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G.OPINION
Home >  G.OPINION  >  G.OPINION

실시간뉴스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 G.OPINION
    • G.OPINION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 G.OPINION
    • G.OPINION
    2024-04-05
  • 윤희원의 선거 변혁 제안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이 총회 상비부 임원 같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배광식이나 고광석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6일 전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 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표로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했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 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4-05
    • G.OPINION
    • G.OPINION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 G.OPINION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 G.OPINION
    • G.OPINION
    2024-03-20
  • 성경에 잡힌 우주
    “우리 망원경에 잡힌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이 1998년 ‘내 연구실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시간의 기원’의 저자 토마스 헤르토흐를 만나 던진 것이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20년 동안 호킹과 함께 연구했다. 호킹은 사망 직전 다중우주 관련 논문도 저자와 함께 썼다.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호킹과의 공동 연구를 소개하는 '시간의 기원’은 교양과학서이다. 문제는 이렇다.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는 주변 영역과 온도 차가 10만분의 1도밖에 안 된다. 온도 차가 1만분의 1도였다면 우주는 블랙홀 세상이 됐을 것이고, 100만분의 1도였다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 ‘생명 친화적인 우주’다. 우주의 인플레이션(팽창) 속도,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비율, 강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비율, 암흑 에너지의 밀도… 이처럼 우주의 각종 변수가 생명체에 유리한 쪽으로 맞춰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을 ‘미세 조정(fine-tuning) 문제’라고 한다. 한 가지 설명은 이런 것이다. 방대한 공간에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 우리의 우주가 생명 친화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런 우주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생명 친화적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우주에는 우주를 고민할 생명체가 없다. 지적 생명체의 존재가 우주를 설명한다는 이른바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1973년 처음 제기됐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주장은 검증과 예측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영역인지 애매하다는 말이다. 신학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렌즈를 깨끗이 닦아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학생 같다. 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 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 꿈도 맞추고 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 브랜드로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한다. 우리 목사들도 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목회를 충분히 경험하고 있나. 월급 외에 사역 속에 들어 있는 주님이 명하신 소중한 목회를 충분히 다 체험하고 있나. 곧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믿음으로 건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분수령이 될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300명의 의원이 새로 뽑힐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리더, 지도자라 부르지만 지난 세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과연 리더인지 개탄스럽다. 생산적인 가치는커녕 걱정과 분노를 더 많이 유발하지 않았나. 그들은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지, 국회의원이 되어 어떻게 쓰이고 싶고 어떤 가치를 생산하고 싶은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 정치가 여전히 삼류, 사류인 이유 하나는 그들이 이런 본질과 마주하는 대신 오로지 허영의 시장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닐까. 각 당의 후보들은 지금이라도 ‘어떻게 세비 값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휴대폰 렌즈에 잡힌 총회의 목사와 장로도 유권자이기에 2024년 4월 10일 믿음의 눈 밝게 뜨고 조금이나마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겠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우주배경복사(우주에 퍼져 있는 우주 탄생 초기의 빛)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24-03-18
    • G.OPINION
    • G.OPINION
    2024-03-18

실시간 G.OPINION 기사

  • 총신 사태와 재단이사장 후보 소문
    바이러스는 모든 종교를 강타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수천 년 내려온 절기의 전통을 중단시켰다. 순례객으로 그득해야 할 메카와 예루살렘은 적막하다. 소중한 전통과 제의를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신도들은 상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신이 주는 본질 회복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 걸고 지키려 해 온 종교의 가치가 성지나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담담히 성찰할 때가 아닐까. 그렇기에 비어 있는 메카의 모스크와 예루살렘 성전 통곡의 벽과 로마 베드로 성당 그리고 세계 곳곳 교회의 모습은 묘한 감동을 준다. 물리적으로는 비어 있지만 공허하지 않다. 빈 공간은 사람의 안전을 위한 공동 노력을 상징한다. 신도 간 거리 두기와 공간의 비움을 통해 유월절의 해방, 부활절의 생명, 그리고 추수감사절의 수확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움이 곧 영성인 즈음이다. 기도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통찰을 얻어 하나님의 뜻 확장하는 게 기도의 핵심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살피는 대화일 뿐 하나님의 뜻이 내 것이 돼야 한다. 총신을 졸업하지 않은 법학박사 소재열의 ‘리폼드뉴스’는 10월 17일 발 빠르게 총회 산하 교회 교역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세워 운영해온 총회의 관여를 달가워하지 않는 적반하장의 총신대 사태를 이렇게 전했다. 총신대 신대원 자율기관, 전직 이사들 정이사 선임반대, '수업거부 결의 여전히 유효'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총회신학원 제38대, 제39대 원우회, 제11대 여원우회 자율기관들이 지난 17일 총신대 법인 이사회 정상화와 관련하여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의하면... "이전 재단이사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라는 사실을 경계하며 "학내사태와 관련된 전현직 재단이사들의 정이사 선임을 절대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만일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아니할 때 "신대원 자율기관은 어떤 경우에서도 정이사 체제를 반대하며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은 수업거부 결의를 여전히 해제하지 않은 채 총회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라고 하며 수업거부 사태가 재연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졸업거부자 선배님들이었다"라며 "그분들의 희생을 시작으로 많은 물결들이 일어나 학교를 지키기 위해 뭉쳤으며 그렇게 우리는 추운 겨울, 제대로 수업을 듣지도 못한 채 강의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학교를 지켜야 했다"라며 정상화를 호소했다. 그들의 말대로 학교 건물 입구마다 컨테이너로 막고 투쟁한 덕인지 2018년 10월 5일 당시 총회장 박무용 목사에게 건넨 2천만 원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된 총신대학교 김영우 총장이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총신 사태는 종결됐다. 난마같은 총신 사태 해결 공로는 실상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와 당시 막후 실세 허활민 목사의 공로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부 파송 일반 관선이사와 제103회 총회장 이승희가 가려 뽑은 앞을 못 보는 국내 최초 장애인 대학 총장 시대가 전개됐다. 그런데 총회 산하 교역자가 되기 위해 총신에 들어온 학생들이 대한민국 교육부의 관선이사 시대를 마감하고 총회 파송 재단이사가 운영을 하려는데 반대를 한다. 그런 와중에 추미애의 검찰 감찰 사태로 어수선한 2020년 10월 28일 신임 재단 이사장에 사랑의교회 오정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총회 신임 총무 고영기가 하고 다닌다는 말을 총회에 정통한 인사에게서 들었다. 그래서 2020년 10월 29일 12시 21분에 총무에게 문자로 확인을 위해 물었더니 12시 22분 곧바로 ‘그런 일 없고 뜬 소문’이라는 답장이 왔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이전부터 신학대들이 경영난으로 학교를 팔아 몸집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차제에 총회 참여를 거부하고 관선이사 체제를 선호하는 신학생들과 신학 교수들과 그 구성원들과 그 후원자들을 통해 총신이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총회와 총회 산하 교회에 재정 요청을 할 것이 아니라 관선 이사를 통한 교육부를 통해 재정 지원을 받아 살을 깎는 자체구조 조정의 자구책으로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현 이재서 총장은 밀알선교단을 자립시킨 경력의 소유자이니 자신만이 아닌 수많은 직원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총신 재정 확충에 큰 능력으 발휘하리라 믿는다. 코로나로 어려운 총회 산하 교회에 기인 소강석 총회장 같이 선선한 후원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2020-10-29
    • G.OPINION
    • G.OPINION
    2020-10-29
  • 목사 소강석 가수 나훈아
    농담을 하는 어릿광대(jester)나 궁정 광대(court jester)는 중세 및 문예 부흥기에 귀족이나 군주의 궁정에 고용되어 고용주 및 그 손님들의 오락에 봉사한 사람이다. 궁정뿐 아니라 정기 장날이나 시장판 같은 곳에서 평민들을 대상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설교단의 목사 소강석 같이 중세 어릿광대들은 노래, 음악, 스토리텔링, 농담 등 다종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구사하는 연예인이었다. 중세 어릿광대의 행색을 흉내 내는 현대의 예능인들도 어릿광대라고 부른다.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목포에서 낙선한 박지원 신임 국정원장이 2020년 8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교회 갑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렵니다.” 한국 현대 정치판 불세출의 여우 박 신임 원장이 간 교회는 소강석 목사가 담임하는 새에덴교회였다. 8월 2일 광대를 자처하는 소강석 목사는 박지원이 참석한 예배 설교단에서 개그 하듯 설교했다. “제가 왜 저 어른을 존경하고 사랑하느냐. 주군을 위해서, 이번에도 청문회 할 때 버럭 화를 내실 때는 DJ 대통령이 거론이 되니까 DJ 대통령을 위해서 온갖 충성과 온갖 성심을 다해서 모셨고 그 분을 위해서 수감 생활(2006년 5월 25일 대북송금과정에서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의 실형 법정 구속)까지 하셨고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니까 청문회도 잘 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끝나고 전화를 올렸어요, 그 위트와 지혜 저도 좀 달라고, 저에게 어떻게 좀 안수를 해주시겠습니까. 신임 원장님이 되셔서 취임하시면 제일 먼저 우리 교회를 오신다고 하셨는데, 오늘 오시자마자 (박 원장이) ‘내 약속 지켰지요’라고 했습니다. 약속을 지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남북문제, 우리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도록 축하와 격려 박수를 한 번 해드립시다. 박지원 원장님, 많은 분들이 전문가들이 목포에서 떨어진다고 했지만 ‘나는 될 것이다’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돕고 또 후원했습니다. 그런데 떨어지셨습니다. 떨어졌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찾아가서 위로해 드리고 ‘대표님, 대표님의 지금까지의 정치적 노하우와 그 경험된 축적의 실력은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는 않을 겁니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위해 한 번 두 번 이상 반드시 쓰임받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의 종의 말을 이렇게 이루어주시더라고요, 야 이거 내가 점쟁이를 해야 되나,,,” 2020년 9월 21일 광대를 자처하는 소강석 목사는 제105회 총회장이 되어 회기 중 주안점에 대해 기독신문 주필 김관선 목사에게 광대답지 않게 말했다. “미래전략입니다. 우리 교단에 개혁신학을 시스템화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는 정규오·이영수 목사님 같으신 분들이 나와야 합니다. 저에 대해 적어도 돈을 밝히거나 의심스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정치적 안목보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의 열정과 지혜를 조직화해서 총회의 미래를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자 합니다. 총회 파회 전에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 교단의 발전과 부흥의 발자취, 그리고 교단의 미래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벤트성 총회로 흘러왔습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연구보고가 사장되지 않고, 정책의 연속성을 세워가는 일을 하겠습니다. 총회가 발전하고 부흥할 것인가에 관심 가질 것입니다.” 일주일 뒤 9월 27일 매일경제 기자에게 빨간 코가 없는 진지한 광대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교회가 성장하다 보니 화석화돼 가고 있습니다. 생기를 잃어버리고 꼰대가 돼 가고 있는 거예요. 목회자라면 꼰대가 되느니 차라리 광대가 돼야 합니다. 주류 출신들은 옷에 때 묻을까 봐 광대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어요. 욕을 하면 욕을 먹겠습니다. 목사들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목사들이 `헌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로 들어가야 합니다. 광대 자처하는 목사 소강석은 훈장도 받았다.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7년 캄보디아 국왕 훈장 9월 30일 오후 KBS 2TV에선 2020 한가위 대기획으로 방영된 나훈아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가수 나훈아(74)는 목사 소강석(58)과 달리 자신을 가수라고 했다. 가수라고 자처하는 트로트 가수 나훈아는 가수답지 않게 말했다. 10월 1일 조선일보 기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무려 15년 만에 TV에 출연해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친 가수 나훈아의 눈매는 여느 때보다 인자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무게감은 상당했다. ‘제2부-사랑’ 편에 청바지에 통기타를 들고 등장한 나훈아는 ‘깜짝 MC’로 등장한 김동건(82) 아나운서와 대화 중에 공영방송 KBS를 에둘러 쓴소리했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 소신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훈아는 코로나 방역의 영웅인 의사와 간호사들을 칭송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가수답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많이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면 제가 살아오는 동안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 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가수 나훈아에게 질문했다. “나라가 주는 훈장을 사양했다고 하더라.” 가수 나훈아는 또 가수답지 않게 말했다.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삽니까.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 6:43-45 2020-10-01
    • G.OPINION
    • G.OPINION
    2020-10-01
  • 교황 23세와 제105회 총회장 소강석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있다. 2019 가을부터 2020 가을에 이른 지난 1년은 해도 해도 너무한 한 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 한 해였다. 진보를 앞세운 자들의 잘난 부모들의 뻔뻔스러운 특권 질, 황당 궤변으로 제 식구 감싸기, 오만·방자함, 돈 추문, 성폭행, 막가파 행태가 하늘을 찌른 한 해였다. 코로나는 디지털, 바이오테크 기반의 혁신이 모두의 운명을 가른다는 진실에 국가와 기업과 우리의 교회 현실을 냉정히 직면케 했다 . 이는 역사의 잔인한 진리이기도 했다. 총을 든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168명 스페인 병사들은 돌, ·나무곤봉으로 맞선 잉카 제국 만여 명을 진압했다. 구멍 낸 사슴뿔로 굉음을 낸 화살, 명적(鳴鏑)의 몽골은 유라시아를 공포로 지새우게 했다. 단파 송수신기 개량 중 우연히 발견한 기술, 레이더로 미국은 나치의 U-보트와 전투기를 무력화시켰다. 미국방부가 군사적 소통용으로 개발한 인터넷, 인간의 지식 기반을 넓혀준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등 국가·기업의 성쇠를 결정한 건 기술 혁신이다. 나라 세운 지 72년. 보수는 58년 집권했다. 공산주의에 맞선 힘든 건국, 보릿고개를 면케 해 준 산업화 공로도 컸다. ‘반공’과 ‘성장’을 축으로 나라 창업해 이끌어 온 오랜 주류였다. 그러나 평등·공정·인권 등 진보적 가치의 쓰나미에 보수 정치는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섰다. 총선 참패의 충격이 컸을 터다. 하지만 72년, 58년의 시간이 흘렀다면 진즉 보수는 시대를 수용한 창조적 파괴와 쇄신을 도모해야 했다. 오죽했으면 팔십 줄 노구의 비대위원장에게 “이제 보수란 말도 쓰지 말라. 시비도 말라”는 꾸지람을 듣게 됐는가. 미래통합당의 적(敵)은 바로 변화하는 시대이자 시대를 놓친 자신들 뿐이다. 이 세상 가장 보수적인 곳은 이제 칼빈주의를 외치던 우리 교단이 아니다. 우리가 마귀의 본산이라고 하던 가톨릭 교회 본부인 바티칸이다. 전 세계 8억 명을 다스리는 이 작은 나라를 근원적으로 뒤바꾼 교황 요한23세(1958~63 재임)의 도전은 막 개혁의 걸음을 뗀 우리 보수 정치가 도움받을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전통·규율의 엄한 수호자로 20년 재임한 비오12세의 임종 직후인 1958년의 콘클라베. 11번째 투표 뒤 빈농의 아들인 77세의 요한23세가 선출됐다 . 땅딸막한 체구에 맞는 교황 옷조차 없어 앞쪽 단추만 채우고 등 쪽 솔기를 뜯어내야 했다. 별 볼일 없는 ‘과도기 교황’이란 빈축에 그는 “지상의 우리 모두는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무표정하게 웅얼거렸다. 청장년기 그는 예전 우리가 교계에서 좋아라 하며 흔히 듣던 ‘꼴통 보수’였던 것 같다. 신학교 때는 “아무래도 위험하니 절대 여자들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써놓곤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그와는 색다르게 트로트 가수 설운도는 어머니가 "여자를 돌같이 알아라" 했다고 수석을 취미로 삼아 많은 돌을 집안 가득 모아놓기도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교황이 될 운명의 그는 카드·주사위 놀음은 구경도 않고 ‘바깥 공기’가 들어올 신문조차 보지 못했다. 한 파티장의 노출 심한 젊은 여성에겐 자꾸 사과를 먹으라고 권하면서 “하와는 사과를 먹고 나서 자신이 벗은 몸이라는 걸 알고 부끄러워했다”라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해 줬다고 한다. 그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에 오른 당시는 세계사적 격변기였다. 2차대전·식민시대, 한국전이 막 내린 이후 미·소 냉전은 최고조였다. 무신론 공산주의가 지구 절반을 물들이고 그리스도 교회는 사분오열됐다. 자유·자본의 개방 풍조 속에 가족 붕괴, 이윤 추구, 진화론, 이혼·낙태, 교회의 부패, 동성결혼, 노조를 둘러싼 가치 혼란이 극심했다. 변화와 전통의 극한 대치 속 교회는 더이상 세속의 양떼를 이끌기엔 힘이 부쳐만 갔다. 지금 우리의 총회 정치와 신학처럼…. 로마의 주교가 된 석 달 뒤. 요한23세가 택한 해법은 62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公議會)였다. 93년 만의 공의회 소집이었다. 온갖 피부색, 모든 교회의 주교·성직자와 좌우의 신학자 2,540명을 불렀다. 시대의 문제, 시대가 보는 교회의 문제, 사람들의 불안과 갈망을 난상 토론해 새로운 교회의 길을 찾아보자는 도전이었다. 스스로를 고해하고 재판하자는 결단이다. 교황만 빼곤 난리가 났다. 그의 절친인 밀라노의 몬티니 추기경조차 “이 성스러운 만년 소년은 자기가 말벌의 집을 들쑤시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교황청에 내걸린 사목(司牧) 슬로건이 '항상 그대로(semper idem)’였으니 말이다. “혹 이게 악마의 유혹은 아닐까”라고 흔들리곤 했던 요한23세의 당시 고뇌와 결단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암반 같은 보수의 변화엔 값진 원칙들이다. 첫째 개방.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나쁜 공기도 들어오겠지만 그래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옵니다.” 둘째 포용. “언젠가는 공산주의라는 골리앗도 하나님 뜻에 굴복할 겁니다. 그들을 교회의 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며, 교회에는 원래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변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삶이 충만하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꾸기 위함입니다.” 셋째 진취적 도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진리를 무슨 숨겨놓은 보물인 양 지키는 데 급급 하는 건 잘못된 길입니다.” “우리 대표자들은 섬이나 참호, 성 안에 숨어 살려는 기질을 버려야 합니다.” “두려움과 선입견 없이 세상과 다시 만납시다. 분명한 개혁의 목표. “교회가 사람들을 위해 말하지는 않고 교회 자체에 대해서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마지막 넷째 개혁의 ‘취사선택’ 균형. “헐떡거리면서 세상의 뒤를 쫓아가지도 말고, 무비판 적으로 세상에 박수를 보내지도 맙시다.” 1963년 요한23세는 위암으로 임종했으나 유지를 이은 바오로6세가 공의회를 마무리했다. 요즘 한국 가톨릭의 제사 수용, 모국어 미사, 사회정의, 소수 층에의 관심, 폴란드·쿠바 등 교황의 공산권 방문, 타 종교와의 화해·포용, 평신도 존중 등 숱한 변화가 그 성과였다. 요한23세는 기적(奇蹟)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6년 전 성인으로 시성(諡聖)됐다. 이 지난한 개혁에의 도전이 바로 '기적’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자 보수 교단이여. 스스로 광대라 하는 총회장을 맞이하여 요한 23세의 교황청처럼 총회에 똬리를 튼 말벌의 집을 들쑤셔야 할 때다. 대충대충 보수의 개혁이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2020년 9월 21일 제105회 총회장이 될 소강석은 누구인가. 그는 영국의 호국경 크롬웰처럼 믿음의 견지에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지도자이다. 돌발적인 상황에도 감정으로 덧칠하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그는 영국의 호국경 믿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생각하고 설득하고 대처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믿음의 지도자다. 소강석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에는 영국의 청교도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같은 단단하고 빛나는 금강석의 빛이 보인다. 교단과 교계를 이단과 반성경적 사조로부터 수호하고 목회생태계를 단단히 다지기 위한... 제105회 총회 주제는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 근거한 ‘세움(Planting)’의 총회이다. 6월 11일 목요일 11시 총회회관에서 열린 총회준비위원회에서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세움’의 비전을 통한 제105회 총회 정책을 제시했다. 그 정책의 틀은 세 가지이다. 1. 105회 기념사업1) 총회합동 15주년 기념 감사예배 2) 백남조 포럼 3) 터키 포럼 4) 기도 한국 회복 2. 미래 전략1) 미래전략발전위원회 상설화 2) 반기독교 대응교회생태계위원회, 반기독교대응위원회, 이슬람대책위원회 등 통합 운영 3. 교단교류협력사업1) 교단교류협력위원회 재 신설을 통해 연합사업 주도 2) 총회위기관리특별위원회 설치 운영, 교단 협력 3) 총회 소속 목회자 전원 은급재단 가입 추진 시인이기도 한 그는 ‘촛불’이란 시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헌신의 뜻을 세웠다. 타야만 빛이 되고어둔 밤을 밝힘을알았습니다사랑할수록 부족하고드릴수록 목마르기에서러운 눈물만 흘립니다밤새도록 울다가그리움에 사무치며 꺼져야 할시한부 생명이지만이 밤도당신을 위한 사랑의 제단에서춤추며 타오르는 촛불이 되겠습니다 2020-09-19
    • G.OPINION
    • G.OPINION
    2020-09-19
  • 시무 7조 상소
    존경하는 제105회 총회장 소강석 목사님. 믿음은 자신의 믿음을 마시지 않고 소망은 자신의 소망을 먹지 않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자신을 비추지 않고 자기를 위해 향기를 퍼뜨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사는 게 믿음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고 그리고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게 이해하기가 어렵더라도 말이지요. 칼빈주의 신앙과 신학 위에서 제105회 세움의 총회를 이루려는 시대의 기인 소강석 총회장님에게 삼가 시무 7조 헌의를 드립니다. 시무(時務)란 그 시대(時代)에 꼭 해야 할 중요하고 시급한 업무를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시무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소(疏)의 일종이었습니다. 그러한 상소를 영명하신 제105회 소강석 총회장님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一. 총회 본부 근무자의 사무실과 책상 크기를 총회장, 총무, 사무총장, 국장 등 순으로 구별을 두되 모양과 규모를 화합을 위해 통일시켜 주십시오. 二. 3년 임기의 총무와 사무총장의 업무 효율과 집중을 위해 담임목사직을 겸한 이중 직 금지의 전통을 지켜주십시오. 三.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기시어 총회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해 교육전도국에 관련된 교육개발원을 병합시켜주십시오. 四. 그간 무능과 직무유기로 은급재단의 부실(같이 출발한 통합 측 5,000여억 원에 비교하기도 부끄러운 400여억 원)을 오랜 세월 19년 동안 끼친 책임자들을 교체해 총회 연금의 활성화와 안정화를 기해 주십시오. 五. 총회 재판국은 제105회 부서기에 뻔뻔하게 나선 허은 목사 식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직권남용의 합의서가 아니라 소송과 분쟁을 법에 준거한 재판으로 판결하는 기능을 고정시켜 주십시오. 六. 총회 근간인 헌법의 가치와 성경적 신앙의 절대적 권위를 지켜주십시오. 七. 마지막으로 이영수 목사 이래 그 모양 그대로 있는 총회 회관의 세계 최고의 위치는 바꾸지 마시고 낡고 빛바랜 외양과 내용을 새롭게 리모델링 해주십시오.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 G.OPINION
    • G.OPINION
    2020-09-18
  • 제105회 총회 개회 어떻게
    사막이나 수도원의 수도사에게 계시나 깨우침의 찰나는 단순한 순간이 아니라 굉장히 짧으면서도 긴 시간일 것이다. 올리비아 랭은 자신의 책 "외로운 도시"에서 고독을 배고픔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외로운 도시"에는 고립된 채 살았던 뉴욕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친언니가 철도에 누워 자살한 낸 골딘, 보모로 일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세상에 공개한 적 없었던 비비안 마이어,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평생 말을 더듬었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도시인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는 늦은 밤, 카페테리아의 구석 자리에 뚝 떨어져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등이 보인다. 이야기보다 사연이라 부를 법한 서사적 뒷모습이다. 호퍼의 많은 그림이 그렇듯 짧은 고립 순간을 포착한 그 그림은 내용보다는 고독의 분위기를 표현한다.왜 우리는 호퍼 작품의 원천이 고독이라는 주장을 계속 고집하는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한 명뿐이거나, 두세 명 있어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불편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밤의 사람들(Nighthawks) 도시는 무엇인가. 도시는 이동이 귀찮은 게으른 인간들이 게으름 구현, 극대화를 위해 만든 초대형 구조물이다. 그래서 도시는 인간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좋은 도시’는 무엇인가. 게으른 인간들이 가장 쉽고 빠르고 편하게 자신들의 물품·정보를 교환하며 사는 공간이다. 그래서 좋은 도시는 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더 빽빽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회구성원의 집합적 게으름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고 따라야 할 목표다. 그 결과를 표현하는 단어가 경제성·생산성·효율성 등이다. 교회에서, 공원에서, 기차에서,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외떨어진 사람들, 등을 돌리고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어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의 표정과 형광등 불빛의 그 창백한 풍경은 가히 외로운 '호퍼 적'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마스크가 사람들의 표정을 차단해 버렸다. 그러니 이 코로나 시대에 '호퍼 적 풍경'은 다른 의미로 해석될지도 모르겠다. 카페테리아 속 뚝 떨어진 남자의 모습은 생활 백신을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세상은 교회의 기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방역과 치료 백신에만 의존할 뿐이다. 청와대에 불려간 목사들을 앞에 두고도 문재인은 이 세상의 질병이 과학의 문제이지 하나님의 눈에 벗어난 인간의 죄악에도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드러낸다. 이제 세상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란 이야기가 더 실감 났다. 요즘 쉬지 않고 울리는 코로나 관련 문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그건 그렇고 제105회 총회 개회는 어떻게 하나. 속 타는 시인 소강석 부총회장이 급할 것 없는 정금 김종준 총회장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총회장님, 9월 21일 가을에 개회하기로 했던 제105회 총회는 그대로 갈까요, 연기할까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것보다 집에서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더 많다. 회사의 업무 회의는 같은 건물 회의실보다 온라인상에서 하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아티스트는 더 이상 관중석 청중의 표정을 살피며 교감하지 못하고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의 댓글에 의지한다. 기존에 정상으로 생각돼 왔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의사 결정을 해야 할 일들은 수없이 많다. 이때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까. 기존의 지식과 경험에 의거 해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좋을까.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질문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라 하지만 늘 A 아니면 B, 양자택일의 옵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행사의 규모는 줄이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서 진행할 수 있다. 훨씬 많은 선택의 옵션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어떤 한 가설에 꽂히면 우리의 뇌는 그 한 가지 옵션의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 편향이라 하는데 이 역시 피해야 할 생각의 함정이다. 늘 반대 의견을 경청하며 실제로 검증해보는 습관이 중요하고 약간의 심리적 거리를 확보해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역시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핵심만을 정리한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정해야 가장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실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대부분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선택을 하건 자신의 선택을 믿고 그것을 올바른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믿음으로 자신 있게 결정해야 한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성경이 던지는 메시지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2020-08-31
    • G.OPINION
    • G.OPINION
    2020-08-31
  • 총회선관위 표변
    세계 평화를 위해 ‘내 영혼과 하나님의 결혼’이라고 고백하는 고난의 길을 걸은 1953년 제2대 유엔 사무총장 함마르셸드(Dag Hjalmar Agne Carl Hammarskjold 1905년 7월 25일 ~ 1961년 9월 18일) 같이 가는 곳마다 화평케 하는 피스메이커가 우리 총회에도 있다. 그는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재호 목사(동산교회)이다. 2020년 6월 19일 오후 2시 총회회관 5층에서 통일준비위원회 연석회의 및 탈북민 신학생 장학금 전달식이 총회 피스메이커 김재호 목사 사회로 열렸다. 시작 전 통준위 행사 개최와 선관위 관련 배경 설명을 김재호 목사가 했다. “코로나 이후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우리 통일준비위원회 연석회의 및 탈북민 신학생 장학금 전달식을 열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원근각처에서 오신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좀 말씀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위원장 저하고 서기 황재열 목사님이 총회 상비부 부장으로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회의도 선관위에 열흘 전 신청을 해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총회회관에서 하는 행사는 회의는 괜찮지만 반드시 선관위 허락을 받아야 됩니다.” 사실 통준위는 지난 5월 31일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서 성대하게 제4차 기도회를 열었지만 개최 장소가 총회회관이나 GMS 회관이 아니라 이날 제105회 상비부 출마한 김재호 통준위 위원장과 황재열 통준위 서기는 관계로 불참해야 했다. 통준위는 앞으로 3차례 평화통일기도회를 계획하고 있지만 위원장과 서기는 불참해야 한다. 이런 사례들이 제104회 여러 상비부 임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총회선관위의 선거법 적용이 예년과 달리 표변했기 때문이다. 표변(豹變)이라는 말은 본래 주역(周易)의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 소인혁면(小人革面)’에서 유래한 말이다. 대인은 호랑이가 털갈이를 하여 위엄을 드러내듯 자신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며, 군자는 표범이 털갈이를 하여 새로운 자태로 거듭나듯 과오를 인정하고 자신을 새롭게 하며, 소인은 그저 얼굴빛이나 바꾸는 정도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호변과 혁면은 죽은 말이 되어 사용되고 있지 않으나 표변은 지금도 자주 쓰는 말로 남았다. 다만 현대 한국인의 언어 관습에서 표변은 이러한 본래 뜻(표범의 무늬가 가을이 되면 아름다워진다는 뜻으로, 허물을 고쳐 말과 행동이 뚜렷이 달라짐)과는 달리 부정적 의미(마음과 행동이 갑작스럽게 돌변함)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에 따라 종전 태도나 입장을 번복하거나 신의를 지키지 않고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표변하다’의 의미로 사용한다. 대한민국 중앙선관위의 선거법에 후보자들이 선거기간에 행할 수 있는 ‘의례적인 행위’에 관한 이런 조항이 있다. 제25조의3(당원 등 매수금지의 예외) ①법 제57조의5(당원 등 매수금지)제1항 단서에서 "의례적인 행위"라 함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개정 2009. 2. 19.> 1. 경선후보자의 경선운동기구를 방문하는 자나 경선운동기구의 개소식에 참석한 자에게 통상적인 범위 안에서 다과류의 음식물(주류를 제외한다)을 제공하는 행위. 2. 경선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자와 경선운동기구에서 경선사무에 종사하는 자를 합하여 다음 각 목에 해당하는 수{법 제10조(사회단체 등의 공명선거 추진 활동) 제1항 제3호의 규정에 따른 가족은 그 수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이내에서 통상적인 범위 안의 식사류의 음식물을 제공하는 행위. 가. 대통령선거의 당내 경선에 있어서는 30인.나. 시ㆍ도지사선거의 당내 경선에 있어서는 15인.다. 국회의원선거, 자치구의 구청장 및 시장ㆍ군수(이하 "자치구ㆍ시ㆍ군의 장"이라 한다) 선거의 당내 경선에 있어서는 10인.라. 지방의회의원 선거의 당내 경선에 있어서는 5인. 선거 후보자들을 위한 법 적용이 세상도 이럴진대 거룩한 총회도 이런 정도의 융통성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총회의 선거 규례는 그 적용을 가늠할 수 없는 깜깜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제6장 선거에 대한 규제 제26조(선거운동의 범위와 한계) 1. 총회임원, 상비부장, 공천위원장 및 기관장, 재판국원, 선거관리위원(선출직), 총회 총무 입후보자(이하 ‘입후보자’라 함) 및 그 지지자는 선거기간 중 일체의 금품요구 및 금품수수(金品授受)를 할 수 없다. 도대체 후보가 선거를 이기고 총회에 봉사하기 위해 어떻게 하란 말인지 모르겠다. 흔히 법과 윤리 도덕은 한 뿌리를 가진 같은 나무에 있고, ‘법은 최소한의 윤리 도덕’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덕과 윤리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주 교화 대상으로 여겨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최고 수준의 덕목을 갖춰야 하는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최소 수준의 도덕인 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개인의 영달을 위해 탈법행위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새로남의 오정호 목사가 좋아하고 실천에 앞장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nobility obliges)를 의미한다. 어느 국가 사회도 구성원들의 준법정신이나 법질서 확립 없이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할 수 없고, 결국 국민의 삶이 위협받게 된다. 언제부턴가 일부 지도층·권력층 법률 전문가들이 더 기술적으로 법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법과 정의의 여신상인 그리스 신화 속의 아스트라에아(Astraea)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칼 또는 법전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린 것은 재판할 때 주관성이나 자신의 이익, 욕심을 버리겠다는 뜻이고, 칼은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뜻이며, 저울은 옳고 그름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가르겠다는 뜻이다.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를 떠올리고 법조인들은 정의의 여신을 떠올려 법률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러듯이 그들을 가르치고 교화시키는 목사와 장로들은 성경을 떠올려 법과 신앙 양심을 지켜야 할 것이다. 참다운 준법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 더하여 총회선관위는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한 선거법의 정신은 살리되 경직된 아니 표변한 선거법 적용으로 부정은 막는다는 좋은 취지와 달리 후보 검증과 총회 행사에 지나친 경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생명과 산소의 관계처럼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게 소통이다(Communication to a relationship is like oxygen to life)’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는 제104회 이승희 총회선관위 위원장이 좋아하는 ‘변화’에 둔감하다는 인식을 불식하되 지켜야 할 가치는 지키는 보수다운 신중함과 책임감은 견지해야 할 것이다. 왜 혼자가 되면 외로운지 아는가. 이에 대한 답을 심리학자 카를 융이 제시한 바 있다. ‘당신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외로움은 당신이 중요한 문제를 두고 누군가와 소통할 수 없을 때 생기는 거다.’ ‘생명과 산소의 관계처럼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게 소통이다(Communication to a relationship is like oxygen to life)’라는 말이 있다. 총회선거도 그렇다. 2020-06-29
    • G.OPINION
    • G.OPINION
    2020-06-29
  • 벚꽃 소강석
    벚꽃 -소강석(1962~) 봄날 흐드러지기 위해 피었나/산천에 피어있는 꽃보다/하얗게 흐드러진 꽃잎들이 눈부셔 /그 아래 서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그 새하얀 꽃구름 아래/걷는 것도 송구스러워 /한동안 멈춰 서 있노라면/문득 떠오르는 한 눈동자/그 시선이 나를 걷게 한다 어디론가 끌리게 하고/아득한 세계로 안내하는 꽃잎 하나하나/모두가 사랑의 연서이고 초대장인 거야 벚꽃은 졌지만/여전히 벚꽃나무 길을 걷는다/... 남해는 섬이다. 그러니 남해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길은 두 개가 있다. 경남 하동에서 남해대교를 건너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사천, 그러니까 삼천포 쪽에서 창선대교를 건너 들어가는 길도 있다. 남해대교를 넘자마자 ‘장관’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꽃길이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벚꽃이 필 때면 노량마을에서 왕지등대로 이어지는 길은 길고 화사한 벚꽃 터널이 된다. 맑은 날 파란 바다를 끼고 벚꽃 구름이 이루는 터널을 달리는 기분은 황홀하다. 벚나무 도열한 길 끝에 순백의 등대가 서 있는 풍경이라니…. 벚꽃 길은 왕지등대를 지나 해안가 언덕의 진목마을에 이르기까지 4㎞ 남짓 이어진다. 다른 지역에도 이만 한 벚꽃 터널이 없을까만 여기가 특별한 것은 벚꽃 너머로 교계의 기인 소강석의 신앙 시같은 쪽빛 바다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꽃이 시가 된다. 꽃 같은 믿음도 시가 된다. 이렇게 된 지 하마 오래되었다. 얼마 전부터 얼마나 그랬는지는 고시조를 보면 된다. 백영 정병욱 교수의 2400여 수 고시조 어휘 조사에 따르면 님, 일, 말, 몸, 꿈 같은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고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어휘는 달, 물, 꽃, 밤 등이었다고 한다. 옛사람의 마음에 님과 꿈과 꽃이 있었듯 오늘날의 마음에도 사람과 꿈과 꽃이 있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시인 소강석 목사의 ‘벚꽃’을 읽으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봄은 꽃이 되어 찾아왔다. 꽃구경 가지 못하는 당신에게 꽃 같은 시라도 피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세상이 열려서 우리는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일까. 과연 나는 내가 찾던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보고 싶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럴 때는 믿음의 재충전을 위한 리셋이 필요하다. 모든 세상을 향한 마음의 창을 다 닫고 모든 염려를 다 내려놓고, 그리고 잠시 처음 믿음으로 돌아가자. 고요한 나의 믿음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읽으면 도움이 될 시가 있다. 바로 교회 생태계를 위해 불철주야 엘리야처럼 분투하는 소강석 시인의 시집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에 실린 '벚꽃’이다. 2020-4-30
    • G.OPINION
    • G.OPINION
    2020-04-30
  • 총회 선거의 계절
    총회와 총신 세력 간의 날선 공방이 오가던 눈 오던 그날 척박한 걸음으로 사당동 총신 교정을 걸어가면서 보았다. 눈이 여린 가지에 내려 쌓이고 여기저기 계단들을 덮고 각각의 믿음처럼 제 자신에게로 돌아와 말없이 맞아들였다. 맑은 공기나 찬바람이 진종일 본관 뒤 소나무 숲을 울리어 제 존재를 드러냈다. 눈 속에서 그들 믿음이 산짐승같이 제 본성을 드러내고 원래 성미를 되살림을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눈이 지천으로 오는 밤에 기도를 해야지. 머리를 눈에 박고 눈 뜨고 기도해야지. 이윽고 주님과 함께 설야(雪夜)가 우리를 찾아오시리라. 하면서도 날아가는 새들의 해말간 소리만 공중에 떠돌며 얼어붙은 믿음을 애간장 녹이듯 했다. 총회 정치에서 친구냐 적이냐는 고정돼 있지 않다. 그 해석은 힘의 균형에 따라 바뀐다는 냉혹한 총대 눈치의 눈을 헤아려야 한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라고 말했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 제13대 대표회장에 2020년 4월 20일 계룡시 소재 나눔의교회에서 김영우의 밧줄을 잡았던 김상윤이 그것이 큰 벼슬인 양 대변인도 임명하며 취임했다고 한다. 그는 불의 사자 김화경과의 송사를 잘 마무리하고 다시 총회 정치 현장에 그 시절처럼 설 수 있을까. 통계에 따르면 2020년 4월 25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천8백만 이상이다. 중국 언론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관련 첫 사망자를 1월 11일 보도했다. 그 이후 210개국 이상에 그 바이러스가 퍼졌다. 4월 말 현재는 전 세계 200,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존스 홉킨스 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가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세계의 도탄에 빠뜨린 원인을 제공한 중국 공산주의 당국은 책임을 묻는 나라들에 사과는커녕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무얼까. 그것은 신뢰 또는 믿음이다. 친구나 부부간에도 상대방을 신뢰해야 한다. 친구나 부부가 서로 속여 믿음이 없게 되면 이들 관계는 조만간 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신뢰 형성에 작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신뢰는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도 창출한다. 개인의 높은 신뢰도는 공직자 선발, 은행 대출, 사업 계약 때 시간과 경비를 절약해 준다.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의 신뢰도도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 예컨대 삼성전자 제품의 높은 신뢰도는 삼성의 주식 가치를 높인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는 외화 차입 때 대출 금리를 낮춘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한국은 26.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마 우리 총회 총대 상대로 기독신문을 통해 물었으면 어찌 됐을까. 신뢰도가 높은 나라의 순위는 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스웨덴·핀란드 순으로 이들 5개국 평균은 69.9%였다. 한국인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27%로, 34개 회원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사법부를 믿지 못하면서도 한국인의 민사 고발 건수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사법 고발로 낭비되는 국가적·개인적 지출이 만만찮을 것이다. 신뢰’(Trust)라는 저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일본인의 신뢰를 역사적·문화적·실증적 조사를 통해 연구했다. 그는 일본의 신뢰 수준은 자국민에 대해서는 신뢰를, 반대로 타국민에 관해서는 경계와 불신을 갖는 배타적 신뢰임을 밝혔다. 그는 일본인의 신뢰를 ‘야쿠자적 신뢰’라고 했는데, 이는 야쿠자 집단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반대로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맹목적 신뢰는 야쿠자 두목과 부하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형성되는데 야쿠자 부하는 두목에게 충성을 바치고 그로부터 자신뿐만 아니라 전 가족이 보호받는다. 이 야쿠자의 신뢰는 과거 일본의 번주(藩主)와 사무라이 간의 신뢰 풍토에서 나온 것이라고 후쿠야마 교수는 해석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일본의 야쿠자적 신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한 정당 안에서 파벌이 생기는데 그것은 지도자가 자기를 따르는 당원은 끝까지 챙기는 반면 그러지 않는 당원은 박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행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따르고 감싸는 각료들은 서로가 야쿠자식 신뢰를 형성한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겐 배타적인 반면 자기 식구들은 끝까지 지원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인의 신뢰도는 높다. 그 배경은 가정·학교·사회 전체가 우리 교단과 달리 거짓말을 엄격하게 금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상대방을 가장 하게 모욕하는 말은 ‘너는 거짓말쟁이’(You are a liar)이다. 이 말을 듣고 총을 꺼내 상대방을 사살하는 사건은 우리나라나 교단과 달리 미국 서부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지도자의 거짓말은 용서가 안 된다. 대표적인 예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닉슨 대통령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의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사임했다. 사실 워터게이트는 그리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다. 1972년 미국 공화당 당원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해 자료를 살핀 게 전부였다. 처음 닉슨 대통령은 조국 부부처럼 ‘백악관은 침입 사건을 몰랐다.’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나중에 그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됨에 따라 일파만파로 커졌다. 만일 닉슨이 처음부터 솔직하게 침입 사실을 인정했더라면 탄핵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다 그것을 감추려고 제2, 제3의 거짓말을 하면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사임한 불행한 대통령이 됐다. 만일 한국에서 워터게이트 같은 사건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는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수많은 거짓말을 태연자약하게 한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여러 증인과 증거물로 자녀들의 인턴 수료 및 증명서 위조 등이 명백한데도 그는 이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 당시 조국은 고위직 공무원 겸 서울대 교수였다. 진실을 추구하고 인품으로 먹고사는 교수였던 것이다. 교수의 명예와 품위를 끝없이 추락시킨 그에게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조국 내외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앞으로 사법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온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총회에서는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엄마가 어린 자식에게 ‘잠깐 편지함에 가보고 올게’ 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곤 몇 시간씩 집을 비우는 건 예사다. 친구 사이에서도 거짓말은 쉽게 통한다. 어쩔 수 없어 거짓말을 했다고 사과를 하면 우리는 쉽게 용서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거짓말을 엄히 다스린다. 거짓말을 불식하고 신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가정·학교·교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진실을 중시하고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당선자들은 국민의 신뢰를 결코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듯 교단도 9월 제105회 총회 선거를 통해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라 거짓말하지 않는 투명한 정치, 일하는 총회, 믿음의 교단을 만들어 전국 교회와 일반 사회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매진하길 기대한다. 2020-04-27
    • G.OPINION
    • G.OPINION
    2020-04-27
  • 시인 소강석의 4월
    저기 저 산 너머에는 뭐가 있죠. 소년 강석은 입버릇처럼 남원의 하늘에게 묻곤 했을 것이다. ‘저 산 너머’에서는 소년의 ‘마음 밭’에 심어 놓은 신앙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 소년은 우리가 기억하는 시인 소강석이 된다. 4월 초입이 되면 꽃나무와 햇살이 예고한다. 4월 부활절. 그날이 돌아온다고. 이런 예고 속에서는 어떤 시를 읽어도 대속하신 주님의 슬픔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 까닭은 시가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고 내가 울면 시도 우는 것이 시의 문법이다. 3월에 쓴 시가 4월에 나온 시집에서 소강석은 ‘불의 사연’을 전한다. 수전 손태그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은 침략이고 폭격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 같은 코로나19로 재앙을 만난 4월의 세계 시민들에게 우리 주님의 대속을 갈음하는 ‘불의 사연’을 4월 초에 전했는데 4월 말에 새로운 감동으로 다시 전한다. 시상은 감상이 아니라 지성이라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말이 문득 오르고 시인 소강석의 ‘불의 사연’이 새삼 내 가슴에 차올랐기 때문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푸르른 날’ 같이 감흥이 일어났을 때 바로 쓴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가슴속에 넣었다가 먼 훗날 끄집어내 쓴 시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아. 불의 사연 홀로 타오를 수 없습니다장작개비가 되어 내 곁으로 와 주세요 나는 당신을 품에 안고 바람을 기다립니다당신은바람이 불면 재가 될 줄 알면서도내 품에 안긴 채바람을 기다립니다 나는 불당신은 어느 겨울 숲에서 꺾여내게로 온 장작개비난 당신의 차가운 몸을 껴안고바람을 기다립니다 나는 7순이 되니 아무래도 주님의 나라에 입국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4월과 무관한 ‘불의 사연’을 4월 말 함께 읽고자 들고 왔다. 이 시는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시는 주님의 제자 수와 같은 12페이지에 실려 있다. 그가 입국한 혹은 입국할 주님의 나라는 아름다운 숲의 나무가 장작개비가 될 나라인 모양이다. 이것은 실제 숲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시인이 찾아갈 나라의 숲으로 읽힌다. 이렇게 읽는 이유는 단지 그 나라를 믿고 사는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역병으로 흉흉한 4월 말의 봄에. 2020-04-24
    • G.OPINION
    • G.OPINION
    2020-04-24
  • 70정년제 교단지도력 쇠퇴
    내 젊은 시절의 여인상 구순(九旬)의 최은희는 아직도 정신이 말짱해 2015년 6월 13일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꿈에 매일 나타나는 신상옥 감독, 다음 생엔 남편으로 안 만나고파. 납북·탈북·망명·귀국 ‘영화 같은 삶’ 한바탕 길고 긴 꿈에서 깨어난 듯합니다.” 신 감독을 다시 안 만나고 싶다는 25살 연상의 여인의 말에 65세의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최은희씨는 소녀 같고 장난기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옛 추억을 꺼내니 절로 신이 나요. 30대로 보이게 찍어주세요. 안되겠죠. 하하.” 위임식을 거쳐 목회에 한참 물이 올라 완숙기에 오른 우리 교단의 70이 가까운 목사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아직 청년 같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경력과 영력에 있어서 한창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후임을 물색하는 장로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임기 말 전 대통령의 부인이 노 대통령의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전 대통령의 부인은 이 말 저 말하다 속내를 드러내 말했다. “취임하면 우리 잘 봐주실 거죠.” 노 대통령의 부인은 아무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다. 레임 덕(Lame Duck)은 현직에 있던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누수 현상이다. 즉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거나 먹혀들지 않아서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이다. 임기말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권력자나 지도자가 임기 제한으로 인해 권좌나 지위에 오르지 못하게 되거나 임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경우에 레임덕이 나타난다. 특별히 목회의 경우 70정년제로 한창 힘과 여유와 지혜가 있게 일할 나이인 65세를 전후해서 후계 문제로 자신의 노후를 염려해 그 대책 마련에 눈치가 보이고 힘을 잃게 된다. 그런 현상을 레임덕(lame duck)이라고 하는데 원래 사냥꾼들이 쓰던 말로 총에 맞은 오리가 절뚝거리며 도망가지만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탄약을 낭비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즉, 곧 죽어가는 오리이기 때문에 괜히 힘쓸 필요 없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절뚝거리는 오리(lame duck)를 상징하는 말로 바뀌었다. 정치적 용어로서 레임덕이란 정권 말기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거나 정권 말이 되면 지도자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정권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곧 자리에서 물러날 지도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아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모양새가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된 것은 1980년대로 레이건 대통령 재임당시에 임기가 1년 남은 시점에 상대편 당의 국회의원 등이 대통령의 말에 반하는 행동을 것에서 비롯되었다. 기자로서 여러 목사들을 취재하기 위해 다니다 보니 지도력을 한창 꽃 피워 열매를 맺을 나이에 은퇴 준비나 생각하면서 후임 준비는 교회에 맡기고 여행이나 다니거나, 또는 후임이 될 젊은 목사에게 대부분의 실무를 맡기고 뒷전으로 물러나거나, 또는 은퇴 준비와 후임 인선 문제로 교회와 밀고 당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제 시대가 90년대와 목사들의 건강과 정신력이 아주 양호하다. 심지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2015년 당시 분쟁의 화두로 떠오른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94세임에도 작년 고관절 부상으로 휠체어는 타지만 정신력은 말짱한 모양이다. 우리 교단의 안정을 저해하고 목회 지도력 누수(漏水)를 일으키는 70정년제를 재고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그 대안은 목사와 장로의 시무 연한을 75세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의 정신대로 70세까지 힘차게 목회의 지도력을 발휘하다 그 이후부터 은퇴나 후계 문제를 대비하면 교단의 안정과 교회의 성장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례로 그 연륜이나 건강이 아까울 정도로 왕성한 목사 장로 등의 많은 총회 지도자들이 교계나 교회를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4-20
    • G.OPINION
    • G.OPINION
    2020-04-2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