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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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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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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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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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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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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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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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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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큐티주석46 왕들의 전쟁
    Tempesta Abraham Makes the Enemies Flee Who Hold His Nephew 왕들의 전쟁 14:1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2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 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왕과 싸우니라 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 년에 배반한지라 창 14:1-4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지난 시대에 사회 전체를 뒤흔든 위기는 대개 전쟁과 기근 그리고 질병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내적으로 얽혀 있다. 전쟁은 농사의 기반을 파괴하여 기근을 낳고, 군대가 이동하여 전염병을 퍼뜨린다. 다른 한편 기근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전쟁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의 신체를 허약하게 만들어 병을 더 퍼뜨리기 십상이다. 유럽 역사상 최대의 위기가 발생한 14세기 상황이 전형적이다. 이때에는 백년전쟁(1337~1453)과 대기근 그리고 페스트가 함께 찾아왔다. 서유럽 중심부에서 백년 넘게 전쟁으로 대혼란이 지속되는 동안 선페스트(腺pest: 페스트균에 감염되어 림프샘에 출혈성 염증을 일으키는 병)는 병독성이 훨씬 더 강한 폐페스트(肺pest: 페스트균이 폐에 침입해서 생기는 병. 출혈성 기관지 폐렴을 일으키며 살 빛깔이 흑자색으로 변하고 사망률이 높음)로 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줬다. 이런 현상들 이면에 구조적인 농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전통 시대 농업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이 지탱해주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 참혹한 대량 아사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한 번에 터진 14세기에 유럽은 자칫 문명의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사회적 위기는 또한 정신적 위기를 동반한다. 이런 시대에 빈발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가 종말론이다. 우리 시대의 고난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며, 조만간 말세가 찾아오고 세상이 뒤집히리라는 주장이다. 종말론 자체는 원래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다. 중세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근거로 마지막 날들에 사탄이 일시 승리를 거두지만 그리스도가 그를 제압한 후 천년 동안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시대가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천년이 지난 후 사탄이 풀려나면 신에 대항하는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고 그 후 최후의 심판이 일어난다. 이런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위 ‘천년왕국주의(millenarianism)’가 된다. 재앙의 시대에는 이런 교리를 기묘하고도 과격하게 해석하여 사회에 불을 지르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는 기성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망상에 가까운 교리에 집착하는 수도사 출신 인사들이기 십상이다. 기근 상태에 빠진 농민이나 도시 빈민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출하는 격렬한 욕구가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적 메시지와 만나면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그런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왕들의 전쟁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겪었나 보자. 창 14:1-4 왕들의 전쟁 The war of the Kings 1절. 당시에 in the days 당시는 이 사건이 기록되기 14년 전이었다. 이 장에서 아브람은 예기치 않은 전사(戰士)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당시 아브람은 하란에 있었던 것 같다. '아므라벨 Amraphel' 아므라벨(Amraphel) 왕은 바빌로니아(Babylonia)의 위대한 계몽 군주 함무라비(Hammurabi 기원전 1810년경-기원전 1750년경)와 대개 동일시된다. 바빌로니아 제1왕조(아무르 왕조)의 제6대 왕으로서 기원전 1792년에서 기원전 1750년까지 바빌로니아 제국의 왕이었다. 이란에 있었던 고대 왕국 엘람(Elam)을 정복하고 지중해 연안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바빌로니아를 강한 중앙집권 제국으로 키웠다. 인류사상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성문 법전 중의 하나인 함무라비 법전을 함무라비가 반포한 것으로 유명하다. 100여 년 이상 앞선 수메르 법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으로 알려져 있다. '시날 왕 king of Shinar' 아람어(Aramaic)로 번역된 구약성서 타검(Targum)은 시날(Shinar)을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Babylon)으로 번역했다. 그것은 바빌로니아에 대한 이집트 명칭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엘라살왕 아리옥 Arioch king of Ellasar'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과 유프라테스 강 입구 사이 중간에 있는 라르사(Larsa)의 왕 에리아쿠(Eriaku)를 지칭한다. '그돌라오멜 Chedorlaomer' 그돌라오멜(Chedorlaomer)은 (누구)의 종(servant of)이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Hebraized) 형태의 쿠두르(kudur) 그리고 엘람 신(Elamite deity)의 이름 라가마르(Lagamar)가 합쳐진 단어이다. 즉 라가마르의 종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엘람 Elam' 그 당시 엘람은 바빌로니아의 소유였다. 그러므로 당시 가나안(Cannan)도 바빌로니아 주권의 지배를 받았다. '고임 왕 디달 Tidal king of Goyyim' 고임(Goyyim)은 민족들(nations)로 번역된다.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은 ‘민족들의 왕(king of nations)’이라고 번역했다. 개역성경은 고임 왕(king of Goyyim)이라고 번역했다. 티그리스 동쪽과 엘람 북쪽에 고임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고임을 히브리어 형식으로 쿠르드인(Kurdistan)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쿠르드인은 터키와 이란과 이라크에 걸친 고원 지대에 사는 민족이다. 그러므로 디달(Tidal)은 북쪽 쿠르드 유목민들(hordes)의 왕이었다. 4절.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Twelve years they served Chedorlaomer 그들이 섬겼다는 것은 공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제 십삼 년에 배반한지라 in the thirteenth year they rebelled' 그런데 그들이 그돌라오멜을 배반했다는 것은 굴종의 멍에를 벗기 위해 그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 QT 되새김 A 아므라벨은 누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그돌라오멜은 쳐들어왔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아람어(Aramaic)로 번역된 구약성서 타검(Targum)은 시날(Shinar)을 어떻게 번역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 년에 배반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오늘의 기도 Today’s prayer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주님 사단이 우리를 파멸시키려 사용하는 유혹과 기교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이기게 해주십시오. 아멘.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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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1
  • 큐티주석45 새로운 축복
    Abraham Sees Sodom in Flames, watercolor by James Tissot, c. 1896–1902 새로운 축복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 13:13-18 뉴욕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코로나) 환자가 갈수록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2020년 3월 23일(현지 시간) 미 CNBC 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뉴욕주의 코로나 확진자는 이날 현재 2만909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기준 확진자 1만5168명에서 하룻밤 사이에 5000명 이상이 급증한 것이다. 사망자 수도 현재 157명이다. 의심 환자 검사 대비 확진자 발견 비율도 다른 주(州)에 비해 현저히 높다. 각 주별 코로나 환자 집계 결과에 따르면 뉴욕은 현재까지 7만8289건 검사 건수 가운데 확진자임이 판명된 건수가 2만875 건으로, 검사 대비 약 26%였다. 검사자 대비 확진자가 약 1~3% 정도수 수준인 다른 주의 약 20배 수준이다. 뉴욕주가 다른 지역보다 환자 수가 월등히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검사량 자체가 대폭 늘어난 데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23일 코로나와 관련한 일일 브리핑에서 ‘뉴욕주는 미국 내 다른 어떤 주보다 바이러스 검사를 많이 한다’라고 밝혔다. 뉴욕을 제외한 다른 주는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현재까지 누적 검사 건수가 2000~3000건 수준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한국이 하루에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뉴욕은 하루에 1만6000명을 검사하는데, 한국 인구는 뉴욕주의 약 2배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인구 수로 따지면 뉴욕이 한국보다 검사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인구는 올해 통계청 기준 약 5,178만 명이고, 뉴욕주 인구는 미국 인구조사국의 지난해 7월 발표 기준 약 1.950만 명으로 한국 인구가 뉴욕주의 약 2.66배다. 그 밖에 인구 밀집도가 높고 전 세계 여러 국가 출신들이 거주한다는 점 미국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자가용이 아니라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레스토랑을 비롯한 사람들이 다수 모이는 장소가 타 지역에 비해 많다는 점 역시 뉴욕에 확진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힌다. 지도자는 외롭고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옛날에 양반이 중인을 다루듯 전문가와 부하 직원들을 대한다. 지도자는 그들의 조언이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경우 자신의 지위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지도자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고 자신을 칭찬한다. 지도자는 ‘국민’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 국민을 사랑하고 섬기는 척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두려워한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지키지 못할 것을 약속하고 미래에 받게 될 비판에 자신을 내모는 식으로 대중의 기대를 잘못 관리한다. 필연적으로 비판은 계속 쌓이고 새로 나타난 지도자는 본능적으로 전임자가 나라를 망가뜨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권력이 비민주적인 사법권을 장악하면서 옛 권력은 감옥행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악순환은 지도자들이 대중에 대한 두려움 대신 민주주의 시스템을 존중하고 그것의 신성한 가치를 깨닫게 될 때라야만 깨질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알 수가 없다. 기업의 세계는 이미 다 변했는데 정치는 그렇지 않았다. 정부의 잘못 때문일까. 그래 정부의 잘못이 맞는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좋은 정치인의 자질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이라고들 한다. 이 말은 정답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오답을 선택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해 산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기도 한다. 이런 일에 거창하게 희생이라든가 위인이라는 말을 붙일 것도 없다. 평범한 나도 평범한 너도 종종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믿음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이까짓 못난 인생 망쳐 버릴까. 확 죽어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 때, 모진 마음이 약해지는 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할까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정말 절망적일 때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 아이를 위해 일어서게 된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혼자서 앓는 한 사람이 서러워 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게는 병원 갈 힘도 없고 약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그때 주님이 그를 일으켜 세워 주셨다. +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요 5:1-2, 5-9 쓰러지고 싶은 저 인생을 잡아주는 건 믿음으로 가능한 ‘주님 생각’ 하나뿐이다. 놀랍게도 주님 생각은 마스크가 되고 약이 되어 혼곤히 쓰러진 저 사람을 지켜줄 것이다. 3월은 조금 아픈 달. 땅도 얼음이 풀리느라 몸살을 하고 환절기에 우리도 기침하는 달.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19를 무사히 넘기기를 기도한다. 믿음의 사람은 시험의 시간이 지난 뒤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말씀을 언제나 받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그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시 16:5 +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2 창 13:13-18 새로운 축복 A new blessing 13절. 소돔 사람 the men of Sodom 롯은 비옥한 땅과 문명이 발달한 도시를 선택했다. 아브람에게는 바위투성이 산들(rugged hills)과 황량한 들판의 역경과 영광과 덕들이 남겨졌다. 그것은 서부 팔레스타인의 소멸되지 않는 미래를 나타낸다. 소돔은 일찍이 문명화됐지만 타락한 종족의 관능적인 악폐들이 발달한 도시였다. +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겔 16:49-50 무엇보다도 롯은 자발적으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 살기를 원했다. 그 지방의 물질적인 매력들이 신앙과 도덕의 오염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눌러버렸다. '악하여... 큰 죄인이었더라 were wicked and sinners' 악하다(wicked)는 것은 동료 인간을 대함에 있어 무정하고(heartless) 잔인하다(inhuman)는 것이다. 그리고 죄인(sinner)이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혐오(abomination)와 악행(depravity)들에 빠진 사람이다. '여호와 앞에 before the LORD' 여호와 앞에서 행한 그들의 부도덕한 행위는 하나님에게 어긋나는 행위와 무례를 범하는 것이었다(Before the LORD their immoral conduct was an offence to God)..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after that Lot was separated from him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확신을 새롭게 해주시기 위해 그 순간을 선택하셨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조카 롯이 떠난 뒤에 상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는 아브람이 롯을 유력한 상속자로 생각해 하나님의 약속이 그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너 있는 곳’(the place where thou art) 즉 아브람이 서 있는 베델 근처의 장소에서 온 땅의 놀라운 광경을 보라고 명령하신다. '너는 눈을 들어 Lift up now thine eyes' 아브람은 눈을 들어 사방의 땅을 바라보았다. 외로운 족장 아브람의 눈앞에 황량한 평지와 산들이 펼쳐졌다. 그는 발을 들어 그 땅을 믿음으로 자기의 것이라 요구했다. +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3 그리고 그 땅은 강력한 나라의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었다. 솔로몬 시대에 그것이 이루어졌다. +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왕상 4:20 15절. 영원히 for ever 아브라함이 그의 생존 시에 실제로 그 땅을 갖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아브람에게 주셨다. 그처럼 이스라엘이 그것을 항상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의미는 하늘나라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 11:8-10 17절.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Arise, walk through the land 땅을 여기저기 걷는 행위는 그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률상의 정식 절차(legal formality)였다. 18절. 헤브론 Hebron 1세기 제정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년 경~100년 경)는 헤브론이 이집트의 멤피스(Memphis)보다 더 오래된 도시라고 말했다. '마므레... 거기서... 단을 쌓았더라 the plain of Mamre ... built ... an altar' 그런 뒤 아브람이 경건한 감사의 새로운 예물과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갱신되었다. 아브람은 마음을 들어 하나님을 경배했다. 롯은 아브람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의 마음을 축복하시고 그를 모든 민족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다. Bethel. From the book Holy Land photographed by Daniel B. Shepp. 1894 ♣ QT 되새김 A 롯이 선택한 소돔은 어떤 곳이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왜 롯은 소돔을 선택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떻게 하셨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는 약속에서 ‘영원히’는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31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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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1
  • 큐티주석44 새로운 짐
    Abraham and Lot separate. Gen 13.7 &.c, etching by Wenceslaus Hollar 새로운 짐 13: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 13:5-12 봄은 힘이 세다. 고운 잿빛 털로 덮인 강아지처럼 보송보송해 버들강아지라 불리는 버드나무 수꽃이 살을 에는 강풍과 무자비한 가랑비를 이기고 끝끝내 머리를 내민다. 진정한 봄이 왔다는 첫 신호다. 약 50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스페인 독감(1918~1919년) 당시 젊은이가 가장 많이 죽었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젊고 건강한 사람이 왜 바이러스를 못 이기는지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다. 가령 몸속으로 들어온 바이러스의 힘이 1이면 면역력도 1로 대응해야 하는데 10의 힘으로 너무 열심히 싸워 다른 장기까지 다치게 해 염증을 일으킨다. 사스와 메르스 때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 젊은 사람들도 ‘나는 건강하니 괜찮을 것’이라고 너무 자만해선 안 된다. 적어도 1~2년은 걸릴 것이고 안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류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는 한 번도 개발되지 못했다. 처음 1~4번 코로나는 감기였고 5번 코로나는 사스였고 6번은 메르스였다. 모두 백신과 치료제가 없었다. 이번이 일곱 번째 변형 코로나인데 잘 물러갈 놈이 아닌 것 같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러스킨(John Ruskin, 1819년 2월 8일 - 1900년 1월 20일)은 말했다. ‘우리가 군인과 의사를 존경하는 것은 군인의 과업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고 의사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지에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기 때문이다.’ 우리 위정자들은 우리에게 존경받을 사유가 하나라도 있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존경을 받아야 할까. 아브람이 어떻게 했나를 보자. 삼촌 아브람과 조카 롯 사이에 소유가 늘어나 갈등이 생겼다. 창 13:5-13 새로운 짐 A new burden 애굽에 있는 동안 롯은 재산을 얻고 세상맛을 알게 되었다. 그의 세속적인 관심은 일부분 아브람의 잘못도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슬픈 결말을 막지 않으셨다. 우리는 용서받은 뒤에도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두게 된다. 아브람의 믿음의 처음 시험은 기근에서 왔다. 그의 두 번째 시험은 그 자신의 가족에게서 왔다. 가족의 시험들은 모든 시험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평화의 조정자(peacemaker)였다. 그러나 롯은 안목(眼目)으로 살았기 때문에 말썽꾸러기(troublemaker)였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의 도시(heavenly city)를 선택했다. 그러나 롯은 그 당시에도 악했고 하나님이 안 계시는 세속적인 도시(earthly city)를 선택했다. 롯은 하나님을 뒤에 남겼고 그의 가정을 파괴했다. 세속 도시가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멸망을 향하는 도시이다. 당신의 장막을 죄와 가까운 곳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당신의 제단을 함께 옮길 수 없을 것이다.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7절. 그러므로 서로 다투고 And there was a strife 여기에서 아브람의 성격은 아주 온건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강한 신앙심을 지닌 그는 그 성격에 상처를 주거나 그 이름을 깎아내릴 수 있는 일을 꺼렸다. 그래서 그는 골육이라 성품과 덕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두 사람이 갈라져야 하는 불행한 결과를 놓고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롯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창 13:8 자신이 삼촌으로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하고 그는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아브람의 행위는 비이기적이고 평화적일뿐만 아니라 성경 가르침에 따르는 아주 뛰어난 관용과 호의의 모범이기도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1-32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0-11 +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4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Lot lifted up his eyes 여행자들은 말한다. 그들이 서 있는 벧엘 동쪽 작은 언덕마루에서 요단강과 강 양쪽의 드넓은 목초지 그리고 물결치는 푸르른 풀밭을 볼 수 있다. 그 광경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11절.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Then Lot chose him all the plain 롯의 선택은 세상 적인 관점에서 탁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상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는 가장 비효과 적인 것이었다. 롯은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성향의 사람은 세상의 이익을 바라고 자신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판다. 이와 달리 인내로 일본의 패자가 된 도쿠기와 이에야스의 경우도 있다. 오다 노부나가의 급사(急死) 이후 권력을 거머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세를 몰아 일본 통일에 박차를 가한다. 능수능란하게 세력을 불리며 서일본과 규슈를 접수한 히데요시는 1590년 봄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 관동(關東)의 강자 호조(北條) 가문 복속에 나선다. 호조 가문은 본거지인 오다와라(小田原)성에서 농성(籠城)했으나 집요한 봉쇄를 견디지 못하고 그해 여름 성문을 열고 만다. 소위 ‘오다와라 정벌’이라고 하는 이때의 전투로 히데요시는 사실상 일본의 패자(覇者)가 된다. 관동을 접수한 히데요시는 같은 진영으로 참전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에도로 영지를 옮길 것을 넌지시 제안한다. 드넓은 관동의 지배권을 주겠다는 명분이었으나 내막은 간단하지 않았다. 당시 에도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미개척지였다. 반면 이에야스의 본거지인 슨푸(駿府·시즈오카현)는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교통 요지였다. 후세의 사가들은 에도 전봉(轉封) 권유를 이에야스를 견제하기 위한 히데요시의 계책으로 해석한다. 이에야스의 가신들은 울분을 토했지만 아직 히데요시에게 맞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에야스는 불온함을 내색하지 않고 명(命)에 따른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수만 가솔을 이끌고 에도에 입성한 이에야스는 맨땅에서 다시 시작한다. 보통 영주라면 성(城)부터 챙길 것이나, 이에야스는 가신들의 주거지 개척 농경지 확보와 물자 운송용 수로 건설 그리고 상업 진흥에 힘을 쏟는다. 다행히 에도는 동서를 연결하는 천혜의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에도 건설이 훗날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응징하고 강력한 통치력의 에도 막부를 여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이에야스의 위대한 지도자 면모는 형세를 읽고 힘을 기르며 때를 고르는 안목에서 찾을 수 있다.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것은 분노나 오기(傲氣)가 아니라 냉철한 상황 판단과 전략적 인내임을 알려주는 교훈이 일본 근세 역사에 담겨 있다. ♣ QT 되새김 A 조카 롯과 문제가 생겼을 때 아브람은 어떤 태도로 해결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롯은 그것을 어떻게 대처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롯의 성향은 어떤 결말을 초래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아브람은 결국 무엇을 바리보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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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0
  • 큐티주석43 새로운 시작
    Rembrandt Abraham Serving the Three Angels 새로운 시작 13: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13:1-4 2020년 3월 26일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간다. 인간의 근본 욕망이 식욕과 성욕 그리고 재앙으로부터의 안정 욕구라고 전제한다면 생명을 빼앗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며 제대로 된 격식도 갖추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유행성 질병과 전쟁은 인간의 안정 욕구를 파괴하는 2대 재앙이다. 질병이 천재(天災)라면 전쟁은 인재(人災)에 더 가까우니 감정적인 원한은 후자가 더 클 수밖에 없겠다. 그래서일까. 전쟁과 관련한 전쟁이 낳은 노래는 민족상잔을 겪은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상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 20세기를 울린 전쟁 노래의 백미 중 하나로 ‘Danny Boy’를 지목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아 목동아’를 제목으로 테너 현제명이 녹음하기도 했고, 이 곡의 멜로디를 색소폰으로 연주한 실 오스틴의 재즈는 한국전쟁 직후의 한반도를 강타했다. 아일랜드의 테너 존 매코맥의 가창부터 스탠더드 팝의 대표 주자인 빙 크로스비와 앤디 윌리엄스, 나아가 자메이카 출신 칼립소 가수 해리 벨라폰테와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이 곡을 부른 가수는 셀 수조차 없다. 이 노래는 오랫동안 대영제국과 피비린내 나는 독립 투쟁의 역사를 지닌 북아일랜드 지방의 민요 ‘Londonderry Air’에서 출발했다. 이 곡이 채집되던 19세기 중반 이래 보통 3개의 가사 버전이 통용되고 있다. 그중에서 영국의 변호사이자 작사가인 프레더릭 웨덜리의 노랫말이 ‘Danny Boy’를 대표한다. 전쟁터로 끌려나가 결국 돌아오지 못할 아들을 그리워하는 애끓는 부모의 정을 담은 이 노랫말은 전 세계 부모들의 마음을 처절하게 대변한다. ‘여름은 갔고 장미들도 시드는데 이제 너는 떠나야만 하고 우리는 남아 널 기다린다...’ 전염병이 창궐하니까 체크되는 부분이 보인다. ‘내가 믿음이 성숙했나 성숙하지 않았나’이다. 죽음을 담담한 상태로 받아들이면 믿음이 성숙한 것이고 담담하지 못하면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면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년–기원전 271년)가 떠오른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Epicurianism)라 불리는 학파의 창시자이다. 에피쿠로스는 300여 권의 저술 활동을 했는데, 그중 몇 권의 일부만이 전해진다. 알려진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의 대부분은 후대의 추종자들이나 해설자들에 그 유래가 있다.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無痛, aponia) 등의 성향을 의미한다. 그는 쾌락과 고통은 무엇이 좋고 악한지에 대한 척도가 되고 죽음은 몸과 영혼의 종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신은 인간을 벌주거나 보상하지 않고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는 빈 공간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없다.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에피쿠로스(개역성경 ‘에비구레오’로 번역) 철학자에 대해 사도 바울도 언급한 적이 있다. + 어떤 에비구레오(Epicureans)와 스도이고(Stoicks)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 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행 17:18 그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아이도 없다. 그는 요로결석을 앓았고 이는 그가 기원전 270년 결국 사망하는 원인이 된다. 요로결석의 굉장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나는 이 편지를 내 삶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날에 쓰네. 소변을 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다가 세균성 이질까지 겹쳐 내 고통은 더 이상 심각해질 수 없을 정도네. 그렇지만 내 철학적 사색들로부터 오는 기쁨이 이 고통을 상쇄시켜준다네...’ 부활을 믿지 않는 에피쿠로스가 고통 가운데 떠났지만 부활을 믿는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창 13:1-4 새로운 시작 A new beginning 1절. 남방으로 올라가니 went up ... south 하나님은 애굽에서 아브람을 단련하셨고(chasten) 그가 다시는 떠날 수 없는 땅으로 돌아갔다. 팔레스틴은 고지대라 애굽의 입구에서 남쪽 경계선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2절. 풍부하였더라 very rich 아브람의 소유는 목축업 종족에 비해 부유한 정도였다. 아랍의 족장(sheik)은 장막 100개 내지 200개, 낙타 60마리에서 100마리, 양과 염소는 각기 1000마리 정도는 되어야 부유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브람이 목축업 종족의 소유보다는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목축업 부족에게는 금과 은은 흔하지 않은 것인데 애굽에서 늘어난 재산을 팔아서 구한 모양이다. 3절.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went on his journeys from the south 그의 여행은 느린 행진이고 물과 목초지를 찾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자주 장막을 치고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unto the place... between Beth-el and Hai' 그곳은 초목이 있는 작은 산이었을 것이다. 정상에는 바위 경사지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올리브 숲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제단을 쌓기에 적합한 기슭이 있고 족장의 장막을 치기에 적합한 그늘을 제공해 주었을 것이다. 4절.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아브람은 처음으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그 현장에서 믿음과 경건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끼고 제단을 쌓았을 것이다. 그것은 애굽에서 저지른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과 뉘우침을 고백하고 위험에서 건져주신 구원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을 거느리고 가나안에 돌아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갱신하고 약속의 축복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희생 제물을 바치는 첫 번째 기회였다. 아브람은 이제 부유했지만 그가 소유한 가장 소중한 것은 그의 장막과 제단이었다. 우리가 실패할 때 주님은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 요1 1:9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들의 연속이 될 것이다. Dead Sea ♣ QT 되새김 A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아브람의 소유는 이방인의 부자와 비교했을 때 어떤 수준이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아브람 일족의 여행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아브람이 처음으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그 현장에서 다시 제단을 쌓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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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6
  • 큐티주석42 믿음의 시험
    Abimelech, King of Gerar, returns Sarah to Abraham 믿음의 시험 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 12:10-20 3월 영국 서퍽 지역에 자엽꽃자두가 만발하고 가시자두꽃이 피어나지만 그는 봄 소식을 알아차리자라나는 조그만 지 못한다. 우울증 때문이다. ‘난 무가치한 인간이야.’ 생각의 블랙홀에 빠져들다 차를 몰고 나선다. ‘어느 다리가 가장 높고 효율적일까.’ 생을 끝내고 싶은 욕망에 휘둘려 차를 몰아가는데 문득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묘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이 내면의 참담한 소음을 가라앉힌다. 나무들, 푸르름, 그리고 위로. 파국을 향해 폭주하던 소란이 멈추고 그는 차를 집으로 돌린다. 영국 박물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그가 심각한 우울 증상을 겪으며 만난 자연의 위안에 대해 1년간 적어간 그의 일기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지난 25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라고 첫 문장을 시작한 그는 ‘인생이 한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 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라고 썼다. 과학적 근거도 있다. 2007년 마드리드대학교와 노르웨이생명대학교의 합동 연구서에 따르면 자연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정신적 피로가 해소돼 질병에서 회복되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한다. 식물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을 막기 위해 생성하는 ‘피톤치드’는 인간의 면역계와 순환계 등에도 일부 같은 작용을 한다. 자연과의 접촉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우울증을 완화한다. 우울한 사람에게 산림욕이 도움이 되는 이유다. 숲으로 산책을 나가 나뭇잎사귀나 새의 깃털, 조약돌 등을 주워오는 것도 기분 전환이 된다. ‘채집 황홀’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 자원을 찾아 나서면 도파민이라는 뇌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일시적 흥분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채집, 수렵 생활자였던 과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3월 자살을 생각하던 그는 4월 정원에 찾아온 검은지빠귀 노랫소리를 듣는다. 서정적이고 덧없는 노랫소리가 머릿속에 현란한 색의 불꽃을 터뜨린다. 행복하다. 엑서터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을 완화하려면 주변 경관에 새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는 정원에서 점점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 ‘정원 일은 흙을 만지면서 하는 요가와도 같아서 만족스럽고 은근히 기분을 달래줄 뿐만 아니라 우울한 생각을 쫓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문득 하늘로 눈을 돌렸을 때 보이는 것이 있다. 올해의 첫 번째 제비다. 저 제비는 남아프리카에서 여기까지 여행해 왔다. 한 달 동안 9,000㎞를 이동했으니 하루에 약 300㎞를 날아온 셈이다. 저렇게 작은 새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위업이다. 그는 쓴다. ‘제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듯이 나 역시 또 한 번의 겨울을 이겨낸 것이다. 나는 안마당에 앉은 채 잠시 조용히 운다. 7월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숲에서 강렬한 환희를 느끼며 "지금 이 기분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거실 창밖으로 새를 관찰한 것은 우울증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건 말하자면 진통제 한 알로 부러진 다리의 통증을 가라앉히려는 것과 같았다. 그에 비교하면 숲의 효력은 아편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두 달간 창밖 풍경만으로 애써 ‘코로나 우울’을 달래 온 사람이라면 이 구절이 뼛속까지 깊이 이해가 될 것이다. 봄이 부른다. 주말엔 홀로 숲으로 나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며 기도나 아니면 찬송이나 불러볼까. 창 12:10-20 믿음의 시험 A test of faith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인도한다. 믿음은 축복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축복은 시험으로 인도한다. 최소한 세 가지 이유로 믿음은 항상 시험을 받게 된다. 먼저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증명하기 위해. 그 다음 우리의 믿음이 자라도록 돕기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6-7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10절.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there was a famine... and Abram went down into Egypt 하나님이 아브람을 인도하신 바로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지만 여전히 시련을 겪을 수 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기근을 만나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나그네 같은 그의 삶의 여행을 후회하거나 약속의 땅을 멸시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이웃 나라로 피했다. +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5-16 '아브람 Abram' 아브람은 나중 아브라함(Abraham)으로 바뀐다. 그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고대 수메르(Sumer)의 우르(Ur)를 떠나 시리아(Syria)의 하란(Haran)으로 여행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가나안(Canaan)으로 이주했다. 그의 자손이 거주할 땅이었다. 그는 175세까지 살았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을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의 아버지(the father of faith)로 기술됐다. 아브라함의 가장 큰 시험은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것에 대한 순종이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2, 12 '애굽 Egypt'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하류에서 번성한 문명이었으며, 최전성기인 기원전 15세기에는 나일 강 삼각주에서 제벨 바르카까지 세력을 뻗쳤으며 이 시기에는 에티오피아와도 교류하기까지 했다.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전 332년까지 3천 년 동안 존재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집트는 원조 수로(水路) 제국으로서 관개 산업에 의존하였던 문명이다. 이집트 영토의 대부분은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으나 시나이 반도는 서남아시아에 있다. 이 나라는 지중해와 홍해에 해안선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리비아와 남쪽으로는 수단 그리고 동쪽으로는 가자 지방과 이스라엘을 마주보고 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흔히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나뉜다. 나일 강은 남쪽에서부터 지중해를 향해 북쪽을 향해 흐른다. 이집트의 인구는 대부분 나일 강을 둘러싸고 집중되어 있다. 이 강은 석기 시대와 나카다 문화 시대로부터 근근이 이어져온 이집트 문화의 동맥이다. 때문에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집트 지도자 파라오(Pharaoh)는 ‘큰 집’을 뜻하는데 살아 성육신한 신으로 추앙받았고 그의 말이 법이었다. 그러므로 이집트는 어떤 성문법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 율법(Mosaic Law)의 독창성이 인정을 받고 있다. 이집트는 구약 성서 기록 전체에 걸쳐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였다. 11절.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I know that thou art a fair woman to look upon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용모가 뛰어났던 모양이다. 게다가 혈색이 좋지 않은 애굽 여인들과 비교했을 때 그녀의 모습은 더욱 돋보였던 것 같다. 아브람은 이방 땅에서 그녀의 미모 때문에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게 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창 12:12-13 아브람의 사래에 대한 권면은 말은 맞지만 그녀가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속이는 행위였다. 그의 행위는 비난받을 일이었고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그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보다 세속적인 정략에 더 의존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보호를 받는 신분임에도 그는 자신의 생명 보존을 위해 자신도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사래도 죄를 짓도록 유혹했다. 14절.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when Abram was come into Egypt 아브람이 애굽에 당도하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였다. 동방의 왕들은 좋아하는 미혼의 여인을 후궁으로 들이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까지 주었다. 17절.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the LORD plagued Pharaoh and his house with great plagues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셨다면 아브람은 애굽에 눌러 앉아 살았을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은 아브람의 죄를 능가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시 105:11-15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그의 백성을 종종 꾸짖으시고 그들을 대적하는 적들을 통해 이 세상이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님을 상기시켜 주신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0-31 Nahal Paran, Negev ♣ QT 되새김 A 아브람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이르렀을 때 무엇을 겪게 되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아브람은 그것을 어떻게 대처했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아브람은 애굽에 이르기 전 사래에게 어떤 권면을 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애굽에서 하나님의 간섭이 없었다면 아브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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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6
  • 큐티주석41 아브람의 소명
    The Caravan of Abraham, watercolor by James Tissot, before 1903 (Jewish Museum, New York) 아브람의 소명 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창 12:1-9 풀잎에 맺혀 글썽이는 은혜 방울 위에 뛰어내리는 믿음 위에 포개어지는 말씀. 그리고 아득한 허공. 거기에 떠도는 구름과 소나무 가지에 매달리는 소망. 믿음들이 곤두박질하는 바위 위 풀잎에 글썽이며 맺혀 있는 은혜 방울들. 말씀에 나오는 세계는 소리 정보나 문자 정보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비어 있는 편에 가깝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노력도 필요 없다. 그저 이 말씀을 천천히 따라 읽으면 된다. 따라 읽다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듯이 말씀의 신비한 맛은 의미 즉 하나님의 뜻에 있다. 말씀은 지상의 가장 낮은 곳인 풀잎의 은혜 방울 같은 성경 구절에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우리 마음속 소망과 하늘 순으로 끝 모르게 상승한다. 말씀은 잔잔해 보이지만 상승의 속도는 놀랍다. 끝까지 올라간 다음에 말씀은 다시 구름을 거쳐 소망과 믿음으로 마음속 나에게 하강한다. 신자는 이 상승과 하강을 거쳐 지구의 저만치를 주유하고 온 듯한 황홀을 느낀다. 우리의 정신은 말씀 따라 먼 여행을 하고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우리는 이전의 우리와는 다르다. 말씀을 통한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즐겨보자. 은혜 방울 같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정말 누구인가. 그 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 사건에서 역경과 결점의 힘을 느끼듯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역시 실제 삶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그렇듯 하나님이 말씀으로 아브람을 부르셨다. 창 12:1-9 아브람을 부르심 Call to Abram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the Lord had said unto Abram 그분을 구하지 않는 자들을 종종 찾으시는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아브람의 회심(the conversion of Abraham)은 성경 역사에서 아주 놀라운 일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브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 그 사실은 신약성서에서 그의 믿음의 뛰어난 실제 본보기로 종종 언급되고 있다.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부르심의 교리가 중요한 이유는 복음을 통한 부르심이 없이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4 이 부르심은 두 가지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명령은 아브람이 그 땅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 떠남은 세 가지에 대한 것이다. 먼저 본토 그 지방에서(out of thy country) 떠나고 그 다음 친척을(from thy kindred) 떠나고 마지막으로 아비 집(from thy father’s house)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성경은 그의 가족이 우상숭배를 했다고 기록한다. +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수 24:2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unto a land that I will shew thee' 그러나 아브람은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또는 보여주실 땅으로 가야 될 뿐이었다. 그 명령은 아브람 편에서의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가 떠난다면 하나님이 그에게 이루어주실 2절의 세 가지 약속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큰 민족을(a great nation) 이루게 해주시고 복을 주시고(bless thee) 이름을 창대케(thy name great) 해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2절의 마지막 말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너는 축복이 될찌라’(thou shalt be a blessing)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확실히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씀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3:29 아브람이 누구에게(to whom) 어떻게(how) 축복이 될지를 3절에서 하나님이 설명해 주신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I will bless them that bless thee, and curse him that curseth thee: and in thee shall all families of the earth be blessed).' 4절. 하란을 떠날 때에 when he departed out of Haran 아브람의 순종의 첫 번째 행위가 하란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창세기는 두 주요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부분은 11장까지 인류의 역사를 다룬다. 나머지 39장은 아브라함의 가족을 다룬다. 이제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을 바벨 탑 심판의 사건으로 흩어진 반역적인 인류에서 궁극적으로 세상의 구세주가 오실 한 가족으로 돌리신다. 5절.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into the land of Canaan ... they came 아브람은 아내와 고아 조카 롯을 데리고 목적지 가나안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렇게 아브람의 자손의 소유가 될 땅을 보여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잘 이루어졌다. 7절.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하나님은 아브람 개인을 위해서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생각을 가지지고 미래 세대를 위하여 약속하신 것이다. 아브람의 자손이 차지할 땅은 특별한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 땅은 하나님을 아는 자손의 씨앗이 모든 인류를 위해 뿌려질 땅이었다. 온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된 하나님의 계시의 요람으로 선택된 땅이었다.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there builded he an altar unto the Lord' 이 엄숙한 헌신의 행위로 아브람은 자신의 신앙을 분명하게 고백했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렸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신의 신앙을 선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인도하고 믿음은 순종으로 안도하고 순종은 축복으로 인도한다. 당신이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그리고 당신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게 된다. +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19-20 참된 믿음은 서두르지 않고 기꺼이 기다린다. +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make haste) 되지 아니하리로다 사 28:16 +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 6:12 믿음은 어떤 상황이나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히 11;29-30 Ein Avdat in the Zin Valley in the Negev ♣ QT 되새김 A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람은 어떻게 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했을 때 아브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아브람이 누구에게(to whom) 어떻게(how) 축복이 될지를 하나님이 어떻게 설명해 주시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가나안에 들어가 제단을 쌓은 아브람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했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25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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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5
  • 큐티주석40 아브람의 이주
    Abram's Journey from Ur to Canaan (József Molnár, 1850) 아브람의 이주 11:10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30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 11:10-32 오선지 위에 음표와 쉼표가 있다. 음악에서 음표와 쉼표는 글에서 글자와 띄어쓰기다. 다양한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글자가 글자 사이의 공간인 띄어쓰기와 함께하듯 여러 기호와 더불어 쓰이는 음표와 그 사이 자리 잡은 쉼표는 바늘과 실처럼 같이 다닌다. 쉼표는 음표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자체로 감동을 전하는 훌륭한 도구다. 음표로 가득한 음악의 절정 앞에 놓인 쉼표는 태풍의 눈 같은 극도로 긴장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폭포수처럼 터질 눈물을 잠시라도 꼬옥 묶어둘 수 있는 건 음표가 아니라 쉼표다. 또한 쉼표는 소리를 표현하는 또 다른 음표다. 무대 위로 한 피아니스트가 올라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하지만 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아무 건반도 누르지 않은 채 가만히 있기만 한다. 째깍째깍 시간은 흐르고 어리둥절한 관객들은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본다. 저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연주 전 긴장 때문에 아직도 숨을 고르는 걸까.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어색함과 궁금함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핀란디아의 도입부처럼 조용하지만 눈 녹듯 사라지면서 어느새 따스한 고요와 평화가 그 자리를 채운다. 피아니스트는 정확히 4분 33초가 지난 후 뚜껑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에게 인사한 뒤 무대를 내려왔다. 이 연주 아닌 연주엔 쉼표가 만들어낸 오직 관객들 침묵과 연주회장이 만드는 관객과 공간의 우연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20세기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1912년 9월 5일 ~ 1992년 8월 12일)가 1952년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4분 33초’란 작품이다. 세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고 각 악장의 악보에는 음표나 쉼표 없이 TACET(연주하지 말고 쉬어라)라는 악상만이 쓰여 있다. 턴테이블에 올린 레코드판 가장자리에 바늘을 살포시 놓으면 들을 수 있는 2~3초간 듣기 좋은 잡음을 모아서 듣는 느낌이랄까. 언제부턴가 믿음을 가진 우리네 인생의 쉼표들도 단지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 의미 없는 침묵이 되어버렸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내면 깊은 곳의 믿음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침묵의 조용한 시간(Quiet Time)이 그립다. 활기찬 내일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쉼표도 좋고 오로지 기도만을 위한 쉼표도 좋다. 잠시나마 내 믿음의 쉼표 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말씀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여러 음표 격의 노아 후손과 셈의 후손을 거쳐 우리에게 삶의 격동을 보여주는 진정한 믿음의 조상 아브람(아브라함)과 사래(사라)가 등장하는 말씀으로 들어가 보자. 11:26-32 데라의 후손들 The decendents of Terah 26절.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Terah lived seventy years and begat Abram Nahor and Haran 아브람이 장자가 아니지만 처음 언급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과 메시아 혈통의 조상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이 이름이 바빌론에서는 흔했다고 한다.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1 +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1 아브람(Abram)은 ‘고귀한 아버지’(exalted father)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의미한다. 나중에 창세기 17:5에서 그의 이름이 아브라함(Abraham)으로 바뀌는데 많은 민족의 아버지(father of a great multitude)를 의미한다. 그는 주전 2165년 경 태어났다. 28절. 우르 Ur 지금의 오르파(Orfa)이다. 뜻이 빛(light) 또는 불(fire)이다. 그 지명은 불 숭배 의식(the rites of fire-worship)에서 유래된 듯하다. 당시 우르는 고대 세계의 대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아브람이 정말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주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에 따라 문명이 발달한 도시를 떠난 것이었다. 데라와 그의 가족은 그 지역의 우상숭배에 물들었던 것 같다. +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수 24:2 성경에서 출신은 계속해서 새롭게 이야기되는 현재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신자의 믿음은 예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신앙고백으로 이루어진 열린 체계이자 실제로 삶 속에 일어난 일에 맞닿아 있는 체계가 된다. 30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they came unto Haran 하란은 유프라테스 강 남동쪽으로 우르에서 이틀 여정의 거리에 있다.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편리한 노선이다. 31절. 그 자부 사래 Sarai his daughter-in-law 데라의 손녀 이스가와 마찬가지로(창 11:29) 사래도 고대의 관습에 따라 그녀의 삼촌 아브람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The Euphrates near Halabiye(Syria) ♣ QT 되새김 A 장자가 아닌 아브람이 데라의 아들 가운데 먼저 언급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아브람의 뜻은 무엇이고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아브람이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주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아브람의 삶의 여정은 우리 믿음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24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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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4
  • 큐티주석39 언어의 기원
    Tower of Babel, by Lucas van Valckenborch, 1594, Louvre Museum 언어의 기원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 11:1-9 언제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에 관해서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연구방법으로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 인간의 말이 가지는 순간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 주제에 관한 어떠한 결론을 내릴 만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오래된 주제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인간의 진화 과정의 어느 순간엔가 원시적인 언어 수단 또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수단에서 말을 통한 의사소통 체계가 생겼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다. 현존하는 어떤 인간 집단도 ‘원시’ 언어나 미발달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언어들은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있고 각 언어들의 어휘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모든 인간 언어에는 문법이 있으며 구문론적 구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새로운 낱말 즉 신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며 번역될 수 있고 어휘를 빌어와 화자의 머리 속에 든 개념을 모두 표현할 수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적 인간 즉 지성인이라는 뜻으로 동물학상 현재의 인류를 가리키는 학술어))는 분명히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생득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다른 종도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의 사용은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두드러지고 특징적인 자질이다. 오래된 언어 기원설의 하나로서는 또한 몸짓이론을 손꼽을 수 있다.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기 이전에 얼굴 모양, 손발 놀림, 몸짓 등으로 상호 간에 의사소통을 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아마 우리가 다른 몇몇 고등동물의 생활을 관찰해 봄으로써 추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원시적 의사소통 수단에서 인간은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해부학적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점차로 언어를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몸짓이론의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과 달리 성경은 인간의 언어가 왜 복잡해졌는지를 바벨탑 사건을 통해 말씀하고 있다. 창 11:1-8 한 언어 One language 1절.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the whole earth was of one language. 한 공통 언어의 강한 유대로 통일된 노아 자손은 헤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땅을 다시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흩어지기를 꺼렸다. 경건하고 착할수록 하나님의 뜻을 당연히 잘 따를 것이다. 그러나 수가 많은 공격적인 공동체는 가장 좋은 지역을 차지하기를 좋아한다. 2절. 시날 평지 land of Shinar 시날은 바빌론 지역에 있었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계곡이었다. 그곳이 연합과 세력의 중심지로 선택되어 노아의 자손은 그곳에 머물렀다. 3절. 벽돌 brick 그 지역에는 돌이 없어 벽돌이 유일한 건축 재료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지역의 유적들 가운데 벽돌 가마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4절.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a tower whose top may reach unto heaven 그들은 벽돌을 굽고 말했다. ‘성과 대(tower)를 쌓자.’ 그들의 야망은 성과 탑을 쌓아 그들의 힘을 결속하는 것이었다. 탑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를 의미한다. 그리고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라는 것은 아주 높은 것에 대한 일반적인 비유적 표현이다. +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신 1:28 그들의 욕구는 ‘우리 이름을 내고’(let us make us a name) 명성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역의 핵심이다. 이 말을 통해 그들은 홍수 이후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냈다.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5절. 여호와께서... 강림하셨더라 The Lord came down ‘강림하셨더라’(came down)는 말씀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은 그 계획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재판관이신 그는 그 사건을 자세히 조사하기를 바라고 내려오셨다. +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창 18:20-21 인간이 세운 탑이 아무리 높을지라도 하나님은 지금도 그것을 보시려고 내려오신다. 6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now nothing will be restrained from them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면 그 계획이 실행될 수 있고 실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인지하신 것을 나타내는 분명한 표현이다. 7절. 우리가 내려가서 Let us go down 여기서 ‘우리’라는 복수 어법의 사용은 천사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는 위엄의 복수(plural of majesty) 표현이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6 +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confound their language' ‘그들의 언어’(their language)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입술’(their lip)이 하나였다는 의미이다. 같은 부족끼리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에 차이가 생기는 일이 발생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흩어지지 않으려는 목적을 아주 쉽게 막으셨다. 그들의 연합은 깨져 흩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언어들의 참된 기원을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언어들을 혼잡하게 하는 한 가지 놀라운 일로 인간은 흩어지게 되었다. 8절.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So the LORD scattered them abroad from thence 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 인간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것을 하나님은 심판의 결과로 인간이 하게 하신다. 그래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다. 그리고 이 언어 혼잡의 결과로 그들은 흩어지게 되었다. 9절.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Therefore is the name of it called Babel 바벨(Babel)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혼잡하게 하다(confuse)'는 뜻의 발랄(balal)과 연관이 있다. 바벨은 혼잡(confusion)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혼잡이나 어지러움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시다. +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전 14:33 바벨에서 시작된 언어의 혼잡은 오순절에 뒤집어졌다.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행 2:1, 4, 7-8 연합은 인간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 보내주셔야 되는 것이다(Unity is not worked up by man, but it is sent down by God).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1-3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우리가 다른 사람과 복음을 나눌 때 죄를 벗어버리고 연합하게 하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게 된다.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0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세상을 화평케 하는 사람(peacemaker)이다. Endre Rozsda - La tour de Babel (1958) ♣ QT 되새김 A 세상 언어의 참된 기원은 무엇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7절의 ‘우리’라는 복수 어법의 사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바벨의 의미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연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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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0
  • 큐티주석38 셈 자손
    Shem, Ham and Japheth 셈 자손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동생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웨스와 예라와 27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31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창 10:1-32 하나님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인간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셨다. 그는 그의 축복의 특별한 통로로 셈을 구별하셨다. 그리고 셈을 통해 유대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태어났다. +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 11:10, 26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을(창 3:) 형제와 형제를(창 4:) 가족과 가족을(창 9:) 갈라놓았고 이제 민족과 민족을(창 10:) 갈라놓는다. Kingdoms of the Levant Map 830 창 10:21-32. 셈 자손 The descendants of Shem 21절. 셈 Unto Shem 성경 기록자 모세는 셈의 독특한 특성을 히브리인의 조상 ‘에벨의 아버지’(the father of Eber)로 소개한다. 23절. 아람 Aram 아람(Aram)은 고대 시리아의 히브리어 이름이다. 아람 땅의 일반적인 구획은 아르메니아(Armenia)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시리아(Syria) 등의 지방들로 나뉘어 셈의 자손들에게 할당이 되었다. 24절. 아르박삿 Arphaxad 그의 후손의 정착지는 티그리스강 상류 광활한 시날(Shinar) 계곡에 있었다. 그곳은 메소포타미아 남쪽 끝이었다. 에덴 지방과 티그리스강 동쪽 지역을 포함하는 곳이었다. 25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for in his days was the earth divided 홍수 후(창 11:10-16) 노아 자손은 각기 마음대로 자리를 잡아 정착하고 분할되지 않은 땅의 소산물을 향유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경건하고 선지자적인 성격의 에벨을 통해 땅이 나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에벨의 아들 이름 벨렉(Peleg)은 땅을 나누는 사건을 기념해 지었던 같다. +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신 32:8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행 17:26 32절.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by these were the nations divided in the earth after the flood 이 분할은 아주 질서 있게 행해졌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성경 기록자는 노아의 아들들이 종족을 따라 분류되었고 모든 종족은 각기 가족 별로 분류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사건은 창세기 11:1-9에서의 ‘바벨탑 사건’과 관련이 있다. ♣ QT 되새김 A 성경 기록자 모세는 셈의 특성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아람 이름의 뜻은 노아 자손이 어떻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셈의 아들들의 땅 분할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노아 자손들의 땅 분할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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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9
  • 큐티주석37 함 자손
    Otto Frederick Warmbier 함 자손 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 19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이었더라 창 10:6-20 Museum of the Bible 워싱턴에 있는 성경 박물관(Bible Museum) 지하에는 최근까지 단 한 권의 성경을 위한 특별 전시장이 있었다. 고대 양피지 성경부터 전 세계의 진귀한 성경이 모두 전시돼 있는 곳에서 이 성경은 왜 이렇듯 특별한 취급을 받았을까. 이 성경은 1808년 런던에서 간행된 것으로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겉보기엔 일반 성경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성경책은 창세기를 마친 뒤 바로 출애굽기 19장으로 넘어간다. 출애굽기 1-18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압제를 피해 이집트를 탈출하는 극적인 장면이 나온 부분이다. 이 책은 이른바 노예 성경(Slave Bible)이라고 한다.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할까 봐 성경을 가르치면서도 구약성경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빼고 만든 것이다. 백인 지배층은 성경을 통해 사랑이 아닌 굴종을 가르치려 했다. 노예 성경엔 구약의 약 90% 신약의 50%가 삭제되거나 편집됐다. 예수님 가르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도 삭제됐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3:28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와 같은 구절도 삭제됐고 요한계시록 등에서 묘사한 구원의 메시지도 거의 삭제됐다. 반면 베드로전서 2:18의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는 문구나 누가복음 12:47의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이라는 구절 등은 들어갔다. 성경이 아무리 사랑을 가르친다 해도 권력자가 수정하면 순식간에 압제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 성경은 지금은 성경 박물관 2층 아메리카 성경 코너에 전시되고 있다. 이 같은 진리의 편집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기이한 인권에 대한 이중 잣대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북한 인권침해를 비판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2008년 이후 11년 만이다. 직접 북핵 협상을 하는 미국도 61개 공동제안국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는 유엔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빠진 뒤 ‘북한 인권 증진의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라면서도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마 노예 성경을 만들던 성직자들도 ‘노예 선교에 대한 기본 입장엔 변함이 없다’라면서도 ‘노예제도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 해 주요 부분을 수정했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성직자와 통치자들을 단호하게 심판했고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그렇듯 인권침해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의 북한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북한은 지난 2015년 12월 평양에 여행 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억류했다. 북한은 ‘오토 웜비어는 오하이오주 와이오밍의 우정연합감리교회의 지시를 받아 1만 달러를 받고 정치 선전 포스터를 떼려 했다’라고 억류 이유를 밝혔다. 문제는 오토가 유태인 혈통으로 유대교 신자란 것이다. 당연히 개신교 교회인 우정연합감리교회에 갈 일도 지시받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웜비어 가족은 북한의 엉터리 주장에도 대외적으로 유대교 신자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언론 등에 따르면 미국 협상팀도 웜비어 가족의 선택에 따라 북한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 이를 협상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자식이 억류된 상황에서도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고 극도의 냉정함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오토가 2017년 6월 17개월 억류 끝에 혼수상태로 풀려난 뒤 일주일 만에 숨지자 웜비어 가족은 비수를 꺼냈다. 이들은 ‘오토가 집으로 오는 여행을 완전히 끝냈다’라는 담담한 성명을 낸 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워싱턴의 한 유력 컨설팅 회사와 계약했다. 이후 웜비어 가족은 의회에서 북한을 옭죄기 위한 본격 로비에 들어갔고 법원에서 아들을 고문한 북한에 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집요한 노력으로 이른바 ‘오토 웜비어 법안’이라는 대북 제재를 확대하고 의무화하는 방안이 상하원이 합의한 2020년 국방수권법에 반영됐다. 이 법안은 북한과 기준치 이상으로 석탄, 광물, 섬유, 원유, 석유 제품을 수출입할 경우 의무적으로 제재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 대북 제재 대상에 오른 개인과 거래하는 해외 금융기관에 대해선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계좌 개설을 제한하도록 했다. 수출입 업체뿐 아니라 금융기관들이 몸을 사리면서 북한으로선 제재 회피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웜비어 가족은 또 지난해 말 미국 법원에서 북한이 자신들에게 약 5억 달러(약 5800억 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물론 미국의 판결에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웜비어 가족은 이 판결을 근거로 전 세계에 숨어 있는 북한 김정은의 비자금을 추적해 압류할 수 있다. 설사 대북 제재가 완화되더라도 웜비어 가족이 북한의 수익금에 대한 소송을 걸면 북한의 합작 사업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우리는 왜 성경을 공부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류 모두가 서로 존종하고 사랑하며 사는 사회와 나라를 이루기 위함일 것이다. 성경은 인류가 홍수 이후 퍼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창 10:1-32. 노아의 족보 Genealogies of Noah 6절. 함의 아들 sons of Ham 그들은 남쪽으로 이주했다. 그들의 거주지는 함의 아들 이름을 딴 아라비아의 구스(Cush)와 가나안(Canaan)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의 아버지 함이 가나안과 같이 이주해서 개인적으로 정착을 관리하고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하는 상하 이집트(Egypt Upper and Lower)의 미스라임(Mizraim) 지역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이집트의 근원을 함의 땅(the land of Ham)이라고 불렀다. +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 저희가 그 백성 중에 여호와의 표징을 보이고 함 땅에서 기사를 행하였도다 시 105:23, 27 + 그는 함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일을 행하신 자로다 시 106:22 8절. 니므롯 Nimrod 그의 유명세가 그의 모든 가족을 가릴 정도로 언급되고 있다. 그는 일찍이 야수를 사냥하는데 아주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유용한 일들로 그는 대중의 인기를 얻고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최초의 왕국을 세웠다. 그는 성경 역사에서 바빌론(Babylon)과 니느웨(Nineveh) 두 도시를 세웠다. 인간은 통일(unity)과 평판(notoriety)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힘을 통해 이러한 일들을 이루려고 힘쓴다. 성경은 말씀한다. +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O Lucifer, son of the morning)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I will be like the most High) 사 14:12-14 계명성으로 번역된 루시퍼(Lucifer)는 천사가 타락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마귀가 됐다고 한다. 그처럼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진실로 인간의 이름을 크게 하실 수 있다.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수 3:7 10절. 그의 나라는... 시작되었으며 the beginning of his kingdom 물론 이 나라는 그 당시 위대했다고 하지만 그 범위에 있어서는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고 도시들과 작은 성채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함의 자손 니므롯의 나라는 시작되었다. 11절.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Out of that land went forth Asshur 니므롯은 아시리아(Assyria) 지역인 앗수르(Asshur)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티그리스 강 유역에 있는 모술(Mosul) 반대편에 니느웨와 다른 도시들을 근처에 세웠다. 이 앗수르 침략은 셈의 영토를 공격한 것이다. 그 이름이 반역(revoot)을 의미하는 니므롯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배경이다. 그가 이러한 일을 9절에서 말씀하듯 ‘여호와 앞에서’(before the Lord) 행했다. 이것은 그가 행했던 것은 하나님 자신과 관계된 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행하는 것을 확실히 다 아신다. ♣ QT 되새김 A 함의 아들은 어디로 이주했는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가(admit). B 성경에서 이집트의 미스라임 지역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니므롯의 이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당신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consider). D 니므롯이 여호와 앞에서 행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do).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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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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