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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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저물고 총회 가는 삼성역 지하철 역사(驛舍)에서 너를 보냈다. 예레미야 애가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젊은 믿음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아직 갈 길 먼 총회 역사(歷史)가 전동차에 실려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두리번거리고 나는 이곳에서 내 죄벌이 너무 무겁습니다 외치는 가인을 만나면 목 놓아 울리라. 누굴 닮은 거북이여 느릿느릿 소망을 싣고 가거라. 슬픔이 없는 곳으로 통하는 지하철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어릴 적 가난한 홍제동 언덕 성탄절이지만 마지막 은혜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낡은 교회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이 시려 덜컹거리는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횃대 위의 닭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주님이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기도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껴잡은 손바닥을 불빛 속에 오므리며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추위에 떨 듯 한 상자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끓인 보리차 김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기도는 식어간다.
 
조그만 예배당에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푹푹 내려 쌓이는 눈 때문에 사람들은 더는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예배당에서 오지 않는 전도사를 기다리고 있다. 털모자에 잠바를 입은 나는 간간이 난로에 톱밥을 던져 넣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난로 위 주전자는 그렁그렁 끓는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고,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1942년 1월 말 일본으로 떠나기 전 젊은 윤동주는 이런 시를 남겼다. 그가 죽기 3년 전이다.
 
참회록 - 윤동주(1917~45)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는 여전히 믿음과 순결의 피 흐르는 우리의 순교자다. 2월 16일은 그의 76주년 기일(忌日)이다. 믿음을 전하고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할 총회 소속 목사들은 사후(死後) 각기 기일마다 총회와 총신을 위해 어떤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 2월 15일 총장도 없는 총신대 사당동캠퍼스 졸업식을 다녀오니 마음이 더욱 쓸쓸해졌다. 우리의 믿음은 정말 어디로 가고 있나하는 참회의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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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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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가는 역사(驛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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