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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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illon Urbain2

 

우르바누스 교황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고 부활 찬송을 연습할 즈음이면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교수님이 한 분 계시다. 그분은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셨다. 어둑해지면 호롱불을 밝혀야 했고 교통도 불편한 후미진 곳에 자리한 신학대학 시절이었다. 밤이면 양쪽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개구리가 합창을 해대던 목가적인 때이기도 했다.

 

바닥 처리가 안 돼 시멘트가 툭툭 불거진 강의실에 안경을 이마에 걸친 철학 교수께서 들어오셨다. 그 날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 주간 금요일이었다. 그는 빤히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찬송을 몇 곡 불러달라 하셨다. 지휘자도 없이 부르는 학생들의 찬양은 성가대를 능가하는 화음으로 교실을 메웠다. 고난 찬송이 끝나자 그는 수난 성구를 몇 군데 읽으셨다.

 

그런 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안경을 벗어들고 학생들을 향했다.

 

『여러분,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날 우리가 실존주의니 하이데거니 뭐니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철학박사이고 장로이기도 한 교수님은 조용히 교실을 떠났고 학생들은 말 없는 감동으로 가라앉았다.

 

우르바누스라는 이름의 교황이 교회 역사에 솔찬히 많지만 개중에 우르바누스 2세가 걸출하다. 마치 옛날 왕의 아버지한테 주어지던 칭호로 대원군이 있었는데 유독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대원군으로 가장 유명한 것처럼 말이다.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는 우르바노 2세 B_Urban_II2.jpg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는 우르바노 2세

 

1088년 3월 12일 교황으로 선출된 우르바누스 2세는 능변이었다. 그는 교황의 위신과 영향력을 크게 고양시킨 귀족 혈통의 성직자였다. 프랑스인이기도 한 우르바누스 교황은 1095년부터 태양처럼 빛나게 되었다. 1095년 프랑스 크레르몽에서 교회회의가 열렸다. 그는 한껏 위의를 갖추고 프랑스로 가서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로 가득 메운 회의장에서 명연설을 했다. 선동적인 연설에서 그는 터키인들의 잔학한 행위를 실감 나게 묘사했다.

 

『저주받은 종족이 동방 땅을 침략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노예로 삼고 고문을 하고 살해했습니다. 검사들은 목이 단칼에 베어지는지를 시험해보려고 성도들을 연습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교회들을 마구간으로 삼거나 파괴하거나 회교도 기도소로 만들었습니다. 찬양받으실 성모마리아 교회가 저주받은 족속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습니다. 무기와 군대로 여러분이 나가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한테 보복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교만으로 배가 불러 서로 으르렁거리며 조각조각 물어뜯고 있습니다. 이제는 모든 걸 떨치고 그리스도를 수호하러 나아갑시다. 반목과 적의는 잊어버리십시오. 무신론자들과 싸웁시다. 여러분 앞에는 거룩한 전쟁으로 인도하는 기수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보이지 않는 기수와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의연하게 좌중을 휘둘러보았다. 

 

모든 청중은 일제히 소리쳤다.

 

『하나님께서 그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걸 원하신다.』

 

유럽에 짙은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웠다. 거룩한 전쟁, 십자군 원정이 시작됐다. 십자군 원정(crusade)이라는 말은 십자가(cros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십자군 병사들은 소맷자락을 색실로 십자가를 수놓았기 때문이다.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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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73_ 우르바누스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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