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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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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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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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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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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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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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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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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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티주석36 야벳 자손
    Trump angers Beijing with 'Chinese virus' tweet 야벳 자손 10: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 10:1-5 하나님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인간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셨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을(창 3:) 형제와 형제를(창 4:) 가족과 가족을(창 9:) 갈라놓았고 이제 민족과 민족을(창 10:) 갈라놓는다. 코로나19로 다급해진 야벳의 자손 도날드 트럼프는 2020년 3월 15일 그의 사설 언론 트윗을 날렸다. ‘미국은 우리 공항들에서 아주 정확한 의료 검진(Medical Screenings) 장비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 가능한 빨리 움직이고는 있지만 장애와 지연이 있는 점은 양해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바르게 잘 할 것이다. 안전이 첫째다’(The US is doing very precise at our airports. Pardon the interruptions and delays, we are moving as quickly as possible, but it is very important that we be vigilant and careful. We must get it right. Safety first!)’ 한국과 이탈리아는 인구가 각각 약 5천백만과 6천만 명이고 GDP 대비 의료비 비율도 7~9%로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은 확진자 8천여 명 중 사망자가 70여 명인 반면 이탈리아는 확진자가 2만 명이 넘고 사망자도 무려 1,5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치명률이 7%를 넘고 있지만 한국은 0.89%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치명률은 미국(2.16%) 프랑스(2.15%) 일본(1.97%)보다도 훨씬 낮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외신들이 한국을 분석하는 보도를 내고 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하루 최대 2만 명 검사 능력을 갖춘 한국에 대해 ‘공격적인 질병 진단이 바이러스와 싸울 때 좋은 무기가 되고 있다’라고 했다. 조국이 죽창가를 외치는 일본 언론도 ‘검사 횟수를 비교하면 한국이 일본의 30배에 가깝다’라고 했다. 한국이 꼬박 하루 걸리던 검사를 6시간으로 단축시킨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대량생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가 보유한 진단 키트가 200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 CNN은 ‘한국은 지금까지 23만 명 이상을 검사했다.’라며 그 배경에는 씨젠이라는 기업이 있다고 했다. 씨젠 대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폐렴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한 중위권 대학 농학과를 졸업한 벤처 사업가라고 한다. 씨젠은 우한 폐렴 확산 초기인 1월 중순 진단 키트가 대량으로 필요할 것을 예측하고 개발에 들어갔다. 국내에 첫 확진자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불과 2주 만에 진단 키트 개발에 성공하고 대량생산 체제까지 마쳤다. 그때까지도 중국과 한국 정부는 우한 코로나를 가볍게 여기며 낙관론을 펴고 있었다. 하지만 씨젠은 바이러스 특성상 우한 코로나가 곧바로 한국으로 퍼질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과학적 기반의 상식만을 믿고 그대로 추진했다고 한다. 중소기업 한 곳의 혁신가 정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상황은 크게 다를 것이다. 문재인 패거리들과 달리 질병관리본부의 전문가들 역할도 컸다. 메르스를 경험한 전문가들이 민간기업 씨젠의 신제품 사용 신청에 일절 갑질 없이 신속히 협조했다. 의심 환자가 차에 탑승한 채로 검사받는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도 미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 활용을 직접 지시할 정도로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아이디어의 최초 제안자도 한국 병원 의사다. 마스크 문제 역시 민간기업이 주도하면서 해소될 전망이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마스크 공급에 문제가 없다.’라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할 때 착실히 준비하는 기업들이 있었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가 이달 초에 기계 제작을 시작해 조만간 제조 장비 50대를 가동할 수 있다고 한다. 바이오 의약품 제조사 셀트리온도 마스크 생산과 치료제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 기업들의 혁신 정신과 추진력은 놀라울 정도다. 지금 상황이 참으로 엄중한데 위정자들 행태를 보면 위기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노련한 선장은 태풍을 만났을 때 파도를 보지 않고 바람을 읽는다고 한다. 문재인 패거리들도 제발 거짓으로 위장한 눈앞의 정치만 보지 말고 바람 좀 느껴라. 그리고 바람처럼 성령을 보내시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 앞에 머리 숙이고 교회 문만 닫으라 하지 말고 기도해달라고 부탁 좀 해보거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르는 이 어리석은 것들아. 창 10:1-32. 노아의 족보 Genealogies of Noah 1절. 노아의 아들 sons of Noah 홍수 이후 세상의 모든 민족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내려왔다.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행 17:26 성경 기록자는 노아 자손의 목록을 연장자 출생 순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기사가 야벳의 자손들로 시작하지만 노아의 막내아들인 함의 자손이 셈의 자손보다 먼저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5절. 바닷가의 땅 the isles of the Gentiles 개역성경이 바닷가의 땅으로 번역한 구절을 킹제임스성경은 이방인들의 섬들(the isles of the Gentiles)이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인은 바다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나라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사 11:11 + 두로의 모든 왕과 시돈의 모든 왕과 바다 저편 섬의 왕들과 렘 25:22 바다와 연관된 그러한 나라들은 유럽의 나라들과 소아시아 반도의 나라들이었다. 이 지역들이 야벳의 초기 자손들이 거주한 지역들이었다. ♣ QT 되새김 A 야벳은 노아의 몇째 아들인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야벳 자손의 바닷가의 땅을 영어 성경에서 어떻게 번역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히브리인은 바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땅을 어떻게 말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성경 기자가 노아의 자손들을 출생 연도순으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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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큐티주석35 믿음의 장자 누구
    Noah Curses Ham 믿음의 장자 누구 9: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년을 지내었고 29 향년이 구백 오십세에 죽었더라 창 9:20-29 성경에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 라고 말한 나이가 600세나 되는 ‘의의 전파자’(preacher of righteousness)가 술에 취한 것을 상상해보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막내 아들 함은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고소한 듯이 바라볼 게 아니라 염려해야 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기(잠 14:9) 때문이다. 그의 다른 형제들 셈과 야벳은 사랑이 항상 나타내는 행동을 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기(잠 10:12)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 4:8)는 말씀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2020년 중국 우한 발 코로나바이러스19로 시름하는 시절 노아의 세 아들에 대한 예언을 통해 믿음의 장자가 누구이고 무슨 의미인지를 살펴보자. 창 9:20-29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 the sons of Noah, Shem Ham Japheth 창20절.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Noah began to be an husbandman 세기의 처음 부분에서 시작했다(began)는 말이 나오면 불길한 조짐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창 11:6 노아는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방주를 떠나자 그 일을 다시 시작했다. 농업(農業)으로 번역된 husbandman은 문자적인 의미로는 ‘흙의 사람’(man of soil)이다. 그가 땅을 잘 아는 땅의 대가(master of the earth)이거나 땅의 주인(lord of the earth)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농부(農夫)였다.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And he drank of the wine, and was drunken... uncovered within his tent 포도 수확기의 축제 때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에게 아주 신실한 사람이었으므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아주 경건한 성격을 지닌 사람의 유일한 흠이었다. 아마 노쇠나 부주의한 실수로 빚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만취(滿醉)는 홍수 이후 바뀐 환경으로 인한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22절.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Ham... saw the nakedness of his father 이 구절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레위기 20:17의 ‘누구든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을 취하여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찌니 그가 그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 죄를 당하리라’의 경우와 같은 사건이 아니었다. 24절. 노아가 술이 깨어 Noah awoke from his wine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and knew what his younger son had done unto him 이 사건은 홍수 이후 20년까지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가나안은 자기 아버지 함보다 행위가 훨씬 비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셈의 후손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8:3-4 게다가 가나안은 노아와 함 사이의 이 사건 이후까지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 구절과 25절의 가나안의 저주 예언 사이에 상당히 긴 간격이 있었을 것이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의 자기 아들들에 대한 예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아의 경우도 예언의 영이 그에게 임했을 그의 임종 말에야 비로소 세 아들에 대한 이 예언을 말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추측의 강한 배경은 노아의 죽음이 이 예언 뒤 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 창 9:28-29 25절.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Cursed be Canaan 이 저주 예언의 본질은 함 자손 전부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단지 가나안 자손에만 국한된 저주라는 것이다. '종들의 종 a servant of servants' 이 말은 문자적으로 가장 비천한 노예(the most abject slavery)를 의미한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에 대한 축복들이 예언되는 때조차도 가나안의 노예 신분 예언이 두 번이나 거푸 반복되고 있다. 가나안 족속도 백인이었다. 이 예언을 흑인종에 대한 저주로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된다. 가나안 족속은 팔레스타인에 거주했다. 그리고 이 저주가 개인의 구원과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라합은 이스라엘에 합류했고 두로 왕 히람(king of Tyre Hiram)도 성전 건축을 위해 솔로몬에게 물자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수 6:25 +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가로되 오늘날 여호와를 찬양할찌로다 저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 하고 이에 솔로몬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당신의 기별하신 말씀을 내가 듣고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의 바라시는 대로 할찌라 왕상 5:7-8 26절.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Blessed be the Lord God of Shem 셈의 축복은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셈의 자손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시고 함께하실 백성이다. 자신의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그 사람 자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By blessing one’s God, the man himself is blessed). 유대인은 셈으로부터 시작된 셈족(Semitic)이다. 따라서 노아의 이 예언은 셈의 자손들은 특별히 참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노아의 자손 셈의 축복과 믿음을 이어받은 자들 가운데 세세토록 세워질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육체로는 셈의 자손을 통해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노아를 잇는 믿음의 장자는 셈이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이 사는 그 땅을 출애굽 이후 차지했고 가나안 족속을 기브온 족속처럼 복종시켜 종으로 삼았다. +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 같이 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수 9:24-25 27절.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God shall enlarge Japheth +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야벳(Japheth)은 넓게 하다(enlarge)는 말에서 유래했다. 자손과 소유의 엄청난 증가를 의미한다. 야벳의 자손들은 세계의 가장 좋고 가장 넓은 지역에 퍼질 정도로 아주 활동적이고 진취적이었다. 노아의 예언에 따르면 그들은 유럽 전역과 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세속적인 축복을 받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셈의 장막에 거하는 영적인 축복도 더불어 받았다. 그러나 노아의 말들을 어떤 종족은 열등하고 노예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역사는 어떤 가나안 족속은 강대한 제국을 이루기도 했다. 셈 족속인 유대인도 그들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노아의 말들은 이런 뜻을 가진 하나의 예언이었다. 즉 함의 죄는 그의 아들 가나안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질 것이다. 셈의 자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4-5 + 이방인이 된 야벳의 자손은 많이 늘어나고 셈의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 4:22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이다.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 3:11 ♣ QT 되새김 A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하나님 보시기에 노아를 잇는 믿음의 장자는 누구인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노아의 세 아들에 대한 말들을 인종 차별(racism)의 근거로 볼 수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5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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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5
  • 큐티주석34 노아의 장자 누구
    Ksenophontov_noah 노아의 장자 누구 9: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창 9:18-19 노아의 장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기 전에 성경 번역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영어 성경과 달리 우리 한글 개역성경과 한글 개정성경에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번역 오류를 발생했기 때문이다. 번역을 뜻하는 영어 낱말 translation는 라틴어 translatio에서 따온 말로서 ‘전달하다’ 내지는 ‘보내주다’의 뜻을 지닌다. 번역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직역(Formal Equivalence)과 의역(Dynamic equivalence)이 있다. 직역은 문자적인 해석인 반면 의역은 의미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의 번역 성경은 대체로 직역을 따른다. 서구 사회에서 기록된 최초 번역의 예는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3세기에 번역되기부터다. 70인역(Septuagint)으로 알려진 성경의 번역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을 명받은 70명(어떤 문서는 72명)의 번역을 가리키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모든 70개의 번역본은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번역자이자 성경을 라틴어로 옮긴 히에로니무스(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년 - 420년 9월 30일)는 번역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수세기 동안 로마가톨릭은 초기 휩싸였던 번역본에 대한 논쟁 와중에도 그의 번역본을 사용했다. 불가타로 불리는 초기의 번역된 성경이 히에로니무스가 번역한 것이다. 종교개혁과 동시대에 해당하는 시기로 넘어가면 성경 번역은 각기의 유럽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서방의 기독교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리가 진행되면서 각기의 교파에서 번역한 중요한 구절과 단어에 대한 번역본에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종교와 문화, 언어가 지닌 각기의 특질이 문화적인 맥락으로 반영되면서 마르틴 루터에 의해 독일어판 성경이 탄생하고 킹 제임스의 번역이 영어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오역의 유명한 예는 히브리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브리어 keren은 ‘뿔’의 뜻을 비롯해 여러 가지 뜻이 있고 문맥상으로는 빛줄기로 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수 세기 동안 예술가들은 모세를 그릴 때 이마에서 뿔이 나오는 듯한 형상으로 그렸는데 대표적인 예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부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묘사를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증폭하는 용도로 악용했다. 유대인이 악마의 뿔을 단 자들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폈다. 또 다른 유명한 오역으로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초기 성서 번역자 중 누군가가 밧줄이라는 그리스어 kamilos를 낙타를 뜻하는 kamelos로 오역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설은 아니다. 성경 번역(聖經飜譯)은 원본이 히브리어 아람어와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인 성경을 수많은 언어로 번역하는 일 또는 그렇게 번역된 책을 의미한다. 초기의 번역은 히브리어 성경을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기독교의 구약성경인 70인 역 성경으로, 나중에 교회의 구약성경의 공인 본문이 되었고, 신약성경은 고대 그리스어인 코이네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다. 서방교회에서 13세기 이후에 널리 사용한 히에로니무스(348-420)의 라틴어 불가타(새 라틴어 성경)는 유대교의 정경에서 보존된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본문에 그리고 신약은 코이네그리스어 본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경은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며 지역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3년 9월 기준으로 적어도 2,800개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는데, 신구약 전체 성경은 518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신약만 번역된 언어는 1275개, 혹은 부분만 번역된 부분 성경은 1005개 언어이다. 중세시대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여 일반인들이 읽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94년~1536년)은 로마가톨릭교회의 박해와 체포 위협 속에서도 유럽 대륙을 떠돌며 라틴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 의한 번역작업을 계속해 1526년 영어 신약 성서를 완성하고 독일에서 인쇄해 영국으로 보냈다. 존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아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다. 그는 영어 번역을 위해 독일로 건너가 비밀리에 번역작업을 했으며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했다. 성경을 번역한 죄로 체포되어 1536년 10월 6일 화형을 당했다. 킹 제임스 성경 영어판의 70%가 틴들의 성경에 근거한다. 그의 성서는 제임스 1세의 킹 제임스 성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제임스 1세는 47명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위클리프의 필사본 성서 윌리엄 틴들의 성서, ‘대성서’ ‘제네바 성서’ ‘비숍 성서’ 등을 종합적으로 참조하여 최고의 영어 번역 성서를 출판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킹 제임스 성경이다. 제임스 1세(James I 1566년 6월 19일 ~ 1625년 3월 27일)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이다. 모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의 군주 제임스 6세(스코트어: James VI)로 즉위하였으며 후에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종손 자격으로 그녀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였다. 제임스 1세는 영국 국왕에 오른 이후 의회를 해산시키고 청교도에게 영국 성공회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는 등 독재 정치를 폈다. 이에 1620년 청교도들은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자유를 찾기 위해 북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떠나 그곳을 퓨리턴이라고 불렀다. 정치에는 무능했던 제임스 1세가 발간한 킹 제임스 성경의 서문에는 아주 감동적인 번역의 정의(定義)가 서술되어 있다. “번역은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주고 성스러운 땅이 보이도록 장막을 걷어주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우물 덮개를 치워주는 것이다” 1810년 선교사 마르시만이 마태오의 복음서를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1822년 구약성경·신약성경이 합동으로 간행되었다. 최초 한국어 성경 구절의 번역은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 디아즈(Diaz, 1574-1659)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간행한 주일복음 해설서인 ‘성경직해(聖經直解)’와 프랑스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이야(De Mailla, 1669-1748) 신부가 1740년에 펴낸 주일복음 묵상서 ‘성경광익(聖經廣益)’을 통합-발췌하여 역관 최창현이 번역한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 1784)’이다. 그러나 이 책은 4복음서에서 성경 구절을 발췌하고 그 해석이 붙어 있는 것이며 전체 복음서의 1/3의 분량 밖에는 없어 엄밀한 의미의 온전한 성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은 1892년부터 5년에 걸쳐 천주교 조선 교구에서 ‘성경직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9권으로 재발행되었다. 온전한 의미의 최초 한글 성경은 1882년에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에게서 한문 성경을 전수받은 서상륜, 백홍준 등이 이를 한국어로로 번역함으로써 나온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이다. 이후 1885년에는 마가의 ‘전복음셔언해’가 일본에서 개신교 목사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기독교인이 된 이수정을 중심으로 번역되었는데 조선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수정이 번역한 성경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전서인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하여 1900년에 출간된 신약전서와 1911년에 출간된 구약전서를 합쳐 ‘구역성경전서’라고 한다.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헬라어 신약성경을 참조하고 당시 중국어 성경과 영어 성경을 번역 문헌으로 삼아 번역하였다. 이 시기까지는 주로 중국 한자어에 익숙한 한국의 학자들과 영어에 익숙한 선교사들이 나뉘어 각자 다른 방법으로 한글 성경을 번역하였다고 한다. 1911년 번역된 구역을 개정하여 1936년에 출간된 구약성경과 1938년에 출간된 신약성경을 합쳐 ‘성경전서 개역’이라고 한다. 개정작업은 문어체 번역의 개정보다는 바뀐 한글 맞춤법을 따르는 데 큰 비중을 두었다. 성경전서 개역판의 번역을 일부 수정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맞춰 한 번 더 개정한 것이 현재의 ‘개역한글판(1961년) 성경’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에서 거의 모든 교단이 공인한 표준 성경이었다. 그 후 ‘표준새번역’이 등장했고, ‘개역한글판’을 개정한 ‘개역개정판’이 등장하여 지금은 다양한 공인 성경이 존재한다. 이들 중 어떤 것을 예배에 쓸 것인지는 교단과 교회별로 선택한다. 1938년에 발행된 개역을 바탕으로 문체는 그대로 두고 원전과 비교하여 몇 가지 단어 상의 문제에 대한 수정을 거친 역본. 각종 교단에서 인준했으나 어색하다는 이유로 널리 쓰이지 못 한때도 있었지만 ‘개역한글판 성경’의 저작권 만료 기간이 도래함에 따라 2007년부터 점차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일부 장로교 교단(한국 기독교 장로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 내 대다수 교단), 기독교 대한 복음교회, 기독교 한국 루터회, 기독교 대한 감리회 등에서 표준 성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와 각종 교단 간의 결의로 인해 새로 고친 번역에 대해 한 교단이라도 특정 구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다음 개정 시에 ‘개역한글판’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는 특징이 있다. 총 4차 개정(현재의 최신판은 2006년 5월 개정되었다.)을 거쳤고 개신교 종파에 따라 일부 다른 단어(예: 세례/침례)를 가진 성경을 보급하고 있다. 이제 노아의 장자가 누구인지를 ‘개역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을 비교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창 9:18-19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 the sons of Noah... Shem and Ham and Japheth 성경에서 노아의 세 아들은 항상 셈, 야벳, 함, 순서로 언급이 된다. 그래서 흔히 셈이 장자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 말 번역 개역성경, 개정성경 공히 창세기 10:21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킹 제임스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이 영어 구절을 다시 직역하면 이렇다.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인 형(the elder) 야벳의 동생(the brother of Japheth) 셈에게도(Unto Shem also), 심지어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다. 이상 문맥으로 보면 야벳은 셈의 동생이지 손위의 형이 아니다. 그런데 개역성경과 개정성경이 셈이 야벳의 형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은 형을 뜻하는 영어 the elder를 무시하고 the brother of Japheth을 야벳의 형제도 아니고 brother를 형으로 번역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그 까닭은 성경에서 노아의 아들 이름이 셈 야벳 함 순서로 거명이 되는 데다 셈이 메시아 혈통의 조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 성경 주석과 유대교 성경 주석에도 야벳을 형으로 셈을 둘째로 함을 막내로 해석하고 있다. 결론은 셈은 노아의 장자가 아니었다. 야벳이 장자였다. 창세기 9:24에서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his younger son)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말하듯 함이 막내였다. 함은 가나안의 아비 Ham the father of Canaan 이 부연(敷衍) 구절은 실제로 가나안 족속의 시작을 알리고 함이 가나안(Canaan)의 진짜 아버지이고 앞으로 그가 행할 일에 대한 전조(前兆)를 알린다. 그것은 가나안 족속의 부패한 영향으로 이스라엘인에게 끼칠 안 좋은 일들을 상기시켜 준다. +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창 12:6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8:1-4 19절. 온 땅에 퍼지니라 the whole earth overspread 본문에서의 땅(earth)은 땅의 인구(population of earth)를 의미한다. ♣ QT 되새김 A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 장자가 누구인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노아의 아들 셈이 성경에서 늘 먼저 언급되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노아의 세 아들이 언급되면서 막내 함이 가나안의 아비라고 부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당신은 함에 대한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3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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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3
  • 큐티주석33 무지개
    Noah's Sacrifice by Daniel Maclise 무지개 9: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 9:8-17 영국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1850년 4월 23일)는 무지개를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에 무지개를 바라보면내 마음 뛰노나니나 어려서 그러하였고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나 늙어서도 그러할지어다.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원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천생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무지개가 옛날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무지개가 하늘과 땅 양쪽에 걸쳐서 생기다보니 사람들은 신과 통할 수 있는 특별한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 사람들이 표현한 무지개는 지금의 무지개와는 조금 다르다. 빨주노초파남보 이렇게 일곱 가지 색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무지개를 다섯 가지 색으로 표현해 ‘오색 무지개’라고 불렀다. 당시 색의 기본이었던 ‘흑백청홍황(黑白靑紅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지개가 오색이었던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 시대에 색채 학문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다른 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색에 대한 표현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한글에서 볼 수 있듯 색을 표현하는 말에는 수십만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빨강색을 빨갛다 불그스름하다 검붉다 새빨갛다와 같은 서술식 표현처럼 다섯 가지 색을 채도나 명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후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무지개가 지금의 일곱 가지 색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지개를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으로 처음 정한 사람은 뉴턴(Isaac Newton 1643년 1월 4일~1727년 3월 31일)이다. 뉴턴이 빛의 성질을 연구하던 중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그 빛이 여러 가지 색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뉴턴이 이런 사실을 발견할 당시 사람들은 빛이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이 띠는 색은 그것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색이기 때문에 빛과는 상관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뉴턴은 다르게 생각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물질의 색이 달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 이유가 빛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현상이 무지개였다. 그 결과 프리즘 실험을 통해 빛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그런데 왜 뉴턴은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로 구분한 것일까. 전통적인 기독교 성직자는 아니었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뉴턴이 숫자 7을 성스러운 숫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면서 성스러운 숫자다. 하나님은 천지를 7일 만에 창조하셨다. 고대 민족은 움직이는 별을 태양과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이렇게 7개로 간주했다. 음악의 음계도 도 레 미 파 솔 라 시로 정확히 7개다. 이렇게 많은 분야가 성스러운 7과 관련이 있는 만큼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뉴턴이 무지개의 색을 7개로 맞췄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회 신자였지만 그의 생활은 청교도적이었던 뉴턴은 말했다. ‘태양과 행성들 그리고 혜성들의 아름다운 체계는 이지적이고 능력 있는 분의 계획과 주관 아래에서만이 가능하다. 이 분은 세계의 영혼으로서가 아니라 만물의 주인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그분은 주 하나님으로 불리신다. 하나님은 영원히 존속하시며 어디든지 존재하신다.’ 뉴턴은 1727년 3월 31일 84세의 나이로 죽은 그의 묘비에는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썼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밤의 어둠 속에 감춰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뉴턴이여 있으라 하시니 어둠이 모든 빛이 되었다.’ 창 9:8-17 언약의 증거 the token of the covenant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언약(言約)의 히브리어 원어는 ‘베리트’(berith)인데 자르다(cut) 뜻을 가진 히브리어 ‘바라’에서 왔다. 이는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을 둘로 잘라 엄숙한 의식을 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계약을 어겼을 때 짐승을 둘로 자른 것처럼 징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다른 언약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것이다. 그러나 노아 언약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유일한 언약이다. 구약의 베리트는 신약에서 ‘디아데케’(diatheke)로 번역되었는데 ‘서약과 유언’이란 뜻으로 쓰였다. 새 언약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20 새 언약은 예수를 통해 새롭게 시작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맺은 언약이었다. 이제 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받는 혜택이 있다. 첫째 혜택은 죄 사함이다. +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43 +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27 둘째 혜택은 구원이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3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13절.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I do set my bow in the cloud 이 말씀이 그 당시 무지개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지개는 일반적이고 친근한 자연 현상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평화의 서약(the pledge of peace)으로 이 무지개를 노아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이고 빛의 굴절과 반사(refraction and reflection of light)이다. 우리가 무지개를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그의 약속을 기억하신다. 노아는 홍수 심판의 폭풍(暴風 storm) 뒤에 무지개를 보았다. 요한은 마지막 심판의 폭풍 이전에 무지개를 보았다.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계 4:1-3 17절. 땅에 있는 모든 생물 all flesh that is upon the earth 이 말씀은 이 언약이 노아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생물’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강조하시는 내용이다. QT 되새김 A 언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노아와 맺은 언약의 표시는 무엇인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받는 혜택이 무엇인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우리가 무지개를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1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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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1
  • 큐티주석32 기생충 살인
    기생충 살인 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창 9:3-7 언젠가 역사가 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기록에서 2020년 2월 20일에 있었던 한 해프닝은 작지만 의미심장한 한 줄을 차지할 것이다. 문재인 내외가 봉준호 감독 등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해 영화 속 '짜파구리'를 깜짝 대접하며 희희낙락했던 일이다. 그날은 31번 신천지 확진자가 확인된 지 이틀이 지나고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한 날이었다. 이후 닥쳐온 국가적 재난 사태를 예견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미 드러난 불길한 조짐만으로 이런 행사를 삼가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 방자한 그 희희낙락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온 나라가 암울한 상황에서 모처럼 국민을 기쁘게 한 문화적 성과를 낸 이들을 흥겹게 축하하는 게 무슨 큰 흠이겠는가. 우리는 장례의 슬픔마저 축제로 승화시키는 민족이다. 문제는 짜파구리였다. 영화 속 짜파구리는 짜장 우동 라면에 고기를 넣어 고급스럽게 만든 요리다. 이는 겉은 대중적이고 평등해 보이지만 속은 귀족적이고 권위적(한밤중 전화 한 통으로 가정부를 시켜 대령)인 부유층의 삶을 꼬집는 영화 기생충의 기호였다. 청와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스타 셰프를 불러 이 요리를 준비했다고 한다. 영화 속 설정의 충실한 재연이었다. 짜파구리의 영화 속 속내가 무엇이건 이를 먹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표 지도자가 주재하는 공식 오찬에서 그 영화의 감독에게 해당 메뉴를 제공하는 건 다른 문제다. 문재인은 이날 직접 이 메뉴 소개에 나섰다고 한다. 파티의 하이라이트였던 셈이다. 어안이 벙벙한 이 일은 행사 주최 측이 기생충이라는 영화, 그리고 거기 등장하는 짜파구리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읽고 쓰는 능력(literacy)의 수준을 드러낸 것이다. 그 능력이 낮은 이들에게 세상사는 천진한 아이들의 세계처럼 단순해진다. 그 함의가 무엇이건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이템에 눈길이 꽂힌다.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부정의가 한 가지 잣대나 가치, 이를테면 외모 말주변 연줄 등으로 엮인 의리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복잡한 인간관계, 옳고 그름에 대한 성숙하고 섬세한 이해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이런 문장 이해력 관점에서 이 정부의 불가사의했던 많은 일들이 설명된다. 상식을 벗어난 숱한 인사 실패 그리고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 경제도 성장하게 된다는 중국 대사 장하성이 주창했다는 소득 주도 성장론 또한 감상적 영화 한 편에 눈물을 흘린 탈원전 정서로 수많은 사람의 실직... 사례는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선과 악 그리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정형화된 구분을 허문다. 영화 장면들은 겉보기에 선하고 순진하지만 차별 의식과 비정함으로 가득한 상위 계층의 행태를 비춘다. 동시에 영화는 이들을 상대로 총회 은급재단 같은 문서 위조와 사기 행각을 서슴지 않고 부자들이 가진 것에 전계헌처럼 무임승차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가난한 자들의 몰염치를 보여준다. 감독은 각종 상을 거머쥔 영화를 통해 말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이 바보들아.’ 그런데 그런 가차 없는 봉준호표 응징의 위트가 청와대 식탁에선 빛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김정숙 여사가 직접 장 봐 요리했다는 돼지목심을 얹은 짜파구리에 말문이 막혔을까. 그래도 7분간 이어졌다는 대통령 찬사에 봉 감독이 내놓은 답변은 달변가 답다. 대통령님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저도 한 스피치 하지만 너무나 조리 있게 또 정연한 논리적인 흐름과 완벽한 어휘의 선택을 하시면서 기승전결로 마무리하시는 걸 보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봉 감독이 감탄한 대통령님의 논리정연한 스피치로 대한민국 국록에 기대 살면서도 직무유기를 일삼는 문재인은 툴툴거리듯 말했다. 기생충이 보여준 사회의식에 깊이 공감한다. 불평등 해소를 최고의 국정 목표로 삼았는데 반대도 많고 성과가 나지 않아 애가 탄다. 그 말에 많은 이들은 기회의 불평등과 과정의 불공정을 온 혀로 보여준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아니라 혀를 죽여 인을 이루는 살설성인(殺舌成仁)의 조국을 떠올렸다. 로이터통신마저 한국 사회 불평등을 반영한 기생충(parasite)은 조국 스캔들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살설성인 조국 사퇴에 마음의 빚을 졌다며 안타까워한 무념무능 문재인과 한국의 반지하 풍경으로 불평등의 민낯을 세계에 보여준 감독이 한자리에서 웃는 모습을 그 반지하 같은 현장에서 보는 영광을 누렸다면 오싹했을 것이다. 김정숙 여사가 뒤로 넘어지며 목젖이 보일 듯 웃어 제친 오찬 소동 이후 코로나와19는 문재인 덕에 전 세계에 형제국 중국에 이은 코로나 확진자 2위에 오른 한국의 이름을 봉준호의 계급투쟁 서사살인극 같은 반열로 올렸다. 그러나 기생충 팀이 선물한 '눈가리개'를 쓰고 재밌어하는 김정숙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쇠고기는 느끼할까 봐 돼지고기와 대파를 얹었다는 그 오싹한 살설성인 목소리도 함께. 이러한 거장 감독에게 위선과 차별의 아이콘인 짜파구리를 헌정해 충격을 안긴 기괴한 파티가 있은 지도 20여 일이 흘렀다. 그리고 문재인이 끌어들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시간이었다. 바이러스 원천 차단은 실패로 끝나고 온 국민이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를 지역 감염 위험에 노출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그토록 공격하던 야당 시절 문재인의 재난 감수성이 이전 정부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분노 너머 아득하게 쌓여가는 인명과 재산 피해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탄식이다. 하지만 이 위기 상황은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는 차가운 인내와 믿음이 이런 감정을 누른다. 영화 속 파티는 끔찍한 칼부림들로 끝을 맺는다. 특히 마지막 분노의 칼끝은 유혈 상황에서조차 빈곤의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는 박 사장(부잣집 아버지)의 가슴에 꽂혔다. 위선의 중심에 대한 기생충 감독의 가차 없는 기생충 응징의 살인이었다. 하나님이 금하신 피흘림의 살인... 성경은 말씀한다. +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창 9:3-7 너희 생명의 피 your blood of your lives 1절과 2절의 노아 축복의 두 가지 요소에 이어 셋째 요소와 넷째 요소를 살펴보자. 3절. 축복의 셋째 요소: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Every moving thing that liveth shall be meat for you 이것은 홍수로 정화된 땅에서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단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을 식물로 먹지만 한 가지 제한이 따랐다. 4절. 그러나 고기를...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But flesh ... the blood ... shall ye not eat 하나님은 그의 구원받은 백성을 언제나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이 이제 인간에게 동물을 먹는 제재 규약(sanctions)을 주신다. 그것은 동물의 고기는 먹되 피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10-11 성경적 개념에서 피는 생명과 동일시된다. +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신 12:23 모든 형태의 생명에는 거룩의 요소(an element of holiness)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을 나타내는 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모독하는 것이다. 5절. 축복의 넷째 요소: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surely your blood of your lives will I require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에 대한 형벌 규정이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자들의 폭력과 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사법권 제도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 형벌 규정이 사도 시대에도 취소되지 않았다. +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행 25:11 +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4 그러한 권한이 족장 시대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6절.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Whoso sheddeth man's blood... for in the image of God made he man 살인에 대한 가장 무서운 사실은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공격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진실은 이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으로 손상은 됐지만 상실되지는 않았다(It is true that image has been injured by the fall but it is not lost). 이것이 가난하든 비천하든 모든 인간의 생명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게 만든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범죄이다. ♣ QT 되새김 A 노아의 축복 셋째 요소에는 어떤 제한이 따르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축복의 넷째 요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인간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어떤 범죄인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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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9
  • 큐티주석31 여성 생존 역사
    Claude Monet - Springtime 여성 생존 역사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창 9:1-2 성경을 모를 때는 이 세상 올 때도 제멋대로 흐르는 물처럼 왜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는데 세상을 떠날 때도 제멋대로 불어대는 황야의 바람처럼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믿음을 떠나서는 우리 모두 오고가는 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본시 없는 법이다. 성경을 벗어나면 묻는다한들 어느 누가 대답할 수 있으리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흐르는 시간이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년 1월 25일 ~ 1941년 3월 28일)는 20세기 의식의 흐름 장르를 탄생시키고 완성한 모더니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36년 일기에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지만 계속 글을 쓴다고 적었다. 여행은 낯익은 일상에 가렸던 삶의 심연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삶은 의도한 대로 이뤄지지 않는 여행이고 그 길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사람과의 인연을 흔히 사랑이라고 한다. 소설은 나의 상상과 회상 일상의 파편들로 꾸며진다. 그 작은 이야기들이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소설을 꾸민다. 그 소리는 교회가 저녁 예배를 알리기 위해 내는 종소리로 나타난다. 길고 짧고 단단하고 투명한 종소리들이 허공에 소용돌이치며 도시와 나를 에워싸며 꼼짝 못 하게 했다. 그러다 교회에 도착하면 종소리는 끝나 있었다. 3월 8일은 유엔이 지정한 ‘국제 여성의 날’이다. 3월은 ‘여성 역사의 달(Women’s History Month)’이기도 하다. 클로드 모네(1840~1926)가 그린 ‘봄철’(1872) 같이 19세기 화가들은 글 읽는 여성과 편지 쓰는 여성을 화폭에 담았다. 글을 읽게 된 여성들은 글을 쓰게 됐다. 독자와 작가가 된 여성들은 세상을 바꾸었다. 유럽보다 50여년 빠른 조선 시대 23대 왕 순조(純祖 재위 1800년 8월 23일~1834년 12월 13일) 때의 유씨(兪氏) 부인의 수필 ‘조침문(弔針文)’이 그런 실례이다. 저자는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이 없어 바늘이 유일한 친구였던 조선 여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는 부러진 바늘에 자신의 슬픈 처지를 투사한다. 현대문으로 축약한다면 이렇게 시작한다. 성인 여성의 손에 꼭 필요한 것이 바늘이다. 한낱 흔하고 작은 물건이나 이렇게 슬퍼함은 내 마음 씀씀이가 남과 달라서다. 아깝고 불쌍한 너를 얻어 손에 쥔 지 27년. 눈물을 겨우 잠깐 거두고 네 자취와 내 마음속 깊은 정을 총총히 적어 너를 떠나보내노라. 세계의 남자들은 100여 년 전이 되어서야 여성 참정권을 허락했다. 200년 전 영국 남자들은 아내를 공공 경매장에서 팔았다. ‘아내 판매’는 저소득층의 이혼 수단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 칠거지악(七去之惡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허물) 중 하나는 ‘말이 지나치게 많음’이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말 많은 여성의 입에 ‘잔소리꾼 굴레(scold’s bridle)’를 씌워 고문하고 처벌했다고 한다. 20세기 초에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단식 투쟁하는 운동가들을 정부는 ‘강제 급식(forced feeding)’으로 대응했다. 45cm 고무 튜브를 목구멍에 넣었다. 이러한 천인공노할 만행에 여성은 우선 글을 읽었고 그다음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더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여성의 생존 역사를 저술한 ‘살아남다’의 저자 장영은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과 투쟁의 길을 글쓰기에서 찾았다. 장영은 작가는 글 쓰는 사람 작가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단 한 명이라도 독자를 가진 사람.' 그렇다면 일기를 쓰는 사람도 분명 작가이다. 하나님이 노아 가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신 내용의 실제 주인공은 우리 인류의 어머니이시고 아내인 여성이다. 창 9:1-2 하나님의 축복 the blessing of God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And God blessed Noah and his sons 하나님이 아담에게 축복으로 선포하셨던 자연의 법칙이 반복되고 있다. 왜냐하면 노아와 그의 가족이 새 인종의 선조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이 파멸된 세상을 재건할 수 있도록 격려했을 것이다. 이 하나님의 축복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1절. 축복의 첫째 요소 '생육하라' 'Be fruitful' 이것은 출산(出産 the transmission of life)이다. 아담에게 처음에 하셨던 원래의 축복과 똑같은 말씀으로 되어 있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이 축복의 요소는 여성의 헌신과 희생이 내포되어 있다. 길가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내의 이야기를 담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년 4월 13일~1989년 12월 22일)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의 대사다.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조산사인 리어 해저드(42)는 ‘나는 낯선 여성의 다리 사이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에 익숙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의 에세이집 ‘힘주세요(Hard Pushed)’에서 출산 현장 ‘임신한 사람들의 응급실’인 임신부 환자 분류소와 산후병동 등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여자들은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으며 그렇게 낳은 아이가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는 말한다. ‘자연은 잔인하다. 아기는 준비가 되면 나온다는 소박한 지혜는 거짓말이다. 아기는 준비가 되면 나오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도 나온다. 이런 상황이 괜찮을 때도 있지만 정말로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힘든 경험은 조산사에게 바보만이 항상 해피엔딩을 약속한다는 진실을 가르쳐준다.’ 조산사가 실습생 시절 가장 먼저 배우는 건 ‘죽음이 삶의 쌍둥이 형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조산사는 이 둘을 모두 받아낸다’고 쓴다. 실습 마지막 날 고참 조산사는 말한다. ‘방금 38주 된 아기를 잃었어. 같이 가서 볼래.’ 참혹한 경험은 예민한 귀를 갖게 한다. 아기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산모가 내는 소리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소리를 내거나 들을 필요가 전혀 없지만 조산사들은 이를 아주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 소리는 인간의 소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입이 벌어지지만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성경은 말씀한다. +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창 3:16 2절. 축복의 둘째 요소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And the fear of you and the dread of you' 이것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하나님이 다시 세우시는 것이다. 처음에 사랑과 호의가 담긴 처음의 지배와 달리 이제 두려움이 서린 가운데 세워진 지배였다. 인간에 대한 이 두려움은 약한 동물들뿐만 아니라 모든 강한 동물들에게도 퍼졌다. 그리고 인간이 사용하기 위해 키우는 동물들을 제외한 모든 동물이 인간의 거주지에 접근하지 못 하게 된다. ♣ QT 되새김 A 노아의 축복 첫째 요소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여성의 출산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정화된 땅에서 다시 제정된 동물의 지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당신이 누구든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09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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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9
  • 큐티주석30 방주 하선 노아 첫 일
    Noah's Sacrifice by Daniel Maclise 방주 하선 노아 첫 일 8:13 육백일 년 정월 곧 그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14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 8:13-22 3월 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야생 동식물의 날(World Wildlife Day)’이다. 197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사이테스)’을 조인하며 제정한 기념일이다. 지금까지는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날을 기념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순전히 우리 인간을 위해서라도 그 취지를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멧고기(bushmeat·원숭이, 박쥐 등 야생동물 고기)’를 요리해 파는 음식점이 성행한다. 멧고기는 원래 원주민들이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사냥해 먹던 것인데, 언제부턴가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전문 음식점이 생겨났다. 이제는 아예 파리나 런던 같은 유럽 대도시에서도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그런 곳에 고기를 납품하기 위해 오지의 원주민들이 숲을 들쑤시는 바람에 생면부지 바이러스들이 졸지에 인간 세계로 불려 나오고 있다. 그 바람에 지금 온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가 사육한 고기보다 멧고기 맛이 더 좋을 리는 거의 없다. 게다가 우리는 그동안 소 돼지 닭 등을 사육하며 육질을 향상시킨 것은 물론 위험한 기생충과 병원체를 제거해 비교적 안전한 먹거리로 만들었다. 가끔 야생동물 포획 현장에서 그들의 목을 따고 정력에 좋다고 피를 들이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걸쭉한 병원체 칵테일을 입안에 털어 넣는 그들의 객기는 그야말로 어리석음과 추악함의 극치다. 바이러스의 숙주 노릇을 하는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는 일이 우리를 살리는 일이다. 희생 제사의 번제물의 어떤 부분도 제사장과 봉헌자가 태운 고기임에도 먹지 않은 것은 그런 면에서도 귀감(龜鑑)이 될 일이었다. 희생 제사(sacrifice)의 개척자 노아는 그의 할 일을 지시하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정화된 땅에서(on the cleansed earth) 해야 할 첫 일은 그들을 신실하게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정결한 동물을 번제(burnt offering)로 예배드리는 것이었다. +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시 116:12, 17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이 악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언약을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주셨다. 이 언약이 땅에서 사는 인간의 삶이 유지되고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언약에 신실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땅을 지키는 청지기 신분에 신실하지 못했다. +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계 11:18 창 8:13-22. 방주 하선 Departure from the Ark 13절. 정월 곧 그달 일일 in the first month the first day of the month 산들의 봉우리가 보인(창 8:5) 두 달 뒤를 말한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Noah removed the covering of the ark' 방주 뚜껑을 열고 살펴본 것은 단지 주변 땅에 대한 전망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분명한 허락을 받기까지 그의 지정된 거처를 떠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방주에서 두 달가량을 더 기다렸다. 우리는 인생 여정을 걷는 모든 걸음마다 우리를 지시하시는 섭리의 인도(the leading of Providence)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the waters were dried up from off the earth' 물이 지면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나 땅 주변은 늪과 수렁이 널려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방주에서 나와 땅을 걷는 것은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15-16절. 하나님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방주에서 나오고 And God spake ... Go forth of the ark 그들은 아주 질서정연하게 방주에서 나왔다. 인간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모든 동물이 그 종류대로(after their kinds) 차례차례 나왔다. 20절. 노아가... 단을 쌓고 Noah builded an altar 이것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한(walk with God) 사람이었음을 예증한다. 문자적으로 단(altar)은 희생 제물을 드리는 높은 장소(a high place)를 의미한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겪었던 하나님의 인자와 선에 감사하는 표시로 경건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첫 번째 관심이 제단을 쌓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다. 노아는 성경의 제단 쌓기의 개척자였다. 하나님은 이 희생 제물을 개역성경에서 향기로운 냄새로 번역한 감미로운 향기(sweet savor)로 여기셨다. 이것의 더 문자적인 의미는 빚을 갚는 변제(辨濟)나 죄를 배상하는 속죄(贖罪)의 냄새(smell of satisfaction)다. 하나님은 그것을 즐겁게 받으셨다. +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1:9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took of every clean beast ... fowl' 그러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구원을 위하여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로 드리는 특별한 감사 의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21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And the Lord smelled a sweet savour 노아와 같은 의로운 사람이 믿음(in faith)으로 드리는 희생 제사를 하나님이 가장 좋은 향기로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음속에서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노아의 심판의 홍수가 이 땅에 다시 내리지 않으실 것을 다짐하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사 54:9 '이는' 'for' 하나님이 그렇게 작정하신 이유는 사람의 생각이 악할지라도 또 다른 파멸적인 홍수로 괴로움을 겪게 하는 대신 한 구세주를 통해 은혜의 축복을 누리며 사람들이 살도록 해주시겠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from his youth' 즉 인간이란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의 여명기(黎明期 dawn)부터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안 좋다는 것이다. 22절. 땅이 있을 동안에는 While the earth remaineth 노아 홍수 심판의 목적이 성취되었다. 계절의 정기적인 변화는 다시 정지되지 않을 것이다. +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7 이 말씀은 노아 당시의 그 날과 땅이 불에 타는 그 날 사이에 다시는 홍수로 하는 심판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 QT 되새김 A 왜 노아는 방주에서 바로 내리지 않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무엇을 먼저 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인간이란 젊어서부터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하나님은 어떤 제사를 기쁘시게 받으시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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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6
  • 큐티주석29 까마귀와 비둘기
    Noah_mosaic 까마귀와 비둘기 8: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 사십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12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창 8:5-12 2020년 2월 트럼프의 메시지는 짧고 분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단칼에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비행 노선을 끊었다. “미국을 전염병에서 보호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며 방역 최우선을 확실히 했다. 중국 시진핑도 큰불을 잡자마자 한국인 입국자를 칼같이 격리했다. 우리 교민 아파트에 대못을 박는 몹쓸 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국 외교부가 항의하자 핀잔만 돌아왔다. “중국은 외교보다 방역이 우선이다.” 두 강대국 지도자의 닮은꼴 리더십이다. 미국 트럼프가 한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는 이유도 우리 외교력이나 동맹관계 때문이 아니다. 미 식품의약국(FDA)과 질병통제센터(CDC) 책임자들이 “한국의 진단 능력은 경이롭다”고 입을 모으고이를 트럼프가 받아들인 것이다. 섣불리 한국을 입국 금지하면 일본과 이탈리아 등 유럽 전체를 봉쇄하는 난감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지난주 연설에서 ‘전염병 대비 선진국’으로 미국-영국-네덜란드-호주-캐나다-태국-스웨덴-덴마크-한국-핀란드 순서를 정확하게 나열한 바 있다. 이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존스홉킨스대학 등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는 것이다. 정치 논리와 과학 논리가 맞부딪히면 정치논리에 따르는 문재인 정부와 딴판이다. 실제 우리 코로나19 검진능력은 하루 1만5000건을 넘는다. 압도적이다. 일본은 국제감염증센터와 호흡기 전문병원 2곳 등에서 하루 1700명 미국은 고작 하루 500건 테스트하는 수준이다. 한국도 시도환경보건원에서만 검사하다가 2월 7일부터 민간부문을 참여시키면서 검진능력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양성 3개·음성 4개의 키트를 주고 이를 모두 맞춘 90곳에 검진을 맡기면서 하루 1만 건 이상을 처리하는 것이다. 현재 진단의 상당 부분은 녹십자·씨젠 등 민간업체들이 맡고 있다. 중국의 바이러스 전문가인 중난산(鐘南山)은 “코로나19 해법은 조기 진단과 조기 격리”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확진 판독에 2~3일 걸리는 일본이나 3~4일 소요되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경쟁력은 압도적이다. 전문인력이 3교대 24시간 비상근무하면서 유전자 추출에 1시간 증폭에 3시간 등 4시간 만에 판독해 내기 때문이다. 권계철 진단검사의학회장은 “지금 추세라면 3월 중순까지 변곡점을 맞게 될 것”이라 자신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복음 같은 메시지다. 그 검진능력은 신종 플루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평시에도 현장 검사를 통해 진단의 정확성을 따져가며 인증 업체들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코로나19를 통해 ‘4류 정치·신천지-3류 정부-1류 전문가·민간기업’이란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독재 체제의 중국은 우한을 봉쇄하고 의료진 4만 명을 동원하는 인해전술로 급한 불을 껐다. 반면 우리에겐 믿을 언덕이 민간부문밖에 남지 않았다. 문재인의 리더십은 초라해져 버렸다. 정부가 정치논리에 갇혀 아마추어 정책들로 헛발질하는 동안 민간이라도 합리적·현실적으로 진화해온 건 다행이다. 이번에도 임진왜란 때 같이 관군(官軍) 대신 민간 의병(義兵)들이 나라를 구하고 있다. 성경은 당시마다 그 현실을 담고 있다. 믿는 우리가 세상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노아의 홍수에서 하나님은 차근차근 일하고 계시다. 2020년 3월 5일 코로나19 전염병 확진자 증가세가 줄듯 노아 홍수의 물이 줄어들고 있었다. 창 8:5-14 줄어드는 물 the decreased waters 5절. 물이 점점 감하여 And the waters decreased continually 물의 감소는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행됐다. 물이 온 곳으로 돌아가는 기간은 물이 일어난 것보다 거의 두 배는 더 걸릴 것이다. 6절. 사십일을 지나서 at the end of forty days 땅을 다시 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은 노아와 가족의 강한 갈망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생각은 땅이 아직 준비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믿음과 인내와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7절.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And he sent forth a raven 노아는 땅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까마귀를 골랐다. 그것이 다른 생물을 잡아먹는 포식(捕食) 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수로 죽은 동물의 썩은 고기가 물에 둥둥 많이 떠 있었을 것이다.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세상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다. 그것은 땅이 아직 덜 말랐고 썩은 고기의 냄새가 까마귀가 방주로 돌아가지 않고 물 위를 떠돌도록 유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주 지붕 위를 횃대 삼아 지냈을 수도 있다. 8절.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Also he sent forth a dove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 노아는 땅을 정탐할 새를 비둘기로 선발했다. 비둘기는 낮게 날고 자기 거주지로 돌아오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는 새였다. 비둘기의 행동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었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돌아왔다. 9절 본문은 그 장면을 아주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接足)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노아는 그것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표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10절. 또...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again he sent forth the dove 7일을 더 기다린 뒤 노아는 비둘기를 아침에 내보낸 모양이었다. 그래서 비둘기는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상당한 거리를 날아다녔을 것이다. 아직도 사방에 물이 있었던 것이다. 11절. 저녁때에 비둘기가...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And the dove came... in the evening; and in her mouth was an olive leaf 아침에 다시 방주 밖으로 나갔던 비둘기는 날아다니다 저녁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의 부리에 올리브나무(olive) 새 잎사귀가 물려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비둘기가 그 올리브나무 새 잎사귀를 쪼아 자기 부리에 물려면 초자연적인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둘기 연약한 부리에 물린 그 푸르른 잎사귀는 믿음의 사람 노아에게 세상의 산등성이들이 물에서 벗어나 깨끗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을 전하는 기쁨의 증거 하나님이 전하신 기쁨의 소식이었다. 이것에 대해 한 유대교 랍비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쓴 식물이 인간이 만든 아주 달콤한 음식보다 더 좋다(The biitter food that comes from God than the sweetest food at the hands of man is better).” 올리브나무는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그래서 노아는 물이 완전히 물러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12절. 또... 비둘기를 내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he ... sent forth the dove: which returned not ... any more 믿음과 인내의 사람 노아는 다시 일주일을 기다린 뒤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 결과들을 통해 우리는 지혜와 신중함(wisdom and prudence)이 본능의 영감(inspiration of instinct)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이 새의 모든 움직임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작용(the agency of God)이 노아에게 교훈을 주고 노아의 가족에게 소망을 되살려주는 것이었음을 깨우치게 된다. '또 칠일을 기다려' 'he stayed yet other seven days' 이것은 노아가 방주에 있는 동안에도 안식일을 지켰다는 추론의 근거가 되는 강한 증거이다. ♣ QT 되새김 A 왜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비둘기는 돌아왔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다시 돌아온 비둘기는 어떤 것을 가지고 왔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비둘기가 다시 돌아온 뒤 노아가 칠일을 더 기다린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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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5
  • 큐티주석28 하나님의 기억하심
    The Structure Claimed to be the Noah's Ark near the Mount Ararat in Turkey 하나님의 기억하심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오십 일 후에 감하고 4 칠월 곧 그달 십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창 8:1-4 과거로 돌아가지 않아도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나쁜 기억을 지울 용기만 있다면. 기억을 지우는 데는 최면도 신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다르게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같은 경험도 좋은 기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W. Adler 1870년 2월 7일~1937년 5월 28일))의 개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 개인심리학( individual psychology)이 바탕이 됐다. 아들러는 경험에 어떤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이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모든 이에게 자신의 삶을 결정할 용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용기의 심리학’으로 불리는 이유다. 인물들이 각자의 나쁜 기억을 털어놓는다. 철학자는 듣기 좋은 말로 그들을 위로하기보다 현실을 바로 보라며 일침을 놓는다. 이 역시 과거를 외면하지 말고 현실 속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아들러 심리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직면할 것을 증언한다. 노아가 그런 인물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왕상 8:56 참된 믿음은 서두르지 않는다(True faith does not get in a hurry). +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사 28:16 급절(急切)하다는 것은 사태나 상황 따위가 몹시 다급하다는 의미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믿는 자는 몹시 서두르거나 다급하게 굴지 않아야 된다는 뜻이다. 창 8:1 하나님의 기억하심 Remembering of God 1절. 하나님이... 권념하사 And God remembered Noah 개역성경의 ‘권념’(眷念)이라는 번역은 ‘돌보아 생각한다’는 뜻이다. 킹제임스성경은 ‘기억하셨다’(remembered)로 번역했다. 이 뜻은 홍수 기간에 하나님이 그의 의로운 종 노아를 잊어버리셨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 기억하다는 동사는 하나님이 그 자신의 종에게 베푸신 특별한 관심(special attention)이나 개인적인 돌보심(personal care)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 동사가 아브라함 이스라엘 백성 삼손 한나 십자가 위의 회개하는 강도 등 성경의 인물들에 관해 같은 방식으로 사용이 되었다. +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창 19:29 +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출 2:24-25 +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삿 16:28 +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 1:10-11 +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눅 23:42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and every living thing, and all the cattle that was with him in the ark: 이 무서운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의 새로운 경영 아래 사람과 모든 생물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환경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들짐승과 육축도 기억하셨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the providence of God)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29.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and God made a wind to pass over the earth, and the waters asswaged; 아주 아름다운 묘사다. 하나님이 땅 위로 바람이 지나가게 하셨다. 하나님의 능력이 땅 위의 수분을 일순간에 말리실 수 있으심에도 바람이라는 대리자(the agency of a wind)를 사용하셨다. 성경은 말씀한다. +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시 104:4 아마 그것은 뜨거운 바람이었을 것이다. 급속한 수분의 증발은 일부분 대기로 흡수되고 나머지 수분은 땅 아래 배수구들을 통해 점진적으로 빨려 들어가 건조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4절. 칠월 곧 그달 십칠 일에 in the seventh month on the seventeenth day of the month 5개월만 지속된 홍수의 일곱 째 달이 아니라 그 해의 일곱 째 달을 의미한다.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And the ark rested upon the mountains of Ararat 머물렀다(rested)는 것은 분명히 홍수로 인한 거센 물결의 움직임이 잔잔하고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라랏산(the mountains of Ararat)은 한 산봉우리가 아니라 산악 지대를 표시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아라랏산은 해발 17000피트나 된다. 전승은 방주가 머문 산이 손가락 산(finger mountain)이라는 아라 다그(Ara Dagh)라고 한다. 그 산의 정상은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한 봉우리는 17750피트이고 다른 봉우리는 13420피트라고 한다. 그 산이 성경에 언급되고 있다. + 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저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 19:37 ♣ QT 되새김 A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방주 안에 있는 모든 생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어떤 방침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하나님은 젖은 땅을 건조시키기 위해 무엇을 사용하셨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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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4
  • 큐티주석27 방주의 닫힌 문
    방주의 닫힌 문 7:11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달 십칠 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24 물이 일백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창 7:1-24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을 찾는다. 홍수 그늘 아래 서서 하늘을 본다. 어두운 하늘은 고민 중이라 어둡다. 번개는 멋대로 사랑을 부르고 천둥의 하소연은 처량하다. 마음을 정한 하늘이 비를 쏟으면 온 마음이 젖은 방주 밖 사람들은 집에 웅크린다. 비는 길을 따라 흐르고 발자국은 처마로 향한다. 세상은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법. 나뭇잎 하나 간신히 떠 있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는 늘 불안이 극성이다. 죽음보다 오래인 증오의 소리 홍수가 시작되면 하나님을 잃은 사람이 일제히 아우성친다. 그러나 사람을 찾는 건 사람의 일. 마음을 정하신 하나님은 더 이상 한탄하시지 않는다. 그 사람 별 이어 양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 세상은 밤하늘과 같아 깊고도 멀리 반짝일 뿐 노아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밤 깊이 홀로 누워 먼 어둠 속 얼굴 향해 두 손 뻗어 부르는 그도 이제 방주 안의 빛나는 무엇이 된 것일까. 그 혼자 먹빛 어둠에 오래 있게 되면 뼈가 시리면서 점점 빛을 내게 된다는데 그렇게 해서 방주 밖의 은빛 별이 된 것일까. 비는 억수 같은데. 그러나 그는 그보다 먼 곳에 있나 보다. 그를 부르는 소리 방주 안이라 들리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데도 나무가 꽃눈을 틔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찬란한 봄날 그 뒤안길에서 홀로 서 있던 나무. 그러나 시방 나무는 시나브로 울고 있다. 찢어진 잎새처럼 흩어진 비바람에 날리는 꽃잎, 꽃이 진다는 것은 때아닌 비바람에 지친 나무가 마지막 소식을 땅에 떨군다는 것이다. 이 소식 비바람에 부쳐 보내면 헤어진 이에게 배달될 수 있을까. 그리운 이여 세상이 물에 잠기는 홍수 하늘 아래 방주 안에서 오늘은 이제 그도 이웃이었던 다시는 못 볼 세상의 그에게 마지막 이별의 소식을 전한다. 2020년 2월 29일 세계로 퍼진 코로나바이스로 전염병의 공포를 겪어보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많은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2016년 말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백 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의 장수 비결은 이렇다. 그의 평소 습관은 “조심조심, 미리미리”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한 아들을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심지어 “20살까지라도 살았으면”하고 빌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20살이 아니라 100살을 살게 되었다. 한경직 목사처럼 평생을 조심스러운 자세로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루 이틀 먼저 준비하는 습관도 가졌다. 누구나 시간에 쫓기다 보면 마음을 졸이게 되는데 그럴 때 생기는 심리적 부담을 미리미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의 삶도 오랜 세월 방주를 만들면서 그러지 않았을까. 이런 태도가 개인의 삶에만 약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회나 사회로 확장해 생각할 수 있다. 탈이 없이 지속 가능한 삶과 활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백 년을 살아 본 김형석 교수는 더불어 살았던 때가 행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져준 기억이 행복하게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져준 적이 있는가. 혼자서 잠시 즐겁게 보낼 수는 있겠지만 로빈슨 크루소처럼 오래도록 혼자 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나아지려는 노력은 자신을 돌아봄에서 비롯된다. 오늘 이달 올해 내가 어떤 길을 걸었고 걸어왔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21세기 철학에까지 영향을 준 새롭고도 폭넓은 철학적 관점을 창조했던 칸트(Immanuel Kant 1724년 4월 22일 ~ 1804년 2월 12일)가 자신의 묘비명으로까지 가져다 썼던 게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말했다. “깊이 반성할수록 경외와 예찬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요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자기 입법을 도덕률로 삼았던 칸트처럼 훌륭한 철학자가 아니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반성을 통해 밤하늘의 별을 세듯 잊혀가는 도덕성을 돌아보는 것이 인간 본성을 되찾는 길인 것이다. 이제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시고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굳게 문이 닫힌 방주 위로 듣지도 보지도 생각도 못 한 비가 쏟아졌다. 창 7:11-24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the six hundredth year of Noah's life 16절.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and the Lord shut him in 문자적으로는 ‘그를 완전하게 덮었다’(covered him round about)이다. ‘닫아 넣으시니라’(shutting him in)는 노아가 하나님의 특별한 관리와 보호 대상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그리고 은혜의 때가 지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0 17절.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the waters increased, and bare up the ark 물이 점차 불어 물체들이 간신히 알아볼 정도가 된 것 같다. 20절.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Fifteen cubits upward... and the mountains were covered 15규빗이면 대략 9미터 이하의 산이 물에 잠겼다는 표현이다. 당시 노아가 보던 산들은 다 물에 잠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인 대홍수 이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어쨌든 세상이 온통 물에 덮였다. 21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all flesh died ... fowl ... cattle and ... creeping thing 심판이 땅에 내렸을 때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죄인들과 연관된 모든 사물도 포함된 것이 하나님 섭리의 일관된 방침이었던 같다. 성경은 말씀한다. +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 19:24-25 +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출 9:6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고 세상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를 최소한 120년이나 주셨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3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 3:20 +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후 2:5 이제 세상은 인류라곤 단 한 가족 일곱 식구로 줄어들었다. 그에 비례해 짐승들도 줄어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들이 세상에 다시 사람들로 채워야 할 소수의 인간을 압도할 수가 있었다. 세상은 노아의 증거와 전도를 거부하고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승선하는 바로 그날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다. 심판의 엄하심이 선하심과 섞였다. 하나님께서 지혜 가운데 심판을 행사하시고 분노 가운데 인자를 기억하셨다. 심판의 홍수가 시작됐다. 다윗이 선언했던 것처럼. +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시 29:10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 세상의 다음 심판은 물이 아니라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8-10 24절. 일백오십 일 an hundred and fifty days 150일 다섯 달 동안 땅에 물이 넘실댔다. 얼마 안 있어 모든 생물이 물에 빠져 죽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러한 기간의 계속된 장마는 죄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엄하신 분노를 나타내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위기의 기간에 견딘 노아에 대해 생각해보라. 노아가 언제 어디서든 헌신의 정신으로 살고 호흡한 사람이었음을 배워야 할 것이다. +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14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고 산 고결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다. 즉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동행한 에녹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는’(시 46:3)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QT 되새김 A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하나님의 섭리는 어떤 방침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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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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