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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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간호학의 기초를 세운 나이팅게일은 백의의 천사라고 불린다. 1853년 터키를 침공한 러시아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하게 되면서 크림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의 참담한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나이팅게일은 다른 간호사들과 함께 이스탄불의 영국군 야전병원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나이팅게일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업적을 세운다. 수많은 의사와 다른 간호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팅게일만이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크림전쟁이 진행되던 1800년대 중반에는 위생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해야 할 야전병원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2차 감염으로 인해 죽어나갔다. 아직 질병의 세균설이 제대로 정립되지도 않았을 때였지만, 나이팅게일은 병원 내의 더러운 위생시설, 살균되지 않은 수술 도구들, 각종 악취 등이 부상자를 사망으로 이르게 한다고 생각하여 병원을 최대한 깨끗하게 하는 것을 개혁의 기본으로 삼았다. 또한 병원에 들어온 부상병들에 대한 관리도 엉망이어서 부상으로 입원했는지 질병으로 입원했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었고, 입원, 퇴원, 사망에 대한 자료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이팅게일은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자료의 기록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체계적으로 의무 기록을 정리?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나이팅게일은 후대의 간호사들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등대의 역할을 했다.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입는 가운은 이웃을 따뜻하게 감싸는 간호정신을 뜻하고, 손에 든 촛불은 주변을 밝히는 봉사와 희생정신을 의미한다.

호암재단은 지난 4월 1일 제25회 호암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과학상은 천진우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 공학상은 김창진 미국 UCLA대 교수, 의학상은 김성훈 서울대 교수, 예술상은 김수자씨, 사회봉사상은 백영심 간호사가 선정됐다. 범삼성가가 만든 호암재단은 매년 학술, 예술 및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선정해 호암상을 시상한다. 호암상은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호를 따서 1990년 제정된 상이다. 

6월 1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호암아트홀의 시상식의 금년 수상자들 가운데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백영심 간호사는 ‘말라위의 나이팅게일’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동광교회(담임목사 김희태)가 25년 전에 파송한 제1호 선교사다. 동광교회가 처음 백영심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아프리카선교회를 운영하는 김희태 목사의 선배 목사의 부탁으로 이뤄졌다. 동광교회 성도들과 오랜 시간 교제를 하지 못하고 파송됐음에도 불구하고 동광교회는 IMF와 교회 건축이라는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김희태 목사의 약속을 지키는 언행일치의 목회관에 따라 선교 후원의 고삐를 전혀 늦추지 않았다. 나름의 정립된 선교관을 가지 김희태 목사는 말한다. “우리는 한번 파송한 선교사님들을 믿고 기다립니다. 4년 한 텀 기간 동안에는 선교의 토대를 세울 시간으로 생각하고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2년을 더 기다리며 영혼구원의 열매를 맺기를 기다립니다”.

백영심 간호 선교사는 고려대 부속병원에서 근무하던 1990년 28세 나이에 안정된 일터를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하였다. 케냐에서 4년을 보낸 뒤 의료 환경이 더 열악한 말라위로 옮긴 백 간호사는 주민들과 함께 직접 벽돌을 만들어 보건소를 짓고, 하루 100여 명의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문 의료 인력도 제대로 된 약품도 부족한 상태에서는 나을 수 있는 환자들 조차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이에 백 간호 선교사는 제대로 된 의료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러한 간절한 바람은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2008년 릴롱궤 외곽에 180병상 규모의 대양누가병원의 설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온 의료봉사진이 대양누가병원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병원은 연간 20만 명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현대식 병원으로 성장하였다. 이를 통해 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말라위의 의료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 선교사는 현지의 의료보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2010년 간호대학을 설립하고 현재는 더 큰 30만평의 대지에 의과대학과 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가난에서 벗어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교육이라는 믿음으로 현지에 유치원, ICT 대학 등 교육시설을 설립하여 원주민의 계몽과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고 있다. 

그런 그가 즐겨하는 말은 "저는 '태평양의 물 한 방울'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이다. 그는 2010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초기에 발견해 큰 위험은 피했지만,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낸다. 백씨가 말라위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기력'과 싸우는 일이었다. 백 선교사는 "내가 여기에서 100년을 살아도 뭐가 달라질까란 생각에 괴로웠다"며 "힘들 때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태평양의 물 한 방울 정도지만, 그 물 한 방울이 없다면 태평양의 물은 결국 한 방울이라도 줄어드는 것 아닌가'라고 한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백 선교사와 말라위의 만남은 우연적이었다. 젊은 시절, 간호학교 재학 중에 그리스도인이 된 백 씨는 언젠가 케냐의 맛사이 부족에게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다. 고려대 부속병원에 취직한 이후에도 케냐인들의 아픈 모습이 상상되어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없었다. 현실에 안주하기 어려웠던 백 씨는 결국, 병원을 그만두고 케냐로 향했다. 2년 동안 케냐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동안, 아프리카 곳곳에서 기근과 영양결핍, 에이즈와 결핵 등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목도하며 그들을 혈육처럼 여기게 됐다. 

의료봉사를 끝내고 귀국했던 백 씨는 아예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탔다. 도착해서는 버스를 타고 아프리카 인근 국가들을 여행하다가 말라위 치무왈라에서 행보를 멈췄다. 백 씨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다. 주민 500명이 살고 있던 치무왈라에서 백 씨는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벽돌을 직접 만들어 약 99㎡(30평) 규모 진료소를 지었다. 진료소가 생기자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몰렸다. 

“아침 문을 열기 전부터 와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픈 것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죠.” 생계는 주민들과 함께 꾸렸다. 옥수수 가루로 죽을 만들어 먹을 때도 있었고 한국이 생각날 때는 쌀밥을 지어 주민들과 나눴다. 밤이 되면 진료소 주변은 노천극장이 됐다. 백 선교사는 나무에 흰 천을 걸어 스크린을 대신하고, 치체와어(말라위인의 80%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로 더빙한 예수 영화를 상영했다. 주민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베풀어 주는 것에 환호하며, 149㎝의 작은 키에 하얀색 가운을 입은 백 간호 선교사를 하나님이 보내신 ‘작은 천사’,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소문을 접한 다른 마을에서도 진료를 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진료소는 직원과 약품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백 선교사는 병원 건축을 도와줄 사람을 기도하며 수소문했다. 

2004년 여름 말라위에서 처음 백씨를 본 뒤 한국과 말라위를 오가며 봉사하는 홍민희 을지대 간호학과 외래교수는 이런 증언을 했다. 2005년 하반기 어느 날 외래진료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있던 백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홍 교수는 "백 간호사가 전화를 끊고 차를 멈추더니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대양상선 정유근 회장이 백씨 소문을 듣고 사재를 털어 현지에 큰 병원을 짓고자 전화한 것이었다. 정 회장은 '나중 돈을 벌면 아프리카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다짐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말라위 한인 교민을 만나 백씨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정 회장은 사재 33억 원을 들여 2008년 2월 말라위 릴롱궤에 대양누가병원을 설립했다. 또 이후로도 대양상선을 통해 매월 1억 원 이상씩 지원하고 있다. 완공식엔 무타리카 말라위 대통령이 참석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80병상으로 시작한 이 병원은 이후 200병상으로 증축됐다. 그 다음에는 병원 옆에 간호대학도 세웠다. 말라위 사람들이 의료기술을 배워야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6월 1일 백영심 선교사의 호암상 시상식에 깊은 샘 같은 김숙자 사모와 함께 특별 초청으로 참석한 김희태 목사는 백 선교사의 헌신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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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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