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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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적 지도자
    13세기 페르시아 시인이며 이슬람 법학자인 루미의 대표작 ‘정신적 마스나비’ 1권에 이런 시가 있다. 배를 타고 있던 학자가 선원을 보며 말했다 “이제껏 공부를 해본 적이 있나요.” 뱃사람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학자가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했구려.” 뱃사람은 슬픔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엄청난 강풍이 불어와 배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뱃사람은 학자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수영할 줄 아십니까?” 학자가 대답했다. “못 하오.” 그러자 뱃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하셨군요. 지금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1207~1273) 가라앉고 있는 배에 탔는데 헤엄칠 줄 모른다. 그동안 읽은 그 많은 책이 무슨 소용이람. 방랑자 스승 샴스를 만난 뒤 교리 학습이나 율법보다는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영혼의 교류에 심취했다는 신비주의자 루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산문시. 어떤 설교보다도 설득력 있는 뱃사람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 교리에 얽매여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유년기에 몽골족의 침략을 우려한 부친에게 이끌려 서남아시아를 편력한 후 룸 셀주크의 도읍 코니아에 정주하였다. 부친이 사망한 후에 신비주의의 수업에 진력하여 한 파(派)를 창설하였다. 37세경부터 시를 짓기 시작하여 불후의 명작 《정신적 마스나비》를 완성하였다. 이 전 6권으로 된 방대한 신비주의 시집은 '페르시아어의 코란'이라고도 평가되며 그의 사상적 성전(聖典)이라 하겠다. 몇 가지의 비유·우화·전설의 형식으로 읊은 시로 외면상은 이야기 시와 같으나 그 배후에는 절대적인 신의 사랑과 그것을 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중세의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루미의 주요 활동 무대가 터키였다는 사실은 그의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다. '루미'는 아랍어·페르시아어 이름의 구성 요소 중 니스바에 해당하며 그 인물의 출신지나 주요 활동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빈치의 레오나르도)'에서의 '다 빈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루미'는 '룸의-'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룸'은 '로마'를 뜻하는 단어로서 당대의 무슬림들은 동로마 제국이 점유하고 있던 아나톨리아를 '로마(인)의 땅'이라는 의미에서 '룸'이라고 불렀다. 결국 루미라는 그의 이름은 좀 더 의역하면 '아나톨리아의-'가 되는 셈이다. '비잔티움은 로마가 아니다'라는 시각은 교황이 내세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정통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서구 가톨릭 세력의 지극히 정치적인 의견이었을 뿐 이러한 교황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았던 제3 자 세력들(슬라브인과 페르시아·이슬람 세력)은 비잔티움을 '고대부터 이어져 온 로마 제국'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루미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룸 술탄국'이라는 국호 역시 '로마의 땅 위에 세워진 술탄국'이라는 의미로서 당대의 무슬림들이 비잔티움 제국을 로마 제국으로 인식했음을 보여 주는 숱한 사례들 중 하나이다. 그의 시는 대체로 섬세한 서정시의 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인간과 사랑과 신의 합일이라는 종교적 사상을 노래했다. 이후 루미는 대표작인 6권 분량의 신비주의 시집 《정신적 마스나비》를 완성하였는데 이 작품은 아직도 불멸의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향후 중세 이슬람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종교를 초월한 신의 근본적 사랑 자체를 강조했던 그의 가르침 덕분에 수피즘 사상가와 이슬람교도 뿐 아니라 기독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유대교도 등으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은 나에게 득(得)이 된다. 상대를 부정확하게 아는 나라는 지형(地形)을 모르고 뛰어내리는 낙하산병(落下傘兵)과 같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국가의 성숙과 직결돼 있다. ‘기억의 감옥’에 갇히면 ‘기억의 포로(捕虜)’가 된다. 국력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협력하며 경쟁하는 한국과 일본은 징용공 문제로 다시 시험대에 섰다. 누가 성숙한 역사의식에 먼저 도달하느냐의 경쟁이다. 대한민국이 이번만은 일본을 반드시 누르기를 기도한다. 총회는 소강석과 배광식의 무질서를 넘어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을 이어 하나님의 은혜로 김종혁 목사와 장봉생 목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치에서 무질서만큼 두려운 게 없다. 무질서가 휩쓸고 간 땅에 희망의 싹은 돋지 않는다. 대부분 괴물(怪物)이 태어난다. 무질서는 약한 사람을 더 힘들게 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다. 무질서가 낳은 괴물들은 무질서에 지치고 시달린 약하고 힘든 사람들의 절망을 양식(糧食) 삼아 몸을 부풀린다. 히틀러·마오쩌둥·스탈린이 그런 경로를 밟았다. 그들은 전쟁 중에 또는 전쟁 후 적군(敵軍) 숫자보다 많은 자기 국민을 살해했다. 배광식 같은 작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질서와 혼돈(混沌)의 자식인 독재자들은 국민의 귀와 입을 막고 ‘새로운 질서’라고 우긴다. 혁명 귀족, 노동 귀족들은 약한 사람, 어려운 사람 위에 멍석을 깔고 저희들끼리 권력과 이익을 분배하는 독식(獨食) 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혁명의 타락 과정이고 촛불 이후 우리 국민이 목격하고 결혼할 필요성도 못 느낀 김영우 이후 우리 총회와 총신이 체험한 진실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1-3 2023-03-13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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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12
  • 종교개혁 운동 교육 선진화
    꽃을 기다린다. 저 멀리서 들리는 꽃 소식 말고, 마른 가지를 거짓말처럼 뒤덮어서 어느 날 문득 마음을 콩콩 두드리며 눈부신 아침을 만들어 줄 기쁜 소식 꽃을 기다린다. 곧 지고 말 잠깐의 찬란한 시간을 기다린다. 초록보다 오래지 않아서 더 애틋할 설렘을 기다린다.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시절을 그토록 빛나게 할 수 있을까.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믿음의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소망의 언덕 위에 섰다. 믿음은 죽어서 믿음 속으로 가고 소망도 죽어 소망 속으로 간다. 그렇다, 죽어 사랑은 사랑의 부활 속으로 가고 우리도 죽어서 우리 고향 하늘 속으로 가야만 한다. 종교개혁 시발은 1517년 10월 31일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정치와 서방교회의 면죄부 판매, 연옥에 대한 교황권 주장, 그리고 공로 사상을 비판한 내용의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하는 사건이다. 이미 교회 개혁은 중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영향을 받았다. 인문주의자들의 방법을 통하여 성경을 원문으로 해석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의 기록, 성경의 권위를 16세기 서방교회의 모든 제도인 교황과 교회 직제, 교회전통보다 더 높은 권위에 두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효과는 성경을 직접 읽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을 중시한 덕분에 문해력이 향상돼 두꺼운 인적 자본이 구축됐다는 얘기가 있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운 개신교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어 부를 쌓았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종교개혁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개혁이 불러온 교육 선진화 덕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18세기 서구 유럽의 산업화를 이끈 건 어쩌면 편지였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1694∼1778)는 1755년부터 21년 동안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에 사는 지식인들과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최근 사회과학자들은 혁신을 보상하고 장려하는 문화가 서신 교환을 통해 싹텄다고 분석한다. 의회제의 정착, 교통망 발전, 증기기관의 발명 등 이 같은 혁신들이 비슷한 시기 한꺼번에 서구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천재적인 발상을 나누는 편지의 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를 서신으로 전해 교회가 서게 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신에서 복음을 굳게 붙잡고 사역에 충실 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굳게 서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했다. 디모데는 우유부단했고 무기력했으며 크게 낙심한 상태였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저버리고 그를 외면했다. 따라서 바울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잘못과 죄의 결과를 언급한 뒤 디모데에게 굳세게 견디라고 권고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2-17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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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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