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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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낸 우리
무엇을 개혁하고 갱신하며 살아야
 
우리는 종교개혁자들 5가지 솔라
형식적인 외침으로만 답습
 
종교개혁자들 신앙 본받으려면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기억해야
 
비린 순교의 피처럼 노을이 오는데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또 물을 먹고 어둠을 밟으며 성경이나 넘기다가 화들짝 놀라니 해가 떴다. 식어가는 어깨 너머 창밖을 펼치는데 어느덧 내 주님 사랑 이리 되었구나. 시간은 가고 인간은 늙고 기억은 흐려진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던 주님 사랑의 기쁨도 슬픔도 머릿속을 다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여백에 숨었다가 불쑥 나타나 느슨해진 마음을 찔러 멈추게 한다. 그리스도와 순교자를 생각하면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겨우 먹으며 기진한 채로 피 흘리며 기도해야 하는 게 믿음 아니던가...
 
2018년 5월 24일 10:30 총회회관 5층 회의실에서 우리의 순교 역사를 기리는 총회역사위원회(위원장 김정훈 목사)의 제2차 연구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함성익 목사(총회역사위원회 부위장 총회역사관 관장)의 축도로 1부 예배를 마친 뒤 이어졌다. 이 세미나에서 두 강연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하나는 김효시 교수(광신대 교수)의 ‘순교자 김방호 목사의 생애와 순교’에 대한 조명이었다.
 
김방호 목사는 6.25 한국전쟁 중 염산교회에 부임해 목회하다 순교했다. 그가 태어난 1895년 19세기 말은 국내외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그는 일제에 항거해 젊은 시절을 보내다 복음을 접하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다. 그는 1927년 42세의 나이로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1933년  48세 때 평양신학교 제26회로 졸업 후 전남노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그는 1950년 3월 10일 염산교회(현 야월교회 1908년 영광군 염산리에 설립됨)에 부임했다.
 
1947년 10월 부임해 사역했던 원창권 목사는 염산면 지역을 장악한 공산 좌익 세력의 협박으로 1949년 2월 사임한 후 아무도 이곳에 지원하지 않아 1여 년을 성도들이 목회자 없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교회였다. 그러다 1950년 10월 27일 김방호 목사 가족이 은신하고 있던 장병태 성도의 집에서 공산군에 의해 그의 가족 8명과 장병태 성도가 장작으로 맞아 순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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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시 교수는 그들의 순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들 순교자들은 죽음으로 그들이 어떠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는 가를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기독교의 믿음이 무엇이며 소망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응답해야만 할 것이다. 숭고한 죽음 앞에서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며 순교자의 길을 가고 있는가. 자신에게 스스로 진실하게 물어야만 할 것이다. 교회의 살아 있는 역사는 오늘도 우리의 순교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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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종철 목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의 ‘종교개혁 5가지 솔라의 관점에서 본 순교자 손양원 목사의 신앙과 신학연구’였다. 그는 말했다.
 
“손양원 목사는 그의 영적 스승이었던 주기철 목사와 함께 목회자로서 설교자로서 신앙의 모범자로서 한국교회의 지도자로서 한국교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는 5가지 솔라 사상(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영광)이 무엇이었는가를 삶속에서 보여 주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낸 우리는 무엇을 개혁하고 갱신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혹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5가지 솔라를 형식적인 외침으로만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 우리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본받고자 한다면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이 시대의 전정한 종교개혁은 우리 자신들이 ‘제2의 손양원’ 혹은 ‘손양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간절한 바램을 간직하면서 손양원의 기도를 소개하면서 끝을 맺고자 한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 주의 영광... 외에 무슨 영화를 위하는 자가 되지 말고 진장한 내 주만의 영화만을 위하여 내 것을 희생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라는 인간 자체는... 대한의 기독교를 위하여 오직 신영(神榮)만을 위하여 나 자체는 녹아지고 썩어지고 낮아지고 죽어지는 희생 자체가 되게 하소서.”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몸부림쳤던 한국의 종교개혁자”라고 소개했다. “손 목사가 구금된 가운데서도 강력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한 증인된 모습은, 그에게 있어 성경이 변치 않는 절대적 진리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는 ‘솔라 사상’과 종교개혁 신앙을 보여줬다. 진정 우리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본받고자 한다면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세미나에 앞서 열린 개회예배는 정상목 목사 사회, 오광춘 장로 기도, 장차남 목사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보자’ 제목의 설교, 부총회장 최수용 장로 격려사, 진용훈 목사 축사, 함성익 목사 축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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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역사위원회 순교자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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