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있는 19세기 모자이크-web.jpg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있는 19세기 모자이크

 

 

영국과 천사

 

쪽 곧은 오래된 길이 있다. 그 길을 걷노라면 고목을 만난다. 고목이 전하는 말 없는 소리는 그 어떤 말로도 흉내 낼 수가 없다.

 

장로는 뛰고 선생은 달리고 회장은 날아다닌다. 이번 성탄절에는 퀘퀘묵은 정치꾼들의 풀어진 모습을 볼 수 있을 모양이다. 한 사람만 승자가 되고 나머지는 패자가 될 게다. 그날과 그 꼬락서니들이 눈에 선하다. 해 아래 무슨 새것이 있겠는가.

 

왜 사는 걸까? 그걸 물으며 사는 사람이 잘못된 것일까? 아님 그냥저냥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 온전한 것일까? 도시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이다. 어쨌든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이란 더욱 그래야 될 게다.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는 영국 남부에 선교사들을 파송했던 사람이다. 그가 영국에 관심을 갖게 된 전설이 있다. 어느 날 로마에 있는 왁자한 저자 거리에서 그레고리우스1세는 노예로 팔려고 내놓은 소년들을 보게 되었다. 교황이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저 소년들은 어떤 애들이지?』

『안글레스(Angles) 섬나라 애들입죠.』

 

이 대답에 영국 소년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던 그레고리우스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안그레스(Angles:섬나라 사람)가 아니라 안젤스(angels:천사)겠지.

 

어쨌든 교황은 어거스틴을 영국 선교사로 파송했다. 그 선교사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히포의 어거스틴과 구별하기 위해 캔터베리의 어거스틴이라고 한다.

 

로마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영국 남부에서 활동을 한 반면에 스코틀랜드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북부에서 영국으로 내려가 사역을 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관습과 로마 관습 사이에 차이들이 생겨났다.

 

아드리엔 이센브란트가 그린 성 그레고리오의 미사-web.jpg

아드리엔 이센브란트가 그린 성 그레고리오의 미사

 

한 가지 차이는 수도사들의 머리 깎는 습관에서 드러났다. 제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의 수도사들은 율부린너 마냥 머리털을 면도해 싹 밀어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 물이 귀한 사막이나 수행지에서 훨씬 편했고 머리를 감지 않아 생기는 불결함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면도하는 걸 체발이라고 한다. 이 습관에도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다.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귀에서부터 깎아 성화에 나타나는 후광처럼 작은 머리 뭉치를 남겨 놓았다. 로마 수도사들은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머리털을 아 가시면류관처럼 귀 둘레에 작은 머리털 테를 남겨 놓았다.

 

부활절 날짜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모든 교회가 부활절을 춘분 지난 첫 보름달이 뜬 후 첫 토요일에 지내야 한다는 니케아공의회에서 결정된 관습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근거를 계산해내는 데는 차이가 있었다. 아일랜드인은 오래되고 오류가 많은 월력을 따랐다. 로마인은 날짜 계산에 있어서 보다 정확했다. 아일랜드인과 로마인이 함께 모였을 때 그들은 부활절을 같은 날 지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활습관과 생각의 차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분열과 싸움을 거듭해왔다. 이 문제는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는 그 진리가 평범한 상식이 되기 위해 우리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될 게다.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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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59_ 영국과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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