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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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mafia)는 보호세 갈취, 범죄자 간의 분쟁 중재, 불법적 합의 및 거래의 조직과 감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신디케이트형 조직범죄이다. 상술한 활동 외에도 마약밀매, 암 금융, 사기 등도 부차적 사업으로 삼는다. 마피아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된 것은 1875년 이후인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바는 없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시칠리아가 무법 상태에 있을 때 강도로부터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부자 지주들이 만든 소규모 사병 조직인 마피에(MAFIE)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최초의 마피아 단원은 시칠리아 만종 사건(1282년 부활절 3월 30일에 시칠리아 왕국에서 앙주 카페가의 시조 카를루 1세에게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이라고 불리는 반란에서 프랑스의 앙주 가문의 지배에 대항하여 싸웠던 시칠리아 기사들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이 설에 따르면 마피아(Mafia)라는 용어는 "이탈리아는 열망한다. 프랑스인에게 죽음을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 뜻하는 이탈리아어 슬로건 머리글자를 취한 것이라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04시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을 설득해 남한을 침략해 한국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金日成 1912년 4월 15일 ~ 1994년 7월 8일)처럼 2022년 2월 24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Vladimir Vladimirovich Putin 1952년 10월 7일~)의 러시아를 ‘마피아 국가’라 부른다. 까닭은 푸틴을 정점으로 한 소수의 권력 집단이 마피아 패밀리처럼 범죄를 통해 이권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 이권을 지키고 거스르는 자들을 배제하는 기준이 법이 아니라 총과 돈의 이해, 민주주의적 다수의 윤리가 아니라 총과 돈을 쥔 이들의 윤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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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단속을 받는 마피아와 다른 점은 푸틴 패거리를 규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상위 권력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사진에서 맨돈 소강석이 내려다보는 문재인 무리처럼 맑시즘 국가론을 맹신하는 까닭에 마피아 국가와 정상국가를 구분하는 것 자체에 냉소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는 근대국가의 원론적인 법적-윤리적 허울조차 우리 총회처럼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소위 문제 많은 여느 정상국가와도 다르다. 


푸틴은 1999년 말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이듬해 5월 대권을 쥔 푸틴은 2차례 연임 후 자신의 수족인 메드베데프(2008~12 재임)를 징검다리 삼아 헌법의 세 차례 연임 금지 조항을 우회, 2012년과 18년 4차례 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헌법을 고쳐 대통령 기존 재임 횟수를 ‘제로’로 리셋함으로써 만 83세 되는 2036년까지 권력 독점의 가도를 닦았다.


그 20여 년 사이 그는 천연자원과 에너지, 금융, 통신 등 국가적 핵심 이권 사업들을 장악했고 정적 등을 숱하게 투옥하고 살해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대통령과 일가에게 법으로 영구적인 형사면책권을 부여, 퇴임 이후 어떠한 혐의로도 형사 고소 고발되거나 조사-심문-체포-구금 당할 위험까지 제거했다. 무심결에 한 말이겠지만 푸틴은 스스로를 “나는 유럽이 아닌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라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런 마피아 푸틴과 달리 우리는 목사의 능력이 얼마나 크며 그리고 그는 성공에만 몰두하는 무지한 사람보다 얼마나 뛰어난지를 안다. 즉 무지한 사람은 외적 원인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선동되어 결코 정신의 진정한 만족을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과 사물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채로 생활하며 그리고 영향받는 일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존재하는 것도 그친다. 반대로 목사는 그가 자리를 탐하는 맨돈 소강석과 달리 목사로 여겨지는 한, 마음속에 동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 사물의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서 의식하며 결코 존재를 멈추지 않고 언제나 마음의 진정한 평화와 만족을 누린다.


목사란 모름지기 하나님과 사물에 대해 알기 때문에 진정한 만족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이 쉬운 일인가. 만일 행복이 손 가까이 있어 대단한 노력 없이도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에 의해서 등한시될 수 있었을까. 분명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어렵다.


행복은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온 천지에 널려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 길가의 돌처럼 널려 있는 것이라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노력 없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행복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하는 삶은 신앙의 삶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일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유심히 관찰하는 것에서 신학은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항상 노력하는 자세다. 신학 공부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사람에게서 듣지 않고 성경으로부터 듣는다. 건강과 합격과 승진 같은 소원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목사도 인간답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더 큰 소원을 가지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복잡한 속세를 초월한 듯 말씀과 성령에 취한 목사가 있다면 그는 바로 주님의 양을 위한 목자일 것이다.


지난 1992년 11월 24일 전주효성교회 담임으로 취임한 윤희원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강단이 있는 목회를 지향해왔다. 효성교회는 2012년 교회건축을 끝내고 입당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는 교회건축을 위해 성도들에게 건축헌금을 강요한 일도 없었고 건축헌금을 위해 부흥회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건축과정에서 교인들이 전세금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의 정성에 대해 감사했지만 받지 않고 목회 원칙을 지켰습니다. 때로는 유혹도 도사리고 있지만 먼저 나 자신부터 이벤트성 성장 목회를 금하고 있으며 성도들에게도 기복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칼빈주의 원리에 의한 목회를 지향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 중심과 교회 중심의 가르침과 저의 목회지향에 대해 대다수의 성도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년 11월 24일 ~ 1677년 2월 21일)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한 사색 끝에 ‘신이 곧 자연’임을 발견했다. 신이 곧 자연이므로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것, 즉 세상 만물은 신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만물을 관찰하고 사색을 통해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신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관찰과 사색을 통해, 즉 철학을 통해 깨달은 이치에 맞게 살아가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스피노자는 이치를 깨닫고 삶을 그 이치와 일치시키는 사람이 ‘현자(賢者)’라고 했다. 


그렇듯 방법적인 면에서 윤희원 목사는 성경을 통해 이치를 깨닫고 삶을 그 이치와 일치시켜 설교를 하는 목회자이다. 사람에게서 듣지 않고 성경으로부터 듣는다. 건강과 성공과 총회장 같은 소원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사는 인간답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더 큰 소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복잡한 현세를 초월한 듯 성경 말씀에 취한 목사의 자세가 상쾌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는 길게 말을 보태지도 않는다. 그의 단순하고 유덕하고 지적으로 풍부한 삶은 성경에 근거한 정연한 윤리적 설교로 감동을 끼친다. 우리 총회에서 지적인 면에서 그보다 뛰어난 목사들은 있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그를 따라갈 목사는 많을 것 같지 않다.


러시아를 ‘마피아 국가’라 부르는 까닭이 푸틴을 정점으로 한 소수의 권력 집단이 마피아 패밀리처럼 범죄를 통해 이권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우리 총회도 그 이권을 지키고 거스르는 자들을 배제하는 기준이 법이 아니라 교회 분쟁과 돈의 이해, 민주주의적 다수의 윤리가 아니라 총회 권력과 돈을 쥔 이들의 윤리에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실태에 대한 그 실제적인 대안을 2018년 8월 27일 자 기독신문 논단에 윤희원 목사가 스피노자처럼 기하학적 논리로 밝혔다. 


“누군가 '왜 우리 총회는 개혁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은 우리 모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도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기억이 없다면 역사도 기록될 수 없고 실상 자신도 우리라는 공동체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총회를 위협하고 있는 각종 현안들이 성경과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연구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와 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사들을 세우시고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그 우상 숭배적인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여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임금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며 왕이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삼상 15:22,23). 왜냐하면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2년 8월 19일 기독신문에서 윤희원 목사는 상비부 개편을 필두로 총회 마피아가 판치는 총회 시스템에도 변화를 줄 때가 됐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갈파했다.


“오늘날 문화는 평평함(Flat)을 넘어 빠름(Fast)으로 옮겨갔고 지식보다는 정보로 유통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총회의 행정적 사법적 치리와 대사회적 대응이 공정하지 않고 빠르지도 않으며 투명하지 않기에 반드시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같은 총회 구조로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과 몸을 만족시키거나 위로해줄 수 없다.”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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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원 총회상비부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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