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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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해 두 팔 벌린 서초 새 성전 입당
 
서초새예배당의 건립목표 사랑의교회 5대 사역비전의 구현 
GLOVE로 요약되는 G(Growing in Truth, 제자공동체) 
L(Loving Family, 생명공동체) 
O(Obeying God, 예배공동체)
V(Volunteering in Christian Life, 섬김공동체) 
E(Evangelizing the World, 증인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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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지금의 숭실대 앞으로 돌아가 보자. 숭실대 정문을 지나 사당동 쪽 언덕을 넘어서면 철거민들이 자리 잡은 초라한 골짜기에 총회신학교가 있었다. 내부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신학교 건물 지하에는 전깃불도 없는 기숙사가 있고 지하의 식당은 울퉁불퉁 정리되지 않은 운동장을 면하고 있었다. 당시의 신학연구원 전도사들보다 머리가 길고 황색 가방을 든 옥한흠 전도사가 운동장을 걷는 모습이 보인다. 

총신 신학연구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그 후 1970년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한 그는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부임한 지 3년 만에 서울에서 최초로 대학부 학생 2백 명을 모아놓았다. 그는 1972년 34세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72년 성도교회를 담임했던 김희보 목사가 총신대학의 학장으로 떠난 후 김성환 목사가 그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당시 총신대 1년생으로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면서 틈틈이 대학부를 기웃거렸다. 서울의 명문대 남녀 학생들로 그득한 교육관 2층의 대학부 집회실은 늘 그득하고 옥한흠 전도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그들의 심령을 파고들었다. 대학생들은 진정 옥한흠 전도사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진지했고 뜨거웠고 밝았다. 

그러나 제자훈련의 모태 옥 목사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는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한 그는 3M(Campus Ministry, Business Ministry, World Ministry)의 비전을 갖고,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펼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훈련시켰다.

유학, 제자훈련의 신학적 검증의 길 
 
제자훈련에 대한 신학적 논리와 성격적 체계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옥 목사는 1975년 미국의 칼빈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다.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강남은평교회 개척과 사랑의교회로의 변경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강남은평교회는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그만의 목회철학을 드러냈다. 

그가 인도하는 예배의 찬양과 말씀을 교회가 세든 건물 밑에서 구두를 닦고 고치는 사람이 듣고 신자가 되기도 했다.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첫 제자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철저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한흠 목사는 구역장을 순장, 구역예배를 다락방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 소그룹 리더인 순장은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2년을 마친 후에 세워졌다. 또한 그는 주일예배를 통해 성도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설교에 생명을 걸었고, 주기도문송, 세례자 간증을 활용하여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복음을 체험하도록했다. 

옥한흠 목사의 복음적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해 서울시 건축상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소음을 없애기 위해 카타콤처럼 지하로 예배실을 만든 점과 건축비가 모자라 가장 흠이 많은 불량품 적벽돌로 지은 것이 오히려 경건한 운치를 자아냈다. 십자가 대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글자를 강대상 앞에 붙였다.
 
옥한흠 목사 조기 은퇴 발표
 
2001년 7월 출석교인 20000명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옥한흠 목사는 ‘65세 은퇴’를 발표한 후 후임자 선정 작업을 벌여왔다. 그는 그 배경을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교회에 젊음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몇 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사랑의교회가 늙지 않고 다음 세대에도 활기와 영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한때 융성했던 교회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교회는 적절한 때 리더십을 교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후임을 맡게 되는 오정현 목사와의 인연에 대해 옥한흠 목사는 이렇게 밝혔다. 

“20여년 전 오정현 목사가 이끌던 내수동 교회 대학부를 제가 지도한 이래 긴밀한 선후배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저와 목회 철학을 공유하고 있고,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개척해서 15년 만에 미주 최대의 한인 교회로 만든 오 목사의 리더십이 사랑의교회를 계속 활기 넘치는 교회로 만들 것으로 믿습니다.” 

전 세계에는 약 4000개의 한국인들이 세운 이민 교회가 있고, 그중 3000여 개가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국내의 개신교계보다 더한 열기를 보이고 있는 미국 한인교회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부근에 위치한 남가주사랑의교회이다. 지난 1988년 피아노가게 연습실을 빌려 12명의 신도와 함께 교회를 시작, 15년 만에 출석 교인 7000명의 대형 교회로 키운 사람은 오정현(47) 목사이다. 오정현 목사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82년, 신학을 공부하는 유학생 신분으로였다. 도미(渡美)한 그는 미시간의 칼빈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87년 말 남가주사랑의교회를 세웠다. 당초부터 미국에서 목회를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제 이민 교회에도 새로운 지평을 여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남가주사랑의교회가 짧은 기간에 미국의 100대 교회에 들어갈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신도와 이민 2세 교육에 기울인 남다른 열성이 밑받침이 됐다. 특히 오정현 목사는 예배의 열정을 살리기 위해 찬양을 잘 활용했다. 그는 그것을 위해 찬양 테이프를 500회 이상 듣고 또 들어 테이프가 풀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오 목사는 신자들을 집중적인 장기 교육을 통해 기독교 복음의 본질과 크리스찬의 바람직한 삶에 눈뜨게 하는 ‘제자 훈련’과 연말연초에 40일 동안 실시하는 ‘새벽부흥회’를 통해 지성과 영성을 함께 갖추도록 인도했다. 또 남가주사랑의교회의 신자는 새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70%나 되고 국내 교회들에 비해 남자의 참여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이 특징이다. 옥한흠 목사의 뒤를 잇기 위해 2003년 8월 중순 남가주사랑의교회를 사임하고 귀국하는 오정현 목사는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 교회와 서양 교회의 강점을 결합하고, 젊은이들에게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꿈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정현 목사를 통한 부흥

옥한흠 목사의 기대와 믿음이 이루어져 1978년 9명의 성도로 개척한 사랑의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어느덧 등록교인 99,000여 명에 매 주일 45,000여 명이 모이고 흩어지는 교회공동체가 되었다. 기존 강남예배당에서는 ‘소망관’ 이라는 별도의 건물에서 주일학교 학생들이 모였다. 학생들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 지상 4층으로 뿔뿔이 흩어져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출입구에 위치한 2개의 좁은 계단과 2대의 엘리베이터로 겨우 겨우 오르내리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주변의 좁은 도로 역시 혼잡했다. 장년은 강남예배당 본당의 6부 예배에 16군데나 흩어져 영상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다. 사랑의교회는 1978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목회철학을 실천하는데 전심전력해 왔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랑의교회가 드린 헌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은총을 허락해 주셨다. 넘치도록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어떻게 해야 사랑의교회가 이 시대 앞에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 기도하는 가운데, 공간부족이라는 장벽을 뛰어넘고 새 시대 새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새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새 시대 새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새예배당 건축은 말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서초동 새 예배당 완성

사랑의교회는 서울 서초동에 3년 5개월만에 새 예배당 건축을 완료하고 첫 주일예배를 드렸다. 오정현 목사는 "새 예배당 입당을 위한 감사의 열쇠"란 제목의 설교에서 "오늘부터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의식의 이동까지 포함하는 전 인격적인 전환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는다. 3만여명의 성도들이 눈물의 헌금으로 예배당을 짓게 돼 감격스럽다. 수많은 고비들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 입당하는 것 자체가 새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더 큰 감사가 있다. 영혼의 감사를 통해 미래를 결정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 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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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예배당과 이화여대 캠퍼스

2010년 6월 건축을 시작해 3년 5개월만에 완공된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은 지하 8층부터 지상 14층까지 연면적 6만 7천여 제곱미터㎡ 약 1만 9천 7백여평이다. 참고로 2010년 통계로 이화여대는 15개 대학원 및 11개 단과대학(17개 학부, 17개 학과)이 설치되어 있으며, 재학생은 21,200여 명, 전임교원은 913명, 직원은 370여 명이다. 이화여대의 많은 건물을 제외하고 이화여대의 부속건물 가운데 하나인 이화여대캠퍼스센터ECC는 6층짜리 건물 연면적 약 7만㎡ 약 2만 3백여평이다. 그런데 사랑의교회 교인 4만5천여명이 예배드리고 교육받고 교제와 나눔의 봉사를 위한 전체 건물 크기가 북측 미션센터 8층(사역공간)과 남측 드림센터 14층(교육공간) 등 지상 2개동 건물과 지하 예배공간(워십센터)을 다 합한 연면적이 6만 7천여 제곱미터㎡ 1만 9천 7백여평이다. 그런데 학생과 교수와 직원을 다 합쳐 2만 3천여명의 이화여대의 부속건물 하나의 연면적이 약 7만㎡ 약 2만 3백여평이다. 2만 3천명의 교육을 위한 대학교의 여러 건물이 충분히 있음에도 또 지은 부속 건물 하나의 크기가 4만5천명을 위한 사랑의교회보다 3천 제곱미터㎡나 크다. 그런데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의 ‘ECC(Ewha Campus Complex)’에 대한 사회 여론은 칭찬 일색이다. 왜 이화여대는 다른 건물도 많은데 또 부속 건물을 지어 돈을 낭비한다든지 차라리 그 건물의 소요 경비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지 않았는지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교회 예배당의 주요 기능은 말 그대로 예배와 신앙 교육을 위한 공간의 장이지 구빈소가 아니다. 대학도 큰 대학이 있고 작은 대학이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각기 능력과 형편대로 큰 교회가 있을 수 있고 작은 교회가 있을 수 있다. 

지상 14층과 8층 규모의 쌍탑이 서로 양팔을 마주잡고 당기면서 중앙에 서 있는 벽돌 시계탑을 포옹하는 듯한 이미지로 설계한 김천행 집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교회 서초예배당은 디자인적으로는 성도를 안으시고, 이웃을 안으시고, 세상을 안으시는 예수님의 따뜻함을 디자인개념으로 살렸고 중앙광장에서는 세계지도를 보며 젊은이들이 세계를 품고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시계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33개의 참을 설치하여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하도록 했다. 새 예배당 겉면은 유리로 둘렀다. 대법원?서초경찰서?서울고등검찰청 등 각진 벽돌 건물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띈다. 유리로 장식한 지상 공간은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사용한다. 교회 건축위원회 관계자는 아이들이 높은 곳에서 사회의 중심부를 바라보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호연지기를 기르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리를 택했다고 말했다. 밖에서도 안이 잘 보이는 소재로 교회가 사회와 소통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서초새예배당의 건립목표 사랑의교회 5대 사역비전의 구현 

5대 사역비전은 GLOVE로 요약되는 G(Growing in Truth, 제자공동체), L(Loving Family, 생명공동체), O(Obeying God, 예배공동체), V(Volunteering in Christian Life, 섬김공동체), (Evangelizing the World, 증인공동체)를 뜻한다. 

이를 위해 설계의 방향을 소통과 개방(개방성), 효율적인 공간창출(효율성), 시대요구에 부응하는 건물(첨단성), 교회다운 건물(경건성), 아름다운 건물(디자인)로 정하였다. 사랑의교회 새예배당 현장에서 보이는 광경은 마치 청각으로 들려오는 아름다운 음악 같았다. 유리건물의 쌍탑은 오케스트라이며 벽돌시계탑은 마치 아름답고 역동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의 선율처럼 느껴진다. 시민들이 모이는 중앙광장으로부터 6,500석의 지하교회 대공간까지 빛이 비취게 하는 광장 유리바닥과 광장바닥에 새겨진 세계지도, 이들과 어우러진 광장 조경, 높은 유리벽의 쌍탑 건물이 광장을 감싸는 것을 통해 사랑의교회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교회 출석교인은 4만 5,000명이다. 1만 5,000명 이상 되는 교회가 새 예배당으로 이전 한 예를 찾을 수 없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어느 공간 하나도 그냥 된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통해 이룬 결과물이다. 6,500명을 수용하는 본당은 가로 90m, 세로 45m로 장충체육관 크기다. 하지만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어 어느 좌석에서도 시선이 차단되지 않는다. 또 모든 좌석에서 강대상까지 40m 이내여서 가시거리가 확보되고, 고도의 집약된 차음과 음향장치가 가능하며, 최첨단 고효율 설비로 장소에 따라 온도차를 느끼지 못 하도록 해 쾌적함을 극대화시켰다. 광덕트(sky light)에 의한 자연채광도 도입했다. 강남예배당보다 크기는 3배 이상 크지만 더 아늑하고 일체감을 갖고 예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양(면적)보다 질(성능과 쾌적성)적 성능을 확보 양(면적)보다 질(성능과 쾌적성)적 성능을 확보해 같은 면적이지만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주일학교의 경우 실안에 기둥이 없는 무주공간으로 처리해 실사용의 자유로움을 주었다. 또 각 실의 사용용도에 적합한 고도의 설비시설(난방, 냉방, 환기, 통신 등)을 집중화해 제공, 쾌적한 공간이 되게 함으로써 현재보다 더 많은 인원이 수용되도록 했다. 냉난방 기구를 천정에 부착해 바닥사용 면적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도 동원됐다. 본당이 지하에 있고 많은 인원이 수용되므로 비상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재해시 단시간에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본당을 피난복도로 둘러싸도록 해 어떤 방향으로도 피난이 용이하도록 했다. 화재시 10분 이내에 본당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계단과 출입문을 마련했다. 또한 스프링클러 등 법적 소방기준 이상으로 안전하게 시설을 구비했고 거의 대부분의 자재를 불연재로 하였다. 새예배당은 소통과 개방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유리건물(All Glass)이다. 유리건물은 빛과 조명에 의한 연출이 자유롭고 추후 첨단 신소재가 개발될 경우 변화에 가장 우수한 건물이 될 수 있다. 건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외관 장식만을 위해 설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서초새예배당은 장식만을 위한 설치를 일절 배제했다. 예수님의 손을 형상화하기 위해 필요 없는 수평루버를 설치한 것이 아니라 서향과 동향 햇빛을 일부 조절해 여름철 난방부하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기능상 필요한 루버를 이용, 예수님의 안으심을 표현했다. 

서초예배당은 타 건축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 건축물들은 대부분 지하연면적보다 지상연면적이 훨씬 크지만 서초 새예배당은 지상면적이 40%, 지하면적은 60%를 차지하는 특수한 건축물이다. 또한, 지하에 위치한 선큰가든은 지상에서부터 지하5층까지 약 30m의 수직벽이 거친 자연석으로 마감돼 자연친화적 미와 안정감을 주고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임을 고백하게 한다. 이제 서초 새예배당은 국제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 이곳을 통해 수많은 생명들이 예수님 품으로 올 것을 확신하며 외부의 대소규모 행사에도 아름답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를 비롯한 성도들은 11월 30일 서초구 반포대로 121에 마련한 새 예배당에서 입당감사예배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섬김사역과 세계선교, 복음적 통일운동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서초역 사거리 대법원 맞은편에 위치한 사랑의교회 서초예배당은 6782㎡(2051평)의 대지에 지하 7층, 남쪽 드림센터 14층 북쪽 미션센터 8층 규모로 건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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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를 위한 공간 

사랑의교회는 서초예배당을 교회만의 자산으로 묶어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해 사역과 연구와 모임의 공간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교단의 중요한 행사 개최는 물론, 교계 엔지오(NGO) 단체들의 세미나와 모임 공간으로도 기꺼이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서울 중심에 위치해 있고 교통도 편리해 여러 단체들이 공간사용을 요청하고 있다. 오 목사는 “앞으로 사랑의교회 사역은 예수님만 기쁘게 하고, 주님만 두려워하고,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기를 원한다.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전진하자. 주님을 찬양한다”고 말했다. 강단에 오른 오정현 목사는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HEART’비전을 가지고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에서의 의식의 전환을 해야한다”며,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령공동체를 이루자"고 선포했다. 

2008년 12월 23일 옥한흠 목사는 다음과 같은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이 이번 성탄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다. 그 메시지 속에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을 알면 세상의 어떠한 형편도 우리를 절망으로 끌고 가진 못한다.”
 
이제 탄탄한 섬김의 전진 기지를 마련한 오정현 목사는 옥한흠 목사의 뒤를 이어 제자 훈련의 국제화와 복음적 평화통일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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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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