도 있다고 하셨다. 이런 씨들은 몸에 어려움과 위험이 닥치면 영혼의 구원은 보이지 않고 다급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을 씹던 껌처럼 뱉을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참된 구원의 신앙이 없는 명목상의 신자들이 허다히 배교를 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황제를 섬기는 신전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분향을 했다. 믿으면 좋다고 자기에게 전도한 아낙네나 형제나 이웃에게 입에 못 담을 말들을 해대면서 황제의 신전은 다시 사람들의 줄을 잇게 되었고 분향 냄새로 자욱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성장의 진행은 혹독한 박해의 시련들로도 막지를 못했다. 그것은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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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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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5_ 돌밭에 떨어진 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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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4_ 순교자
- 순교자 가위 눌려 진저리를 치며 늙은 감독은 잠을 깼다. 어섯눈을 뜨고 사위를 둘러보니 어둠이 질펀했다. 난데없이 밤까마귀가 짙은 정적을 찢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직도 그의 망막에는 자신의 몸이 불타고 있는게 아른거렸다. 분명 꿈이었을텐데 머리를 흔들어도 그 모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금의 터어키의 한 도시인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일대 검거 선풍이 일어났다. 때는 주후 150년경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까닭 없는 소문이 서머나 시민들을 들끓게 했다.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여러 신들을 인정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날의 공산주의자 나부랭이 취급을 당했다. 무리를 이룬 군중들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 이름을 들먹였다. “폴리캅을 잡아라” 서머나의 늙은 감독 폴리캅은 거리낌 없이 폭도들의 뜻에 따르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한사코 말렸다. 그래서 그는 시골에 있는 한적한 농장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어려움을 겪는 교인들에 대한 소식과 밤마다 악몽으로 그는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 늙은 감독의 은신처를 치안 당국에 고발한 밀고자가 있었다. 밀고자도 교인이었다. 폴리캅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체포됐다. 수배범의 체포를 위해 현장까지 말을 달려온 책임자의 누이도 그리스도인이었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 말을 타고 올 때 책임자는 폴리캅에게 은근히 말을 건넸다. “시저가 주라고 말하고 그의 제단에 분향하고 당신의 생명을 구하면 무에 큰일이라도 날게 있습니까?” 폴리캅은 온갖 회유를 거절했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에게 던져지기 위하여 원형경기장으로 끌려왔다. 총독은 폴리캅에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세 차례나 주었다. 폴리캅은 먼저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는 말을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늙은 감독은 초췌한 얼굴을 들어 관중석에 옹송거리고 있는 이교도들을 향해 한껏 외쳤다.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 관중들은 동요 없이 킬킬대고 있었다. 총독은 양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그리스도를 저주하시오.” 폴리캅은 총독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팔십팔 년간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 해를 끼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구원해 주신 왕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총독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저의 이름으로 서약하시오.” 폴리캅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시다면 날을 잡아서 들어보도록 하십시요.” “당신을 야수들에게 던질테요.” “그렇게 하시죠.” “야수들을 우습게 아신다면 당신을 불태우겠소이다.” “당신은 한 시간 정도 타는 불로 나를 놀라게 하십니다만 당신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을 잊으셨습니다.” 총독이 민중을 향해 선언했다. “폴리캅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백했다” 성난 군중들은 길길이 뛰며 외쳤다. “우리들의 신들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그리스도인의 애비를 죽여라!” 폴리캅은 말뚝에 묶여 불길에 휩싸였다. 늙은 감독이 기도하는 동안 불길은 드세게 치솟았고 하늘은 더욱 푸르렀다.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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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4_ 순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