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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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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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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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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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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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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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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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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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티주석16 심판의 순간
    Eden (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 심판의 순간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 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14-19 말씀을 앞에 둔 명상은 내 삶의 무게중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옮기는 일이다. 일기는 자기를 향해 쓴 기도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 쓴 일기이다. 인간이 일기를 쓴다는 행위는 자기를 고백해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고, 기도를 드리는 것은 절대자에게 고해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큐티주석은 하나님의 말씀과 존재 앞에서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다짐하는 행위이다. 저녁에 타는 비행기를 좋아한다. 기내식 서비스와 면세품 판매가 끝나면 소란하던 내부는 차츰 조용해지고, 창문 밖 하나님이 만드신 별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민다. 뿌연 도시에서 쫓고 쫓기며 사느라 있어도 있는 줄 몰랐던 한 줌 별들이 ‘이제 보니’ 핀잔하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이런 것도 있다. 암수 한 몸인 지렁이가 있는데 혼자선 알을 낳을 수 없다. 두 마리가 같이 짝짓기해 둘 다 알을 낳는다. 가장 빠른 새(시속 300㎞)이자 가장 빠른 동물인 송골매는 먹을 수 있는 게 다른 새밖에 없어서 더 빨리 날아야 산다. 호주 당국이 지난 6개월 동안 이어졌던 산불이 종료됐음을 공식 선언했다. 2020년 2월 13일(현지 시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롭 로저스 산불 방재청 부청장은 이번 호주 산불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사상 최악의 산불은 극심한 가뭄 탓에 좀처럼 진화되지 못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 2020년 2월 6일부터 쏟아진 폭우가 반년 동안 어떤 인간의 노력도 허사인 산불 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틀 동안 최고 400㎜의 비가 내리면서 홍수피해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호주 동부지역에 비가 골고루 내리면서 남은 산불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NSW주는 2019년 9월 이후 1만 1,000여 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540만 헥타르(5만4000㎢)가 불에 탔다. 이 과정에서 2,500여 채의 가옥이 소실됐다. 1,100만 헥타르 이상의 산림이 소실됐으며 남한 면적 이상의 지역이 불에 타 6,500개 건물이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33명이 목숨을 잃고 코알라를 비롯한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죽었다. 이번 산불로 인해 호주를 대표하는 동물인 코알라가 ‘기능적 멸종위기종’에 지정될 위기에 이르는 등 113종의 동물이 ‘긴급 지원’이 필요한 상태가 됐다. 서식지의 30% 이상을 산불로 인해 잃었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은 유명한 실루엣에 흑백과 무성의 영상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20세기 최고의 희극배우이자 역사상 가장 독특한 캐릭터, 모순과 해학의 달인, 그리고 거리예술가들의 영원한 모델이기도 하다. 채플린이 직접 창조한 '부랑자(The Tramp)'는 지금까지도 가장 상징적인 인물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남루한 정장에 모자와 지팡이까지 풀세트로 갖춰진 모습은 신사로서의 예절과 기품을 잃지 않는 자존감, 거기에 착한 마음까지 겸비된 바로 그 이미지다. 그의 연기는 단지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습을 직관, 회상하고 풍자를 통해 전달했다. 그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순간을 포착하는 재주가 있었다. 치밀하게 연구된 섬세한 동작과 표정을 바탕으로 영화 속에 로맨스와 스토리, 드라마를 심어 넣었다. 채플린은 ‘역사상 최고의 마임(mime) 아티스트’라고 불린다. 손과 몸짓, 표정만으로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실현했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마임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다. 채플린의 인생과 그가 만든 영화는 많이 닮았다. 파란만장한 인생처럼 연기에도 언제나 웃음이 있고 동시에 슬픔이 있었다. 그의 일관된 연기 철학은 ‘빠르고 짧게, 그리고 재미있게’였다. 그런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거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절대 웃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고난 두뇌나 공부의 양이 아닌 혼자 있는 시간에 집중 할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한다. 소속된 집단이나 가까운 친구가 없으면 낙오자로 여기고 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힘을 쏟는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의 기준에 끌려다닐 뿐이다. 사람은 혼자일 때 성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일수록 왜 혼자가 되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혼자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한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거기서 인생 갈림길이 나뉘기 때문이다. ‘지금’ ‘now’은 시간을 뜻한다. ‘지금’이다. ‘여기’ ‘here’는 공간을 뜻한다. ‘여기’다. 그걸 영어로 하면 ‘지금 여기(Now and Here)이다. 우주가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지금’이 아닌 적이 있었나. 없었다. 모든 순간이 ‘지금’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짤막하게 사라지는 순간이 아니라 ‘영원(Eternity)’과 연결된다. ‘지금’이 바로 ‘영원’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면서 속한 모든 공간이 ‘여기’ 아닌 적이 있었나. 없었다. 그래서 ‘여기’는 ‘무한(Infinity)’과 연결된다. 시간적 영원, 공간적 무한. 그 둘을 품은 게 ‘지금 여기’다. 바로 그 진리를 성경이 말씀한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제를 명시한 것은 1919년 4월 11일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 헌장’이었다. 이어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헌법으로 자유민주공화국이 출범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삶은 소대가리’가 되기 전의 ‘문재인 의원’ 성명서다. “진실을 은폐하고 경찰과 검찰 수사는 방해받고 있다... 시간을 끌수록, 진실을 덮으려 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물론 박근혜 정부가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에 부당한 외압을 중지하고 드러난 사실은 엄중히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이 아닌 조국에 마음의 빚을 진 문재인은 7년 전에 자기가 더 지독하게 되풀이 당할 일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자유주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저서 '법의 제국'에서 "나치는 법을 가지고 있었는가"라며 법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형식논리로만 볼 때 의회의 다수를 점한 세력이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고, 그 법에 의한 지배를 법치라고 한다면 독일 의회의 압도적 다수였던 나치의 공안통치도 법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학자 누구도 나치 시대의 통치를 법치라고 믿지 않는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자연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근현대적 의미에서 자유민주공화국의 진정한 '법치(rule of law)'는 헌법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일시적으로 의회 다수파가 된 세력이 만드는 법은 반드시 헌법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시각을 갖고 한국의 현실을 평가한다면 과연 한국은 법치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총회 헌법 제1조 는 양심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이 엄숙하고 고귀한 양심을 잃었다면 우리 총회 역시 법치총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헌법의 지배라는 뜻에서 법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입헌주의다. 의회에서 만든 법률은 헌법의 가치와 기본 원리에 근거해야 하고, 그에 위배 되는 내용을 담을 수 없다. 헌법은 모든 법의 상위법이자 근본법이다. 이렇게 만든 법만이 정당성을 갖고, 그 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국민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현 문재인 정권의 등장으로 이런 법치의 기본이 깨지고 파괴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test) 것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2-13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tempt) 것은 우리에게 최악의 것을 주기 위한 것이다. 사탄은 좋아 보이는 것이 달린 낚싯바늘(the hook)의 미끼를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가 그 미끼를 물면 결국 나쁜 일로 끝나는 낚싯바늘에 코가 꿰게 된다.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15 우리는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 유혹자 사탄을 이길 수 있다.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엡 6:18 창 3:14-19 선고 the Sentence 14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And the Lord God said unto the serpent 절대(絕對) 판사(The Judge)께서 선고하신다. 먼저 물질적인 뱀(a material serpent)에게 선고를 내리신다. 모습이 우아하고 말이 뛰어난 모델(model)에서 밉살스럽고 정떨어지고 상스러운 타입(type)으로 바뀐다. 자연적인 상태에서 징벌적인 상태로 저주를 받게 된다. 뱀은 이제 악명으로 낙인이 찍히고 공포의 기피 대상이 된다. 그다음 정신적인 뱀(the spiritual serpent), 유혹자(the seducer)에게 선고를 내리신다. 이미 타락한 그 유혹자는 더 격하되고 그의 권세는 그가 속인 자들의 후손에 의해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 3:15 15절. 너희 후손 thy seed 악령들(evil spirits)의 후손뿐만 아니라 악인들(wicked men)의 후손도 포함한 ‘너희 후손’. ‘여자의 후손’ ‘seed of the woman’ 스위스 종교개혁가 칼빈(CALVIN)과 독일 루터교 신학자 헹스텐버그(Ernst Wilhelm Theodor Herrmann Hengstenberg 20 October 1802년 10월 20일-28 May 1869년 5월 28일)는 메시아(the Messiah) 또는 하나님의 교회(His Church)로 해석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하나님은 뱀과 그의 후손이 그들 자신의 부패의 영향에 놓이게 되어 하나님을 믿고 바른길을 가는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실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조치들로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질투와 분노로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thou shalt bruise his heel’ 뱀은 그를 짓밟아 으깰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탄은 그리스도의 인성(the humanity of Christ)을 괴롭힐 수 있고 주님의 백성에게 고통과 박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it shall bruise thy head’ 뱀의 독이 그 머리에 있다. 그 부분에 대한 타박상(打撲傷)은 치명상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사탄이 받을 타격은 치명적이다. 사탄이 받은 심판의 성질과 정도를 처음에는 그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여자는 아내와 어머니로서 몸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을 겪을 심판을 받았다. 남자의 돕는 배필과 그의 애정의 배우자가 됨으로써 여자의 처지가 이제부터 어려워질 것이다. She was doomed as a wife and mother to suffer pain of body and distress of mind. From being the help meet of man and the partner of his affections [Ge 2:18, 23], her condition would henceforth be that of humble subjection. +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18, 23 절대 판사 하나님은 여자에게 ‘어머니가 되고 사랑받는 아내가 될’ 심판을 선고하신다. +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 3:16 17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unto Adam he said 남자는 땅을 갈아야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쉽고 즐겁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타락 이후에는 고통스럽고 끈기 있게 땀 흘려 노력해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19절.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가 금지된 열매를 먹는 순간 죽지 않았지만 그의 몸은 변화를 겪게 되었고 소멸될 것이었다. 그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의 연합은 이미 갈라지고 있었다. 아담은 현생(現生)의 모든 불행들과 언제나 지옥의 고통들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창세기 3장은 인간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슬픈 장(a mournful chapter)인가. 이 장은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육체와 도덕의 악들의 기원에 대한 참된 기사를 진술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을 확정(確定)한다. 사소한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되게 사람이 바르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죄가 되고 비참하게 된 아담이 그의 모든 후손까지 동일한 절망의 구렁텅이(abyss)에 빠뜨렸다. 우리는 흙(dust)이니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허공에 떠돌며 공간을 채운 먼지(dust)임을 알고 겸허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절대 판사 하나님은 구세주를 약속해 주시고 죄를 소개하는 치욕을 받은 여자에게 그 구세주를 소개하는 미래의 명예를 수여하셨다. +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 2:15 하나님은 뱀과 땅을 저주하셨다. 그러나 그는 아담과 이브를 저주하지 않으셨다. 인간 타락의 결과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우리는 그것들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궁극적인 심판은 죽음이다. 인간은 어려운 환경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최후의 적 ‘사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 15:26 사망을 이기는 인간의 승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5-27 +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5-58 ♣ QT 되새김 A 정죄와 심판의 그 순간 절대 판사 하나님은 구세주를 약속해 주시고 죄를 소개하는 치욕을 받은 여자에게 어떤 미래의 명예를 수여하셨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왜 하나님은 그러셨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2-17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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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6
  • 큐티주석15 부끄러움
    Jan Brueghel de Oude en Peter Paul Rubens - Het aards paradijs met de zondeval van Adam en Eva 부끄러움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0-13 미국 뉴욕 출생의 인류학자 루스 베니딕트(Ruth Benedict, 1887년 ~ 1948년)는 서양은 ‘죄’의 문화, 동양은 ‘수치’ 즉 부끄러움의 문화라고 분석했다. 이 시대의 기인 소강석 목사가 사랑하는 청년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민족의 길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 진정한 민족시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는 본래 제목 없는 시 무제(無題)였는데 사람들이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 격의 시라고 ‘서시(序詩)’라고 불렀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했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기 4년 전 태어난 시인 김광규(金光圭, 1941년 1월 7일 ~ , 서울 출생)는 4·19에 대한 회한과 부끄러움을 담아 쓴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4·19세대의 부끄러움을 아프게 표현했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지 않은가/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부끄러움은 힘이 세다.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가기도 한다. 부끄러움에 스스로 생을 달리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있었다. 자살을 금하는 믿음의 우리와 달리 그들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끄러운 사람’이란 실상은 부끄러운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돈 받은 사실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 즉 부끄러워할 줄 아는 ‘참인간’일 수도 있다. 그들의 죽음을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도 그들은 인간만이 느끼는 부끄러움에 대해 그 값을 치루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변명에 급급할 때 그들은 부끄러움에 단 하나뿐인 목숨을 던졌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부끄러움이 없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이 됐다. 조국 부부의 후안무치(厚顏無恥)한 작태, 유재수의 고구마 줄기같은 비리, 문재인 30년 지기 송철호를 위해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등에서 보듯이 그 어디에서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의 뻔뻔함으로 되받아쳤다. 국회의장은 아들을 위해 법안 날치기에 앞장섰다. 삼권분립의 나라에서 입법부 수장 출신은 행정부 2인 자로 들어가면서 ‘국민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5선의 국회의원이고 당 대표까지 지낸 이는 법무장관을 수락하며 검찰개혁 운운했다. 그리고 검찰개혁이 아닌 명백한 범죄 수사 방해 의도로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허공에 헛 발길질을 해대고 있다. 인간만이 가지는 숭고한 가치인 부끄러움을 지금 정권과 교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부덕의 소치...’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서 내려오던 권력자의 모습은 지금의 정권과 교계에서 더는 보기 어렵다. 부끄러움에 생을 저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곧 ‘노무현 정신’을 숙주로 탄생한 것이 문재인 정권이다. 그런 그들이 정작 부끄러움을 내팽개칠 때 인간 ‘노무현’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많은 사람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느끼게 된다. 적폐청산을 하자고 온몸으로 지지했던 정권이 그리고 18년 우리 교단 적폐를 청산한 김선규 총회장을 욕되게 하는 총회의 더 적폐스러운 이 수치스러움이 더 민망(憫惘)할 따름이다. 우리 사회와 그 지주가 되어야 할 우리 교계에 이제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사라졌다. 하루하루가 민망하고 모멸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부끄러움으로 불리는 염치(廉恥)가 사라지면 파렴치(破廉恥)한 사회가 되었다. 다행히 윤석열 검찰총장과 진중권 교수 같은 사람이 나서 부끄러움을 몸소 가르쳐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부끄러움이 오늘을 사는 우리를 몹시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 우리에게 성경은 태초에 일어나 첫 사람의 부끄러움을 들려준다. 창 3:10-13 심문 the Examination 10절.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afraid, because ... naked ‘네가 어디 있느냐’ 사랑의 음성으로 찾으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을 향한 아담의 대답은 겉보기에는 슬픈 언어의 고백이다. 그러나 실상은 둘러대는 변명이다. 참된 겸손과 회개가 전혀 없다. 그 뒤 이어지는 첫 부부의 말은 차마 얼굴을 들기 어려운 서로에게 비난을 돌리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12절.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The woman ... gave me 종교개혁가 칼빈(Jea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은 아담의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하나님을 비난한다’(He blames God). 아담이 그렇게 말한 여자는 하나님이 그의 동반자와 돕는 배필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그 여자 때문에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게 되었다고 비난의 화살을 그 여자를 넘어 하나님에게로 돌리고 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동반자와 돕는 배필로 그에게 주셨으므로 그는 그녀를 위한 사랑에서 그 나무 실과를 먹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보다 오래 살지 않으려고 결심을 했다(As the woman had been given him for his companion and help, he had eaten of the tree from love to her; and perceiving she was ruined, was determined not to survive her). [M'KNIGHT]. 13절. 꾀므로 beguiled 여자는 사탄의 치켜세우는 거짓말에 넘어갔다. 이 첫 부부의 죄는 가증스럽고 화를 돋우는 죄질(罪質)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금지된 실과를 먹은 것으로 끝날 죄가 아니었다. 그 죄는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은인에게 무례하고 가장 좋은 주인의 뜻을 어기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성질의 죄였기 때문이다. 범죄(guilt)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도망가고 숨게 만든다. 평상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만나러 달려가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죄인들이 되었다. +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죄인들은 자신들의 행위들을 통해 죄를 감출 수도 없고 하나님에게서 숨을 수도 없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하셨던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죄인들을 찾으셨다. +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 QT 되새김 A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랑의 음성에 숨어 있던 아담은 어떻게 응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하나님의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는 물으심에 아담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금지된 열매를 먹은 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죄질을 가지게 되는가. 그 의미를 여러 면에서 생각해보라(consider). D 그런 경우 태초에 보인 아담과 이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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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4
  • 큐티주석14 타락
    Michelangelo, Creation of Eve 타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6-9 2020년 전망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폐허에서 나라를 세웠고 국가 멸절(滅絶) 직전의 6·25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열정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을 일구고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한국의 기적"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던 한국인의 피와 땀이 오늘의 성취를 추동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는 자기 환멸을 허락하지 않는 역사이며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성경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모세가 얼마나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해 온 성경 저자와 섬세하고 절제된 표현의 예술가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 자신의 뿌리와 끝이 어머니이고 여성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태초의 부부가 된 남자와 여자가 실패해도 에덴을 떠나도 신앙과 자존심을 잃지 않는 것, 가족이 절망 속에서도 함께 껴안고 일어서고 견디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모세는 여성은 복잡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딸임을 전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 남자와 여자는 창조 때 하나님의 축복을 특별하게 받은 유일한 한 쌍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아주 조심해서 대해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한다.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약 3:8-10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인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서로 잘 대해야 한다. 죄가 그 하나님의 신성한 형상을 훼손했지만 어느 날 모든 참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9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갈수록 주님의 축복을 더욱 많이 향유하게 될 것이다.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창 3:6-9. 타락 THE FALL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And when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여자의 상상과 감정이 그녀를 완전히 압도했다. 그리고 이브의 타락을 아담이 곧 뒤따랐다. 남편 주장에 아내가 따르는 현대의 부창부수(夫唱婦隨)와 달리 태초에는 아내 주장에 남편이 따르는 부창부수(婦唱夫隨)가 부부 화합의 도리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세태는 태초의 부부상을 닮아가는 것 같다. 모든 시험과 죄의 역사는 동일하다. 외적인 매력이 마음의 내적 동요를 일으키고 욕망이 늘어나 감정에 굴복하고 영혼을 파멸시키는 타락에 이르게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1 2:16 8절. 그들이...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they heard the voice of the Lord God walking in the garden 신(The divine Being)이 어떤 보이는 형상으로 걸으시면서(급하거나 화난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자애로우신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자태(姿態)로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첫 부부와 이제까지 교제하셨던 친밀하고 겸손하신 태도로 말씀하시는 본문에 나타난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날이 서늘할 때에’ ‘in the cool of the day’ 문자적으로 ‘산들바람이 부는 날’(the breeze of the day). 저녁(the evening)을 말한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hid themselves amongst the trees of the garden.’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dam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God amongst the trees of the garden.’ 수치, 양심의 가책, 후회, 두려움 등의 죄의식이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현존(the presence of the LORD God)을 피해 숨었다. 그러한 감정은 이제까지 그들이 느껴보지 못한 낯선 것들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설파(說破)했다. "세 가지 막강한 힘이 세상을 지배한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공포, 그리고 탐욕이다(Three great forces rule the world: stupidity, fear and greed)." 태초에 그 힘의 지배를 받은 두 사람은 늘상 환영했던 하나님의 다가오심을 피했다. 하나님의 주목하심을 회피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그러나 믿음의 시인 다윗은 자신의 무죄와 악인 혐오를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에게 맹세하며 노래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시 139:1-12 네가 어디 있느냐 Where art thou? 전지하신 하나님이 제 딴에 꽁꽁 숨어있는 아담을 부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 깊이 배인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어디 있느냐 Lucas Cranach the Elder - Adam ♣ QT 되새김 A 사탄의 말을 들은 이브가 동산 가운데 나무를 바라보니 어떻게 변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그들이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believe).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왜 그들은 그랬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그런 경우 태초에 보인 아담과 이브의 태도를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2-12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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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3
  • 큐티주석13 시험
    And Elohim Created Adam, William Blake 시험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1-5 평범한 인생이야말로 참된 삶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가식과 특별함으로부터 멀어지면 그곳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의 인생에 해결이란 게 있을까.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믿음의 에너지가 필요할 뿐이다. 먼저 성경을 통해 그러한 에너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해결은 그 후에 오는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뜻하지 않은 이런 인생도 있다. 2020년 2월 10일 최근 중국판 트위터(웨이보)에 우한의 한 여성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징을 치며 "코로나에 걸린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어머니가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입원을 못 했다는 것이다. 응급 전화를 아무리 걸어도 "병상이 없다"며 구급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버스·지하철·택시가 전부 끊겨 어머니를 병원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자가용 등 차량 운행이 전면 금지돼 주유소도 문을 닫았다. 지금 우한의 이동 수단은 자전거와 두 발뿐이다. 80년 전 일본과 전쟁 때도 이러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성에서만 중국 전체 사망자의 96%가 나왔다. 인근 저장성은 확진자가 1,100명을 넘었으나 전원 병원 수용이 가능해 어제까지 사망자는 없었다. 우한도 공산당이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빨리 대처했으면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공산주의 위선의 독재자 시진핑은 어제서야 처음 방역 현장에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우한 시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를 기도할 뿐이다. 2017년 말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이 수하의 정보 경찰들에게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비리 캐내기가 부진하다고 "밥값을 못 한다"고 질책하고 첩보를 제대로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 파렴치한 선거 조작의 주인공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은 2020년 1월 말 조사 받으러 검찰에 출두하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출두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천벌을 받을 불경한 말인데 이 사건의 진실은 진리를 모독한 송철호를 매우 부자유하게 만들 것이다. 이 희대의 헌법·민주주의 파괴, 국민 우롱 사건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총괄했던 임종석은 2020년 1월 30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검찰 수사가 '기획 수사'라고 위선에 찬 기획에 근거해 항변했다. 그러면서 자기 혐의를 입증 못 하면 검찰이 책임질 거냐고 을렀다. 입증되면 자기는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말은 없었다. 이 정부를 지키는 결사대로 투입돼 검찰을 도륙한 추미애 법무장관은 자기가 야당 시절에 공격·비난했던 여당의 행위를 고스란히, 한층 더 뻔뻔하게 하고 있다. 이 정부는 파렴치범들을 어디서 이렇게 많이 끌어들였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에 '잊히고 싶다'고 말했는데 헛된 소망이다. 그의 전횡과 실정이 연 날리는 얼레의 실타래처럼 풀려 나올 테니.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管仲)은 나라의 근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는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네 줄기가 있어 나라를 받들고 있다. ‘예’란 절도(節度)를 지키는 것이며 ‘의’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며 ‘염’이란 자기 잘못을 감싸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며 ‘치’는 악행(惡行)에 동참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중 한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세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엎어지고, 네 줄기가 다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나라에 예의(사람이 행하여야 할 올바른 예와 도)와 염치(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가 없으면 나라가 아니고 지도자에게 예의염치가 없으면 지도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나 교계 지도자들의 흥망성쇠를 돌이켜 보면 '예의와 염치' 없음과 직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정선거로 절도를 넘고(예), '자기 아니면 안 된다'로 안하무인이고(의), 자기 잘못을 은폐하거나 비호하고(염), 그렇게 함으로써 악행에 이르는 결과(치)를 낳은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어떤가. 그의 예의염치 상태는 어떤가. 자기들 실수나 잘못은 손톱만큼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에 관한 비판에는 발끈하며 공(功)은 자기 탓, 과(過)는 남 탓을 일상화하는 이 '철 지난 운동권 세력'에 대해 국민들은 한줌 재 같은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패거리를 제외하고 좌우를 떠나 신뢰를 거둬가고 있고 나라의 진로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구체적 징후들이 이제 하나씩 둘씩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인 문재인, 조국, 추미애 등은 자신들의 진로에 불안감을 느끼지 못할까. 특정 상황에 노출될 때 치솟는 불안이 공포이다. 사람이 잠을 잔다는 것은 밤에 자려는 힘이 각성하려는 힘보다 커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낮에 생긴 걱정이 밤까지 이어지면 불안이 뇌를 각성시켜 아무리 자려고 노력해도 꺼지지 않는다. 낮에 있던 걱정거리가 사라졌는데도 '오늘도 못 자면 어떡하지' 하는 불면에 대한 걱정 자체가 불안이 되어 만성 불면을 일으키기도 한다. 불안·공포와 연관된 장소나 상황에 대해선 자연스럽게 회피 행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거꾸로 불안·공포 체험을 일부러 찾아서 놀이로 즐기는 면도 우리에겐 있다. 공포 스릴러 영화나 놀이동산의 아찔한 놀이 기구가 예라 할 수 있다. 돈을 내고 불안·공포 경험을 사는 셈이다. 불안이란 나쁘기만 한 것인가. 꼭 그렇진 않다. 과도한 불안이 문재인 아닌 문제(問題)인 것이지 불안은 생존에 있어 중요한 감정 에너지이기도 하다. 적정 수준의 불안은 위기관리 및 미래를 준비하게 하고 삶의 성취를 이루게 한다. 그러나 문재인 패거리처럼 불안이 적정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삶이 불편해지고 인지 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쳐 그들이 꾸미는 거짓된 일의 결과도 꼬이게 된다. 뜻하지 않은 재난에 허둥대는 거짓되고 헛된 시진핑과 김정은을 흉내 내는 그들과 달리 진실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제일 되는 목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5-26 진실한 하나님이 없는 불안은 도망칠수록 더 세게 나에게 다가온다. 그 불안의 원인이 된 최초의 시험에 대해 성경은 말씀한다. 창 3:1-5. 시험 THE TEMPTATION 이제까지 창조와 명령에 오직 하나님 말씀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동산에 또 다른 말이 등장했다. 속이는 자 사탄의 말이었다. 1절. 뱀 the serpent 사람의 타락은 뱀의 유혹으로 시작됐다. 그 뱀이 실제 뱀이었다는 것은 단순 명료한 그 문체나 신약성서의 여러 언급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러나 그 실제의 뱀은 보다 높은 행위자 사탄이나 마귀의 도구였을 뿐이다. 성경 저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계 20:2)의 혐오스러운 이름을 인용한다. 모세가 이 사악한 영에 대한 어떤 언급도 전혀 하지 않고 있지만 신약성서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음모의 당사자였음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요 8:44; 고후 11:3; 요1 3:8; 딤전 2:14; 계 20:2). ‘가장 간교하더라’ ‘more subtile’ 뱀은 지혜의 상징으로 사용되곤 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그런데 이 파충류들이 처음에는 지금처럼 영리할 뿐만 아니라 겉보기도 아주 뛰어났던 모양이다. ‘뱀이... 가로되’ ‘He said’ 첫 부부의 순수한 애정에는 악의란 전혀 없었다. 죄의 유혹은 예수 그리스도와 유사한 경우에서처럼 외부에서 왔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그러나 시험하는 자가 사람의 형상을 취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세상에 사람이란 아담과 이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대리인으로 열등한 피조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용과 뱀이 사악한 목적에 가장 적합했던 모양이다. 마귀는 그 시험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마귀는 그 입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여자에게’ ‘unto the woman’ 시험하는 자의 공격 목표는 아담보다 세상 경험과 동물 지식이 적은 약한 여자였다. 더욱이 그녀는 남편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혼자 있을 때 마귀의 표적이 되었다. 죄가 없고 거룩하지만 그녀는 시험과 유혹에 취약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먹지 말라 하시더냐’ ‘yea, hath God said?’ 하나님이 이 즐거운 동산에서 너희가 무엇을 할 수 없다고 제한하신 것이 정말이냐. 이분은 아주 선하시고 친절하신 분이 아니냐. 뱀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녀의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고 자신이 ‘광명의 천사’인 것처럼 행동했다. +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4 뱀은 여자를 참된 해석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꼬였다. 그러나 여자는 뱀의 시험하는 말에 놀라기는커녕 그를 하늘의 메신저로 받아들였다. 2절.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the woman said,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s of the garden 그녀의 대답에서 이브는 동산에서 누리는 자유가 대단하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는 말을 통해 그녀는 그 자유에 금지와 벌이 있다는 의심을 비친다. 그녀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ye shall surely die’ 창 2:17)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지 않고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lest ye die)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한 금지의 이유가 그 나무에 어떤 독성이 있어 그랬다는 투의 어조로 말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시험하는 자가 그의 거짓 주장을 더 뻔뻔하게 하게 되었다. 4절.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Ye shall not surely die 시험하는 자 마귀는 여자에게 죽기는커녕 아무런 해도 없다고 안심을 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 하나님이 금하신 그 열매를 먹으면 더 큰 유익이 있다는 약속까지 했다. 5절. 너희 눈이 밝아 your eyes shall be opened 사탄의 말은 즉각 효력을 발생했다. 한마디로 그녀의 눈이 열렸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탄의 말 그대로 ‘선악’(good and evil)을 알게 되는 비참한 체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거룩한 행복이 주는 선과 죄의 비참이 주는 악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비참하고 불행한 결과를 이브에게 치밀하게 감췄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선(1절)을 의심하게 했고 하나님의 경고(4절)를 부인했고 하나님의 진리(5절)를 거짓으로 바꾸었다. 그는 속이는 뱀이었고 거짓의 아비 거짓말쟁이였다. +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하나님과 같이 되어’ ‘ye shall be as gods’ 사탄의 이 말을 믿는 자는 다음과 같이 된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롬 1:21-25 QT 되새김 A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동산 가운데 나무를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뱀의 시험에 대한 이브의 대답은 하나님의 말씀과 어떻게 다른가.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believe).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뱀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하나님과 같이 되어’ ‘ye shall be as gods’라는 뱀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 의미를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2-12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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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2
  • 큐티주석12 한 몸
    The Fall of Man by Peter Paul Rubens, 1628-29 한 몸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셜록 홈스는 입을 실룩이며 말한다. “인간의 두뇌란 작고 텅 빈 다락방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에는 원하는 가구만 골라 채워 넣어야 합니다. 온갖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쓸어 넣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쓸모 있는 지식은 밀려 나오거나 다른 것들과 뒤죽박죽돼서 필요할 때 꺼내 쓰지 못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뛰어난 장인은 다락방에 넣어둘 것을 고르는 데 극히 조심스럽지요.” - 아서 코난 도일 '주홍색 연구' 중에서.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작가는 독자가 쉽게 찾지 못하도록 단서를 감추고 독자는 작가가 숨긴 비밀을 찾아 범인을 추측한다. 재미있는 추리 세계의 문을 열어준 것은 어린 시절에 만난 명탐정 셜록 홈스다. 코난 도일이 1887년에 발표한 '주홍색 연구'는 런던 경시청이 살인 사건 해결을 의뢰하고 홈스가 실마리를 추적, 범인을 밝히는 과정을 왓슨 박사가 기록한 첫 사건이다. 홈스는 연구를 위해서는 잔혹한 동물실험도 마다하지 않고 안하무인으로 잘난 체도 한다. 코카인 중독자인 데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도 모른다. 왓슨이 자기의 무지에 놀라자 기억력은 한정된 것이니 필요한 것만 머리에 넣는 게 당연하다고 홈스는 말한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스마트폰 같은 기기에 의존하는 대중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단련된 머리와 가슴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태초 이래 하나님의 말씀 성경만이 인간 본성을 이해하게 해주고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지혜를 전수하기 때문이다. 머리의 다락방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다. 다만 홈스가 인용하는 성경 말씀처럼 해 아래 새로운 건 없고 상상하고 추리하는 능력은 과거 경험이 기록된 고전을 통해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다.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하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그랬는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논리적 유추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 시진핑의 공산주의와 문재인의 좌파 맹점을 들여다보자.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중앙병원의 안과 과장이었던 리원량은 지난해 2019년 12월 30일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 신종 코로나 발생을 알렸다가 우한 경찰은 리원량을 괴담 유포자로 몰았고 리원량은 지난달 2020년 1월 3일 경찰서에 불려가 인터넷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올렸다는 내용의 ‘훈계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공안(公安, 경찰)으로부터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후 리원량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신종코로나에 감염됐고 4주 가까이 투병하다 지난 7일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리원량의 어머니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며 “그것은 아들의 바람이었고 가족은 그것을 지지해야만 했다. 우한의 상황은 참혹했고 그는 의사였다”고 말했다. 2020년 2월 9일 SCMP에 따르면 신종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에 있는 화중사범대의 탕이밍(唐翼明)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소셜미디어에 공개서한을 냈다. 중국 정부에 보내는 이 서한에서 학자들은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지적하면서 “이번 사태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중국 헌법을 인용해 “중화인민공화국 시민들은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라며 “신종 코로나의 존재를 폭로한 리원량 외 8명의 의사들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침해당하고 말았다”라고 비판했다. 리원량에 대한 중국인들의 추모 열기는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리원량 사망 후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등에는 그를 추모하는 글과 ‘나는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를 단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는 곧바로 당국에 의해 삭제됐고 수많은 위챗 계정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라는 이유로 정지당했다. ‘문재인권법’이란 말이 돈다. 대통령의 이름과 인권법의 합성어로, 현 정권과 대법원이 점점 '한 몸'처럼 돼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일선 판사들부터 현 대법원의 권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했다.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의 대법원이 법을 어기거나 무시한 혐의가 법 앞에 그들의 치부가 벌거벗듯 드러났으나 부끄러워 아니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출세를 경계하는 책이다. ‘세인의 칭찬에 흔들리지 말아라, 칭찬은 덧없다’는 걸 말한다. 삶의 의미는 뭔가를 이룩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가장 큰 공헌은 당대를 살아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는 것, 그 자체이다. 위인이나 소인이나 죽음 앞에서 삶의 크기는 같다. 크게 보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만으로 다음 세대에 기여하는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세계로 점점 더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넓은 흐름 속에 나를 두면 믿음을 떠난 허무나 상실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의 남자와 여자에게 말씀하신다. 창세기 2: 24 한 몸 they shall be one flesh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남자와 여자의 결혼의 두 가지 원리를 말씀하신다. 결혼할 때 먼저 남자가 먼저 부모를 떠나야 하고 그 다음에 여자와 굳게 결합하라(cleave)는 것이다. 그러면 한 몸이 된다. '한 몸' 'one flesh' 인간 한 쌍(pair)은 모든 다른 생물 쌍과 달랐다. 이브의 독특한 창조로 인간 쌍은 하나였다. 이 본문은 하나님이 신성한 결혼 제도(the divine institution of marriage)를 제정하셨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실 때 남자의 몸에 있는 갈빗대로 만드셨기 때문에 그들은 원래 한 몸이었다. 사람은 몸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 몸이 하나로 결합한다. 그리고 그 몸의 결합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영혼 즉 마음이 하나가 된다. 우리 조상은 몸의 주체를 마음으로 봤다. 마음의 원래 뜻은 ‘마땅하다’ ‘참되다’를 의미하는 ‘마’와 뿌리를 뜻하는 ‘움’이 결합하여 몸의 참된 뿌리 ‘마움’으로 시작해 ‘마음’으로 축약이 됐다. 성경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에 대해 말씀한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마 19:4-6 +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 5:29-33 25절.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을 통해 ‘몸과 몸’ ‘마음과 마음’이 합쳐진 긴밀한 사이라 아담과 이브 이후 지금까지 부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는’ 사이가 되었다. 장류진 소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엔 자신과 밤을 같이 보낼 기대를 하는 남자를 거절하며 "자고 나면 다 똑같아지지 않냐. 자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거 같다"고 말하는 여자가 나와요. ‘자고 싶음’만 영위하고 자지는 말자는 여자의 제안이 너무 유쾌하고 슬펐어요." 38세 싱글인 동생이 이렇게 말하자 아홉 살 위 애 엄마인 언니가 자신의 연애론을 피력한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이 몸을 섞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아무런 모순이 없어. 그런 욕망을 가지면서도 꾹 누르고 ‘플라토닉’을 고수하려는 태도야말로 불순해. 결국은 ‘사랑의 좋은 부분만을 오래도록 맛보고 싶다’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응석을 돌려 말하는 것이니까." QT 되새김 A 하나님이 아담에게 여자와 연합하기 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 쌍은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believe).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성경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에 대해 말씀하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당신은 그 의미를 당신의 결혼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2-11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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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0
  • 큐티주석11 남자와 여자의 만남
    Strasbourg - Saint-Pierre-le-Jeune Protestant 남자와 여자의 만남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16-23 우리의 한글 단음절어 ‘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 정신의 구조를 압축해서 형상화한 상형문자처럼 풀이된다. 우주와 자연, 인간 사회가 그 한 글자에 다 들어 있다. 우선 ‘앎’의 받침 ‘ㄹ’은 강물이나 길을 떠올리게 한다. ‘ㅁ’ 받침은 구획이나 영토, 건물을 연상케 하고 더 나아가서 국가나 사회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앎’의 위에 있는 ‘ㅇ’은 하늘의 해와 달을 아우르는 우주를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 태초의 깊은 수면을 운행하시던 성령의 순환도 상상케 한다. 그 옆에 있는 "ㅏ"는 무척 신비롭다. ‘문고리’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하나님의 셋째 하늘로 들어가거나 소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 같은 현세의 바깥 저 너머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앎’이란 글자는 사람의 인식 구조를 껴안고 있기에 ‘앎’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세종대왕께서 ‘앎’에 그런 뜻을 담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의 한글 ‘앎’을 통한 깨달음 앞에서 새삼 한반도의 유일한 대왕 세종대왕을 우러르게 된다. 앎의 깨달음에서 바라본 삶의 마지막 한 걸음은 누구나 혼자서 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석재(石材)다. 선인의 모습을 새기든 악인의 모습을 새기든 당신 마음대로다. 인생은 한 편의 소설과 같다. 조국이나 문재인 같은 바보들은 그것을 팔락팔락 넘긴다. 그러나 윤석열이나 진중권 같은 현명한 사람은 정성들여 읽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 한 번밖에 읽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인데 이런 모순에도 직면하게 된다. 2020년 2월 7일 일본 대형 크루즈 선에서 41명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또 무더기로 발생했다. 이로써 크루즈 선 안에서 총 61명의 신종코로나 감염자가 확인됐다. 일본 검역 당국은 이날 감염 의심자 273명 가운데 나머지 171명의 검사를 모두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서 7일 추가로 확인된 확진자는 41명이다. 이로써 일본 내 신종코로나 확진자 수는 86명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추가 확진자 가운데엔 고령자와 외국 국적도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검역 당국은 이들을 도쿄, 사이타마(埼玉), 지바(千葉), 시즈오카(静岡) 등 수도권 지역 병원으로 분산해 이송했다. 최소 19일까지 격리될 예정인 탑승객 3,700여명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꿈의 크루즈 여행’이 순식간에 ‘악몽의 창살 없는 감옥’이 된 셈이다. 미국인 신혼부부 밀레나 바소-게타노 세룰로 부부는 CNN에 “언제까지 배 안에 갇혀있어야 하는지 모른다”라고 토로했다. 바소는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감염된 크루즈 안이 아니라 위생적으로 안전한 곳에 격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정부를 향해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가 우리를 구하라”면서 “정부 비행기를 보내 우리를 배에서 나오게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크루즈 선에 오른 미국인 켄트 프레이쥬어는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설마 우리 여행에 이런 문제가 발생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유람선에는 총 56개국 국적자가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 선의 감염 문제는 이제 세계의 문제가 됐다. 그런 혼돈과 불안의 배 안에서 이런 해맑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첫눈에 반한 사람이 생겼어요. 그와 잘되고 싶어요.” “바보 같은 실수로 연인과 헤어졌어요. 다시 만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연애 상담을 부탁하는 경우는 대개 이 두 가지로 압축된다. 출발선은 다르지만 모두 ‘사랑의 시작’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로맨스 영화들을 보면, 하나의 이야기에 두 시작점을 동시에 담고 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사랑의 시작 선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비슷한 처방전을 들고 찾아온다. ‘어바웃 타임’의 남자 주인공 팀은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숙맥이다. 호감 가는 여자를 만나도 그의 서툰 말과 행동이 ‘썸’을 망쳤다. 그럴 때마다 집안의 특별한 내력인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교정했다.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이성을 대하는 일이 능숙해질 무렵 런던의 한 식당에서 운명의 여인 메리를 만난다.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동석하게 된 건 순전히 ‘운’이었다. 만나서 나눴던 대화가 잘 통했던 것 역시 그들의 유머 코드와 관심사가 ‘우연히’ 겹쳤기 때문이다. 처음 본 이성의 호감을 얻고 싶다는 첫 번째 고민에 영화가 내놓은 답은 낭만적인 포장지에 감춰진 쌉싸름한 다크초콜릿이다. ‘사랑의 시작은 철저히 운’이라는 것. 이 명제는 현실에서도, 판타지 세계인 영화조차 ‘참’이다. 기막힌 타이밍에 우연한 장소에서의 만남. 타고난 내 생김새가, 내 성격이, 내 목소리와 말투가, 내가 하는 일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그와 그녀의 콩깍지. 로맨틱한 말이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 노력이 자리할 틈은 없다. 억지를 부리면 되레 불편만 가져올 뿐이니까. 이는 당신이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실수해서 혹은 노력이 충분치 않아서’라는 자책은 하지 말라는 위로이기도 하다. 운명의 허락을 받고 시작한 사랑일지라도 우리의 감정은 너무도 연약해서, 작은 실수에도 관계를 깨뜨릴 만큼 큰 균열이 발생한다. 이때 두 번째 고민이 고개를 든다. 첫 번째 고민과 달리 우리의 노력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메리와 애프터 약속을 받아낸 팀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을 하며 집에 도착한다. 그때,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집주인 해리(아버지의 친구)가 보인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연극에서 대사를 까먹어 무대를 망쳤다는 해리를 위해 팀은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돌아간 시공간 속에선 메리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만났던 장소에 똑같은 날짜와 시간을 맞춰 그녀를 찾아갔지만 허탕이었다. 이대로 운명의 여인을 영영 놓치게 되는 걸까. 첫 만남만큼이나 엄청난 ‘운’이 다시 필요해진 순간 팀의 뇌리를 스치는 한 마디. “전 케이트 모스를 좋아해요. 모든 전시회를 다 가볼 만큼.” 곧장 케이트 모스 전시장으로 향하는 팀. 전시 기간 내내 입구에서 서서, 언제 올지 모르는 혹은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녀를 기다렸다. 찰나의 공백에 그녀를 놓칠까 봐 잠시도 쉬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둘은 기적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간절한 순간 떠오른 기억이 끊어진 사랑을 다시 이었다. 기억은 피사체를 향한 애정의 깊이에 비례한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기억하고 행동하라. ‘행동하는 노력’은 첫 만남의 기적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허락할지도 모르니까. 성경은 그런 남자와 여자의 최초의 기적적인 만남을 말씀한다. 창 2:16-23 남자와 여자 Man and Woman 16-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thou shalt not eat of it ‘먹지 말라’는 금지의 이유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불복종의 벌은 죽음이었다. 이와 같은 단정적인 명령은 아주 단순하고 매우 쉬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자의 충성이 드러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창조주는 그의 피조물들을 다스릴 권한이 있으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선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억지로 해야 되는 강제적인 복종이 아니라 우리가 원해서 하는 자유로운 순종이다. 16절의 ‘임의로 먹되’ ‘freely eat’ 라는 구절을 유의해보라. ‘임의로’(freely)라는 뜻은 동산의 열매를 자유롭게 다 먹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금하신 열매만은 자발적으로 먹지 말라는 규정과 명령이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시험하시기 위한 것이다. 창 2:18-23 여자의 창조 18절.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풍요와 즐거움이 가득한 에덴동산 한 가운데에서 사람은 만족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그에게 어떤 욕구를 깨닫게 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I will make him an help meet for him’ 19절. 하나님이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God... brought them unto Adam 하나님은 실제 모든 동물을 이끌어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피조 동물들에게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당장 이용하기 쉬운 아담 주변의 동물들을 동원하신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었다. 아담의 인식(perception)과 지성(intelligence)의 능력은 그 앞에 데려온 동물들 각 종(種 species)의 특성, 습관, 용도 등을 알아내고 맞출 정도로 비상했다. 그는 죄 때문에 이 능력을 잃었다(참조. 시 8:).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것을 다시 얻게 되었다(참조. 히 2:5 이하). 20절.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but for Adam there was not found an help meet for him 이 단순한 말씀의 의도는 아담이 보는 살아 있는 피조물들은 어떤 것도 사람과 동등하지 않고, 각 종마다 같은 본성과 형상과 습성을 가진 짝(mate)이 있지만, 아담 자신만 동반자(companion)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동물들 이름을 말할 때 아담은 언어(speech)와 예견(豫見)의 능력을 나타냈고 앞으로 만들어질 피조물, 그의 배우자(partner)와 가지게 될 사교(social intercourse)를 준비하게 되었다. 21절. 깊이 잠들게 하시니 deep sleep 이것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환상들(visions)을 보거나 계시들(revelations)을 받을 때 같은 무아경(無我境, ecstasy)이나 몽환(夢幻, trance) 상태였을 것이다. 왜냐면 본문의 전체 장면이 아담이 마음의 눈(mental eye)으로 보며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하고 환희의 탄성을 외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하신 그 갈빗대로' ‘took one of his ribs’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는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했다. "여자는 남자를 억누르지 않도록 남자의 머리로 만들지 않았고,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남자의 발로 만들지 않았고, 남자와 동등하고 남자에게 귀한 사랑의 존재가 되도록 남자의 심장 근처 옆구리 갈빗대로 만들었다." "She was not made out of his head to surpass him, nor from his feet to be trampled on, but from his side to be equal to him, and near his heart to be dear to him." 23.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she shall be called Woman,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중세 영어에서 ‘여자’ ‘woman’은 원래 wife와 man의 합성어라고 한다. 여기에서 아담은 타고난 언어와 선견의 능력을 발휘해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했다. 아담이 말한 히브리어의 본뜻은 ‘남자에게서 취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중에 그는 그녀를 이브(Eve)라 부른다. 하나님이 인간의 동반자 필요성을 충족시키고(‘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1:28) 결혼을 제정하셨다. 더하여 남자와 여자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상징이 되었다. 아담은 그의 신부를 위하여 자신을 주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 5:25-33 예수님은 그의 신부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셨다. 성경은 말씀한다. +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요 19:31-37 ♣ QT 되새김 A ‘하나님이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어떻게 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것과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당신은 그 사실을 믿는가(believe).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는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본문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당신은 그 의미를 당신의 결혼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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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9
  • 큐티주석10 에덴동산의 삶
    Adam is enterind in Eden.Byzantine mosaic in Monreale 에덴동산의 삶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 2:8-15 상태가 호전돼 격리 해제를 앞둔 국내 첫 번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진자가 한국 의료진에 편지를 보내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2020년 2월 6일 인천시의료원에 따르면 1번 확진자인 중국 국적의 A(35·여)씨는 전날 인천시의료원 의료진에 영어로 쓴 감사 편지를 전달했다. A씨는 인천시의료원 의료진에게 "내가 재앙 속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당신들이 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라며 "내 생명을 구해줘 고맙습니다."하고 이어서 말했다. "중국에서는 병을 고쳐주는 사람에게는 어진 마음이 있다는 뜻의 '의자인심(醫者仁心)'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에게 당신들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당신들 모두는 나에게 영웅이고 이 경험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신들의 선진화된 의료 기술과 전문적인 태도가 없었더라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 교육열에 홍제동에서 꼬마가 멀리 다니던 남대문 초등학교 시절 자주 부르던 노래 중에 윤석중 동요 ‘봄이 와요’에서 '가만히'라는 말이 노년이 된 요즘 기억에 새롭다. 가만히 기대고 들어보면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 겨우내 잠자던 물레방아기지개 켜면서 잘도 도네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물레방아 돌리며 기도하듯 '조용히' 생각해보면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만히'라는 말. 왠지 정겹게 여겨지는 이 말이 요즘 참 새롭다. 누가 심하게 남을 흉보거나 잘못된 정보를 흘리며 뒷담화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 우리는 곧잘 "어? 그게 아닌데? 좀 가만히 있어 봐요."라고 하기도 하고 서로 대화가 안 되거나 논리가 안 통해 어려움을 겪을 적에도 "잠깐 가만히 있어 보세요" 한다. 어떤 일을 바로잡아야 할 적에 체면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옆에서 "제발 좀 가만히 있지 말고 어떻게 좀 해보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가만히'라는 말을 더 많이 사랑하며 은은한 내적 믿음을 키워가고 싶다. 가만히 숨어 있기도 하지만 필요할 땐 가만히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의 사도가 되어보리라 다짐한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봄의 믿음처럼 가만히. 사람이라는 말은 옛말 사르다(살다)에 미음(ㅁ)을 붙여 만든 명사다. '삶'이란 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자의 생(生)은 풀싹이 돋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거라 한다. 그러나 한글의 '삶' 자에는 '사람'이라는 글자 모양이 ‘가만히’ 웅크리고 숨어 있다고들 한다. 눈물방울 같은 동그라미 이응(ㅇ) 자 받침들이 꽃잎에 떨어져 찬란한 구슬이 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게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살리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다. ‘사람’과 ‘살다’가 한데 엮인 든든한 ‘삶’이 한 글자가 사람에게 견고한 신앙의 버팀목이 되어 ‘가만히’ 우리를 지키고 살리고 있다. 그래서 ‘영혼’이 ‘살다’ 이 말이 우리 신앙의 전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창 2:8-15. 에덴동산 the garden of Eden 8절. 에덴 Eden 에덴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두 강 사이에 끼인 지역이라는 뜻)의 아주 넓은 지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이 아름답고 산물(産物)은 풍성하고 다양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 에덴은 ‘즐거움’(pleasantness)을 의미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쪽에 동산을 만드셨다. 그것은 드넓은 공원이고 낙원(paradise)이었다. 거기서 사람은 그의 아버지 조물주(Maker)의 보살핌을 받으며 신앙심과 생활력을 훈련받았다. 인간의 역사는 세 동산(garden)을 가졌다. 첫 번째 동산 에덴에서 사람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죄를 범했다. 두 번째 동산 겟세마네(the garden of Gethsemane 마 26:36)에서 구세주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포도주 잔을 드셨고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27-29 그리고 부활하신 그는 세 번째 동산 거룩한 성의 동산(the garden of Holy City)에서 그의 자녀들과 함께 ‘사람’과 ‘살다’가 합쳐진 ‘삶’을 영원토록 사실 것이다.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 21:10-11, 26-27 9절. 생명나무 the tree of life 생명나무는 영생의 상징적인 표시와 표적으로 그렇게 불렸다. 동산 가운데 있는 눈에 띄는 그 나무의 두드러진 위치는 날마다 사람의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내세를 습관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우리의 최초 조상이 순종의 시험을 받아 그 나무를 그렇게 불렀다. 최초의 그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느냐, 그의 계명을 어기느냐에 따라 선하게 되든지 악하게 되든지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15절.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put the man into the garden of Eden to dress it 하나님은 사람에게 즐거운 일(a pleasant employment)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일을 배워 익히는 수습(修習) 기간의 기회도 주셨다. 그리고 성경은 이 동산의 타이틀(title)을 ‘여호와의 동산’(‘the garden of the Lord)이라고 부른다. +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 13:10 +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겔 28:13 이 사실은 그곳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했고 그리고 감사와 찬양의 예물들을 드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to dress it and to keep it 일(work)은 우리를 고생시키기 위한 저주가 아니라 우리에게 보람을 안기게 하시기 위한 축복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주셨다. 그 일은 사람을 위한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과 하나님은 추수를 위해 함께 일해야만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년 11월 13일 ~ 430년 8월 28일)는 말했다. “모든 일이 하나님에게 달린 것처럼 기도하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린 것처럼 일하라.” “Pray as though everything depended on God, and work as though everything depended on you.” ♣ QT 되새김 A 최초의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그의 아버지 조물주(Maker)의 보살핌을 받으며 신앙심과 생활력을 훈련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B 최초의 사람이 동산 가운데 있는 눈에 띄는 생명나무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내세를 습관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일을 주신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D 일과 기도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권면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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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6
  • 큐티주석9 천지의 내력과 생기
    Fashioning a man out of clay 천지의 내력과 생기 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4-7 영화 대사였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로 유명한 명대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좌우명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는 사실 오역이다. 원래 문장은 “Tomorrow is another day”다. 원래 뜻은 “내일은 또 다른 날이 될 거야”다. 해당 대사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미국 작가 마가렛 미첼의 소설을 원작으로 1939년 개봉했다. 개봉부터 지금까지 약 12억 명의 관객을 달성하기도 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는 여자 주인공 스칼렛(비비안 리)이 떠나는 남자 주인공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에게 건네는 대사다.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원 대사에는 없던 태양이란 단어를 넣었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 공포로 뒤숭숭한 오늘 주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는 말씀의 뜻을 되새기고 기도해야 하는 믿음이 필요한 나날이다. 그러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바울의 권면(살전 5:16, 18)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색깔은 1,000개 정도다. 이것도 엄청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로 빛의 삼원색을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색깔은 1,600만개. 이토록 많은 색깔은 저마다 만물에 조화하고 대응하면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색깔은 오감과 비벼지면서 감정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색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흰색을 필두로 노랑, 초록, 녹색, 파랑, 남색, 주황, 갈색, 금색, 은색, 회색, 보라, 분홍, 빨강, 자주, 그리고 색의 집합체인 검정까지 16가지 색 이야기가 있다. 흰색을 시작으로 겨울에서 봄을 지나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 흰색 함박눈으로 끝을 맺는다. 처음 이야기하는 흰색은 겨울의 상징이자 알과 젖, 우유의 색으로 인간의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기호가 된다. 이용악(李庸岳, 1914년~1971년)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시는 그 자체로 한 폭 그림이다. 흰색이 가져다주는 추억이고 환상이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백무선 철길 우에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너를 남기고 온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어찌자고 잠을 깨어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이 시를 읽으면 눈앞에 저절로 함박눈 내리는 장면이 그려진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곳으로 떠나야만 할 것만 같다. 이 시를 읽을 때는 그가 월북 시인이라는 색안경은 벗고 ‘북쪽’은 그냥 두고 떠나온 온 고향이고, ‘백무선’은 굳이 두만강 가를 지나는 철도가 아니라 어느 고향 역을 지나는 철길이면 어떠리. 남기고 온 ‘너’는 아마도 고향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파란 잉크병과 하얀 눈이 내리는 밤 그는 아마도 잉크가 얼지 않도록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어쩌자고 잠에 깨어’ 시를 쓰고 있었으리라.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었다’로 시작하는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년 6월 14일~1972년 4월 16일)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 그리고 이어지는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구나’라는 문장에서 눈이 얼마나 쌓여야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지는 것일까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용악의 볼 수 없는 고향의 ‘그리움’을 함박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보수의 색깔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선택의 원리다. 자유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힘이었다. 300년 전 ‘약소국’ 영국은 시민들이 자유를 갖게 되면서 생산성을 100배 이상 발전시켰다. 적게 일하는 게 이익인 농노나 노예와 달리 생산성을 높인 만큼 자기 몫이 많아지는 자유로운 시민이 생산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선택의 다양성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식사 메뉴에 백반 하나밖에 없을 때보다 스파게티·비빔밥·스테이크 등을 골라 먹을 수 있을 때 사람은 더 행복감을 느낀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공부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학생과 좀 어렵더라도 열심히 공부해 엘리트 코스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각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일률적 평등 교육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노조에 파업할 자유가 있듯이 기업가에게도 대체 고용권을 주는 게 공정한 룰이다. 파업 때 대체 근로자를 뽑을 수 없도록 한 나라는 아프리카 말라위와 대한민국 둘뿐이다. 힘센 10%의 노조가 90% 노동자의 희생 위에 특권을 누린다. 그 실태를 한번 보자. 민노총 소속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 조합원들이 2020년 1월 31일 김천 본사 불법 점거를 풀고 해산했다. 본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지 145일 만이었다. 이들이 물러간 자리는 쓰레기장이었다. 민노총은 숙식했던 2층 로비에 누울 때 쓰는 돗자리 100여 개, 바람막이용 종이상자 수백 개, 사물함으로 쓰던 스티로폼 박스 수백 개를 버려두고 갔다. 투쟁 포스터와 생활용품 등은 수천 점이었다. 민노총은 건물 외부에도 쓰레기를 두고 갔다. 뒤뜰에 외부 농성자들이 머물던 텐트와 현수막 등 대형 시설물 430여점, 조리 도구와 생필품 등 1,000여 점을 그대로 남겨둬 공사 측이 치워야 했다. 공사 측은 민노총이 떠난 당일인 지난달 31일부터 170여 명을 동원해 건물 내·외부 청소에 들어갔으나 2월 4일 현재까지도 청소를 마치지 못했다. 지금까지 1t 트럭으로 약 70대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트럭 운전을 맡은 한 직원은 "쌓인 쓰레기들을 집하장에 갖다 놓으려면 하루 평균 17~18번씩 건물과 집하장을 왕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세상은 모든 시민이 자유롭고, 선택할 것이 많고, 그를 통해 자부심을 느끼며 사는 세상이다. 보수주의자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보수는 자신이 보수라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영국의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T. E. 로렌스의 생애를 기초로 한 1962년 영국 영화)는 시작 부분부터 아주 인상적이다. 첫 장면은 사막의 지평선 끝에서 까만 점이 하나 시야에 들어온다. 롱 테이크 촬영 기법으로 잡은 이 장면은 까만 점 하나가 먼지를 일으키며 점점 다가오는 장면이다. 검은색 아랍 터번을 두른 오마 샤리프가 낙타를 타고 나타난다. 그리고 멀리서 장총을 발사하여 자기 구역 내의 우물에서 허가 없이 물을 먹은 자를 쏴 죽여 버린다. 사막 저 끝에서 등장하는 오마 샤리프의 장면을 찍기 위하여 데이비드 린 감독은 특별히 450㎜ 렌즈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영화사상 인물의 등장 신 가운데 가장 멋진 장면이라고 회자된다. 오마 샤리프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국제적인 스타로 떴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검찰총장 윤석열이 겹친다. 지평선 멀리서 점 하나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는데, 가까이 왔을 때 보니까 서초동 대검에 새겨진 검찰 상징 마크처럼 보였다. 대나무와 칼로 형상화된 검찰 상징은 국민의 편안한 울타리이자 친근한 정의의 수호자가 되고자 하는 검찰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한 언론사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포함해서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조사한 뒤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댓글 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은 ‘난세영웅(亂世英雄)’이었다. 평화로울 때는 그 진가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전쟁에 비견되는 위기 상황으로 나라가 수렁에 빠지면 그 진가를 드러내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여론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 3년 차 대한민국을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전임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징계위에 회부되고 지방으로 좌천되어 ‘핍박을 받았다는 과거 사실’이 오히려 그에게는 원칙론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다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에 임명되었으나 오히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헌법’에 충실하겠다는 자세로 검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에 여론은 그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받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정권이 오든 ‘헌법 주의자’ ‘꼿꼿 검사’였던 윤석열을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다. 믿는 자의 생명 양식 성경은 말씀한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4-7 생기 the breath of life 4절.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of the earth 하늘과 땅의 역사나 기사(記事). 모세는 이교도의 미숙하고 부조리한 허구들(fictions)과는 아주 차원이 다른 이 기사(account)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어떤 인간의 전거(典據)나 출처(出處)에서 얻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증언할 수 있는 실재했던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이나 이성의 빛을 통해 얻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자연이나 이성이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영원한 능력이나 신성을 선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이 어떻게 그것들을 만들었는지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주 그분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창조의 정보를 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믿음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여기에서 신성한 저자는 최초의 한 쌍에 대한 몇 가지 특성들을 제공한다.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과학은 인간 몸과 근육과 뼈의 본질(substance)이 흙(soil)과 아주 동일한 요소(element)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흙은 땅 위의 지각(地殼 땅껍질은 지구의 껍데기 부분으로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이 있다. 대륙 지각의 평균 두께는 33km이고, 해양 지각의 평균 두께는 10km)과 땅 밑의 석회암(石灰岩, limestone)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보잘 것 없는 물질 흙이 아주 놀라운 인간의 몸으로 바뀌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4 ‘생기’ 'the breath of life’- 문자적으로는 동물뿐만 아니라 영적 생명의 숨이다. 몸이 그렇게 기묘하고 놀랍다면 그 모든 다양한 기능들을 지닌 영혼은 얼마나 더 놀랍고 기묘한가.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창조주께서 문자적으로 실제로 이 행동을 실행하셨다기 보다는 호흡(respiration)이 생명의 수단과 표시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이 구절은 인간의 생명이 인간의 몸과 다른 방법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생명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 12:7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영혼의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셨다. + 주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 20:21-22 ♣ QT 되새김 A 하늘과 땅의 역사나 기사(記事)를 모세는 어떻게 얻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 B 우리는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하나님께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D 그리스도께서 영혼의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셨다는 사실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2020-02-06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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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6
  • 큐티주석8 안식과 주일
    Der Samstug(Saturday) 안식과 주일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1-3 알싸한 아침 작업실. 테이블 위에서 전기선을 타고 물 주전자는 푹푹 김을 내며 끓는다. 나는 기다린다. 투명 글라스에 물을 붓고 커피 가루를 서너 번 털어넣는다. 물에 퍼져 가라앉은 블랙커피 몇 모금 마시면서도 기다리고, 맥심의 묵직한 향이 낮게 깔리며 시벨리우스의 선율과 섞이는 순간에도 기다린다. 그것 없이는 아침마다 만나는 키보드의 머쓱함을 이겨낼 수가 없다. 그것이 몸 자락 여기저기 시나브로 스며들 때에야 비로소 맹수 앞에 선 전사처럼 창 대신 손을 풀며 하얀 노트북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흡사 삼일로 창고 극장에서 '고도(Godot)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나는 기다리고 기다린다. 무릇 모든 '쟁이'가 그럴 테지만 나는 일찍부터 그 불가해한 느낌에 포박돼 있었다. 아니 중독이라는 표현이 낫겠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엄습해오는 그 대체 불가의 느낌. 육적이고 영적이며 언어적이고 비언어적인, 온몸을 가볍게 진동시킬 만한 그 야릇한 흥분과 전율, 그 열감(熱感)을 대체 '설렘'이라는 말 아닌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말은 '시나브로'다. 국어사전에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 풀이한 우리말 시나브로. 설레며 열심히 기도하며 글을 쓰다보면 시나브로 그분에게 다가가게 되리라. 그분을 닮은 형상과 모습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남긴 음악은 마르지도 닳지도 않는 인류의 유산이다. 그렇듯 명 설교에는 크고 작은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힘이 있다. 특별한 달란트로 평생을 헌신한 설교자들이 남긴 믿음 또한 저마다의 독특한 울림이 있는 예술 작품이다. 내가 항상 목말라하는 인천제이교회나 새에덴교회 같은 이상적인 울림의 교회 설교단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좋은 설교를 좋은 설교자가 좋은 성대로 좋은 공간에서 좋은 회중과 나누며 깊은 믿음의 울림을 경험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감히 누릴 만한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다. 나는 꿈을 꾼다.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면서 목사의 삶을 사는 것이 꿈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요셉처럼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다. 꿈이 없는 삶은 끊임없이 기도하지 않고 그래서 늘 기뻐하지 않고 일마다 감사하지 않는 신자와 같다. 반대로 꿈을 꾸는 신자의 삶은 쉬지 않고 기도해서 항상 기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날마다 주일처럼. 믿음의 멋은 안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이다. 믿음의 멋이 있으려면 우선 성경의 지성이 풍부하고, 생각이 진실하고, 겸손해야 한다. 믿는 자의 생명 양식 성경은 말씀한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God reposing on Sabbath. 창 2:1-3 6일 창조와 안식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창조 이야기 진행이 장이 나뉘지만 이어진다. 1절. 천지 the heavens and the earth 궁창(the firmament) 또는 우주(the universe)를 의미한다. 라틴어 우니베르숨(universum)은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우주를 가리키는 낱말의 어원이 되었다. 한편, 고대 그리스어 어원의 코스모스(cosmos) 역시 우주를 가리키는 낱말로서 사용된다. 코스모스는 라틴어의 우니베르줌이 단순히 ‘온 누리’를 뜻하는 것과 달리 질서를 갖는 체계로서의 우주를 뜻한다는 점에서 다른 언어로 대체하기 어려운 독특한 개념이다. 천체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코스모스로 처음 지칭한 사람은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70년 ~ 기원전 495년)이다. ‘만물이 다’ ‘all the host of them’ 지구를 포함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총체. ‘이루어지니라’ ‘finished’ 창조가 완성되었다. 창조된 이래 세상의 진행에서 어떤 영원한 변화도 전혀 없고 동물들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진 적도 전혀 없고 자연의 법칙이 폐기되거나 더해진 것도 전혀 없다. 그 모든 창조가 6일뿐만 아니라 한 순간에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더 고등한 피조물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교육을 위해서도 점진적이었다. 그 완성의 순간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욥 38:7 2절.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여기에서 ‘안식하시니라’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로 지쳐 쉬신 것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사 40:28) 분이기 때문이다. 그 안식의 의미는 창조 사역을 마치셨다(ceased from working)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도 모든 종류의 일과 노동을 마쳐야 한다는 계명에 상응하는 본보기를 제시하신 의미가 담겨 있다. 3절.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blessed and sanctified the seventh day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의 히브리어 사바쓰(Sabbath)는 ‘멈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마치셨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안식일이다. 이것은 사람이 휴식하기 위하여 잠을 자듯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셨지만 그의 말씀과 섭리로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리셨다. 그렇듯 안식이란 어떤 일을 하다가 손을 놓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죄 짓는 일을 하다가 거룩한 일을 한다는 것도 아니다. 교리문답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과 오락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은 엿새 동안만 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만이 세상적인 것이거나 신앙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신앙적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과 오락을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일주일 가운데 하루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하루는 우리의 주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일을 통해 몸이 쉼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일을 안식일로 삼는 문제에는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안식교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토요일이 구약의 안식일에 맞는다는 것이다. 둘째, 신약의 주일이 구약의 안식일과 같은 날이기 때문에 구약의 방법과 똑같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 부르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안식일은 여호와에게 거룩히 지켜야 한다. 이날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의 용무는 미리 정리한 후에 세상일과 오락에 관한 말이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온종일 거룩하게 쉬면서 공동예배와 기도와 구제를 행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개혁주의 청교도 신학은 이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셋째,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폐기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나름의 특징을 지닌 새로운 날 주일이 안식일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존 칼빈의 견해이다. 칼빈은 유대인들을 위한 거룩한 안식일은 폐지되고 그 날을 대신하여 다른 새로운 날이 정해졌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주일도 하나님이 세우신 날이다. 그러나 안식일과 달리 이 날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날이고 안식일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안식일은 휴식하고 전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엄격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주일은 기쁨과 활동과 기대로 넘치는 날이다. 주일의 특징은 첫 번째 주님의 날에 있었던 사건인 부활을 기리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그들을 가르치고, 성령을 주고, 그리고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주고 승천하셨다. 안식일이 폐지되고 주일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초대교회의 예배가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로 재빨리 대체되었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은 십계명의 제사 계명이 안식일만 아니라 다른 날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이 계명은 사실 모든 날에 적용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섬기듯이 엿새를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구별하여 하나님에게 예배드리고 다음 엿새를 위하여 세상일을 멈추고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2-24 QT 되새김 A 하나님께서 우주 창조를 6일에 마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B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는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는 것을 주일과 비교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D 그 원리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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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4
  • 큐티주석7 하나님의 형상
    Michelangelo, Creation of Adam 하나님의 형상 1: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24-31 AP통신, CNN 등 외신들은 900여년 만에 '회문(回文·palindrome)의 날'을 맞아 전 세계가 들뜬 분위기라고 2020년 1월 2일 보도했다. '회문'이란 앞에서부터 읽으나 뒤에서부터 읽으나 같은 문장이나 단어를 뜻하는 말로, 2020년 02월 02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회문의 날은 909년 전인 1111년 11월 11일이었으며 다음 차례는 2121년 12월 12일이어서 101년을 기다려야만 볼 수 있다. 2121년 12월 12일 이후에는 3030년 03월 03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란군이 8일 새벽 미군 주둔 이라크 기지 2곳에 15발의 미사일 로켓을 퍼부으며 보복 공격을 단행한 가운데 이란 테헤란 공항에서 이날 아침 탑승객 176명을 태운 우크라이나 민간 여객기(보잉사 기종)가 이륙 직후 갑자기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애초에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로 알려졌으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크라이나 당국은 “사고 원인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어떤 추측도 삼가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와 최고지도자가 이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이란사람들이 분노해 시위하는 모습은 신기하다. 이란 정부는 2020년 1월 8일 격추된 우크라이나 민항기의 잔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며 사실 은폐에 안간힘을 썼다. 이란혁명수비대 대공 사령관이 사흘 만에 “실수로 격추된 사실을 알았을 때 죽고 싶었다”고 자백한 건 심지어 순수해 보인다. 우리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어서인가. 집권 세력의 거짓말이나 이중적 행각쯤은 내로남불, 가볍게 넘겨버리고 더는 분노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이란에선 가장 분노하는 대목이 체제를 책임지는 지도부가 비행기 결함에 추락했다고 거짓말한 점이라니 신선하다. 우파든 좌파든, 이슬람이든 무종교이든, 옳은 건 옳은 것이고 거짓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 지당한 사실을 인정하는 이란사람들이 고맙고 감동스럽다. 테헤란에서 반(反)정부 시위 단골 구호인 “미국에 죽음을!” 대신에 “거짓말쟁이에 죽음을!”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외신에 새삼 이란을 다시 보게 됐다. . 2,500년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이란은 1979년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를 바꾸는 진짜 혁명을 했다. 그러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가 지금 같은 신정(神政) 체제를 원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이란혁명은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공중납치 당했던 것이다. 반정부 시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물론 지식인과 중산층, 학생과 노조, 민족주의와 좌파 세력도 참여했다. 부패한 팔레비 국왕 축출이라는 목표는 같았다. 1979년 2월 1일 망명지에서 귀국한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는 탄탄한 성직자조직을 통해 이란을 장악하고는 피의 전투 끝에 2월 11일 승리를 선언했다. 그해 3월 말 이슬람 공화국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면서도 어떤 나라로 갈 것인지 이란국민이 몰랐다는 건 기막힌 일이다. 이슬람 공화국이라고 해도 음주를 강하게 단속하는 나라쯤 될 것으로 여겼다는 1979년 외신도 있다. 투표소는 뻥 뚫린 공개적 장소였고 유권자 명부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민투표는 사기였던 셈이다. 도덕적 자신감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이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는 점에서 호메이니 세력은 문재인 촛불혁명세력과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 세력과 손잡고 노조 등 좌파세력과 여성운동집단을 몰아낸 다음 호메이니 독주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서구 앞잡이로 몰아 알라의 이름으로 참혹하게 숙청하는 과정은 공산당 통일전선전술을 능가했다. 그렇다면 이슬람 성직자들은 정말 이슬람 율법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정말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제 원하는 것은 권력과 부(富)였고 혁명수비대(또는 정보경찰과 공수처) 같은 폭력을 통해 국민의 머릿속까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면 그들은 정권을 잡지 못했을 거다. 이란 성직자들의 혁명이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연구는 너무나 많다. 1970년대 중반 국제유가 파동 여파로 대거 해고된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듯 성직자들은 이슬람 영향력 약화를 위해 팔레비 왕이 종교재단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분배하자 분연히 일어섰다는 분석들이다. 성경을 따르는 보수주의자는 신중하다. 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부작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최악의 사태를 미리 차단하자는 것이다. 이런 태도 아래에는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믿음과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 역사를 조절하신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보수적 신자는 태극기 부대 류의 정치적 독선과 조국 류의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혐오하고 신앙의 전통과 삶의 현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기도한다. 독일의 유명 매체인 슈피겔(spiegel)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을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는 문구의 표지를 발간해 논란이 되고 있을 때 믿는 자의 생명 양식 성경은 말씀한다. 창 1:24-31 하나님의 형상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24절. 땅은 생물(the living creature)을 그 종류대로 내되 생물(生物)은 생명이 있는 것을 말하며, 보통 동물과 식물 또는 사람 등의 존재를 두루 일컫는다.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생물은 박테리아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며, 복잡한 관계의 생명권을 이룬다. 하나님께서 지상 동물들을 만드심으로 창조가 더 진전되었다. 모든 생물의 다양한 종(species 種)을 세 종류(class)로 구분하셨다. 25절. (1) 땅의 짐승(the beast of the earth)을 그 종류대로(beast of the earth after his kind) 동물(動物)은 일반적으로 운동 능력과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이라고 하는 말은 특히 일상어의 수준에서는 사람을 포함하지 않는 ‘짐승’의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2) 가축을 그 종류대로(cattle after their kind) 집짐승은 인간이 이용하기 위하여 기르는 동물 즉 노동이나 사육 가능한 초식 종류의 동물을 말한다. (3)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every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after his kind) 거대한 파충류(爬蟲類 reptile)부터 작은 모충(毛蟲 caterpillar) 등의 모든 기는 것까지 망라한 것들을 이른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이제 창조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하나님이 이르시되’(God said)라는 말씀은 이루시려는 사역의 특별한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가시적인 머리와 지배자로서 다스리는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대표자가 될 한 피조물의 형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형상과 모양이 두 번 언급되는 이 말씀에서 인간의 독특성과 우월성이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 즉 짐승이나 식물이 갖지 않은 인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격을 갖는다는 것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어디에 있는가. 직립 형태나 얼굴이나 지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귀나 천사들이 이 점에 있어서는 인간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불멸성에 있지도 않다. 인간은 과거나 미래에도 영원하신 하나님같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하나님 형상은 일반적으로 원의(原義 original righteousness)라고 하는 인간 영혼 속의 도덕성(the moral dispositions)에 있다. +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전 7:29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 3:10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4 새사람이 되는 새 창조는 오직 하나님의 이 형상의 회복뿐이므로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을 따라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말씀에서 인간의 독특성과 우월성이 나타난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특별하게 창조하셨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창조 이후에 진화의 과정을 밟았느냐는 문제에 의견을 달리한다. 성경은 진화 과정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진화론과 타협할 수 없는 아주 분명한 이유는 이브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8-9 아담과 이브의 특별한 창조는 우리 몸이 여러 면에서 동물과 비슷하긴 하지만 동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정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음 받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거대한 우주에 비교해 인간을 비하하려는 현대 사상의 경향을 성경은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의 존재를 귀하게 여긴다. 더욱이 하나님은 구원한 사람들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다.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모든 나라 모든 세대의 인류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색인이든 서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고 살아야 될 최초의 한 부모의 후손이다.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26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4-25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9 +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시 104:24-25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신 지혜로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을 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 QT 되새김 A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B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사실로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 C 모든 나라 모든 세대 인간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라. 신자로서 인간의 진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D 모든 나라 모든 세대의 인류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색인이든 최초의 한 부모의 후손이므로 서로 어떻게 대하고 살라고 성경은 말씀하는가. 그 원리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엡 4:24-25).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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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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