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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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가위 눌려 진저리를 치며 늙은 감독은 잠을 깼다. 어섯눈을 뜨고 사위를 둘러보니 어둠이 질펀했다. 난데없이 밤까마귀가 짙은 정적을 찢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직도 그의 망막에는 자신의 몸이 불타고 있는게 아른거렸다. 분명 꿈이었을텐데 머리를 흔들어도 그 모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금의 터어키의 한 도시인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일대 검거 선풍이 일어났다. 때는 주후 150년경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까닭 없는 소문이 서머나 시민들을 들끓게 했다.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여러 신들을 인정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날의 공산주의자 나부랭이 취급을 당했다. 무리를 이룬 군중들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 이름을 들먹였다.

“폴리캅을 잡아라”

서머나의 늙은 감독 폴리캅은 거리낌 없이 폭도들의 뜻에 따르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한사코 말렸다. 그래서 그는 시골에 있는 한적한 농장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어려움을 겪는 교인들에 대한 소식과 밤마다 악몽으로 그는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 늙은 감독의 은신처를 치안 당국에 고발한 밀고자가 있었다. 밀고자도 교인이었다. 폴리캅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체포됐다. 수배범의 체포를 위해 현장까지 말을 달려온 책임자의 누이도 그리스도인이었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 말을 타고 올 때 책임자는 폴리캅에게 은근히 말을 건넸다.

“시저가 주라고 말하고 그의 제단에 분향하고 당신의 생명을 구하면 무에 큰일이라도 날게 있습니까?”

폴리캅은 온갖 회유를 거절했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에게 던져지기 위하여 원형경기장으로 끌려왔다. 총독은 폴리캅에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세 차례나 주었다.

폴리캅은 먼저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는 말을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늙은 감독은 초췌한 얼굴을 들어 관중석에 옹송거리고 있는 이교도들을 향해 한껏 외쳤다.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 관중들은 동요 없이 킬킬대고 있었다.

총독은 양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그리스도를 저주하시오.” 폴리캅은 총독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팔십팔 년간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 해를 끼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구원해 주신 왕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총독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저의 이름으로 서약하시오.” 폴리캅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시다면 날을 잡아서 들어보도록 하십시요.”

“당신을 야수들에게 던질테요.”
“그렇게 하시죠.”
“야수들을 우습게 아신다면 당신을 불태우겠소이다.”
“당신은 한 시간 정도 타는 불로 나를 놀라게 하십니다만 당신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을 잊으셨습니다.”

총독이 민중을 향해 선언했다.

“폴리캅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백했다”

성난 군중들은 길길이 뛰며 외쳤다.

“우리들의 신들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그리스도인의 애비를 죽여라!”

폴리캅은 말뚝에 묶여 불길에 휩싸였다. 늙은 감독이 기도하는 동안 불길은 드세게 치솟았고 하늘은 더욱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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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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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4_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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