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PC021812-web.jpg
 
P8210005-web.jpg
 
좋은 게 좋다는 전동운 목사와 달리
장광우 목사 성경 헌법 전통에 따른
원칙을 중시하는 목회자
 
장로들 목사의 설교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비판 습관
예배와 재정과 인사에 주도적
 
영동중앙교회에서 담임목사는
실질적 당회장 아닌 의례적 대표
이런 경향 장 목사 목회 원칙 충돌
 
새벽 문 열고 교회에 나가 장로들로부터 심장에 혀의 말 총알 한 방 맞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 둘 데 없어 바라보는 하늘엔 떨어질 듯 깜빡이는 눈물같은 별이 몇 개. 그러나 집에 와 보니 아파트 베란다 동백나무 화분에 울컥 동백꽃 한 송이 피었다. 반갑다. 나의 비적대적인 믿음의 장로와 나누는 은밀하고 황홀한 상호 눈빛 속에 핀 믿음의 꽃이여 네가 있어 내가 운다.
 
꽃들은 자연의 영역 속에서 무심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것을 지각(知覺)하는 사람에게는 황홀한 믿음이 된다. 꽃은 불현듯 우리 가슴에 날아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해 주고 온전한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우리 몸을 적신다. 꽃과 상호 눈빛의 교류할 때 우리 믿음도 꽃이 된다.
 
하나님은 저 소금쟁이 한 마리를 물 위에 띄우려고 다리에 촘촘히 털을 붙이고 기름칠을 하고 수면에 표면장력을 만들고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연못이 마르면 다른 데 가서 살라고 날개까지 주셨다. 총신생 되어 서울로 떠날 때 우리 시골 교회 장로님 서울의 다른 교회 가서 힘들면 편지 하고 그냥 내려오라고 기차표 한 장 살 돈을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그 한마디에 어려울 때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그는 벌떡 일어서곤 했다.
 
우리가 두려움에 떨지 않는 것은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들이 우리를 붙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근심 중에도 희망을 갖는 것은 그 손이 우리를 도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랑스러운 것은 언젠가 우리들도 누군가의 “기차표 한 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전도사나 목사가 쓰러질 때마다 벌떡 일어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 새로운 해안을 향해 떠밀려가는 파도처럼 영원한 밤 속에서 되돌아옴이 없이 빨려 들어가는 우리는 단 하루라도 세월이라는 바다에 닻을 던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니 우리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자. 덧없는 시간을 서둘러 하나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 믿음으로 살자. 인간은 닻을 내릴 항구가 없고 시간은 가 닿을 강기슭이 없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들은 그렇게 사라져 하나님 앞으로 다가간다.
 
한탄하는 바람 한숨짓는 석양 그윽한 호수의 맑은 공기, 들려오는 이 모든 것 보이는 것 숨 쉬는 이 모든 것 그대들 모두는 말하여다오. 우리는 서로 사랑했었노라고. 셰익스피어는 노래했다. “장밋빛 뺨과 입술이 시간의 칼날 아래 있을지라도 사랑은 시간의 노리개가 아니다”. 시간은 소멸을 향해 흐르고 그것을 멈추게 할 닻은 없다. 오직 사랑만이 위로가 될 뿐이다. 그러니 우리 목사와 장로는 서로 사랑하자. 왜냐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1 4:7-8
 
서로 사랑을 나누자. 우리 모두 소멸의 종점에서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사랑했노라”고 말하자. 성경을 펴고 믿음을 건진다. 말씀에서 난 믿음을 말씀으로 세운 교회에 담아 다시 교회를 세운다. 말씀은 믿음을 발효시키고 믿음은 사랑을 발효시키고 사랑은 존경을 발효시킬 것이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목사와 장로는 점점 제 속을 비워 교회를 끌어안을 것이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목사와 장로는 교회 안으로 사랑 속에 한없이 꺼져 들어갈 것이다.
 
장로의 목사에 대한 존경과 목사의 장로에 대한 사랑은 서로 포개지고 겹쳐지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는 둥글게 안은 채 서로에게 파고든다. 말씀 발효의 시간이 이들 사이의 경계를 지운다. 이것을 바라보는 목사와 장로도 발효되어 이들의 사랑과 존경 속으로 한없이 꺼져 들어갈 것이다. 긴 겨울을 함께 가는 교회 안의 존경과 사랑. 차디찬 바람과 얼음과 눈발도 막지 못하는 목사 장로 사랑 뿌리는 믿음이다.
 
징후는 침묵의 언어다. 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징후는 침묵의 설교다. 전국장로회의 언어는 징후의 언어이다. 징후에서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해석’이다. 이 해석의 회로에서 총회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전국장로회는 비를 낳고 비는 반총회 물결을 낳는다. 요즘 장로의 행태에 대해 교단 실력자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장로가 그러는 것은 총회가 흔들리기 때문이야.”
 
언제는 영동중앙교회 장로 측 시위대를 이끌던 김화경이 11월 21일 총회 임원회가 있는 날 성석교회 시위대와 교계 작전 언론 세력의 필두(筆頭) 유현우를 비롯한 일단의 기자들을 총회에 몰고 나타났다. 그들은 총회회관 내 4층 총회장실 앞까지 진출해 총회 임원회의를 하고 있는 임원들을 향해 김화경의 선창에 따라 총회 권위를 무시하는 구호를 함부로 외쳐댔다. 그 옆에서 색이 바랜 파송 예배 주보를 대사(大使) 신임장처럼 가지고 다니는 북방선교사 강일구도 거라사 광인처럼 괴로운 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경찰도 오고 총회 총무 김창수 목사에게서 무슨 확인서 같은 걸 A4 용지에 받고 시위대가 썰물 빠지듯 총회에서 사라졌다. 그 뒤 1층 카페에서 어쩌다 배광식 목사가 사는 차를 김화경과 함께 마시게 됐다. 싱글벙글하는 김화경에게 물었다.
 
“아니 얼마 전에 영동중앙교회 시위대를 이끌더니 오늘 성석교회 시위대는 어찌 된 게요.”
영동중앙교회라는 말에 배광식의 찡그린 얼굴에서 뜻하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장광우 목사가 장로들한테 사표 낸다고 해 놓고는...”
김화경이 서둘러 말을 바꿨다.
“성석교회는 내가 결혼한 교회인데...”
 
1987년 미국 시카고에서의 유학생 시절 그곳에서 이민교회 목회를 하던 전동운 목사와 선후배 사이로 교제를 나누었다. 그래서 총회 전도국장 시절 나는 영동중앙교회 협동 목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근자에 그 교회에 분쟁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주일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전동운 목사는 안내를 보고 있고 다른 교단 목사가 주일 설교를 하는 그 교회 주보에 뜬금없이 김화경이 금요예배 설교자로 나와 있었다.
 
2008년 11월 15일 오후 2시 영동중앙교회 담임목사 이.취임식을 거행하고 16년간 영동중앙교회를 이끈 전동운 목사 후임으로 장광우 목사가 취임했다.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는 전동운 목사는 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자진해서 포기했다. 주민등록상 그의 나이는 63세 다시 말해 앞으로 7년 이상 영동중앙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할 수 있다. 전동운 목사의 퇴임은 7년이라는 세월뿐만 아니라 원로목사라는 자리까지 포기한 것을 의미했다. 1992년 영동중앙교회에 부임한 그는 16년째 사역 중이었으니 4년만 더 사역하면 원로목사가 되기 위한 법적 조건인 20년을 채우게 된다. 게다가 그 해 제93회 총회에서 목사의 정년을 만 71세가 되는 전날까지로 정했기 때문에 욕심만 부릴 수 있다면 8년도 가능했다. 그러나 전 목사는 교회의 성장을 위한다며 조기 은퇴를 했다. 영동중앙교회 장로들 역시 교회를 위해서였는지 장로들의 말을 잘 듣던 온건한 전 목사의 은퇴를 반갑게 받아들여 퇴직 위로금도 섭섭하지 않게 지불했다.
 
설교를 잘하고 실력이 있다는 것을 전동운 목사에게 인정받아 그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새로 취임하는 장광우 목사는 총신대 및 총신신대원 그리고 미국 리버티신학교를 졸업했다. 또 LA 동문교회를 비롯해 온서울교회와 가나안 장로교회 등에서 목회를 했다. 특히 경산 중앙교회를 담임하면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전동운 목사의 추천과 기대에 부응해 장광우 목사는 정체되어 있던 영동중앙교회를 제자교육을 통해 늘어난 새신자들로 배가시켰다. 이를 계기로 영동중앙교회는 새로워지고 활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임 전동운 목사와 장로들이 장광우 목사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좋은 게 좋다는 전동운 목사와 달리 장광우 목사는 교회 목회에 있어서 성경과 헌법과 전통에 따른 원칙을 중시하는 목회자라는 점이었다.
 
P8180025-web.jpg
 
장광우 목사 이전의 장로들은 목사의 설교에 대해 수첩까지 꺼내들고 이러니저러니 비판하는 습관이 있었고 교회 예배와 재정과 인사에 있어서도 주도적이었다. 영동중앙교회에서 담임목사는 실질적인 당회장이 아니라 의례적인 대표이어야 했다. 이러한 해묵은 경향이 장광우 목사의 믿음과 성경과 헌법에 따른 목회 원칙과 충돌했다.
 
평신도를 세우고 뜨거운 감격으로 주를 섬기고 사랑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를 비전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던 영동중앙교회는 2015년 하반기부터 담임목사와 장로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2016년 6월에 본격적으로 분쟁상황에 빠졌다. 장로와 일부 성도들은 2016년 6월 8일 수요예배 후 ‘교인총회’를 열어서 장광우 목사의 해임과 노회탈퇴를 결의했다.
 
현재 장로들은 사법에 ‘담임목사직무정지’와 ‘교회출입금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모두 기각된 상태다. 장광우 목사는 지지하는 성도 350명의 서명을 받아서 법원에 담임목사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신청을 제기해 놓고 있다. 그리고 영동중앙교회가 소속된 경평노회는 장로 측을 ‘이탈’로 규정하고 있다. 경평노회는 “장로를 비롯한 일부 성도들이 6월 6일 기소장 접수 후 8일 영동중앙교회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서 교회법 절차를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노회와 총회를 탈퇴”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후 분쟁 상황에서 노회장과 재판국장 등이 시무하는 교회에 주일예배시간에 맞춰 시위를 하고 여러 언론매체에 노회가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호도했다. 이에 경평노회는 영동중앙교회 분쟁에 관련해 그 책임을 물어 법에 따라 전동운 목사와 장로들을 면직하고 교인지위 제명의 시벌을 했다.
 
총회 헌법 정치 제 4 장 제 1 조는 목사의 의의(意義)에 대해 이렇게 규정한다.
목사는 노회의 안수로 임직(任職)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성례를 거행하며 교회를 치리하는 자니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직분이다(롬 11:13). 성경에 이 직분 맡은 자에 대한 칭호가 많아 그 칭호로 모든 책임을 나타낸다.
1. 양의 무리를 감독하는 자이므로 목자라 하며(렘 3:15, 벧전 5:2∼4, 딤전 3:1),
4. 하나님의 보내신 사자이므로 교회의 사자라 하며(계 2:1),
 
총회 헌법 제 5 장 제 4 조는 장로의 직무에 대해 이렇게 규정한다.
1.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찰한다.
치리 장로는 교인의 택함을 받고 교인의 대표자로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림하며, 자교회 혹은 전국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찰한다.
2. 도리 오해(道理誤解)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한다.
주께 부탁 받은 양무리가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당회로나 개인으로 선히 권면하되 회개하지 아니 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당회에 보고한다.
 
이상에서 보면 목사와 장로의 직무의 차이는 분명하다. 총회가 교회 분쟁 해결하는 데 있어서 총회 헌법과 규칙 및 결의에 근거해 진행해야 한다. 2016년 최순실 파동으로 한국이 갇힌 소용돌이는 가히 역대급이다. 그렇듯 우리도 대표적인 사랑의교회를 비롯해 여러 지교회의 분쟁과 총신 파동으로 총회가 갇힌 소용돌이도 역시 역대급이다.
 
총대들은 정치 지향적이며 총회 권력을 향해 경쟁하지만 결국 갈등을 발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교회와 노회의 개인과 집단 그리고 총회 사이의 매개 집단을 성숙시킬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성경과 총회의 헌법에 근거한 시스템을 공고히 다지지 못했다. 그 대신 길자연 후유증으로 질겁한 나머지 금권선거를 막는다는 명분만 앞세워 옥한흠 목사를 중심으로 몰정치의 제비뽑기를 통해 15년간 부실한 지도자 선출 악순환이 작금의 총신의 혼돈과 교회 분쟁의 소용돌이로 드러난 건 아닐까. 그래서 김용실 같은 자는 제비뽑기가 아니면 언감생심 우리가 어떻게 총회장이 되느냐고 희희덕댔다. 귀한 아들이 제 명에 죽지 못했는데도 돈 자랑만 하고 증경총회장단 회장까지 맡아 거들먹댄다.
 
P5113406-web.jpg
 
그러나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일생일대의 마지막 과업이라 여기고 결연한 개혁의지를 발휘한다면 바로 내년 제102회 총회부터는 중국 요나라 임금 때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태평성대를 즐겼다는 데서 유래한 고복격양(鼓腹擊壤)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장자교단이 각 지교회나 총신의 수치스러운 소용돌이의 악순환 속에서 반드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올곧은 장광우 목사는 영동중앙교회 목회를 하면서 난생 처음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고통을 겪다보니 교회와 장로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이다. 눈물이 마음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다. 눈물이 마음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목사의 눈물이 교회의 새희망을 찾고 있다는 걸 생각하는 장로는 요즈음 많지 않은 것 같다. 때로는 목사의 눈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맺힌 핏물이라는 걸 눈물방울이 핏방울이라는 걸 생각하는 장로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목사의 눈물은 그냥 흘러내리는 게 아니다. 목사의 눈물방울은 그냥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피를 흘려 사신 교회를 위한 눈물이기 때문이다.
 
영동중앙교회에 분쟁이 일자 장광우 목사를 배척하는 측은 2016년 6월 8일 수요예배 후 교인총회를 열어 장광우 목사의 해임과 노회 탈퇴를 노회법과 교회법을 어기고 결의하는 등 일을 서투르게 저질러 문제가 꼬이게 되었다. 그러자 김화경을 내세워 총회 앞에서 시위를 했지만 별 효용이 없었던 것 같다. 급기야 궁리 끝에 예전의 총회 총대로 드나들던 장로를 내세워 총회 정치권에 줄을 대고 어이없이 폐간되었지만 혹독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지만 그 장로와 연(緣)이 닿는 기독신문(사장 남상훈)을 활용해 언론 플레이를 시작한 것 같다. 그러나 정작 교회 분쟁의 해결 열쇠는 성경에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1 4:7-8
 
영동중앙교회 장로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해야 하는 본분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랑에서 자신들의 목자인 장광우 목사를 성경과 총회 헌법대로 존경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총회 헌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모르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 경평노회의 면직과 출교가 더욱 굳어지고 총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도 잃게 될 것이다.
 
20160731_111554-web.jpg
 
2016-12-24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영동중앙교회 분쟁 열쇠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