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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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장르 : 다큐멘터리
감독 : 빔 벤더스
음악 : 라이 쿠더
노래 :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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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검은 라틴'의 파도 소리
 
흔히 노년은 인생의 황혼기로 비유된다. 작열하던 태양이 광포한 열기를 거두고 슬며시 서산 마루에 기대듯이, 들끓던 열정과 억센 힘, 넘치는 에너지를 세월 저편으로 갈무리한 ‘실버 실루엣’. 갈수록 급변하는 일상의 강파른 속력 앞에서 노년은 더욱 초라하다. 경쟁력 위주의 속도전 사회에서 노인은 자칫 걸림돌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대 문명의 맹목을 살짝 비켜나서 살펴보면, 노년의 이미지는 달라진다. 평생에 걸쳐 숙성한 기술과 지혜, 기품, 우주를 헤아리는 조화와 혜량. 비유를 바꿔보자. 한 방울 이슬로 태어난 물의 일생은 평생을 흘러흘러 바다에 이른다. 물이 일생에 걸쳐 조우한 온갖 미네랄과 자양들이 바다로 그윽하게 고여든다. 노년은 한편으로 ‘인생의 바다’인 것이다. 더욱이 그 노년이 기예와 함께 한 삶이라면, 일생을 조탁해온 기예의 경지는 삶의 온갖 희로애락을 용해한 세월의 밀도로 인해 독보적인 아우라를 발하기 마련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평생을 음악으로 살아온 아름다운 노년들의 실황 다큐멘터리다. 1997년 혜성처럼 나타나 미국·유럽·일본 등지를 뒤흔들며 쿠바 열풍을 불러일으킨 백발부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이들의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클래식·재즈·팝 계로부터 즉각적인 환호와 찬사를 받으며 2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연일 빌보드차트를 뒤흔든 뒤 그 해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콘서트에서 열광적인 앵콜 세례를 받았고, 이후로도 파리, 도쿄 등지의 뮤직차트를 누비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세계적인 백발 그룹은 이름부터 아이러니하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이름 자체가 ‘환영 받는 사교 클럽’이란 뜻이다. 본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의 수도 하바나의 고급 사교장이었다. 쿠바 최고의 뮤지션들의 무대였던 이 클럽은 지난 30~5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1959년 쿠바혁명과 함께 사라진 추억의 명소다. 
 
영화는 한 노인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옛터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아흔살(영화 촬영 당시) 노인은 15세에 벌써 첫 자작곡을 발표한 바 있는 쿠바 음악사의 산 증인 꼼빠이 세군도(1907년 생)다. 이어서 ‘쿠바의 냇 킹 콜’로 불리는 전설의 보컬리스트 이브라힘 페러(1927년 생), 영혼을 끌어들이는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1919년 생), 여성보컬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 생), 베이시스트 ‘작은 베토벤’ 카차이토(1933년 생) 등 백발부대 멤버 십여 명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기묘한 영화는 한 음반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에서 잉태되었다. 라이 쿠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제3세계 음악의 거장이다. 1996년, 라이 쿠더는 월드서킷 음반사로부터 아프리카와 쿠바의 사운드를 매치한 ‘아프로-쿠바’ 음반을 기획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쿠바로 향한다. 
 
라이 쿠더는 젊은 시절부터 테이프를 통해 매료되었던 쿠바 뮤지션들을 찾아다닌다. 쿠바의 뮤지션들 대부분은 카스트로 혁명 이후 ‘부르주아 음악인’으로 낙인찍혀 음악을 그만두고 잊혀졌거나 활동 무대를 외국으로 옮겨야 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적지 않은 뮤지션들이 이미 세월의 파도에 휩쓸려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라이 쿠더는 하바나 골목의 낡은 아파트 등지에서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노년의 거장 뮤지션들을 어렵사리 만나 그룹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결성한다. 여기에 빔 벤더스가 합류했다. 라이 쿠더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작곡을 맡았던 환상의 콤비였다. 벤더스는 라이 쿠더가 이브라힘 페러의 솔로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하바나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했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이렇게 태어났다.
 
영화는 ‘백발 특공대’가 결성되는 순간부터 카네기홀 콘서트에서 앵콜 박수가 쏟아지는 장면까지를 다룬다. 벤더스는 처음부터 드라마를 버렸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카리브해 작은 섬의 늙고 초라한 뮤지션들이 카네기홀에 입성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할리우드식 앵글에 담는 편이 옳았다. 대신 벤더스는 재미의 자리에 애잔한 쿠바의 눈빛과 숨소리를 담아 영롱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빚어냈다. 
 
공연 실황과 음반 녹음 장면, 멤버들의 인터뷰 모습 등이 교차되면서, 노익장들의 골 깊은 인생유전과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음악적 환희가 멋진 대조를 이룬다. 이들의 노랫말은 시처럼 삶과 사랑을 노래하고, 사이사이 화면에 등장하는 하바나의 다양한 표정은 영상으로 써낸 에세이처럼 은은하게 흔들린다. 
 
이 ‘시골 노인네들’이 마침내 뉴욕에 입성하던 날의 모습은, 마치 ‘촌로들의 서울 효도관광’ 풍경처럼 어색하고 우스꽝스런 ‘역설적 감동’을 전해준다. 거리에서 촌티를 흩날리던 꼬부랑 백발들이 보여주는 무대 위의 기품, 매너. 그 은유적인 콘트라스트……. 그리하여 카네기홀 콘서트의 대단원의 막이 내리면, 콘서트홀 객석과 스크린 앞 관람석에서 동시에 우레 같은 갈채가 저 아름다운 백발들 앞에 바쳐지는 것이다.
 

box : 빔 벤더스의 영상 미학
 
황량한 세상,
소외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
 
빔 벤더스의 영상 어조는 낮고 그윽하다. 맑고 가지런하며, 뒷부분에 힘이 실린 음색이다. 삶은, 세상은 부조리한 시지프스의 언덕 같은 것. 그 너머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묵묵히 가야 하는 공허한 허방. 관조하되 낙관하지 않고, 방황하되 절망하지 않는다. 냉소와 갈망의 중간 어디쯤, 우울과 희망의 중간 어디쯤. 황량하고 건조한 상황 속에도 그는 끝내 한 조각 온기의 비늘을 간직한다. 
 
벤더스의 미학은 어쩌면 자기 삶의 궤적에서 고스란히 우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벤더스는 1945년 패전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나 프라이브루대학에서 철학과 의학을 전공했다.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중 시네마테크에 심취해 영화 인생을 시작한다. <파리, 텍사스>(1984․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베를린 천사의 시>(1987․칸영화제 감독상)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벤더스 감독의 화두는 일단 ‘소외’다. 그의 영상에 투영된 고독의 빛깔, 단절의 이미지, 고뇌의 미학이 모두 소외와 같은 심장을 쓰고 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는 벤더스의 눈길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들이 겪은 개인사의 굴곡들,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를 휩쓴 근대사의 핏빛 흔적들. 삶이 너무 고달파서 차라리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라틴 노예의 후예들. 독립과 가난, 그리고 혁명. 이 소외의 연대기를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속에 잔잔히 물결친다.
 
98년 완성된 이 영화는 99년 유럽영화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영국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시애틀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LA영화협회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호주 누사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등을 휩쓸었다. (fin)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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