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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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총회선거법 전환 의견
    산업시대 이전에 창궐한 질병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위생적인 시설도 없었거니와 의학 기술도 덜 발전하여 치료제도 없었고 영양 결핍으로 면역력 또한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질병은 과잉에서 비롯된다. 재판 몸살에도 이재명이 설치는 신자유시대의 질병은 우울증이다. 상품과 화폐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꿈꾼다. 이를 위해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Yes, we can!”). 그러나 누구든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 문화는 외부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자아는 피곤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우울증을 낳는다.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가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드는 시대에 개인은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구실'이 되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구청 직원 같은 이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이재명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한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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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더굳뉴스] 성석교회의 길
    7부 16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는 비자발적 기억에 대해 고찰한다. 그 유명한 ‘마들렌 에피소드’가 소개되는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비자발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아주 오래전 기억도 익숙한 냄새, 맛, 소리, 촉감 등 여러 가지 감각에서 환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면의 굴곡이 많아 험한 길이 기구(崎嶇)다. 산길처럼 다니기 고단한 길은 험준(險峻)이나 험조(險阻)라고 적는다. 굽이가 많아 에돌아가거나 통행이 까다로운 길의 상황은 우회(迂回)와 곡절(曲折)이다. 평평한 길로 보이지만 성석교회 안에는 구덩이가 팬 곳이 많다. 중국에서는 그 구덩이를 감가(坎坷)라고 곧잘 표현한다. 아예 함정(陷穽)으로 적기도 하고, 혹은 요철(凹凸)로도 부른다. 요즘 중국 매체들이 잘 쓰는 말은 김화경의 '걍'이 아닌 ‘갱(坑)’이다. 구덩이를 일컫는데, 단어로는 광산의 갱도(坑道)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성어로는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땅에 산 채로 묻었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친숙하다. 이제는 아예 유무형의 함정을 파서 사기를 치거나 해코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언뜻 평탄해 보이는 김화경의 길에는 이런 ‘구덩이’가 참 많을 것 같다. 총회나 성석교회 실세들이 통제를 잃으면서 생긴 윤리의식의 위축은 그를 더 심화했다. 그래서 성석교회라는 갱에 들어선 길은 늘 만만찮다. 신중하게 나서야 할 성석교회의 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5-7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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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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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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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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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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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병욱vs송태근
    1954년 2월 2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에서 첫 예배를 집행했고, 3월 1일 창립예배를 드렸다. 같은 해 5월 용산구 청파동으로 교회건물을 이전했다. 1955년 12월 한병혁이 초대 위임 목사로 부임했다. 1976년 7월 16일 김영규가 2대 위임 목사로 부임했다. 1993년 12월 25일 갓 30세에 전병욱 목사(총신 84회)가 3대 위임 목사로 부임하여 80명의 신도를 15년 새 출석교인 1만6000여 명으로 200배 성장시켰다. 2008년 10월 기준이다. 본당만으로 참석자들을 수용하기가 곤란해지자 1999년 3월부터 인근의 숙명여자대학교 대강당을 빌려 주일예배를 드리며, 이후 교회건물을 신축 및 매입하여(B, C관) 수용능력을 늘렸다. 숙명여자대학교 측과의 임대계약 만료로 대강당 예배를 2009년 3월 말 종료했다. 신도 중 1만 명 이상이 미혼 청년들로 교인 평균 연령이 26.9세인 교회. 교역자 12명, 장로는 7명에 불과한 교회의 담임 전병욱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이렇게 갈파했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이 가장 영적으로 갈급해 하는 것은 바로 정체성과 소통의 문제입니다. 정체성과 소통도 모두 하나님과의 만남이 부재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회 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추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가장 강하게 안정시킨 시점에 다윗이 실족했던 것처럼 신자의 수가 2만2천여 명으로 치솟고, 현금만으로 마련한 예배당을 포함해 3개의 건물(A, B, C관)과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의 기도원이 있고, 미자립교회를 100만 원씩 1000개 교회(전병욱 목사 재직 당시 100개 교회를 도움)를 돕기 위한 저수지 교회로서의 자금 370억 원(헌금만으로 모인 돈)을 달성한 시점에 전병욱 목사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은밀한 사실이 다윗의 밧새바 사건처럼 세상에 드러났다. 그는 그 일로 청파동 언덕의 아담한 교회를 엄청나게 키워 언덕에서 평지에 우람하게 자리 잡고 군림하던 삼일교회 당회장 직을 내려놓고 이런저런 명목아 붙은 13억의 전별금을 받고 사임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일 그는 교회 내에 아무런 분규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굴욕적인 이행각서에 서명까지 한 뒤 교회를 떠났다. 전병욱 목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세였고 그들은 전병욱 목사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여느 목사들과 달리 교회의 안정을 위해 그들을 잠재우고 2만이 넘는 신자와 370억 원의 현금도 고스란히 물려주고 교회를 사임했다. 삼일교회 당회(임시당회장:길자연 목사)는 2012년 5월 27일 당회를 열어 청빙위원회가 추천한 송태근 목사(총신 79회)를 청빙키로 만장일치 결의했다. 당회는 송 목사에 대해 “복음적 설교에 탁월한 은사가 있으며 청년사역과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가지신 분”이라며 후보 선임 이유를 밝혔다. 송태근 목사가 10월 10일 삼일교회 제4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송 목사는 이날 위임목사 취임예배에서 “무언가 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다”며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을 삼일교회 성도들과 묵묵히 죽기를 각오하고 순종하겠다”고 인사했다. 송 목사는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송 목사는 “상처 입고 만신창이가 된, 씻을 수 없는 오욕을 겪은 피해 자매들에게 삼일교회 공동체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밝히고, 설교단 옆에서 머리 숙여 사과 인사를 했다. 이어 송 목사는 “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송 목사는 또 전병욱 목사 사건과 이 한 목회자의 문제이기 이전에 삼일교회 공동체와 한국교회 공동체의 문제라고 밝히고, “다시 한 번 철저히 회개하고, 재발방지에 혼신의 힘을 다하며, 교단과 한국교회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13일 10시 은석교회당(김진웅 목사)에서 제175회 평양노회가 개회했다. 노회장 강재식 목사의 사회와 설교로 진행된 개회예배는 김선규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또 다른 관심사로 떠 오른 삼일교회 전 담임 전병욱 목사에 대해서는 재판국을 설치하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회의 시간 연장을 해가며 3시간 넘게 증경총회장 이성택 목사와 교계의 거목 길자연 목사의 권면과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후임 송태근 목사의 끈질긴 현장에서의 면직 요구와 회원들의 공방을 거친 뒤 평양노회는 재판국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발언대에 선 원로 이성택 목사는 이미 시벌을 당해 교회사임을 한 목사를 면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이어서 길자연 목사는 이미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합의도 이루어진 사건에 대한 면직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권면했다. 삼일교회 당회는 전병욱 목사의 전별금 13억 4500만원 중 퇴직금을 제외한 12억 3500만원에 대해 반환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문제가 있는 총신 84회 전병욱 목사를 면직하자는 총신 79회 송태근 목사는 삼일교회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아니면 최소한 얼마나 안정이라도 시켰는지를 묻고 싶다. 노회 현장에서 발언에 나선 한 목사는 삼일교회 이광영 장로에게 언제는 전 목사가 별 죄가 없다며 옹호하더니 이제는 면직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물었다. 이광영 장로는 당시는 세상에 전병욱 목사만 목사였는데 현재는 전병욱 목사만 파렴치해 목사라고 할 수 없어 면직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요즈음 교회의 풍토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목사가 사임하고 나면 장로가 그 교회의 실세가 되는 게 다반사이다. 아마 삼일교회의 송태근 목사는 그 교회에서 설교나 행정력에 있어서 별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총신 선배이면서 삼일교회 후임자이기도 한 송 목사가 전 목사의 면직을 고수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줄어드는 교인 때문이라면 설교와 기도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부임 때의 “오직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들을 삼일교회 성도들과 묵묵히 죽기를 각오하고 순종하겠다”하는 말을 따라 청년사역과 선교에 대한 강한 사명감을 가졌다니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일들에 죽기를 각오하고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성장시킨 큰 교회와 많은 교인과 370억의 현금까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으로 포기하고 찾기도 힘든 홍대 근처 건물 2층에서 청년 선교에 힘쓰고 있는 전병욱 목사를 비난하고 면직을 획책하는 행위는 어디에서 배우고 익혔는지를 묻고 싶다. 전병욱 목사가 개척한 것 때문에 삼일교회 교인이 반 이하로 줄었다고 생각한다면 홍대새교회를 제 발로 가서 라반처럼 확인을 해보기 바란다. 삼일교회의 교인이 줄어든 만큼 홍대새교회가 늘어났다면 1500여 명에서 1200여 명으로 줄겠는가. 송 목사는 무엇보다 전병욱 목사 사건과 관련해 삼일교회 부임 시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듯이 행여 마음속에 드는 여자 생각과 눈초리조차 조심하며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족처럼 덧붙여 한때 국민은행 지점장으로서 전병욱 목사의 배려의 혜택과 신앙의 가르침을 입은 나원주 장로가 훌륭한 담임으로 모시고 있는 송태근 목사가 열심히 전병욱 목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고 있음에도 얼굴을 들기 힘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전임 목사님이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을 비난하고 폄훼하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지 않는 행위이고 송태근 목사의 훌륭한 가르침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행태임을 알기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누가복음 6:40-44 2015-05-06
    • G.OPINION
    2015-05-06
  • 러브 바이러스
    2000년 ‘I LOVE YOU’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통해 확산된 러브 바이러스는 그 확산 속도가 대단히 빨라 전 세계의 컴퓨터를 거의 감염시켜 마비시켰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사랑을 고백하는 메일 제목에 사람들이 현혹된 까닭이었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그 한 마디에 사람들이 그토록 현혹되었을까? 사랑은 - 생명 이전이고죽음 - 이후이며 -천지창조의 시작이고지구의 해석자 시라기 보다는 마치 잠언 같은 이 짧은 시는 영미문학을 통해 가장 위대한 여류 시인으로 평가되는 에밀리 디킨스(Emily Dickinson, 1830~1886)의 작품이다. 사랑이야말로 ‘천지창조의 시작’이며 ‘지구의 해석자’라고 정의한 에밀리 디킨슨의 삶은 역설적으로 매우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것이었다. 55년 5개월 5일을 살고 나서 죽을 때까지 표면적으로 아무런 극적 사건도 없이 평범했지만 내면적으로는 골수까지 파고드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삶이었다. 그녀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한 번도 엠허스트를 떠나지 않은 것은 물론 자기 집 대문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에밀리 디킨슨에게 사랑은 마치 종교와도 같은 것이었다. 1862년 그녀는 가깝게 지내던 홀랜드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업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천상의 왕이라 불리는 것보다 차라리 사랑 받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렇듯 지상의 사랑을 참된 신앙으로 보는 이상주의는 애당초 고통을 수반하게 마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사랑은 언제나 이별의 슬픔과 기다림의 갈증을 견뎌내야 하는 아픈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필연적 고통은 그녀로 하여금 시인으로 새로 태어나고 시의 세계에서 삶의 의미와 출구를 찾게 했다. 그녀의 그런 사랑은 체호프의 작품 『귀여운 여인』에 나오는 올렌카의 아름다운 마음이 지닌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퇴직한 팔등문관 플래먀니코프의 딸 올렌카는 자신과 관련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 전심전력을 다해 사랑한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여인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마음이 여성의 참모습일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그러한 능력을 조금도 흉내 낼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을 가장 가까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숭고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훌륭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수행해왔고 지금도 수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질 것이다. 여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하는 사랑의 행위는 남성에게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위스의 의학자와 화학자 그리고 위대한 연금술사였던 파라셀수스(Paracelsus, 1493~1541)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한다.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그러나 이해하는 자는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사랑은 더욱더 위대해진다……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다. 파라셀수스는 여러 전기나 자료를 봐도 결혼은 한적 없지만 그의 곁엔 언제나 아름다운 여인이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랑과 지식은 비례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겠는가! 세상을 오래 살고 지식을 쌓고 그에 걸맞은 지혜를 갖추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도 언론은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전달하느라 분주하기 짝이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어찌 문제나 갈등이 없을 수 있으랴.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갈등의 근본 원인은 적대적 잡초관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잡초로 규정하고 없애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 말이다. 교단의 노회와 총회 내에서의 여러 분쟁으로 인한 소송과 재판 과정을 보면 믿음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2015-04-23
    • G.OPINION
    2015-04-23
  • 설교자의 영광을 회복하자
    개신교는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중요한 위치에 두셨고 그의 구속 계획을 말씀으로 진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은 말씀으로 창조의 과정을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묘사하기위해 “하나님이 이르시되”(창 1:3, 6, 9, 11, 14, 20, 24, 26)를 8회 사용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상을 바로 세우고,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다(요 1:1-2). 요한 사도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그 말씀이 곧 예수님이심을 증언 한다(요 1:1). 그래서 요한 사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쓴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역사 진행을 위해서도 말씀의 역할이 중요함을 가르친다. 우리는 성경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생긴다(롬 10:17). 그러나 그 믿음은 우리 안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그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들을 위한 것으로 믿어 구원을 받는다(롬 10:9-10). 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고 증언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구원의 시작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처럼 ‘성경 말씀’ 혹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 세상’을 ‘오는 세상’으로, ‘죄인’을 ‘의인’으로, ‘세상 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말씀은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독교 신문들이나 인터넷 그리고 심지어 일간 신문들까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교회를 비판하고 있다. 비판은 주로 교회의 리더들인 목회자에게 쏠린다. 신부나 스님이 약간의 잘못을 하면 신문 매체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목사가 약간의 잘못을 하면 신문 방송이 떠들썩하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교회를 위해 좋은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교회를 높은 기준으로 보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목회자들의 마음은 참으로 괴롭다. 세상이 교회를 보는 눈초리가 매섭고 전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에 대한 세상의 비판이 모두 진실 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모든 비판이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진실한 목회자들은 이런 비판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고칠 것은 고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여 올바른 목회를 회복해야 한다. 올바른 목회의 첫출발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늘 말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단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진실 되게 선포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는 내가 선포하는 설교의 말씀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균형 있게 선포하는 것인지 옷깃을 여미면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목사들이 설교 본문을 읽은 다음 설교의 내용은 성경 본문과 전혀 다른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떤 목사는 매 주일 설교를 이런저런 제목을 정해 놓고 철학 강의를 하기도 한다. 어떤 목사는 삶에 필요한 좋은 이야기를 매주 설교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종류의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편에서 생각해 보자. 성도들은 좋은 도덕 강의를 한 편 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도들은 한 편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즐거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 사역하신다고 성경 말씀이 가르친다(고전 12:3).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설교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사역이 발생할 수 있겠는가? 그런 말씀이 선포되는 동한 성령은 근심하며 탄식하고 계실 것이다(엡 4:30).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으면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 목사들은 말씀 선포를 통해 기독교의 초월성과 특이성을 강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성도들의 도덕적 삶도 강조해야 한다. 성도들의 도덕적 삶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목사는 “하나님의 전체의 뜻”(the whole counsel of God)을 균형 있게 전파하고 가르쳐야 한다(행 20:27). 목사가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든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설교한다면 결국 성도들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똑같은 하나의 종교로 밖에 달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왜 근래에 와서 더욱 비참하게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의식 있는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염려한다. 왜 교회가 무기력해졌을까?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가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종교라는 사실을 왜 믿으려 하지 않을까? 여기에 목회자의 책임이 뒤 따른다. 목회자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의 절대성을 훼손하면서 다른 종교가 가르치는 비슷한 교훈을 계속 설교함으로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인 특성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목사들은 성도들의 의식 속에서 기독교의 초월성과 유일성을 빼앗은 것이다. 목사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고 전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느 종교에서나 찾을 수 있는 교훈으로 성도들을 최면에 걸어 놓은 셈이다. 성도들은 더 이상 구원이 기독교 진리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를 주저한다. 한국교회에 연약한 부분들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복음이 한국에 들어오고 교회가 설립된 이후 130여 년간 하나님이 한국 땅에 베푸신 기적 같은 역사를 기억하기 바란다. 한국 땅 곳곳마다 교회당이 없는 곳이 없다. 주일이면 손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드리러 나서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 교회가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목회자들은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일을 누가 이루었는가? 하나님이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사용하여 이루지 않았는가? 이는 복음의 능력의 결과이다. 지난 2000년간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시대 시대마다 교회가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진실한 목회자들을 사용하여 그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유지하시고 흥왕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직도 한국교회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성실하게 섬길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을 위해 전심을 다 바쳐야 하며 또한 균형 잡힌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성도들이 성경의 권위와 성경의 영감,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나 은혜로만 구원 얻는다는 바른 구원관을 알 수 있도록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강단이 균형 잡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찰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하는 것도 가르치지만, 또한 이웃과의 관계,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일도 가르친다. 그동안 목회자들이 균형 잡힌 메시지를 선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 한국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는 교회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설교자의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을 균형 있게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박형용 목사, 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명예교수 2015-04-21
    • G.OPINION
    2015-04-21
  • 詩論희망의 부활절
    부활절이던 1885년 4월 5일 오후 3시 제물포. 3월 23일 일본 요코하마를 출발해 나가사키와 부산을 거쳐 온 배에서 벽안의 20대 남녀 셋이 내렸다.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각각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였던 이들의 도착으로 한국 개신교는 본격적으로 막을 열게 된다. 선교 130년을 맞는 올해 부활절은 4월 5일, 130년 전과 날짜가 똑같이 겹친다. 그런데 바로 그 4월 5일 내일 오후 3시 서울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부활절연합예배의 설교를 보수교단의 대표 총회장 백남선 목사가 연세대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화해와 통일로!》라는 제목으로 맡았다고 한다. 큰 돌이 입구를 막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기리기 위해 교회가 아닌 대학교 노천극장의 연단에 서는 자리에 걸맞게 대형 교단의 총회장으로서 적지 않은 부담금까지 낸다고 하니 자못 뿌듯하기까지 하다. 이런 시가 있다. 희망에게 믿지 않는다네게로부터 버림받았음을기억하지도 않겠다나를 놓아버리던 너의 잔인한 눈빛을그러나 환장할 것 같은 하늘이 있어그 하늘 아래서네 손아귀에 휘둘리던 머리채를 눕히고너를 기다리겠다오지 않아도 좋아, 기다리기만 하겠다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유죄라면무기수라도 괜찮아구메밥 사발이나 핥다떠나간 너로부터 서서히 살해되겠다 - 유영금 희망이 절망의 친인척인 게 분명하다. 절망과 붙어 다니고 절망 한가운데서만 일어서는 희망의 역설이다. 그래서 희망은 곧 사라질 가건물과, 거미줄이 된다. 그 안에서 살 수 없고, 손을 저으면 끊어진다. 그럼에도 희망이 머리채 붙잡고 흔들 때 그 모욕을 견딘 것은 그마저 놓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눌리고 따돌리고 병든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등이 휜다. 번번이 당하면서도 그 가느다란 끈을 놓지 못한다. 감옥에서, 병실에서, 독방에서. 그러나 희망은 우리를 얼마나 자주 배반하던가.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 “세계는 완전히 해체되어 버렸고, 동시에 삶이 매일 새롭게 시작된다는 환상도 사라졌다. 공부나 희망도 무의미해졌고, 어느 식당이 좋다거나 어느 색깔이 마음에 든다거나 하는 느낌도 존재하지 않았다. 질병과, 내가 그 속에 잠겨 있다고 느껴지는 죽음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20세기 위대한 작가이지만 신앙이 없는 카뮈는 자신이 소년기에 경험한 사건을 기술한 후 덧붙인 소회(所懷)이기 때문이다. 한순간 소년의 정신을 죽음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밀어 넣은 사건은 그의 어머니의 불행한 피해 경험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다르다. 1600년 전 아프리카 외진 곳의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나 자신이 알 수 없는 하나의 수수께끼였습니다"(아우구스티투스 '고백록' 4권 4장).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주체는 '나'가 아니라 '신'이었다. 그의 자서전의 목적이 구원에 있음을 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하지만 300년 전의 평범한 시계공의 아들은 이제 신이 아니라 인간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한 인간을 사실 그대로 털어놓고 세상 사람들 앞에 내보일 작정이다. 이 인간은 나 자신이다."(루소 '고백록') 대통령의 시간을 쓴 어느 장로처럼 루소에게 주체는 자신을 핍박하는 당대의 모든 권력으로부터 개인 루소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같은 이름의 '고백록'인데도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 사이에는 이렇게 건널 수 없는 강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우리 주변의 행사를 돌아보면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보다 개인을 내세우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루소의 태도를 발견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목사와 신자의 관심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행사보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우리의 형제들에게 쏠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주님의 부활을 기리고 새기고 실천하는 희망의 부활절이 되리라 믿는다. 고난과 부활의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누가복음 22:28-32 2015-04-04
    • G.OPINION
    2015-04-04
  • 침묵의 기술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 브라이언 피어슨은 “우리는 침묵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고요히 주의를 기울이며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침묵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 후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기다림과 같기 때문이다. 농사는 긴 인내와 희망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침묵에 해답이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고요한 기다림을 요구한다. 고요히 머물러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침묵은 기술이 된다.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여는 것은 대체로 힘이 약한 사람이다. 기세에 눌려서 침착함을 잃고 말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입을 여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든지 상대보다 위에 서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언제까지나 침묵하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주눅이 들어 머뭇거리는 상대를 냉정하게 관찰하기까지 한다. 할 말이 있음에도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강하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서 3:2 2014-08-25
    • G.OPINION
    2014-08-25
  • 윤리학 개론
    모세가 시내 산에서 터벅터벅 내려왔다. 두 손에 계명을 새긴 돌 판을 든 채 모세는 회중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계명을 10개로 줄였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간음’이 여전히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젊고 생기 넘치는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고 한다. “주여, 제게 순결을 허락하소서. 그러나 지금은 아니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글쎄 하나님, 정확히 언제 간음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으셨잖습니까?’ 말 된다. 이호영 장로가 발행인으로 있는 장로신문에 “이제는 개혁주의 시대”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우(총신 69회)는 군목 제대 후 명지대학 교회 제 6대 담임목사를 역임(1980. 10~1985)했다. 그 시절 그 교회에서 총신 72회 동창 조진형 목사와 김수양 목사가 부목사로 사역했다. 그 중 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김영우는 1985년 잘 나가던 명지대학 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해야 할 사유가 발생해 그 교회 설립자가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당시 젊고 생기 넘치는 아우구스티누스 같던 그는 언변 좋고 좋은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뭇 여신도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것이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구분하는 것이 윤리학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미혼으로 있는 김영우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목사라고 해도 미혼인데 내가 누구와 언제 어떻게 지내든 무슨 상관이람? 게다가 난 개혁주의 교단의 실력자인데 누가 무슨 말을 내게 할 수 있겠어. 길자연 씨도 다 내 덕에 총장 노릇하는 게 아니겠어. 전 총장들 김인환이고 정일웅이고 여자 교수실에서 차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어도 결재판 들고 다들 굽신거리며 오더구만. 길자연도 별 수 있어 나한테 결재 받으려면 굽신거리며 와야지.’ 1995년 어느 날 김영우는 묵직한 가방을 들고 부총회장 출마를 앞 둔 한 실력자를 찾아갔다.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그 실력자에게 너스레를 떤 뒤 나왔다. 물론 그의 손에는 가방이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 가방에는 5천만 원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얼마 뒤 서천읍교회에 부임하고 충청노회의 최고 실세가 되었다. 그는 정기노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총대가 되고 사택에서 버금 실력자의 노회 현황 보고를 받을 수도 있다. 2014년 7월 7일 발간된 장로신문에서 김영우는 “우린 모두 새 날로 향한다”는 글을 썼다. 그런데 그가 글을 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6월 4일은 수요일이고 장소는 담임목사로 있는 서천읍교회가 있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세우고 관리하는 상계동 선천교회의 자신의 사택 아파트이다. 어쨌든 ‘이제는 개혁주의 시대’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쓴 글의 내용이 가관이다. 6‘4지자체 선거 방송을 보느라 밤을 새우면서 장로신문에 써야 할 원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눈을 좀 붙이고 나서 잠을 쫓느라 TV켰더니 눈에 들어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박정희와 박태준의 포철 비화를 보고나니 가슴이 뛰고 머리가 맑아지더란다. 그는 영락없는 조국 병의 시름 깊은 환자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교단이나 교회나 총신이 아니라 한국을 염려하는 우국지사(憂國之士)의 깨달음에 힘입어 그는 장로신문에 실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새 소리들도 잦아들고 출근 차 시동 소리 요란한 대한민국 서울, 북동쪽 마을 한 가운데(상계동 노원구청 건너편 주공아파트 단지) 빼곡한 성냥갑 주택 아파트 구석에서 나는 하늘을 본다. 너는 땅을 본다. 우린 모두 새 날로 향한다. (2014. 6. 5. 아침) 이게 그의 개혁주의다. 2014-07-28
    • G.OPINION
    2014-07-28
  • 주절주절 인생
    그분은 날 잘 모르지만 갠적으로 좋아햇던 분이엇는데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여 무척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아마도 건강 관련 명강사로 벌어들인 사례비가 전국적으로 엄청 되겠지요,언제나 연대 의대 청강생 출신인 황수관 박사를 교수로 채용해 준 여러 연대교수진에게 고마운 마음의 발로로 강사료 일부를 꼭 학교 재정에 보태라고 흔퀘히 퀘척하던 분인데.....아마도! 제16대 국회의원(민주당) 낙방후 그간 벌어놓고 장농과 통장에 넣어두었던 머니(쪈)를 한입에 선거비용으로 털어놓고 아이고 나 죽네.. 날라간 돈이 눈에 왔다 갔다. 소문에 의하면 왕창 깨지고 난 다음 잠을 못자고 수면제를 수저로 퍼서 입에 털어 넣었다고 함니다만..나오슈 ! 나오슈 ! 됨니다.. 됨니다 ! 국회의원 !가만히 강연다니며 인기 오르고 주머니 두둑하여 인생의 즐거움이 만연할 즈음,,,이런 犬쉐이들이 뽐뿌질을 해대서 국회의원 나갔다가 미역국 먹고 바나나에 미끄러져서 크게 상심. 스트레스 엄청 먹엇섬다더구나 펌핑질하던 놈들은 선거비용 다 빼먹고 온다간다 흔적없이 사라지니.. 오호라 ! 통재여...그리하여 날린 돈 빵까이하려고 종편 엠비엔 황금알에 나와서 왕년에 써먹던 캐릭터신파쪼 울림용 멘트 무지 날리는 비극이... 하여간 책이나 보고 입으로 먹고 사는 인간은 절대 정계나 사업계에 함부로 진출하면 안됨다,엄동설한 강추위에 황 박사님!오랫동안 우리네 지친 서민들에게 웃음을 마니 앵겨 줘서 고마웠고요,,저쪽 세계에도 강사자리 잇으면 바로 들이대시고행여 정치판엔 쳐다보지도 마시기를 부탁함다..안녕히 가이소! 행님 덕분에 마니 웃엇고 행복햇섬다. 人命은 在天이라....세상에 나와서 세상을 살다가 세상에 빚지고 갚을 길이 없이 빚만 남기고 돌아가지만...... 하나님에게 진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은 죽음이라 이자 없이 원금만 돌려드리니 남는 장사임다! 2014-07-28
    • G.OPINION
    2014-07-28
  • 김영우의 주례
    면(麵)의 순우리말이 국수이다. 현대는 결혼식의 경우 모두 뷔페이긴 하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의 결혼소식을 들으면 국수타령을 한다. 실제로도 결혼식 때에는 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관습 때문인지, 양식 풀코스를 제공한다 할지라도, 소량이나마 국수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결혼식 때마다 국수를 먹을까? 이 물음을 받으면 대부분 면발의 길쭉한 생김새에서 가늘고 길게 장수하라는 좋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거나, 무엇보다 빨리 대량으로 만들어 하객들에게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민속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결혼식 때 국수를 먹는 관습은 고려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국수는 밀이 전량 중국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귀족과 부자나 먹는 비싼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결혼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여겼던 사람들이 손님들에게 가장 귀한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식에서 그 당시 비싸고 귀한 것이라 국수를 대접했다고 한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란 관(冠 성인식) - 혼(婚 결혼) - 상(喪 사망) - 제(祭 제사)를 일컫는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관습 가운데 혼(婚 결혼)과 상(喪 사망)은 여전히 주효하다. 특별히 결혼에는 주례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주례(主禮)는 결혼식에서 예식을 관장하여 진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통 신랑과 신부를 잘 아는 사람 중에서 종교나 사회적으로 덕망이 높은 지긋한 나이의 남자가 맡는다. 결혼 주례의 특별한 경우를 몇 가지 들어보자. 첫 번째 특별한 경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의 주례사의 한 대목을 보자. 부부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참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화나는 일도 있고 마땅치 않은 일도 생깁니다. 그때 화를 내고 싸우고 시비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아내가 또는 남편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평소 주례를 서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던 김대중 대통령이지만, 1997년 한 번의 예외를 두었다. 그것은 바로 국악인이자 연기자인 ‘오정해의 결혼식’의 주례였다고 한다. 배우 오정해는 이를 위해 유명 가수의 축가 순서도 취소하고 주례사를 경청했으며 지금까지 주례사의 토씨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특별한 경우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다. 그의 주례사 전부를 들어보자. 너를 보니 네 아비 생각이 난다. 부디 잘 살아라. 요즘은 주례사 없는 결혼식도 종종 있지만, 김구 선생의 주례사처럼 짧은 한 구절이 주는 강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주례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주례를 들은 하객이 시계를 봤더니 5초 걸렸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마지막 세 번째 특별한 경우는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조영남이다. 그의 주례사의 한 대목을 보자. 주례를 서기 전에 나도 간략하게나마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지(아마 재혼을 간소하게 알리지 않고 한 모양이다)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교훈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주례를 허락했습니다. (효자손에 낡은 천을 감아 만들었다는 ‘솔로용 로션 바르기 기구’를 들어 보이며) 이런 발명품이 필요 없도록 함께 오래 살길 바라요. 타의 모범이 되지 않는 나한테 다시는 주례 맡기지 마세요. 두 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그가 2007년 1월 ‘이경실의 재혼식’에 주례를 섰다. ‘반면교사’를 자청하면서. 하객들은 웃으며 공감했다고 한다. 98총회의 결의에 따라 아직도 아이티사태전권처리위원장으로 루터처럼 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신규식 목사가 5월 마지막 주말 아는 목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혼식 주례가 총신재단이사장 김영우 씨였다. 하객으로 참석한 신규식 목사가 그날 주례를 맡은 김영우 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아니 총각이 주례를 서네.” 1971년 땅값 오른 사당동 땅을 매각하고 경기도 싼 땅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총회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었다. 그때 일어난 총신 사태로 각 학년 대표 3명을 뽑는 21인 위원에 선출된 인연으로 당시 4학년 위원이 된 김영우 목사를 알게 되었다. 당시의 그는 빛나는 인물이었다. 전체 학생 가운데 그를 능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 그는 총신의 마스코트이었다. 21위원의 전국 순방과 전국 교회의 협조로 전기 시설도 없던 학교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 김영우 목사가 우리 교단이든 자신이 손을 놓지 못하는 공동체든 어느 한 곳에 그의 말대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대성했을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그 시절 빛나지 못했던 학생들이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운 것을 보면 김영우 목사라면 어떻게 됐을지 안 봐도 알 일이다. 반월에 달이 뜬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반월로 달려가 교회를 개척한 김인중 목사와 어린이 선교를 위해 서울의 끝 상계동 변두리에 조립식 건물로 시작한 김종준 목사를 보라. 그들은 이제 큰 교회와 학교까지 설립했다. 그런데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교단과 공동체 일 가운데 어느 하나도 놓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세우거나 맡고 있는 교회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가 세운 공동체비젼 고등학교는 어디에 이름을 내세울 형편이 전혀 못되고 어찌 된 일인지 2006년부터는 이사장도 나이 많은 여자 권사가 맡고 있다. 그가 기독신문 주필을 연임하려고 돈은 물론 용역까지 동원했었다. 그 시절 그랬듯이 돈을 뿌리고 그가 재단이사장으로 연임하고 있는 총신은 부정과 불법과 소송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쨌든 김영우 씨는 총각이 아니다. 그가 진실로 평생 주님만을 위해 살기 위해 결혼하지 않은 존 스토트 같은 실력과 신앙이나 양심과 행실을 지닌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우 씨는 인륜지대사의 하나인 결혼을 한 적이 없고 어쩌면 결혼할 수 없는 사정을 지닌 미혼 목사일 뿐이다. 사실 우리 교단은 군목의 경우를 제외하고 미혼의 목사 안수는 하지 않는 전통과 헌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미혼으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군목으로 군대를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목을 마치고 교회를 담임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함에도 미혼의 그는 버젓이 5년간(1980. 10~1985) 독립교단의 명지대학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선천공동체에 속한 상계동선천교회와 다른 몇 교회들을 세워 관리하고 동시에 교단의 충청노회 소속의 서천읍교회를 맡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다. 앞으로는 군목의 경우 처음에는 차질이 있을지라도 안수 전에 반드시 결혼을 하는 법을 세우거나 아니면 건덕 상 관행이라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 김영우 씨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교단 헌법에서 제 칠 계명을 다룬 성경 대요리문답 139문과 신도 개요 제 24장 2항과 3항을 어기고 있다. 이들 조항에 따르면 그는 결혼을 부당하게 지연시키는 범법을 행하고 있고, 합법적인 인류의 증가와 거룩한 씨에 의한 교회의 증가를 위해, 또 부정(不貞)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신앙의 법을 어기고 있다. 1999년 첫 기독신문 주필을 시작으로 연임하던 시절 그는 시간이나 능력이 딸리면 대필도 서슴지 않는 신문사 사설과 칼럼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실 손봉호 박사도 글을 잘 쓰기 위해 수필가협회에 가입해 글쓰기를 공부하고 연습한 결과 현재의 잘 다듬어진 글을 쓰게 되었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영우는 신문사 주필을 하면서도 그런 노력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문사 운영에 관여하거나 총회 더러운 일의 이권에는 밝았다. 그가 머무는 곳은 어디나 그를 중심으로 음습하게 움직이게 하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가 처음 기독신문사 주필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1999년 12월 15일(수) 기독신문사 실행이사회(이사장:최기채 목사)는 12월 13일 총회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신임 주필에 김영우 목사(서천읍)를 인준했다. 28명의 실행이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 실행이사들은 사장 추천을 받은 김영우 목사를 만장일치로 인준했다. 만 13년동안 주필로 재직한 한명수 목사(창훈대)는 퇴임인사를 했다. 신임 주필 김영우 목사는 뜻밖에 교단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돼 어깨가 무겁다고 밝히고 앞으로 신문의 보도적 계도적 기능을 살려 공정한 보도로 교단발전과 총화에 기여하고 개혁주의적 교단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가 기독신문에 밝힌 이력서를 보자. 신임 주필 김영우 목사 프로필 충남 보령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1972년. 제2회)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1984년. 제69회) 미국 페이드 신학대학원 졸업(교육학 박사) 미국 풀러 선교대학원 재학(현재) 충청노회(당시 충남노회)에서 목사 안수(1976년) 공군군목 예편(대위) 서천읍교회 담임(현재) 선천공동체 대표(현재) 그로부터 그는 파란의 15년 간 총회를 쥐고 있다는 믿음과 불안 속에 온갖 눈치 살피며 부정과 불법을 일삼고 있다. 음모와 모사의 달인 김영우가 2012년 총신대 홈페이지에 재단이사장으로서 밝히고 있는 그의 학력과 경력이다. 총신재단이사장 총신대학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공군 군목 예편 명지대학 교회 제 6대 담임목사 역임(1980. 10~1985) 충청노회 노회장 역임 기독신문 주필 역임 현, 선천공동체 대표 현, 한국개혁주의 신행협회 대표이사 현, 개혁주의 목회자 협의회 대표회장 현, 공동체 비젼 고등학교 설립자 (2002. 7. 27일 설립 2006년부터 이사장 나정심) 현, 서천읍교회 담임목사 그의 총회 여정을 다음 총회 때까지 두 이력서를 중심으로 몇 회에 걸쳐 말해 보도록 하자. 2014-06-23
    • G.OPINION
    2014-06-23
  • 12초만에 이루어진 기도-평신도 신앙간증
    평생 시험에 딱 두 번 떨어졌다. 하나님께서 내 IQ를 나쁘지 않게 빚으사 괜찮은 대학을 다닌 탓도 있지만 떨어질 시험은 아예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전백승의 명장 비결은 이길 싸움만 골라 참전한다고 했던가. 어쩔 수 없이 재수를 하게 된 두 시험은 군대에서의 일등병 진급시험과 운전면허 필기시험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쉽다는 시험이다. 전후반기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방공포 여단에 이등병으로 전입되어 3개월 후 일등병 진급시험을 치렀다. 시험과목은 가장 기본적인 M1소총 분해결합이다. 경리병으로 출장업무가 잦았던 나는 12명이 응시한 11명 TO의 진급시험에서 꼴등을 하여 가룟유다가 되어버렸다. 대개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력이던 수송부 운짱인 11명의 동기생들은 눈감고도 분해결합을 나보다 빨리 해냈다. 시험을 만만하게 보다가 개피 본 첫 경험이다. 두 번째는 상식만으로도 충분히 붙으려니 했던 1종 운전면허 필기시험에서 2점이 모자라 낙방하여 마누라한테 여지없이 개망신을 당했다. 교재를 구입하여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 후 2종으로 하향조정하여 만점으로 박수를 받고 합격했다. 시험이란 모든 당사자에게는 절실하고 치열한 실존상황이라 준비를 소홀히 하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마련이다. 필기시험은 누구나 거의 붙지만 실기시험은 골칫거리다. 없는 살림에 거금을 들여 운전면허학원 등록을 해놓고 회사업무가 너무 바빠 한 번도 학원에 가질 못한 채 2년이 흘러간 적이 있다. 합격할 때까지라는 조건부로 학원등록을 했지만 2년이나 지나 불쑥 권리주장을 할 정도로 뻔뻔하지 못해 다른 학원에 다시 돈을 내고 재등록을 하였다. 백화점 간부로 근무하던 1990년대 초반이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발인일 전에 고향 가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게 백화점 근무자다. 출근 전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운전실기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당시 밀어닥친 마이카 붐으로 실기시험 대기자가 인산인해를 이루어 한 번 떨어지면 서너 달을 기다려 다시 응시해야 한다. 6개월을 기다려야 차례가 오기도 했다. 12번을 떨어져 3년이나 걸리고도 면허를 못 따 무면허로 운전하는 간 큰 후배직원도 있다. 나도 요즈음이 조금 시간여유가 있을 뿐이라 이 기회를 놓치면 정년퇴임 뒤 환갑 후에나 면허를 딸 시간이 날 것 같다. 사당역 인근 방배동 산중턱에 있는 운전학원엘 다녔다. 그 날은 평소 보다 10분 일찍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겨울날씨가 매서워 운전학원에 가서 미리 10분을 벌벌 떨며 기다릴 필요가 없어 자투리 시간과 씨름을 하다가 역구내의 차가운 나무벤치에 앉아 기도를 했다. 하나님께서 너무 바쁜 직장을 주셔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면허 따기가 어렵사옵니다. 내년에 중역으로 진급되면 더 바빠지오니 어제 등록한 시험일정을 당겨주시어 빨리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맨날 남의 차에 끼워 타기도 눈치가 보이오며 두 딸과 마누라 데리고 시내버스만 타고 다니기도 고달프옵니다. 기도를 마치고 열 다섯 발자국 정도 걸었을까. 지하약방을 지나 2호선과 4호선이 교차되는 개찰구 앞이다. “부장님 !” 우리 백화점에 근무하는 김경숙이다. “오, 일찍 출근하는구나” “저 N백화점 6개월 전에 퇴직했어요” “아 그랬나. 난 그런 줄도 몰랐네” 여직원이 몇 백명이나 되고 이직률이 높아 그녀가 퇴사한 줄은 모르고 있었다. “부장님, 운전면허 시험 빨리 보셔야 하죠?” “뭐?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제 면허 시험장 오셨잖아요?” “너 처녀무당이냐? 그건 또 어떻게 알아?” “월요일 아침에 실기시험 보러 오세요” “새벽부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구나?” “그러잖아도 오늘 전화드리려 했어요” “무슨 소린지 난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라 빽 써서 면허시험장으로 직장을 옮겼어요. 어제 부장님 오신 것 옆 접수대에서 보았는데 이목 때문에 반가워도 인사 못 드렸어요. 아는 사람 봐줄까봐 내부감시가 삼엄해요. 신청서류 맨 앞으로 끼워놓았으니 월요일 11시에 오세요” 똑똑하고 예쁘장한 경숙이는 어리둥절한 나를 남겨두고 출근시간에 쫓겨 개찰구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지하보도를 걸어 출구로 향한 계단을 오르며 난 머릿속이 멍해졌다. 현기증이 일기도 한다. 꼭두새벽에 여자여우에게 홀린 기분이다. 수많은 접수대 인파 속에서 어떻게 나를 쳐다 보았을까? 바쁜 출근시간 어수선한 개찰구에서 1초만 엇갈렸어도 그녀를 만나지 못했을 거다. 더구나 기도 후 12초도 안되어서 기도가 이루어지다니.... 기도응답이란 우연의 일치이고 종교활동이란 미신의 선물박스에 입혀진 도덕과 윤리의 포장지란 생각으로 절실하게 기도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그간의 내 신앙생활이었다. 그러나 명명백백한 사실로 나에게 직접 벌어진 실제상황 앞에서 나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리얼리즘과 샤머니즘이 정면충돌하는 굉음이 요란하다. 우연이기에는 너무도 정확하고 정밀하고 오묘하다. 고2 때부터 25년 이상을 교회에 다녔지만 이런 생생한 체험은 처음이다. 나 같은 엉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이 두렵고 무섭고 겁난다. 진눈개비가 쏟아지는 면허시험장 활주로에서 딩동댕동 음향과 함께 실기시험에 합격했음은 물론이다. 2014-01-20
    • G.OPINION
    2014-01-20
  • 사랑이란
    래드클리프 대학 3학년 때인 1903년 출판된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 The Story of My Life>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처음으로 ‘삶’이란 낱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던 아침이 생각난다. 낱말을 많이 알기 전이었다. 어느 날 다소 일찍 피어난 바이올렛 몇 송이를 발견한 나는 그것을 따다가 선생님께 드렸다. 선생님은 내게 입을 맞추려 하셨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머니 외에 누구와도 입을 맞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한쪽 팔로 나를 포근히 감싸 안고 내 손에 “나는 헬렌을 사랑해.”라고 쓰셨다. 나는 물었다. “사랑이 뭐예요?” 선생님은 나를 더욱 바싹 껴안으며 내 심장을 가리키시더니 “그건 여기 있단다.”하고 말씀하셨다. 난생처음 나는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만질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로선 선생님의 말씀은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만 했다. 나는 선생님의 손에 들린 바이올렛 향을 맡은 뒤 갓 배우기 시작한 낱말과 예전에 쓰던 신호를 섞어가며 다음과 같은 요지의 질문을 했다. “사랑은 꽃의 달콤함인가요?” “아니, 그렇지 않단다.” 〔……〕선생님은 내 이마에 대고 ‘생각하다’라는 단어를 쓰셨다. 바로 그때 내 머리 속에서 계속되던 일련의 과정을 가리키는 바로 그 단어를 섬광과도 같이 깨우쳤다. 추상적인 개념을 최초로 이해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무릎 위에 놓은 구슬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나는 사랑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구름이 잔뜩 끼어 하루 종일 흐린 날씨였다. 그런데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남부 특유의 찬란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 사랑은 이런 건가요?” “그래, 맞아. 사랑은 햇살이 비추기 전 끼어 있던 구름 같은 거란다.” 당시의 나로서는 이 짧은 한 문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헬렌,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구름을 만질 수는 없단다. 그러나 비를 만질 수는 있지. 한낮의 무더위에 시달려 목마른 대지와 꽃들이 이 단비를 받아 마시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잘 알잖니? 사랑도 꼭 그렇단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모든 것 위에 부어지는 그 달콤함만은 느낄 수 있지. 사랑이 없다면 행복하지도 않고 뭘 하고 싶지도 않을 거야.” 이 아름다운 진리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느껴졌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이렇게 말씀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4-8 헬렌 켈러는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사랑이라고 느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란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과 영혼이 연결되어 영원히 그 사랑이 지속될 것이다. 2013-12-23
    • G.OPINION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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