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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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lammarion engraving, Paris 1888

각기 종류대로

1:9-13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창 1:9-13
 
프랑스 작가 카뮈(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29세에 실존의 부조리를 그려낸 소설 '이방인'을 발표한 뒤 심오하고 논쟁적인 소설, 희곡, 에세이들을 잇달아 발표한 덕분에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화려한 작가 생활을 일궜다. 하지만 47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초기엔 삶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곧이어 삶을 긍정하기 위해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러다가 긍정과 부정을 통해 '사랑'을 추구하면서 소설 '최초의 인간'을 쓰던 중 뜻하지 않게 삶을 마감했다. 카뮈의 작업은 "부조리와 반항을 거쳐 사랑이라는 테마에 이르는 삶과 문학의 역정이 미완성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카뮈는 생전에 좋아했던 단어 10개를 밝힌 적이 있다.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바람, 여름, 바다'라고 자신의 '작가 수첩'에 썼다. 그는 본의 아니게 세상에 태어나 세계로부터 사랑과 고통을 배우고 대지의 시련을 거치고 어머니와 마음으로 함께하며 온갖 사람들과 어울려 불의 사막을 가로질러 마침내 어리고 순수한 불꽃의 명예를 지켜냈다. 그러나 그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오히려 희망과 기쁨을 찾다가 여름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처럼 스스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부조리와 불신앙의 바다로 돌아갔다.
 
김정은은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다. 마음대로 지저귈 수 있으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는 없다. 말과는 달리 그가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은 엄격한 제약하에 있다. 거짓의 아비 마귀 지시를 따르는 공산주의 중국이나 러시아와 외교를 아무리 잘해도 새장 사이즈를 조금 더 키우는 정도다. 물론 합리적 추론을 벗어나 새장 틀을 부수려는 새가 자해적 행동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한반도를 둘러 싼 불확실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새가 떠드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속임수 동작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일부 대북제재 해제 요구처럼 새장을 열어주려는 어리석은 시도는 금물이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문재인이 혼자 횡행하는 청와대 눈치만 보는 우리 정부의 지금 실력으로 2020년의 북핵과 세상의 파고를 안전하게 넘을 수 있을까.
 
엘브리지 게리(1744~1814) 미 합중국 5대 부통령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소속 정당에 유리하게 만든 선거구 획정안이 전설의 괴물 샐러맨더처럼 생겼다고 해서 '게리맨더링'이라는 부끄러운 정치 용어 속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좌파 득표 극대화 정략과 문희상 의장의 가업 승계 사익이 결합한 '무니맨더링'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이비 선거법을 탄생시켰다. 문 대통령과 문 의장의 이름도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선거법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사회를 이뤄 살아온 인간이 진화한 결과다. 짐승이 갖지 못한 감정이다.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 취급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정권이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막 나가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여름 이후 적지 않은 국민이 그런 난감함을 느꼈을 것이다.
 
납량물이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유튜브에 떠 있는 문재인 취임식을 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진지하게 '국민 통합' '탕평 인사' '공정 정의'를 읽어 내려가는 문 대통령의 표정에 지금의 현실이 겹쳐지면 소름이 안 돋으려야 안 돋을 수가 없다. 권력이 부끄러움을 내다버리면 나라가 망한다. 북한을 보면 안다.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 한반도 북쪽을 세계 최악 후진국으로 만든 김씨 왕조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마냥 뻔뻔하다. 그 못지않게 1월 30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임종석의 얼굴과 입처럼 뻔뻔한 권력이 한반도 남쪽에도 등장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창 1:9-13. 셋째 날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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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unto one place
 
세계가 육지와 물로 된 천체(terraqueous globe)가 되었다. 이것은 지구 표면에 일어난 화산의 격변 영향이었다. 어떤 부분은 솟아오르거나  다른 부분은 가라앉거나 해서 물이 격렬하게 흐르는 거대한 계곡(溪谷)이나 광활한 분지(盆地)가 형성되었다. 그것을 성경은 사실적으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 10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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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그래서 지구의 큰 부분이 마른 육지(the dry land) ‘뭍’으로 남게 되고 나머지는 대양(ocean), 바다(sea), 호수(lake), 강(river) 등을 이루었다. 그것들이 각기 하천 바닥이나 수로 등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바다로 연결된다.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욥 38:8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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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맨땅이 나무들과 채소들과 풀들로 푸른 옷을 입게 되었다. 식물계(the vegetable kingdom)의 세 가지 큰 구분이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빛과 공기와는 다른 방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식물은 성장하도록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땅에서 정지한 채로 자랐다. 식물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느린 과정을 통해 자란다. 식물은 싹이 나고 우거지는 것이 자신의 어떤 노력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나 이슬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각기 종류대로(after his kind)라는 말은 태초부터 만물은 유유상종(類類相從) 즉 같은 무리끼리 서로 어울려 사귀거나 같이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무섭다. 전염병이 도는데,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나. 심리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생존·안전이고, 지위나 명예는 그보다 한참 윗단에 있는 고차원적 욕망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내가 아프거나 죽는 것, 주변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 모두 괴로운 일이다. 인간은 이런 공포심에 의해 위험을 피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 요소를 없애는 모든 방법이 정당하지는 않다. 그 옛날 흑사병 환자가 생긴 집이나 마을 사람을 몽땅 불태우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지층의 흥겨운 분위기가 설 직전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 수호' 집회에서 연출됐다. 진행자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정의의 사도 윤석열의) 손발을 모두 잘라냈다. 이제 물도 못 떠 먹는다"고 하자 우렁찬 환성이 터져 나왔다.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양심과 염치가 없는 건지, 그런 앞뒤 사정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사정이 다급했던 건지 보통 사람 머리로는 헤아릴 길이 없다.
 
다들 가물가물하겠지만, 메르스 환자 치료에 전념한 의사의 자녀가 ‘등교를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 학부모들이 그 의사의 자녀가 메르스에 걸렸을지 모른다며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라고 학교장에게 요구했다. 우리 사회가 그때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 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피해 귀국하는 동포들을 향해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문재인 패거리 같은 양심도 상식도 내팽개친 유유상종 몰염치한 이기주의자들 그 바닥을 어디까지 보게 될까. 전염병보다야 덜하겠지만 그것도 두렵다.우리는 진정 어떤 나무인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인가. 아니면 악한 열매를 맺는 악한 나무인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열매로 자신을 알아야 될 것이다. 찍혀 불에 던짐을 당하지 않으려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여느 때처럼 모바일 뉴스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만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시선을 고정한 승객들 저마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문득 이것은 단지 현재 세대의 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과연 나는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미국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놀라운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 읽기 회로’는 지속되지 않는다. 상당한 지적 수준의 독자라고 해도 책에 몰입하는 경험을 잃으면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한다.”
 
‘조용한 시간’(Quiet Time)에 몰입하는 성경 독서의 경험, ‘당신과 나’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나. 우리는 각기 어떤 종류의 열매를 낼까.
 
 
♣ QT 되새김
 
A 태초에 창조된 우주를 향해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라고 명하신 그 능력과 권위를 인정하는가.
 
B 그리고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한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하실 수 있는 능력과 반드시 하시려는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각기 종류대로 열매를 맺으라’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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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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