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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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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2 - 쳇바퀴 세상
Sylvester I and Constantine 쳇바퀴 세상 신문을 펼쳐 든다. 날마다 그렇듯 오늘도 사건으로 지면은 그득하다. 10대 소녀가 괴성을 지르다 밟히고 밟혀 눈이 개개풀어진 사건,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 이주일 귀국, 다리 저는 국회의원이 목욕하고 나오다 칼 맞은 일, 이북에서 올까 싶은 목사들 이야기, 이스라엘 레바논 폭격으로 악명 높은 헤즈볼라의 책임자 무사위가 콩가루 된 사건. 주후 325년에 신문이 있었다면 콘스탄틴 황제가 주최한 니케아 총회를 대서특필했으리라. 한국전쟁 참전을 결의한 유엔총회에 비교가 안 되게 신문지면을 꽉 채웠을 것이다. 이런 소식이 공해로 하늘에 구멍 뚫리는 기사나 국회의원 선거 시사 나부랭이보다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제와 같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됐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은 기지개를 펴며 침소에서 일어났다. 햇살은 밝았다. 만찬 석상에서 박해 때 눈이 뽑혀 애꾸가 된 감독의 눈 자국에 입맞춤했던 정경이 떠올랐다. 만찬장에 감동의 박수가 넘쳤다. 황제는 빙긋 웃음을 흘렸다. 니케아 총회가 파한 뒤 총대들이 콘스탄틴에게 활동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연로한 아리우스를 비롯한 다섯 총대들은 니케아 신조에 서명을 거부했고 유배를 당했다. 이게 난관을 전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토의는 해를 거듭해 한 시대를 넘어 계속됐다. 추방당했던 감독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반대로 아다나시우스가 유배당했다. 인생은 죽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임종 무렵에 세례를 받은 콘스탄틴 황제가 숨을 거뒀다. 세 아들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의 독재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일어났던 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미 오래 전에 본을 보이고 있었다. 황제의 아들들은 황제 자리를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렸을 때 그리도 친했던 형제들이었는데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철천지원수였다. 역사를 보노라면 지금의 사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에 곁들여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의 팽팽한 신념들이 이방원의 넋두리마냥 칡넝쿨처럼 얼키고 설켜 맴돌았다. 승리한 쪽이 반대파의 감독들을 유배시켰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끼리의 싸움을 종식시키고자 콘스탄틴(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 파송했던 연로한 메신저도 유배를 당했다. 유배당한 사람은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항의를 전달했다. “나는 당신 할아버지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콘스탄틴 황제의 아버지는 디오클레티안 치하 때 부황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신이 날 박해하려고 한다면 진리를 부인하기보다는 박해를 달게 받을 것이오. 하지만 이건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제국을 주고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말이오. 우리가 정권을 탈취한다면 그건 우리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게 될게요. 그러나 당신이 교회에 간섭하신다면 당신은 보통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은 니케아파의 지도자가 아리우스파 황제에 대항해 말했다. 드디어 니케아파가 완전히 승리하는 날이 왔다. 더 이상 그런 소모성의 싸움들을 방지하기를 바라는 황제들이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발했다.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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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육 계명 살인
Cain slaying Abel by Peter Paul Rubens Lesson XVIII제육 계명 살인Sixth Commandment Murder 2018년 3월 2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변호사 인생 중 가장 한 맺힌 사건으로 알려진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지난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 주변 갈대숲에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후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두개골이 함몰된 채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범인을 단정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를 알아본 결과 인근 지역에 살고 있던 삼십대 여성 김 모 씨였습니다. 피해자와 함께 있던 그녀의 애인은 2명의 범인과 격투 끝에 도망을 쳤고 늦은 밤이어서 가해자의 인상착의 등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미제 사건으로 남을 줄 알았던 엄궁동 살인사건의 범인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 검거됐습니다. 1991년 11월 경찰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했던 2인조 강도사건이 발생했는데 범행 수법과 장소가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2인조 강조를 범인으로 체포했고 그들 역시 순순히 범행일체를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지금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던 그들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자백을 했던 것은 경찰의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장동익씨는 이날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보낸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내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지 재심이 열리기만 한다면 동익씨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바로 장동익 씨의 좋지 않은 시력상태였습니다. 장 씨는 시각 장애 1급 장애인으로 근거리의 사물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안 좋은 시력을 지녔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에 강으로 사람을 끌고 가서 돌로 피해자의 머리를 가격하여 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무죄를 주장하는 장 씨는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요. 21년 만에 만난 딸에게 장 씨는 말했습니다. “너는 살인자의 딸이 아니다. 너에게 평생 따라다녔을 살인자의 딸이라는 누명을 꼭 지워주겠다.” 장 씨는 또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내 딸을 만나러 오는데 걸린 시간은 21년하고도 5개월, 그러나 딸은 제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저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도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저 아이의 상처는 내가 누명을 벗는. 거기서 치유될 것입니다.” 장 씨가 진실을 밝히고 27년 만에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졌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은 바뀌지 않았으며 결국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이 변호사로 지냈던 35년 동안 가장 한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가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이후 인간은 살인을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살인은 매우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살인이라는 말 자체가 누구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산상수훈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살인이란 단지 외적인 행동일 뿐이고 십계명도 그런 행동만을 지적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9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HOU SHALT NOT KILL. 39. The purport of this commandment is that since the Lord has bound the whole human race by a kind of unity, the safety of all ought to be considered as entrusted to each. In general, therefore, all violence and injustice, and every kind of harm from which our neighbour's body suffers, is prohibited. Accordingly, we are required faithfully to do what in us lies to defend the life of our neighbour; to promote whatever tends to his tranquillity, to be vigilant in warding off harm, and, when danger comes, to assist in removing it. Remembering that the Divine Lawgiver thus speaks, consider, moreover, that he requires you to apply the same rule in regulating your mind. It were ridiculous, that he, who sees the thoughts of the heart, and has special regard to them, should train the body only to rectitude. This commandment, therefore, prohibits the murder of the heart, and requires a sincere desire to preserve our brother's life. The hand, indeed, commits the murder, but the mind, under the influence of wrath and hatred, conceives it. How can you be angry with your brother, without passionately longing to do him harm? If you must not be angry with him, neither must you hate him, hatred being nothing but inveterate anger. However you may disguise the fact, or endeavour to escape from it by vain pretexts. Where either wrath or hatred is, there is an inclination to do mischief. If you still persist in tergiversation, the mouth of the Spirit has declared, that “whosoever hateth his brother is a murderer,”(1 John 3:15); and the mouth of our Saviour has declared, that “whos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without a cause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and whosoever shall say to his brother, Raca, shall be in danger of the council: but whosoever shall say, Thou fool, shall be in danger of hell fire”(Mt. 5:22).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육 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 20:13 39. 이 계명의 목적은, 주께서 인류 전체에 일종의 통일성이 있도록 한데 묶어 두셨으므로 우리는 각각 전체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웃의 신체를 해할 일은 폭행, 상해 기타 어떤 것이든지 일체 금지하십니다. 따라서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충실히 이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라, 해로운 것이면 막아내라, 이웃이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입법자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는 이 원칙으로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려 하신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속의 생각을 보시며 특히 그것을 중시하시는 분이 육체에만 진정한 의를 가르치신다면, 그것은 우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을 금하며, 형제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으로 살인은 손이 낳는 것이지만, 마음이 분노와 증오심에 감염될 때에 살인을 잉태합니다. 형제에 대해서 노하면서 그를 해하려는 욕망이 치밀어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에 대해 노하지 않는다면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증오심은 지속되는 분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나 증오심이 있는 곳에는 해를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수단으로도 감출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계속 변명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이미 “마음속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요일 3:15)고 선언하셨고, 주 그리스도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선언하셨습니다. 칼빈의 살인에 대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목숨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의 전부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과 태도도 문제를 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내는 것뿐만 아니라 모욕하는 말조차 살인에 버금가는 죄가 됩니다. 라가라 하는 말의 원래 뜻은 비었습니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라가(raca)를 사용해 욕을 하게 되면 속이 빈 놈이나 정신 나간 놈이라는 뜻으로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사람이라 하는 말의 원어 모로스(moros)는 바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말들은 도덕적으로 바보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바보짓을 하거나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을 빗대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들을 듣는 사람은 마음과 명예에 심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제육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주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밝혀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투덜대고 비방하고 무시하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러한 행위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 5:43-45 우리는 이웃 사랑과 기도로 자신을 다스려 제육 계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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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1 - 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마 직전 총회장이셨던 것 같다. 그는 두루마기 차림의 설교 중에 찬송가를 자작하여 부르시는 목사님이셨다. 우리 교단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이시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총회장이셨다. 그가 이제 바로 뒤를 이은 총회장한테 나무망치와 받침을 물려주고 증경 총회장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셨다. 몇 분 총대 목사님이 이 증경 총회장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만남과 대화는 여느 청년들이 모여 노닥거리는 모양과 진배없었다. 햇병아리 신학생의 눈에는 진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는 진솔한 인간의 모습이 우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즘의 세태처럼 권력과 부귀와 장수 나부랭이보다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한 솔로몬 왕이 이렇게 말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그런데 주 후 325년 니케아에서 인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해 아래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벨탑 이래 인간들이 모이면 쓰잘 데 없는 일을 일삼기 일쑤인데 니케아 총회에서는 전혀 달랐다. 인간들이 웅성웅성 모여 인류 최초로 신에 대한 협의와 결정을 내렸다. 니케아 총회는 부활절 날짜를 결정했다. 부활절은 봄이 시작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지난 첫 번째 주일로 결정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짬뽕 된 것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던 부활절이 확정됐다. 이어서 니케아 총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딱 찍었다. 이것은 아다나시우스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되었다. 이로써 아리우스의 해괴한 주장은 빛을 잃고 불가사의한 삼위일체는 번쩍거리게 되었다. 이 내용을 담은 걸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물론 이 신조가 몇 년 뒤에 작성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그게 니케아 총회의 사상을 참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영국 공동기도서에 번역되어있는 걸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 성자이시며 만세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참되신 하나님이신, 나셨지만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성부와 한 속성을 지니셨고,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되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본디오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성부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나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생명의 주와 수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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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오 계명 효도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Lesson XVII제오 계명 효도Fifth Commandment Flial Duty 부모님과 함께하면 돌아보니 가시밭길 그 길이 꽃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걸으면 아픈 돌팍길 그 길이 비단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면 캄캄해 무서웠던 길 그 길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신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입니다. 부모님과 보고 싶은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불멸의 춤은 아직 추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을 때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그때 내가 부모 되어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과 같이 걷지 않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인생 여행의 시작일까요. 2016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는 노년의 삶을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방송이 나간 후 노희경 작가는 블로그에서 이런 소감을 적었습니다. “작가가 되어서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드라마의 결말을 쓰며, 내 잔인함에 내가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포장해도 이 드라마의 결론은 부모님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살기 바빠요, 그리니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정 떼세요, 서운해 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쓰는 내내 끝난 후에도 참 많이 미안했다.” 독일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의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원제 Cherry Blossoms 벚꽃 Hanami 꽃놀이)에 이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늘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후지산과 벚꽃을 그와 함께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남편없이 구경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첫 번째 대사이자 아내 트루디의 말입니다. 남편 루디와 함께 일본 후지산의 벚꽃을 보고 싶었다고 독백하던 아내 트루디는 남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자식들을 볼 겸 여행을 제안하죠. 베를린에 도착한 부부는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가 사는 집으로 갑니다. 반가움도 잠시 아이들은 각자 게임에 빠져있고, 아들 내외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딸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죠. “왜 온 거야. 시간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니 시간을 내 시내 구경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죠. 하지만 부모는 이미 너무 커버린 자식들이 버겁고 자식은 이제 귀찮아진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합니다. 부부는 자식에게 폐 끼치는 것 같은 느낌에 자리를 뜨죠.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화를 냅니다. 그러곤 돌아서서 죄책감에 눈물짓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지... 그들의 행동을 눈치챈 트루디는 자기들만의 여행을 바다로 가자고 루디를 보챕니다. 도착한 발트해 파도소리에 잠을 못이루겠다고 불평하는 루디. 그리고 그런 루디를 타이르며 함께 춤추고 즐기길 원하는 트루디. 그날 밤을 그렇게 지새고 어젯밤 시끄럽게 쳐대던 파도소리가 고요해졌다며 아내 트루디를 깨우던 루디. 그러나 그 파도처럼 루디는 고요하게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또 가족이 모이게 됩니다. 도쿄에 거주하던 막내아들까지요. 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족들을 아껴봐 주던 아내였기에 루디의 슬픔은 더욱더 큽니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바다를 보며 그는 중얼거립니다. “정말 고요하군....” 장례식에서 자식들은 이제 와 자신이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음에 눈물 흘립니다. 그러면서 한편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느끼죠. 그들은 바쁘고 엄마는 이제 없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쩌지... 아버지 루디는 하루살이의 하루의 삶은 천국 그래서 그들의 하루 비행은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슬픔을 자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있는 것이 아버지임을 불평하고 서로에게 미루며 마치 짐이 하나 생긴 듯 행동을 취합니다.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펴고 마음대로 날 수 있는 하늘입니다. 어머니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접고 포근히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인데도 말입니다. 몸빛이 검고 울음소리가 흉측하여 죽음을 알리는 새로 전 세계에 알려진 까마귀는 자기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 해서 일본에서는 상당히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흔히 볼 수 있는 새이기도 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쇠한 부모를 자식이 까마귀처럼 공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의미가 좀 쇠퇴한 감이 있기는 하더라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의 의미는 물질과 육체적인 섬김은 물론이고 부모의 뜻과 생각을 존중한다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6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HONOU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LONG UPON THE LAND WHICH THE LORD THY GOD GIVETH THEE. 36. Wherefore, we ought to have no doubt that the Lord here lays down this universal rule--viz. that knowing how every individual is set over us by his appointment, we should pay him reverence, gratitude, obedience, and every duty in our power. And it makes no difference whether those on whom the honour is conferred are deserving or not. Be they what they may, the Almighty, by conferring their station upon them, shows that he would have them honoured. The commandment specifies the reverence due to those to whom we owe our being. This Nature herself should in some measure teach us. For they are monsters, and not men, who petulantly and contumeliously violate the paternal authority. Hence, the Lord orders all who rebel against their parents to be put to death, they being, as it where, unworthy of the light in paying no deference to those to whom they are indebted for beholding it. And it is evident, from the various appendices to the Law, that we were correct in stating, that the honour here referred to consists of three parts, reverence, obedience, and gratitude. The first of these the Lord enforces, when he commands that whose curseth his father or his mother shall be put to death. In this way he avenges insult and contempt. The second he enforces, when he denounces the punishment of death on disobedient and rebellious children. To the third belongs our Saviour's declaration, that God requires us to do good to our parents(Mt. 15). And whenever Paul mentions this commandment, he interprets it as enjoining obedience.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36.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여기서 한 일반적 원칙을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즉, 주의 임명으로 어떤 사람이 우리 위에 세워진 것을 알면, 우리는 그에게 경외와 순종과 감사를 드리며, 그밖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웃어른이 이런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그 지위에 있게 된 것이며, 이 일이 우리가 그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낳아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자연 자체도 이 일을 우리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반항이나 고집으로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괴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자기를 낳아 준 분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인생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공경에 경의와 복종과 감사의 세 부분이 있다고 우리가 말한 것은 율법에 첨가된 여러 말씀을 보아도 분명히 올바릅니다. 주께서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처음 부분인 경의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멸시와 박대를 복수하십니다. 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자녀에 대해서 사형을 명령하심으로써(신 21:18-21) 둘째 부분인 순종을 강조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부모를 후대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하신 말씀은 존경의 셋째 부분인 감사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을 언급할 때마다 강제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확신』(Confirmatio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두 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첫째 돌판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둘째 돌판에는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오 계명을 첫째 돌판에 새기셨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는 부모이신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이웃들도 섬겨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적합한 사람은 세상에서도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제오 계명은 부모에 대한 의무를 지시할 때 다른 종류의 부모들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정치적인 부모(세상의 권좌에 있는 사람들) 영적인 부모(교회의 목사들) 그리고 연륜과 경험을 통한 가르침을 받아 부모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스승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오 계명이 특별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육적인 부모입니다. 제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위에 있게 하신 이들을 우리가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권위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배우지 아니하면 나중에 정당한 권위를 부여받은 대상에게도 거역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말씀합니다. 또한 부모들도 자녀들의 마땅한 공경을 받기에 합당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따르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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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0 - 니케아 총회
니케아 총회 고풍스런 대전중앙교회에 모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모습은 엄숙하고 경건했다. 우리 총신 신학생들은 총대들 틈에 뒤섞이니 이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꼴이었다. 그렇게 높게 보이던 신학부 졸업반 전도사님들도 어설퍼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목사님이 손을 쳐들고 “의자앙!”하며 사회 석 앞으로 어기적 나갔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발언을 했다. “에, 우리가 이렇게 성 총회로 모였으니 어찌 입씨름만 한 대서야 하나님 앞에 면목이 서겠습니까? 낮에는 회의를 하고 밤에는 부흥사경회를 열어 은혜를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동의가 들어오고 왁자하니 재청이 울리고 가부를 묻는 소리가 찌렁하니 예배당을 휘감았다. 기름 부음 받는 자들의 “예”하는 소리가 초등학생들 구령처럼 장내를 울렸다. 해가 뉘였거렸다. 기름 부음 받은 분들의 즐거운 저녁밥이 자위가 돌 무렵 총회에 모인 총대들이 결의한 대로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가라앉은 설교자의 음성이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느라 냅다 외치는 소리에 뒤이어 쿵 하며 대전중앙교회 마룻바닥을 울렸다.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나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보니 한 목사님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주무시다가 의자 밖으로 굴러떨어지신 것이었다. 나라도 하나였고 교회도 하나였는데 그리스도인의 행습은 로마 군인들처럼 일정하지가 못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만 해도 그랬다.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처럼 봄에 달이 꽉 찬 날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스럼 예방한답시고 키들거리며 부럼을 까는 정월 대보름을 부활절로 지키는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교도들이 자연을 지배하는 신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것을 경축했던 봄의 첫날을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부활주간의 부활절날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일요일이라고 주장했다. 삼위일체와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콘스탄틴은 주 후 325년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안양만 한 니케아 시에서 회집하는 총회를 소집했다. 이 모임을 니케아공의회라고 한다. 이건 전체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최초의 집회였다. 전 세계에서 감독들이 꾸역꾸역 니케아로 모여들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샤에서 폰투스, 갈라디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프리지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및 멀고 먼 스페인 등지에서 감독들이 모여들었다. 로마에서는 사제들이 왔다. 역사가는 콘스탄틴처럼 어떤 군주가 자기의 구세주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토록 성대한 축제를 마련한 적이 전무후무했노라고 니케아 총회의 모임에 대해 말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거대한 홀에 운집하여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일어섰다. 그는 하늘에서 보낸 메신저 같았다. 그의 옷을 수놓은 금과 보석들이 빛을 받아 찬란하다 못해 하얗게 빛났다. 황제는 총대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줄을 지어 만찬장에 들어설 때 근위병들이 양쪽에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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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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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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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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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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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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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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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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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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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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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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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 예수님과 파도와 배 열왕기하2Kings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사로잡히는 것을 기록한다. 영적 타락은 정치와 사회의 악화로 이끈다.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적지 않은 징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어부의 기도 _작자 미상 주님 내가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주님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버림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대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늘 바라보고 살 때 주님이 던진 그물에 걸리면 버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열왕기서는 개인이나 나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특별히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영적인 신실함과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그들의 반복되는 영적인 실패의 이야기는 다윗의 왕위를 이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024-03-23 신국판 592P @23,000원 /교보.알라딘.예스24.쿠팡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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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열왕기하2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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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훈 초대전 - 함께 가리라
- 작가노트 저는 하나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입니다. 교회는 다녀본 적도 없다가 모태신앙인 아내를 만나 1년 조금 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반주자의 자리도 내려 놓고 저와 함께 예배에 집중하며 그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이해보다 소망과 사랑을 먼저 이해시켜주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모든 제 작업에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한 작업은 분명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알릴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약한 믿음이지만 이 초대전을 통해 작가로써, 신앙인으로써의 터닝포인트가 이루어지길 바래봅니다. 작품노트 따뜻한 눈동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느 녀석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박기훈 작가의 작품에 채각(彩閣) 되어진 동물들의 눈은 항상 우리를 보고 있다. 동물과 도시를 유토피아적인 구도로 만들어 내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창조되어진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조화로움, 소중함을 작품 속에 담고 있다. 태초에 창조 되어진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이 명령에 따라 사람이 만든 방주에 차곡차곡 한 쌍 씩 채워졌던 것처럼 자연과 우리의 공존(共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자연환경의 위기 속 동물들의 모습을 물질문명의 기호인 도시에 등장시키는 내용을 박기훈 작가는 판화와 회화의 요소로 접목시켜 새로운 형식의 회화를 실험하고 있다. 직접 돌 성분을 첨가하여 만들어낸 물감을 사용하여 겹겹이 안료를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층위를 쌓아, 이를 깎아나가는 기법인데 개인적으로 작가로서의 신체적 자취가 남겨지는 작업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박기훈 작가의 작업에서는 전공인 판화를 해왔던 방법적 특징이 묻어 나오는데, 예를 들어 명암을 다루었던 경험을 통해 빛의 느낌을 섬세하게 찾는 데에 몰두한 흔적이나 메조틴트, 소멸판 등 판화의 기법에 착안하여 어둠에서부터 점점 밝은 부분으로 깎아내며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특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판화의 복제성, 찍은 후 남은 판 자체의 촉감적인 회화성은 그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독창적이면서 적합한 형식이 되고 또 그것은 새로운 예술의 소통의 장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2017 전국청년작가 공모전] 김미진 심사위원장 ⌜대상 수상작⌟ 심사평 中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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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훈 초대전 - 함께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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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 시네마힐링
- <투스카니의 태양> 감독 : 오드리 웰스 출연 : 다이안 레인, 산드라 오, 린제이 던컨, 라울 보바 안단테로 부른 삶의 찬가 독특한 매력으로 회자되는 영화들이 있다. <지중해>(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 <푸에르토 에스콘디도>(가브리엘 살바토레) <일 포스티노>(마이클 래드포드) <그랑블루>(뤽 베송) 등. 모두 이탈리아의 찬연한 태양과 몽환적 풍광, 탈현실적 여유와 감미로운 나른함이 스크린 가득 흘러넘치는 작품들이다. 여느 영화에 비해, 위의 작품들이 풍기는 특색은, 의외로 의미심장한 시니피에를 함유하고 있다. 서남부 유럽과 중북부 유럽을 경계로 나누어보면, 양쪽 지역의 풍광이 시나브로 완연히 다른 자태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자가 좀더 도회적인 세련미에 가깝다면, 전자는 전원의 후덕한 자연미를 물씬 풍긴다. 이 경계는 동시에 중북부의 앵글로색슨 계열과 서남부의 라틴 계열이라는 민족적 경계선과 겹쳐진다. 앵글로색슨 계열의 문화가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원칙주의.조직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데 견주어, 라틴 계열의 문화는 훈훈한 감성에서 우러나는 인본주의.가족주의 성향을 짙게 풍긴다. 두 경계는 다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계로 해석된다. 이성을 극한의 가치로 삼고, 인간의 본성과 행동양식을 일제히 이성의 틀에 맞춰 강제해온 것이 모더니즘의 논리였다. 아이들을 학교라는 규율 집단 안으로 몰아넣고 국가 권력 아래 통제.관리하고, 노숙자.걸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강제노동을 시키고, 법과 규율 아래 인간의 개별성마저 복속시켜온 수백 년의 문화가 곧 모더니즘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에 의한 인간소외에 대한 반동의 움직임이다. 이성이 인간의 미개를밝힌 근대의 횃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큰 발전이었으되, 그 독성과 폐해 또한 심각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획일을 버리고 문화 다양성을 지향하며, 강철의 논리 대신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된 감정의 순수성을 존중하고, 물질 문명이 견인해온 도회적 삶의 스피드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느림의 미학’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을 저당잡히는 ‘맹목적 저축’의 논리도 재고의 대상이다. 이 뒤늦은 성찰의 더듬이 앞에 앞서 밝힌 저 영화들이 자리한다.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로 영역을 넓혀본다면, 알폰소 아라우 감독의 <구름 속의 산책>과 <달콤쌉사름한 초콜릿> 등을 빠뜨릴 수 없다. 이 영화들이 은연 중에 나름의 ‘열성팬’을 거느릴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칙칙한 회색, 강파른 현대 문명의 스피드, 쳇바퀴처럼 맴도는 일상의 무력감, 타인을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숨막히는 생존경쟁, 오늘을 저당잡혀서 내일을 사는 ‘눈 먼 현재’. 이 모든 스트레스의 반대편에 <지중해> 풍의 영화들이 존재한다. 관 객의 가슴에 아련한 페이소스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 한 편의 영화가 명함을 디밀었다. 오드리 웰스 감독의 데뷔작 <투스카니의 태양>(원제 : )이다.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마이클 레만)의 각본을 맡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촘촘하게 보여주었던 오드리 감독은,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원작은 동명의 소설 . 베스트셀러 작가 프란시스 메이어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도 실제와 똑같이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이름도 프란시스다. 프란시스(다이안 레인)는 한 순간에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집마저 빼앗긴다. 삶의 의욕도 다 사라지고, 초췌한 몰골의 프란시스에게서 희망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보다 못한 친구 패티(산드라 오)가 프란시스에게 이탈리아 여행 티켓을 선물한다. 망설임 끝에 여행을 떠나는 프란시스. 이 단순한 플롯을 펼쳐가는데, 화면 구성과 캐릭터 설정의 콘트라스트가 여간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프란시스의 삶과 심성을 철저히 망가뜨린 무대, 뉴욕. 저 도회적 번잡함과 화려함, 변호사로 상징되는 계약 관계의 매정함, 내일의 불확실성에 짓눌린 무력감, 오직 인내를 강요하는 모더니즘의 이성주의. 오드리 감독은 그 대척점에 확실하게 방점을 찍는다. 그림엽서 같은 화사한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이 무량하게 펼쳐지고, 계약은 엉망이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두루뭉실한 일상이 시끌벅적하게 전개된다. 내일보다 지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치관. 그 즉흥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숱한 시행착오. 이 왈가닥 난리통 속에 행복의 씨앗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프란시스는 관광버스의 첫 기착지에서 신비의 여인 캐서린에게 사로잡혀서, 그 뒤를 따르다가 ‘브라마솔레’라는 300년 된 허름한 빌라에 마음을 빼앗긴다. 얼떨결에 남은 전재산을 털어서 그 빌라를 구입하는데, 집 수리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공사를 맡겠다고 나서는 업자들이 하나같이 어수룩해보여서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벽을 트는 중에 호박만한 돌덩이들이 우루루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몸을 피하느라 일대 소동을 겪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또 왜 그렇게 여자에게 친절한지, 도무지 혼자 걸어가는 여자의 고독을 용서하지 않는다. 액션영화의 추격전을 방불케하는 달음박질 끝에 남자 떼를 겨우 따돌린 프란시스, 이번에는 따라붙던 남자들을 물리쳐준 마르첼로(라울 보바)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혼의 충격으로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재기의 기대도 없이 떠난 이탈리아 여행, 우연히 눈길을 사로잡은 신비의 여인, 묘한 인연으로 구입한 저택, 집 수리 부품을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마르첼로와의 사랑, 그리고 이별, 이웃들과의 새로운 관계. 이 단순한 세미 로드무비 형식의 스토리를 더없이 풍요롭게 가꿔낸 오드리 감독의 재능이 눈부시다. 매 장면을 그림처럼 잡아낸 카메라의 앵글도 아름답기 그지없고, 그 장면과 장면 사이에 치밀하게 배치한 반전 효과가 의외로 신선하다. 무엇보다, 작가 출신 감독답게, 여러 등장인물과 조연들의 캐릭터가 실제 인물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저 생생한 캐릭터들이 지어내는 요절복통 우여곡절이 영화를, 그리고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그 숨은 신명이 기대 이상이다. 빠뜨릴 수 없는 미덕 하나 더. 신비의 여인, 매력남 마르첼로, 운명의 빌라 ‘브라마솔레’ 등을 설명이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주는 디테일의 힘. <투스카니의 태양>이 보여주는 매력의 백미다. 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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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미 작가노트- 2017 개인전
- 이서미 작가노트- 2017 개인전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4-9) 산수유나무의 무수한 가지들은 선이 유려하면서도 복잡하고 아름답다. 나무가 노랗게 변하면서 봄을 알리고 붉게 변하면서 결실의 계절을 맞이한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이 떠오르면서 저 나무는 참 걱정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련한 노란 빛으로 온 동네를 물들여서 눈을 호강시키는 즐거움도, 빨간 열매 수확의 기쁨도 저 걱정 많아 보이는 나무가 주는 선물이다. 저 나무를 통해서 보이는 인생도 다르지 않았다. 인생에는 어려움이 많지만 가지마다 꽃과 풍성한 열매라는 선물들이 그곳에 달려있다. 죽기를 구한 엘리야가 나무아래에 기진하여 누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어루만지시며 떡과 물을 먹이시고 다시 기운을 차려서 갈 길을 다 가도록 독려하셨다. 생각해 보니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였다. 걱정 많지만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가 가득한 나무, 그 아래서 잠깐 쉬며 천사가 건네는 시원한 생수를 마시며 기운내고 끝까지 걸어가는 것. 인생길이다. 나무 아래 인생길에 만나는 하나님의 손길, 주변의 천사들 손을 잡아 롯이 고모라를 떠날 때, 베드로가 감옥을 빠져나올 때 천사는 그들을 위기에서 끌어내는 역할을 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큰 위험에서 빠져 나온 적이 인생에서 여러 번 될 것이다. 흐린 날 흐린 날에도 세상은 아름답고, 혼자 걸어가는 것 같아도 동행하는 친구가 있다. 동행 어린이 옆에는 그들의 천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천사뿐 아니라 어린이 시절을 보낸 어른 천사들도 있다. 빛나는 열매 삶에는 각자의 빛나는 열매들이 있을 것이다. 인류는 아기천사들로 다음을 이어간다. 붉은 강에 강같이 흐르는 보혈의 피에 씻기어 깨끗하게 되는 사람들 그 때 모인 천사들 같이 기도해준 친구들-그들이 천사가 아닌가 싶었다. 하늘의 양식 오병이어 요6:9-13 38년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 요한복음5:1-15 예수님의 이적 시리즈 예수님의 이적 시리즈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많은 이적 중 일부를 그린 것이다.나는 내용적인 면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할 때 단색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색의 간섭 없이 직접적인 드로잉의 필치가 감정을 그대로 실어 나르기 때문에 내용과 감정이입상태에 집중할 때 단색 드로잉은 표현 방법으로 적절하다. 특히 모노타이프 과정에서 거친 붓자욱이나 밝은 부분을 닦아 낼 때 어깨관절을 사용하여 힘을 주게 되는데 이 때 신체의 힘이 좀 더 직접적으로 실리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의 호흡이 그림에 스며들게 된다. 모노타이프 기법에서 그려가는 방식과 닦아내는 방식을 적절히 혼용하여 예수님의 이적 사건을 통해 감동된 부분들을 그려냈다.직접 그려지는 드로잉과는 달리 모노타이프로 그려지는 그림의 특성은 판 위에서 적절한 수정이 가능하고, 닦아내는 드로잉이 가능하므로 흰 부분도 드로잉의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즉 밝은 부분의 드로잉으로 인한 감정효과를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예수님의 이적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구성할 때 그 내용들을 적절히 이야기처럼 다 집어넣을 것인지, 여러 장으로 이야기처럼 풀어낼 것인지, 아니면 주관적인 해석만으로 그림을 그릴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내가 느꼈던 메시지의 핵심을 조금은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방법으로 풀어내기로 하였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지난 수천 년을 거쳐 방대한 양의 예술작품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다시 그리는 이유는 ‘새 노래로 찬양하라’라는 구절이 주는 메시지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고, 이 내용들을 묵상할 때 나에게 허락된 개인적인 고백이므로 나의 색으로 다시금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과거의 양식이 지금 나의 양식과 같지 않으며 같은 내용이라도 오늘날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메시지는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용을 스스로에게 새롭게 환기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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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미 작가노트- 2017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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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간증 콘서트
- 우리 교회 시스템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목사님 설교야 시간 있음 나와서 들어보면 알어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텨 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셔도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도전을 유엔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히틀러의 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물론 가짜 뉴스다. 문제는 지금도 이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가짜 뉴스가 세계 각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로도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현상이다. 뉴욕타임스에는 ‘페이크 뉴스와의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실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가짜 뉴스의 실제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2월 1일 충격적인 대선출마 포기를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그리고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습니다.” 유력 대선후보까지 끌어내린 가짜 기사는 정확히 무엇일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페이크 뉴스의 개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논의가 채 진행되기도 전에 현상이 급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의견도 분분하다. 일단은 가짜 뉴스로 통용되고 있지만, ‘조작 뉴스’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김위근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흔히 페이크 뉴스를 가짜 뉴스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페이크 뉴스를 정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페이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분야는 스포츠다. 스포츠에서 페이크는 속임수로 번역된다. 합의된 정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임수 뉴스’ ‘조작 뉴스’로 번역한다면 실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번 대선의 혼란한 정국을 틈타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가수 남진 씨가 때 아닌 곤욕을 치렀다. 누군가 남진 씨를 사칭해 유력 대권주자를 비난하는 글을 SNS에 퍼뜨린 것이다. A4용지 10장 분량의 이 글은 '호남 사람들이 똘똘 뭉쳐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켜놨더니 문재인이 괄시하고 홀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남 씨가 평소 사용하는 호남 사투리로 적혀 있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는 ‘가짜’로 밝혀졌다. "처음엔 장난한 줄 알고 하다 말겠지 그랬는데 계속 (지인들에게 문자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심각하구나’ 하고 경찰서를 찾아갔죠.“ 남진 씨는 글에 적힌 사투리가 어설프고, 곳곳에 인용된 개인사도 사실과 다르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글에) 딸이 넷이라는 거 보고 깜짝 놀랐네요. 내가 딸 셋에 아들 하나거든요. 또 군대를 월남서 25개월인가 있다 왔는데 6개월이라고 썼더라고요.“ 특히 남 씨는 지역감정 부분에 대해 언성을 높였다. "마누라 고향이 부산 동래구 칠산동이고 우리 장인 장모 산소가 다 거기 있고 부산 분들이셔. 내가 전라도말을 하고 전라도 사람으로 많이 알고 있으니까 장난을 누가 친 모양인데...“ 2017년 4월 반기문처럼 가짜 뉴스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유명한 그는 1970년대 나훈아와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불세출의 트로트 가수다. 남진(본명 김남진 金南鎭 1946. 9. 27)은 1967년에 히트곡메이커였던 작곡가 박춘석의 ‘가슴 아프게’ 를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가수인 그가 새에덴교회 주보에 협동명예장로 김남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남진의 직업은 가수였지만 1967년에 박상호 감독의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처음 출연하면서 부터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데뷔와 동시에 인기를 얻었던 남진은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1971년에 전역한 후 ‘마음이 고와야지’ 를 발표하였고 서울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공연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복직 당시 정통 트로트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나훈아와 가요계의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1972년에 ‘님과 함께’ 를 발표하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고 톱 가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게 되면서 1970년대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남진과 나훈아는 서로 호남과 영남 출신의 가수로서 지역 사이에서 경쟁을 벌였으며 박진감 넘치고 활발한 성격의 남진과 조용하고 서정적인 성격을 가진 나훈아의 차이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1970년대의 가요계를 이끌었다. 당시 가수왕에는 줄곧 남진이 1등을 하여 가수왕상을 수상하고 나훈아는 2등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전성기를 맞이한 남진과 나훈아를 꺾을 가수가 없었다. 2004년 5월 남진(58)은 데뷔 40주년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막 날릴 때 시들어가는 선배들을 봤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실감 못했죠. 잊혀지고 박수가 멀어져갈 때의 공허함은 말로 못해요. 그 심정은 인기를 가져본 사람만 알지요. 담배를 하루 서너갑씩 피우고 사업에다 마음을 붙이려고도 했지요. 그런 세월 속에서 ‘노래가 없는 남진은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 자신을 찾으려면 꼭 노래를 해야 한다, 노래를 해야만 내가 사는 것이라는 걸... 이제 인기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못한 노력을 하고 싶어요. 가수로서 ‘혼이 담긴’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거죠. 저는 ‘가슴아프게’를 37년간 불렀지만, 조금 다른 ‘가슴아프게’를 부를 겁니다. 이제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 것 같아요.” 그는 1980년에 미국으로 가서 지내다가 1982년에 귀국하여 ‘빈잔’을 발표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남진의 귀국과 함께 남진은 정통 트로트 곡 ‘빈잔’이 크게 히트하였다. 2009년에는 장윤정과 함께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여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2010년 데뷔 45주년 기념 음반을 발표하고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해 천사백만 명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가 1970년대의 아이콘이자 당대의 아이돌 스타였던 가수 남진의 베트남전 참전 시절을 연기했다. 그런 가수 남진이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선 이틀 전 5월 7일 주일 오후 7시 경기도 용인시 죽전에 있는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에서 장로 남진의 신앙 간증 ‘봄봄 콘서트’를 가수 장윤정과 함께 가졌다. 이것은 어버이 주일을 맞아 지역의 어버이들을 위로하고 새신자들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에덴교회 프라미스홀의 웅장한 아래위층을 신자들이 구역별로 가득 메웠다. 글로리아 찬양단(지휘 김연호 목사) 합창에 이어 유쾌한 목사 소강석이 환영메시지를 전했다. “저는 새에덴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소강석 목사입니다. 지금 제 설교를 들으러 온 사람보다는 우리 남진 장로님과 장윤정 선생님을 보러 오신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찾아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좋은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다닌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도 전부 고학을 했습니다. 얼마나 아버지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를 쫓아낸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는 제 손을 잡고 ‘너 때문에 천국을 가서 너무 너무 고맙다. 내가 너를 몰랐으면 하나님을 모르고 천국을 몰랐을 텐데 너 때문에 천국을 안다’ 말하시며 제 손을 잡고 떠나셨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왜 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때리고 구박을 하셔도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어머니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 주변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들을 초청해 즐거운 시간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갖도록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함께 즐거운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시간을 통해 인생은 한번인데 주변에 가까운 교회 나가시고 또 마땅한 교회가 없어 저희 교회에 나오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하시면 건강에 유익이 없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잘 오셨죠. (온 회중 ‘네’라고 대답) 즐겁고 유익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제19대 대전 이틀 전이라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김진표(장로) 의원 부부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부인이 직접 콘서트에 참여해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재치 있는 소개로 박수와 조명을 받으며 인사를 했다. 국민가수 남진이 첫 곡을 신나게 흔들며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노래하고 환호 속에 인사를 했다. 그는 노래나 입담이 걸쭉했다. “반갑습니다. 오늘 저희 교회 함께해주신 우리 형제자매님들 또 누님들 형님들 어르신 여러분들 모시게 돼서 정말 영광스럽고 반갑습니다. (환호) 무대에서 노래하면 몸 잘 돌아가는디 교회에서 헌께 잘 안 돌아가네. (웃음) 자 오늘 나이 드신 어르신들 모시고 공연을 하게 돼서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반갑습니다. 또 이렇게 뜻 있는 시간이다 보니 굉장히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아무래도 나이 드시면 이제 저도 좀 먹었습니다만 (71세) 오십이 넘었어요. (박장대소) 아따 노래헌 지가 50이 넘었다고요. 세월 속에 아무래도 그리운 추억이 있죠. 많은 추억이 있는데 저도 60년대 데뷔했으니까요. 어르신들 모시고 추억 속으로 한번 가고 싶어요. 그때 영화 주제가를 불렀는데 손수건이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입니다.” 간주가 흘렀다. 1968년 7월 20일 개봉한 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문희와 신영균 주연)의 주제가를 남진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슬프지만 간드러지게 노래했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받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영원히 그 사람을 사랑해선 안 될 사람말없이 가는 길에 미워도 다시 한 번아 아 안녕 나만이 가야하는 그 사랑의 길이기에 울면서 돌아설 땐 미워도 다시 한 번 아 아 안녕 “휙∼.” 양 손 검지와 중지를 각각 두 개를 입에 넣어 부는 손가락 휘슬이 장내를 휘감고 박수가 우렁찼다. 소강석 목사는 손가락 휘슬도 불고 나중에는 ’야광봉을 흔들며 호루라기도 불어댔다. 남진이 노래하듯 입을 열었다. “60년대 히트작인데 노래하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 노래는 아무래도 되살리는 기능이 있죠. 저는 오늘 특히 함께하시는 분 가운데 자매님들이 많으신데요. 젊었을 때는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낯바닥만 고와야 여자냐’를 요 주둥아리로 노래했는데요. 그때 22세였습니다. 그런데 노래는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자가 낯바닥이 예뻐야지’ 했습니다. (박장대소) 흐흐 속으로는 외적인 것을 중시하면서도 노래는 그렇게 불렀어요. 정말 오늘 여러분들 뵈니까 너무 아름답고 특히 우리 누님들 어머님들 참말로 오늘 뵈니까 분위기가 있고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간주가 이어졌다. 남진이 말하듯 노래했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줌마(여자들 웃음)겉으로 거만한 것 같아도 음음마음이 비단 같이 고와야 정말 너무 아름답지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오늘 이 자리의 여성이정말로 여~자~지~ (환호) 사랑을 할 때는 두 눈이 먼다고 해도...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환호 손가락 휘슬 ’야광봉 아우성)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깊은 뜻이 있어서 우리 목사님 이 자리를 준비하셨는데요. 요즘 우리 가요계 옛날 말로 분위기가 좀 거시기 합니다만 이 가수가 있어서 정말 우리 가요계가 힘이 나고 저하고도 정말 인연이 깊습니다. 우리 가요계에서 정말 노래 잘하고 제가 가장 아끼고 마음씨 착하고 훌륭한 주부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 가요계 신데렐라 장윤정 양을 소개합니다.” 장내가 무너질 것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훤칠한 장윤정이 오른쪽에서 나왔다. 소리가 더욱 커졌다. “처음 온 모양이지.” “처음 오고요. 선배님이나 저나 공연하면서 이렇게 많은 관객 분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죠. 대부분의 공연장이 여기보다 못 하거든요.” “우리 교회 시스템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목사님 설교야. 시간 있음 나와서 들어보면 알어.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시잖아요. (환호) 우리 윤정 양 인연이 돼서 여기 오게 됐습니다. 요즘은 노래를 듣는 시대가 아니라 부르는 시대잖아요. ‘님과 함께’ 작곡하신 남국인 선생의 멋진 곡이 나와 장윤정 양과 같이 불렀는데 그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장윤정을 보며) 한번 불러볼까.” 둘이 불러 히트 친 ‘당신이 좋아’ 듀엣이 이어졌다. 그대는 내 사랑 당신도 내 사랑이 세상에 그 무엇도 쨉이 안 되지원앙이 따로 있나 우리가 원앙이지한 쌍의 해피한 원앙이지아~꿀맛 같은 그대 사랑에내 인생을 걸었잖아비가 와도 좋아 눈이 와도 좋아바람 불어도 좋아좋아 좋아 당신이 좋아~~~~ (박수 환호) “여러분 이제 장윤정 양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시고 노래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장윤정의 히트곡 ‘어머나’를 비롯한 노래들이 이어졌다. 장내가 즐거움으로 달아올랐다. 청중 가운데 가장 뜨겁게 반응한 사람은 유쾌한 소강석 목사였다. 그는 맨 앞자리 보조 의자에 앉아 손가락 휘슬 호루라기 야광봉 등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한껏 드러냈다. 사람들이 ‘어머나’를 불러달라고 했다. 장윤정은 말했다. “그건 작년에 끊었습니다. 제가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왔는데... (웃음) 사진은 얼마든지 찍으셔도 좋은데 제가 눈 뜨고 있을 때 찍어주십시오... ‘꽃’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상품 추첨이 있고 남진이 다시 나와 노래하며 사이사이 간증을 했다.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중 아멘) 노래는 힘이 들어요. 어제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2회 공연을 했는데 2시간인데 35곡을 불렀어요. 1회 공연에 60곡을 불러요. 숨이 찹니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춤추고 노래하면 더 힘들어요. 이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박수 환호)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하나님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렁찬 아멘) 내일 어버이날이죠. ‘어머님’ 불러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긴날을 하루같이 이 못난 자식위해 손발이 금이 가고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몸만은 떠나있어도 어머님을 잊으오리까오래 오래 사세요 편히 한번 모시리라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 몸도 아프고 집안에 여러 복잡한 일도 있고 그래도 하나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의지할 데가 있어 참 좋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위로와 위안을 받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은 내가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쓸쓸하고 외로웠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을 받게 돼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박수와 아멘) 자식이 있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니 그리고 은혜도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모두는 갑니다. 분명히 가죠. 또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된다니 그 은혜 무엇으로 갚을지 알 수 없습니다. 요즘 나이도 먹고 그래서 혼자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합니다. 다 자고 그러니 쓸쓸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이렇게 앉아 하나님 생각을 하며 이말 저말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합니다. 잘못한 일 잘한 일 뭐 다 말합니다. 하나님 들어주실지 안 들어주실지 잘 모르지만 하고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몰라요. 우리 말을 들어주시는 그런 분이 계신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멘) 제가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믿음으로 살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계시는 걸 믿기 때문에 버팁니다이제 옛날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아버지 안 계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늘 살아 계시잖아요. 우리 죄를 지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목사님 통해 잘 듣고 간직하고 항시 의지하고 살면 힘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시겠지라. (아멘) 난 잘 모르는디 목사님이 많이 갈켜 줘 가지고 알게 됐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산다면’이라고 어깨춤을 하며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다보니 주님과 함께 그 나라 그 집에서 함께 사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남진은 퇴장했다.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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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간증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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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교회 부활절
- 우리의 삶 속의 전환적인 사고와 마음성공적인 삶의 결정적인 이유가 돼 주님을 만난 자의 길은 타락과 멸망의 길이 아니라 영광과 부활 생명의 길 작년 2016년 3월 27일 부활절에는 서천읍교회를 갔다. 그 교회 담임 김영우(총신 총장 부총회장 후보)는 부활절인데도 없었다. 나중에도 오지 않았다. 총신 총장 공인인데 부활절 행사 어디에도 참여한 흔적이 없었다. 금년 2017년 4월 16일 부활절에는 호남의 거함(巨艦) 이형만 목사(총회 기소위원)가 시무하는 전남 영암군 삼호읍 소재 삼호교회를 방문했다. 호산나 찬양대의 찬양과 나판열 장로의 기도 후 이형만 목사는 본문 누가복음 24:13-35을 봉독하고 ‘부활신앙으로 회복하라’는 제목의 설교를 낮은 음성으로 심령을 파고들게 전했다. “수년 전만 해도 총회에 올라갈 때는 차를 가지고 광주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 리무진을 타고 삼성역으로 가서 내려 지하도를 통해 나가 고개를 올라가야 했습니다. 삼성역 지하에 코엑스로 가는 길이 있는데 거기에 세계지도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지도가 지금 형태로 만들어진 까닭은 그것을 만들 당시 유럽인이 만들었기 때문에 유럽을 세계지도의 중심에 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세계지도가 작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계지도를 뒤집어서 거꾸로 놓고 보면 한국이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대한민국이 세계중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발상의 전환에서 오는 것입니다. 강대국 속에 있는 작고 약한 국가이지만 이런 생각을 뛰어넘어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듯 우리도 세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오늘 김영민 집사님이 양복을 입고 계시니까 장로님 같으시네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전환적인 사고와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성공적인 삶의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25리 10킬로 되는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중 한 제자는 글로바고 다른 제자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왜 나오지 않을까요. 현대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그 제자가 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고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만이 겪은 경험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고 믿음을 키웠던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자 절망과 허탈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성경의 말씀을 설명하니 그들이 마음이 뜨거워져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첫째 부활의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기독교를 가리켜 부활의 종교라고 합니다. 즉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극적인 차이는 부활과 죽음입니다. 모든 헛된 종교는 죽음으로 멈춰있지만 오직 기독교만이 죽음을 뛰어넘는 부활의 신앙으로 나아갑니다. 진정한 종교라면 인간의 죽음 저 너머의 삶을 이끄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의미이며 가치이며 목표입니다. 죽음으로 끝난다면 종교나 철학이나 도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부활에 대해 다윗은 시편 16:8에서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다니엘 12:1~3에서 ‘땅의 티끌 같은 자들 많은 사람이 영생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다니엘이 자기 민족의 소생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환상은 자기 민족만의 회복이 아니라 온 인류의 회복 그리고 정치적 군사적 회복만이 아니라 진정한 죽음의 권세에서 회복하는 영생의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마른 뼈의 환상을 통해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뛰어넘는 부활의 세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사건은 점점 진행되어 예수님의 생존 시에도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니 예수님은 마태복음 12:39 이하에서 ‘이 시대에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요나가 삼일 만에 물고기에 배에서 나와서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부활을 요나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죽으신 지 사흘 된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심을 증거하십니다. 둘째 마음이 열려야 부활의 신앙이 획득됩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자신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말하고 이제 그들과 마을에 들어가 음식을 먹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리고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됩니다. 부활의 신앙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신앙의 어려움입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바라는 세계와 주님이 주시는 원하는 세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주님으로 인해서 이루어질 정치와 군사적 해방을 추구하였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주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육신에 붙잡혀 자신의 주장과 그 시대의 고정관념에 잡혀있기에 부활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숙한 사람들에게 부활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제자들에게 주님이 성경의 말씀을 풀어줄 때 마음이 뜨거워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쳐 뜨거워질 때에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고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셋째 부활의 신앙은 올라갑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사람은 승리의 길 옳은 길 바른 길로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훗날에 영광과 존귀와 의와 복으로 다가올 길인지 이 길은 타락과 방종의 길인지 현재 우리 자신을 보면 정확히 압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절망과 멸망으로 가는 길에서 소망과 생명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주님을 만난 자의 길은 타락과 멸망의 길이 아니라 영광과 부활 생명의 길입니다. 영광과 생명의 길은 주님 안에서 걷는 길이며 날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이며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형만 목사는 오후 3시 고흥 팔영체육관에서 있을 고흥군 부활절 연합예배 축사를 위해 식사도 거른 채 바삐 움직였다.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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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교회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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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딸 결혼
- 신랑 남정한 군 소강석 목사 기도를 받고 태어나5년 뒤 개척교회 시절 소현 양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 결혼 주례 설교를 맡은 소강석 목사 눈물의 씨앗을 뿌려 키운 딸 결혼을 위한 시 ‘시집가는 딸에게’를 낭독 조용기 목사 신랑신부를 위해 축사“신랑신부가 아버님 축복 받는 것 부럽다” 비틀즈의 전설 존 레논은 말했다. "요코와 내가 만나기 전에 우리는 반쪽짜리 인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랑조차 우리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주고 따뜻함이 되고 동행이 되고 두 개의 몸이지만 영혼과 영혼이 합쳐 한 몸이 되고 그리고 두 사람의 앞에는 서로를 위한 오직 하나의 삶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4월 22일(토) 오후 3시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맨 앞좌석에 자리 잡고 국회의장 정세균 의원 민주당 선대위원장 김진표 의원 김무성 의원 조대수 의원 이정현 의원등 정치계 인사를 비롯해 멀리서 참석한 김정훈 목사 한기승 목사 변전석 목사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성도들이 새에덴교회 3층 프리미스홀을 가득 채웠다. 신부 어머니 배정숙 사모와 신랑 어머니 이화숙 전도사가 성혼예배 시작을 위한 화촉을 밝혔다.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싱글벙글 유쾌한 소강석 목사와 입장했다. 신부 소현 양과 5살 터울로 같은 교회에서 같이 자란 변호사 신랑 남정한 군의 아버지 남수현 장로(새에덴교회)가 기도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가정이라는 제도를 세워주신 하나님 아버지... 신랑 남정한 군과 신부 소현 양이 성혼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신랑신부에게 마음껏 복의 복을 내려주십시오. 신랑 남정한 군은 소강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5년 뒤 개척교회 시절 소현 양이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습니다...” 사회자가 창세기 26장 4-5절을 읽은 뒤 ‘복을 후대로 물려주는 가정’이라는 주례 설교를 맡은 소강석 목사가 눈물의 씨앗을 뿌려 키운 딸 결혼을 위한 시 ‘시집가는 딸에게’를 낭독했다. ... 너를 보고 웃으면서도 뒤돌아서면 울어야 했던 아빠너와 함께하지 못한 그 빈자리를 속죄하는 마음으로너의 결혼식에 주례자로 선다... 너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는망극의 방망이가 되어 나의 가슴을 두들겨왔거니 앞으로도 너는 나의 변함없는 거울이 되고나는 여전히 가시고기 아빠가 되리..아니 아빠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께서남정한 오빠를 통해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이고따뜻하고 포근한 옷자락으로 너의 삶을 덮어언제나 파랑새 지저귀는 행복한 둥지를 만들어 줄 꺼야 성혼공포 후 지구상에 교회가 세워진 이래 설교로 가장 많은 사람을 모으고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 조용기 목사(81세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신랑신부를 위해 축사했다. “신랑신부가 아버님의 축복을 받는 것 보니 내가 부럽기 한이 없습니다. (웃음) 나도 같은 목사이지만 소강석 목사와 같은 젊은 목사의 축복을 받으니 얼마나 좋겠나 싶습니다. 저는 매 주일 소강석 목사와 같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소 목사 장모님이 함께하시는 걸 보면 마음에 용기가 생깁니다. 저도 장모님 덕분으로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소강석 목사님 같은 분이 한국에 위대한 신앙의 꽃을 피우실 것입니다. 우리 소강석 목사님이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면 그 말씀 속에 무엇인지 모르게 가슴을 두들기는 그런 것이 있고 감격의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저는 목사님의 저서를 많이 읽고 제 설교에 목사님의 말을 인용을 많이 합니다. 우리 목사님 같이 훌륭한 주의 종을 하나님이 보내신 것을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우리 목사님이 우리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 남북통일을 이끌어내는 주의 종이 되실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오늘은 목사님 슬하에서 자란 딸 마르다 같이 귀하고 신랑은 아까 아버지가 말하신 대로 그 아버지의 그 아들답게 훌륭한 자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한 자녀들이 앞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모를 잘 공경하고 모든 사람의 신앙의 모범이 될 수 있기를 부탁하고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양가 부모 하객에게 신랑 신부가 인사하고 신랑 신부 새 출발을 위해 ‘인생의 이중창’을 부르며 걸음을 내딛었다. 하객들은 일어서서 축하했다.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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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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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 딸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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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 영혼만 남은 자아의 묵시록 실사 개봉 앞둔 원작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애니메이션 감독 : 오시이 마모루 만화 원작 : 시로 마사무네 만화나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유독 자신의 정체성을 회의하고 탐구하는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따위의. 특히 스크린을 통해 표현되는 유사 표현매체인 영화에 대하여 애니메이션은 바로 이 점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두 매체가 모두 시나리오에서 출발하지만, 영화는 배우의 연기라는 '통역' 과정을 거친다. 감독이 연출 지도를 한다 해도, 진한 내면의 페이소스는 어차피 배우의 몸과 영혼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그림(캐릭터)'이다. 배우라는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않는다. 그림(캐릭터)을 그리는 것이 곧 연기 행위인 셈인데, 그 몰입의 과정에서 작가의 머릿속에는 온갖 고뇌와 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뇌로의 몰입, 혹은 몰아의 고뇌다. 이 몰입은 캐릭터의 출산 작업인 동시에, 작가가 자신의 번뇌를 형상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몰아의 번민은 대개 존재론적 탐구, 혹은 구도적 회의의 형태를 띠기 십상이다. 때로는 한 장의 캐릭터가 시나리오의 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 주인공의 핏빛 고뇌가 애잔하게 배어든 한 컷의 캐릭터는 천 마디의 대사를 압도한다. 극단적으로는, 주인공 캐릭터의 고뇌를 펼쳐가기 위한 내러티브로서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가 좋은 본보기다.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마천루 꼭대기에 주저앉아 짧은 머리를 흩날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 한 여인이 보인다. 우수에 찬, 그러면서 야무진 표정의 20~30대 여인. 이 한 컷의 캐릭터로서 <공각기동대>의 오프닝은 완벽하다. 이 작품의 주제와 기조, 뉴앙스, 시대 배경 따위가 ‘원샷’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여인의 이름은 쿠사나기 모토코. 계급은 소령. 총리 직속의 특수부대인 ‘공안9과 공각기동대’의 행동대장이다. 이어폰을 통해 모종의 지시가 전달되고, 여인은 말없이 옷을 벗는다. 눈부신 나신으로 홀연히 빌딩 아래로 몸을 던지는 쿠사나기 소령. 이 투신 시퀀스는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제5원소> 그리고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시리즈의 몇몇 장면과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곧이어 벌어지는 총격전. 쿠사나기 소령은 빌딩 중간쯤의 어느 고층에 멈춰 목표 인물을 정확하게 제거하고 나비처럼 날아 귀환한다. 고뇌하는 여인의 상징적 캐릭터. 그리고 임무 수행. <공각기동대>는 이 오프닝이 던진 의문을 설명하는 동안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관객의 오감을 완전히 흡인한 상태에서 엔딩으로 직행한다. 완벽에 가까운 플롯이다. 이 매끈한 흐름은 전적으로 오프닝에 선보인 쿠사나기 캐릭터의 힘이다. 쿠사나기 소령은 뇌와 척추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신이 기계 몸체로 이루어진 사이보그다. 시대는 2029년. 컴퓨터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최첨단 디스토피아 세계. 의학과 과학의 수준이 절정에 달해 훼손된 육체는 무제한으로 복구되어 기계 몸체로 대체되는 시대. 인간의 실존으로 존재하는 것은 영혼뿐이고, 그 ‘영혼(Ghost)의 집(Shell)’으로서 뇌의 보존이 더없이 중요시된다(<공각기동대>의 원제가 이다). 뇌의 진실마저 컴퓨터 네트워크의 지배를 받는 세상, 따라서 뇌 속의 ‘고스트’를 해킹하는 범죄가 최악의 만행이 되는 시대다. 그런 상황에서 ‘고스트’를 마음대로 해킹하는 희대의 해커가 등장한다. 인형사,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형사는 뇌 속의 고스트를 해킹하고 엉뚱한 기억을 입력시켜, 그를 자신의 뜻대로 (인형처럼) 조종하는 해커다. 쿠사나기 소령의 ’공각기동대‘는 고스트 해킹을 척결하는 것이 주임무인 특수부대다. 쿠사나기 소령은 침착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 작전 수행에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를 견딜 수 없게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인가, 사이보그인가? 나의 삶, 행동, 판단은 나의 의지인가, 아니면 프로그램의 실행인가? 완벽한 사이보그 몸체를 지휘하는 한 줌의 뇌, 이 뇌가 곧 나인가? 어쩌면 나는 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나는 전뇌(電腦)와 의체(擬體)로 구성된 모의인격이 아닐까?’ 쿠사나기 소령의 대척점에는 인형사가 있다. 인형사는 ‘공안6과’에서 공작을 위해 개발한 ‘인조지능’ 수준의 해킹 전문 프로그램이었다. 초능력에 가까운 인형사의 네트워킹 능력은 곧 공안6부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 프로그램으로 진화한다. 위기를 느낀 공안6부는 인형사 제거에 나서고, 이를 감지한 인형사는 100% 기계 몸체인 사이보그의 외형을 빌려 공안9과에 망명을 신청한다.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다. 국가 차원의 공작에 휘말려 정식으로 망명을 신청한다. 21세기의 과학은 아직도 생명의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존재하는 생명체로서 나의 망명을 받아달라.’ 그리고 둘의 중간적 존재로서 인형사의 해킹을 받은 청소부가 있다. 독신 홀아비인 청소부는 인형사가 입력한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가출한 아내와 딸을 찾아 인형사의 해킹 행위를 대행하다가 체포된다. 청소부의 뇌리에 각인된 기억은 허상이다. 육체는 100% 인간이지만, 청소부는 허상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오시이 마모루가 던지는 묵시록적인 물음. 이미 허깨비가 되어버린 100% 육체의 청소부와, 육체는 0% 영혼은 100%인 컴퓨터 프로그램 인형사, 그리고 한 줌의 뇌와 척추말고는 모두 사이보그 몸체로 이루어진 쿠사나기 소령. 그리고 고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이후 SF영화는 상상력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사이보그 몸체의 불완전성과 ‘추억의 부재’ 문제를 기초 컨셉트으로 삼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라는 <블레이드 러너>의 패러다임은 그만큼 막강한 카리스마를 구가했다. 그리고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가 발표됨으로써 비로소 <블레이드 러너>는 전설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96년부터 <공각기동대>는 베를린영화제․부산영화제․헬싱키영화제.상파울로영화제 등 전세계 영화제로부터 줄초청을 받았고, 최고 권위의 애니메이션영화제 ‘The World Animation Celebration'에서 최고작품상을 수상했다. 발매된 비디오는 미국의 비디오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 절정을 구가했다. 이후 <공각기동대>는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등의 SF영화들에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뤽 베송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내 영화 <제5원소>의 상상력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했다. <제5원소>의 여주인공 ‘밀라 요보비치’가 빌딩에서 낙하하는 시퀀스는 뤽 베송이 마모루에게 바치는, 그리고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서 트리니티가 나신의 곡선을 한껏 드러내는 꽉 조이는 검은 가죽옷 차림으로 빌딩에서 몸을 날리는 오프닝 시퀀스는 워쇼스키 형제가 마모루에게 바치는 오마쥬였던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스크린 가득히 흘러내리는 알파벳의 디지털 이미지들, 주인공이 목 뒤의 구멍을 통해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설정 등도 <공각기동대>의 오마쥬로 읽히며, <코드명 J>(로버트 롱고 감독)의 두뇌 해킹, (스티븐 스필버그)의 사이보그의 자아에 대한 고뇌 등도 같은 맥락을 벗어나지 못한다. box : 저패니메이션의 신성 오시이 마모루 감독 데뷔 초기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의 차세대 주역으로 꼽히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공각기동대>를 통해 세계 초일류의 반열에 오른다. <공각기동대>는 오시이 마모루의 천재성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1995년에 처음 발표(제작 기간을 감안하면 최초 구상은 훨씬 이전)된 작품임에도 그 시대적 통찰과 섬세한 디테일들이 20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눈부시다. 더구나 당시는, 지금에 와서야 ‘정보의 바다’로 불리는 인터넷이 막 걸음마를 떼던 무렵이었다. 1951년 도쿄에서 태어난 오시이 마모루는 유년 시절부터 극장을 드나들며 SF영화와 공상과학소설에 심취한 오타쿠였다. 70년 동경학예대학 미술교육학과에 입학하면서 마모루는 영상예술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8mm와 16mm 영화를 찍는 영화광이 된다. 1년 동안 감상한 영화가 1,000편이 넘을 정도였다. 대학 졸업 후 <독수리 5형제>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다츠노코 프러덕션에 입사하면서, 오시이 마모루는 진로를 애니메이션으로 돌리게 된다. 비사교적이고 폐쇄적인 자신의 기질이 집단 제작 시스템인 영화보다 애니메이션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1981년 인기 만화가 다카하시 루미코 원작의 <우르세이 야츠라> 시리즈로 데뷔한 이후, 일본 사회에 만연한 거짓과 위선을 폭로할 의도로 제작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원작 유키 마사미)가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끌 재목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밖의 대표작으로 <천사의 알> <붉은 안경> <케로베로스 지옥의 파수견> <마로코> <아바론> 등이 있다. (fin) 송 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 에세이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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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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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앙교회 합병 감사 및 제16대 담임목사 추대 예배
- 광주중앙교회 합병 감사 및 제16대 담임목사 추대 예배 2017년 4월 15(토) 오후 2시 광주중앙교회 본당 (광주광역시 북구 북문대로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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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앙교회 합병 감사 및 제16대 담임목사 추대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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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딸 혼인
-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딸 혼인 2017년 4월 22일(토요일) 오후3시 새에덴교회 3층 프라미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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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딸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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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앙교회 성명서
- Since 1917 은혜의 100년, 소망의 100년 광주중앙교회는 배유지(Eugene Bell) 오웬(Clement Owen) 선교사에 의해 광주 최초로 세워진 북문안교회에서 1917년 1월 30일 분립 개척하여 설립한 교회로 초대 최흥종 담임목사님 이래 100년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내왔습니다 이제 광주중앙교회는 지난 7년의 연단을 딛고 일어서서 다가오는 100년도 동일하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더욱 부흥하고 발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7년 3월 27일 광주중앙교회 담임목사 채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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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앙교회 성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