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토록 지은 소망이 못마땅해 부숴 버렸더니 비로소 마음에 드는 소망이 생겼다. 이제 내 안에 소망이 있으니 세상엔 소망이 없어도 되겠다.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는 소망. 정신의 뼈대만 앙상한 소망이 없으니까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 2026년 1월 1일 국산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으며 지휘 비행을 하고 한반도 전역의 군사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국방부 장관은 이날 새벽 ‘하늘의 지휘소’로 불리는 공군 항공통제기 E-737 피스아이에 탑승해 지휘 비행을 했다. 지휘 비행에는 KF-21을 비롯해 FA-50, TA-50 등 국산 전투기를 포함한 총 6대의 공군 전투기가 엄호 작전을 수행했다. 국산 전투기가 지휘 비행 엄호 작전에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 장관은 비행 중 동해 상에서 임무 수행 중인 해군 광개토대왕함장, 공중 초계·엄호를 담당하는 공군 비행편대장, 최전방 접적 지역을 사수하는 해병대 6여단 대대장과 육군 22사단 GP장 등 현장 작전 부대 지휘관과 차례로 지휘 통화를 하며 대비 태세 현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베이징 대학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고 1927년 추수 봉기를 이끌고 중국공산당의 창립 멤버가 된 마오쩌둥(毛澤東, 1893년 12월 26일~1976년 9월 9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종교적 교의(교조)로 여기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당신들의 교의는 분(糞)만도 못하다고 말해야 한다.”
표현의 비속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여기서 마오는 분명 맞는 말을 하긴 했다. 그러나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이 통제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당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했던 그 자신조차도 이 금언의 중량감에 끝내 짓눌리고 말았던 것일까. 1966년 참혹한 문혁기(文革期), 손에 ‘마오쩌둥 어록’을 들고 천안문 앞에서 마오 찬가 ‘동방홍’(東方紅, The East is Red,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사용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비공식적인 국가)을 부르던 무수한 홍위병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천천히 흔들며 답례하던 마오가 이미 새로운 교조 그 자체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있었을까.
어째서 이런 일이. 여기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분석했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1] ~ 1546년 2월 18일)의 심리적 특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권위를 혐오하고 그것을 뒤집고자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격 자체가 원래 권위적이었을 수가 있으며, 권위를 뒤집고 나서는 자신이 다시 권위주의의 화신으로서 군림하게 되기 쉽다."
교조에 대한 저항이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교조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이다.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한국적 민주주의든, 주체적 사회주의든, 민족적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든, 개혁주의든 한번 머리에 박힌 ‘당연한 생각’은 그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20년 전의 ‘상식’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문학자이며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65년 4월)는 이런 말을 했다.
“습관에 구속돼선 안 된다. 가끔 습관은 진리를 짓밟기도 한다. 습관보다는 진리가 우리의 행동을 인도해야만 한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빈정대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정말 좋아졌다. 당신만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대답이 적절해졌고, ‘법은 멀고 주먹과 돈은 가깝다’는 해결사들에게도 “이젠 주먹보다 CCTV가 더 가깝다”는 남의 말이 아니게 됐다. 대통령 이재명처럼 “여태껏 큰일 날 일을 저지르고 살았는데도 무사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가 됐다.

그런 시각으로 보더라도 북한에 대한 가장 정확한 규정은 ‘연극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명실상부한 것은 김씨 권력뿐이고 나머지는 ‘마치 정말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이다. 평양의 화려한 수십 층 아파트들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부실 공사에다 전기 부족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다. 지방에선 주민들이 “세계 제일로 행복하다”고 노래 부르는데 실상은 헐벗었다. 김정은이 이런 실상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실상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이 자신들 실상에 노심초사한다면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실제보다 겉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부풀려진 분야가 군(軍)이라고 한다. 김씨 권력이 외부 세계에 충분한 경고를 보내는데 북한군의 실제 모습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에서도 군의 ‘위력’이 주민들에게 ‘위안’이자 고생해야 하는 이유가 됐기 때문에 군사력은 끊임없이 과시돼야만 한다. 열병식이 자주 열리는 이유다. 그런데 그 열병식 행렬 속 탱크가 고장 난 모습이 노출됐다. 북한군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란다.
실상은 고고도 정찰기, 신형 전차, 정찰 공격 드론, 각종 미사일, 함정 등 김정은이 내세우는 무기들은 모두 한미가 보유한 장비의 겉모습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이 복제품들의 실제 성능은 미지수다. 군 장비는 민간보다 제작 기준이 더 엄격한데 북한의 제조업 능력은 한국의 1970~80년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북 기갑부대 장교 출신 탈북민은 “전쟁이 나면 북한 탱크 절반은 고장 나서 설 것”이라고 했다. 북한 군인 20~30%는 영양실조이고 실제 주로 하는 일은 건물 공사다.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하는 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다. 길을 걷다 언제든 발길을 멈추고 낯선 눈을 들어 하염없이 바라보는 도시여행자처럼, 우리도 우리 방식대로 총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를 위해 기도하고 향유해야겠다.
세상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배웠지만, 꼭 그렇진 않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 받아들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찾는다고 했지만, 부지런하면 피곤을 피하기 어렵단 것도 알게 되었다.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란 걸 받아들이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스무 살 소원은 마흔 살 되는 거였다. 그냥 가만 있어도 시간은 가고 나이를 먹을 텐데, 그런 허무한 소원이 대체 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일흔여섯 나의 소원은 아흔 살 되는 거다.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대는 현재에 붙들린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반성이고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완성된 나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죽을 만큼 힘들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런 고통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때로 우리 앞에 새로운 깨달음이 나타나거나 오래전의 깨달음이 새삼스럽게 내 의식 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나’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개인이 그 부분들을 받아들이고, 그 부분들이 모여 온전한 전신상(全身像)을 만들기 전까지 모든 총체적 평가는 유보돼야 하며, 의심받아야 한다. 보편적 진리란 없다. 다만 인생 행로(行路)에 작고 큰 도움의 손길을 말없이 내밀 수 있는 벗으로서의 지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의 길을 물을 수 없는 시간을 고스란히 떠안고, 우리는 매일 미지의 세상을 향해 구원의 길을 떠나야 할 것이다.
‘떠남’은 그 자체로 길을 묻는 과정이며 뇌와 선택으로 지나온 시간과 설렘과 걱정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교차시키기 때문이다. 추억은 찰나만을 보여주지만, 무수히 많은 시간의 교차점을 감지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처럼 말이다. 이렇게 춥고 바람이 시린데 봄이 오긴 오는 걸까 하고 의심을 품어 보지만 믿음은 마치 봄의 전령처럼 생명을 이야기한다. 다가오는 봄이, 그 생명의 기운이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크게 은혜롭길 기도해 보자. 힘겹고 지칠 땐 목표를 향해 억지로 힘겹게 내딛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연스럽게 때가 이르기를 기다려도 될 것 같다.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향하기만 해도 그 너머에 모세 같은 믿음의 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총회 지도자 장봉생 총회장, 정영교 부총회장, 김용대 서기 등의 믿음을 다독이길 바란다.
제110회 정책지향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2026년 신년사를 전했다.
부족한 종을 제110회 총회장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110회 총회는 '복음과 함께 주께로', '교회와 함께 미래로', '사회와 함께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모토로 '함께하는 정책총회'가 될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뢰, 성도들의 신뢰, 사회의 신뢰입니다. 진정한 신뢰는 '다움'과 '섬김'의 그릇에 담깁니다. 이를 위해 총회 역시 공교회로서 사업과 재정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교단 소속 교회 모든 교회들로부터 이 교단에 속한 교인이라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 16:3
2026-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