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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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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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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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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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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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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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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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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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티주석6 궁창에 광명이 있어
    궁창에 광명이 있어 1:14-23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 1:14-23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년 5월 5일 ~ 1855년 11월 11일)가 1849년 "안티-클리마쿠스"라는 익명으로 쓴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말했다. “오직 기독교인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자연인이 알지 못하는 용기를 획득한다. 그는 이 용기를 더 두려운 것을 무서워함을 배움으로써 획득한다.” 기독교인은 고독할 때 더 두려운 것 즉 천지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과 인생의 생사(生死) 화복(禍福)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얻게 된다. 하나님을 독대하는 그 용기의 기회는 혼자 있는 시간에 ‘땅에 비취는’ 빛처럼 온다. 스페인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아란후에스라는 시골 역에 닿는다. 스페인 왕실의 별궁이 자리하면서 형성된 소도시로 아란후에스 궁전은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궁전에 딸린 아란후에스 정원 또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명승지다. 이 궁전과 정원을 찾는 사람들로 시골 마을은 연일 북적인다. 아란후에스 시청 광장의 카페에 앉아 뜨거운 태양이 내뿜는 열기에 달아오른 몸을 식히려 물이라도 한 잔 마신다. 그러고 있자면 매 정시 시청 건물의 대형 시계가 연주하는 음악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협주곡일 이 음악은 궁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란후에스 협주곡'이다. 어떤 이들은 이 음악 덕분에 아란후에스 궁전과 정원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어느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일어나 그 아름답다는 정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음악을 작곡한 사람은 그 정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그는 아내의 팔에 의지해 정원을 걸었다. 관목들이 우거진 숲속에 작은 수로와 연못들, 이국적인 분수와 고색창연한 석상들이 가득한 정원을 걸으면서 아내는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에게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풍광 하나하나를 묘사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맹인 작곡가는 당시의 기억이 빛처럼 환하게 되살아나 '아란후에스 협주곡'을 썼다고 한다. 1991년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로드리고에게 후작 작위를 수여하였으니 명칭은 '아란후에스 정원 후작'이다. 음악가로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영예였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의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여름날 스페인 정원의 신선한 향취가 나고 그 정경이 빛을 비추듯 밝게 보인다. 그 아름다움 속에는 가장 힘든 제약을 지닌 채로 누구보다도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결국에는 어려서 원했던 모든 것을 이룬 하나님의 은혜와 한 남자의 불굴의 의지도 배어있다. 지난 2019년 2월 21일 이스라엘 최초의 달 탐사선 '베레시트'(Beresheet·히브리어로 창세기)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베레시트는 남아공 태생의 이스라엘 억만장자 기업가 모리스 칸 등의 기부금 1억달러가 투입돼 만들어진 사상 첫 민간 달 탐사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억 달러는 역대 달 탐사선 중 가장 적은 비용이다. 이 탐사선은 무게 585㎏, 폭 2m, 높이 1.5m의 식기세척기 크기로 역대 달 탐사선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 인근 관제센터에서 직접 발사 장면을 지켜봤고 이스라엘 전역에 생방송 됐다. 성공적으로 발사된 달 탐사선은 47일 동안 지구를 수 차례 회전하면서 달의 중력을 이용해 달에 접근했으나 4월 11일 착륙을 시도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실패했다. 외계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간 인류는 그런 만날 수 없는 외계인을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려왔다. SF영화 속 외계인은 곤충이나 문어의 형상에서부터 인간과 유사한 모습 등 다양하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눈이 하나가 아닌 2개라야 거리감을 느낄 수 있고, 3개라면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데 지나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며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외계 행성 속에 생명이 움트고 고등 생명체로까지 진화한다면 인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창 1:14-19 넷째 날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14절.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대기는 완전히 정화되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들이 ‘궁창에’(in the firmament)에 있는 것처럼 서술되고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것들이 실제로는 까마득히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보이는 것 같다. 16절. 두 큰 광명 two great lights 창조의 넷째 날의 결과는 처음으로 지평선에 나타난 달로 인해 해넘이(sunset)의 시작으로 생각된다. 달이 반짝이는 작은 별들에 비해 ‘큰 광명’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달의 엷고 은은한 광휘는 해의 눈부신 광채로 인해 작은 광명으로 밤을 관장하게 된다. 태양의 눈부신 천체(天體)가 아침에 솟아오르고 점차 그 영광의 빛이 자오선(meridian)에 이르게 될 때 ‘더 큰 빛’(the greater light) 즉 큰 광명으로 낮을 지배하게 된다. 이 두 광명이 넷째 날에 창조된 것(created)이 아니라 ‘만들어졌다’(made)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세상을 비추는 발광체들로 봉사하는 중요하고 필요한 직무를 위해 구성되고(constituted) 지명되었고(appointed) 그리고 두 광명의 운행과 영향으로 시간의 진행과 구분을 조절한다는(regulating) 의미의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양(太陽)은 태양계 중심에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다. 본래 한국어로 ‘해’라고 하며, 태양이란 한자어는 음양(陰陽: ‘물과 불’, ‘그늘과 볕’, ‘차가움과 뜨거움’ 등) 가운데 가장 뜨거운 양(陽)이라는 뜻이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 여러 행성과 소행성, 유성, 혜성 등의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지구는 태양을 일정한 궤도로 공전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연중 일정한 궤도를 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궤도를 황도라 한다.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는 것 외에도 스스로 24시간에 1회,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표면에서 관측자 눈에는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일정 시간 동안 하늘을 서쪽으로 횡단한 뒤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 도착한 햇빛 에너지는 식물의 광합성을 일으켜 거의 모든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며 지구의 날씨 및 기후를 만든다. 인류는 선사 시대 이래로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과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일부 문화권에서는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다. 태양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지식의 발달 속도는 느렸으며 19세기까지도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물리적 조성 및 에너지 원천에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현대에도 태양에 대해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며 태양의 불규칙한 활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피조물 인간이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은 말씀하신다. +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계 22:20-21 ♣ QT 되새김 A 해와 달의 두 광명이 창조의 첫째 날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넷째 날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B 그 말씀을 사실로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어떻게 드러내개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해와 달의 직무와 역할이 있듯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달란트와 직무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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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3
  • 큐티주석5 각기 종류대로
    Flammarion engraving, Paris 1888 각기 종류대로 1:9-13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창 1:9-13 프랑스 작가 카뮈(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29세에 실존의 부조리를 그려낸 소설 '이방인'을 발표한 뒤 심오하고 논쟁적인 소설, 희곡, 에세이들을 잇달아 발표한 덕분에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화려한 작가 생활을 일궜다. 하지만 47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초기엔 삶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곧이어 삶을 긍정하기 위해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러다가 긍정과 부정을 통해 '사랑'을 추구하면서 소설 '최초의 인간'을 쓰던 중 뜻하지 않게 삶을 마감했다. 카뮈의 작업은 "부조리와 반항을 거쳐 사랑이라는 테마에 이르는 삶과 문학의 역정이 미완성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카뮈는 생전에 좋아했던 단어 10개를 밝힌 적이 있다.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바람, 여름, 바다'라고 자신의 '작가 수첩'에 썼다. 그는 본의 아니게 세상에 태어나 세계로부터 사랑과 고통을 배우고 대지의 시련을 거치고 어머니와 마음으로 함께하며 온갖 사람들과 어울려 불의 사막을 가로질러 마침내 어리고 순수한 불꽃의 명예를 지켜냈다. 그러나 그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오히려 희망과 기쁨을 찾다가 여름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처럼 스스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부조리와 불신앙의 바다로 돌아갔다. 김정은은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다. 마음대로 지저귈 수 있으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는 없다. 말과는 달리 그가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은 엄격한 제약하에 있다. 거짓의 아비 마귀 지시를 따르는 공산주의 중국이나 러시아와 외교를 아무리 잘해도 새장 사이즈를 조금 더 키우는 정도다. 물론 합리적 추론을 벗어나 새장 틀을 부수려는 새가 자해적 행동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한반도를 둘러 싼 불확실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새가 떠드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속임수 동작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일부 대북제재 해제 요구처럼 새장을 열어주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금물이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문재인이 혼자 횡행하는 청와대 눈치만 보는 우리 정부의 지금 실력으로 2020년의 북핵과 세상의 파고를 안전하게 넘을 수 있을까. 엘브리지 게리(1744~1814) 미 합중국 5대 부통령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소속 정당에 유리하게 만든 선거구 획정안이 전설의 괴물 샐러맨더처럼 생겼다고 해서 '게리맨더링'이라는 부끄러운 정치 용어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좌파 득표 극대화 정략과 문희상 의장의 가업 승계 사익이 결합한 '무니맨더링'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이비 선거법을 탄생시켰다. 문 대통령과 문 의장의 이름도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선거법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사회를 이뤄 살아온 인간이 진화한 결과다. 짐승이 갖지 못한 감정이다.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 취급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정권이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막 나가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여름 이후 적지 않은 국민이 그런 난감함을 느꼈을 것이다. 납량물이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유튜브에 떠 있는 문재인 취임식을 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진지하게 '국민 통합' '탕평 인사' '공정 정의'를 읽어 내려가는 문 대통령의 표정에 지금의 현실이 겹쳐지면 소름이 안 돋으려야 안 돋을 수가 없다. 권력이 부끄러움을 내다버리면 나라가 망한다. 북한을 보면 안다.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 한반도 북쪽을 세계 최악 후진국으로 만든 김씨 왕조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마냥 뻔뻔하다. 그 못지않게 1월 30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임종석의 얼굴과 입처럼 뻔뻔한 권력이 한반도 남쪽에도 등장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창 1:9-13. 셋째 날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9절.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unto one place 세계가 육지와 물로 된 천체(terraqueous globe)가 되었다. 이것은 지구 표면에 일어난 화산의 격변 영향이었다. 어떤 부분은 솟아오르거나 다른 부분은 가라앉거나 해서 물이 격렬하게 흐르는 거대한 계곡(溪谷)이나 광활한 분지(盆地)가 형성되었다. 그것을 성경은 사실적으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 104:6-9 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그래서 지구의 큰 부분이 마른 육지(the dry land) ‘뭍’으로 남게 되고 나머지는 대양(ocean), 바다(sea), 호수(lake), 강(river) 등을 이루었다. 그것들이 각기 하천 바닥이나 수로 등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바다로 연결된다. +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욥 38:8 +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 1:7 1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맨땅이 나무들과 채소들과 풀들로 푸른 옷을 입게 되었다. 식물계(the vegetable kingdom)의 세 가지 큰 구분이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빛과 공기와는 다른 방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식물은 성장하도록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땅에서 정지한 채로 자랐다. 식물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느린 과정을 통해 자란다. 식물은 싹이 나고 우거지는 것이 자신의 어떤 노력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나 이슬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각기 종류대로(after his kind)라는 말은 태초부터 만물은 유유상종(類類相從) 즉 같은 무리끼리 서로 어울려 사귀거나 같이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무섭다. 전염병이 도는데,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나. 심리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생존·안전이고, 지위나 명예는 그보다 한참 윗단에 있는 고차원적 욕망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내가 아프거나 죽는 것, 주변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 모두 괴로운 일이다. 인간은 이런 공포심에 의해 위험을 피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 요소를 없애는 모든 방법이 정당하지는 않다. 그 옛날 흑사병 환자가 생긴 집이나 마을 사람을 몽땅 불태우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지층의 흥겨운 분위기가 설 직전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 수호' 집회에서 연출됐다. 진행자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정의의 사도 윤석열의) 손발을 모두 잘라냈다. 이제 물도 못 떠 먹는다"고 하자 우렁찬 환성이 터져 나왔다.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양심과 염치가 없는 건지, 그런 앞뒤 사정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사정이 다급했던 건지 보통 사람 머리로는 헤아릴 길이 없다. 다들 가물가물하겠지만, 메르스 환자 치료에 전념한 의사의 자녀가 ‘등교를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 학부모들이 그 의사의 자녀가 메르스에 걸렸을지 모른다며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학교장에게 요구했다. 우리 사회가 그때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 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피해 귀국하는 동포들을 향해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문재인 패거리 같은 양심도 상식도 내팽개친 유유상종 몰염치한 이기주의자들 그 바닥을 어디까지 보게 될까. 전염병보다야 덜하겠지만 그것도 두렵다.우리는 진정 어떤 나무인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인가. 아니면 악한 열매를 맺는 악한 나무인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열매로 자신을 알아야 될 것이다. 찍혀 불에 던짐을 당하지 않으려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여느 때처럼 모바일 뉴스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만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시선을 고정한 승객들 저마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문득 이것은 단지 현재 세대의 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과연 나는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미국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놀라운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 읽기 회로’는 지속되지 않는다. 상당한 지적 수준의 독자라고 해도 책에 몰입하는 경험을 잃으면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한다.” ‘조용한 시간’(Quiet Time)에 몰입하는 성경 독서의 경험, ‘당신과 나’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나. 우리는 각기 어떤 종류의 열매를 낼까. ♣ QT 되새김 A 태초에 창조된 우주를 향해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라고 명하신 그 능력과 권위를 인정하는가. B 그리고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한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하실 수 있는 능력과 반드시 하시려는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각기 종류대로 열매를 맺으라’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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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31
  • 큐티주석4 하늘을 우러러
    하늘을 우러러 1:6-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 1:6-8 영원한 청년 윤동주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에 수록된 머리말 격인 ‘서시’(序詩)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노래했다. .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에세이 ‘별빛 언덕 위에 쓴 이름’에서 시인 소강석 목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애처롭다고 했다. 그가 그의 가슴과 눈동자로 사랑하는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다짐한 그 하늘은 무엇일까. 하늘은 종종 사람이 땅에서 위로 올려다볼 때 보이는 곳으로 정의된다. 비록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봐 왔지만, 하늘은 정확하게 정의되기 어렵다. '하늘'의 개념은 지구의 땅 위에서 적용되기 때문에 지평선 위의 대기, 또는 행성과 행성 위에 붙어있는 물체들의 보이는 표면 위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화될 수 있다. 천문학의 영역에서 하늘은 또한 천구(天球)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태양, 별들, 행성들, 달이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돔이다. 천구는 별자리라고 불리는 구역으로 나뉜다. 태초에 말씀으로 무(無)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운 우주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다. 태초에 우주에 빛이 비추자 물 가운데 궁창(穹蒼 firmament)이 드러났다. 유대교의 세계 구분의 하나인 하늘. 원래 금속판을 두드려 얇게 늘려 편 것을 의미하는 말로 별들과 행성들이 매달려 있는 둥근 천장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나 강 등의 아래의 물과 수증기로 올라가 비나 눈 등으로 내릴 위의 물을 구분하는 하늘이다. 창 1:6-8 둘째 날 6절 궁창 firmament 불가타 성서(the Vulgate 4세기에 번역된 라틴어역 성서)에서 궁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라키아’(raki'a)를 피르마멘툼(firmamentum)으로 번역했다. 그것을 킹제임스역에서 영어 퍼머먼트(firmament)로 번역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빛이 비추자 대기가 둘러싼 천체의 모양이 관찰자에게 둥근 천장, 아치형 천장의 하늘(the vault of heaven)로 보였다. 그래서 그 단어는 개역성경에서 태초의 축축한 구름들의 무게를 지탱하는 넓고 푸른 하늘 궁창(穹蒼 firmament)으로 번역되었다. 대기(atmosphere)의 창조로 지구 표면에 덮인 물의 더 가벼운 부분은 보이는 하늘에 끌어올려 뜨게 하고 반면에 더 크고 무거운 덩어리는 아래에 남아있게 했다. 따라서 공기가 ‘물 가운데’(n the midst of the waters) 있게 되었다. 즉 물들이 갈라지게 되었다. 대기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생명과 빛의 매체로서는 여기서 딱 한번 언급이 되고 있다. 2020년 1월 28일 기준 WHO는 우한 폐렴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4,500명을 넘어섰으며 대부분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중국 본토의 우한 폐렴 확진자는 1월 29일 0시 기준 5,974명으로 2003년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를 넘어섰다. 사망자 수는 132명이다. 이럴 때 믿음을 가진 우리는 마스크를 쓴 머쓱한 표정의 문재인을 믿거나 불평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인 소강석이 사랑한 윤동주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믿음 없이 죽어가는 자들에게 하늘을 만드신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 아프고 병들고 죽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삶의 지혜가 생겨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이다. 다음 세대에게 좋은 것을 남겨주고 나보다 앞선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삶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연결 고리 안에 살아간다.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믿음으로 좋은 것을 감사하게 먹으면 좋은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 좋은 행동이 이어지면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좋은 습관으로 오랜 시간을 사는 사람은 얼굴에 그것들이 쌓인다. 생각과 얼굴에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일상을 정성으로 가꾸고 싶다. 우리가 먹는 것, 우리가 읽는 책,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 우리가 남기는 자취들, 우리가 만드는 생각, 우리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의 경험... 모든 것은 어디론가 소멸되지 않고 바로 우리 얼굴에 쌓일 것이다. 그것들이 욕심과 심술의 모습이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물 위의 하늘이나 물 아래의 하늘이고 싶다. ♣ QT 되새김 A 태초에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운, 창조된 우주에 빛이 비췄을 때 하늘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B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있다고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윤동주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데 당신은 하늘을 우러러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빛이 비취자 드러난 하늘과 물을 처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2020-01-30
    • G.QT
    • G.QT
    2020-01-30
  • 큐티주석3 빛이 있으라
    빛이 있으라 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3-5 ‘이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 이것은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의 말이다. 외계지적생명체 탐사를 다룬 영화 ‘콘택트(Contact, 1997)’에도 소개된 바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주 어디엔가 우리와 같은, 혹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문명을 갖춘 외계생명체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칼 세이건의 말대로 우주는 너무나 넓고 우주에는 너무나 많은 별이 존재한다. 태양계가 속해있는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최소 천억 개가 있다. 만약 별을 1초에 하나씩 센다면 약 3,200년이 걸리는 엄청난 숫자다. 또한 이같이 엄청난 별을 가진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또 천억 개가 있다. 그래서 칼 세이건은 우리 인류가 이제 우주의 해변에 발을 담그게 됐다고 말했다. 이 별들에 딸려있는 지구와 같은 행성의 숫자까지 고려해보면 우주의 지적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70년 이상 동안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을 우주로 보내고 있다. 이 신호들은 빛의 속도로 우주로 나아간다. 지구에서 70광년 이내의 거리에 충분히 강력한 전파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오래된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100년이 지나면 우리의 신호들은 170광년까지 가게 된다. 수십만 년이 지나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우리은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쯤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미 우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우리와 유사한 문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과학이 있을 것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법칙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들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만들었을 것이고 원거리 통신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외계지적생명체탐사(SETI, Search for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는 바로 이런 흔적을 찾는 것이다. 앨런 배열 망원경이 외계 신호를 찾는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긴 하겠지만 아직 우리의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 현재 우리의 기술로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TV나 라디오 신호가 가장 가까운 별에서 오고 있다 하더라도 받을 수가 없다. 신호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SETI에서 찾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의도적으로 보내고 있는 강한 신호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로서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들 역시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신호를 보내기도 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그런 신호를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1974년, 과학자들은 지름 300m의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 있는 강력한 레이더 송신기를 이용하여 구상성단 M13을 향해서 3분간 신호를 보냈다. 이 성단에는 수십만 개의 별이 있으므로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방향으로 전파망원경을 겨냥한다면 우리가 보낸 신호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M13은 21,000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신호가 도착하기까지 21,000년이 걸리고 지구로 답장이 오는데 다시 21,000년이 걸린다. 신호를 서로 주고받기는 어렵겠지만 만일 먼 미래의 누군가가 우리의 신호를 받는다면 그들에게는 우주에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계생명체라고 하면 흔히 UFO를 떠올린다. 그러나 UFO가 외계생명체의 비행체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별까지의 거리는 약 4.2광년으로 빛의 속도로도 4년이 넘게 걸리고 현재 우리의 기술로는 7만 년 이상이 걸리는 거리다. 그 정도 이상의 거리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수준의 생명체라면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형태의 비행물체를 이용하지도 않을 것이고 실수로 흔적을 남길 가능성도 거의 없다. 특히 외계 생명체의 비행체가 추락을 하거나 인간을 납치하여 생체 실험을 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과학자들은 태양계 천체들을 관측하거나 무인 탐사선을 보낸다. 그들은 생명체 존재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는 그곳의 환경을 연구하여 그곳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지 연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주생물학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서의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기도 한다.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탄생했는지를 이해한다면 다른 곳에서도 생명체가 탄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은 생명체가 살기에 적당한 별과 그 별의 중심을 돌고 있는 행성을 찾고, 우리가 망원경을 통해서만 연구할 수 있는 세계에서 생명체를 찾을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에 과연 우리밖에 없을까라는 가장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노력과 시도이다.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찾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아직은 아무런 확실한 증거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답을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무한이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에 속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한 시지프 신화를 되풀이 할 것이다. 태초의 우주는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은 물에 덮인 우주의 수면을 알을 품은 닭처럼 덮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어둠에 쌓여 있던 우주에 빛이 있었다. 빛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빛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태양이나 불빛은 그 자체가 빛의 원천(광원)이다. 광원이 아닌 다른 사물에서 산란되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광원에서 나온 빛이 그 사물에서 산란되어 우리 눈에 닿기 때문이다. 광원은 자연광과 인조광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광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광원에서 나온다. 이러한 광원에는 태양과 별이 있다. 인조광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광원에서 나온다. 모든 빛은 원자에서 나온다. 원자는 다른 광원의 빛을 흡수하거나 다른 입자와 부딪칠 때 에너지를 얻는데 바로 이때 빛이 생긴다. 에너지를 얻은 원자는 들뜬상태에 있다고 한다. 대게 원자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들뜬상태로 있다가, 곧 얻었던 에너지를 다시 내놓고 들뜬상태에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때 나오는 에너지는 다른 원자에 다시 흡수되거나 방출된다. 원자를 들뜬상태로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원자가 빛으로 내놓는 에너지는 원자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보통 빛은 호수 위를 전파해가는 수면파와 같은 파동이라고 설명한다. 또 빛은 광자라고 하는 입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빛을 파동으로 설명하든 입자로 설명하든 두 경우 모든 빛이 에너지를 가진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빛의 속력을 측정하려 한 사람 중에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다. 갈릴레이는 약 1km 떨어진 곳에서 서로 등불을 가지고 상대방의 등불이 보이면 바로 등불을 열게 하는 방법으로 그 시간차를 통해 광속을 측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는 빛이 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 10만분의 1초 정도로 매우 짧아 속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다. 모든 형태의 진공에서 전자기 방사는 정확히 같은 속력으로 이동한다. 덴마크의 천문학자인 올러 뢰머는 1676년, 목성의 위성인 이오의 관찰을 통해서 빛의 속력을 측정하였다. 뢰머는 목성이 지구에 가장 근접했을 때 예측한 것보다 11분 일찍 이오의 월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고, 가장 멀리 있을 때는 예측보다 11분 늦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뢰머는 그 22분이 빛이 지구의 공전궤도의 지름을 지나는 시간이라고 계산하여 빛의 속도를 추정했다. 여러 실험을 통해 정의된 빛의 속력(speed of light) 또는 광속은 진공에서 1초에 299,792,458m 대략 30만 킬로미터이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에라스토테네스(기원전 274년 ~ 기원전 196년)가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의 거리와 인류 최초로 측정한 지구 둘레(실제 지구의 둘레 약 40,009km)는 4만 킬로미터의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고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데 1초 정도 걸리는 매우 빠른 속력이다. 그리스인들은 지역에 따라 북극성의 높이가 다른 사실 등을 근거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시에네(현재의 아스완)에서는 하짓날에 태양빛이 우물의 바닥까지 닿는다는 것을 전해 듣고, 즉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의 고도가 90도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로부터 지구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하짓날의 남중 고도는 82.8도이며, 이 차이가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의 위도의 차에 따른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두 도시의 거리를 대비하여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비밀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그 두뇌로 발견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이 데려오시는 짐승들의 이름을 맞춘 것처럼.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창 2:19-20 창 1:3-5 첫째 날 THE FIRST DAY 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God said 가라사대는 원래 '말씀하시되'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고 '가로되'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제가 좋아하는 개역한글판은 예스러운 “가라사대”와 “가로되”를 사용한다. 개역개정판은 이 말을 모두 “이르시되”나 “말씀하시되”로 고쳤다. 그러나 큐티주석의 본문 해석상의 문장에서는 “말씀하셨다”를 사용하려고 한다. 영어 역본은 King James Version(KJV)를 사용한다. 성경 본문에서 자주 반복되는 ‘하나님이 가라사대’(God said)라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뜻하셨다(willed), 포고하셨다(decreed), 지명하셨다(appointed)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결정하시는 뜻(determining will)은 모든 경우에 즉각적인 결과가 수반되었다. 지구와 동시에 창조되었든 또는 지구보다 먼저 창조되었든 혼돈을 덮고 있던 짙은 안개와 빽빽한 수증기가 지구를 영속적인 어둠(a settled gloom)으로 덮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라’ ‘Let there be light’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빛(light)이 비추게 되었다. 두터운 어두운 구름들이 흩어지고 부서지고 옅어졌다. 빛이 광활한 물 위로 퍼졌다. 그 효과가 히브리어로 ‘따뜻함’(warmth), ‘열’(heat)을 의미하는 ‘낮’(day)이라는 명칭으로 서술되고 있다. 반면에 ‘밤’(night)이라는 명칭은 밤이 모든 것들을 그늘진 외투(shady mantle)로 싸고 있듯 ‘감싸고 있는’(rolling up) 의미를 지니고 있다. 4절.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divided the light from darkness 이 말씀은 지구가 그 축의 둘레를 날마다 도는 것으로 생기는 낮과 밤의 교체나 연속을 의미한다. 5절. 첫째 날 first day 이 구절은 두 요소 즉 낮과 밤이 분명하게 결정하는 말 그대로 자연적인 하루(a natural day)를 의미한다. 그리고 창세기 저자 모세(Moses)는 동양의 관례를 따라서 하루의 구분을 오늘날 우리가 하듯이 하루를 낮과 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녁(evening)과 아침(morning) 즉 해넘이에서 해넘이까지(from sunset to sunset)로 생각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QT 되새김 A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그것은 이 AI 시대를 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B 하나님의 결정하시는 뜻(determining will)은 모든 경우에 즉각적인 결과가 수반되었다는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이 말씀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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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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