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G.OPINION
Home >  G.OPINION

실시간뉴스
  • [더굳뉴스] 윤희원 목사 총회선거법 전환 의견
    산업시대 이전에 창궐한 질병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었다. 위생적인 시설도 없었거니와 의학 기술도 덜 발전하여 치료제도 없었고 영양 결핍으로 면역력 또한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질병은 과잉에서 비롯된다. 재판 몸살에도 이재명이 설치는 신자유시대의 질병은 우울증이다. 상품과 화폐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꿈꾼다. 이를 위해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Yes, we can!”). 그러나 누구든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과잉 긍정 문화는 외부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자아는 피곤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우울증을 낳는다.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가 자신을 채찍질하게 만드는 시대에 개인은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한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 구실, 아비 구실, 맏형 구실, 며느리 구실'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은 지위나 형편에 관계가 없다. 여기서 '구실'이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맡은 바 책임을 이르기 때문이다. 원래 구실은 공적인 의무를 이르던 말이다. 옛말에서는 온갖 세납을 통틀어 말했다. 그래서 '구실을 바치다, 구실을 물다'와 같은 말이 남아 있다. 구실은 어쩌다가 이처럼 강한 의무감을 띠게 되었을까. 구실의 원말은 '그위실'인데 관아 즉 대치동 총회 같은 공공기관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관아에서 맡긴 공적인 업무가 마땅히 있을 테니 그 말이 '구실'이 되어 오늘날에 이어진 셈이다. 구청 직원 같은 이 구실보다 높은 직이 총회 임원 같은 벼슬이다.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를 뜻한다. 벼슬이라 하면 우선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과 같은 예시가 먼저 떠오른다. '벼슬을 지내다', '벼슬 한 자리를 하다'와 같은 말에서 벼슬하는 이의 영광스러움을 어떻게 딴 자리인데 하며 이재명 같은 이는 느낄 것이다. 오늘날 말로 보면 구실과 벼슬은 곧 직무와 직위이다. 물론 직위가 없어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가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빈자리를 채워내는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그러하고 한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빛과 소금의 봉사 활동을 하며 기여 하는 많은 분들도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자아를 성취하고 올바른 수행 통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맞는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제구실을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구실의 다른 말로 ‘임무’나 ‘역할’은 물론 ‘제값’이라는 멋진 표현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제값을 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종노릇, 총대 노릇’처럼 그 직업과 직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노릇’이다. 흥미롭게도 사전에는 ‘선생 노릇, 관리 노릇’ 등도 나온다. 선생, 관리라는 직업과 연결할 때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이런 표현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와 장로들 모임의 총회 관행과 달리 속담에 "벼슬이 높을수록 뜻은 낮추랬다"라고 한다. 직위가 높을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리가 관리자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한다면 어떤 벼슬보다 더 잘 모실 것이나, 관리 구실을 못한다면 "관리 노릇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나부랭이 좌파와 달리 직위보다 직무를 더 충실히 앞세운다면 노릇으로 폄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총회 임원과 상비부 임원들은 총회 안에 서 있는 자리에서 벼슬이 아닌 구실로 일을 잘 맡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사와 장로 같은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고전 4:2) 말씀의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아니겠는가. 108년 역사의 총회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 △법치 △소수의견과 절차의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와 소수의견 및 교회 전통 존중이라는 불문율이 총회 역사상 이처럼 절실한 시절은 없었던 것 같다. 나토 당국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려면 수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전쟁이 터지기 2022년 2월 18일 주간 기독신문에 총총 출신의 총회 최고 지성 윤희원 목사는 총회 선거 부정의 실태를 점잖게 밝히는 "지지의 긍정성을 부정성으로"라는 제하의 논단을 실었다. 금권으로 총회장이 되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점잖게 지적한다. 총회의 선거는 내가 보기에는 정치의 장을 떠나 자본이라는 돈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선거는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투명성에서 불투명성으로, 공정성에서 차등성으로,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가 된 것은 선관위가 선거 규정을 적용하고 운영하며 선거를 관리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본래 선거 규정이란 모임의 대표자나 임원을 공명정대하게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정에 의해서 경쟁하게 하고 더욱이 선거전(戰)이 과열되지 않도록 또 소모적인 마타도어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규정은 상보적이고 그 규정을 운용하는 선관 위원은 중개적이어야 한다. 더욱이 총회의 선관 위원은 정치적 중개를 넘어서서 개혁신학과 신앙에 걸맞는 중개를 해야 한다. 즉 어느 후보가 더 개혁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이 분명한가를 선거운동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총대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 제107회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가 제106회 선거 규정을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사용하여 시행한다고 하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 된다. 왜냐면 제106회 총회처럼 부정선거가 된 선거는 없었다. 총회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부정투표에 휘말렸고 사실상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보자끼리 선거관리 규정에 의해 각서하고 공증까지 했어도 그 선거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는데 공증한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욱이 선관위는 검표하면 비밀투표한 것이 드러나 선관위 스스로는 할 수 없고 형사 고발을 해서 사법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사이에 장자 교단이라는 시스템을 작동해 어느 유능한 인물이 이 비상사태를 정상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히 선거 규정을 바꾸기를 원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번 투표의 방법을 비밀투표가 아닌 공개투표로 바꾸었으면 한다. 왜냐면 비밀투표로 하게 되니 후보자에 대한 지지 긍정성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찾아와서 만나면 그 면전에서 “나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 지지하는 척하고 명목상 주는 여비를 받는다. 만일 공개투표로 바꾸게 되면 이 지지 긍정성이 사라지고 부정성이 드러나서 후보자도 만나보았자 날 지지하지도 않을 사람이니 만나지 말고 여비도 주지 말자고 할 것이다. 당연히 유권자인 총대들은 이제 한 표 가지고 두 사람 아닌 후보자 모두를 지지할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되면 받은 여비 내놓으라는 소송 아닌 소송에 휘말리게 되니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 긍정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투표의 방법을 바꾸면 종전에 시행했던 제비뽑기 방식의 선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투표의 방식을 이렇게 공개투표로 전환하면 후보들 스스로가 총대들의 지지 긍정성에 현혹되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의 선거 규정은 너무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온통 배제와 금지를 규정하고 후보자로서 활동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후보자들 스스로가 그 규정 안에서 담합 하거나 아니면 이의제기 또는 고소 고발로 상대를 떨어지게 하려는 비정치적인 행위를 한다. 결국은 자본을 많이 소비한 쪽이 승리하는 경제 행위가 되어 버렸다. 한번 바꾸어 보자. 투표의 방법을 공개투표로 바꾸면 굳이 지금과 같은 선거를 치러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고 총회진행 시간도 매우 단축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개혁신학과 신앙의 위계를 상황적으로 계승시키지 못하고 위기 적 상황만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총대들의 정치적 행위가 되는 선거의 방법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탈 정치 화 되고 탈 신앙화 되고 탈 신학 화 된 선거문화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총회가 선거 규정을 바꾸지 않고 선거를 치른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걱정이 우려로 끝나면 좋겠지만 기대가 되어 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총회의 개혁은 먼저 선거의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관위와 선거 규정은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면 선한 양심을 총대 모두에게 지켜가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자. 먼저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지키자. 선거 속에서 신앙과 신학을. 성경은 말씀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2024-05-07
    • G.OPINION
    • G.OPINION
    2024-05-07
  • [더굳뉴스] 성석교회의 길
    7부 16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프루스트는 비자발적 기억에 대해 고찰한다. 그 유명한 ‘마들렌 에피소드’가 소개되는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비자발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아주 오래전 기억도 익숙한 냄새, 맛, 소리, 촉감 등 여러 가지 감각에서 환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면의 굴곡이 많아 험한 길이 기구(崎嶇)다. 산길처럼 다니기 고단한 길은 험준(險峻)이나 험조(險阻)라고 적는다. 굽이가 많아 에돌아가거나 통행이 까다로운 길의 상황은 우회(迂回)와 곡절(曲折)이다. 평평한 길로 보이지만 성석교회 안에는 구덩이가 팬 곳이 많다. 중국에서는 그 구덩이를 감가(坎坷)라고 곧잘 표현한다. 아예 함정(陷穽)으로 적기도 하고, 혹은 요철(凹凸)로도 부른다. 요즘 중국 매체들이 잘 쓰는 말은 김화경의 '걍'이 아닌 ‘갱(坑)’이다. 구덩이를 일컫는데, 단어로는 광산의 갱도(坑道)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성어로는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땅에 산 채로 묻었다는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친숙하다. 이제는 아예 유무형의 함정을 파서 사기를 치거나 해코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언뜻 평탄해 보이는 김화경의 길에는 이런 ‘구덩이’가 참 많을 것 같다. 총회나 성석교회 실세들이 통제를 잃으면서 생긴 윤리의식의 위축은 그를 더 심화했다. 그래서 성석교회라는 갱에 들어선 길은 늘 만만찮다. 신중하게 나서야 할 성석교회의 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5-7 2024-05-03
    • G.OPINION
    • G.OPINION
    2024-05-03
  • 윤석열 대통령과 이순신 장군 사즉생
    국민의힘의 비례 위성 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을 얻을 것으로 예측돼 비례를 합쳐 개헌선을 지킬 108석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될 것이다. 21대 총선 때는 비례를 포함해 103석이었다. 그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10일 오전 개표율 100% 기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득표율 48.56%를 기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를 앞섰다. 선거 막판까지 1%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은 초접전 상황에서 이재명을 누르고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 그이기에 문재인 휘하 검찰총장으로서도 기죽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수도 5명이 더 늘어난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 윤석열은 그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헤쳐나가리라 믿고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 그리워 기도하는 새벽 벚꽃 피네 벚나무는 아련한 추억처럼 꽃잎을 흩날리며 아득하게 진다. 건축의 기본 단위는 건물이다. 건물을 쪼개면 방들로 나눠지고 방을 쪼개면 가구들로 나눠진다. 반대로 건물이 모이면 거리가 되고 거리가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이면 국가가 되고 국가가 모이면 세계가 된다. 훌륭한 건축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사고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검토해야 좋은 의사 결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설계할 때도 크게는 도시를, 작게는 가구를 동시에 생각해서 디자인 의사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 노먼 포스터 같은 훌륭한 건축가는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의자 디자인부터 도시 설계까지 했다. 의사 결정은 가치관이 결정한다. 가치관은 상대적이고 항상 변한다. 가치관을 바꾸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공간이다. 고려하는 ‘공간의 크기’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군부대에서 상관이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고 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명령을 내린 상관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경을 극동아시아로 넓혀 보니 전쟁 중이라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불가피한 명령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서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해방 후에는 국제 정세가 어지러운 시대였다. 이때는 여러 국가 간 지정학적 공간 스케일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자유 진영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대였고 우리나라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 신앙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간적 초석을 놓았다. 1970년대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한 시대였다. 산업화를 하였고 아파트를 지어서 고밀화된 도시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90년대에 가장 큰 변화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지정학적 긴장감이 사라지니 민주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시대의 기류가 바뀌어 미·중 신냉전의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는 본격적으로 양분화되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그 외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는 새로운 냉전 구도가 구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가 되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정치와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은 중동이 아니라 한반도다. 우리의 의사 결정 가치관의 기준은 작은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건물 디자인을 결정할 때 가구가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에서 의사 결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모사꾼을 감옥에 보낸 허활민 목사보다 못한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정치가들이 많다. 지금은 50년대 건국의 시대도 아니고 70년대 경제 발전의 시대도 아니고 90년대 민주화의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다. 50년대와 비슷한 위기의 지정학적 시대에 인공지능의 변화까지 덮친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노령화까지 겹쳐서 변화에 대응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라는 좁은 공간적 시각에 갇혀 생각하면 구한말 때 우리 조상이 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유럽에 도자기를 팔았던 나라로 바닷길로 해상무역을 했던 나라였기에 더 넓은 공간을 보았고 우리보다 앞서 메이지 유신을 했다. 우리는 한반도에 시선이 머물러서 당파 싸움만 하다 나라를 잃었다. 바다라는 더 큰 공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고 속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90년대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서 가상공간으로 사고의 공간을 확장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 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언자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드시 패한다고 예측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에 신생국인 한국이 따라가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은 군사력 국가이고 경제부국인 데다가 기독교 서구 문명의 중심 국가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미국의 실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처럼 100년 전에 정확하게 파악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 버금가는 전략가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영국의 처칠이다.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의 철(鐵)은 군사력이고, 혈(血)은 국민정신이다. 철혈이 없는 나라는 죽도 밥도 안 되고 강대국의 먹잇감이 된다. 처칠이 말했다고 한다. "소련에 평화를 호소하는 것은 악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렇듯 감옥을 눈앞에 두고도 으스대는 이재명과 조국에게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여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한다는 건 처칠의 말과 같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2024-04-11
    • G.OPINION
    • G.OPINION
    2024-04-11
  • 소강석 목사의 날개
    이제 거리 어디에도 시계란 없다. 심지어 서울역에도. 왜? 아무도 시계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의 대표적 무신론 작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년 3월 26일~ )가 아직 살아 말한다. 비행하는 동물은 왜 나를까. 목적은 적자생존이며 목표는 유전자의 생존이다. 더 잘 날아 먹이를 잘 잡는 새나 박쥐가 후손을 잇고 더 잘 날아 포식자를 잘 피하는 곤충이 자손을 남긴다. 먼저 날기 시작한 것은 곤충이었다. 척추동물보다 2억 년이나 앞선 3억 년 전부터 날기 시작했다. 가볍기 때문이다. 무게에 비해 표면적이 넓을수록 나는 데 유리하다. 몸 크기(길이)가 두 배가 되면 표면적은 네 배, 무게는 8배다. 크기가 열 배가 되면 표면적은 100배, 무게는 1000배가 된다. 어쩌다 날게 되었을까. 포식자를 피하며 몸 일부를 펼치다 붕 떠서 적을 뿌리칠 수 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초기 단계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이었지만 이윽고 자신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동력 비행’이 가능해졌다. 동물의 비행과 인간의 비행은 실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맹금류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광경은 급강하 폭격기를 보는 듯하다. 벌새는 날개를 위로 칠 때 완전히 뒤집어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다. 마치 헬리콥터나 드론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이 만든 기계의 비행에는 차이가 있다. 비행기나 헬기, 드론은 날개를 칠 수 없다. 엔진으로 추력을 얻고 날개로 양력을 얻는 비행기의 원리는 새나 박쥐, 곤충이 날개를 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새가 날개를 치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 역학은 비행기의 동작보다 훨씬 분석하기 어렵다. 그는 비행을 넘어 지구 밖을 향하는 인간의 꿈을 격려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만 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할 때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 이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과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자.” 그렇듯 2005년 7월 3일 소강석 목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약속의 성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기 위해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소강석 목사는 비가 내리는 창문가에서 흐린 하늘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여, 새에덴의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첫 날부터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향해 들어오는 예배자들 우산의 물결로 장엄한 광경을 이루었다. 몸에 묻은 빗물을 털면서도 성도들의 얼굴은 감격과 환희로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를 기뻐하며 환호했다. 첫 예배를 드린 프라미스 콤플렉스의 비전홀은 성도들의 눈물과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시인 소강석 목사는 2023년 12월 4일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라는 시집을 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문득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허공 위로 날아가다 나의 발 앞에 떨어졌을 때 그건 나뭇잎이 아니라 편지였다 쓰고 싶은 시였다 불 꺼진 창문 아래서 혼자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고 숨을 참아도 부르게 되는 사랑이었다 시인 소강석 목사의 날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성경은 말씀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9-21 2024-04-05
    • G.OPINION
    • G.OPINION
    2024-04-05
  • 의사 파업과 총회 선거
    구름이 발 아래 머물더니 3월 하늘이 폭설을 쏟아낸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1970년대 사당동 골짜기엔 태곳적 침묵이 쌓여갔다. 현관의 유리창 밖을 보고 서 있었다. 고요 속에 장엄한 살아있는 천지가 압도해 들어온다. 관입실재(觀入實在)! 마음의 눈으로 실재를 대면하는 순간순간이 이어진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감탄이 가슴에서 터졌다. 그 시절 3월에 웬일이냐! 만상이 살아있다는 영광을 이렇게 누리다니!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그날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되뇌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은 봄의 전령(傳令)이다. 그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위원장 권순웅 목사)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이번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총회장은 오직 예수 김종혁 목사(울산노회ㆍ명성교회)가 추대될 것이다.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할 것이라고 한다. 부서기는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가 앞선 가운데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할 것이다. 서기는 부서기 임병재 목사(경청노회ㆍ영광교회), 회록서기는 부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드러나고 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비 신도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4-03-25
    • G.OPINION
    • G.OPINION
    2024-03-25
  • 의사와 총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1997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다.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잭 니콜슨)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헬렌 헌트)의 사랑을 다룬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1998년 70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 수상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수상하였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멜빈 유달(Melvin Udall: 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증세가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그의 강박증 역시 유별나다.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거린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똑같은 테이블에 앉고, 가지고 온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그러나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캐럴 코널리(Carol Connelly: 헬렌 헌트 분)만은 예외이다. 언제나 인내심 있는 태도로 멜빈을 대하는 그녀는 그의 신경질적인 행동을 참고 식사 시중을 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녀는 천식으로 괴로워하는 어린 아들이 있지만, 변변한 치료도 못할 정도의 빠듯한 살림을 아이 아빠 없이 혼자 꾸려나가야 한다. 멜빈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이웃에 사는 동성애자 화가인 사이먼(Simon Bishop: 그레그 키니어 분)이다. 그는 멜빈이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싫어하며 또한 그의 작고 귀여운 개 버델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이먼이 강도들로부터 구타를 당하자 멜빈이 사이먼의 애견 버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 멜빈은 버델을 싫어하지만, 이 작은 강아지로 인해 멜빈의 얼음 같은 심장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동물과 소통하며 공감 능력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캐럴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캐럴의 집까지 찾아간 멜빈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오래 시달려온 아들을 돌봐야 하는 캐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다. 캐럴의 아들이 앓던 병은 심각한 게 아니었다. 캐럴이 가입한 의료보험으로는 정상적인 검사를 받을 수 없어 응급실에서 증상만 치료했을 뿐이다. 멜빈 덕분에 캐럴의 아들은 제대로 치료받고 완치됐다. 나쁜 의료 시스템이 한 여성과 아이의 삶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먼의 작품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생겼다. 막대한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파산할 지경에 놓인 그는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찾아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멜빈은 출판사 사장을 통해 캐롤의 아들을 치료해주고 캐롤과 함께 차로 사이먼을 고향까지 데려다주기에 이른다. 사이먼은 매우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도 건강한 자아를 가진 캐롤과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자유로운 대화들로 조금씩 치유가 되면서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강박증이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던 멜빈은 집이 없어진 사이먼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강아지에게 애정을 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캐롤에게는 사랑을 느낀다. 캐롤이 자기의 급성 천식을 앓는 아들 스펜서를 돌보기 위해 브루클린에 있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멜빈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다른 종업원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멜빈은 캐롤이 다시 이곳에서 일하기로 동의하면 아들의 상당한 병원비를 자신이 도와주겠다 한다. 캐롤은 멜빈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기울긴 하지만 그래도 그를 의심한다. 사이먼은 폭행 사건을 겪고 재활하는 중 베르델이 멜빈을 더 좋아하고 자신의 뮤즈를 잃어 우울증에 빠진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의료비 청구서 때문에 파산에 이르게 된다. 프랭크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볼티모어에 가서 돈을 빌려보라고 한다. 프랭크는 사이먼을 볼티모어까지 데려가기는 바빠서 멜빈이 데리고 가기로 한다. 프랭크는 멜빈에게 900 컨버터블을 타고 다녀오라 빌려준다. 멜빈은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한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이고 셋의 관계가 발전한다. 세 사람이 동행한 여행길에서 캐롤은 사이먼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멜빈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캐롤에게 서툰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하네요." 이런 그의 대사는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였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멜빈은 비로소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캐롤은 캐롤대로 가슴에 뻥 뚫려있던 구멍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남으로서 채워지는 행복감을 맛볼 일만 남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사회 고발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미국 의료 체계의 어두운 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비싼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인간의 생명에 필수적인 진단과 치료마저 받을 수 없고, 난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건져도 ‘의료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을 보며 나는 문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떠올렸다.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아픈데 원인을 모르거나 치료받지 못해 발을 구르거나 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건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나나 내 아이가 사이먼이나 캐럴, 그 아들 같은 처지가 될까 불안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건 그래서다. 올해 치러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2000명 늘어난다. 전국 의대 40곳 입학 정원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65% 증가한다. 교육부는 20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의대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 의료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난삽해진다. 수련의, 전공의, 개업의, 의대, 대학병원 등이 각기 다른 셈법을 굴리고 있는 가운데, 납득할 만한 대안 로드맵 제시는커녕, 그저 ‘일단 정책 철회하라’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의사들은 미국에서 푸드트럭을 하겠다는 둥, 용접을 배워 이민을 가겠다는 둥,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운 자기 연민을 공적으로 늘어놓는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것은 숭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용접공을 신세 한탄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픈 용접공의 병상을 지켜야 한다. 고소득 전문직인 의사가 타 직업을 그런 식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국민에 대한 조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왜 이 간단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할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마저 짚어보자. 멜빈의 처지는 여러모로 다르다. 부자고, 독신이며, 심지어 한 다리 건너 의사 친구가 있다. 하지만 잘못된 미국 의료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멜빈에게 의사는 무신경하게 약만 처방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을 만나지 못했다면 약물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잘못된 의료 시스템이 빚어내는 비극 속에서 몹시 삐뚤어진 못된 남자가 공감 능력을 익히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그는 캐럴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은혜로 합력하여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사 파업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질로 삼은 4월 10일 총선이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5-28 2024-03-20
    • G.OPINION
    • G.OPINION
    2024-03-20

실시간 G.OPINION 기사

  • 벚꽃 소강석
    벚꽃 -소강석(1962~) 봄날 흐드러지기 위해 피었나/산천에 피어있는 꽃보다/하얗게 흐드러진 꽃잎들이 눈부셔 /그 아래 서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그 새하얀 꽃구름 아래/걷는 것도 송구스러워 /한동안 멈춰 서 있노라면/문득 떠오르는 한 눈동자/그 시선이 나를 걷게 한다 어디론가 끌리게 하고/아득한 세계로 안내하는 꽃잎 하나하나/모두가 사랑의 연서이고 초대장인 거야 벚꽃은 졌지만/여전히 벚꽃나무 길을 걷는다/... 남해는 섬이다. 그러니 남해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길은 두 개가 있다. 경남 하동에서 남해대교를 건너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사천, 그러니까 삼천포 쪽에서 창선대교를 건너 들어가는 길도 있다. 남해대교를 넘자마자 ‘장관’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꽃길이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벚꽃이 필 때면 노량마을에서 왕지등대로 이어지는 길은 길고 화사한 벚꽃 터널이 된다. 맑은 날 파란 바다를 끼고 벚꽃 구름이 이루는 터널을 달리는 기분은 황홀하다. 벚나무 도열한 길 끝에 순백의 등대가 서 있는 풍경이라니…. 벚꽃 길은 왕지등대를 지나 해안가 언덕의 진목마을에 이르기까지 4㎞ 남짓 이어진다. 다른 지역에도 이만 한 벚꽃 터널이 없을까만 여기가 특별한 것은 벚꽃 너머로 교계의 기인 소강석의 신앙 시같은 쪽빛 바다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꽃이 시가 된다. 꽃 같은 믿음도 시가 된다. 이렇게 된 지 하마 오래되었다. 얼마 전부터 얼마나 그랬는지는 고시조를 보면 된다. 백영 정병욱 교수의 2400여 수 고시조 어휘 조사에 따르면 님, 일, 말, 몸, 꿈 같은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고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어휘는 달, 물, 꽃, 밤 등이었다고 한다. 옛사람의 마음에 님과 꿈과 꽃이 있었듯 오늘날의 마음에도 사람과 꿈과 꽃이 있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시인 소강석 목사의 ‘벚꽃’을 읽으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봄은 꽃이 되어 찾아왔다. 꽃구경 가지 못하는 당신에게 꽃 같은 시라도 피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세상이 열려서 우리는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일까. 과연 나는 내가 찾던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보고 싶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럴 때는 믿음의 재충전을 위한 리셋이 필요하다. 모든 세상을 향한 마음의 창을 다 닫고 모든 염려를 다 내려놓고, 그리고 잠시 처음 믿음으로 돌아가자. 고요한 나의 믿음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읽으면 도움이 될 시가 있다. 바로 교회 생태계를 위해 불철주야 엘리야처럼 분투하는 소강석 시인의 시집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에 실린 '벚꽃’이다. 2020-4-30
    • G.OPINION
    • G.OPINION
    2020-04-30
  • 총회 선거의 계절
    총회와 총신 세력 간의 날선 공방이 오가던 눈 오던 그날 척박한 걸음으로 사당동 총신 교정을 걸어가면서 보았다. 눈이 여린 가지에 내려 쌓이고 여기저기 계단들을 덮고 각각의 믿음처럼 제 자신에게로 돌아와 말없이 맞아들였다. 맑은 공기나 찬바람이 진종일 본관 뒤 소나무 숲을 울리어 제 존재를 드러냈다. 눈 속에서 그들 믿음이 산짐승같이 제 본성을 드러내고 원래 성미를 되살림을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눈이 지천으로 오는 밤에 기도를 해야지. 머리를 눈에 박고 눈 뜨고 기도해야지. 이윽고 주님과 함께 설야(雪夜)가 우리를 찾아오시리라. 하면서도 날아가는 새들의 해말간 소리만 공중에 떠돌며 얼어붙은 믿음을 애간장 녹이듯 했다. 총회 정치에서 친구냐 적이냐는 고정돼 있지 않다. 그 해석은 힘의 균형에 따라 바뀐다는 냉혹한 총대 눈치의 눈을 헤아려야 한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라고 말했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 제13대 대표회장에 2020년 4월 20일 계룡시 소재 나눔의교회에서 김영우의 밧줄을 잡았던 김상윤이 그것이 큰 벼슬인 양 대변인도 임명하며 취임했다고 한다. 그는 불의 사자 김화경과의 송사를 잘 마무리하고 다시 총회 정치 현장에 그 시절처럼 설 수 있을까. 통계에 따르면 2020년 4월 25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2천8백만 이상이다. 중국 언론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관련 첫 사망자를 1월 11일 보도했다. 그 이후 210개국 이상에 그 바이러스가 퍼졌다. 4월 말 현재는 전 세계 200,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존스 홉킨스 대학교(Johns Hopkins University)가 발표했다. 그런데 정작 세계의 도탄에 빠뜨린 원인을 제공한 중국 공산주의 당국은 책임을 묻는 나라들에 사과는커녕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무얼까. 그것은 신뢰 또는 믿음이다. 친구나 부부간에도 상대방을 신뢰해야 한다. 친구나 부부가 서로 속여 믿음이 없게 되면 이들 관계는 조만간 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신뢰 형성에 작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신뢰는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도 창출한다. 개인의 높은 신뢰도는 공직자 선발, 은행 대출, 사업 계약 때 시간과 경비를 절약해 준다.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의 신뢰도도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 예컨대 삼성전자 제품의 높은 신뢰도는 삼성의 주식 가치를 높인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는 외화 차입 때 대출 금리를 낮춘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한국은 26.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마 우리 총회 총대 상대로 기독신문을 통해 물었으면 어찌 됐을까. 신뢰도가 높은 나라의 순위는 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스웨덴·핀란드 순으로 이들 5개국 평균은 69.9%였다. 한국인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27%로, 34개 회원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사법부를 믿지 못하면서도 한국인의 민사 고발 건수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사법 고발로 낭비되는 국가적·개인적 지출이 만만찮을 것이다. 신뢰’(Trust)라는 저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일본인의 신뢰를 역사적·문화적·실증적 조사를 통해 연구했다. 그는 일본의 신뢰 수준은 자국민에 대해서는 신뢰를, 반대로 타국민에 관해서는 경계와 불신을 갖는 배타적 신뢰임을 밝혔다. 그는 일본인의 신뢰를 ‘야쿠자적 신뢰’라고 했는데, 이는 야쿠자 집단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반대로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맹목적 신뢰는 야쿠자 두목과 부하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형성되는데 야쿠자 부하는 두목에게 충성을 바치고 그로부터 자신뿐만 아니라 전 가족이 보호받는다. 이 야쿠자의 신뢰는 과거 일본의 번주(藩主)와 사무라이 간의 신뢰 풍토에서 나온 것이라고 후쿠야마 교수는 해석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일본의 야쿠자적 신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한 정당 안에서 파벌이 생기는데 그것은 지도자가 자기를 따르는 당원은 끝까지 챙기는 반면 그러지 않는 당원은 박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행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따르고 감싸는 각료들은 서로가 야쿠자식 신뢰를 형성한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겐 배타적인 반면 자기 식구들은 끝까지 지원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인의 신뢰도는 높다. 그 배경은 가정·학교·사회 전체가 우리 교단과 달리 거짓말을 엄격하게 금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상대방을 가장 하게 모욕하는 말은 ‘너는 거짓말쟁이’(You are a liar)이다. 이 말을 듣고 총을 꺼내 상대방을 사살하는 사건은 우리나라나 교단과 달리 미국 서부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지도자의 거짓말은 용서가 안 된다. 대표적인 예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닉슨 대통령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의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사임했다. 사실 워터게이트는 그리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다. 1972년 미국 공화당 당원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해 자료를 살핀 게 전부였다. 처음 닉슨 대통령은 조국 부부처럼 ‘백악관은 침입 사건을 몰랐다.’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나중에 그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됨에 따라 일파만파로 커졌다. 만일 닉슨이 처음부터 솔직하게 침입 사실을 인정했더라면 탄핵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다 그것을 감추려고 제2, 제3의 거짓말을 하면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사임한 불행한 대통령이 됐다. 만일 한국에서 워터게이트 같은 사건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는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수많은 거짓말을 태연자약하게 한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여러 증인과 증거물로 자녀들의 인턴 수료 및 증명서 위조 등이 명백한데도 그는 이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 당시 조국은 고위직 공무원 겸 서울대 교수였다. 진실을 추구하고 인품으로 먹고사는 교수였던 것이다. 교수의 명예와 품위를 끝없이 추락시킨 그에게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 조국 내외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앞으로 사법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온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총회에서는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엄마가 어린 자식에게 ‘잠깐 편지함에 가보고 올게’ 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곤 몇 시간씩 집을 비우는 건 예사다. 친구 사이에서도 거짓말은 쉽게 통한다. 어쩔 수 없어 거짓말을 했다고 사과를 하면 우리는 쉽게 용서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거짓말을 엄히 다스린다. 거짓말을 불식하고 신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가정·학교·교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진실을 중시하고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당선자들은 국민의 신뢰를 결코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듯 교단도 9월 제105회 총회 선거를 통해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라 거짓말하지 않는 투명한 정치, 일하는 총회, 믿음의 교단을 만들어 전국 교회와 일반 사회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매진하길 기대한다. 2020-04-27
    • G.OPINION
    • G.OPINION
    2020-04-27
  • 시인 소강석의 4월
    저기 저 산 너머에는 뭐가 있죠. 소년 강석은 입버릇처럼 남원의 하늘에게 묻곤 했을 것이다. ‘저 산 너머’에서는 소년의 ‘마음 밭’에 심어 놓은 신앙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 소년은 우리가 기억하는 시인 소강석이 된다. 4월 초입이 되면 꽃나무와 햇살이 예고한다. 4월 부활절. 그날이 돌아온다고. 이런 예고 속에서는 어떤 시를 읽어도 대속하신 주님의 슬픔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 까닭은 시가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고 내가 울면 시도 우는 것이 시의 문법이다. 3월에 쓴 시가 4월에 나온 시집에서 소강석은 ‘불의 사연’을 전한다. 수전 손태그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은 침략이고 폭격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 같은 코로나19로 재앙을 만난 4월의 세계 시민들에게 우리 주님의 대속을 갈음하는 ‘불의 사연’을 4월 초에 전했는데 4월 말에 새로운 감동으로 다시 전한다. 시상은 감상이 아니라 지성이라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말이 문득 오르고 시인 소강석의 ‘불의 사연’이 새삼 내 가슴에 차올랐기 때문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푸르른 날’ 같이 감흥이 일어났을 때 바로 쓴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가슴속에 넣었다가 먼 훗날 끄집어내 쓴 시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아. 불의 사연 홀로 타오를 수 없습니다장작개비가 되어 내 곁으로 와 주세요 나는 당신을 품에 안고 바람을 기다립니다당신은바람이 불면 재가 될 줄 알면서도내 품에 안긴 채바람을 기다립니다 나는 불당신은 어느 겨울 숲에서 꺾여내게로 온 장작개비난 당신의 차가운 몸을 껴안고바람을 기다립니다 나는 7순이 되니 아무래도 주님의 나라에 입국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4월과 무관한 ‘불의 사연’을 4월 말 함께 읽고자 들고 왔다. 이 시는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시는 주님의 제자 수와 같은 12페이지에 실려 있다. 그가 입국한 혹은 입국할 주님의 나라는 아름다운 숲의 나무가 장작개비가 될 나라인 모양이다. 이것은 실제 숲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시인이 찾아갈 나라의 숲으로 읽힌다. 이렇게 읽는 이유는 단지 그 나라를 믿고 사는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역병으로 흉흉한 4월 말의 봄에. 2020-04-24
    • G.OPINION
    • G.OPINION
    2020-04-24
  • 70정년제 교단지도력 쇠퇴
    내 젊은 시절의 여인상 구순(九旬)의 최은희는 아직도 정신이 말짱해 2015년 6월 13일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꿈에 매일 나타나는 신상옥 감독, 다음 생엔 남편으로 안 만나고파. 납북·탈북·망명·귀국 ‘영화 같은 삶’ 한바탕 길고 긴 꿈에서 깨어난 듯합니다.” 신 감독을 다시 안 만나고 싶다는 25살 연상의 여인의 말에 65세의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최은희씨는 소녀 같고 장난기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옛 추억을 꺼내니 절로 신이 나요. 30대로 보이게 찍어주세요. 안되겠죠. 하하.” 위임식을 거쳐 목회에 한참 물이 올라 완숙기에 오른 우리 교단의 70이 가까운 목사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아직 청년 같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경력과 영력에 있어서 한창 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후임을 물색하는 장로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임기 말 전 대통령의 부인이 노 대통령의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전 대통령의 부인은 이 말 저 말하다 속내를 드러내 말했다. “취임하면 우리 잘 봐주실 거죠.” 노 대통령의 부인은 아무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다. 레임 덕(Lame Duck)은 현직에 있던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일종의 권력누수 현상이다. 즉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거나 먹혀들지 않아서 국정 수행에 차질이 생기는 현상이다. 임기말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권력자나 지도자가 임기 제한으로 인해 권좌나 지위에 오르지 못하게 되거나 임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경우에 레임덕이 나타난다. 특별히 목회의 경우 70정년제로 한창 힘과 여유와 지혜가 있게 일할 나이인 65세를 전후해서 후계 문제로 자신의 노후를 염려해 그 대책 마련에 눈치가 보이고 힘을 잃게 된다. 그런 현상을 레임덕(lame duck)이라고 하는데 원래 사냥꾼들이 쓰던 말로 총에 맞은 오리가 절뚝거리며 도망가지만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탄약을 낭비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즉, 곧 죽어가는 오리이기 때문에 괜히 힘쓸 필요 없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절뚝거리는 오리(lame duck)를 상징하는 말로 바뀌었다. 정치적 용어로서 레임덕이란 정권 말기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거나 정권 말이 되면 지도자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정권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곧 자리에서 물러날 지도자에게 주변 사람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아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모양새가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된 것은 1980년대로 레이건 대통령 재임당시에 임기가 1년 남은 시점에 상대편 당의 국회의원 등이 대통령의 말에 반하는 행동을 것에서 비롯되었다. 기자로서 여러 목사들을 취재하기 위해 다니다 보니 지도력을 한창 꽃 피워 열매를 맺을 나이에 은퇴 준비나 생각하면서 후임 준비는 교회에 맡기고 여행이나 다니거나, 또는 후임이 될 젊은 목사에게 대부분의 실무를 맡기고 뒷전으로 물러나거나, 또는 은퇴 준비와 후임 인선 문제로 교회와 밀고 당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제 시대가 90년대와 목사들의 건강과 정신력이 아주 양호하다. 심지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2015년 당시 분쟁의 화두로 떠오른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94세임에도 작년 고관절 부상으로 휠체어는 타지만 정신력은 말짱한 모양이다. 우리 교단의 안정을 저해하고 목회 지도력 누수(漏水)를 일으키는 70정년제를 재고할 시기가 온 것 같다. 그 대안은 목사와 장로의 시무 연한을 75세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의 정신대로 70세까지 힘차게 목회의 지도력을 발휘하다 그 이후부터 은퇴나 후계 문제를 대비하면 교단의 안정과 교회의 성장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례로 그 연륜이나 건강이 아까울 정도로 왕성한 목사 장로 등의 많은 총회 지도자들이 교계나 교회를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4-20
    • G.OPINION
    • G.OPINION
    2020-04-20
  • 배재군 칼럼 - 미래 통합당(보수 정당)의 몰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모 일간지 칼럼니스트는 총선의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나라를 망쳤는데도 180석이면 이 나라의 미래는 절망이다. 이제 국민은 경제와 안보, 자유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 상태에서 살게 됐다"라고 했습니다. 보수 정당의 패인이 무엇일까요? 여론은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보수 골통 꼰대 짓만 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과거에 안주하거나 각자의 환상 속에 빠져 꼰대 짓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목회자(목회자 집단)의 의식은 어떠한가요? 신앙의 본질, 신앙의 형태는 보수 골통을 사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틀, 신앙의 양식마저 변질되지는 않았습니까? 복음의 본질은 변할 수 없지만 적용에 있어선 ‘네모난 그릇에 담을 수도, 둥근 그릇에 담을 수도 있듯이’란 예를 들어가면서 ..., (경계해야 할 상황윤리에 맞추어 가면서) 목회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그러진 군상들을 보세요. 그 모든 것을 담기에는 지면이 부족하고 부끄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만일 교회 존재 가치에 대한 국민투표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존재의 찬성, 아니면 반대일까요?, 한번 생각해 볼까요? 개인적으로 그 결과를 생각하면 신경계통에 오싹하는 전율의 흐름(무서움)을 느낍니다. 맘모스, 초대형, 대형이란 틀 안에서 자신을 우상화하는 유혹, 큰 인물인 듯하는 유혹, 반대로 그렇지 못한데 대한 자괴감, 자존감의 상실 또한 경계해야 할 일들이 아닐까요? 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외침은 지금에도 외쳐야 할 소리, 귀 기울어야 할 소리인 듯합니다. 2020-04-18대한예수교장로회 동원교회 배재군 목사
    • G.OPINION
    • G.COLUMN
    2020-04-18
  • 더굳큐티에 관하여 - 진영정 목사
    바이블리더스 출판사에서 ‘더굳큐티’가 새로 출간되었다. 저자이신 김영배 목사님은 캘리포니아 IRUS 신학교에서 만나 교재하고 있는 분으로 목사님의 성품과 열정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심 있게 ‘더굳큐티’를 읽어 보았다. 성경을 알고 성경을 따르게 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더굳큐티’는 말씀과 목회현장을 연결시켜 묵상하도록 돕고 있고, 성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설명해 준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3절의 “빛이 있으라”를 설명할 때 빛이란 원자가 들뜬 상태에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빛에 대한 설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만들어진 들뜬 원자가 빛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고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안정된 원자를 그릴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안정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한다. 막연한 내용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말씀의 해석이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으신 탁월한 필력이 엿보인다. ‘더굳큐티’는 성경의 설명과 해석을 알기 쉽게 하려는 노력이 여러 군데 보여 독자를 자연스럽게 감동케 하며 제미슨-포셋-브라운 주석을 기초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성경적용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각 장의 서론을 여는 시사적인 설명이 많아서 말씀에 연결되지 않는 설명이 보여 아쉬웠지만 성경단어를 명확하게 설명해서 눈길을 끌게 하였다. 앞으로도 단어 설명이 구체적이고 적용하기 쉽게 많이 풀어주신다면 목회현장의 많은 설교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진영정 목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던 중 37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부르심을 받아 신학을 했다. 미국 Biola University에서 목회상담으로 목회학 석사(M.Div.)를,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부에서 목회학 박사(D.Min.)를, Southern California Seminary에서는 심리학 박사(Psy.D., 산업심리학 전공)를 받았고 담임목사와 신학교 교수로 20년간 살았다. 저자는 2017년부터 대구 대신대학교에서 기독교 상담과 기독교 영성 과목의 교수로, 옥인교회(서울 종로구 옥인동 소재)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또한 미국과 한국에서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받은 많은 목회적 영감으로 집필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아내 진신진 사모와 슬하에 아들, 며느리, 딸이 있다. 저서로는 『억압에서 자유로』 『선택』이 있다. 2020-04-12
    • G.OPINION
    • G.OPINION
    2020-04-12
  • 김종희 칼럼 - 0천노회. 0동교회 화목을 위한 제언
    총회 화해중재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0천노회와 0동교회가 화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양측의 합의서는 곧 공개되겠지만 우선 0천노회와 0동교회의 화목을 위하여 양측이 협조해 주셨으면 하는 긴급한 몇 가지 제언을 드립니다. Ⅰ. 0천노회는 0동교회에 원만한 당회장을 파송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① 원만한 당회장이란 해 교회 당회원과 협의하여 행정을 처리할 수 있는 당회장을 말합니다. 해 교회 당회원과 마찰을 빚을 경우 교회는 또다시 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 교회 당회가 비토하는 당회장을 노회가 밀어 부쳐서는 안됩니다. ② 당회장은 노회가 파송하는가, 당회가 청하는가에 있어서 정치 제9조 제4항에 “당회장은 목사가 되는 것이므로 어떤 교회에서든지 목사가 없으면 그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할 때까지 노회가 당회장 될 사람을 파송할 것이요. 노회의 파송이 없는 경우에는 그 당회가 회집할 때마다 임시 당회장 될 목사를 청할 수 있으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당회장 될 목사가 없을지라도 재판 사건과 중대 사건 외에는 당회가 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③ 얼핏 보면 상기 조항은 노회가 당회장을 파송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당회가 청원할 수 있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노회가 당회장을 파송할 수 있는 권한과 당회가 당회장을 청할 수 있는 권한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의 원리가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으면 안됩니다. 노회가 파송할 권한과 당회가 청할 권한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회가 임시당회장을 청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은 노회가 당회장 배정의 권한을 이용하여 지교회를 어렵게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④ 정치문답조례 제205문에 보면 “교회에 담임목사가 없으면 누가 당회장이 되느냐?” 답은 “노회가 임명하거나 독특한 경우에는 당회가 회장 될 목사를 청할 것이요. 혹은 목사를 청하기가 아주 어려운 경우에는 그 당회 장로 중 1인을 당일 임시회장으로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독특한 경우란 ‘교회가 분쟁 중에 있어 노회가 당회장 배정 권한을 무리하게 행사하므로 지교회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가 포함된다고 봅니다. 바람직한 것은 노회는 지교회를 돕기 위하여 당회와 잘 협의하여 당회장을 배정하면 좋을 것입니다. Ⅱ. 0동교회는 예배가 잘 드려지도록 협력에 주시기 바랍니다. ① 예배모범 제2장 2항에 “예배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엄숙한 태도와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목사가 낭독하거나 인증하는 성경 밖에 다른 것을 읽지 말 것이다. 합당치 못한 모든 행동을 일체 하지 말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소란을 피우거나 설교를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② 합의서에 따르면 “0동교회 공적인 예배의 정상화를 위하여 설교자와 성도들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가하거나 소란을 피우며 예배를 방해하는 자(동영상 자료 증거)를 적발 시 교인의 권리가 3년간 자동 정지됨을 지도한다.(당회,공동의회.제직회원권이 정지됨)”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합의안에 저촉을 받는 행위를 하여 교인의 권리를 상실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를 포함 모든 교인이 해당됩니다. Ⅲ. 0동교회 목사 청빙은 화해중재위원회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① 합의서에 따르면 “0동교회 문제 해결의 가장 핵심이 되는 위임목사 청빙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청빙위원회를 구성한다. 총회 측 3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며, 화해중재위원회가 지도하여 임시당회장으로 하여금 공동의회를 다시 개최하도록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②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동안 위임목사 청빙과정에서 양측의 견해 차이로 분쟁이 심화되었기 때문에 화해중재위원회에서 지도하려는 것입니다. 마치 자체적으로 분쟁이 해결될 실마리가 없을 경우 관선이사가 파송되어 일을 처리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목사를 청빙하는 권한은 해교회의 권한이므로 이 부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양측이 합의하는 목사를 모시도록 돕는 목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0천노회와 0동교회는 목사 칭빙문제를 가지고 대립하는 일이 없도록 양측이 자숙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③ 위임목사 청빙을 제외한 모든 행정은 0천노회가 파송하는 당회장과 0동교회 당회원이 협의하여 진행할 수 있으되 제103회 총회 결의에 따라 위임목사가 청빙되어 시무할 때까지 치리권을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합의서 제5항) Ⅳ. 결론 0천노회와 0동교회는 화목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원만한 당회장을 파송해 주시고 거룩한 예배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삼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목사 청빙에 관하여는 자신들의 뜻을 내려놓고 기도하며 화해중재위원회의 지도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0천노회와 0동교회 위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종희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성민교회) 2020-04-07
    • G.OPINION
    • G.COLUMN
    2020-04-07
  • 주연종 칼럼 - 교회는 사회주의와 일치하지 않는 유일한 기구이다
    교회는 사회주의와 일치하지 않는 유일한 기구이다 “교회는 본질로 볼 때 사회주의 속에서 사회주의 사회와 일치하지 않는 유일한 기구이다. 교회는 더 이상 성장해서는 안 되고 사회주의와 그 발전을 위해서 불필요한 존재이다.” 1983년 동독의 한 간부가 발표한 논문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1949년 독일 인구의 9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단 이듬해인 1950년부터 동독은 소련의 사주를 받아 교회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의 기독교교육이 중단되고, 교회 관련 시설의 신축이나 증축이 불허되고, 교회의 기독교 교리반에 소속되어 신앙교육을 받으면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계속되었지요. 반 기독교 정책이 펼쳐지면서 통일 이후 동독의 기독교 인구는 1/3로 줄어 인구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서독은 85% 정도로 큰 변화가 없었던 것에 반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연령대가 청소년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사회주의 국가의 자녀로 키우기 위해 교회교육을 금지하는 대신 성인식을 통해 국가의 소유로 확정해 나갔습니다. 믿음의 세대 계승이 불가능했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독의 교회들은 기도와 행진으로 엄청난 기여를 하였지요. 결국 그 당 간부의 논문대로 ‘교회는 사회주의와 일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얼마 전 여당의 대표인 이인영 의원이 “이번 총선이 끝나면 우리 사회의 패권을 교체하겠다.”라고 했습니다. “편향된 종교인과 지식인도 교체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경자유전(耕者有田) 및 토지공개념 도입 등도 주장했지요. 편향된 지식인과 종교인을 어떻게 감별할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 사람은 다 압니다.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다 압니다. 결국엔 체제를 바꾸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요. 이에 대해 “사회주의 개헌을 하겠다는 거냐”, “국민의 사유 재산을 탈취하겠다는 거냐”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체제를 바꾸고야 말겠다는 마각(馬脚)을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한 발 앞에 다가온 느낌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자유,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자유란 무엇보다 의견을 달리할 자유”(로사 룩셈부르그)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전체의 결정을 우선하는 사회주의와 교회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동독이 무너진 후 동독교회가 “사회주의는 오류 그 자체이다”라고 선언했던 것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자 그 책임을 교회에 돌리려 예배를 통제하고 교회를 가치 절하시키려는 여러 정치 행위를 보면서 이들이 지향하는 방향이 사회주의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아침입니다. 2020-04-06
    • G.OPINION
    • G.COLUMN
    2020-04-06
  • 배제군 칼럼 - 정부와 모든 이들에게 고함
    2007년 12월 7일 서해안 앞바다 유조선 침몰로 서해안 해안가 오염 사건; 추운 겨울 사고현장에서 기름떼를 벗겨내며 봉사한 곳이 어디인가? 한국교회가 이 일에 동참하여 오늘의 서해안 바다를 다시 살리는 일에 크게 일조한 일을 기억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정부는 어느 나라처럼 “교회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위해 모여 기도하는 일에 힘써 주시기 요망합니다.”라는 청원을 할 수 없는가? “기독교인은 중국발 우한 폐렴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당신들이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열심으로 기도하시오.”라고 부탁하는 멋진 대한민국 정부 및 관료들이 될 수는 없겠는가? 세계적으로 퍼져가고 있는 중국발 우한 폐렴, 어찌 사람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신의 힘, 살아계신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긍휼을 구하며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동원교회 담임목사 배재군 2020-03-24
    • G.OPINION
    • G.COLUMN
    2020-03-24
  • 문재인과 유장춘 방식
    문재인 공로 세 가지 중 하나는 핵 제거는 못했지만 핵 공포증은 말끔히 없애줬다. 제 고모부 박격포로 죽인 김정은이 아무리 바다에 대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국민은 이제 사재기는커녕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또 하나는 조국과 울산 송철호와 자신을 위해 공수처를 애써 만들어 대통령을 포함한 공무원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죄가 얼마나 중요한 법치의 뿌리임을 깨우쳐줬다. 공수처를 앞세워 중요한 사건을 덮거나 뭉개면 대통령 범무장관 포함 공무원은 다 고소고발을 통해 기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대법원장 양승태의 경우에서 보듯 현 대법원장 김명수도 온전치 못 할 것이다. 법에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죄는 결코 삭제할 수 없고 선거법처럼 적당히 주무를 수 없는 법의 숨통과도 같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또 세 번째 공적은 천하에 무도한 공산주의자 시진핑 비위 맞추느라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획산 방치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손씻기 위생을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자리 잡아 준 것이다. 어느 국난과 국정 혼란보다 더 심한 이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국법 준수와 의료 발전으로 세계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총회는 꾼들의 농간으로 적폐 대상이 된 납골당 총회 고리 사채 담보 지분을 몇 차례의 조사 처리 소동 끝에 손해가 나도 팔라고 결의했다. 받은 돈으로 돈을 준 총신 김영우를 구속시킨 적폐 해결사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은 충성교회 측으로부터의 선취득 매각대금 51억을 제외하고 온세교회 측에 27억 매각 결의를 하고 실행위원회 추인까지 받았다. 그때의 찬성 발언 주역은 총회 몇 안 되는 법학박사 유장춘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납골당 매각 적극 찬성 당사자 유장춘이 포함된 매각 책임 소위원회는 미적거렸다. 그리고 종내 회기를 넘겼다. 그러나 말씀과 신학 보수 일백 년 역사의 총회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무심하지 않으셨다. 2016년 제101회 총회장 김선규 목사는 납골당 문제를 총회 은급재단 성장과 안정 저해 1호 대상으로 삼고 해결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2017년 9월 18일 8차에 걸친 납골당 매매계약 합법적 체결에 방점을 찍었다. 그 계약서에는 계약 이행과 충성 측의 51억에 대한 총회 위험 부담 조항도 상세히 명기했다. 그 매매계약 체결 이사회의 실무는 전 총무 김창수가 전담해 은급재단 이사 소집 통보 출석 호명 매매계약 의결 총수 확인을 직접 했다. 그런데 총회가 수임한 안건이고 총회 은급재단 법인이 의결한 건을 비법인 총회는 보고만 받으면 끝날 일이었다. 무법 음험한 제102회 무임승차 전계헌은 “총회가 손해가 나도 팔라고 했는데”라고 이죽거리며 유장춘 등이 선동하는 납골당 매매계약 체결 보고 거부도 모자라 총회 결의를 이행하고 적폐를 해소한 공로자들에 대한 출국금지를 포함한 조사저리를 결의했다. 물론 그 조사는 무위로 끝났고 온세교회 측은 납골당 매수 27억 계약금 2억7천까지 지불한 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 과정에 총회 은급재단 측은 이사장 전계헌 지시 내지 묵인 아래 은급재단 김성태 이사 사임 전결 처리 위조를 이사 유장춘 발의, 실무국장 박상범 기안, 전 총무 김창수 날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을 망각하고 지엄한 사법 당국에 위조 서류를 제출해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법원의 고유 업무를 방해하고 농락했다. 온세교회 측에서 나중에 그 사실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자 김창수는 김성태 이사 사임처리 전결한 것을 총회장에게 허락과 보고를 묵살한 것도 모자라 2017년 9월 18일 은급재단 이사회에서 깜박 잊고 사임 처리된 김성태 이사를 호명하고 의결 계수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것 역시 죄에 죄를 쌓는 자신의 사문서위조 의혹에 대한 허위 변명으로 보인다. 양심을 어긴 야심은 고통의 근원일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의 질서와 정치의 질서가 상응(相應)한다고 봤다. 그의 희곡에서 국왕 시해의 결과는 무질서와 천재지변이었다. 작금의 중국 우한 발 코로나19 세계적 재난 역시 문재인과 총회 은급재단 작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구(舊)소련에는 당(黨) 기관지 ‘프라우다’('진실'이라는 뜻)와 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소식이라는 뜻)가 여론을 끌고 갔다. 두 신문 차이를 묻자 소련 관리는 ‘프라우다’에는 ‘새 소식’이 없고 ‘이즈베스티야’에는 ‘진실’이 없소. 그렇게 두 기둥이 ‘진리’와 ‘새 소식’을 막아주기에 나라가 버틴다오." 그렇듯 ‘기독’(크리스천)답지 않게 좋은 소식이 없는 총회 기관지 기독신문과 ‘진실'이 없는 사설언론들을 대하고 있는 우리 총회 총대들은 자신이 어느 신문의 주인공을 닮았는지 알 것이다. 이제 출판국까지 꿰찬 총회 은급재단 실무 국장 박상범은 집요하다. 해미다 바뀌는 총회장과의 대화는 이어진다. 자신이 만년 실세 총회장이라 행세하는 그는 상황을 자른다. ‘총회 이전과 납골당 수호’로 나눈다. 교묘한 분리로 혼선을 노린다. 그럴수록 납골당 매각 거부의 집념은 너절해진다. 납골당 사태는 권력의 창(窓)이다. 역대 총회장의 내면이 들여다보인다. 권력 교만은 위압적이다. 그 심리는 우월감과 총대 깔보기다. 그들은 하는 말과 달리 실상은 거짓말로 성경과 헌법도 얕잡아 본다. 기관지 기독신문을 비롯한 여론을 통제·관리 대상으로 취급한다. 낡은 관행을 뒤집는 과정에 도덕적 기준이 바뀔 수 있다. 그렇지만 양심을 개인과 집단의 이익 아래에 두어서는 안 된다. 어떤 총회장 회기에서건 잘못한 일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사과하는 신앙과 상식의 틀은 남겨놓아야 한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고쳐서 개선하면 된다. 그런데 일본 학자가 지적하듯 약속은 안 지키기 일쑤고 거짓말은 다반사로 하는 문재인은 그럴 생각은 않고 폭탄 테러하듯 자기 마음에 안드는 것은 ‘원전’이고 ‘입시 제도’고 쓸어 없애겠다고 한다. 제100회와 제101회 총회 결의에 따른 총회 은급재단(이사장 김선규 목사)의 합법적 납골당 매매계약을 회기가 바뀌자 김성태 사임서 위조 전결처리로 무효로 만드는 총회 법인국 박상범과 은급재단 이사 유장춘 식이다. 2020-03-20
    • G.OPINION
    • G.OPINION
    2020-03-2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