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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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소리에 잠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밀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不協和)의 음정(音程). 밤비에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밀려오는 소리. 반가워 손짓하며 다가오는 실루엣 같은 앞모습의, 오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까지 비오는 소리 들리니 또 틀림없이 가겠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듯 말이다. 어느새 여름비 가는 소리 들린다. 오는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왔다가 돌아가는 게 어디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제100회 총회 임원후보 정견발표도 그렇다. 내게도 젊음 사랑 기회가 다 있었는데, 이것들이 왔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가는 소리에 돌아보니 가고 없다. 소중한 것들은 잃어버린 다음에야 그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는 모양이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의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총회와 총신 사랑의 습관도 길러보아야겠다.
 
서울반석교회를 조기 은퇴하고 여수에 칩거하시는 황정길 목사의 뜬금없는 전화가 왔다.

“총장 취임식이 언제요?”

“27일로 알고 있는 데요. 다시 확인해 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광고와 행사 기사로 정평 있는 기독신문을 확인해 보니 27일에서 25일로 바뀌어 있었다. 김영우 총장을 며칠 전 만나 확인했을 때도 그는 27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독신문에 총장 이취임을 알리는 5단 광고에 8월 25일로 박혀 있었다. 총신 동창회건 총신 행사건 무슨무슨 협의회 행사건 기독신문에 광고를 내고 끝내는 것으로 관행이 되어 있다. 행사 순서 맡은 자들과 몇몇 관련자 외에는 나몰라다.
 
황정길 목사에게 총장 취임식 변경 내용을 전화로 알려 드렸다. 그는 알았다며 그 날 총신 본관 앞에서 만나 같이 들어가자며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은퇴한 뒤 헌신예배 초청도 마다하는 황정길 목사가 김영우 목사의 총신 총장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마음은 그가 젊은 시절 김영우 목사와 비전을 같이 하기로 뜻을 모은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곧게 목회에 전념하는 황정길 목사와 남들 다하는 결혼도 하지 않고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 김영우 목사와는 그 순수한 관계가 계속 이어질 수는 없었다.
 
총회와의 재판에서 가처분이 인용된 상태로 재단이사장 신분을 버티며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속을 썩이던 김영우 목사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총신대 총장 길자연 목사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이름도 괴상한 ‘임원취임승인취소가처분취소’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6월 12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한 결과였다. 놀랍게도 길자연 목사는 총신 총장직을 재판으로 다시 임기 말까지 버틸 수 있음에도 종전의 습관을 바꿔 결연히 총신 총장직을 6월 25일 사임하고 총장 전용 검은색 승합차를 기사와 함께 반납했다. 그 기회를 이용해 백남선 측은 김영우 목사를 철옹성 같은 재단이사장 직에서 나오게 하려고 줄 수 있는 자격도 없으면서 김영우 목사에게 총장직을 준다고 제안했다. 김영우 목사는 총회장 백남선 목사 측과 공증까지 하고 길자연 목사의 잔여임기 2년 4개월의 총신 총장직을 물려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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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간간히 내린 25일 정장 차림의 황정길 목사는 시간에 맞춰 총신 본관 앞에 서 계셨다. 그는 1층 강당으로 들어가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으셨다. 김영우 목사의 지난(至難)한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행사가 오전 11시 정각에 열렸다. 나는 사진기를 꺼내 들고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강단 중앙 모서리에 올려놓았다. 강단의 좌석에는 보여야 할 총신 인사들이 안 보이고 순서지에 이름도 없는 억대의 피부 미용 의혹으로 곤욕을 치룬 국회의원 나경원이 동작구 의원이라서, 그리고 광주 출신 국회의원 박주선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이라서 강단에 앉아있었다. 아래 강당의 교수 석으로 배정된 자리에는 출석도 안 한 사랑하는 제자 오정현 목사의 출석과 학점을 임의로 주고 자신의 연구소에 사랑의교회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의혹이 있는 김정우 교수, 논문 표절 의혹에 자신의 변명과 동료 교수들의 감싸기 성명으로 일관하는 김지찬 교수 등 총신의 내로라하는 교수들도 자신들의 수장의 취임식인데 참석하지 않았다.
 
재단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은 제98회 총회장 안명환 목사가 근래 보기 드문 매끄러운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예전 같으면 붉은 박사 가운과 금술의 박사모자가 화려하게 너풀거릴 텐데 이 날 행사에는 무슨 이유인지 다 평상 정장 차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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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고 온유한 품성의 목회대학원장 유병근 목사가 기도했다.
 
존경하는 총회장 김준규 목사님께서 참 일꾼의 육성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영화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크신 은혜 가운데 오늘 저희 총신대가 6대 총장 취임식을 가질 수 있도록 은혜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우리의 기도와 찬송과 감사와 경배를 받아주시옵소서. 또한 김준규 목사님이 이 시간 귀한 말씀 증거할 때 주께서 함께하사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말씀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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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칼빈주의 예배를 자신의 시무하는 원당교회에서 올바르게 드리는 운영이사 유선모 목사가 출애굽기 3:4-10 성경을 봉독했다. 총신대학교 찬양대의 합창 뒤 김영우 목사의 평생후원자 제81회 총회장 김준규 목사가 “참 일꾼의 육성”에 대한 설교를 했다.
 
우리 총신대학 학부와 신대원은 같은 목적 아래에서 설립된 과정이라고 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일꾼은 그 시대마다 요청하는 시대의 요청에 의해서 그 요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일꾼들을 배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고 목적입니다…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어떤 일꾼이 필요한가, 우리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고 사회 지도력을 함께 가져가고 영적인 신앙의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분은 다양한 경험과 교육과 신앙이 쌓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김영우 목사님은 내가 제일 처음 봤을 때 공군 군목이었습니다. 그 때 청주를 방문해서 제가 청주 중앙교회 수요일 밤 설교를 부탁해서 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대단히 젊은 공군 군목이었습니다. 이 군목의 경험은 우리 목사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경험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명지 대학의 교목 실장을 맡으면서 학원에 대한 젊은 청년들을 위한 선교 사역에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어요. 또 학문을 충분히 정규 과정을 통해서 받아서 정말 총장으로서 결격 사유가 없는 그러한 학문을 쌓았어요…오늘 우리 김영우 총장이 취임하시게 되면 우리 총신대학을 통해서 모세와 같은 시대가 요청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능력있는 일꾼들이 많이 출현되고 배출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고 또 이 믿음을 따라 그가 행동할 때 믿음의 역사 믿음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들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6대 우리 총신대 총장 취임은 총장의 성품이 중요합니다. 총장은 바로 모세와 같은 이런 지도 역량을 간직한 총장이 될 때에 이 총신대학에 총장으로서 부임한 목적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이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허물도 많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음이 합한 자라 내가 그를 통해서 내 뜻을 이루겠다 이렇게 약속 하셨어요…여러분은 단순히 나 자신의 의지로 내가 결심해서 신학 대학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이런 확고한 소명 의식이 없는 사람은 정말 자신 있는 사명을 수행해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부름을 받은 소명 의식을 확신하면서 모세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되기로 온 전교생들 마음에 결심을 하고 우리 총신대학 총장님을 비롯해서 모든 교수님들이 합심 협력해서 모세와 같은 시대가 요청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민족 구원해낼 수 있는 이런 훌륭한 일꾼들이 다 배출 될 수 있기를 축원하면서 성삼위 하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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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자연 목사가 애용하는 박사 가운과 박사 모자를 쓰지 않고 총신 5대 총장 이임사를 총신 역사로 시작해 전도서 1:4 말씀과 덕담을 곁들여 간결하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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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겨우 두 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던 총회신학교가 오늘날 세계적인 신학교가 됐습니다. 그리고 종합 대학이 됐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저는 5대 총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오늘 이임합니다. 역사는 퇴보 한 적이 없어요.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하는 성경의 세월 법칙에 따라 역사에 등장하고 퇴장하는 인물이 바뀔 뿐입니다. 금번 제6대 총장으로 취임하는 김영우 목사는 개혁교회 신학의 입장에 탁월한 행동력을 가진 훌륭한 분입니다. 이제 김영우 총장의 취임 후에 재단 이사장 대행으로 수고하시는 안명환 목사님, 재단이사들과 학생들과 교수와 직원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계적인 총신으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기를 기대하면서 이임사로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를 배출하는 총신대에서 커피를 끓이는 과정을 담당하는 형을 두어 총신대 정문 벽에 오래도록 바리스타 과정 현수막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개혁 측 출신의 법인국장 권주식이 총장 김영우 목사의 약력을 발표했다. 그 뒤 여러 사람들의 격려사와 축사들이 이어진 뒤 드디어 길자연 목사의 2년 4개월의 잔여임기를 물려받은 김영우 목사가 취임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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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세계 장로교회 신학 대학 중 세계 최대 규모의 총신 대학교, 한국 기독교 신학 교육 기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총신대학교, 영욕이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서 십자가를 총신이 짊어져온 총신 대학교의 총장에 취임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본교가 성경에 입각한 역사적 대 신학과 세계관에 더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 기울여 섬기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으로 본교가 규모나 내실에 있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다 기울여 섬기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미래 학자들은 입을 모아서 현대 사회를 글로벌화, 기술의 혁신 플랫폼을 갖춘 주체만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교는 수년 전부터 글로벌화를 추진하여 혁혁한 수확을 올리고 있습니다. 기독교 한국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과 북미 지도자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서 아시아 특히 중국 개혁주의 선교를 위해 세계 개혁주의 연맹을 창설하여 우리가 대표 국가의 대학교가 되게 하였고, 영어 M. Div 목회학 석사 과정을 개설하여서 아시아와 다른 국가의 학생들이 와서 장래 세계의 개혁주의 신학의 선구자가 되기 위하여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또 내년에 중국어 M. Div 목회학 석사 과정을 개설하기를 원하고 있고 이미 교수와 학생의 국제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혁신 작업 또한 착실히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배가 중심이 되어서 채플시간에는 온 교수 직원 학생들이 수위와 채플 환경을 다루는 에어컨 기사와 전기 기사를 빼놓고는 모두가 참석한 그런 채플로 혁신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배드리는 시간이 공부하는 시간보다 그동안 짧았는데 공부하는 시간과 똑 같은 시간으로 확대하여서 예배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와 강의의 혁신, 학업 환경의 혁신, 운영의 혁신 등의 박차를 가하고 플랫폼 즉 공유에 대한 노력 역시 활짝 문을 연 총신으로서의 변신을 통해 비단 우리 교단의 성숙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전체의 인재들을 양성 할 수 있는 신학의 보편화 작업에 노력을 진작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이지만 사랑하는 교직원과 학우 여러분의 그리고 이사진과 본 교단 지도자 여러분들과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와 도우심을 정중히 부탁드리면서 임기 동안 소임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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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당연한 의미를 믿지 않고 늘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며 새로운 말과 논리를 꿈꾸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에 반하여 목사는 신학과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다. 따라서 지성과 신앙을 일구는 총신대학교의 총장 김영우 목사는 그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과 내빈들에게 반기문 총장의 취임사에는 못 미칠지라도 그의 취임사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 그가 늘 외치는 역사적 개혁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신학 사상의 틀, 총신의 구체적인 발전의 청사진 등이 나타나 그 자리의 청중들의 감동을 자아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제100회 총회의 파도가 밀려오는 가운데 제99회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총신을 향한 고퇴를 쥐고 있고, 이번 대학 평가에서도 드러났듯이 C등급을 받긴 했지만 대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김영우 목사는 결혼도 하지 않고 달려온 인생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각오로 총회의 파도를 넘으면서 총신을 앞서의 어떤 총장보다도 배나 더 발전을 시켜야 자신의 이름값을 하게 될 것이다. 식이 끝나고 황정길 목사는 오래 기다린 뒤 김영우 목사를 총장실에서 만나 따로 조용히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나왔다. 나는 황정길 목사와 지하철 남성역에서 서로 반대 방향의 승차장으로 헤어졌다. 그는 떠나기 전 지갑을 열어 눈웃음과 고개를 끄덕이며 적지 않은 촌지까지 건넸다. 이런 시가 있다.
의족을 한 남자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남자가
감옥을 탈출하다가 붙잡혔다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빼앗아 버렸다
날마다 그는 한쪽 다리를 한 채로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밭에 가서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일 년이 자나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간수들은 그의 의족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의족이 필요 없었다
그는 이미 완벽한 탈출 계획을 세웠기에
한쪽 다리로 탈출하는 계획을
 
-제임스 테이트
녹음정리 김정주 기자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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