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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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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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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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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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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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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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상1Kings
    열왕기상1Kings과 열왕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이었다. 열왕기서는 이름 그대로 솔로몬부터 시드기야까지 유대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열왕기서의 사건이 시작될 때 나라는 하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고 난 뒤 두 나라로 나뉘었다. 그 뒤 두 왕국은 강대국에 망해 포로 신세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에 잡혀갔다. 남 유다 백성은 바빌론에 잡혀갔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돌이키지 않았다. 그들에게 남은 건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징계와 훈육뿐이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요 한 장 속에 _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가 어렵고 섭섭하다. 이렇듯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마음을 다 하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 나라는 치욕과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죄였다. 솔로몬은 외국의 우상들을 섬겼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고작 한 세대 만에 그 나라가 쇠퇴하고 분열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경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이 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이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도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처럼 영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합의 회개한 모습에 용서의 기회를 주시듯 늘 용서와 축복의 기회를 엿보신다. 2024-03-17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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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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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부활 이후 들어갈 곳 새 하늘 새 땅
    주신 말씀_ 요한계시록 21: 4~6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부활 이후 들어갈 곳 새 하늘 새 땅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심판 이후 부활의 새 몸으로 일어난 거룩한 성도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새 하늘과 새 땅! 그곳은 바로 약속하신 새 예루살렘이다. 그곳에는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가고 없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해와 달과 별도 볼수 없고 바다도 땅도 다 지나가고 없다. 오직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만이 비취는 곳이며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천국의 기쁨만이 있기에 사망이 없고 눈물과 애통함과 아픔은 다시는 있지 아니한 것이다. 그래서 내겐 간절한 부활의 소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땅에서 다가올 육신의 사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내 육신의 사망은 바로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발의 디딤이며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천성에 다가서는 시작 점일뿐이다. 주님이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날이 혹시 오늘일지도 몰라 신랑을 기다리는 새 신부처럼 나는 설레이는 기다림으로 오늘을 소중히 살겠다. 아멘.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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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6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주님 부활의 날에 찬양과 기도
    주신 말씀_ 고린도전서 15: 20~21 로마서 6: 5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주님 부활의 날에 찬양과 기도 온 세상 만물들아 우리 주님께 경배 하라 온 세상 입이 있는 것들아 우리 주님을 찬양하라 하늘과 온 땅에 숨쉬는 것들아 다 우리 주님께 감사하라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 모든 영광 돌릴지어다 내 영혼이 기뻐하고 또 기뻐하네 우리 주님 부활에 연합한 자 되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네 네 무거운 죄 어디 있느냐 네 하찮은 공로 어디 있느냐 오직 거져 주신 우리 주님 은혜로 말미암음이로다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우리 주님을 부활의 첫 열매 삼아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부활을 제게 연합시켜 주심에도 감사드립니다. 창세부터 기획하신 하나님의 꿈이 우리 주님의 ‘부활’로 완성되게 하심에 찬양과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20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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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1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그 순간 성소 휘장이 찢어진 그 순간
    주신 말씀_마태복음 27: 50~51 50. 예수게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 순간 성소 휘장이 찢어진 그 순간 그 순간은! 우리 주님의 영혼이 십자가에서 떠나시던 그 순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그 순간 인류 역사의 새로운 시작점을 알리는 순간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 2000년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의 대단원이 마감되는 순간 하나님의 성전이 대 이동하여 내 육신 안에 들어오시는 순간 찰흙덩이 인생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순간 나같은 무지렁이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여 주신 순간 2000년 제사장 나라 꿈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담기는 순간 주여 사순절 마지막 주를 맞으며 ‘그 순간’을 돌아보며 주님의 감당하기 힘든 사랑과 은혜를 느끼면서 새삼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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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3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한탄하고 근심하시는 하나님 마음
    주신 말씀_ 창세기 6:5~8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한탄하고 근심하시는 하나님 마음 인생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느냐?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던 하나님 마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특별히 복을 주셨던 하나님 마음 아담과 하와를 위해 축복의 에덴동산까지 만들어 주신 하나님 하나님도 착오가 있으셨네! 당신의 형상과 같이 만든 사람이 믿으셨던 사람이 배신할 줄 모르셨네! 혈육있는 모든 자의 행위가 그토록 악하고 부패할 줄 모르셨네! 결국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신 하나님 그 언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린 적이 있는가? 은혜는 받을줄만 알고 돌아서는 인간 천년 모범 다윗, 아브라함, 노아 몇 명 외엔 기억에 없으실게다. 독생자 아들 예수까지 희생시키시며 돌아오길 바라는 하나님 마음 오늘날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 마음은 어떤 마음이실까? 혹시 노아 때보다 더욱 한탄하시고 근심하고 계시지는 않는지... 중보하시는 예수님이 안계셨으면 벌써 끝장 났을게다! 아멘.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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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6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땀이 핏방울 같이 되는 예수님의 기도
    주신 말씀_누가복음 22:44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땀이 핏방울 같이 되는 예수님의 기도 사순절 3주 째, 예수님의 간절하신 기도를 묵상하며 성전으로 나아간다. 누구를 위하여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시며 기도하셨을까! 얼마나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이 핏방울로 변하실까! 하나님과 본체이시면서 이를 마다하고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 힘든 사명을 감당하셨나요. 곧 당신을 부인할 애제자 베드로를 위하여... 곧 당신을 팔기 위해 앞장 서 오는 제자 유다를 위하여... 아니면 나와 같은 무지렁이 쓸모 없는 자를 위하여...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과 사이에 쳐 놓은 죄악의 담을 허무시기 위하여? 아마 주님은 이 모든 것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거다. 하나님과 죄악덩이들의 화평을 위해... 지금 무덤에 누워 잠자는 하나님을 무던히도 배신하던 그의 백성을 위해 ... 또 장차 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실 새 하늘 새 땅을 위해... 그러나 이 시간도 깨우침 없이 소돔과 고모라를 다시 열어가는 인간 군상들! 주님이 흘리신 피같은 땀방울 속에는 ‘나 같은 먼지의 몫’도 있었구나! 아멘.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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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9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주신 말씀_ 시편 97:12 12.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신년 초 나를 의인이라 부르신 하나님 어제 송구영신 예배 말미에서 신년을 축복하기 위해 주시는 ‘말씀 바구니’에서 내게 주신 축복의 말씀은 바로 시편 97:12절이다. ‘의인이여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나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신 하나님! 이보다 큰 축복의 말씀이 어디 있겠는가? 눈곱만큼도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나를 의인이라 인정해주신 하나님! 내가 한 것이라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인데,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오직 은혜로 ‘의인’ 삼아 주신 것이다. 금년에 나는 수지맞는 삶을 살 것 같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수없이 많은 기적을 내 생활 속에 경험하게 하시며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시고 대적의 눈앞에서 내 공의를 드러나게 하셨으며 승리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 나는 오직 그런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였을 뿐인데 의인의 축복으로 신년 초를 시작케 한 것을 보면 나는 금년에도 ‘엄청난 복’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 의인으로서 금년 1년을 살아 보자! 뜻을 정한 바 하나님 중심의 삶을 기록하고 나의 선한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게 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영성의 하루가 365일이 되게 하리라! 그래서 내 인생의 2017년도는 가장 복 받는 한해로 기록될 것을 믿는다. 아멘.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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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1
  • 지선철 성경 에세이_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주신 말씀_창세기 1:1~2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역사의 시작, 그리고 오늘 2017년 1월 1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시간은 오늘을 2017월1월 1일이라 지명하고 있다.(아담의 때로, 부터는 약 6천 년이 흘렀다지만) 2017년은 예수님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세월이 흐른 시간의 합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친히 성육신하시어 그분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대 사건을 정점으로 우리 인간은 한 해, 한 해 역사를 계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2017년 첫날 새벽녘에,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라는 존재를 내어놓고 살펴본다. 내 입장에서 볼 때 나라는 사람은... 한줌의 흙덩이? 혹 벌레? 시간 앞에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 죄악 덩어리! 그러나 2017년 전 이 땅에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 부르시고 양자로 삼아 상속자의 권리를 주셨으며 나아가 사망을 폐하여 주시고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보장하셨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2017년을 사는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한들 하나님께 갚음이 되겠냐마는 나는 조금이나마 매일, 매일 내게 계신 하나님을 기록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노래할 것이라 ‘주여 지혜와 명찰을 허락하시고,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였으니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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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4
  • 더굳뉴스 큐티1 천지의 빛
    The Creation of Adam depicted on the Sistine Chapel ceiling by Michelangelo, 1508-1512 천지의 빛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빛도 그렇다. 17세기 천문학 혁명의 핵심 인물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년 12월 27일 - 1630년 11월 15일)는 한 친구 때문에 고민을 했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우주가 자동적인 방법(mechanical methods)으로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했다. 케플러는 그 친구의 생각을 바꿔주기 위하여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모형을 만들었다. 그 친구가 케플러의 관측소(觀測所)를 방문해 그 아름다운 모형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아주 아름다운데. 누가 만들었지.”그러나 케플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만들긴 누가 만들어. 그냥 그게 저절로 있는 거지.”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만들었는지 말해 줘.”케플러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여보게. 이 작은 장난감이 저절로 있을 수 없다고 자네는 말하지. 이건 이 위대한 우주의 아주 허접스런 모형일 뿐이야. 그런데 내가 알기로 자네는 그 우주가 스스로 존재한다고 믿잖아.” 모세의 첫 번째 책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은 원래 세페르 마아세 베레쉬트(Sefer Maaseh Bereshith) ‘창조의 책’(Book of Creation)이었다. 이것이 70인이 번역했다 해서 70인역 성경이라 불리는 그리스어 구약성경에서 ‘기원’(origin)이라는 뜻의 ‘제네시스’(Genesis)로 번역되었다. 창세기는 시작의 책이다. 창세기는 우주와 시간과 생명과 죄와 구원과 인류와 히브리 민족의 시작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시작한 것들이 성경 이야기에 한결같이 흐르다가 요한계시록에서 완성이 된다. 성경이라는 명칭의 시작은 책들(books)을 뜻하는 그리스어 비블리아(Biblia)에서 유래한다. 영어의 바이블(Bible)은 신성한 책들의 전체 문집에 붙인 5세기에 시작된 명칭이다. 바이블이라는 명칭을 채택한 것은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인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1384년)였고 점차 영어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 66권으로 이루어진 바이블은 많은 다른 저자들이 다른 세 언어로 1,600여 년에 걸쳐 기록을 했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바이블은 오직 한 주제 즉 ‘인간 구원의 주제’를 다루는 단 한 권의 책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와 선택과 그리고 그의 구원을 함께 믿기 때문이다. 넘어지기 쉬운 그래서 넘어지기도 했을 그가 하나님의 부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은혜의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믿음. 내 믿음이 그런 바람을 느낀다면 분명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주변의 보이는 세상을 건성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의 존재 그분의 지혜 그리고 그분의 능력에 대해.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 1:20 하나님은 창조하신다. 모든 것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 +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6-17 +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1 그분은 그의 말씀의 능력으로 역사(役事 work)하신다. +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 33:6 그 동일한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도 역사하실 수 있다.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하나님은 계획에 따라 역사하신다. 먼저 그분은 형성하신다(form). 그 다음에 채우신다(fill). 그분은 땅을 형성하셨고 식물들과 동물들로 채우셨다. 그분은 궁창을 형성하시고 별들과 행성들로 채우셨다. 그분은 바다를 형성하셨고 생물들로 채우셨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에게 복종하면 오늘도 우리의 삶을 형성하실 수 있고 채우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새 창조의 한 부분이다. +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4:6;5:17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8-10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해와 별을 창조하는 야훼 신 주석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태초에 In the beginning 1절은 위대한 천지창조의 선언문이다. 창조 기사의 장엄한 요약이다. 하나님은 시작(the beginning)이시다. 아니 만물의 원인이시다(the Cause of all things). 본장의 나머지는 창조의 세부 사항들을 기술한다. ‘태초에’(In the beginning)는 영원의 심연 속에(in the depths of eternal ages) 숨겨진 아주 멀고 알려지지 않은 태고의 한 시기(a period)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은 세대들은 물질의 창조와 혼돈이 줄어들고 질서가 자리 잡는 사이에 지나갔을 수 있다. +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잠 8:22-23 하나님 God 하나님을 지칭하는 히브리어는 엘로힘(Elohim)이다. 초월자(the Supreme Being)의 "힘 Strong"과 "능력 Mighty"을 지닌 전능(omnipotent power)을 나타낸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은 히브리어 복수 형태다. 그 복수 형태에 근거하면 세분 하나님 삼위일체의 가르침이 성경 서두에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신성의 존재 여부는 논쟁이나 의심의 대상이 아니다. 엘로힘은 성경에서 만물의 원천과 근원이신 신적 존재(the Divine Being)의 일반적인 칭호이다. 엘로힘은 복수 형태인데 히브리어에서 막강한 힘과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종종 사용되는 형식이다. 여기에서 엘로힘은 하나님이 영원(eternity)과 무한(infinity)의 모든 힘을 쥐고 계시고 하나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성경은 창조 사역에 함께 참여하신 신성(the Godhead)의 복수(성부 성자 성령 Father, Son, Spirit) 교리를 명확하게 계시하고 있다. +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잠 8:27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2-3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2 천지 the heaven and the earth 우주(the universe)를 의미한다. 창세기의 이 첫 절은 영감된 성경의 전체 서론 즉 총론(general introduction)이다. 만물이 시작이 있고 어떤 것도 영원부터 존재하거나 우연히 생긴 것은 없고 어떤 열등한 대리자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 없고 온 우주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 생겼다는 위대하고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는 선언문이다.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 17:24 +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6 이 창조의 선언 뒤에 지구에 한정된 창조의 서술이 이어진다. 창조하시니라 created 이 히브리어 단어는 단수 형태이다. 이것은 이 단어의 복수 형태 주어 엘로힘이 복수 형태로 이해되어야 하는 어떤 사상을 가로막게 된다. 히브리어 동사 '창조하다'의 빠라(bara)는 하나님의 활동에만 오로지 사용된다. 만들다(make) 또는 이루다(form) 같이 사람에 대해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무(nothing)에서 유(something)를 창조하는(create)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단어이다. 즉 어떤 선재하는(pre-existing) 물질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nothing)에서 생산하는(produce)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땅 the earth 땅으로 번역한 지구(地球, Earth)는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행성이며, 엷은 대기층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금까지 발견된 지구형 행성 가운데 가장 크다. 지구는 달을 위성으로 둔다. 지구의 중력은 우주의 다른 물체, 특히 태양과 지구의 유일한 자연위성인 달과 상호작용한다.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 작용으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힘에 의해 해면(海面)이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조석(潮汐) 현상이 발생한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는 약 1억 5000만 킬로미터이다. 지구는 완전한 구(球)가 아닌 회전타원체에 가깝다. 태양은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가스가 뭉쳐 이뤄진 거대한 공이라 할 수 있다. 지구만 한 행성이 100만 개도 넘게 들어갈 수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 빛이 지구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8분. 그런데 태양이 보내는 빛에는 열도 함께 있다. 촛불에 손을 가까이 대면 촛불의 열을 받아 손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햇빛이 아침에 우리 이불 위를 비출 땐 태양의 열도 이불 위에 같이 와서 따뜻해지는 것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without form, and void 킹제임스 성경에서 ‘형태가 없다’(without form)로 번역한 혼돈(chaos)은 은하계(universe) 또는 질서와 조화의 구현으로서의 우주(cosmos) 창조 이전의 진공 상태(void state)를 말한다. 그리스어 카오스(chaos)는 ‘광대한 진공’(vast void), ‘공백’(chasm), ‘끝없이 깊은 구렁’(abyss 深淵) 등을 의미한다. 그것은 공기의 팽창 즉 공간(space)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혼돈은 창세기 1:2의 ‘깊음’(abyss 深淵)이라는 용어와 연관이 있다. 그 용어는 창조 이전의 비존재(a state of non-being)의 상태나 형체가 없는 상태(a formless state)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C. Westermann, Genesis, Kapitel 1-11, Neukirchen-Vluyn, 1974, 3rd ed. 1983.).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은 수면(the face of the waters)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의 ‘수면’은 ‘물속의 혼돈’(watery chaos)과 같은 우주의 초기 상태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Guthrie, W.K.C.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Volume 1, The Earlier Presocratics and the Pythagorea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59, 60, 83). 그리스어 구약성경 70인역 성경(The Septuagint)은 창조의 본문에서 ‘혼돈’(chaos)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미가서 1:6(‘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과 스가랴 14:4(‘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에서 ‘갈라진 틈’(cleft), ‘골짜기’(gorge), ‘깊은 구렁’(chasm)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4세기에 번역된 라틴어역 불가타 성서(The Vulgate)는 누가복음 16:26(‘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에서 혼돈을 하늘과 지옥 사이의 ‘큰 구렁’(great gulf)으로 번역한다. 태초의 지구는 형태(form)가 없이 혼돈(confusion)했고 텅 비어(void) 공허(emptiness)했다. 이사야 34:11에 ‘당아(cormorant 물새 종류)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이라고 표현한 것 같은 상태였을 것이다. 어떤 설명되지 않는 시기에 진동하고 쪼개지고 있던 이 지구는 혼돈의 상태에서부터 현재 구조의 세상이 이루어지기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 어둡고 물속에 잠긴 황무지(watery waste)였을 것이다. 흑암 darkness 흑암이 언제나 악의 상징인 것만은 아니다. +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나이다 시 104:19-20 인간의 시각은 아주 밝은 빛이나 아주 어두운 흑암의 상태에서는 색을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거의 무색이거나 흑색으로 보이게 된다. 본문에서 빛의 정반대인 흑암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를 언급하는 것이다. 깊음 the deep 깊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홈(tehom)은 깊은 연못 심연(深淵 abyss)을 의미한다. 그 깊음은 태초의 우주 발생(primitive cosmogony)이 아니라 지구를 덮은 물을 언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 the Spirit of God 유대인 주석은 본문의 ‘하나님의 신’을 ‘신성한 존재의 신비롭고 보이지 않는 저항할 수 없는 임재’(mysterious, unseen, and irresistible presence of the Divine Being)로 해석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신’은 성령(the Holy Spirit)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신 분명한 언급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은 성자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을 위하여 만물을 실제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성삼위 모두 창조에 참여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나님에 대한 위엄의 복수 대명사(us, our)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나타내기 위해 창세기 1:26(‘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단수 동사를 사용한다. 운행하시니라 moved 이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는 알을 품을 때 닭이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신(the Spirit 성령)이 수면(the face of the waters)을 계속 덮고(brooding over) 계셨다는 것이다. 신(the Spirit)의 직접적인 행위는 생명이 없고, 조화되지 않는 요소들이 작용하게 함으로써 새 창조의 환경에 적합한 상태에 맞도록 결합시키고 정돈하고 성숙하게 했다. 이 새 창조의 기사(account 記事)는 창세기 1:2의 마지막 부분에서 알맞게 시작하면서 창조 과정의 상세한 사항들이 잇따라 일어나는 변화들을 어떤 구경꾼(onlooker)이 보고 말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서술한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And God said 태초의 우주는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웠다. 그때 하나님의 신은 물에 덮인 우주의 수면을 알을 품은 닭처럼 덮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혼돈하고 어두운 우주가 밝아졌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하셨다’는 뜻의 ‘가라사대’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표현하는 최초의 간결한 관용 표현이다. 원래 '말씀하시되'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고 '가로되'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개역성경은 예스러운 ‘가라사대’와 ‘가로되’를 사용한다. 개정성경은 이 말을 모두 ‘이르시되’나 ‘말씀하시되’로 고쳤다.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 +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 33:6 유대 문학 기도서 16페이지에서 서술한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하나는 ‘말씀하시고 세계가 존재하게 하신 분’(He who spake and the world came into existence)이시다. 성경 본문에서 자주 반복되는 ‘하나님이 가라사대’(God said)라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뜻하셨다(willed), 포고하셨다(decreed), 지명하셨다(appointed)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결정하시는 뜻(determining will)은 모든 경우 즉각적인 결과가 따랐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하나님은 계획에 따라 역사하신다. 먼저 그분은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창조가 이루어진다. ‘빛이 있으라.’ 그리고 ‘빛이 있었다.’ 그리고 어둠에 쌓여 있던 지구가 환해졌다. 빛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빛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태양이나 불빛은 그 자체가 빛의 원천(광원)이다. 광원이 아닌 다른 사물에서 산란되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광원에서 나온 빛이 그 사물에서 산란되어 우리 눈에 닿기 때문이다. 광원은 자연광과 인조광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광은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광원에서 나온다. 이러한 광원에는 태양과 별이 있다. 인조광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광원에서 나온다. 보통 빛은 호수 위를 전파해가는 수면파와 같은 파동이라고 설명한다. 또 빛은 광자라고 하는 입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빛을 파동으로 설명하든 입자로 설명하든 두 경우 모든 빛이 에너지를 가진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빛의 속력을 측정하려 한 사람 중에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다. 갈릴레이는 약 1km 떨어진 곳에서 서로 등불을 가지고 상대방의 등불이 보이면 바로 등불을 열게 하는 방법으로 그 시간차를 통해 광속을 측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실험에서는 빛이 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이 10만분의 1초 정도로 매우 짧아 속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여러 실험을 통해 정의된 빛의 속력(speed of light) 또는 광속은 진공에서 1초에 대략 30만 킬로미터이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에라스토테네스(Eratosthenes B.C. 274년 ~ B.C. 196년)가 인류 최초로 측정한 지름 4만 킬로미터의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고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 30만 킬로미터 거리를 1초에 도달하는 매우 빠른 속력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북반구에서 해가 가장 높게 올라오는 날인 ‘하지’에 시에네(아스완) 지역 한 우물에 주목했다. 그 우물을 들여다보면 해가 보였다. 태양이 머리 위에 90도 수직으로 떠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날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세워놓은 막대기에는 그림자가 생겼다. 두 도시는 약 800km 가량 떨어져 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이 현상에 주목했다. 이렇다 할 첨단 장비나 도구는 없었지만 그는 두 가지 가정을 통해 지구 둘레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태양의 빛줄기들은 지구로 평행하게 도달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지구는 완벽한 구 형태’라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세운 막대의 그림자와 막대가 이루는 각의 크기를 측정했다. 막대와 그림자 끝이 이루는 각의 크기는 7.2도였다. 이는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가 지구 중심으로부터 이루는 각의 크기도 7.2도라는 말이다. 360도의 1/50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에네까지의 거리가 약 800km일 때 지구의 둘레는 50배인 약 40,000km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는 현재 미항공우주국이 명시한 지구 둘레 40,030km와 비교해도 오차가 크지 않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비밀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그 두뇌로 발견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이 데려오시는 짐승들의 이름을 맞춘 것처럼.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창 2:19-20 장엄한 사실을 표현하는 최고의 단순한 구절. 태양에서 나온 것과 다른 이 빛이 깊음(the deep)을 덮고 있는 흑암(darkness)을 깨뜨린다. 그런데 창조의 넷째 날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에 생긴 이 빛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케케묵은 물음에 대해 태양계가 거대하고 밀도 높은 분자 수소 구름 물질에서 생겨났다는 성운설(the nebular theory) 등 여러 가설이나 과학적 추론이 있지만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멈추는 데서 멈춘다’라는 성경 해석의 제일 원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벗어나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시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통해 성경은 말씀한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by inspiration of God)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명하시자 바로 나타난 최초의 이 빛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구 밖의 어떤 신비한 빛의 원천에서 왔을 것이다. 4절 좋았더라 that it was good 창조주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표현이다.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 31절 등에서 반복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good)는 미학적인 판단(aesthetic judgment)보다는 창조의 순결한 선함(the moral goodness of Creation)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목적을 표현한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divided the light from darkness 지구가 그 축의 둘레를 날마다 도는 것으로 생기는 낮과 밤의 교체나 연속을 의미하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그렇듯 하나님은 나누신다.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 땅과 물,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 등을 나누셨다. 이 나눔의 원리가 성경의 기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우르를 나누셨고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인을 나누셨고 그의 교회와 세상을 나누셨다. +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요 17:14-16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의 백성이 모든 더러운 것들과 나누어지고 구별되기를 바라신다. +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 6:14;7:1 5절 칭하시니라 God called ‘빛을 낮이라 칭하신’ 하나님은 인간 생활에서 빛의 의의(意義)를 정의(定義)하신다. 성경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 중심이고 그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신 행위는 창조에 대한 그의 주권을 나타내신다. 인간 세상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다. 어떤 인물이나 어떤 사물에 대해 이름을 정하는 것은 주권의 표시이다. 르우벤 자손은 아모리 족속을 정복한 뒤 그 도시들의 이름을 바꿨다. +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느보와 바알므온들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고쳤고 또 십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에 새 이름을 주었고 민 32:38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도 유다 왕을 격파한 뒤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다. +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으로 그 아비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 왕하 23:34 저녁과 아침 the evening and the morning 이 구절은 두 요소 즉 낮과 밤이 분명하게 결정하는 말 그대로 자연적인 하루(a natural day)를 의미한다. 그리고 창세기 저자 모세(Moses)는 하루의 구분을 오늘날 우리가 하듯이 하루를 낮과 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녁(evening)과 아침(morning) 즉 해넘이에서 해돋이까지(from sunset to sunrise)로 생각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창조의 시작을 아침으로 표시하고 창조의 마감을 저녁으로 표시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 날 the first day ‘첫째 날’에서 ‘날’로 번역된 히브리어 욤(yom)은 창조의 날을 서술하는 5절 8절 13절 19절 23절 31절 등에서의 그 단어의 사용은 별문제로 하고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최소한 네 가지 방식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 (1) 창세기 1장 14절 16절 18절 등에서의 야간(night) 밤에 대비되는 12시간의 주간(晝間 daytime)을 나타낸다. (2) 창세기 1장 14절에서 24시간의 태양일(solar day)을 나타낸다. (3) 창세기 1장 5절에서 첫째 날 ‘빛’의 창조로 시작된 빛의 기간(period of light)을 나타낸다. (4) 창세기 2장 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the day that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의 24시간 태양일로 이루어진 창조의 전체 기간 6일을 나타낸다. 따라서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이 세상을 문자적인 6일 엿새에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11 QT 되새김 A 성경 본문에서 자주 반복되는 ‘하나님이 가라사대’(God said)라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뜻하셨다(willed), 포고하셨다(decreed), 지명하셨다(appointed) 등을 의미한다는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하는가(admit). B 혼돈과 흑암이 가득한 지구에 ‘빛이 있으라 Let there be light’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빛이 있었다는 사실을 진리라고 믿는가(believe). C 이 빛이 깊음(the deep)을 덮고 있는 흑암(darkness)을 깨뜨리는데 창조의 넷째 날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에 생긴 이 빛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보라(consider). D 혼돈과 흑암을 깨뜨린 이 말씀의 빛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do). 오늘의 기도 빛으로 세상을 밝히신 하나님이시여 나의 혼돈하고 어두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비춰주소서.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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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2
  • 더굳큐티 7 궁창에 광명이 있어
    궁창에 광명이 있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 1:14-23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교회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믿음의 길. 나의 길은 언제나 믿음의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교회로.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년 5월 5일 ~ 1855년 11월 11일)가 1849년 ‘안티 클리마쿠스’(Anti-Climacus)라는 익명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The Sickness Unto Death)을 저술했다. 이 책은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요 11:4)는 나사로의 부활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부르는 키르케고르는 이 책을 통해 가상의 저자 ‘안티 클리마쿠스’의 물음을 제기한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지 않았다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진술이 진실이 아닐까. 죽음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끝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또 다른 정거장일 따름이다. 이 길에서 죽음이란 그리스도인에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사실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영적인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안티 클리마쿠스에 따르면 두려워해야 할 어떤 것이다.” Anti-Climacus raises the question: would not this statement still be true even if Jesus had not raised Lazarus from the dead? While the human conception of death is the end, the Christian conception of death is merely another stop along the way of the eternal life. In this way, for the Christian, death is nothing to fear. Instead, the inability to die is what is to be feared. The true "Sickness unto Death," which does not describe physical but spiritual death, which stems from not embracing one's self, is something to fear according to Anti-Climacus. 기독교인은 고독할 때 더 두려운 것 즉 천지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과 인생의 생사(生死) 화복(禍福)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독대하는 그 용기의 기회는 혼자 있는 시간에 ‘땅에 비취는’ 빛처럼 온다. 스페인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아란후에스라는 시골 역에 닿는다. 스페인 왕실의 별궁이 자리하면서 형성된 소도시로 아란후에스 궁전은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궁전에 딸린 아란후에스 정원 또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명승지다. 이 궁전과 정원을 찾는 사람들로 시골 마을은 연일 북적인다. 아란후에스 시청 광장의 카페에 앉아 뜨거운 태양이 내뿜는 열기에 달아오른 몸을 식히려 물이라도 한 잔 마신다. 그러고 있자면 매 정시 시청 건물의 대형 시계가 연주하는 음악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협주곡일 이 음악은 궁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란후에스 협주곡'이다. 어떤 이들은 이 음악 덕분에 아란후에스 궁전과 정원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던 사람들은 어느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일어나 그 아름답다는 정원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음악을 작곡한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1901-1999)는 그 정원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그는 아내의 팔에 의지해 정원을 걸었다. 관목들이 우거진 숲속에 작은 수로와 연못들, 이국적인 분수와 고색창연한 석상들이 가득한 정원을 걸으면서 아내는 앞을 보지 못하는 남편에게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풍광 하나하나를 묘사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맹인 작곡가는 당시의 기억이 빛처럼 환하게 되살아나 '아란후에스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썼다고 한다. 1991년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로드리고에게 후작 작위를 수여하였으니 명칭은 '아란후에스 정원 후작'이다. 음악가로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영예였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의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여름날 스페인 정원의 신선한 향취가 나고 그 정경이 빛을 비추듯 밝게 보인다. 그 아름다움 속에는 가장 힘든 제약을 지닌 채로 누구보다도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결국에는 어려서 원했던 모든 것을 이룬 하나님의 은혜와 한 남자의 불굴의 의지도 배어있다. 지난 2019년 2월 21일 이스라엘 최초의 달 탐사선 '베레시트'(Beresheet·히브리어로 창세기)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베레시트는 남아공 태생의 이스라엘 억만장자 기업가 모리스 칸 등의 기부금 1억달러가 투입돼 만들어진 사상 첫 민간 달 탐사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억 달러는 역대 달 탐사선 중 가장 적은 비용이다. 이 탐사선은 무게 585㎏, 폭 2m, 높이 1.5m의 식기세척기 크기로 역대 달 탐사선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 인근 관제센터에서 직접 발사 장면을 지켜봤고 이스라엘 전역에 생방송 됐다. 성공적으로 발사된 달 탐사선은 47일 동안 지구를 수 차례 회전하면서 달의 중력을 이용해 달에 접근했으나 4월 11일 착륙을 시도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실패했다. 외계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간 인류는 그런 만날 수 없는 외계인을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려왔다. SF영화 속 외계인은 곤충이나 문어의 형상에서부터 인간과 유사한 모습 등 다양하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눈이 하나가 아닌 2개라야 거리감을 느낄 수 있고, 3개라면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데 지나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며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외계 행성 속에 생명이 움트고 고등 생명체로까지 진화한다면 인류와 비슷한 모습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석 14절.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대기는 완전히 정화되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들이 ‘궁창에’(in the firmament)에 있는 것처럼 서술되고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것들이 실제로는 까마득히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보이는 것 같다. 16절. ‘두 큰 광명’ ‘two great lights’ 창조의 넷째 날의 결과는 처음으로 지평선에 나타난 달로 인해 해넘이(sunset)의 시작으로 생각된다. 달이 반짝이는 작은 별들에 비해 ‘큰 광명’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달의 엷고 은은한 광휘는 해의 눈부신 광채로 인해 작은 광명으로 밤을 관장하게 된다. 태양의 눈부신 천체(天體)가 아침에 솟아오르고 점차 그 영광의 빛이 자오선(meridian)에 이르게 될 때 ‘더 큰 빛’(the greater light) 즉 큰 광명으로 낮을 지배하게 된다. 이 두 광명이 넷째 날에 창조된 것(created)이 아니라 ‘만들어졌다’(made)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세상을 비추는 발광체들로 봉사하는 중요하고 필요한 직무를 위해 구성되고(constituted) 지명되었고(appointed) 그리고 두 광명의 운행과 영향으로 시간의 진행과 구분을 조절한다는(regulating) 의미의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양(太陽)은 태양계 중심에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다. 본래 한국어로 ‘해’라고 하며, 태양이란 한자어는 음양(陰陽: ‘물과 불’, ‘그늘과 볕’, ‘차가움과 뜨거움’ 등) 가운데 가장 뜨거운 양(陽)이라는 뜻이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 여러 행성과 소행성, 유성, 혜성 등의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지구는 태양을 일정한 궤도로 공전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연중 일정한 궤도를 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궤도를 황도라 한다.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는 것 외에도 스스로 24시간에 1회,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 표면에서 관측자 눈에는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일정 시간 동안 하늘을 서쪽으로 횡단한 뒤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 도착한 햇빛 에너지는 식물의 광합성을 일으켜 거의 모든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며 지구의 날씨 및 기후를 만든다. 인류는 선사 시대 이래로 태양이 지구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과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일부 문화권에서는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다. 태양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지식의 발달 속도는 느렸으며 19세기까지도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물리적 조성 및 에너지 원천에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현대에도 태양에 대해 모든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며 태양의 불규칙한 활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피조물 인간이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은 말씀하신다. +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계 22:20-21 QT 되새김 A 해와 달의 두 광명이 창조의 첫째 날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넷째 날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가(admit). B 그 말씀을 사실로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해와 달과 별들이 구름이 없는 하늘에 처음으로 찬란하게 그 장관(壯觀)을 어떻게 드러내개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consider). D 해와 달의 직무와 역할이 있듯 하나님이 주신 당신의 달란트와 직무를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do). 오늘의 기도 모든 생물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라 말씀하신 하나님 저에게도 복을 주시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해주십시오. 2020-05-13
    •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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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3
  • 더굳큐티 6 각기 종류대로
    Flammarion engraving, Paris 1888 각기 종류대로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창1:9-13 프랑스 작가 까뮈(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29세에 실존의 부조리를 그려낸 소설 '이방인'을 발표한 뒤 심오하고 논쟁적인 소설, 희곡, 에세이들을 잇달아 발표한 덕분에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화려한 작가 생활을 일궜다. 하지만 47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초기엔 삶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곧이어 삶을 긍정하기 위해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러다가 긍정과 부정을 통해 '사랑'을 추구하면서 소설 '최초의 인간'을 쓰던 중 뜻하지 않게 삶을 마감했다. 카뮈의 작업은 "부조리와 반항을 거쳐 사랑이라는 테마에 이르는 삶과 문학의 역정이 미완성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까뮈는 생전에 좋아했던 단어 10개를 밝힌 적이 있다.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바람, 여름, 바다'라고 자신의 '작가 수첩'에 썼다. 그는 본의 아니게 세상에 태어나 세계로부터 사랑과 고통을 배우고 대지의 시련을 거치고 어머니와 마음으로 함께하며 온갖 사람들과 어울려 불의 사막을 가로질러 마침내 어리고 순수한 불꽃의 명예를 지켜냈다. 그러나 그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오히려 희망과 기쁨을 찾다가 여름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처럼 스스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부조리와 불신앙의 바다로 돌아갔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주석 창 1:9-13. 셋째 날 9절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unto one place’ 세계가 육지와 물로 된 천체(terraqueous globe)가 되었다. 이것은 지구 표면에 일어난 화산의 격변 영향이었다. 어떤 부분은 솟아오르거나 다른 부분은 가라앉거나 해서 물이 격렬하게 흐르는 거대한 계곡(溪谷)이나 광활한 분지(盆地)가 형성되었다. 그것을 성경은 사실적으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 104:6-9 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그래서 지구의 큰 부분이 마른 육지(the dry land) ‘뭍’으로 남게 되고 나머지는 대양(ocean), 바다(sea), 호수(lake), 강(river) 등을 이루었다. 그것들이 각기 하천 바닥이나 수로 등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바다로 연결된다. +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욥 38:8 +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 1:7 1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맨땅이 나무들과 채소들과 풀들로 푸른 옷을 입게 되었다. 식물계(the vegetable kingdom)의 세 가지 큰 구분이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빛과 공기와는 다른 방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식물은 성장하도록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땅에서 정지한 채로 자랐다. 식물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느린 과정을 통해 자란다. 식물은 싹이 나고 우거지는 것이 자신의 어떤 노력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비나 이슬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각기 종류대로(after his kind)라는 말은 태초부터 만물은 유유상종(類類相從) 즉 같은 무리끼리 서로 어울려 사귀거나 같이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른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5-20 무섭다. 심리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생존·안전이고, 지위나 명예는 그보다 한참 윗단에 있는 고차원적 욕망이라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내가 아프거나 죽는 것, 주변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 모두 괴로운 일이다. 인간은 이런 공포심에 의해 위험을 피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 요소를 없애는 모든 방법이 정당하지는 않다. 그 옛날 흑사병 환자가 생긴 집이나 마을 사람을 몽땅 불태우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양심과 염치가 없는 건지, 그런 앞뒤 사정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사정이 다급했던 건지 보통 사람 머리로는 헤아릴 길이 없다. 우리는 진정 어떤 나무인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인가. 아니면 악한 열매를 맺는 악한 나무인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열매로 자신을 알아야 될 것이다. 찍혀 불에 던짐을 당하지 않으려면. 미국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놀라운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깊이 읽기 회로’는 지속되지 않는다. 상당한 지적 수준의 독자라고 해도 책에 몰입하는 경험을 잃으면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한다.” ‘조용한 시간’(Quiet Time)에 몰입하는 성경 독서의 경험, ‘당신과 나’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나. 우리는 각기 어떤 종류의 열매를 낼까. QT 되새김 A 태초에 창조된 우주를 향해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라고 명하신 그 능력과 권위를 인정하는가(admit). B 그리고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한 그 사실을 믿는가. 믿음은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하실 수 있는 능력과 반드시 하시려는 의지를 믿는 것이다(believe). C ‘각기 종류대로 열매를 맺으라’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라.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consider). D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do). 오늘의 기도 ‘각기 종류대로 열매를 맺으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시여 오직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열매 맺게 해주소서. 특별히 모든 일에 성령의 마지막 열매 절제(temperance, self-control)를 실천하게 해주소서.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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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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