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0-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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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찬욱 감독과 탕웨이, 박해일의 첫 만남, 그리고 수사극과 멜로극이 결합한 독창적 드라마에 감각적인 박찬욱 감독 연출로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까지 더해져 호평을 받고 있다.


"품격은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 자신감에서 나오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나오는 영화 ‘헤어질 결심’ 에는 “사랑해”라는 대사가 딱 한 번 나온다.


형사 해준(박해일)이 살인사건 용의자 서래(탕웨이)와 사랑하는 내용이지만 정작 그 대사를 뱉는 인물은 서래의 남편 임호신(박용우). 하지만 말만 사랑일 뿐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 반면 해준과 서래는 단 한 번도 사랑을 입에 담지 않지만 서로 지독히도 사랑했다.


처음 경찰서에 간 서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여느 부인처럼 어깨를 움츠린 채 등이 굽어 있다. 하지만 용의자인 서래에게 해준이 수사 용어를 하나하나 풀이하며 존중해 주자 서래는 조금씩 허리를 펴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해준을 만나 존엄성을 회복하는 서래처럼 서로를 꼿꼿하게 세워주는 마음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장면은 "나는 붕괴됐어요"라고 고백하는 해준의 대사가 아닐까. 그전까지 서래와 해준이 느꼈던 감정은 설렘과 끌림이었다. 하지만 이 대사 이후 서래는 해준이 자신에게 느꼈던 감정의 깊이를 그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다. 서래는 이전까지 해준을 범죄에 이용할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 대사가 서래에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완전히 무너지면서까지 자신을 지켜준 거다.


형사인 해준은 서래의 범죄 혐의를 밝히면 형사로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도 있었는데도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어째서 해준은 붕괴될 결심을 한 걸까. 시나리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작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에 관해 쓰고 싶었다. 결국 사랑이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버리면서까지 상대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형사인 해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이다. 그런 해준이 서래를 만나고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을 존엄한 인간으로 만들어줬던 그 직업정신을 버린다. 서래가 살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서래는 생존을 위협받는다. ‘나는 붕괴됐다’라는 말은 곧 당신(서래)의 생존을 위해서 내가(해준) 무너지겠다는 고백이다. 자기 자신이 무너진 이후의 삶이 아득할 텐데도 그마저 감수하는 사랑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해준은 서래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수갑을 채우지 않는다. 대신 서래에게 “아무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바다에 던져 버리라”라고 말한다.


“그 대사에서는 ‘아무도 모르게’라는 말이 중요하다. 두 사람에게 바다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의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다. 가루가 되어 사라진 게 아니라 (이들의 사랑은) 바다에 있다. 결국 그 대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우리의 사랑이 존재하게 해요’라는 뜻이다.”


대사뿐 아니라 해준와 서래의 행동에도 사랑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영화 속에 드러나지 않지만 해준이 직접 서래의 범죄 증거를 인멸해주는 대목을 뽑고 싶다. 형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해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런 자기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해냈을 일이다. 마찬가지로 서래는 해준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죽은 사람의 피를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자신이 직접 살인사건 현장의 핏물을 치운다. 코를 막아가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랑 고백을 주고받았는데 서래는 왜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한 건가.


“무너져 본 적 있는 사람만이 붕괴의 깊이를 상상할 수 있다. 붕괴라는 말을 서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 단어가 사랑을 뜻하는 줄 몰랐을 거다. 서래는 중국에서 어머니를 잃고 국경을 넘으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적 있는 사람이다. 무너지고 부서지는 아픔을 알게 된 순간 서래의 사랑이 시작됐을 것 같다. 진정 나 때문에 어떤 사람이 무너져도 되나,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이런 생각에 도달하면 마침내 내가 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다시 살게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서래는 모든 범죄 증거 그 자체인 자신이 사라져야 해준을 붕괴 이전으로 되돌릴 거라고 믿었다.”


마지막 장면을 본 뒤에야 이 영화가 그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길을 잃고 무너진다. 바로 발밑에 진실이 있고 사랑이 묻혀 있는데 바보처럼 그걸 모르고 평생을 찾아 헤맨다. 인간이면서 총회 소속 목사와 장로인 우리의 손과 믿음에 성경이 있고 칼빈주의 신학이 있는데 총회와 총신이 주일 강단에 '미스 트롯' 맨쇼도 방자하게 올리고 천연덕스럽게 천안문 학살자 등소평을 칭송하는 맨돈 소강석에 얽혀 헤매고 있으니 이제 '헤어질 결심'을 보든 '헤어질 결심'을 하든 해야 하지 않을까.


기업은 중요한 일에 우선 적으로 인력과 예산 그리고 시간을 투입한다. 그렇게 해서 생존과 성장의 길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개인은 인생의 중대사에 무얼 투자하나. 시간과 노력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기로에 서게 되고 어느 길로 갈지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 중대한 문제인 만큼 시간과 노력을 최대한 투입해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눈앞의 일에 쫓기다 보면 중요한 인생사를 시간 날 때 잠깐씩 생각하고 충분하지 않은 고민으로 떠밀려서 정해 버린다. 혹은 타인에 의해 결정과 선택을 당하게 되거나.


내가 목사로서 총신대 21인부터 시작해 총회 국장과 기자로서 총회에서 배운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적어도 인생의 절반 이상 산 후의 선택과 결정은 유불리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성경 말씀 앞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많은 경우 유불리를 고민하며 그걸 기준으로 선택한다. 그래야 할 때가 물론 있다. 하지만 목사와 장로인 우리가 앞으로의 인생도 지금까지처럼 살 것인지 그래도 괜찮으냐는 질문마저 그렇게 대할 수는 없다. 목사나 장로로서 인생의 길을 묻는 문제들을 유불리에 기대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과 자기 인생에 너무 불성실하고 우리가 교회와 노회를 통해 속한 총회를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닐까. 성경은 말씀한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신 30:14-18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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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돈 소강석과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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