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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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샘광천교회 이문희 목사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웃음과 웃음소리가 태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1972년 3월 12일 성북구 석관동 소재 건물 2층에서 97명이 창립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해 1973년 4월 23일 박병진 목사가 제1대 위임을 받았다. 박병진 목사는 1924년 평남 출생으로 남산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저서로는 ‘교회정치 문답 조례’, ‘권징 조례-교회재판 편람’, ‘예배와 예식’, ‘교회헌법 대전’ 등 20여 권의 교회헌법 관련 저술을 펴낸 98세 현역 교회헌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 이후 1980년 제2대 윤도영 목사에 이어 1986년 제3대 장정일 목사 때 광천교회 성장의 틀과 토대가 완전히 잡혔다. 평소 선교의 열망이 커 해외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하던 장정일 목사 자신이 선교사로 떠나면서 대학부 지도 부목사 이문희 목사가 1990년 제4대 위임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문희 목사의 목회로 광천교회가 성장을 거듭했다. 1999년에는 한국 최대 장로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4회 총회(총회장 김도빈 목사) 때 광천교회 정동원 장로가 부총회장에 선출되는 쾌거도 있었다. 이문희 목사는 교세에 맞는 지금의 새 성전을 건축하고 2009년 8월 2일 맑은샘광천교회로 개명했다. 이문희 목사는 부임 28년째 되던 2018년 8월 2일 원로목사로 추대받는 날 후임 김현중 목사를 제5대 위임목사로 세웠다. 교인들이 결정한 김현중 목사는 후임 후보 가운데 일인으로 이문희 목사와 일면식도 없는 목사였다. 이문열의 장편 소설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이동영이 말했다. "언제든 때가 오면 나는 맑고 깨끗한 이념, 자유와 평등에 대한 더렵혀지지 않은 열정을 품은 채 이 대지를 떠나겠다." 그렇듯 이문희 목사도 표연히 떠났다. 물러난 뒤 죽기까지 자신이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건물 사무실을 떠나지 않은 조용기 목사와 달리... 이문희 목사가 광천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몇 년 뒤 같은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직원 기독인 회 회원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카이스트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광천교회 이문희 목사님 설교가 좋아 좋은 설교 들으려고 주일마다 강남에 가지 않아도 돼." 2017년 9월 1일 기독신문에 실린 '자살 예방과 교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시론에 그런 이문희 목사 설교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겠다.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 법의 의미는 이제 국가가 직접 자살을 예방하고 사회에 생명존중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를 표명한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불과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약 6000여 명의 생명을 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시무하는 맑은샘광천교회도 지난 4월 부활주일에 생명보듬페스티벌(Life Walking)을 시행했다. 개 교회에서 진행한 행사지만 생명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나누는 행사였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를 부여하면서 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했다. 특별히 안전사고예방 차원에서 경찰서에서 교통 안내를 해 주고 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거 참여시켜 생명의 가치를 나누며 행진하는 뜻깊은 행사를 했다... 교회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그분을 우리 교회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생명의 가치를 이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절망하며 삶조차 버겁게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를 전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는 자살 예방 활동이라고 믿는다. 이 일에 한국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도전하고 싶다." 이문희 목사는 교회 이름을 맑은샘광천교회로 바꾸고 그렇게 실천했다. 샘 (泉)은 지하수가 지표로 흘러나오는 곳이다. 지하를 지나는 동안 불순물이 여과 되어서 광물 성분이 녹아 있는 물이 되고 그래서 샘에서 나오는 물을 샘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지 4년 2022년 3월 12일 설립 50주년이 됐다. 제주도 해풍에 세진듯 흰머리가 안개처럼 자욱한 이문희 목사가 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해 축사를 맑고 잔잔하게 전했다. "축하드립니다. 90여 분이 박병진 목사님과 교회를 시작해 참 많은 수고와 눈물들이 마침내 열매를 맺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저희 맑은샘광천교회는 참 좋은 풍토가 있습니다. 세 분 목사님이 떠나가신 다음에 제가 부임을 했습니다. 전임자가 떠나고 후임자가 올 때는 갈등이 많습니다. 분란이 일어나고 다툼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임해서 보니까 전임 세 분이 모두 교회를 부흥시키셨습니다. 부흥시키지 않은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남겨놓고 가셨고 제가 그 풍토 밑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참 좋았습니다. 목사님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다 오시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상징을 꼽자면 틀림없이 ‘하트’가 첫손에 들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워도 문자에 하트를 붙이거나 손 하트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뭇잎 모양 빨간 하트가 사랑의 상징으로 통용된 건 14세기 초부터다. 그 전까지 기독교 문화권에서 하트는 진짜 심장을 닮은 긴 솔방울 모양으로 그려졌고 이는 예수님의 ‘성심(聖心)’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맑은샘 이문희 목사에게 진심으로 예수님의 성심을 본뜬 손 하트를 보낸다.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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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8
  •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점차 변한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바로 지구가 자전하는 축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은 23.5도 기울어 있다. 이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고, 태양 광선이 지표면을 비추는 일조시간에 햇볕이 얼마나 세게 얼마나 오래 내리쬐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선 일 년을 24절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절기가 찾아온다. 2월에는 입춘과 우수가 있다. 올해의 경우 2월에 설날도 있었다. 설날은 달의 움직임을 따른 음력의 1월 1일이다. 이와 달리 절기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상에서 태양의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돌 때마다 하나씩 해서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준을 세웠다. 그래서 설날은 절기가 아니라 명절이다. 우리는 음력이든 양력이든 모두 달력을 보고 안다. 그러나 자연에 사는 생명체들은 달력 없이도 기가 막히게 시간의 흐름을 알고 저마다 계절에 맞게 적응해 살아간다. 일 년 중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입춘을 지나 나들이를 나서면 땅속에서 솟아 나올 준비를 하는 새싹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고 여린 새싹의 모습이 아니라 이미 꽤 자라 큰 모습의 풀을 만날 수도 있다. 도심에서도 공원이나 화단을 보면 살아있는 풀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시장에 가면 벌써 냉이가 나와 있다. 그걸 보고 ‘벌써 냉이가 나왔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냉이의 내력을 알면 아마 아! 하는 탄성이 새싹처럼 나올 것이다. 사실 봄나물 냉이는 지난해 가을에 이미 돋아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 싹이 돋아서 겨울을 견디고 봄에 자라나 꽃을 피우는 거다. 이런 풀들은 바닥에 붙어 수평으로 나온 잎이 장미꽃 모양이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이라고 부른다. 또한, 잎이 방석같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도 한다. 민들레, 냉이, 달맞이꽃, 질경이와 같은 로제트 식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쉽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그들의 전략은 참 놀랍다. 풀이지만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몇 가지 멋진 작전을 세운다. 첫 번째는 키를 낮추고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작전이다. 줄기가 짧고 잎을 땅에 붙은 듯이 내보내 엎드려서 겨울의 추운 바람을 피하는 것이다. 이때 잎을 넓게 사방으로 뻗어서 적은 양의 햇빛이라도 최대한 받는 게 두 번째 작전이다. 세 번째는 땅에 바짝 붙은 만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을 이용하는 거다. 건강한 숲속 땅이라면 낙엽이나 다양한 미생물들로 인해 온도가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꽤 많은 종류의 로제트 식물은 몸에 잘게 솜털이 나는데 이 털도 추운 겨울을 견디는 데 활용한다.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은 왜 가을에 싹을 내서 힘든 겨울을 견디는 걸까. 다른 식물이 싹을 내기 전에 미리 싹을 내고 있다가 봄이 되어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워서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로제트 식물 대부분은 1년에 두 번 이상 번식하는데 아마도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이 번식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키도 작고 땅에 붙어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풀들에도 이렇듯 놀라운 삶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런데 만약 춥고 힘든 겨울이 없다면 로제트 식물은 어떻게 될까. 겨울이 없다면 다른 풀들도 얼어 죽지 않고 이 시간을 지냈을 것이다. 그러면 애초에 경쟁을 피해 누구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하려던 로제트 식물들은 유리한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추운 겨울이 있기에 대부분 풀은 죽게 되고 로제트 식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련이지만 이 시련을 기회로 삼아버린 로제트 식물. 우리 목사의 삶 또한 이와 같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을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작은 냉이 같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믿음이다. 뛰어난 실력과 엄청난 운이나 타고난 재능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을 이루는 믿음 앞에선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는 2021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전북신학교에 도착했다. 전북신학교는 1971년 3월 25일에 전주 북문교회에서 개교하여 1972년 9월23일 제57회 총회에서 총회 인준을 받았다. 1988년 현 위치인 전주시 삼천동 11,000여 평 대지 450평 본관을 지닌 학교다. 2층 학장실에서 한기영 목사(전주은강교회 총신 84회 61세)를 만났다. 그는 한때 전북을 기반으로 총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김백경 목사(총신 73회)의 혹독한 시절을 잘 견딘 냉이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의 용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내면은 크다. 그래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임이나 공동체를 화합시키고 세우는 조정 역할을 잘 감당해 ‘작은 거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이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리폼드투데이)가 한기영 목사와의 대담을 이끌었다. 1. 제106회 총회 임원 후보로 준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합동 총회의 목사로서 총회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소속감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여러 회 총회를 출입하면서 저에게도 앞서서 총회를 섬길 기회가 오겠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년 106회기는 순환적 임원 구성이 우리 중부호남지역 회원들 사이에 제가 임원 후보로 거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기회가 주어지면 총회 공동체를 위해서 부회록 서기로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합동 총회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임원으로 섬길 기회를 주면 그동안 생각했던 아쉬움과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미력이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섬겨볼 각오입니다. 화평과 화합의 균형추(조정자)가 되겠습니다. 2.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첫째로 부임원으로 섬길 때는 함께 묶인 임원들을 잘 섬기며 좋은 호흡을 맞춰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 믿음의 원리와 상식이 통하는 임원회가 총회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둘째로 우리 총회가 사무 행정을 펼쳐 나감에 있어서 먼저 교회와 노회를 돕고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정직하고 바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함이 옳다고 봅니다. 저는 제 임무를 은혜롭고 덕스럽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총회에 큰 그림을 그리고 회기별 연계성이 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진행해 가자고 제안하고 곁에서 돕고 섬기려고 합니다. 지금의 시대 변화와 현실적 필요를 잘 분석하고 정말 선진 총회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논쟁과 싸움은 그치고 보다 발전적 전략을 수립하게 모든 기관이 통합적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처럼 저는 소박하게 세워주신 총회장을 잘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3. 교단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소견이 있다면? 우리 교단 리더들의 생각이 건강한 개혁주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총신신대원과 신학교들을 다시 잘 살펴서 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솔선해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총회도 이제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섬겨오고 현재도 학장을 맡고 있으면서 생각한 것인데, 이미 있는 좋은 인프라를 잘 활용하여 우리 지도자들을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총회가 더욱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행정과 정치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해주는 총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나아갈 방향과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1) 목회자 수급에 대한 조사와 신대원의 운영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 도시개척교회와 농어촌교회의 목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과감한 혁신을 해야 합니다.(다양한 목회 전략과 좋은 콘텐츠 제공, 자립 방안의 구체적 사례 연구와 적용) 3)목회자 은퇴자를 위해 상설위원회를 설치하여 은퇴를 앞둔 목회자의 처우를 준비해야 합니다. 5.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목회의 위기감이 엄습해 옵니다. 교회의 장래가 염려되는 것을 넘어 교회의 무너짐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여러 가지 교회의 연약함이 더욱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 어려움은 공교회 예배와 주일성수, 모이는 교회와 봉사와 섬김에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청년들의 신앙교육, 전도 등이 어려움으로 다가와 많은 지역 교회들이 소멸할 것 같습니다. 지역 노회들이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여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교회 합병, 교회 연합 등). 6.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저는 오랫동안 교회 개척 사역에 헌신해 왔습니다. 저 자신이 개척하여 섬긴 교회도 있지만 개미목(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후배 개척 목회자들을 다각적으로 섬겨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오랫동안 지방신학교를 이사 임원으로 학생처장으로 실무를 감당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고 미력하지만 돕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교회 세움과 성장 컨설팅을 하고 싶습니다. 제 목회 철학은 골3:23 말씀을 모토로 ‘성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자’입니다. 전주은강교회 한기영 목사 프로필 ◆총회 주요이력 : 현)총회 정치부 서기, 경기북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총회실행위원, GMS이사, 호남협의회 감사총회인준전북신학교 학장. 총회지방신학교협의회 회장. ◆전)제103회 면려부 부장, 평서노회분립위원회 서기, 산서노회조사처리위원회 서기, 대구동노회조사처리위원장, 학원선교위원, 개혁사상특별위원, 전북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호남제주지역노회장협의회 회장, 제105회 총회준비위원회 자문위원 ◆사회기관 : 개척미자립목회성장연구원 원장, 사)나눔과기쁨 전북상임대표, 전주시장로교연합회 선임회장 전주완산경찰서 경목위원 ◆학력 : 경기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북신학교 대학부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84회 졸업, 칼빈대학교 대학원(Th.M) 플러신학대학 대학원(D.min) 작은 거인 한기영 목사 같은 믿음의 목사들은 시련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티며 실패에서 배우고 끝까지 해내며 마침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제104회 총회장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처럼 손에 넣는다. 그렇듯 목회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가지는 바로 믿음이다. 교회를 살리는 목회와 총회를 세우는 정치에 있어 실력과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믿음이 약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돌아오는 길은 서설(瑞雪)인 듯 눈이 드문 전주임에도 큰 눈이 내렸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1-4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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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5
  • 살림 이종석 목사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는 물음에 이종석 목사는 이런 뜻의 대답을 했다. “아들이 목사가 되겠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 잠깐 하늘과 땅이 기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년 10월 16일 - 1900년 11월 30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가는 곳마다 행복이 되고,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이 된다 Some cause happiness wherever they go. Others whenever they go.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살림’이란 ‘사람을 살린다’는 뜻이다. 즉 ‘살림을 잘 한다’는 말은 ‘사람을 잘 살리고 있다’라는 말이다. 예로부터 한글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말은 ‘돈을 많이 아꼈다’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은 은덕을 잘 쌓았는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개의 가정은 '살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남편은 무턱대고 돈을 아끼는 것을 살림으로 착각하고 있고, 아내는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만을 살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하게 맺은 부부의 인연까지 흔들리고 있다. 살림은 여자만 하는 것도, 남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남을 잘 살리는 일은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돈만으로는 남을 살릴 수 없다. 우선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해 교인의 삶을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에게 살림은 가정을 잘 살리는 일이고 동시에 내 교회를 잘 살리고 잘 다스리는 일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의 살림을 잘 해야 인생의 살림꾼을 넘어 믿음의 살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종석 목사는 살림꾼이다. 의사가 돌보던 어떤 환자는 임종 직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가까이 오자 “내 돈 2억 갚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환자들은 “10년 더 살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의사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곤 한다고 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총신언론인회 회원사(더굳뉴스, 리폼드투데이, 좋은신문, 합동투데이)는 신년을 맞이하여 제106회 총회 임원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을 차례로 인터뷰하고 있다. 세 번째 순서로 부서기에 도전하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를 만나기 위해 2021년 2월 2일 11시 광교제일교회를 찾았다. 총회 두루 발길이 닿는 박철수 목사가 평생 동지 이종석 목사(총신 80회)를 돕기 위해 함께했다. 총신언론인회 회장 최장일 목사가 대담을 이끌었다. 1. 금년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은 교회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고 교회 또한 세상을 향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 조사를 보면 우리 교단 내 목사님들이나 총대들도 현 총회 운영에 대해 신뢰보다는 불신이 더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원인일까요? 그것은 법과 규칙의 자의적 해석 때문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도 흔히 들립니다. 부족하지만 법학사로서의 지식과 총신인으로서의 신앙 양심을 통하여 총회를 좀 더 깨끗하게 섬겨보고 싶고, 특히 약자의 편에 서서 저들의 소리를 듣고, 총회 안에 억울한 사람이나 노회가 없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임원으로 출마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웃사이더(outsider)에게 비난은 할 수 있지만 세워 가는 일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총회 임원이라고 해서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한 욕심 내지 않겠습니다. 할 수 없는 약속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물으셨으니까 적어도 이 세 가지는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 총회 화합입니다. 먼저는 임원들 간에 화합을 도모하는 일을 위해 나 자신을 내려놓고 섬기겠습니다. 총회장님을 비롯해 임원들 상호 간에 협력하고 잘 도우면서 일을 하겠습니다. 서기 일을 하다 보면 각 노회에서 올라오는 여러 사건이나 서류를 접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법과 규칙을 따라 물 흐르듯 하는 행정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힘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대들에게 나서는 일보다는 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총회가 끼어들어 노회나 개 교회의 일을 더 큰 문제로 만드는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는 분쟁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해결의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지 오히려 문제를 재생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 2). 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작금 한국 교회는 예배의 위기 앞에 서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예배에 대한 바른 지침이 별로 없습니다. 당장 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에 대한 우리 총회의 명확한 기준이나 입장 표명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총회 임원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교단 내 교회를 지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예배의 회복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고른 인재의 등용입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 총회를 보면 늘 그 인물에 그 인물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경험과 경륜이 중요하다 보니 쓰던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인물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각 위원회나 특별 위원 배정을 할 때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 찾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능한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야말로 임원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편향된 인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선거에서 같이 경쟁했던 인물이라도 유능한 인물을 고르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3. 교단 차원에서 시급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뢰 회복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떤 일도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의 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던 은급재단 문제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총신 문제도 결국은 서로가 믿지 못함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지금 총회 회관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 이전이냐를 두고도 많은 논의가 있고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 일도 모든 총회 구성원 간에 믿음이 없다면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선관위도 그렇고 재판국의 판결도 그렇습니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총회 임원회도 총대들에게서 신뢰를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신뢰 회복이라는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믿음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약속한 것은 손해가 나도 지키고 서로가, 아니 총회 임원들부터 지도자들이 먼저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우리 합동 교단은 정말 큰일도 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코로나 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 되는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교인 수의 감소일 것입니다. 아마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회복 되어진다 해도 많은 수의 교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헌금의 감소로 직결될 것이고 그 여파는 여기저기서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나아가 예배 형태도 많은 변화가 올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이미 많은 성도들이 비대면 예배라는 달콤함에 맛 들어 버렸습니다. 온라인 예배, 방송 전파를 통한 유명 목사님들의 예배가 한국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서는 아무래도 교회의 주일학교일 것입니다. 어른들보다 더 심각하지요. 다음 세대가 걱정입니다. 이를 어떻게 다시 세울지 많은 기도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우리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하고 싶었고,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새벽 기도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지시보다는 솔선수범하고, 섬김의 목회를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지금도 역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 절대 주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 여생은 한국 교회를 위하여 조그만 보탬이 되고 싶고, 정년이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 아내와 함께 시골 교회를 섬기며 조용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허락된다면 구약성경 공부를 위한 책을 써 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6.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녀교육이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교육이라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잘해줬어요. 지금 딸은 결혼해서 초등학교 4학년 되는 아들과 일곱 살 아들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지금 현재 목사입니다. 제가 개척하는 걸 다 본 아들인데 홍익대 사범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가서 3학년 때 군대 다녀와서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중국 우루무치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가서 선교사님 자녀들 교육도 하고 선교사님도 도우면서 선교를 좀 배우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것도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일테니까 그래서 보냈습니다. 한 6개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루무치 현지 대학에서 언어 공부도 했습니다. 6개월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온 김에 6개월만 더 있다 오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1년을 갔다 오더니 저한테 ‘대학 졸업을 하고 신학을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한 번도 신학을 하라는 말을 안 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너 신학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정말 가서 보니 선교사들이 너무 어렵고 힘드시더라. 그래서 한국에 있는 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후원하느라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선교사들이 정말 선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국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일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 나중에 선교사로 갈 생각이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자기는 선교사 스타일이나 체질이 아니고 자기는 선교사를 보내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겁니다. 네 뜻이 그러면 한번 공부해 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홍익대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갔는데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저 제주도에 가겠습니다.’ 왜 제주도에 가느냐 했더니 제주도의 작은 교회가 교육전도사를 구하고 있는데 교육전도사를 못 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게 너한테 좋은 기회일 수 있다며 허락했습니다. 제주도를 가니까 교육전도사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여기 광교에서 김포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갑니다. 그리고 교회까지 버스로 가는 겁니다. 주일날 교회 사역을 하고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오는 겁니다. 그걸 한 1년, 저 녀석이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 하고 나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 아무래도 제가 떠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졸업하고 김종준 목사님의 꽃동산교회 부임해서 초등부를 맡아 1년 하고 사랑의교회로 갔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지금 4년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했는데 제 며느리도 총신신대원 졸업했는데 둘이 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녀교육에 대해 특별한 것은 없는데 아이들이 볼 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본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죠. ‘좋은신문’의 지용길 목사가 말을 거들었다. “삶으로 다 보여주셨네요.” 최장일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 다 하셨네요.” 일동 웃음. 이종석 목사가 말했다. “은퇴준비를 말씀하시는데 세상 적으로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습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뭘 가지고 교회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척하러 올 때에도 제가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고 와서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하고 중도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해주셨습니다. 그때그때마다. IMF 만나 여기 땅을 사러 올 때도 교회 건축하는 것도 돈이 있어서 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뭔 돈으로 할 거냐,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때도 그랬습니다. ‘나도 무슨 돈으로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셨고 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하니 되더라고요. 새로 이 교회를 지을 때도 그 당시 적립된 돈이 잘 해야 한 2억 정도였습니다. 그건 설계비 정도밖에 되지 않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다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 그러다 큰코 다친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셨으니까 절대로 잘못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은퇴준비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설날 아침, 주위를 둘러보면 북적북적 마주 앉은 친지들,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 식당과 영화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보이리라 믿는다. 일 년 뒤 오늘의 모습은 일 년 전 오늘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꿈만 꿀 것인가, 꿈을 이뤄낼 것인가. 작가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에서 ‘오늘의 작은 변화가 내일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썼다. ‘당신은 꿈을 위한 작은 변화를 시작했나요.’ 그날의 빛... 광교제일교회 예배당에 들어선 순간 벅차오르던 잔잔한 감동을 잊지 못한다. 1월 한낮의 태양 빛이 벽에 뚫린 창틈으로 들어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양식의 예배당을 비추고 있었다. 처음엔 투명한 빛이었다가 틈새 사이로 흔들리는 조명 빛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인류가 세운 모든 종교 건축의 지향점이 똑같지 않을까. 신성하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공간, 그러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의식을 행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건물. 인도의 아잔타 석굴부터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까지 수많은 종교 건축물이 신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모든 게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새로운 기준이 된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 건축에도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예배를 드리되 접촉은 피하기, 2m씩 떨어져 앉기... 바이러스 전파는 최대한 막아내면서 '믿음'과 '신앙'이란 목적을 담아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새 건축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지. 건축가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 이종석 목사 프로필 총신 신대원 80회 졸업 총회 정치부장(제102회기) 총회 특별 재판국원(제104회기) 총회 특별위원회 위원장 및 실행위원, GMS 이사 역임 현 기독신문 이사 한장총 부흥사회 제34대 대표회장 재경영남교직자 협의회 상임회장 AGM(아시아 복음 선교회) 상임회장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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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4
  • 대나무 한종욱 목사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대나무는 곧고 높아진다. 대나무는 이름에 나무가 들어가 있어 나무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라 풀 종류에 속한다. 풀과 나무를 가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단단한 부분(목질부)이 있느냐, 또 하나는 형성층이 있어 부피 생장을 하느냐다. 대나무는 단단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형성층이 없다. 이 말은 키는 커지지만 굵어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나무의 구조와 나이테를 이해하면 바로 감이 올 수 있다. 식물의 ‘나이테’라는 것은 옆으로 성장하면서 계절의 차에 의해 생기는 흔적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으니 나이테가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곧고 높아질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나무는 불에 타도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1년 우리는 전 세계적 감염 위기를 만났다. 하지만 더 자라고 단단해졌다.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면서도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제퍼슨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직(Honesty)을 최선의 정책으로 중시했다. 그렇듯 리더의 말이 신뢰를 얻으려면 정직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조국 사태에서 정직과 거리가 먼 위선과 이중잣대의 심연을 봤고 추미애를 통해 말이 굽은 독선과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를 목도했다. 이런 시대 우리 총회에 대나무 같은 모습과 성정을 닮은 인물이 있다. 그는 1994년 4월 22일 군산노회 등대교회를 개척해 26년째 주민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신장염에 걸렸다. 그 병의 치료 과정은 그를 믿음과 목사의 길로 이끌었다. 군산에서는 ‘거리의 전도자’로 유명해 오가는 택시 기사들이 그에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는 제102회 총회 상비부 사회부장 역임한 한종욱 목사이다. 2021년 1월 26일 오전 11시 인천 영종도에 있는 웨스턴 그레이스호텔에서 제37회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육수복 목사가 취임했다. 그 모임의 식사 뒤 오후 1시 12분 제106회 총회 부서기 후보 출마 예정자 한종욱 목사(58)와 ‘총신언론인회’가 회장 최장일 목사의 사회로 공동 인터뷰를 했다. 아름다운 바다의 밀물이 서서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호텔 로비 창가였다. 1. 금년에 제106회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합동총회 임원이 된다는 것은 ‘예장합동 산하 전체 노회와 교회 및 기관’이라는 하나 된 교회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체로서의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가 되는 것입니다. 총회의 임원이 되려는 뜻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함이며, 총회라는 보다 큰 “교회”를 통해 전국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또한 전북기독교총연합회 상임총무, 군산기독교연합회사무총장, 군산시장로교연합회 회장, 전북장로교연합회 회장 등 지역교회 연합운동의 경험으로 총회에서도 각 교단과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고 아울러 본 교단의 위상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합니다. 제가 임원이 되면, 기능적으로 총회의 행정과 역량을 강화하고 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열정을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에 소명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총회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만일 임원으로 당선된다면 임기 중 꼭 하시고 싶은 일 세 가지는? 저는 부서기로 출마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당선하게 된다면, 제게 주어진 직무에 집중할 것입니다. 교단 헌법이 제시하는 바를 따라 총회가 위임해 준 사항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 총회 행정시스템의 현대화.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정보를 지니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공과 실패의 관건입니다. 즉 정보와 처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현대를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행정시스템 자체의 개편과 그것을 뒷바침하는 전산정보시스템의 구축을 비롯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관리 방안까지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이 운영자 중심의 즉흥성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총회의 행정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총회의 시스템이 운용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인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단 내의 모든 인재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2) 교단 내 각종 분쟁의 최소화와 신속한 해결 교단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전쟁터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분쟁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총신 사태가 그러했고 각 교회 및 노회의 분쟁이 그러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기독신문의 갈등도 있습니다. 지금 화해조정위원회가 있고 또 헌법자문위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특별위원회들이 만들어져서 분쟁을 해결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원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진 자리를 통해서 각종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며, 최소화하고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그것을 총회의 분쟁관리 매뉴얼로 확립하고 싶습니다. 3) 교단 내 목회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수립 초기에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은급재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지만, 납골당 사태가 발생함으로 어느 누구도 은급재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단 산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안정적 생활기반 위에서 소신 있는 목회를 해가며,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교회미래자립위원회에서 미자립교회에 재정적 지원과는 별도로 농촌에서는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땅을 무상으로 빌려서 화초, 건강식품 등을 무농약재배, 유기농산물 재배하여 도시교회와 연결하여 서로 상생하는 것을 구축할 것입니다. 도시교회 미자립교회는 바리스타, 컴퓨터 강사, 디자인 강사, 개인특기조합을 결정하여 틈나는 대로 소득을 올려 스스로 일어서도록 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교단 적 차원에서의 대사회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거나, 교단 산하 지교회들이 효율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한 교육과 활동,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시스템의 구축(대사회적 복지재단운영), 교단법의 제도적 발전과 권징 체계의 개편을 위해 교단신학교에 교회법전문대학원 개설 등과 같은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3. 합동교단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교단은 대한민국 최대의 교단이며,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선도해야 하며, 또 한국사회를 향해 기독교적 가치를 선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예배회복을 위한 회개와 성결 운동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회개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대단한 일을 이룬다고 해도 회개가 없다면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불과합니다. 목회자들이 경건을 회복하고, 당회가 경건을 회복하고, 교단의 모든 지도자가 다시금 경건을 회복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다시금 교단과 교회를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4. 코로나19로 인한 교회들의 변화로 실감되는 것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여야 하는 교회가 더 이상 모일 수 없게 되고,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간접적 만남을 추구할 뿐입니다. 다행히 현대적 기술의 발전으로 실시간 방송 예배, 또는 줌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활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코로나19는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예배의 회복과 대사회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코로나는 유튜브를 통한 영상예배와 줌을 통한 교육 등 단지 교회의 시설물에 갇혀 진행되던 모든 것을 보다 폭넓게 열어두었으며, 동시에 영상 기술의 활용을 통한 교회 교육의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을 통해 교육과 선교사역에서 더 큰 발전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5. 평소에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목사들을 돕고 싶다.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주민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여 개방하고, 주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길거리 전도를 수년간 해왔고, 지금은 맨투맨으로 전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윈윈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에 꾸준히 협력과 봉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 여생에 하고 싶은 일은 전도입니다. 전국 5일장 마다 다니면서 생선도 팔고, 복음도 전하면서 지역에 맛있는 것도 먹고 전국을 다닐 것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십자가가 굳게 서고, 복음의 깃발이 휘날릴 수 있다면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김준곤 목사님이 주장하셨던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건강비결을 물었다. 그는 새벽기도가 끝나면 헬스장에서 2시간가량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평생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대나무 같은 어조와 꼿꼿한 자세로 말했다.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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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9
  • 영광대교회 김용대 목사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진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윤동주는 노래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 도입부는 일본 문학 도입부의 정수라고도 불린다.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의 눈으로 바라보는 공간 묘사를 수행의 간결체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여유롭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설국’이라는 작품의 배경을 독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래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조에쓰선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면 펼쳐지는 그곳은 일본의 니가타(新潟)현이다. 해발 2000m가 넘는 에치고산맥을 넘어가는 길을 작가는 ‘국경을 넘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동해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은 에치고산맥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눈을 쏟아낸다. 니가타는 하룻밤 새 1m가 넘는 눈이 내리는 대설지역이다. 눈(雪)은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 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다. 남극·북극의 두터운 얼음층과 빙하는 오랜 기간 눈이 쌓여 형성되었다. 눈은 여러 가지의 결정이 단독으로 내리는 경우와 여러 개의 결정이 붙어서 눈송이가 되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송이로 된 눈을 함박눈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 때 내린다.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는 습한 대기에 있는 미세한 물질들이 눈을 생성하는 핵의 역할을 한다. 미세한 핵에 달라붙은 수증기가 얼면서 눈 알갱이가 되고 주변의 수증기들이 계속 달라붙어 결정이 커지게 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 같은 경우 물론 저기압 또는 전선에 의해 눈이 오기도 하겠지만 대기 온도와 해수 온도 경도가 발생하여 생기는 해기 차이가 대부분 서해안에서 내리는 눈의 원인이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도 원래 三白(삼백)이 으뜸이라고 했다. 삼백이란 눈(雪), 소금(鹽), 쌀(米)이라고 한다. 전남 서해안에 눈이 내리면 적설량이 가장 많은 곳이 영광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1월 3일 전남 영광의 영광대교회 앞엔 아무 표정 없이 눈이 소금과 쌀처럼 하얗게 수북했다. 영광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었다. 1905년 5월 7일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의 전도 열매로 영광읍 무령리에 세워진 영광대교회는 설립 116년 되는 교회다. 한국교회 역사의 초창기 기억부터 소중히 간직한 교회에 시무하는 김용대 목사는 2009년 7월 1일 부임했다. 2021년 1월 3일 영광대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비대면 예배라 20명만 참석하는 데 감사원의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총회 감사부 오광춘 장로의 배려로 다른 분을 내려오시게 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 준비 찬송이 끝나고 김용대 목사가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된 강단에 섰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오늘 새해 첫 주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성탄 무렵 어떤 분이 제게 글을 보냈는데요. ‘성탄절을 맞이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렇게 방역지침이 확대되어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인지 무엇인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장을 했습니다. 코로나든 전쟁이든 기근이든 무엇이든 성탄절의 기쁨을 바꿀만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도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주일은 코로나든 전쟁이든 지진이든 기근이든 그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주일의 의무와 감격과 기쁨과 은혜를 덮을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각 처소에서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 그 무엇도 덮을 수 없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님들만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은혜가 새해 첫 주일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 같이 묵상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르간 전주가 ‘만세 반석 열리니’로 예배의 문을 묵직하게 열었다.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김용대 목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소강석 총회장의 활동 범위가 제약을 받는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소강석 목사님이 활동을 많이 하셔야 되는데.” 김용대 목사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우리 소강석 총회장은 내가 볼 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끌어내시더라고요. 어찌 됐든 소 목사님은 활동적인 분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됩니다.” “그렇죠. 그게 좀 아쉽다는 거죠.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어서 제한된 가운데 하시긴 하지만...” “그게 좀 아쉬워요.” “가장 능력있는 분이 가장 어렵게 됐어요. 교단이나 교계에서도 바람직한 일인데... 하나님 뜻이죠.” “그러고 보니까 식사대접도 못 하네. (사모님에게 뭐라 말한다.) 어허 세상에.” “차 한 잔이면 되죠.” “어허 이거 어쩌지. 많이 드시지도 않지만.” “말씀 받았잖아요.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오셨다.) 저한테도 필요한 말씀이었는데.” “광주에도 큰 교회들이 많은데 시골까지 오셔서.” “시골이 아니라 영광대교회에 김용대 목사님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진 기본적인 신앙과 자원이 있는데 저는 제 앞에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거의 그럽니다. 안 그러면 화병(火病) 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는 지난번 한 번으로 족하다 정리가 됐었는데 우리 오광춘 장로님이 엄청 서운했던 거 봐요. 우리 지역에는 같은 노회 한기승 목사님 계십니다. 2년 뒤에는 차례가 돌아오죠. 2년 전에 한 번 도전해서 물론 후보도 못 됐지만, 그것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니까 가려지더라고요. 그때 어려웠잖아요. 정치 공학적인 어려움이었죠. 저는 한 번도 누구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돌아와서 내가 마음속에 약속한 것은 우리 교단 안에서 할 일이 있다면 겸손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재작년 2년 동안 아주 많이 부름을 받아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그래도 말씀 사역 기회를 하나님 주셔서 감사하고 그걸로 교단을 섬기니까 그것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보면 교단 정치를 현실적으로 뛰어다니는 소모적인 부분도 많잖아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을 정의하는 가치로 기회, 안전, 자유, 존엄성, 존중, 명예, 그리고 진실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국인, 특히 헌법을 존중하고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선서한 지도자들은 진실을 수호하고 거짓을 물리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풍운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평생 불운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이든 편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늘 털고 일어나 한 걸음 전진했다. 바이든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1917∼2010)이 심어준 긍정의 신앙 덕분이라고 미 언론들은 평한다. 바이든 여사는 아들 조가 어린 시절 말더듬증으로 인해 “모스 부호처럼 말하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할 때 “머리가 뛰어나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29세 때 상원의원에 당선된 후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는 말씀에 근거해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주님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 그의 시련은 이어졌다. 1988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무렵 유세 후 쓰러졌던 바이든은 그 자신도 뇌혈관 부종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다. 가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 준비까지 하던 위급 상황이었다고 에번 오스노스는 최근 펴낸 ‘조 바이든’ 전기에 기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가 우려됐지만, 말더듬이 시절 어머니의 격려를 떠올리며 이겨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때 “어머니는 정치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누구도 너보다 뛰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도 너보다 못하지 않다.”라는 어머니 말씀이 도덕적 나침반이자 정치의 좌표가 됐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자택 주차장을 별채로 개조해 말년의 어머니를 모셨다. 2010년 어머니 별세 때 애도 성명에선 “헌신은 최고의 가치이며 신념은 어려운 시대를 견디게 한다는 어머니 말씀 덕분에 세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을 앓던 장남 보를 가슴에 묻으며 더 큰 절망에 빠졌다. 그때 주변에선 “시련이 바이든을 더 결단력 있고 더 겸손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리고 5년 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꺾고 미국을 치유할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뒤 더욱 단단한 믿음의 낮아짐으로 견딘 덕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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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1
  • 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홍해 사건은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 듯 고요 그는 호수에 파문 일 듯 입 열어 보수교단은 나날이 퇴색되는 보수 신앙 기치 다시 세울총회 보수 아이콘 이영신 목사 코로나 팬데믹 총회 총신 혼돈해결할 총회 지도자로 필요 절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간절한 바람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 마음에 오래 갇혀 있던 기도가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바람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쉬엄쉬엄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월의 나무들은 수락산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아주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하얀 빛이 된다. 1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바람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바람 하나 있음을 안다. 2018년 12월 16일 11시 30분 양문교회 예배는 이영신 목사가 내 자신 젊었을 때 듣던 보수의 아이콘 김창인 목사처럼 설교를 하는 설교자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1970년 시작된 양문교회의 원우연 목사와 서공섭 목사를 이어 2004년 11월 7일 부임한 제3대 목사다. 그는 본문 출애굽기 14:26-31을 봉독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성가대 찬양의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 후 이영신 목사는‘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회중은 무엇을 기다리는 듯 고요했다. 그는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묻는다면 ‘일상생활에서 감탄하는 습관을 길러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말했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감탄하게 되면 그 안에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공감하는 마음 어린아이 같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게 별 것이 되고 그래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감탄할 거리를 찾아서 감탄해보신다면 행복해지실 겁니다. 저는 주초에 아내와 예술의전당에서 서울모테트합창단(Seoul Motet Choir)이 연주하는 ‘메시아’ 전곡 연주를 관람했습니다. 그 후 3부 53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 시간이 장장 두 시간 삼사십 분 되는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하루에 한 번 이상씩 어제까지 들었습니다. 정말 헨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메시아’라는 오라토리오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절대로 처서는 안 될 곳에 장막을 치고 뒤에는 애굽의 바로가 600대의 정예 병거를 앞세우고 추격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외쳤습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어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까 하노라 하지 않았느냐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인을 섬기며 사는 게 더 낫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도자 모세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에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모세가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던 것 같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 붙잡고 그 모든 상황을 여호와께 아뢰며. 지도자로서 간절히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향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부르짖지만 말고 행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부르짖고 있을 때만 아니고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혼의 호흡 같은 게 기도이기에 늘 기도해야 하고 또 위기를 만났을 때는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고 행동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 행동해야 합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있다가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에서 포로임에도 왕의 큰 신임을 받고 있던 느혜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 성과 동족에 관한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에 돌아가 무너진 성을 건축하고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역시 포로로 붙잡혀 가있던 시절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로 유대인 전체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모든 동족과 함께 사흘 밤낮을 기도한 후 ‘죽으면 죽으리이다’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하수에로 왕 앞에 목숨 걸고 나아갔습니다. 그처럼 기도했으면 지금은 부르짖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키면 바다가 갈라질 것이고 그러면 백성은 마른 땅 육지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전쟁의 최고 지휘관이시고 사령관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지도자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그대로 수행만 하면 됐습니다. 이어지는 17절에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여러분 이 말씀에서 누가 주어입니까. 바다가 갈라지게 만들고 애굽의 병거와 마병을 따르는 바로의 모든 군대를 수장시키고자 했던 분이 누구이십니까. 내가. 내가. 하나님. 애굽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들어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리하여 바로와 그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18절 또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갔던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다 죽게 될 때야 그들이 하나님이 여호와 참 신이신 줄 알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직후였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뒤로 옮겨갔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하나님의 사자는 미디안 광야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던 그 여호와의 사자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시기 전의 성자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뒤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자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섰습니다. 어떻게요. (회중은 미동도 없이 강단을 주목했다)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쪽은 대낮같이 밝았지만 애굽 진영 쪽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흑암이 깊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래야 할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 사이 모세가 바다를 향해 손을 내미는데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잡은 손을 내민 것은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닷가 해변에 물이 빠지고 나면 진흙투성이 개펄이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아시는 하나님께서 큰 동풍이 불게 하시어 바다 한 가운데가 갈라져 물이 물러가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진흙투성이 바닥이 육지처럼 마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 사이 물은 그들의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애굽 군대가 그들의 뒤를 추격해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 사이에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동 트기 전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혼비백산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어렵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소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친다.’ 그들 입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들 밑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노예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과의 싸움이라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줄행랑을 치는 길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비하히롯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말씀하실 때도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투루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회중 아멘) 다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자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었습니다. 역시 이 장면에서도 하나님이 총지휘관이셨고 모세는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새벽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습니다.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애굽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장정만 60만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넜지만 바로와 그가 이끄는 강력한 애굽 군대는 하룻 밤 사이에 바다에 수장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 큰 일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종 모세를 굳게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함께하시면 바다 한가운데도 마른 땅처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중 아멘) 바닷가에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자 애굽 사람들은 길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그곳에 진을 치게 되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애굽 군대 칼에 죽게 하느냐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는 경외를 받으셨습니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셨습니다.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말씀하심으로 태초에 땅과 바다가 생기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큰 동풍을 불게 하사 바다를 가르시고 그 한가운데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는 것쯤이야 왜 못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쯤이야 어떻게 못하시겠습니까. 만들기도 하셨는데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인 진퇴양난의 상황에 하나님의 백성이 처하게 되면 그 바다를 가르시던지 아니면 바다 위를 걷게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다를 반드시 통과한 다음 가나안 복지 들어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회중 아멘) ... 천지를 창조하신 인류의 생사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얼마든지 능력과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행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지은 죄를 모두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쉴 새 없이 중보하고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고 그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중 아멘) 그 진리를 깨닫게 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면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될 것입니다. 그 기적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이영신 목사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사건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로부터는 영광을 얻으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모세는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더욱더 리더십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고도의 전략이라고 갈파했다. 이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전략의 출발은 '여기가 어디고 지금이 언제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앞의 것이 '지리(地理) 감각'이고, 뒤의 것이 '역사 감각'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아는’ 것도 이 두 가지 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한 지리 감각과 역사 감각을 잃으면 홍해에 수장된 애굽 군대처럼 될 것이다. 보수의 아이콘처럼 말씀을 전한 이영신 목사가 지향하는 ’보수의 메시지‘는 기득권 옹호, 기복 신앙, 수구적 사고가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신앙적 삶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에 반하는 풍조에 대한 이런 말이 있다. ‘사회주의자는 (정권 장악에)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주의는 (국민을 고루 배부르게 한다는) 목표 달성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래서 기독교를 폄하하고 경제를 어렵게 하는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지금 나라 형편이 아주 어렵다. 세계 모든 개발경제학 교과서에는 ‘한국 성공’과 ‘북한 실패’ 스토리가 체제(體制) 간 우열을 비교하는 대표 사례로 실려 있다. 한국은 이와 정반대로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부인하는 북한을 호도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다. 한국 보수교단인 우리는 나날이 깊어가는 국민의 이런 시름과 걱정에 희망의 출구(出口)를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 활로(活路)를 위해 이영신 목사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전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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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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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의 정치인 안상수
    안상수 의원 1946년 태안군 출신 기독교 정치인 하나님 영광을 위해 정치는 그만둬도 믿음 생활은 그만둘 수 없을 것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인용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인양 결정 3월 23일 아침 신문 뉴스 세월호 인양 예부터 한국인의 큰 관심사는 정치이다. 이제 큰 선거들이 다가오니, 정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 내내 밤중 내내 모든 일은 모두 정치이다. 정치가 번창하는 가운데에도 사람들은 죽고 동물은 죽고 집들은 불타고 들녘은 황폐해져 상황은 정치적이지 않던 태곳적과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햇빛 밝은 아침 강가의 나무 밑에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중대한 사건이 아니어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덧없이 지나가는 순간에도 많은 과거가 있다. 강물은 상류로부터 내려오고 구름은 바람에 불려 왔다가 다시 불려 간다. 강기슭의 자갈도 돌아든다. 개미와 풀밭과 물결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그 나름의 모양과 인과가 있다. 그래서 세상의 아름다움은 고통과 슬픔에 대한 위안이다. 또한 정치는 시한폭탄이다. 15시 30분에 터지게 되어 있는 폭탄이 장치된 장소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사람은 40초를 남겨 두고 일단 나왔다가 안경을 찾으러 들어간다. 그리고 증오처럼 폭탄이 터진다. 사람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것에는 나쁜 것이면서도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 있다. 증오가 그것이다. 증오는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 쉽다. 증오는 사람을 열광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물을 타고 넘을 수 있게 한다. 증오는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그것은 한밤중 찬란한 불꽃을 만들어내고 장밋빛 새벽에 폭발하는 거대한 폭탄을 만들어낸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정의도 그것으로 힘을 얻는다. 작은 것들이 삶의 내용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러니는 그것들을 지탱하는 정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작은 것들의 옹호가 바로 정치를 위한 교훈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영문도 모른 채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과거의 세월처럼 떠올라 모든 것이 정치가 된 이 시대에도 이런 아이러니는 믿음의 교훈을 가지고 있다. 3월 23일 아침 신문을 펼치니 세월호를 인양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바닷물에 살짝 잠긴 세월호의 옆면 사진이 보였다. 시커멓게 물때가 끼고 녹슬어 있었지만, ‘SEWOL’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배는 바다 속에 1073일이나 빠져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연대표(timeline)와 역사(history)의 차이가 세월호처럼 떠올랐다. 사실 나는 2014년 4월 16일 그 배로 제주도 이도교회 김성욱 목사를 인터뷰하려고 가족 동반 예약을 했다가 한 주 연기해 화를 면한 믿기 어려운 인연도 가지고 있다. 연대표에서 사건들은 독립적으로 기록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했고 또 같은 날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인양 결정을 내렸다고 연대표는 기록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독립적인 사건들을 서로 연결해 인과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오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인과관계를 알아내는 데 대단한 통찰력이 필요하진 않다.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어로 ‘공통 감각’(common sense)이라고 말할 때의 상식(常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 앞에서 의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충돌 등 외부 요인이 없는 한 여객선은 침몰하지 않는다. 종이배도 아니고 항해하다가 넘어지는 배라니 상상할 수도 없다. 만에 하나 침몰한다고 하더라도 구명정도 있고 탈출 시간도 충분하니 승객들은 대부분 구조된다. 완전히 배가 뒤집어질 때까지 객실에서 대기하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대규모 참사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정부의 모든 역량을 구조에 집중하라고 신속하게 지시한 뒤 상황을 점검할 것이다. 우파든 좌파든 내성적이든 외향적이든 그게 대통령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의 일을 하기 위해 기도하는 정치인이 있다. 그는 안상수 의원(자유한국당)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 나온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장로교 신자이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감리교 신자였다. 미국에서는 아직 대놓고 무신론을 표방하는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우세한 힐러리를 누르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안상수 의원이 인천시 시장이던 시절 사귀어 잘 아는 사이다. 어쨌든 마르틴 루터(1483~1546)가 1517년 10월 31일 오후 2시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교회의 대문에 면죄부(indulgence)의 문제점을 지적한 ‘95개 논제’를 붙여 종교개혁을 촉발하지 않았다면 장로교도 감리교도 없었을 것이다. 공항 선교의 대부 김길수 목사(함남노회 주예수사랑교회)의 소개로 3월 15일 2시 30분 안상수 의원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로 인사를 나누자 내가 기독교 기자라는 걸 배려한 듯 안상수(安相洙, 1946년 5월 28일 ~ ) 의원의 첫마디는 이랬다. “제가 자유한국당의 말하자면 국회신우회 회장입니다. 우리는 그걸 기독인회 회장이라고 하는데 그걸 위촉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남대문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계기가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입주 가정교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어머니가 교회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주급을 주셨는데 교회 다녀온 것을 확인한 뒤에 그것을 주셨습니다. 참 덕스럽고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그분 덕에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간 신앙생활의 부침은 있었지만 50여년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치에 입문하고 그 부침에 따라 기복은 있었지만 오히려 역경 때문에 신앙의 뜨거움과 간절함은 더 강해지고 깊어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직업이 된 정치는 그만둘지라도 믿음 생활은 그만둘 수 없을 것입니다.” 안상수 의원은 1946년 5월 28일 태안군(당시는 서산군) 출생한 기독교 정치인이다. 민선 3, 4기 인천시장을 지냈다. 인천 계양구·강화군 갑 지역구에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5위로 떨어졌다.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인천 서구 강화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인천시장 재임기간 동안 송도국제도시를 조성하였다. 한국에서 국고 지원 없이 민간자본으로 건설된 최초의 도시이다. 송도를 세계적인 도시로 키우겠다는 목표아래 컨벤션 센터, 국제학교, 박물관, 생태관, 문화센터, 잭 니클라우스 골프 클럽, 동북아 트레이드 타워(NEATT), 퍼스트 월드 주상복합, 센트럴 파크 등을 조성하였다. 특히 안 시장은 뉴욕주립대학교 분교를 비롯한 연세대학교, 인하대학교 등 국내외 명문대학교를 유치하였다. 그 결과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과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송도사무소,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들어서게 되었다. 안상수가 인천시장 임기 초 2002년에 시 예산이 2조 7000억원이었는데 2009년에는 세 배인 7조 5000억원으로 불어났고 아파트와 토지 등 시 전체 부동산 가치도 80조원에서 200조원 규모로 상승하였다. Q 어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인천광역시 소재 계산중앙교회에서 감리교 권사로 22년 봉직하고 있습니다.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새벽기도도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앙생활과 정치생활에 잣대로 삼는 말씀은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는 요한일서 2:16입니다. 이것을 늘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아닌 세상의 쾌락과 교만은 자신의 삶을 타락과 부패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Q 로마 정치인 키케로는 ‘이 세상에 정치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고 했는데 안상수 의원님은 왜 정치를 하십니까 “믿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그 일의 보람을 정치를 통해 날마다 체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막힌 곳을 뚫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굽은 것을 펴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때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 일이 저를 만족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금한 동성애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인천시 시의회에서 2016년도 동성애 관련 법안 통과를 막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Q 크리스천 정치인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구현되게 하기 위해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하는데 의원님은 이러한 정의에 동의하십니까 “당연히 동의합니다. 우리 기독교인 정치인들은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Q 동의하신다면 그 동안의 정치 행보에서 크리스천 정치인으로서 하나님이 뜻을 위한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심각하게 분열되어있는 우리나라를 대통합하여 갈등 없는 하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더 나아가 기독교를 배척하는 북한 정권을 흡수해 통일 대통령이 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Q 크리스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들에 대한 공과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평가 부탁드립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에 대한민국 수립에 기초를 만드신 어려운 일을 하신 분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측근 비리로 타국으로 망명하여 생을 마감하신 분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중 금융실명제등으로 금융 흐름을 명백히 하여 여러 가지 비리를 척결하는 큰일을 하셨지만 마찬가지로 측근비리와 가족비리로 지탄을 받은 일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공사 등 수자원 확보와 토목건설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여러 가지 사회갈등으로 계획대비 큰 효과를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믿음의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을 따라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한 믿음의 청지기가 되겠습니다. 그러한 대통령의 제 모델은 지미 카터 대통령입니다. 어려운 환경과 검소한 생활 속에서 늘 기도와 간구로 어려운 약자를 생각하는 대통령이셨고 퇴임하시고도 교회학교 교사와 전 세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집짓기 운동을 조용히 전개 하고 계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어머님은 나를 서울로 보낸 후 기차표 한 장을 더 사셨다. 그리곤 세상 밖으로 나가선 안 돌아오셨다. 나를 떠난 후 지상의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가슴속이 지상의 마지막 역이 되는 사람이 있을까. 제물포역 대합실 의자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난다. 자동차가 불타고 돌멩이와 각목이 난무하던 초겨울 어느 날. 산동네 가파른 골목 끝 내가 살던 빛바랜 판잣집 뒤뜰에는 아침 안개에 젖은 나무줄기와 이슬 맺힌 잔가지들을 참새 서너 마리가 총총 뛰고 있었다. 순간 크나큰 믿음이 이 세상 가득 출렁인다. 살았던 일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믿음은 편하다. 비가 되어 쏟아져버리는 먹장구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은 편하다. 믿음의 정치인 안상수 의원의 정치여정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오랜 만에 만나는 믿음의 정치인 안상수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그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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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3-29
  • 총회 역사가 김정훈 목사
    총회 아이티헌금 부스러기 6억 2천 2층 슬라브 700평 10개월 만에오나빌기독교학교 건축 하나님 은혜 문제에는 반드시 답이 있다문제에 함몰돼 시간과 돈을 소모하는 것이 더 큰 문제 그는 그간의 행적에서 보여주듯총회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이면서 총회 역사를 보존하고 세우는 역사가 사람들은 저마다 말한다. 어제가 묻힌 무덤들이 역사라고 지금이 현재이고 내일이 미래이며 어제가 과거이고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도 어제가 될 것이고 내일도 어제가 될 것이니 종국에는 모든 삶은 어제가 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서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를 살고 있다. 한 치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수많은 점들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달려가는 하나의 직선 위 우리는 그 어느 선분만큼만 살아갈 뿐이다. 말하자면 그날까지 이어질 총회 역사 안에서는 오늘도 역사이고 내일도 역사이니 사는 순간순간이 또 하나의 총회 역사이다. 그런데 정작 그 역사란 무엇인가. 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대략 기원전 480년경~420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탐구를 통해 『역사』를 저술했다. 그의 책 제목인 ‘역사’는 그리스어 ‘히스토리아이’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히스토리아’의 복수형이다. 당시 ‘히스토리아’는 ‘탐구’ ‘탐구를 통해 얻은 지식’ ‘탐구결과에 대한 서술’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었다. 그것을 통해 헤로도토스는 고대 이후 역사서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간주되고 또 키케로는 그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 헤로도토스는 과연 어떤 점에서 ‘역사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헤로도토스의 역사인식이 잘 드러나 있는 대목은 그의 저서 『역사』의 서문이다. “할리카르나소스 태생 헤로도토스는 인류의 업적을 후세가 잊지 않고 그리고 그리스인 및 그 밖의 민족들의 훌륭한 발자취가 길이 남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 자신의 탐구 기록을 펴낸다. 특히 여기서 무슨 이유로 이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들어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기원전 490년에서 479년까지 이어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탐구'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다른 문헌이 거의 없는 이 시기의 이야기 자료를 기록하였고 그 밖에 자신이 지중해와 흑해 주변의 여러 지역을 널리 여행하면서 접한 여러 장소와 사람들에 대한 긴 여담도 많이 썼다. 그의 기록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들은 것만 기록했다고 주장하였다. 성경에도 자신이 들은 것만 기록했다고 주장한 해로도토스와 비견될만한 인물이 있다. 그는 헤로도토스보다 200여년 앞서 기원전 607년에 예레미야서 36:1-18에 등장하는 바룩이다. 예레미야 36장 4절과 17-1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그 구전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청컨대 우리에게 이르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베풀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제99회 총회(총회장 백남선) 회록서기로 총회 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 자신 역사를 사랑하고 보존을 위해 실행하는 김정훈 목사는 2015년 8월 28일 기독신문 퇴임 인터뷰에서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100년 교단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자료실을 꼭 만들어 교단의 정체성과 역사를 손쉽게 접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번 총회에서 역사위원회가 설치되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 바램대로 제100회 총회(총회장 박무용)에서 총회역사위원회가 허락되고 초대 위원장이 되었다. 그를 2017년 1월 8일 부산 새누리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당회장실에서 만났다. 두루마기를 입은 김정훈 목사는 말했다. “우리는 편하게 이렇게 삽니다. (그는 붉은 가로46배판 양장에 금박으로 새긴 총회역사화보를 내밀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설립 100주년 기념판이었다.) 제가 위원장 되어 만든 책입니다. 이게 87년 만에 만든 겁니다. 정준모 총회장 때 너무 어렵고 그러니까 역사 자료 그런 게 만들기가 참 힘들었어요. 그래도 뭔가 남겨놓으면 이걸 기초로 해서 뭘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 2012년에 이걸 만들었어요. 시간과 경비가 참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티 오나빌 학교 세우신 것 좀 말해 주세요. 아이티 구호헌금 29억 가운데 7억이 남았었는데 그걸로 건축을 하신 거죠. “6억 2천 가지고 700평을 건축하고 나머지는 1년 유지비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3월 13일자 국민일보에 따르면 2016년 3월 10일 한국교회봉사단과 월드디아코니아가 아이티 카라콜에 직업학교 건축을 하는데 22억 들어갔다면서요. “3년 걸려 25억 들었다는 국민일보 기사를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총회 아이티헌금 남은 부스러기 6억 2천으로 700평 2층 슬라브를 10개월 만에 건축한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010년 1월 12일 현지시각 오후 4시 35분 1인당 국민소득이 하루 2달러로 절대빈곤 상황에 있는 아이티에 리히터 7.3의 지진이 발생해 11만 2250명의 사상자와 19만 4000명의 부상자, 그리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최초 지진 발생 이후 전국 교회 모금 29억을 통한 교단의 구호사업이 22억이 목적 외로 사용된 사건이 드러나 그 연루자들에 대한 책임공방이 4년여 이어졌다. 그러다 아직 남은 7억조차 다른 용도로 쓰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2014년 제99회 총회(총회장 백남선 목사)에서 아이티 재난현장의 학교 건축이 정식으로 총회에 헌의되고 총대들의 뜨거운 허락을 받았다. 총회는 아이티에 뒤늦게나마 오나빌기독교학교 건축추진위원회(위원장 정용환 목사)를 조직했다. 당시 건축위원회 서기를 맡아 총회 위상을 일으켜 세우는 역사적인 실무를 챙긴 김정훈 목사는 말했다. “건축위원회 서기로 실무를 감당하며 건축에 만일 차질이 생기면 교회와 제가 다 책임을 지겠다는 결심과 각서까지 제출해 놓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앞으로 이 학교가 지역의 희망이 되고 총회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2010년 1월 강도 7의 지진피해로 사망이 30만 명에 이르는 재난을 당한 아이티에 총회(총회장 박무용 목사)가 늦게나마 따뜻한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 총회는 2015년 11월 18일 아이티공화국 오나빌시에서 오나빌기독교학교 준공 및 개교감사예배를 드렸다. 아직까지 재난의 후유증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오나빌 지역 주민들에게 기독교학교 준공식은 축제였다. 김정훈 목사는 그 감격을 이렇게 말했다. “아이티구호헌금 잔액으로 기독교학교를 건축함으로 전국 교회의 정성어린 헌금을 본래 목적대로 어려운 아이티를 위해 쓰게 돼서 기뻤습니다. 학교뿐 아니라 교회와 주민진료소까지 마련돼 보람이 큽니다.” 김정훈 목사는 당시 오나빌기독학교 준공 기념사진을 보여 주며 현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게 지난해 사진들입니다. 이거 건축을 해놓고 총회에서 1년 운영비는 대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총회가 2천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한 달에 부활절과 성탄절이 있을 때는 7천5백불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는 7천불씩 들어가는데 이제 자체에서 학생들에게 1불씩 수업료를 받고 매점 운영하고 치과의사 부부가 진료해 2천 불 수입을 올립니다. 그래서 한 달에 그곳 운영비로 5천불씩 후원이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김선규 총회장을 고문으로 하고 김재호 목사를 이사장으로 하고 내가 회장하고 이래가지고 지금 반강제적으로 후원을 받아 보내고 있습니다.” -후원 모금 광고를 해야겠네요. (장내숙 사모가 거들었다.) “언젠가는 자립을 해야죠.” “자립하도록 하려고 도와주고 있는 거죠. 관리에 대해서는 총회 결의가 GMS가 하도록 했지만 재정은 도와주지 않습니다.” -언제 결혼하셨습니까. (장내숙 사모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84년도에 결혼했으니까 33주년인가 34년인가. 잘 모르겠네.” -34년 전에는 김정훈 목사님이 별 볼일 없었을 텐데요. 사모님은 선생님도 하시고. “제가 고등학교 교사이면서 뭐 하나님에게 괘씸죄에 걸려가지고 사모가 된 것 같아요. 아니 친구가 사모 되겠다는 데 아주 막무가내로 말렸거든요. 사모 되는 거 아니라고(웃으면서) 그런데 제가 사모가 됐어요. 꿈도 꾼 적이 없는데... 그런데 사모 되려는 사람 말렸으니까 대신 제가 괘씸죄에 걸려 사모가 되고 말았어요. 그러면 니 한번 해보라고...” (김정훈 목사 흐뭇한 표정으로) “제가 뭐든지 빨리 일을 하는 성질이라.” (장내숙 사모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김정훈 목사 말을 이어) “두 달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어떻게 소개를 받아 인연이 되었습니까. “그런데 저희 교회에 노총각 전도사가 부임하셨는데 중고등부를 맡으셨어요. 저는 중고등부 교사였어요. 그래도 들은 건 있어서 결혼을 위해 방학을 하자마자 한얼산기도원에 올라갔어요. 사람들이 방학 때면 엄청나게 많아요. 2년간 결혼을 위해 결혼을 해오던 터라 작정기도를 하고 딱 내려왔어요. 그리고 학교에 시무식을 하려고 갔는데 전도사님한테서 만나자고 전화가 온 겁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눈치가 없어가지고 저한테 청혼을 하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들었어요. 얼마나 눈치가 없으면 땀을 뻘뻘 흘리듯 어렵사리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임할 각오로 결혼을 해야겠다고. 그러면 전도사님 결혼 해야지요 하고 맞장구를 쳤어요. 도와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도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저라고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김정훈 목사 조용한 웃음) 그런데 남편이 자꾸 이야기를 하는데 방향이 좀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학년 초이고 제가 중고등부 교사라 반 배정 같은 거 의논하러 전화하신 줄 알았죠. 어떻게 보면 제가 사모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장애인을 위한 사명도 주셨고 대학원 진학도 계획하고 원서도 받아놓고 있던 터였어요. 그렇게 계획을 하면서 배우자를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를 했어요. 내려와서 딱 출근한 첫날 전화가 와서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결혼 대상인 겁니다. 나는 아니라고 했는데 본인은 사임을 해야 되니 불쌍하잖아요. 내가 보자고 해서 절대 사임하시면 안 된다며 없던 일로 하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교사 기도보다 전도사 기도를 하나님께서 더 많이 들어주실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딱 잘라 거절을 못하고 기도는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는데 남편은 그런 배짱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결혼하겠다고 한 마디도 안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그것도 두 달 사이에 다 이루어진 겁니다. 결혼할 준비도 아무것도 안되어 있고 우리 아버지는 딸이 귀하다고 일찍 결혼 안 시킨다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꾸 와서 딸을 주십시오 하며 저희 아버님한테 부탁을 화는 겁니다. 그런 남편의 열심에 우리 할머니께서 저리 달라는데 줘라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두 달 만에 결혼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사모님 다니신 교회는 어디입니까. “서성로교회입니다.” -우성기 장로님 시무장로하시던 교회군요. “네. 우성기 장로님 저희 가족을 무척 아껴주시고 김정훈 목사를 아주 사랑해 주셨어요.” -놀라운 일이네요. 우성기 장로님 총회 정치인으로 유명하신 분이죠. “그분이 제가 그 교회 부임해가 두 달 동안 잠바 입고 출근해 전부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교회 찬양대 등 온갖 부서를 반듯하게 정리했어요. 저를 무척 좋아하시고 누구든 우 장로님 위해서 기도하면 우 장로님 무릎 딱 꿇으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게다가 우 장로님은 돌아가시기까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어요. 제가 거기서 배운 게 목회자가 장로보다 하나님 더 사랑하고 교회 더 사랑하고 기도 더 많이 하고 성경 더 많이 보면 존경받는다는 걸 서성로교회에서 배웠습니다. 총회를 위해 두루 일하시던 장로님이셨는데 정말 돌아가실 때까지 부족한 저한테도 참 잘해 주셨어요.” -사모님 성함은 어찌 되십니까. “장내숙입니다. 촌스럽죠.”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독특한 이름이신데요. 내 자가 무슨 자입니까. “이에 내(乃) 자입니다. 베틀에 이에가 있습니다. 베틀에 날실과 씨실을 번갈아 교차시키면서 하나의 천이 짜여지는데 그 베틀의 두 다리 사이에 가로지른 나무를 이에라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저희 집안에 주의 종이 없는데 그렇게 이에처럼 교회에서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제 이름을 그렇게 지으셨대요. 저희 집안에서는 목회자가 없다보니까 전도사가 와서 딸을 달라하니 전도사 배경이 어떻든 주의 종이니까 거절을 못해서 일찍 결혼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순종한 게 저희 아버지 믿음이셨죠.” -김정훈 목사님 겉보기와는 달리 아주 당차신 분이네요. “우리 목사님은 청년들한테도 상대방이 좋아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니가 좋으면 자신의 믿음대로 밀고나가라고 하십니다.” “내가 좋아하면 되지만 상대가 나를 아무리 좋아해도 내가 싫어하면 안 되니까 저는 제가 마음먹어 버리면 평생 그냥 가니까요. 김선규 목사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처음 GMS 들어갈 때 한번 GMS 총회 갔는데 이사 아닌 분이 회계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 당시 그분이 정치 핵심 세력이었어요. 그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발언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뒤에는 또 다른 핵심 중 핵심도 있으니 GMS 내에서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끝까지 선교회가 원칙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자리를 원하는 목사님을 위해서도 그렇고 옆에서 하라 한다고 이사도 아닌 분이 이사회 임원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야유하고 야단났어요. 그런데 결국 그렇게 됐어요. 그러고 GMS에 들어가게 되었죠. 영남 쪽 임원 찾다보니 그 사람 선교 많이 하는데 누구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회 들어가 김선규 목사님하고 그때부터 같이 일하게 됐죠. 그 뒤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냈습니다. 제 스타일은 절대로 나서지 않습니다. 일이 주어지면 확실하게 하고 그 다음에 그늘에서 늘 전체적인 조정을 하고 받들고 그럽니다. 모든 일을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저를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을 맡기면 무엇이든 확실하게 정리하고 해나가는 게 제 성격인 것 같습니다.” -목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가 이 교회 부임해서도 제 편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내 제자를 만들지 않고 단지 주님 편만 만들었습니다. 목회를 그렇게 바로 하면 다 내 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기준을 가지고 목회를 하니까 교회도 그런 면에서 자유롭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21년 동안 당회나 제직회나 공동의회나 한 번이라도 언성을 높여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절차는 다 밟고 논의하지만 무슨 회의든 10분 걸릴 정도로 짧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롭고 은혜롭게 진행합니다.” -선교에 대한 열정은 언제부터 가지게 되었습니까. “처음 목회할 때부터 있었는데 부산에서 땅 사 건축해 지은 돈보다 부채가 더 많은 5년 된 용산교회에 와가지고 큰 사건이 생겨 교회가 망하는 법은 없지만 주변에서 전부 망했다고 할 정도가 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 가니까 옆의 아이들이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런 해결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해결된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때 교회 부흥 때까지 기다리던 선교의 마음이 지금 순종해서 선교하겠습니다로 바뀌었습니다. 그랬더니 부흥하게 되더군요.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다 망한다는 교회에 교인들은 안 믿는 남편 깨워 새벽기도 보내주고 개인택시 하는 분이 시내에서 운전하다가 집에 와서 아내 태워 교회 데려다 주고 가고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김정훈 목사는 그간의 행적에서 보여주듯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일 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존하고 세우는 역사가이기도 하다. 그는 2013년 제98회 총회 부회록서기 2014년 제99회 총회 회록서기로 총회 임원으로 2년의 섬김과 아이티 오나빌기독교학교 건축 같은 실무 봉사를 통해 총회 위상을 회복하고 총회역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총회 역사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는 2016년 4월 기독신문에 총회를 위한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밝혔다. “목사로서 본분과 의무를 다하며 품격 있게 교회와 교단을 섬길 것입니다. 교단의 정체성을 토대로 평화통일 준비와 세계선교 선교 교회 부흥과 자립지원에 힘을 쓰며 사회에 희망을 주는 교단이 되는 일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것입니다. 우리 총회는 무한한 저력과 희망이 있습니다. 문제에는 반드시 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에 함몰돼 시간과 돈을 소모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문제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정리하고 풀어 총회가 도약하고 발전했으면 합니다.” 2017-02-11
    • G.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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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16
  • 호렙산 불꽃 권순웅
    권순웅 목사 목회 철학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을 버리지 않고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거지인생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명 줄을 잡고 살기 때문 열정적인 호렙산 불꽃이 되어 그의 공약 3R로 총회를 개혁해 다시 세우고 존중받게 만들고 모든 목사 장로 애곡 속에 떠나기를 남몰래 조금은 늦은 것들이 있다. 늦게 온 것들은 고요하고 스산하다. 늦게 오는 것은 저마다 그늘진 사연이 있다. 늦은 것의 쓸쓸함과 고요함과 심란함. 너무 늦게 찾아와 주목받지 못하거나 쓸모없어진 것들. 그러나 누가 그 순서를 정했더라도 더딘 것은 더딘 데로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언젠가 소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권순웅 목사가 그렇다. 호렙산의 불꽃을 보고 뒤돌아선 모세처럼. 2016년 12월 4일 11시 주다산교회 예배에서 성경을 읽을 때 다 일어나고 영상 모니터에 성경 구절이 비치지 않았다. 교인 모두는 성경을 펼쳐 들고 읽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명기 32:7-14 권순웅 목사가 성경을 한 손에 받쳐 들고 강단에 섰다.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리가 아니라 독수리같이 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광인론(광인이란 말은 그 스스로 지은 말로 미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 수 없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제자훈련에 미쳤다는 광인론 목회철학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내 목회철학을 이렇게 말씀하고 싶습니다. 나의 목회철학은 오리지날입니다. 이것은 오리가 지랄하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제가 말씀하는 이 광인론은 절세미인과 같습니다. 절세미인은 절에 세 들어 사는 미친 인간을 말합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구호를 외쳤는데 미쳐라였습니다... 우리는 오리 같은 뒤뚱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독수리 같이 날아오르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고 바람의 기운을 타면 비상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바람을 탈 때 독수리같이 올라가게 됩니다. 독수리 같은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멀리 보게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하는 것 같이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본문 신명기 32장 11절과 12절은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암담한 현실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교육에서 일파만파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참 안타깝습니다. 저도 아이가 하나뿐이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애가 중학생 때 학교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나는 몰랐는데 우리 집사람이 학교에 많이 불려갔습니다. 중3 때 목사의 딸이 노랑머리가 되어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계속 감동을 주시는 것은 이삭처럼 모리아산에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녀지간의 인연을 끊고 독수리가 그 새끼를 키우듯이 그냥 던져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데 던져버릴 때 없나 찾았습니다. 그것도 돈 안 들고 말입니다. 탈북자선교회 미션홈이 떠올랐습니다. 중국 신양(허난 성에 있는 도시인데 허난 성은 인구는 가장 많고 경제적으로는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의 촌 한구석에 있는 곳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너 중국으로 유학가라’고 말했습니다. (큰 웃음) 우리 아이는 북경이나 상해를 생각하고 좋아했습니다. 한번 가볼래 했더니 싱글벙글했습니다. 그 당시 겨울이라 밤이 되면 영하 30도 40도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나도 그곳이 그렇게 어려운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갔더니 화장실이 재래식인데 유리창도 없고 비닐로 휘감아 놓은 곳이었습니다. 영하 30도 40도 되니 볼 일을 보면 그대로 쌓여 탑이 되었습니다. 제가 사용해 보니 이게 바로 똥침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웃음) 그리고 숙소는 탈북자나 조선족이니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기숙하는 곳이었습니다. 세면은 식당 안에서 물을 데워 얼굴을 씻고 2주에 한번 신양에 있는 공중목욕탕에 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 목욕탕에 가보니 물이 설렁탕 국물 같습니다. 때가 허옇게 둥둥 떠다녔습니다. 우리 아이가 거기 일 년 있었는데 살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아빠 시키는 대로 다 할테니 제발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후에 복을 주셨습니다. 미국 유학 문을 열어주시고 밥존스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컬럼비아 대학교를 거쳐 이번에 총신을 졸업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독수리 같은 훈련이 없으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연단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지금 연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이 고난이 우리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권순웅 목사가 고등학교 때 일이었다. 친구의 형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명문대에 다니던 그는 청운의 꿈을 가진 고시생이었다.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을 했다. 허름한 장례식장은 을씨년스러웠다. 주변은 가을 산이었다. 단풍색깔도 처량하게 보였다. 친구 어머니의 통곡이 그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멍하게 장례를 지켜보았다. 끝나고 식사를 했다. 그때 교회 어른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산에 오니 밥맛이 좋다.” 그 한마디가 믿음이 연약한 그에게 비수같이 꽂혔다. 친구 어머니의 애곡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후일 깨달았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셨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아시면서도 우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는 자들을 아파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영남대 경제과 재학시절 이념서클을 이끌었던 운동권 출신이었다. 졸업 후 취직해 대기업 마케팅 업무를 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후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1989년 총신대 신대원에 들어갔다.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한 그는 학교 뒷동산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SPARK(불꽃) 운동’을 목회비전으로 세웠다. SPARK는 S(Scripture 성경) P(Prayer 기도) A(Action 삶) R(Revival 부흥) K(Kingdom of God 하나님 나라)의 약어다. 그는 보기와 달리 1955년생이라 총신 78회 정도 되어야 하는데 33살 늦깍이 신학생으로 출발해 37살에 졸업한 총신 84회다. 그런 그가 2016년 9월 26일 오후 10시 20분 총회임원 선거로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경선이 이루어진 총회 부서기 선거에서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경쟁자를 제치고 총회 부서기에 당선됐다. 능금이 그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지는 올 가을에 권순웅 목사는 제101회 총회의 New Spark 새 불꽃이 되어 전국 교회와 총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불꽃은 연소(燃燒) 반응 시 빛나는 밝은 바깥 부분이거나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을 띤 기운이다. 권순웅 목사는 1992년 5월 서울 방이동 상가건물에 개척했다. 소외된 자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초창기엔 ‘이러다가 교회 문을 닫겠구나’라는 위기감도 들었지만 뿌려진 전도의 씨는 결국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2000년 100명 성도를 넘기더니 이듬해엔 장년만 200명 넘게 출석했다. 그 즈음 이사야서 43장 5절을 통해 확신을 얻은 그는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민족과 세계를 구원하는 한국 교회의 모델’이 되려면 좀 더 넓은 터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때는 동탄 신도시 발표가 나기 전이었다. 교회 이름도 ‘새술’에서 ‘주님이 많이 낳으신다’는 의미의 “주다산”으로 바꿨다. 2001년 8월 화성시 반월동에서 18가정이 초라한 천막교회로 시작했다. 그러다 2014년 4월 19일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160에 종교부지 2000평 건평 2500평 2500석의 예배당을 최대 저렴하게 최고의 기능을 지향해 세웠다. 그는 교회를 지으면서 건축비 절감을 위해 지하를 파지 않고 세웠다. 그리고 재정 여력이 생기자 옆의 땅을 사들여 지하 공간을 파는 것보다 교회 땅을 더 넓힌 지혜를 발휘했다. 교회에서 좀 떨어진 곳에 32400평의 산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2500명 성도가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꿈을 버리지 않고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얻을까 바라는 거지인생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명 줄을 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주다산교회 교인들이 매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한 장짜리 전도지엔 이 같은 축복의 글이 적혀 있다. 권순웅 목사의 매주일 저녁예배 설교를 요약한 것이다. ‘예수 믿으세요’란 소책자나 말 대신 축복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축복전도법이라고 불린다. 효과가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서 목회하면서 이미 임상실험을 거쳤습니다.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종이 한 장 나눠주고 축복해주는 게 전부지만 10번 이상 계속 만나다 보면 결국 우리 교회 교인이 되더군요.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실 때 축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불신자와의 최고 접촉점은 바로 축복입니다.” 권순웅 목사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기업체에서는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 축복전도법을 굳이 마케팅 개념으로 보자면 탁월한 일대일 마케팅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도받은 자들을 위해 주다산교회는 셀을 통해 양육을 한다. 또 대공동체 사역을 영적 시스템화하여 연간 진행한다. 신년금식집회, 새기비(새벽기도비전), 블레싱데이 그리고 매주일 저녁에 드리는 신앙의 명가 세우기 예배, 하나님 나라 금요집회 등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시는 역동적인 대그룹사역을 진행한다. 그는 이 중심을 영적리더십으로 보고 있다. 이것으로 주님의 리더십이라는 관점으로 선교학 박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예수 스파크셀 리더십 이야기’ ‘스파크 양육교재’ 15권(공저)이 있다. 권 목사는 총신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강의하며 예수 스파크셀 세미나를 연간 2회 진행하면서 전국교회 목회자를 돕고 세우고 있다. 제101회 총회에 뉴 스파크 새 불꽃으로 등장한 총회 부서기 권순웅 목사가 앞으로 지켜야 할 공약 3R(Reformation 총회개혁 Rebuild 총회 다시 세우기 Respect 총회 존중)을 내세우며 관심을 가지게 된 총회 형편은 어떤가. “이게 총회냐”라는 목사나 장로의 볼멘소리가 가슴을 친다. 그렇다. 이 몰염치한 거짓과 탐욕 만연한 요령과 눈치 온갖 탈법과 불공정이 판치는 곳을 총회라고 할 수 없다고 개탄도 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면서 희망도 가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모두가 그 공범자들이었다. 실은 이 총회도 힘들게 만들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교인들이 주일마다 한 움큼씩 보태는 성미에 의존해 산다는 것을 의미할 때도 있었다. 그 가운데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이 늘어나고 서울역 근처 건물에 세 들어 있다가 지금의 어엿한 건물을 지닌 총회와 총신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총회의 이 모든 것은 그 시절 이영수 목사의 공로가 없었다면 장자교단이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을 것이다. 박윤선 목사를 중심으로 갈려나간 개혁 측의 현실을 보면 감이 잡힐지 모르겠다. 총회가 개교회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본이 되지 못하니 노회와 교회도 교인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교인의 노회와 총회에 대한 무관심을 낳았다. 폴란드 공산당이 조직한 반유대주의 축출운동에 의해 1971년 망명한 이후에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11. 19.-)은 나치 박해의 희생자였던 마르틴 니묄러의 사례를 들려준다. 처음에 나치는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하러 왔다. 니묄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가만히 있었다.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그는 노조와 연관이 없었으므로 침묵했다. 그다음에는 유대인 그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잡으러 왔지만 가만히 있었다. 마침내 나치는 니묄러를 잡으러 왔지만 그때에는 다른 누군가를 옹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서 총회와 노회와 교회의 크고 작은 불의가 일어날 때 우리가 침묵하고 자신의 안전과 신앙만을 생각한다면 결국 궁극적으로 위협받는 것은 우리 자신의 안전과 신앙이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있지 않을 신앙의 권리 더 나은 삶을 선택할 권리 일시적인 안전과 보신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양심의 자유와 신앙 인권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본성을 추구하고 지킬 권리가 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내가 더 많이 노력했어야 하는데’라는 자책보다는 ‘나’와 내 교회를 넘어 ‘우리’가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신앙의 바른 삶에 대한 강한 소망이 싹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1-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마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 신명기 34:4-8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관이 있는 남원 노봉마을에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계곡의 물을 끌어올려 타고 도는 물레방아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움직인다. 거대한 몸집을 굴리기에는 물이 턱없이 모자라 보이지만 물레방아는 쉼 없이 물을 타고 돈다. 개울가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있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마다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불꽃처럼 빛난다. 아침햇살이 비출 때 마다 물레방아 가의 안개분수에서 무지개가 불꽃처럼 빛난다. 물보라를 흠뻑 뒤집어 남천은 발가벗은 채 얼음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물레방아 주변 대숲에는 물이 흩날려 안개비가 내린다.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간 혼신을 바친 대하소설로 20세기 말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 “혼불”의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은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하나 세울 수 있다면...” 혼불은 일제 강점기 때 사매면 매안마을의 양반가를 지키려는 3대의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손길 염원과 애증을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생생하게 복원하여 형상화했다. 혼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과 애련함 근엄함과 서러움 밝음과 어둠이 댓바람 소리와 함께 대실을 건너 노봉 마을과 사매면을 감싸고돈다. 1998년12월 11일 아직 써야 할 이야기를 남겨둔 채 향년 51세로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이제 호렙산 불꽃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와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느보산에 올라 그 조상들에게 떠났다. 그리고 한낱 소설가도 아직 써야 할 이야기를 남겨둔 채 향년 51세로 “아름다운 세상 잘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그처럼 권순웅 목사도 혼을 불사르는 열정적인 호렙산 불꽃이 되어 그의 공약 3R로 총회를 개혁하고 총회를 다시 세우고 존중받는 총회로 만들고 모든 목사와 장로들의 애곡 속에 떠날 수 있기를 혼불처럼 소망한다. 201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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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8
  • 화순원화교회 변전석 목사
    교회마을 십리 밖에 새벽이면 들려오는 댕그랑앙앙아아 댕그랑앙아 아직도 생생한 40년 전 종소리. 잠에 취하여 일어나 십리 길 멀다 않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새벽마다 달려가던 전남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원화교회. 솔밭 사이 교회 가는 길 주일 학생들은 솔방울처럼 잘도 굴러가다 유채꽃 고운 밭둑길에서 나비처럼 훨훨 날개를 편다.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 달고 교회 있는 교회 안길로 접어든다. 시골집 골목마다 퍼져 있는 아이들의 들쭉날쭉 맑은 찬송 소리에 교회 창문이 열리면 우르르 따라 들어간 파아란 시골 바람 향그런 꽃냄새 요란하다. 하늘나라 얘기는 교회 안에 재미있게 가득 차 있어 주일 학생 모두 싣고 하늘로 올라간다. 오래된 시골 교회 가는 길은 하늘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하늘나라 가는 길에 시골 아이들 모여든다. 2016년 11월 30일 11시 총신 재단이사 성수 빌미로 이기창 목사 입원해 있는 전주예수병원 중환자실에서 한다는 말을 듣고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 간호사 들어가는 길에 멋모르고 실수로 들어가 보니 회의는 고사하고 방문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총신 재단이사들이 왔다간 낌새도 없었다. 물어보니 간호사도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히 하루 일찍 내려간다며 총신에서 우연히 만난 안명환 목사와 권주식 목사는 함께 서두르고 있었다. 참석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전 날 말했던 사람은 오지도 않고 딴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 전부터 오고 싶었던 전남 화순의 변전석 목사 시무 교회 원화교회 수요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두 가지 놀라웠다. 원화교회가 1904년에 설립된 113년 교회이고 수요예배 참석이 5명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이유는 3년 전 어느 수요예배 때 김관선 목사의 산정현교회에 가보니 10명 정도 앉아 있었고 그 얼마 후 박영선 목사의 남포교회 수요예배는 아래위로 성도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원화교회가 설립된 1904년이라면 2월 8일 러일 전쟁 발발하고 2월 23일 한일 의정서를 체결하고 7월 1일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제3회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고 7월 15일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가 죽고 10월 4일 세브란스 병원 개원 후 첫 수술로 백내장 수술을 한 해다. 그토록 오래된 교회에 총회 마당쇠 변전석 목사가 시무하고 있다.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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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7
  • 주신교회 허활민 목사
    2016년 12월 18일 오전 11시 주신교회에서 총회와 기독신문의 구조조정 대임을 맡은 허활민 목사는 설교에 앞서 기도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도록 아둔한 입술을 풀어주시고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의 심령에 잘 박힌 못과 같이 아로새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주장해 주시옵소서. 멀리 출타해서 또 여러 가지 세상 일로 나오지 못한 자들 불쌍히 여겨주시고 있는 그 처소에서도 기도하는 믿음을 갖게 해 주셔서 우리와 같은 은혜를 받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허활민 목사가 고개를 들었다. “올해가 갈 때까지는 지난 주 뭐라고 했죠. 마주 보고 한 사람이 ‘사랑합니다’ 말하면 맞은 편 사람은 ‘미안합니다’ 말한다고 했죠. (성도들이 마주 보고 반복했다.) 우리가 한 해를 보내면서 크리스마스를 앞에 두고 사랑을 받았는데 그만치 보답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줄 압니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와 가족을 이루어주시고 돌보아주시고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임하셔서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축복이 축복 중의 축복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년 구조조정 대상이 될 대상들은 허활민 목사의 이 설교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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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7
  • 창원반석교회 박종희 목사
    경남동노회 분규 당시 노회장을 맡아 박종희 목사(총신 82회)는 갈팡질팡하는 서광호 대신 분규의 중심에 서서 이단 마귀론에 빠질 뻔한 경남동노회 정통성을 잘 지키고 총회와 협력해 정치력을 입증받았다. 1997년 11월 서광호를 이어 부임한 박종희 목사는 전통적인 목회자의 자세로 교회를 안정시키고 성장시켰다.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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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27
  • 광주의 어거스틴 채규현 목사
    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소명을 받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방향을 바꿔 세상이 아닌 교회를 위해 목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 채 목사는 시계수리공 김상술의 톱니에 걸리면서 지옥과 천국을 오가 김상술 정규남 김삼봉 서기행 권재호 이승희 등 조직폭력배부터 최순실까지 이어져 온 나라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은 '최순실 게이트'를 닮아 바람이 나무에게 말하거나 나무가 바람에게 말할 때 서로의 몸을 포갠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건 상대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여주는 것이다. 소통은 마음과 마음이 서로 닿아 한결 후련해지는 것이다. 몸은 대상이 ‘의식’되고 지각되는 통로다. 인생이란 어떻게 보면 삶과 역사 그리고 연극이고 그 사이에는 구획이 없다. 왜 세상에는 악(惡)이 존재할까.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 354. 11. 13 ~ 430. 8월. 28)은 악이 선(善)과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선의 부재(不在)’ 상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라틴어 이름 아우구스티누스는 ‘좋은 징조의’ 또는 ‘덕망 있는’이란 뜻의 라틴어 아우구스툼(Augustum)에서 유래하였다.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두고 세계 영성계를 강타한 책이 있다. 그것은 어거스틴의 “고백록”(Confessiones)이다. 이 책은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가장 많이 읽히는 기독교의 중요 고전 중의 하나다. 참회록이라고도 할 때가 있지만 이것은 적절한 제목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어거스틴이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 “찬양”의 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 제10권 이하에서 어거스틴은 그의 인간론 시간론 성경해석 방법론 등을 개진하기 때문에 그의 신학 사상과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책이다. "고백록"의 전반부는 젊은 시절의 방황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기나긴 회심의 과정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 "고백록"의 후반부는 세계의 기원과 시간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주를 이룬다. 그의 고백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의 이름은 어거스틴이고 이 책은 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이신 당신을 찬미하기 위해 이 책을 씁니다. 나는 당신을 잃어 비참했고 당신을 찾아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찬미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와 같은 다른 죄인들을 위해서도 이 책을 씁니다. 그리하여 그들도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집트 사막에서 기도하며 사는 안토니오의 이야기는 비수처럼 나의 마음을 꿰뚫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사악하고 추잡했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우리 집 뒤에 있는 정원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나는 땅 위에 쓰러져 이마를 때리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지금 하지 못합니까. 왜 지금 나의 온 마음으로 당신을 의지하지 못합니까. 하나님 지금 그렇게 되게 해주십시오.. 갑자기 나는 근처 정원에서 한 어린 아이가 ‘그것을 손에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이런 말로 하는 놀이가 있는지를 기억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그것이 성서를 펴서 읽으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성서를 펴자 내 눈에 로마서 13:13-14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더 이상 읽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넘치는 기쁨이 나의 마음에 가득 찼습니다. 나의 의심덩어리들과 두려움들은 끝났습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지배하는 사상은 "그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생활"이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신앙을 가지기 전 세계 도처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고 온갖 사악함으로 가득 찼던 당대의 명문 카르타고 대학을 다녔다. 그처럼 채규현 목사도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미국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그곳 버팔로에는 어거스틴의 카르타고와는 달리 한국 학생 12명이 있었는데 10명이 예수쟁이였다. 그들은 그에게 끈질기게 전도했다. 그는 그들의 전도와 아내의 임신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체험했다. 그 뒤 그는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 2년차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소명을 받게 되었다.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방향을 바꿔 세상이 아닌 교회를 위해 목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무엇보다 그는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그의 삶은 그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생활"을 살았다. 그는 귀국해 개신대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다 안식년을 맞았다. 그러다 2004년 5월 광주중앙교회의 청빙을 아무 연고 없이 받고 변한규 목사 뒤를 이어 후보자 가운데 제일 높은 점수(청빙위원 34명 중 31명 찬성)를 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그의 청빙에 가장 앞장 선 사람은 김상술 장로였다. 그리고 그의 퇴장에 앞장 선 사람도 시계수리공 김상술이었다. 어거스틴이 반달족의 침입으로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을 생각하고 “신국론”을 썼듯 채 목사는 시계수리공 김상술의 톱니에 걸리면서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김상술은 총신대 재단이사 관계로 당회에서 치리를 당해 원로가 될 수 없게 됐다. 거기서 문제가 꼬였다. 부임하고 5년은 요셉이 예언한 풍년처럼 좋은 세월이었다. 그러나 6년 되는 해 2010년 1월 14일부터는 요셉이 예언한 흉년처럼 악한 세월이었다. 그 대략을 살펴보자. 좋은 세월 2006년 5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간 광주중앙교회(채규현 목사)에서 열린 제4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은혜의 분위기 속에 폐회됐다. 광주중앙교회 채규현 목사는 이번 목사장로기도회는 광주중앙교회가 호남지역은 물론 구 개혁교단의 '상징'이기 때문에 신경 써서 준비했다고 밝히고 모든 공을 장로님을 비롯한 전 성도들에게 돌리며 말했다. "우리 교회 나름대로 손님을 맞는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필요하다면 교단행사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2006년 5월 8일 총신 운영이사회(이사장 김동권 목사)는 광주중앙교회에서 임원회와 이사회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었다. 그리고 현 재단이사 예종탁 목사(동현교회)가 오는 8월 정년퇴임할 경우 재단이사 결원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 채규현 목사(광주중앙교회)를 재단이사로 미리 선임했다. 2007년 7월 16일 ~ 7월 24일 세례교인헌금(총누계: 20억 5454만 9122원)의 전국 최고 납부 4교회 중 광주중앙교회 2위를 차지했다.1. 충현교회(김성관) 50,000,000 2. 광주중앙교회(채규현) 12,185,0003. 대한교회(김삼봉) 9,000,000 4. 동광교회(김희태) 7,357,000 2009년 11월 28일 오전 10시 광주중앙교회는 장로 10명의 장립식을 비롯해 직원 131명의 임직식을 거행했다. 악한 세월 사실 교회 분쟁을 낳은 악한 세월의 씨앗은 2006년 5월 8일 열린 총신 운영이사회에서 재단이사 예종탁 목사(동현교회)가 그 해 8월 정년퇴임할 경우 재단이사 결원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 채규현 목사(광주중앙교회)를 재단이사로 미리 선임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시계수리공 김상술이 총신과 총회를 상대로 시계 조립하듯 교회 돈을 가지고 비리를 조립했기 때문이다. 김상술은 채규현 목사가 총신 재단이사 선임 예정 빌미로 총신 발전기금 3000만원을 낸다고 교회에서 받아갔다. 그런데 그 돈 가운데 2000만원은 총신 공식 발전 기금이 아닌 운영자금으로 둔갑하고 나머지 1000만원은 행방을 감췄다. 그리고 그는 당회장 재정 결제 불가와 인사권 포기 등을 시작으로 채규현 목사를 10개 항목의 문서로 겁박하고 급기야 이단 시비까지 걸어 일사천리 전남제일노회의 목사 면직처리와 교회분쟁 사태로 몰고 갔다. 2010년 4월 22일 전남제일노회(노회장 김광현 목사)는 제110회 1차 임시회를 빛고을중앙교회에서 열고 광주중앙교회 채규현 목사를 면직처리했다는 재판국 보고를 받았다. 노회는 또한 광주중앙교회 임시당회장으로 광신대 총장인 정규남 목사를 파송하기로 했다. 2010년 5월 10일 전남제일노회(노회장 김광현 목사)는 제110회 2차 임시회를 담양 봉산교회에서 열고 성명서를 냈다. 광주중앙교회 사태와 관련해 전남제일노회의 재판을 불법으로 규정한 총회재판국에 헌법을 준수하고 법을 바르게 적용하고 채규현 목사와 관련된 예심판결에 대해서도 즉시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어서 총회 재판국의 예심판결의 용어 사용이 잘못됐다고 신문에 글까지 올린 김상술 측 변호인 신현만은 자신의 책 “교회 재판 이렇게 하라”에서 예심판결의 필요성을 역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총회재판국 양 측 심문 과정에서 재판국 임원 가운데 한 지혜로운 장로가 정작 예심판결의 필요성을 기록한 그의 책 페이지를 딱 짚어 들이대자 신현만은 김상술이 웃으며 건네는 꿀을 받아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2010년 5월 27일 헌의부(부장 노승욱 목사)는 총회회관회의실에서 실행위원회를 열고 전남제일노회 광주중앙교회 채규현 목사의 상소 건을 이미 재판국에서 예심판결을 내렸으면 확정판결이 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상소장을 기각했다. 2010년 6월 29일 헌의부는 총회회관 소예배실에서 실행위원회를 열고 전남제일노회 광주중앙교회 채규현 목사가 제출한 ‘목사 면직에 대한 상소장’을 재심의했다. 그 결과 “상소장 서류에 문제가 없으면 재판국에 이첩하는 것이 헌의부의 임무다”, “재판국 구성 요건 및 절차 문제로 인해 이미 재판국에서 예심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상소 건은 취급할 이유가 없다”등의 의견이 맞서 투표를 진행, 찬성 11명, 반대 4명, 기권 4명으로 재판국에 이첩했다. 2010년 7월 16일 재판국(국장 김영길 목사)은 총회회관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광주중앙교회 채규현 목사의 상소 건을 다뤘다. 이 자리에서 상소인 채규현 목사는 전남제일노회의 재판국 구성은 불법이며 적법절차에 따라 노회 재판국에 소원장을 제출했는데 노회서기가 재판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채 목사는 이단사상과 이신칭의를 부정했다는 질의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진 분이라고 전제하고 어렸을 적에 하나님을 몰랐다고 설교한 부분을 이단으로 정죄했다고 말했다. 이 표현이 오해를 주었다면 정중히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7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총회 부총회장 김삼봉 목사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관용 판사는 “피고인들이 재단이사로 재선임 되기 위한 목적으로 정관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이사회 회의록을 변조한 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선고가 다음 재판에서 뒤집히기는 했지만 이 이사회 회의록 변조 사건에는 채규현 목사 재단이사 선임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의혹도 묻혀 있었다. 2011년 2월 14일 광주중앙교회중재위원회(위원장 김준규 목사)는 총회회관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채규현 목사 측과 정규남 목사 측을 각각 불러 현 상황을 청취했다. 채규현 목사 측 관계자로 참석한 고인식·류성선 장로는 “성도들은 현재 채 목사를 중심으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정규남 목사 측 관계자로 참석한 김상술·고용태 장로는 “채 목사의 신학적 문제 해결 없이 조정은 무의미 하고 채 목사가 교회를 떠나고 교회를 나누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광신대 총장이면서 광주중앙교회 불법 임시당회장이 된 정규남 목사는 채 목사와 웨스트민스터 동문임에도 “채 목사가 신학적으로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한 쉽게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며 나름 학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2011년 9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제4민사부는 광주중앙교회 임시당회장 정규남 목사와 고용태 장로 등이 채규현 목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는 광주중앙교회의 대표자로서 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한 채 목사에 대해 정규남 목사가 광주중앙교회 임시당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광주중앙교회 구내에 당회장이나 담임목사로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출입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결했다. 김상술은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2013년 7월 10일 광주고등법원 제1민사부는 선고심에서 광주중앙교회 임시당회장 조경묵 목사 등이 채규현 목사의 교회출입금지 등을 청구한 항소를 각하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전남제일노회 재판국의 채규현 목사에 대한 면직 결정은 효력이 상실되었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를 채 목사에 대한 면직을 무효화한 총회 재판국의 예심판결이 2010년 9월 30일 열린 총회 석상에서 ‘유효한 절차가 행하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종결’되면서 효력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3년 12월 26일 대법원 민사2부는 광주중앙교회 채규현 목사의 교회출입 금지 등을 취지로 한 2013다62018 사건에 대해 상고기각 결정을 내리고, 채규현 목사의 당회장 지위 회복을 인정한 광주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2016년 4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원고 황윤수가 피고 채규현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주문을 하고 다음과 같은 판결을 했다. 이 사건 교회의 적법한 대표자는 피고(채규현)라 할 것이므로 황윤수를 대표자로 한 원고 교회 명의의 이 사건 소는 대표권 없는 자에 의하여 제기된 것으로서 부적법하다. 그렇다면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므로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2016년 10월 27일 채규현 목사의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 장로가 이렇게 말했다. “총회가 채 목사를 떠나서 진정 교회와 교인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론은 총회가 해줄 수 있는 걸 못하고 구실을 못했다는 거예요. 상회비를 납부했고 세례교인 헌금을 전국 2등으로 총회에 냈어요. 채 목사에 대한 총회 결의도 있고 재판도 이겼어요. 채규현 목사가 광주중앙교회를 얼마나 매일 눈물로 기도했고 그 사모가 눈물로 기도하고 여기까지 지켜왔어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못했을 겁니다. 채규현 목사님이나 사모님을 보면 정말로 진실한 교역자구나 하는 걸 알 수가 있어요. 채규현 목사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성추문이나 어떤 문제도 없고 그만큼 깨끗하고 신학적 학식도 높은 분이라는 겁니다. 내가 정말 사람 잘 봤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채 목사님 곁을 7년 동안 왜 떠나지 못하고 맴도느냐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제가 채 목사님한테 이야기했어요. 목사님 내가 하나님 곁으로 가면 내가 삼 일 동안 외롭지 않고 내 가족이 삼 일 동안 쓸쓸하지 않도록 내 빈소를 지켜주실 것을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걸 말했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나와 함께한 목사님하고 교인들 장로님들이 있지만 채규현 목사님이 끝까지 저를 지켜줄 수 있겠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이걸로 다예요. 나한테는 이게 전부였는데 총회에서는 그 고난과 역경과 이 아픔을 누가 보상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나는 그걸 물어보고 싶어요. 이 분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요. 제일 무서운 게 이거거든요. 총회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누구냐. 첫째는 광주중앙교회고 둘째는 채 목사 사모예요. 왜냐하면 목사는 당사자이지만 사모님은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고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모든 그 사업 그 선교원 교육관을 불법으로 차지하고 내주지 않고 버티며 소송하고 대항하니 이 무서운 죄를 누가 다 져야 합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 두려워하고 살아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님 건강하고 참 바르시죠. 진즉 끝날 것인데 대법 판결 난 지 3년 됐고 제99회 총회 때 각하됐으니 그때 끝났어야 해요. 끝난 것인데 또 손대면 안 돼요. 손대면 이건 불법이에요. 일사부재리에 의해 또 하면 안 돼요.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안 되고 총회가 판결했으면 시행하면 돼요.” 채규현 목사가 말을 이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내 편이 아닙니다. 저쪽 이쪽 갈라진 편이 아니고 그냥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장로님들도 확인 위원을 했잖아요. 거기서 뭐가 하나라도 나왔으면 (신앙적으로) 내 편에 설 사람은 없어요. 자기네들이 다 확인했어요. 재정이고 뭐고 다 무혐의가 되니까 마지막에는 이단까지 들고 나온 겁니다. 사실은 이단이 제일 쉬운 건입니다. 나는 그렇게 표현 안했다 하면 끝나는 겁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인데 그것밖에 없는데 이번 제101회 총회 때도 뒤집으려고 별 짓을 다했죠. 그런데 다 끝나고 나니까 지금까지 아무 이야기도 없습니다.” 2년 동안 당회장 채 목사에게서 결재권을 빼앗기 위하여 시계수리공 김상술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2010년 1월 14일 다른 장로와 함께 그를 찾아 왔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그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10가지를 내밀며 당회장의 재정결재권과 인사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목회를 못하도록 교회에서 내 보내겠다며 겁박했다. 그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 뒤 채규현 목사가 지금까지 고소당한 것이 형사와 민사 합쳐서 47건이다. 심지어 어떤 한 건은 10가지 문제로 고발했기에 10건의 고발 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약 60건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 중에 3분의 1 정도가 형사 고발 건인데 채 목사가 고발당해 기소된 적이 한 건도 없이 다 무혐의 처분을 받고 모든 민사소송은 다 이겼다. 2010년 1월 14일에 광주중앙교회는 분쟁이 시작됐으니 약 7년여 가까운 세월동안 고통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와중에 교회 노회 총회와 연관되어 일어난 일은 참으로 많다. 김상술 정규남 김삼봉 서기행 권재호 이승희 등으로 이어지는 일은 조직폭력배부터 최순실까지 이어져 온 나라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닮은 점이 있다. 이 최순실 게이트처럼 김상술 정규남 김삼봉 서기행 권재호 이승희 등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광주중앙교회 게이트로 비화할까 아니면 김상술 게이트로 번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이 종결되면 ‘히포의 어거스틴’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적인 목회자와 위대한 학자가 되었듯 채규현 목사도 ‘광주의 어거스틴’이 되어 우리 교단과 교계를 위한 헌신적인 목회자가 되고 위대한 목회 저술을 남기리라 믿는다. 2016-11-26
    • G.PEOPLE
    • G.PEOPLE
    2016-11-29
  • 다윗의 별 전계헌 목사
    9월 26일 101회 총회 오후 8시 30분 부총회장 입후보자 정용환 김영우 목사 총회 현장에서 후보자격 상실 9월 27일 오전 11시 20분 전계헌 목사 총 투표수 1294표 중 757표 득표 534표의 나학수 목사 눌러 제101회 부총회장 당선 다윗처럼 제101회 부총회장 된 전계헌 목사 제102회 총회에서 우리 총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다윗의 별이 되기를 옛날 총신엔 성경 하나 나 하나 신약 구약 언약 둘 교육전도사들 있었다. 지금은 총회 하나 나 하나 성경 총회헌법 둘 목사들이 있을 뿐이다. 정신도 육체도 돈을 향해 있고 우리들의 피는 위대한 칼빈주의를 위한 빈 칼이 되고 있다. 최근의 밤하늘을 보라.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별들은 자기들의 빛으로 가슴 깊이 감싸 주고 있다.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우리들을 향하여 시내산의 영광 같은 모세의 얼굴빛을 가림 없이 던지고 있다. 근대 이전까지 별은 낭만과 이상(理想)의 상징이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노래하고 스물여덟 살에 생을 마감하고 북간도 용정 교인묘역에 시인 윤동주는 묻혔다. 시인이기도 한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시인 윤동주를 사랑한다. 그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시인 윤동주의 묘역이 초라한 것에 부끄러워 그 바쁜 틈을 내 제101회 총회 한 주 전에 직접 중국 북간도로 찾아가 그 묘역을 새로 단장했다. 그래서 윤동주는 그의 시 “별을 헤는 밤”에서 생전에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라고 붉은 눈시울로 노래했던 모양이다. 오늘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우는 게 괴로워 별을 헤던 윤동주와 달리 우리는 별 밝은 밤에 돈을 센다. 이 지독한 물화(物化)의 터널을 관통하면서 우리들의 믿음은 복을 구걸하는 미신으로 변했다.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우리를 대신해 별이 아픈 자들을 껴안는다. 별이 ‘너 무엇하고 있느냐’고 물을 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응답하면 우리의 마음에 다윗의 별이 탄생할 것이다. 다윗의 별은 헥사그램이라고 하는 삼각형 두개를 엇갈리게 그려놓은 별모양이다. 이것은 ‘다윗 왕의 방패’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기에 새겨진 다윗의 별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 믿음을 지키는 상징이다. 소강석 목사가 사랑하는 윤동주의 고백처럼 별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 가을로 가득 차 있다. 9월 26일 101회 총회 첫째 날 그 밤 8시 30분 충현교회 총회 현장에서 부총회장 입후보자인 정용환 목사와 김영우 목사 모두 총회 현장에서 후보자격을 잃었다. 9시 40분 목사부총회장에 대해서는 후보자 유고시 해당 지역 총회실행위 소집해 후보 추천 받아 선거 진행 한다는 선거규정에 따라 중부호남지역 실행위원들이 모여 제3의 후보를 추천했다. 실행위원들은 총 57명으로 추천 후보수 제한이 없다. 10시 20분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나학수 목사(빛고을노회 광주겨자씨교회)와 전계헌 목사(이리노회 동산교회)가 추천됐다. 제100회 호남중부권역 총회실행위원들은 자체 선거를 통해 두 사람을 최종 목사부총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두 사람에 대한 선거는 시간 관계상 다음 날 치르기로 했다. 9월 27일 오전 11시 20분 전계헌 목사가 목사부총회장에 당선됐다. 전계현 목사는 총 투표수 1294표 중 757표를 득표하여 534표를 얻은 나학수 목사를 누르고 제101회 목사부총회장에 당선됐다. 뜻하지 않게 제101회 목사 부총회장에 당선된 전계헌 목사는 9월 내내 동산교회에서 다윗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다윗도 전라북도 익산의 전계헌 목사처럼 뜻하지 않게 이스라엘 왕이 될 기름부음을 받았다. 성경은 사무엘상 16:1-13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사무엘이 말했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찌니라.”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말했다.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그리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다윗을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다윗은 혈색이 좋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삼상 16:12). 아버지의 명령으로 양을 지키고 있을 때 덤벼드는 사자나 곰을 쳐 죽여 임무에 대한 충실성과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삼상 17:34-36). 음악적 소질이 비상하여 이 무렵 수금을 잘 탄다는 것이 알려졌고 후에는 시도 많이 쓸 정도로 예술적 재능도 있었다. 이것은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제 1의 전기(轉機)이며,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크게 임하셨다. 그러나 그는 일상 자기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제101회 부총회장으로 선택받은 전계헌 목사는 여러 면에서 다윗을 닮았다. 10월 9일 익산 동산동에 있는 동산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마치고 당회장실에서 전계헌 목사를 만났다. -어떻게 신학을 하시게 되셨습니까. “군산 개복교회 담임하셨던 김종석 목사님이 총신 대학원 다니시고 야간에 숭실대 사회복지과를 다니셨어요. 군목으로 제대하신 뒤였죠. 그때 이영주 사모님이 초등학교 교사이신데 저희 고향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소재 가천초등학교 근무를 하셨어요. 그 학교에 저희 큰 형님이 같이 근무를 하셨어요. 형님은 정말 전형적인 인격을 갖추신 교육자이셨어요. 그래서 이영주 사모님이 형님과 같은 학교 근무를 하시다 보니까 저희 형님을 보시고 저를 잘 아시지도 못하면서 이런 분 동생이면 목사님 한 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신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만나기 시작해서 졸업하자마자 저한테 신학을 하라고 자꾸 권하시는 거예요. 저는 신학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목사라면 하늘에 닿는 분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막연하게나마 고등학교 시절 전주에서 이어령 교수나 김형석 교수 강연만 있으면 가방 들고 찾아가 참석을 하는 겁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김종필 씨가 공화당 당의장일 때 전주 삼남극장에서 강연을 하는데 고등학교 때 교복입고 가방 들고 무엇 때문에 거길 참석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교훈 한 가지를 배웠어요. 뭐라고 했느냐면 그 걸쭉한 목소리로 ‘정치란 됫박 속에 있는 된장을 둥근 바가지로 푸는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서 정치라는 게 당회 정치가 됐건 노회 정치가 됐건 하면서 겪어보니 그 생각이 많이 나요. 됫박 속에 있는 된장을 바가지로 푸면 된장이 됫박에 좀 남잖아요. 뭐든 완벽하게 청소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의미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김종석 목사님하고 이영주 사모님 때문에 신학을 하게 된 셈이죠. 어떻게 보면 처음에는 권유를 받고 목사 된다는 건 아이쿠 상상도 못하죠. 그때는 목사님이 하늘에 닿는 분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전주 동부교회 김지선 목사님한테 학습 세례 받았는데 고등학교 때도 신앙생활 열심히 잘 했어요. 학생회 활동도 하고 잘 했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그분들 만나 자연스럽게 신학으로 연결이 된 겁니다.” -고등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전주 신일고등학교요. 때마침 미션스쿨이었어요. 지내놓고 보니까 이래저래 제가 신학을 하게끔 연결이 되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신학을 하게 되었고 목사 교역자 생활은 광주 군산 익산 세 군데에서 했어요.” -그럼 군산에서 교역자 생활하신 게 두 번째입니까. “군산 그렇죠. 두 번째 교역자 생활한 곳입니다.” -거기 계시다 담임으로 익산에 오신 겁니까. “군산 개복교회 갈 때 80년 1월 14일 강도사로 갔다가 거기서 목사 되고 딱 4년 있다 83년도 12월 28일 여기 동산왔습니다. 그때 와서 34년째 있어요.” -지금 이 건물은 목사님 때 지으신 겁니까. “제가 와서 건축을 했죠. 옛날에는 교회가 하도 어려우니까 교역자가 한 달 있다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갈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위임목사는 1대가 백남주 목사 6년 계시다 나주 제일교회로 가셨다가 광주 서현교회로 가셔서 개혁 측 총회장도 하셨습니다. 2대는 11년 계시다 미국으로 가셨어요. 제가 3대 34년 재직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나 오래 있네. 하하.” -목회 신념이 있으시다면.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몇 년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추석 명절에 어디들 가는데 나는 기도원에를 갔습니다. 그때 세 가지 기도제목을 정하고 기도를 했어요. 그게 평생 기도제묵이 될 줄 몰랐습니다. 말씀의 능력 기도의 능력 성령의 충만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게 평생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여기 와서 굳어진 표어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동산교회’입니다. 목사가 원하는 교회도 아니고 교인이나 장로가 원하는 교회도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동산교회입니다. 이것과 더불어 ‘죽어도 예배’ ‘굶어도 십일조’ ‘쓰러져도 새벽기도’ ‘힘들어도 복음전도’ 이것들을 평생 교회 푯대로 삼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 표어들을 시작하셨습니까. “햇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여기 다녀간 분들이 좋다고 채용한 분들이 많아요. 그 중에 목포 백동조 목사님은 부흥회 가는 데마다 전해 아주 그분 것이 되었고 광주 백남선 목사도 세 가지 ‘죽어도 예배’ ‘굶어도 십일조’ ‘쓰러져도 새벽기도’ 딱 써서 액자로 걸어놨더군요.” -목사님이 원조시군요. “그런 셈이죠. 전북기독신문이 있어요. 2년 동안 칼럼을 썼는데 거기에서도 언급을 했고 방송에서도 한번 밝혔죠. 원조라면 원조죠. 백남선 목사도 친구다 보니까 취향이 같을 수 있죠.” -인생에서 어려운 적이 있으셨습니까. “74년 2월 7일 오후 8시 광주 적십자병원 옆 삼거리가 있어요. 친구하고 지나가다 우측으로 커브를 도는데 어떤 차가 나를 쳐서 넘어졌어요. 그런데 나는 어느 상가 윈도우에 박혀버렸습니다. 충격을 받으면서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전혀 기억을 못해요. 나중에 병원에서 보니까 삼손처럼 두 손을 침대에 묶어놨어요. 나는 아파서 몸부림을 하고.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친구가 업고 적십자병원에 갔는데 없어요. 원장도 없는데 왔다 갔다 하다 길에서 원장을 만났대요. 원장이 군의관 출신인데 군대에서 환자가 교통사고로 오면 충격으로 왼쪽 가슴 아래 있는 비장이 터져 죽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에요. 그분이 그 생각을 해서 가운도 안 입고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수술을 한 겁니다. 배를 활짝 열고 보니 비장이 터져 피가 응고되어 있어 비장을 적출하고 내장을 소독약으로 다 소독했다는 겁니다. 좀 안정이 된 뒤에 다리도 수술했어요. 우리 큰형님이 내 수술비 대느라 참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가 몇 살이셨습니까. “스물여덟 살이었죠.” -결혼은 언제 하셨습니까. “스물아홉 살. 결혼 사고 난 그 해 74년 12월 그 사람을 만났어요. 허허. 우리 장인이 박현국 목사님이시고 처남이 박효배 목사님입니다. 당시 어른들은 신학생이 고생 많이 한다는 것 다 알잖아요. 결혼은 안 시키고 싶은 대상이고 본인도 그럴 생각은 도무지 없었어요. 그때 당시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교통사고 나서 1년도 안됐지 광주에서 가난한 신학생 졸업반이지 얼마나 볼만 했겠어요. 그런데다 너무 어려워서 1년 쉬기까지 했어요. 그런 뒤 총신을 갔죠. 허허. 그런데도 1년 후 결혼이 됐어요. 74년도 교통사고 75년도 결혼 78년도 총신 71회 졸업. 하하.” -후유증은 없으셨어요. “감사하게도 운동도 하고 건강해요. 정말 감사하죠. 다 그러잖아요. 살다보면 한 번씩 얻어터지고 정신 차리는 것처럼 교통사고가 나를 목사로 만든 겁니다. 신학교는 갔지만 목사가 되기까지 교통사고가 나를 만들었어요. 결혼할 때도 사람이 염치가 있지 뭐라도 하면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내가 아내한테 말했어요. ‘일생을 살면서 돈이 있든 없든 행복한 사람 별로 없는데 어차피 결혼해 사는데 평생 복음 전하고 살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 말이 좋게 들렸는지 부모님 처남 다섯 처제 한 명 모두 우리 결혼에 반대했어요. 그런데 본인만 결혼한다고 하는데도 본인이 한다니까 결혼이 되더군요. 껄껄. 결혼할 때 우리 집이 전혀 안 믿는 가정이었어요. 큰형님이 총각 집사도 하시고 했는데 나중에 안 다녔어요. 그런 환경이다 보니 나는 신앙적으로 외롭잖아요. 결혼 조건이 무엇보다 믿는 가정이어야 할 것. 둘째 본인이 믿어야 할 것. 그것만 충족되면 되는 거였어요. 결혼도 엄청난 하나님 은혜였는데 정말 믿음만 가진 저를 하나님이 우리 교단의 총회장으로 삼아주셨어요. 총회 다녀와서 처음 새벽기도하며 하나님께 말씀드렸어요. ‘하나님 일 핑계대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총회 일을 맡겨 주셨으니 제가 할 수 있는 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했습니다.” -붙잡고 사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시편 23편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살면서 그것밖에 할 말이 없더군요. 내가 잘 나서 목회하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까지 살 수 있었던 거죠. 형제들 중에 목사가 된다면 형님이 되던 동생이 되던 했어야 하는데 제일 모자란 제가 됐어요. 옛날에 내 이름이 무슨 뜻인 줄 몰랐어요. 계수나무 계(桂) 법 헌(憲) 뭔가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 목사 되고 가만 생각하니까 ‘하늘의 법’으로 살아라 하는 뜻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사모님과 평생 같이 사랑으로 사신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는 아내와 모든 걸 같이 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입니다. 운동을 해도 같이 하고 테니스도 같이 배워 같이 치고 탁구도 같이 배워 같이 쳤어요. 다 처음 배운 겁니다. 나중에 테니스도 잘 하고 탁구는 저보다 더 잘 해요. 저희 노회 대표 선수로 나갑니다. 부부 간에 취미가 달라 따로 놀면 안 되잖아요. 우린 연속극은 별로 안 보고 부담 없이 보고 웃는 개그 프로를 같이 봐요. 런닝맨 개그콘서트 같은 것(좋아하는 음식을 대하는 것처럼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진다) 둘이 같이 보고 웃고 그래요. 우리 애들도 같이 보고 웃어요. 나는 공부를 하든 뭐를 하든 교회에서 합니다. 그게 제 생활 원칙입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면 아주 자유인으로 돌아가 편하게 지냅니다. 아내나 아이들도 다 알아요. 집은 휴식하는 곳이라 책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허물과 격의 없이 가족들과 지냅니다. 아내도 편안하게 해 주려고 (빨래나 설거지도 거든다고 사모님이 말을 거들었다) 노력합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의 어떤 점이 좋으세요. “목사님은 유머스러워요. 그게 좋아요. 노회 행사 때 사모님들도 목사님이 같이 가시면 재미있다고 아주 좋아해요.” 전계헌 목사의 제101회 총회 부총회장 취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가 10월 6일 익산 동산교회에서 열렸다. 이리노회 제67회 정기회 순서로 마련된 이날 노회원들과 조배숙 국회의원, 총회서기 서현수 목사 호남협의회장 윤희원 목사 전북교회협의회장 이리노회 1번 손범성 목사(전계헌 목사 2번) 등 하객들이 참석해 전계헌 목사의 당선을 축하했다. 이날 전계헌 목사의 두 아들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전계헌 목사는 말했다.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뜻밖에 제101회 부총회장 당선의 영예를 누리게 됐습니다. 모든 동역자들과 함께 직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리노회(노회장 정창호 목사)에서는 전계헌 목사에게 기념패를 전달하며 제102회 총회를 준비하는데도 만전을 기할 것을 다짐했다. 다윗처럼 부총회장이 된 전계헌 목사가 제102회 총회에서 우리 총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다윗의 별이 되기를 소망한다.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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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8
  • 총회 뉴 스파크 권순웅 목사
    제101회 총회 뉴 스파크 새 불꽃 총회 부서기 권순웅 목사 3R 공약 첫 번째 R Reformation! 개혁 절대 이권에 개입하지 않고 청탁을 받지 않겠다 두 번째 R Rebuild 재건축 총회를 다시 세우는 일에 최선 노회와 교회가 잘 되게 섬겨 세 번째 R Respect 존중 품격을 세우는 총회 되도록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던 비텐베르크 시는 마르틴 루터 시로 개명된 지 오래다. 오늘날 독일 전 국민의 98%가 루터교인이다. 하나님이 함께한 종교개혁자 한 사람의 영향은 시대를 초월한다. 독일 학교의 방학은 모두 기독교와 연관되어 있다. 매년 10월1일부터 두 주간은 추수감사절 방학이고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부활절에도 각각 두 주간 방학을 한다. 모든 국민은 교회를 위해 종교세를 낸다. 목사는 정부 공무원이며 모든 아이는 유아세례를 받고 13세가 되면 1년간 매주 두 시간씩 100시간 이상 성경을 배워서 14세가 되면 입교식을 한다. 이 날은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다 모여 축하잔치를 연다. 독일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한 사람의 영향이 새 역사를 만든다. 9월 26일 오후 10시 20분 총회임원 선거로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경선이 이루어진 부서기 선거에서 권순웅 목사(평서노회 주다산교회)가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김상현 목사(수도노회 목장교회)를 제치고 부서기에 당선됐다. 능금이 그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지는 이 가을에 권순웅 목사는 제101회 총회 New Spark 새 불꽃이다. 불꽃은 연소(燃燒) 반응 시 빛나는 밝은 바깥 부분이거나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을 띤 기운이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 반송동 160에 2014년 4월 19일 종교부지 2000평 건평 2500평 2500석의 예배당을 최대 저렴하게 최고의 기능을 지향해 세워 2500명 성도를 목회하는 주다산교회의 담임목사다. 세계선교회 전 이사장 김재호 목사는 온갖 비리로 몸살을 앓던 GMS를 바르게 세우고 성장시켰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총회 정치 현장에 3R을 외치며 불꽃처럼 총회 제101회 부서기로 등장한 같은 평서노회의 권순웅 목사에 대해 말했다. “송파구 오금동에서 오금을 못 펴다 동탄 신도시에서 오금을 펴 2500여명의 주다산교회를 목회하는 열정적인 목회자입니다.” 실제로 오금동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갈 때 백토고개에서 잠시 쉬었다가 신하에게 무릎 안쪽의 ‘오금이 저린다’고 말하여 그 후 ‘오금골’이라 불리어 졌다는 설이 있는 지역이다. 1992년 송파구 오금동 30평 상가 교회에서 10여년 목회하다 2001년 8월 천신만고 끝에 동탄 신도시에 땅 640평 매입하고 천막교회를 시작했다. 선교활동에 열심이던 그가 목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은 전 총신대 김의환 총장이 “권 목사 외부 활동을 하는 은사가 있는데 목회를 해라” 하는 권면을 따른 것이었다. 그는 영남대 경제과 재학시절 이념서클을 이끌었던 운동권 출신으로 대기업 마케팅 업무를 보다가 회심했다. 그 후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1989년 총신대 신대원에 들어갔다. 그는 보기와 달리 1955년생이라 총신 78회 정도 되어야 하는데 84회다. 총신대 신대원에 진학한 그는 학교 뒷동산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SPARK(성령의 불씨) 운동’을 목회비전으로 세웠다. SPARK의 S는 scrioture 성경이고 P는 prayer 기도고 A는 action 삶이고 R은 reformation 개혁이고 K는 korea 한국이다. 민족의 개혁운동은 성경과 기도와 삶으로 바꿔야 한다. 스파크는 성령의 불이다. 제101회 총회에 뉴 스파크 새 불꽃으로 등장한 총회 부서기 권순웅 목사가 앞으로 지켜야 할 공약 3R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R은 Reformation! 개혁입니다. 우리 개혁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되 개혁주의 적용은 프로테스탄트입니다. 절대 이권에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청탁을 받지 않겠습니다. 깨끗하게 하겠습니다. 이것이 개혁의 첫걸음입니다. 두 번째 R은 Rebuild입니다. 총회를 다시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회가 생산자 지향주의의 지도적 리더십을 가질 것이 아니라 소비자적 섬김의 지도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회가 잘 되고 교회가 잘 될 수 있도록 섬겨야 합니다. 세 번째 R은 Respect입니다.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품격을 세우는 총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이 새 역사를 만든다. 제101회 총회 새 불꽃 권순웅 목사가 그의 3R 공약대로 개혁주의 장자 교단 총회의 새 역사를 쓰기를 바란다.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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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8
  • 유쾌한 목사 소강석
    유쾌한 사람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지 않아 타인의 문제에 전력을 쏟는 열정적 사람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극소수의 존경받는 리더 중 하나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수많은 교인들도 만나고 싶어 해 정곡을 찌르는 웃음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보카치오(1313-1375)가 '수세기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회화예술에 빛을 던진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와 건축가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이다. 그는 재치 있는 응수로 사회적 지위의 경계선을 허물고 나폴리 군주와 우정을 맺었다. 어느 찌는 여름날 군주가 조토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라면 그림을 그만 그리겠네.” 이에 조토가 이렇게 응했다. “저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폐하라면 말이지요.” 세계 처음으로 본격적인 자기계발서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일 카네기(Dale Breckenridge Carnegie, 1888-1955)는 미주리 주 매리빌의 농장 출생이며 미주리주 워렌스버그에 위치한 중앙 미조리 대학교(University of Central Missouri)를 졸업한 뒤 네브래스카에서 교사, 세일즈맨 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12년 YMCA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화와 연설 기술을 강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사례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며 책 또한 그러하다. 그는 그의 저서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에서 말했다. “유쾌한 사람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론 자신의 일을 전부 제쳐놓고 타인의 문제에 전력을 쏟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힘을 나누어주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 경구에 딱 맞는 유쾌한 목사가 바로 새에덴교회 소강석(蘇康錫, 1962. 2. 22 ~ )이다.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한다. 소강석 목사는 전 세계 교인을 사로잡는 설교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스스럼없이 웃게 하는 유쾌한 유머로 시작해 누구나 감동하는 명쾌한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2016년 3월 3일 오전 7시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열린 제48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는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3.000여 명의 국내외 각계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성공적으로 열렸다, 이날 기도회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함께 참석해 ‘통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민족’이란 주제와 ‘성경적 섬김, 나부터 개혁, 새 마음 국민통합, 경제 재도약, 한반도와 세계 평화’라는 부제 아래 진행되었다. 이날 설교자는 소강석 목사였는데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기여한 한국교회의 역할과 미래의 통일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소강석 목사의 특기인 즉흥 멘트가 박근혜 대통령을 환하게 웃게 만들었다. “세계의 몇몇 유명 여성 정치인들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완전 차별화가 되셨습니다, 그들도 다 나름대로 성공한 정치인들이지만 대부분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고 튼튼한 거구를 자랑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님께서는 여성으로서의 미와 그리고 모성애적인 따뜻한 미소까지 갖고 계십니다.” 1963년 8월 중순 무려 25만 명의 사람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쇼핑몰 앞에 모였다. 초대장도 없고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웹 사이트도 없었던 시절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 1. 15. ~ 1968. 4. 4.) 목사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킹 목사는 미국에서 가장 연설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또 인권 탄압으로 고통을 받던 유일한 흑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킹 목사가 다른 인권운동가와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그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저것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았다. 대신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며 자신의 신념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신념을 믿은 사람들은 그걸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열광적으로 전파했다. 워싱턴의 여름 뙤약볕 아래 그 많은 사람이 모여든 것은 흑백 갈등 차원을 넘어 미국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25%의 관중이 백인이었다고 한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킹 목사처럼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목사이기도 하다. 그는 본래 영성에 도취된 퓨리티(purity) 지향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법무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김승규 장로를 만나 반기독교 세력들의 전략과 공격 그리고 사상적 배경을 알게 되었다. 그 뒤부터 소강석 목사는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는 반기독교 세력에 맞서 이슬람 세력 억제와 동성애 입법 방지 등을 위한 사상전(思想戰)의 선봉장으로 교계 유니티(unity) 지향의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신념의 두 축 퓨리티와 유니티를 위해 한국교회를 섬기고 교계 연합을 위한 한 줌의 중보와 불씨가 되고자 헌신하고 있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삶과 설교 앞에 독자는 즐거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앉아야 할 것이다. 그는 한국의 대표 목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어떤 흠이나 결이 없는 가장 유쾌한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순복음교회 원로 조용기 목사도 아주 좋아한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중 소통 매체인 시성(詩性)을 지닌 시인이기도 하다. 2015년 천상병귀천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어느 모자의 초상〉에 이런 시가 있다. 빈 의자 지하상가 개척교회 예배 시간이 되어도 사람 한 명 없어 장모님과 아내, 아이만 놓고 설교를 하려면 마음이 곤고하여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슴 아팠던 나날들 토요일 저녁이면 지하상가 교회 차가운 빈 의자들을 붙잡고 눈물로 드렸던 기도 “주여, 사람을 보내주소서, 한 명이라도 보내주시면 생명을 걸고 사랑하겠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 하늘에 닿아 목자의 피리소리를 따라 몰려오는 양떼들처럼 구름 같은 성도들을 돌보는 당신의 목동이 되었으니 아, 지하실 교회 차가운 빈 의자여 어둠 속에서 빛나던 영혼의 별빛이여 고독한 소명자의 눈물이 적신 사랑의 목마름이여 이 시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순진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빈 의자」는 소강석 시인이 가락동의 개척교회 시절 겪은 이야기다. 소강석 목사는 1988년 가락동의 한 상가 지하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정말 피눈물 나는 이야기다. 시인의 말처럼 “예배 시간이 되어도 사람 한 명 없어 장모님과 아내, 아이만 놓고” 설교를 해야만 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하상가 교회 차가운 빈 의자들을 붙잡고 눈물로” “주여, 사람을 보내주소서, 한 명이라도 보내주시면 생명을 걸고 사랑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들린다. 소강석 목사의 간증을 들으면 ‘하나님은 꼭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을 믿게 된다. 다음은 소강석 목사의 간증 중 일부이다. “저는 88년도 가락동에서 월세로 처음 교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함께할 개척 멤버나 경제적인 지원 없이 분당으로 옮겨와 그야말로 맨손으로 지금의 새에덴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개척 3년 만에 300명 장년 성도를 돌파하게 되었고 4년 만에 교회 건축 대지 400평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7년 만에 1030평에 달하는 교회 건물을 건축하게 되었으며 1500명 성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특별해서도 아니고 지역적인 조건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오직 7년 동안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눈물의 기도와 전적인 하나님 은혜일뿐입니다.” 지금은 4만여 명의 성도가 새에덴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새에덴교회가 이렇게 빠른 기간 내에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교회 역사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에는 이 시에서 보이듯 성도들을 내 부모님이나 형제처럼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내가 발전하고 싶은 것처럼 성도들의 발전을 돕고 그들의 미래와 행복을 같이 고민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의지하여 따랐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다. 2016년 8월 14일 새에덴교회에서 광복을 기리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당회장실에서 물었다. -피곤하신데 사모님하고 어떻게 결혼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키도 더 크시던데. “그건 내가 책 한 권 드릴 게요. 책에 그 이야기가 다 있습니다.” 그는 차를 가지고 들어온 사무 간사에게 〈맨발의 소명자〉라는 책을 가져오게 해 건넸다. -결혼 이야기가 이 책에 다 있나요. 그는 지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 책에는 그의 장모 정금성 권사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있었다. 광주 신학교 시절 그는 어느 날 무등산 기도원에서 금식 겸 굶식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기도하는 곳 위쪽에서 여자 성도 열대여섯이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소리나 모습이 영적 고단자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리더로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그는 그분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집사님! 저를 위해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저는 기도가 고픈 신학생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가만히 눈을 뜨고 그를 조용히 보더니 말했다. “주의 종이 되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목숨 내놓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요즘 신학생들을 보면 한숨 나올 때가 많아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기도를 했다. 순간 자손심이 상한 그는 중얼거렸다. ‘세상에 저렇게 쌀쌀 맞을 수가 있을까.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저 사람은 영통을 한게 아니라 먹통을 했구먼.’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소리소리 지르며 기도를 했다. “주여! 나를 저런 사람보다 7배 70배 더 큰 기도의 영력을 주옵소서.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 사람들보다 더 큰 사랑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 이 기도에는 억울함이 배어 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진(眞)보다도 선(善), 인간의 행복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라는 것은 자주 지적된다. 그의 저서 라틴어 제목 〈에티카〉(윤리학')가 가리키는 바와 같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도덕을 해명하는 시도(試圖)이다. 그래서 ‘감정의 윤리학자’로 불린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정의한 인간의 48가지나 되는 감정엔 ‘억울함’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한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황에서 억울함을 느끼나. 교통사고가 나도 갑자기 상사에게 혼이 나도 심지어 말싸움을 하다 이겨도 어딘가 손해 본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한국인은 억울함을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서양인은 부당한 대우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자기 나름의 ‘판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강석 전도사도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 억울해서 씩씩거리며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누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군가 보니 아까 그분이었다. 아까는 쌀쌀 맞았는데 지금은 부드럽게 그를 대하니 그는 어리둥절했다. “기도하시는 데 실례합니다만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깊이 기도하고 있는 데 말을 걸어 그만 무심코 그런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알게 된 정금성 권사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주의 종을 잘 섬기시는 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광주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신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그는 기회만 있으면 남산에 올라가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기도하며 이상을 키웠다. “저 넓은 서울 땅! 과연 하나님은 나를 어느 쪽으로 인도하실까. 어느 쪽에서 개척을 하게 하실까.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하나님! 저도 동서남북을 바라봅니다. 저의 갈 길을 보여주소서. 제가 가야 할 곳을 가르쳐주소서. 그리고 개척에 필요한 물질도 예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서울을 내려다보며 이런 기도의 영감 속에 취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오곤 했다. 그때마다 당시 유쾌한 전도사 소강석에게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영등포로 갈까요, 청량리로 갈까요...” 신학원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서울에서 개척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동안 그는 데이트 한번 하지 못하고 서울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신앙생활에 너무 바쁘고 또 전남 화순군 백암리에서 개척한 백암교회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는 연애할 기회가 없었다. 그때까지 여자 손목 한번 잡아보지 못했고 게다가 그것이 죄인 줄 알았다. 그는 이제는 데이트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교회 개척을 하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많은 목사님들의 조언도 뒤따랐다. 총각 신분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왕에 결혼을 할 거라면 개척 전에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결혼할 대상자는 있는데 그 자매가 그하고는 죽어도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안 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만나주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는 것이었다. 그 자매는 기도원에서 만나 알게 된 정금성 권사님의 딸인데, 어머니가 아무리 달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목사 사모는 절대로 안 하겠으며, 특히 소강석 전도사 같은 사람과는 죽어도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어머니 마음대로 마음까지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법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 자매가 저에게 그토록 거부반응을 보인 이유는 어렸을 때 자기 어머니가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믿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닭을 잡아도 자녀들에게는 국물도 맛보이지 않고 목사님께 갖다드리고,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해도 교회에 먼저 갖다 바치고, 소 팔고 논 팔아서 앞장서서 교회 건축헌금을 드렸다는 것이다. 가난한 목사님과 어려운 교회는 보이는 대로 도와주면서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는 데는 거의 신경을 못 썼단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목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기게 되었고 절대로 엄마처럼 믿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기 엄마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는 열성파 예수쟁이 전도사와 결혼을 하라니 펄펄 뛰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키도 작고 못생기고 가진 것 하나 없는 남자니...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키 작은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가난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비로소 제가 키가 작고 못났으며 가난한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밀어붙였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편지를 써도 뜯어보지도 않고 찢어버렸습니다. 편지를 아무리 잘 써도 한 자도 안 읽어보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녀가 간호사로 근무하는 종합병원 옆 다방에서 7시에 기다리겠다고 편지하고 나가면 8시, 9시가 되도록 어항 옆에 앉아 물고기만 바라보다 오기가 일쑤였습니다. 직접 찾아가면 욕세례를 퍼부으며 모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같이 맞받아치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욕을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저와 죽어도 결혼을 안 하기 위한 쇼였습니다. 그렇게 무식하게 행동하면 포기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림없는 생각이지요. 저는 그녀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애 경험이 없는 저는 데이트도 믿음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밀어붙이니까 그녀가 이제는 해외근무 수속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귀찮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아예 해외로 도망을 가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장모님이 되실 정금성 권사님께 무작정 매달렸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딸이 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저렇게 결혼 하지 않겠다고 날고뛰니 나라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차라리 거시기 해 불소.” “예? 거시기라고요?” “내가 방 열쇠를 줄 테니까 거시기 해 블란 말이시...” “아, 네... 거시기요...” 저는 그제야 거시기의 의미를 파악하고 열쇠를 받아 장모님의 뜻을 받들어 거시기(?)를 하기 위해 밤에 그녀의 방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열쇠를 따고 들어가자마자 귀청이 찢어질 듯한 고함소리와 함께 물건들이 날아 왔습니다. 얼마나 모질게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며 발버둥을 치던지 거시기는 고사하고 본전도 못 챙기고 도망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방법이 틀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주일을 작정 기도하면서 전략을 세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충분한 자금을 신청했습니다. 그것을 일주일 내에 주시면 제 전략이 먹혀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3일 만에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것도 미국에 계시던 박종삼 목사님으로부터 돈이 송금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돈을 송금하면 며칠 이상이 걸리는데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미 그 이전부터 예비를 해 주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일주일 후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녀가 근무하는 적십자병원 앞에 저는 뭉칫돈(?)을 주고 택시 한 대를 대기시켜 놓고 잠복근무를 하였습니다. 물론 이 전락은 그녀의 어머니 정 권사님과 짜낸 지혜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잠복근무를 시작한 지 정확히 33분 후 병원에서 다섯 명의 여자들이 나왔습니다. 그중에 권사님의 딸인 배정숙 자매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기도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는지... 저는 그들을 계속 미행하였습니다. 물론 제 뒤로 멀찌감치 택시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적십자병원에서 충정로 쪽으로 가던 중 한 여자가 전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약속이나 모임이 있어 보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머리 모양도 특별히 신경을 쓴 데다 양복에 구두까지 맞춰 잘 차려입은 저는 배정숙 자매 앞으로 가서 입을 열었습니다. “정숙 씨! 어떻게 된 겁니까? 나하고 1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지금 2시가 되었는데, 어디 가는 거예요? 미스 배가 먼저 나에게 만나자고 했잖아요?” 그녀는 얼빠진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간호과장과 수간호사가 있는 곳에서 평소처럼 제게 욕을 퍼부을 수도 없었으니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때 얼굴이 홍당무가 된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습니다. 그 순간 대기시켜 놓은 택시가 제 앞에 와서 섰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러나 엄중한 자세로 그녀를 택시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녀는 그 순간부터 제 일방적인 태도에 압도당했는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침이 마르고 초조했지만 겉으로는 품위 있는 모습을 지키며 여유 있는 체했습니다. 택시는 내장산으로 달렸습니다. 택시 안에서 침묵은 계속되었고 저는 다소곳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벌어진 것입니다. 드디어 내장산에 도착했습니다. 금방 눈에 띄는 벤치로 가서 나란히 앉았습니다. 가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습니다. 한 1분쯤 침묵의 시간이 흘렀을까? 미리 꾸며진 거룩한 각본대로 일어나 정숙 씨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버렸습니다. “주여! 주의 종이 사랑하는 딸의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딸에게 도장 찍어주소서. 결재하여주소서. 목사 사모로 이미 인을 쳐주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소명이 확실한 저 같은 목사 후보생 사모로 도장 찍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내 평생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안수기도를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 기도 덕분에 배정숙 자매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하기도 어색해져서 더 이상 내장산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우리는 바로 차를 타고 다시 광주로 왔습니다. 광주로 오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주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여! 연애하는 데도 뜨거운 소명감이 필요하고 우직한 믿음이 필요하군요. 이제 저의 개척도 절반은 이루어졌네요.” 저는 그 당시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이나 지혜로 발버둥 쳐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를 앞장세우고 영적 생명력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목회를 합니다. 돌아오자마자 저는 결혼 날짜부터 잡았습니다. 12월 26일! 딱 50일을 앞두고 결혼 날짜를 정한 셈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쪽 집에서 펄쩍 뛰었습니다. 방 얻을 돈도 준비해놓지 않은 데다 언제 준비해서 결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는 주제에 무슨 결혼이냐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하며 저는 밀어붙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때마다 항상 정 권사님은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드디어 결혼식. 평소에 존경하던 김창래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당시 신부는 빌려서라도 드레스를 입었지만 저는 헌 양복을 입었고, 길거리 리어카에서 산 1500원짜리 모조 반지가 결혼 예물의 전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특별한 사연이 담긴 우리의 결혼 예물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도선생(?)께서 특별 심방을 와 가져가버렸기 때문입니다. 1500원짜리 모조 반지라는 것도 모르고 그 반지를 가져간 사람은 얼마나 실망을 했을까요.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6년 소강석 목사는 신학교 전 과정을 수박과 오이를 팔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가운데 소명의 길을 밟은 뒤 목사안수를 받으면 비전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란 기대는 몽상이었다, 소 목사는 부교역자로 받아주는 교회 하나 없는 척박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는 하나님의 비전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소망 중에 살아가야 했다. 서울에서 개척한다는 믿음을 갖고 물색한 지역은 그마나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개척을 할 수 있는 ‘가락동’일대였다. 1,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48만원. 지하 23평 공간에서 소강석 목사는 첫 예배를 시작했다. 주일 낮 예배는 몇몇 주민들의 참석이 있었지만 저녁예배는 장모님과 부인 그리고 어린 자녀들만 참석해 힘겨웠다. 그나마 부인은 어린 자녀 뒤치다꺼리 하느라 뒤편에 있어서 장모님과 마주 대하는 설교시간은 매우 어정쩡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하곤 한다. 심지어 예배시간에 오가는 쥐새끼들 때문에 경건해야 할 예배는 어수선 그 자체였다. 그는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은 자신의 삶을 기억하며 낮에는 전도하면서 밤에는 교회당에서 새우잠을 청하고 ‘작정기도 100일 작전’에 돌입하기로 결심한다. 이 때가 비로 후원자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새롭게 각성했던 시기였다. 더 많은 신자를 보내달라고 호소하며 밤을 지새고 또 낮에는 전도하는 반복된 생활하기를 수 백회, 소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부흥의 비전을 확신하는 가운데 고달픈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버텨나갔다. 94년 6월 분당 시대의 개막과 함께 순식간에 부흥하기 시작한 성도들은 5000여 명에 달하고 2005년 7월 3일 용인시 죽전동 산 50번지에 1만여 평 규모의 프라미스 콤플렉스(promise complex :언약복합건물)에서 첫 예배 1988년 11월 가락동 지하에서 처음 예배를 시작한 이후 94년 6월 분당 시대의 개막과 함께 순식간에 부흥하기 시작한 성도들은 5000여 명에 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비좁은 공간 속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질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소강석 목사는 2001년 3월 평양을 방문할 기회를 통해 통일한국 시대의 비전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평양에 있는 창광 유치원을 방문하면서 통일한국시대를 대비한 인재 양성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다. 북한은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창광 유치원에서부터 기르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에서 교회에 돌아온 순간부터 우리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시켜 통일 한국 시대를 짊어지고 갈 지도자로 배출시켜야 한다고 외쳤다. 그 결과 3M(맨손, 맨몸, 맨땅)으로 시작된 새에덴교회의 역사는 창립 17년 만인 2005년 7월 3일 용인시 죽전동 산 50번지에 1만여 평 규모의 프라미스 콤플렉스(promise complex :언약복합건물)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2016년 7월 27일 약속보다 반시간 늦은 오후 2시 30분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새에덴교회 집무실에서 소강석 목사를 만났다. 그는 내가 늦는 바람에 점심을 여유 있게 먹었다고 웃으며 예의 그 달변의 입을 먼저 열었다. -목장 기도회 때 제 설교 들으셨나요. “광명교회에서 못 들었습니다.” -뭐냐면 지금 한국 교회가 빨리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목회 생태계 교회 생태계 환경을 지키고 복원하는 것입니다. 왜 여기에 관심이 있느냐. 생태계가 무너지면 우리 생존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사막화 되고 황폐하게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 생태계가 급속도로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걸 모르니까 교단 안에서 분쟁이 잦은 겁니다. 이거 아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요. 이건 내가 국정원장을 지내신 김승규 장로에게서 배웠습니다. “명성교회 장로죠.” -네 아닙니다. 할렐루야 교회 장로죠. 그분한테 배워가지고 또 따로 전문가들한테도 배웠습니다. 제가 얘기 좀 쭉 하겠습니다. (인쇄물을 보이며) 여기 있지만 글과 말은 또 다릅니다. 영국이 어떤 나라였습니까? 전 국민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소강석 목사의 기억력은 뛰어났다. 영국교회는 사상전과 영전을 하지 못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부흥 운동과 선교 운동을 주도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국에도 성경의 권위에 도전을 하고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려고 하는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정서는 반기독교적인 문화와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화와 제도가 입법화로 가게 되었습니다. 영국교회는 입법화로 가기 전에 사상전과 영전을 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교회는 이런 시대적 트렌드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알고 교회들이 함께 연합하여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기독교적인 사상과 정서를 막아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영국교회의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노터치하겠습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개교회의 목양을 하는 데만 집중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35년, 40년 후에는 영국교회가 완전히 박살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기독교인이나 다름없던 나라가 지금은 기독교 인구가 겨우 2% 밖에 안 되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반대로 이슬람은 8%가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테러문제로 몸살을 앓고 두려워 떨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도 사상전을 하고 영전을 잘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당면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목회 생태계와 교회 환경을 복원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회를 개혁하고 부흥의 터보 엔진을 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목회 생태계가 복원되어도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부흥하지 않으면 안 돼요. 셋째, 다음세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고 신앙을 계승해주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교회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목회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생태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아십니까? 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기후변화협약까지 하며 자연 생태계 복원을 위해 목매고 있습니까? 환경, 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생명 사회가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관상이라는 영화를 보면 조선 최고의 천재 관상가 김내경이 어느 바닷가에서 한명회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이거늘, 나는 파도만 보았지 바람은 보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관상만 보았지, 보이지 않는 시대정신과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거예요. 우리 한국교회도 파도만 보았지 바람은 보지 못했어요. 다시 말하면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이 왜 불어오는가, 그런 파도를 일으키는 원인인 바람을 볼 수 있어야 했어요. 그리고 그걸 보고 한국교회가 깨어 일어나고 연합하여 사상전, 영전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어야 해요.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이러한 사상전, 영전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다 개교회 목회와 개교단 위주의 각개전투에만 머물러 있었어요. 아니, 한국교회는 다툼과 분열의 블랙홀에 빠지게 된 거예요. 개교회도 계속 서로 내부 파워게임을 하는 교회가 많았고 교계가 교권 싸움으로 연속을 했어요...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목회 생태계를 지키고 복원할 수 있습니까? 1)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저도 가락동 23평 지하실에서 개척교회를 할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개척 멤버 한 명 없이 지하실에서 개척해서 죽어라고 전도하여 양육해 놓으면 주변에 깨끗하고 시설 좋은 교회로 가 버리는 거예요. 저도 과거에 이런 아픔을 겪어 보았어요. 목회생태계가 살아 있을 때는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사람이 옮겨도 또 다시 새로운 성도들이 왔지만, 지금은 더 이상 작은 교회에 교인들이 오지 않아요. 왜냐면 이런 수평이동의 선순환 생태계가 다 깨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로칼 처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공교회로 존재해야 해요. 우리 지역에도 공교회가 이루어져야 하고 교단 안에서도, 한국교회 안에서도 공교회를 이루어야 해요. 선교신학자 랄프 네이버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지역교회 담임목사들은 교회가 성장할수록 자신만의 성을 쌓으려고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지 말고 그 지역 안에 하나님의 도성을 쌓아야 한다고 권면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캐슬 빌더(castle builder)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킹덤 빌더(kingdom builder)가 되라고 하는 거예요. 2) 신앙과 신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 하는데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purity)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퓨리티의 신앙에 목숨을 걸어야 해요.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는 전략 중의 하나가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을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언약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정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레위기의 가르침대로 정결을 갖추어야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거룩(holiness)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순결(purity)이나 정결(cleaness)은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레위기의 목표는 거룩이지만 거룩에 참여하고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정결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 하는데 정결한 영성, 순결한 신앙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더렵혀진 신부가 어떻게 신랑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의 정결,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할 수 없어요. 일제시대 때도 얼마나 신사참배 문제나 이런 것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더럽혔습니까? 영적 간음을 하게 된 것이에요.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종교인들까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문화적 행위라고 변명하며 신사참배에 동참했어요. 그때 주기철 목사님은 아녀자에게 정절의 의무가 있듯 신앙인에게는 믿음의 정절이 있어야 한다며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어요. 그러나 계속되는 일제의 폭압으로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등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조선예수교장로회마저 1938년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아요. 그때 주기철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세상의 명예와 권력 앞에 믿음의 정절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었다”며 통회합니다. 그리고 “칼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내가 그 칼날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외치며 순교의 길을 가다가 결국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옥중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 교회가 지원을 해서 일사각오라는 영화로 제작이 되어 상영이 되었어요.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었는지 모릅니다. “과연 우리는 주 목사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산정현교회를 생각할 때, 오늘날 한국교회의 자화상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오늘날 우리의 잘못으로 목회 생태계가 깨져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3) 서로 연합하여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막아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반기독교 정서가 교회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은 반기독교적인 정서뿐만 아니라 안티크리스천의 공격이 얼마나 주도적이고 전략적으로 공격해 오는지 몰라요. 물론 이런 일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는 핍박과 박해로 무너뜨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주 보이지 않게 사상전 영전으로 공격해 오고 있어요. 그런데 이 사상의 기본은 신마르크스주의입니다. 신마르크스주의(Neo Marxism)는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드 심리학을 아주 교묘하게 접목하여 만든 것인데 한마디로 무신론적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이 절묘하게 결합된 사상입니다. 내용은 무신론이지만 겉으로는 평등, 인권, 박애,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의 권익보호, 공동체 등을 추구합니다. 바로 이 네오마르크스주의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진보 사상과 신좌파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평등 인권 박애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 권익보호 공동체 등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무신론적 사상이 끼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성도 평등을 부르짖으면서 동성애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동성애를 통한 성정치를 펼치기 시작한 거예요. 신마르크스주의를 창안한 빌헬름 라이히가 근로자들의 정신치료를 해주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었는데, 좁은 국민주택에서 사는 노동자들이 신경증이나 노이로제에 많이 걸려있더라는 거예요. 그 이유를 분석해보더니 성적인 억압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작은 집에서 부모님도 모시고 애들도 우글우글하지요, 그러다보니 부부간에 원만한 성생활을 못해 성적 억압이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그 때 그는 깨달았어요. “아, 이것이다. 사람은 성적 욕구를 잘 풀어줘야 한다. 누구나 평등하게 성적 욕구를 발산시켜줘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성정치를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정치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정치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인간에겐 성적인 억압부터 풀어줄 필요가 있다. 제한받고 있는 성적문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 바로 이것이 그가 주장한 성정치 이론이었습니다. 성정치 이론에 의하면 억압된 성적 욕구는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 파괴적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개인의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발산하고 자유롭게 분출할 때 개인도 행복하고 이 세상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의 세상을 맞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들은 가정의 고정관념부터 깨는 운동을 합니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서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남자끼리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여자끼리도 마음만 맞으면 얼마든지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거지요. 따라서 신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공격 목표는 기존 제도권의 가정과 학교에요. 그래서 어떻게든지 가정과 학교를 무너뜨리려고 해요. 그리고 교회를 공격해요. 특별히 대형교회를 공격해요. 그래서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통 교육부터 공격하는 거예요. 그리고 전통적인 성의 규범과 구조에서 해방을 하도록 충동하고 선동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자체에서는 어떻게든지 학생들의 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안절부절 합니다.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고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거든요. 이것이 바로 성정치와 네오마르크스주의의 목표이거든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그래도 그 사람들 불쌍하니까 그냥 자기들 맘대로 살도록 놔두면 안 됩니까.” 물론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그들이 소수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하니까 그런 거예요. 자기들 좋은 대로 살면 누가 뭐라 하겠어요. 동성애자들을 보호한다고 소수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다수의 인권이 역차별을 받게 되거든요. 특별히 소수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목사가 교회에서 이런 설교도 못해요. 이런 설교 했다간 당장 조사를 받고 처벌을 받게 돼요. 그러면 목회 생태계가 저절로 파괴될 수밖에요. 또 어떤 분은 우리나라에 동성애자들이 몇 명이나 되고 영향력이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느냐고 생각할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동성애를 연구를 하다 보니까 동성애가 이슬람이나 이단, 안티 세력과도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이 세력이 엄청나게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대해 말하려면 한이 없겠습니다. 이슬람은 절대로 기독교를 용납하지 않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러한 세력이 안티크리스천들과 연합을 해서 한국교회를 전략적이고 주도면밀하게 공격을 해 오고 있어요... 그래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는 일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그런 교회라면 함께 연대해서 이슬람을 막아내고 동성애를 막아내고 이단을 막아내야 해요. 그렇게 해서 목회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 필요해요. 물론 이 일이 어려운 일이기도는 합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퓨리티(purity)와 유니티(unity)의 갈등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까 내부의 소모전을 하다가 공멸의 나락으로 추락했던 거예요... 물론 우리 한국교회도 과거에는 암묵적으로 교회 간의 경쟁, 교단 간의 경쟁이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요. 미국도 보십시오. 미국이 기독교 국가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독교 국가도 빌리 그래함 이후에 연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없으니까 다 개교회주의로 빠져 버렸어요. 개교회, 개교단주의에 빠지고 큰 교회 목사들 간에 스타플레이를 하다 보니까 세상에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여러분은 〈신은 죽지 않았다〉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세상에 수업시간에 교사가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고 고소를 당해 법정까지 서게 돼요. 미국도 이런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작년에 미국 연합집회를 갔을 때 동성결혼법이 통과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집회를 했던 교회에 7천 만이나 되는 큰 교단을 이끄는 총회장이 참석을 한 거예요. 우리나라 인구보다 더 많은 성도들을 이끄는 총회장이에요. 그래서 그날도 총회장 전용기를 타고 올 정도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인사말을 하는데 자기는 변호사 출신이라 동성결혼법이 통과된 것에 대해 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로 성명서를 냈다는 거예요. 제가 그 말을 듣고 하도 열이 받아서 강단에 올라가 예정에 없었던 동성애 설교를 해 버렸어요. 그랬더니 성도들이 태어나서 이런 설교는 처음 들어본다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와 동행했던 기자들이 동성결혼법 통과에 대한 미국 교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 몇몇 교회들을 탐방하고 왔는데, 한 군데도 동성결혼법 통과에 대한 주보 광고나 반대 설교를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강단에서 설교하면서 그 총회장님께 공개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총회장님, 성도가 7천만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함께 연합해서 동성결혼법을 막아야지요. 만약에 워싱턴 광장에서 미국 교회 성도들이 백만 명만 모여서 반대 집회를 했다면 절대로 동성결혼법은 통과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총회장도 내 말이 맞다는 거예요... 영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1966년 런던목회자협의회에서 존 스타트목사가 로이드 존스 목사를 강사로 세웠어요. 그런데 로이드 존스 목사가 너무 독선적 강의를 한 거예요. 그러자 그 후로 존 스타트 목사가 로이드 존스와 결별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영국교회가 갈라지면서 힘을 잃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나 현안에 대해서 전혀 노터치를 한 거예요.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개교회 목회만을 한 거예요. 그러다가 영국교회도 망한 것이 아닙니까? 장자교단이라면 이런 장자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학과 교리가 다르면 큰 형님이 야단도 치고 가르치면서 우리를 따라오라고 하면서라도, 이런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너네들은 우리와 다르니까 니들끼리만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옛날에도 종갓집이 종갓집 역할을 잘해야 집안이 잘 되었어요. 장손이 장손 역할을 잘 해야지 무능하고 역할을 못하면 못난 동생 놈들이 육갑을 떠는 경우가 있어요. 동생들이 육갑을 떨면 집안이 자칫 망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목회 생태계를 지키고 복원해야 해요. 그리고 우리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를 지키면서 함께 연대해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야 해요. 그러려면 사상전, 영전을 잘해야 해요. 그리고 때로는 정책적 연합을 해야 해요. 우리 교단이 좀 영향력도 발휘하고 기수가 되어야 해요. 저는 이러한 일을 10여 년 전부터 해 왔어요. 10여 년 전부터 동성애를 막기 시작했고 8-9년 전부터 이슬람을 막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일을 하면서 테러 위협도 받았어요. 심지어는 어느 국가 기관에서 테러를 대비해서 신변보호를 해 준 적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목회 생태계를 복원한다고 언론 대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을 만나려고 국회를 들락날락했어요. 모든 제도와 문화는 사상과 철학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사상과 철학은 반드시 입법화로 갑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를 들락날락하며 동성애법을 막고 작년에는 교회 과세 문제를 은밀하게 막았어요. 그러다보니까 저 보고 정치목사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교회 생태계를 보호하고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세력의 공격을 막는다는데, 누가 정치 목사라고 하겠습니까? 이 모든 일이 목회 생태계와 관련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교단이 앞장서서 한국교회의 목회 생태계를 지키는 일을 해야죠. 우리 교단이 자기 왕국을 세우는 캐슬 빌더가 아니라 킹덤 빌더가 되어 한국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면서 생태계를 복원하고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1시간 40분에 걸친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나만을 위한 열정적인 일인(一人) 특강이 끝났다. 오후 5시 그는 수요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그는 3층 당회장실에서 교회 밖 건널목까지 배웅해 주었다. 2016년 8월 14일 광복을 기리는 예배를 드린 뒤 교회를 방문한 문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한 뒤 간신히 짬을 내 만났다. 피곤해 한숨을 쉬는 소강석 목사는 내가 물을 두 가지가 뭐냐고 힘든 표정으로 물었다. -한 가지는 생략하고 앞으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 정말 건강관리가 제 숙제입니다. 건강에는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쉬는 게 제일 중요하더군요. 내가 해 보니까. 그래서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는 게 말입니다. 나는 골프도 못 치고 다른 특별한 운동도 못 합니다. 뒷산이 있어요. 뒷산 가서 장로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친교합니다. 때로는 혼자라도 밤에 산에 가서 명상하는 그것이 아직까지 버티게 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제 과제는 휴식입니다.” -그런데 시간 관리가 무리이신 것 같은데요. “아! 휴식. 지금 사실은 월요일은 뮤지컬도 가야하고 그리고 모임들 8·15 행사...” -주보에 나온 목사님 일정만 봐도 숨이 막히던데요. “또 동성애 모임 뭐라더라 아 그 지난번에 집회한 것에 대한 뒷관리...” -저는 예배드리고 뵈면서 이렇게 하시면 앞으로 얼마나 가시겠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요. 지도자이신데 지쳐 계시고. 메시지에서도 강단 위에서도 너무 안타깝고... “아휴.” -목사님 설교를 세계 사람들이 보는데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 보이면... 설교 횟수를 좀 줄이셔야겠어요. 주일 설교를 두 번만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부목사들도 많던데(32명). “부교역자들이 많이 있지만 설교는 은사가 있어야 됩니다.” -물론 은사가 있어야 되죠. 그래도 소 목사님이 줄이시면 참석 교인이 두 배로 늘어날 겁니다. 세 번 나눠 참석하던 교인들이 두 번에 다 모여들 겁니다. 한 번이라도 쉬시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1부는 중직자들이 참여해요. 세 번 해도 아무 문제없어요. 김삼환 목사도 세 번 해요. 일단은 제가 4부하고 5부는 영상예배로 드리고 축도해요. 저녁예배 때는 여섯 번 하게 되니까 정말 죽어요. 저번 수요일 오셨던가요. 그때는 여덟 번 설교했어요.” -사람들이 말하듯이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앞을 바라보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 좀 드려야겠다 싶어 그냥 가려다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겁니다. 지도자는 가급적 시간과 건강을 아끼셔야 합니다.“ 2016년 8월 31일 오후 8시 70을 바라보는 김문기 장로가 르디님 성가대에서 찬양하는 수요예배 설교 중 소강석 목사는 말했다. “참 옛날에 점쟁이가 예언을 하는데 큰 아들은 관운이 많고 그렇게 만사형통을 한다는데 나는 빌어먹게 생겼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 하나님한테 빌어먹고 살고 있어요.” (양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한다. 회중 박장대소.) 세상에 소강석처럼 유쾌한 목사는 없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숨을 참고, 손을 가지런히 하고,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문득 ‘나는 누굴까’ ‘여긴 어딜까’ 따위의 존재론적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왜 사냐고 묻거든 그저 웃지요’다. 그러나 유쾌한 목사 소강석이 3M 목회 과정에서 자신의 벽 앞에서 취한 믿음의 자세는 내가 보기에 사뮈엘 베케트의 장편소설〈이름 붙일 수 없는 자〉중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름도 없고 팔다리도 없는 주인공이 몸통과 머리만 남은 채 단지에 들어가 어느 식당의 메뉴판 노릇을 하면서 말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위대한 정신은 늘 임계점(臨界點) 가까이에서 그 너머를 꿈꾼다. 사상이 한 경계를 넘을 때 세계가 발전한다. 그래서 세상엔 아직도 다른 세계를 꿈꾸는 자들이 남아 있다. 우리 주변에는 극소수의 존경받는 리더와 대다수의 실망스러운 리더가 존재한다. 늘 그래왔고, 또 늘 그럴 것이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극소수의 존경받는 리더 중 하나다. 그래서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수많은 교인들도 그를 즐겨 만나고 싶어한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 그가 교단 지도자 되어 우리를 유쾌하게 해 주고 우리 믿음을 명쾌하게 해 주기를 소망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신명기 34:10-12 201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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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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