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G.QT
Home >  G.QT

실시간뉴스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욥기Job
    욥의 정원 욥기Job는 대부분 시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야기는 아니다. 구약성경에서 에스겔은 그의 책 14장 14절에서 20절까지에서 욥은 실제 장소에서 실제 시련들을 겪은 실제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신약성경은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 시련을 겪을 때 신앙을 지키는 인내자의 본보기로 욥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욥기는 왜 의인이 고난을 받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난 기도했다 _작자 미상 나는 하나님에게 가장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받았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내가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작자 미상의 시인은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기에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라고 노래한다. 이 시인처럼 욥도 그의 모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 욥기에는 세 만남이 있다. 첫째 하나님과 사탄의 만남이 있다. 둘째 욥과 친구들의 만남이 있다. 셋째 하나님과 욥의 만남이 있다. 그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은 죄 때문이라고 납득시키려 애를 쓴다. 욥은 자신의 성실과 믿음을 타협하게 만드는 어떤 시도나 말도 거부했다. 화를 내기는 했지만 욥은 언제나 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욥기에는 많은 비유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 비유들은 자연 세계의 삶과 죽음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의미를 깨우치게 해 주는 아주 귀중한 교훈이다. 2024-05-05
    • G.QT
    • G.QT
    2024-05-05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더Esther
    에스더Esther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페르시아인들은 주전 539년 바빌론을 정복했다. 에스더의 사건들은 수산에서 일어났다. 그곳에 왕의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에스더의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왕의 대명사인 것처럼 페르시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였다. 그러므로 에스더를 왕비로 삼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는 크세르크세스 1세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사건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3년부터 12년까지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따른 책은 에스더와 룻뿐이다. 룻은 유대인과 결혼한 이방 여인이었다. 반면에 에스더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 여인이었다. 둘 다 신앙과 용기의 여인들이었다. 둘 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았다. 에스더는 유대인을 전부 죽이려는 원수를 막았다. 에스더가 그 일의 결심을 위해 말한 한마디는 죽으면 죽으리라였다. 이런 시가 있다. 가지가 담을 넘을 때 _정끝별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영역과 미래로의 진입을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듯 가지가 담을 넘어서는 데에도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한낱 가지나 줄기가 이 세상의 단단한 담과 깊은 절망의 절벽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에스더서의 주요 교훈은 한낱 가지나 줄기도 담을 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나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주의 백성은 주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 2024-04-28
    • G.QT
    • G.QT
    2024-04-27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느헤미야Nehemiah
    짐실은 노새 느헤미야Nehemiah는 그 공동체를 이어받아 외적 안정을 확보했다. 반면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돌아온 새 공동체의 영적 안정을 확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가랴이고 형제가 하나니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 아마 그의 할아버지는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생생한 묘사는 그의 개인 일기에 근거한 자료였을 것이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리관이었을 때 예루살렘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왕의 술 관리관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기도 _라반드라나트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이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그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받아 주전 445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부임했다.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한 그의 깊은 신앙은 그의 기도와 강한 확신으로 드러난다. 그 땅에 회복이 이어졌지만 유대 민족은 시련과 비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고 계셨다. 느헤미야의 강조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2024-04-20
    • G.QT
    • G.QT
    2024-04-20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라Ezra
    솔로몬의 왕궁건설 에스라Ezra는 역대기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바빌론이 주전 587년에서 586년에 많은 백성을 잡아가고 도시와 성전을 파괴했다.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공포했다. 그때 스룹바벨의 인솔로 5만여 명이 돌아왔다.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이 끝났다. 어려움이 많았고 지체되기는 했지만 주전 515년 성전이 완성되었다. 이런 시가 있다. 담쟁이 _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율법학자 에스라는 주전 458년 2천여 명의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왔다. 에스라의 주요한 일은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통해 새 시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도종환 시인이 노래하는 담쟁이 잎 같았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담쟁이에게 절망의 벽은 없어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믿음으로 붙잡고 성전을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절망의 벽은 없어 보였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독려하는 지도자 에스라가 없고 믿음의 동지적 연대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하고 방해가 많은 땅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024-04-14
    • G.QT
    • G.QT
    2024-04-13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역대기하2Chronicles
    바벨론 포로들 역대기하2Chronicles는 다윗 자손의 통치를 크게 다룬다. 그 기간은 솔로몬 시대부터 주전 586년 시드기야 치하 예루살렘 함락까지다. 역대기서 전체에 걸쳐 남 왕국 유다를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남 왕국 유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에 따라 조명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고 그들의 신앙의 의무에 태만해서 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_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오는 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이 천지만물을 들썩이게 하는 봄의 풋내이고 봄의 푸른 웃음이다. 그러나 들을 빼앗긴 자에게 오는 봄은 절박하다. 봄조차 빼앗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봄의 답답함이고 봄의 푸른 설움이다. 들의 봄과 인간의 봄 자연의 봄과 시대의 봄은 이렇게 갈등한다.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떠나온 길이 멀면 돌아갈 길도 멀다.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역대기하 마지막에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의 불성실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24-04-06
    • G.QT
    • G.QT
    2024-04-06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역대기상1Chronicles
    바빌로니아 큰 물가 마을 역대기상1Chronicles과 역대기하는 원래 히브리어 원문에서 한 권이었다. 히브리어의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었다. 본래의 제목은 뒤에 남은 일들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들어있지 않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영어 제목 '크로니클스Chronicles'도 히브리어 제목처럼 '일상의 일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역대기서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특별히 왕들의 생활들에서 일상의 중요한 일들을 차례대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점은 다윗과 유다 왕국에 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제사장들의 것이다. 유대 민족은 신앙의 불성실로 망해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런 시가 있다. 바빌론 강가에서 _보니 엠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사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왔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나요 이런 낯선 땅에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우리 가슴에서의 명상을 여기 오늘밤 그대 앞에서 받아주어요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우리는 앉아서 우리는 울었어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어두운 눈물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노래를 불렀죠 우리는 울었어요 사랑의 노래를 불러요 시온을 생각하며 바빌론 강가에 바빌론의 거친 작은 조각들 우리는 앉아서 당신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듣지요 우리는 울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필요해요 시온을 생각할 때 오 힘을 가져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쪽 약 110km 떨어져 있는 유프라테스 강가에 바빌론이란 고대 국가가 번성했었다. 바빌론이 유대 왕국을 정복하여 많은 횡포를 저질렀다.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노래는 바빌론에 정복당한 유대인들의 심정을 노래한 메시지가 그 내용이다. 이 노래는 시편 137편을 토대로 작사 작곡을 하였다. 바빌론 포로생활 때 유대인들의 슬픔과 시온의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시편 137편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여성 3인과 남성 1인으로 구성된 4인조 보컬 '보니 엠'이다. 그들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 가수들이다. 그들은 악기를 전혀 다루지 않고 순수한 보컬만으로 서인도 제도의 특유한 창법을 구사하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1978년 이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역대기상과 역대기하는 바빌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은 다윗의 신앙 본보기가 필요했고 성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재건할 때 필요했다. 역대기서는 변화와 어려움의 시기에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윗의 신앙과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건축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였다. 2024-03-31
    • G.QT
    • G.QT
    2024-03-31

실시간 G.QT 기사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5_ 돌밭에 떨어진 씨들
    돌밭에 떨어진 씨들 햇살은 한결 눅어졌다. 아직도 끈적임은 여전해서 여름의 기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로마제국 곳곳에서 검거와 고발 선풍이 몰아쳤다. 이 태풍은 다른 신들을 백안시하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을 바퀴벌레 마냥 박멸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체말로 거대한 로마당국은 그리스도인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속속 잡혔다. 그들은 고문과 회유를 당했다. 어떤 속주의 총독이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듯이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악형의 고문과 손쉬운 회유에도 굴하는 법이 도대체 없었다. 그들은 옥살이와 죽음을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담담히 맞아들였다. 그러나 신자들이라고 하면서 개중에는 약한 사람들도 허다했다. 이런 사람들에 관한 주제를 다룬 소설도 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우리의 손에 쉽게 와 닿는 그런 소설일 것이다. 그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시대에 있었던 기독교 박해를 다뤘다. 그 작품에 한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평상시엔 참으로 쓸모 있는 신자이다. 그러나 그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그는 언제나 변절을 일삼았다. 어려움만 없다면 진실로 그는 장로 재목이었다. 그러나 어려움이 그를 늘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어려울땐 믿음의 형제를 고발하고 주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그는 어려움이 잠잠해지면 삽살개 마냥 교회의 울타리로 기어든다. 적지 않은 일본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바라며 죽어갔다. 급기야 그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벽안의 폴랜드 신부가 잡혔다. 관리가 그를 심문했다. 신부 앞에 닳아서 희미해진 동으로 만든 예수상이 놓였다. 심문관은 그것을 밟기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푸른 눈의 신부는 닳아서 희미해진 예수 같지 않은 예수상을 조심스레 밟고 목숨을 건졌다. 순교와 배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순교란 어려움이 있을 때 죽을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다. 배교란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을 부인하고 사는 것이다. 두 결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는 몸은 죽지만 영혼이 사는 것이고 후자는 몸은 살지만 영혼이 죽는 것이다. 우리의 주님께서 또록또록 눈을 굴리며 그를 빤히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또한, 주님께서는 뿌리운 씨들 가운데에는 돌짝밭에 떨어진 씨들도 있다고 하셨다. 이런 씨들은 몸에 어려움과 위험이 닥치면 영혼의 구원은 보이지 않고 다급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을 씹던 껌처럼 뱉을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참된 구원의 신앙이 없는 명목상의 신자들이 허다히 배교를 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황제를 섬기는 신전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분향을 했다. 믿으면 좋다고 자기에게 전도한 아낙네나 형제나 이웃에게 입에 못 담을 말들을 해대면서 황제의 신전은 다시 사람들의 줄을 잇게 되었고 분향 냄새로 자욱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성장의 진행은 혹독한 박해의 시련들로도 막지를 못했다. 그것은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2020-08-15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8-15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4_ 순교자
    순교자 가위 눌려 진저리를 치며 늙은 감독은 잠을 깼다. 어섯눈을 뜨고 사위를 둘러보니 어둠이 질펀했다. 난데없이 밤까마귀가 짙은 정적을 찢는 소리를 내질렀다. 아직도 그의 망막에는 자신의 몸이 불타고 있는게 아른거렸다. 분명 꿈이었을텐데 머리를 흔들어도 그 모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금의 터어키의 한 도시인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일대 검거 선풍이 일어났다. 때는 주후 150년경이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까닭 없는 소문이 서머나 시민들을 들끓게 했다.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여러 신들을 인정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해서 오늘날의 공산주의자 나부랭이 취급을 당했다. 무리를 이룬 군중들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 이름을 들먹였다. “폴리캅을 잡아라” 서머나의 늙은 감독 폴리캅은 거리낌 없이 폭도들의 뜻에 따르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한사코 말렸다. 그래서 그는 시골에 있는 한적한 농장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어려움을 겪는 교인들에 대한 소식과 밤마다 악몽으로 그는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 늙은 감독의 은신처를 치안 당국에 고발한 밀고자가 있었다. 밀고자도 교인이었다. 폴리캅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체포됐다. 수배범의 체포를 위해 현장까지 말을 달려온 책임자의 누이도 그리스도인이었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 말을 타고 올 때 책임자는 폴리캅에게 은근히 말을 건넸다. “시저가 주라고 말하고 그의 제단에 분향하고 당신의 생명을 구하면 무에 큰일이라도 날게 있습니까?” 폴리캅은 온갖 회유를 거절했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에게 던져지기 위하여 원형경기장으로 끌려왔다. 총독은 폴리캅에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세 차례나 주었다. 폴리캅은 먼저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는 말을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늙은 감독은 초췌한 얼굴을 들어 관중석에 옹송거리고 있는 이교도들을 향해 한껏 외쳤다. “무신론자들을 처단하라!” 관중들은 동요 없이 킬킬대고 있었다. 총독은 양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그리스도를 저주하시오.” 폴리캅은 총독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팔십팔 년간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 해를 끼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구원해 주신 왕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총독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저의 이름으로 서약하시오.” 폴리캅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시다면 날을 잡아서 들어보도록 하십시요.” “당신을 야수들에게 던질테요.” “그렇게 하시죠.” “야수들을 우습게 아신다면 당신을 불태우겠소이다.” “당신은 한 시간 정도 타는 불로 나를 놀라게 하십니다만 당신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을 잊으셨습니다.” 총독이 민중을 향해 선언했다. “폴리캅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백했다” 성난 군중들은 길길이 뛰며 외쳤다. “우리들의 신들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그리스도인의 애비를 죽여라!” 폴리캅은 말뚝에 묶여 불길에 휩싸였다. 늙은 감독이 기도하는 동안 불길은 드세게 치솟았고 하늘은 더욱 푸르렀다. 2020-08-08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8-08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 Lesson IV 게임의 규칙
    Lesson IV 게임의 규칙A rule of game 젊은 하나님의 사자(使者)는 천사(天使)가 어떻게 노래하는지 압니다. 그 미묘한 눈동자는 감미로운 눈망울 위로 태산의 무게를 이미 압니다. 숲의 부르짖는 반향(反響)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 속에서 하루 동안 포근히 잠드는지 압니다. 그는 왕성한 원기 속에 하늘나라 새들의 강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믿음 속에서 이스라엘을 실어 나른 독수리들의 강력한 날개가 허공을 가릅니다. 따스한 물고기들의 등에 보이는 소리 없는 눈부신 영광(榮光)처럼. 우리 시절 신학생이나 전도사는 육십 촉 전구만한 노랑 병아리 같았습니다. 그가 강아지 집 같은 주일학교에 들어가면 어둑하던 강아지들이 환해지곤 했습니다. 아무 덧칠도 없이 믿음의 세계를 만나던 그 맑은 시절은 어디로 갔나. 사물의 색깔과 촉감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던 날들. 너무 순정(純正)하여 세상에 다 들킨 채 살던 날들은 어디 갔나. 가릴 것 하나 없을 때 세계도 맨살로 내게 다가왔었지요. 그 투명한 만남은 얼마나 황홀했던가요. 조약돌처럼 깔깔거리며 함께 웃던 그 병아리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마음을 환하게 비추던 청년의 달빛은 지금 어디에 걸려 있나요. 영어로 인해 좌절하는 수많은 예비 목사들을 위한 해결의 문을 영어역본 『기독교강요』를 통해 조금이라도 열어보려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더 힘차게 걸어갈 이 땅의 전도자들이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행복하게 영어를 하고 싶다면 먼저 영어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먼저 게임의 규칙을 익혀라.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그 게임을 잘하라.” 돈에는 지배 법칙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돈은 그것을 소중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이동하기 때문에 부(富)는 언제나 지배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이동할 것입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영어는 그것을 소중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이동하기 때문에 영어는 언제나 지배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이동할 것입니다. 먼저 지배 법칙을 익혀라.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그 게임을 잘하라.” 그래서 이제 우리가 신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영어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큼이나 낡은 습관을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에 힘쓰는 사람은 지혜롭고 할 수 없는 일에 힘쓰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영어를 잘 하려면 먼저 발음 규칙을 알아야 합니다. 영어는 단어마다 발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언어 사전과 달리 영어 사전은 단어마다 발음기호를 병기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문화를 꽃피웠던 세종의 어전회의는 늘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왜 그리 생각하시오.” 세종의 어법은 ‘신하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훌륭한 리더의 조건’이었습니다고 말합니다. 나도 세종대왕을 본떠 말해 보겠습니다. “후배들께서는 영어 발음의 중요성을 어찌 생각하시오.” “왜 그리 생각하시오.” 나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배운 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얻었지만 믿음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늦어도 한참 늦지만 지내놓고 나서야 그것은 이랬어야 했음을 알았습니다. 각설하고 알파벳을 익힌 사람의 영어 첫걸음은 영어사전을 읽을 수 있는 발음기호를 익혀야 합니다. 영어의 발음 기호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어 사전을 볼 때 단어와 그 단어의 뜻만 보지는 않나요. 사전들이 단어를 발음하는 규칙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의 옆에는 조금 이상하게 생긴 기호들이 있습니다. 이 문자 같은 기호들이 바로 발음 가이드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단어 dictionary가 발음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dk nr i 사전의 발음기호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보이는 만큼 어렵지는 안습니다. 일단 규칙을 이해하고 나면, 단어의 뜻뿐만 아니라 바르게 읽는 방법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전들은 이상한 기호들을 사용하나요. 단어들은 기호입니다. 이는 소리를 나타내는 작은 그림들이지요. 그렇다면 왜 같은 소리를 나타내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만든 거죠. 아래의 단어들을 소리 내보세요. pit(pit) pie(pai) 두 단어 모두 세 개의 문자로 이루어져 있고 두 번째 문자는 i입니다. 그렇지만 이 문자 i가 앞의 단어는 ‘i(이)’ 다음 단어는 ‘ai(아이)’ 다르게 발음된답니다. 문자 i는 단어마다 다른 소리를 만들거든요. 이제 이 두 단어를 발음해 보세요. garage(grː) vision(vn) 이 단어들에서 garage의 첫 번째 g는 ‘거(g)’두 번째 g는 ‘쥐()’ vision에서의 문자 s와 같은 ‘전(n)’ 소리를 만듭니다. 전혀 몰랐죠. 보신 바와 같이, 문자들은 다른 소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나 문장의 어디에 있는지 또는 말하는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에 따라서도요. 어떤 단어들은 많은 소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소리들은 문자를 가지지 않고 있기도 해요. 그러나 사전의 발음 가이드는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기호가 간단하고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지 않아요. 어떤 기호가 어떤 소리를 나타내는지만 배우면 됩니다. 왜 발음 기호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새로운 단어를 배울 때에는 단어의 의미와 단어가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는 지를 배웁니다. 단어의 다른 형태를 배울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말할 때나 책을 읽을 때 실제로 단어를 사용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어를 발음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단어의 바른 발음을 배우는 데에는 사전의 발음 가이드를 읽는 것은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정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딱 보기만 해도, garage[grː]의 두 개의 g가 다른 소리 ‘g(거)’와 ‘(쥐)’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미국에서 주말이면 그 집안의 안 쓰는 물건을 차고(車庫)에 벌여놓고 헐값으로 처분하는 거라지 세일(garage sale)이 있습니다. ‘차고’라는 뜻의 garage(grː)라는 단어 발음기호 가운데 두 모음이 나옵니다. 그것은 ‘’와 ‘’입니다. 이 책의 발음기호에서 앞의 발음기호 ‘’는 약한 ‘어’로 발음하시고 뒤의 발음기호 ‘’는 위에 강세 부호도 있으니 강한 ‘아’로 발음하시면 되겠습니다. 나머지는 자주 발음하시다 보면 자연 익숙해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연습 삼아 garage(grː)를 발음한다면 ‘라’에 힘을 주어 ‘거라쥐’하시면 될 것입니다. 발음 가이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조금만 할애하세요. 결국엔 많은 시간과 많은 수고를 더는 일이 될 겁니다. 이 책은 영어 초급자를 위한 영어를 스스로 익히기 위해 만든 『기독교강요 영어수업(修業)』이기 때문에 필요한 단어마다 발음기호를 병기할 것입니다. 좀 귀찮더라도 영어 지배 법칙을 익혀 영어를 돈처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음기호대로 발음하는 습관을 성경 장절처럼 익히시기 바랍니다. 모든 영어 발음 기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간단한 개요가 있습니다. 첫째 자음(consonant knsnnt)입니다. 자음은 모음이 아닌 모든 문자들로 발음할 때 혀·이·구강·입술 등의 발음 기관에 의해 호흡이 제한되어 나는 소리입니다. 성대의 진동이 일어나는 유성 자음과 그렇지 않은 무성 자음으로 구별합니다. 영어에는 21자의 자음이 있지만 자음 소리는 더 적습니다. C와 k, 그리고 c와 s 같은 문자들은 단어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같은 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른 소리는 ch와 sh와 같은 자음의 조합입니다. 이것도 소리가 다르지요. 배워야 할 자음은 그리 많지 않고 배우기가 쉬우니 걱정하지 마세요. 둘째 모음(vowel vul)입니다. 성대의 진동을 받은 소리가 입술·코·목구멍의 장애에 의한 마찰을 받지 않고 나는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 따위의 우리말 소리입니다. 홀소리 영어의 모음은 a, e, i, o, u 그리고 가끔 y가 있습니다. 모음은 다른 문자들과 조합될 수 있고 함께 새로운 소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각 모음을 발음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으며 그 발음들에 대한 기호도 있습니다. 셋째 이중모음입니다. 우리말의 모음 중에서 소리를 내는 동안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가 달라져 ‘ㅑ·ㅕ·ㅛ·ㅠ·ㅒ·ㅖ·ㅘ·ㅙ·ㅝ·ㅞ·ㅢ’ 따위의 첫소리와 끝소리가 다른 소리입니다. 영어의 이중모음은 두 개의 모음이 합쳐져 만들어진 소리입니다. 이는 bamboo(bæmbː)의 ‘oo’처럼 장음의 ‘우(uː)’처럼 발음하는 소리입니다. 다른 때에는 하나의 모음으로 시작해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soak(souk)의 oa(ou) ‘오우’ 같은 소리입니다. 넷째 음절(syllable slbl)입니다. 음절은 하나의 종합된 음의 느낌을 주는 단어의 구성 요소로서의 음의 단위입니다. 소리마디라고도 하고 영어로 실러블(syllable)입니다. 영영사전은 문자들을 위한 발음 기호와 함께 단어를 음절로 분리합니다. 예컨대 영영사전은 syllable을 si-l-bl로 표시합니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사전은 영한사전이라 발음기호의 음절을 분리하지 않고 slbl로 표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발음기호는 자음과 모음의 단위로 구분해 음절로 알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하나의 단어를 말하기 쉬운 부분으로 나누기 때문에 문자를 하나하나 기억하고 단어를 말하는 것을 더욱 쉽게 만듭니다. 다섯 째 강세(accent ksent)입니다. 영어의 단어에서 강세 즉 악센트를 어디에 두는가 하는 것은 단어를 바르게 말하는 데 중요하고 단어의 뜻도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 예가 present입니다. present[prznt] ‘프레전트’처럼 악센트가 앞의 음절에 올 경우 뜻이 ‘현재(現在)’입니다. 그러나 present[priznt] ‘프리젠트’처럼 악센트가 뒤의 음절에 올 경우 뜻이 ‘선물(膳物)’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을 볼 때마다 악센트의 위치를 잘 파악해 그 음절에 힘을 주어 읽다보면 원어민 수준의 영어 발음을 체험하게 되고 뜻의 차이도 익히게 될 것입니다. 언어학자들은 모음을 혀나 이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만들어지는 소리라고 정의합니다. 음절들 또한 모음을 중심으로 만들어집니다. 모음들 사이에 없이는 많은 유성 자음을 만들 수가 없거나 읽을 수가 없어요. 반면에 자음들은 말할 때에 부분적으로 숨을 막음으로써 만들어지는 소리입니다. p, b 그리고 g와 같은 소리들은 사실 여러분의 숨을 완전히 막음으로써 만들어진답니다. 그래서 이를 폐에서 나오는 공기를 일단 막았다가 그 막은 자리를 터뜨리면서 내는 소리(ㅂ·ㅃ·ㅍ·ㄷ·ㄸ·ㅌ·ㄱ·ㄲ·ㅋ 등의 소리)라는 뜻으로 파열음(破裂音)이라고 합니다. 왜 사전에서 발음기호를 봐야 하는지 그 실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xylophone은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요. 대개 실로폰으로 알고 있는 그 영어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보면 그 발음기호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zilfun 우리말로 음역하면 ‘자일러포운’인데 그 뜻은 ‘실로폰’입니다. 그것은 타악기의 하나인데 대(臺) 위에 나무토막을 배열해서 두 개의 채로 때리거나 비벼서 소리를 내는 악기인데 목금(木琴)이라고도 합니다. 실로폰 연주자는 xylophonist zilfunist ‘자일러포운이스트’가 되겠죠. 이제 발음기호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영어사전의 첫 페이지에 소개되는 발음기호를 늘 보면서 단어를 읽다보면 사전의 발음기호를 익숙하게 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만 잘 해도 영어의 지배법칙을 다 알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제 그 습관만으로 영어의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습관을 익히기 위해 이 책에서는 영어발음을 병기했으니 넘기지 마시고 꼭 발음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발음기호에서의 콜론이라고도 하는 ː 쌍점 표시는 장음을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기독교강요』 제목에 강요(綱要)로 번역된 영어 ‘institute’(nsttjːt)는 라틴어 ‘institutio’에서 온 말입니다. 이 단어의 영어 발음기호 ‘nsttjːt’에서 ‘tj’ 발음은 ‘튜우’라고 길게 발음하면 됩니다. 단어 전체를 발언하면 ‘인스터튜우트’가 되겠죠. 이 단어는 훈련(training)이나 교육(instruction)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제목은 많은 체계의 지식을 망라하는 여타 개론(槪論) 저술들과 마찬가지로 법률 저술들의 제목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칼빈에게도 익숙했을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1516년 판 『그리스도인 군주 강요』(Institutio principis Christiani)의 제목이 『그리스도인 군주의 교육』(The Education of a Christian Prince)으로 통상 번역되고 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1536년 초판의 간결한 제목의 형식도 『그리스도인 종교 교육』(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이었습니다. ‘경건의 전체 개요’(he Whole Sum of Piety)와 ‘구원의 교리에 관해 알아야 할 필요한 모든 것’(Whatever It is Necessary to Know in the Doctrine of Salvation)을 거의 망라하고 있는 『기독교강요』의 완전한 증보판도 『그리스도인 종교 교육』(The 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입니다. 캐나다의 역사 신학자 맥닐(McNeill, John T.)의 『기독교강요』서문(‘Introduction’. In McNeill, John T.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p. xxixlxxi. 1960.)의 저술 배경은 이렇습니다. John Calvin was a student of law and then classics at the University of Paris. Around 1533 he became involved in religious controversies and converted to Protestantism, It was a new Christian reform movement which was persecuted by the Catholic Church in France, forcing him to go into hiding. 존 칼빈은 파리대학교에서 법학과 고전(classic klsik)을 공부했습니다. 1533년 경 그는 종교 논쟁(controversy kntrvːrsi)에 말려들게(involve invlv) 되었고 개신교(Protestantism prtstntizm)로 개종했습니다(convert knvːrt). 그를 피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forcing him to go into hiding) 개신교는 프랑스에서 가톨릭교회의 박해(persecute pːrsikjːt)를 받는 새로운 그리스도인(Christian krstn) 개혁(reform rifːrm) 운동(movement mːvmnt)이었습니다. He moved to Basel, Switzerland, for safety in 1535, and around this time he must have begun writing a summary of theology which would become the Institutes. His Catholic opponents sought to tie him and his associates (known as Huguenots in France) to groups of radical Anabaptists, some of which had been put down by persecution. He decided to adapt the work he had been writing to the purpose of defending Protestants suffering from persecution from false accusations that they were espousing radical and heretical doctrines. 그는 1535년 안전(safety sifti)을 위해 스위스 바젤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즈음에(around rund) 나중 『기독교강요』(Institute nsttjːt)가 될 신학(theology θiːldi)의 개요(summary smri)를 쓰기 시작했음이 분명합니다. 칼빈의 가톨릭 적대자(opponent punnt)들은 그와 프랑스에서 ‘위그노’(Huguenot hjːgnt)로 알려진 그의 동료(associate suiit)들을 박해(persecution pːrsikjːn)로 일부 진압된 급진적인(radical rdikl) 재세례파(Anabaptist nbptist) 무리(group gruːp)와 엮으려고(tie tai) 했습니다. 그는 그의 동료들이 과격하고 이단적인(heretical hrtikl) 교리들을 지지합니다(espouse ispuz)는 그릇된(false fːls) 비난(accusation ækjuzin)으로 말미암은 박해(persecution pːrsikjːn)로 고난을 당하는 신교도(Protestant prtstnt)들을 변호할(defend difnd) 목적(purpose pːrps)으로 쓰고 있던 작업을 수정하기로(adapt dpt) 결심했습니다(decide disid). The work, written in Latin, was published in Basel in March 1536 with a preface addressed to King Francis I of France, entreating him to give the Protestants a hearing rather than continue to persecute them. It is six chapters long, covering the basics of Christian creed using the familiar catechetical structure of the Ten Commandments, the Apostles' Creed, the Lord's Prayer, and the sacraments, as well as a chapter on Christian liberty and political theology. Soon after publishing it, Calvin began his ministry in Geneva, Switzerland. 라틴어(Latin ltin)로 쓴(written rtn, write rait의 과거분사) 그 저서는 1536년 3월(March mːrt) 바젤(Basel bːzl)에서 출판되었는데 개신교도들을 계속 박해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청문회(hearing) 기회를 달라고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Francis frnsis)에게 탄원하는(entreat entrːt) 서문(preface prfis)이 있었습니다. 『기독교강요』는 6장(chapter tptr)으로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인 자유(Christian liberty)와 정치 신학(political theology)에 대한 1장과 더불어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주기도문(the Lord's Prayer), 성례(sacrament skrmnt) 등의 익숙한(familiar fmljr) 교리문답(catechetical kætktikl)의 구조(structure strktr)를 이용해 기독교 신조(creed kriːd)의 기초 원리(basics bisiks)를 망라합니다(cover kvr). 이 저서를 출판한 뒤 얼마 안 있어 칼빈은 스위스(Switzerland swtsrlnd)의 제네바(Geneva dnːv)에서 그의 목사 직무(ministry mnistri)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칼빈이 피신한 바젤 교회 2020-08-03
    • G.QT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2020-08-03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3_ 사람을 먹는 인종
    Leonardo da Vinci(1452-1519)-The Last Supper(1495-1498) 사람을 먹는 인종 한껏 달군 빛으로 태양이 더위와 칙칙함을 보내는 8월이다. 열매가 딴딴히 영그는 이 계절이면 우리네는 늘 상 해묵은 부채를 정리하지 못한 찜찜함으로 몸과 마음을 더욱 뒤척인다. 그 개운치 못함이란 기실 해방이란 것이 된 지도 어언 수십 개 성상이 지났음에도 친일파 문제를 매듭짓지 못함이다. 이제 계절이 계절이니 만치 ‘국화 옆에서’가 아니라 해를 바라보는 꽃 옆에 서서 소태를 씹듯 한 편의 시를 읊조릴까 한다. 일본 칼이 행세하던 그 시절엔 그들을 위해 가미가제 공격 대원을 부추기는 그런 시를 썼던 서정주 씨가 이런 시를 써 내렸다. 해와 달이 문둥이에게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붉은 꽃 같은 울음을 밤새 우웁니다. 한하운의 ‘나는 문둥이가 아니 올소이다’라는 나환자에 대한 자조적인 시도 있다. 그럼에도 나환자의 시에 관한 한 여인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서정주의 이 시만큼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게 또 있을 성 싶지가 않다. 노르웨이의 의사 한센이 레프라균이라는 나균을 발견함으로써 치료 약이 개발되기 전에는 이병은 가히 절망의 병이었다. 그래서 그 옛날 나환자들에게 오늘날 쇠뜨기 풀이 어쨌든 나병에 특효라는 해괴한 치료법이 차츰 나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연스러운 달이 보리밭을 휘영청 밝히는 밤에 보리 김을 쐬며 얼라를 잡아먹으면 나병이 씻은 듯 가신다는 소문이었다. 나환자들 가운데에는 물색없는 이런 해괴한 소문을 몸소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혹간 있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냐 싶지만 자기 몸 하나 낫겠다고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심성 앞에는 입만 벌어질 따름이다. 초대교회 시절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로마인들 사이에 쫘하니 퍼졌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육제를 열어 어린애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비밀 모임들에서 성만찬을 행한데서 비롯됐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저녁 식사 때 “이 빵은 내 몸이고 이 포도주는 내 피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모임 때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만찬을 행했다. 이런 내용을 알 길이 없는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가당찮은 소문을 자기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두 귀로 똑똑히 들었노라고 여기저기 입을 놀릴 만도 했다. 당시의 무지렁이 민중들은 이런 무서운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살려둔다면 그 땅에 온갖 재앙을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악함은 신들을 노엽게 하여 괘씸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애꿎은 일반 민중들까지 벌을 받는 피해를 입힐 것이었다. 가축이 일없이 죽었다거나 로마의 젖줄인 티베르 강물이 강둑을 넘었을 때 이방인들은 고개를 외로 꼬며 입을 열었다. “이것 보라구! 사람 잡아먹는 그리스도인 녀석들을 사자들에게 던져 버리자구. 이 녀석들을 그대로 뒀다간 우리가 제 명에 살기 어렵다니까 그래”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너나없이 끄덕거렸다. 2020-08-01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7-31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 Lesson III 돌연한 회심
    Lesson III돌연한 회심A sudden conversion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선(善)합니다’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침묵한 뒤에 하는 말로 이런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임에도 우리의 다른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 멀어지거나 죽을 수 있습니다. 싸늘한 사랑은 추억 아래 숨고 이제는 사라진 교회의 커튼도 무심한 밤 위에 드리웁니다. 그러한 허무 속에서도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학과 믿음의 드높은 주제를 말하고 또 말함이 옳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육체의 노쇠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젊은 날 우리가 사랑하고 믿고 설교했지만 무지했음을 이제 우리는 압니다. 논쟁은 때론 좋은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라도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새롭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용어로 풀어쓰자면 논쟁에는 ‘건강한 회의론자’(healthy skeptic )의 자세를 환기시켜 ‘증거에 기반한’(evidence-based) 합리성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배양하도록 도와주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칼빈이 가톨릭 신자에서 종교 개혁 결과 생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prtstnt 신교도, 항의자) 교도로 회심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5,693,164 영어 항목의 무료 백과사전 Wikipedia(하와이어로 빠른‘quick’을 의미하는 ‘wiki’와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encyclopedia’가 합쳐진 이름)에 칼빈의 회심에 대한 논란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Alternate theories have been suggested regarding the date of Calvin's religious conversion. In this view, his resignation is the direct evidence for his conversion to the evangelical faith. Some have placed the date of his conversion around 1533, shortly before he resigned his chaplaincy. However, T. H. L. Parker argues that while this date is a terminus for his conversion, the more likely date is in late 1529 or early 1530. 칼빈의 종교적 회심(conversion knvːrn 회심, 개종, 전환) 날짜에 관하여(regarding) 서로 엇갈리는(alternate ːltrnit) 이론(theory θːri)들이 암암리에 주장되어(suggest sgdst 암시합니다) 왔습니다. 칼빈이 자신의 지도 신부직(chaplaincy tplinsi 수도회·학교·병원·고아원·교도소·군대 따위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다스리고 이끄는 사제)을 사임하기 바로 직전인 1533년 경 회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in this view) 칼빈의 사임(resignation rzignin)이 복음주의(evangelical ːvændlikl) 신앙으로 그가 회심한 것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파커(Parker, T. H. L)는 그의 『칼빈 전기』(John Calvin: a Biography, Louisville, KY 199-203. Westminster John Knox: 2006)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argue ːrgjuː). 이 날짜가 그의 회심의 종점(terminus tːrmns)이라고는 해도 1529년 말이나 1530년 초가 훨씬 더 가능한(likely likli) 날짜인 것 같습니다. The main evidence for his conversion is contained in two significantly different accounts of his conversion. 그의 회심에 대한 주요 증거(evidence vidns)는 그의 두 중요한 다른 회심 사건들에 들어있습니다. In the first, found in his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Calvin portrayed his conversion as a sudden change of mind, brought about by God:그의 시편 주석(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vol. 1, p. 67, Grand Rapids: Eerdmans, 1948) 서문(preface prfis)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사건에서(In the first) 칼빈은 자신의 회심을 하나님이 주신(brought about by God) 마음의 돌연한 변화(a sudden change of mind)로 묘사했습니다(portray pːrtri): God by a sudden conversion subdued and brought my mind to a teachable frame, which was more hardened in such matters than might have been expected from one at my early period of life. Having thus received some taste and knowledge of true godliness, I was immediately inflamed with so intense a desire to make progress therein.하나님께서 돌연한 회심(conversion knvːrn)을 통해 나의 마음(mind maind)을 가르칠 수 있는(teachable tiːtibl) 구조(frame freim)에 복종하게(subdue sbdjː)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a teachable frame) 그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내 인생 초기에 기대할 수 있었던 구조보다 훨씬 더 강하게(harden hːrdn) 하는 구조였습니다. 참된 경건(godliness 신앙)의 어떤 맛과 지식을 이렇게 얻게 되자(Having thus received) 나는 그 속에서(therein 그 구조 속에서) 전진하고자(progress prgres) 하는 아주 격렬한(intense intns) 열망(desire dizir 욕구)에 즉시(immediately imːditli) 불타게(inflame inflim) 되었습니다. 이 첫 번째 사건에서 칼빈은 참된 경건(true godliness)의 어떤 맛과 지식이 그를 변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언급한 경건(godliness 또는 ‘하나님 됨’)이라는 단어 godliness에 대해 『웹스터 대사전』(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godliness(gdliːnis): the conforming one’s life to the revealed character and purpose of God. 그 해석은 이렇습니다. 경건(godliness gdliːnis)은 ‘하나님의 계시된(revealed) 성품(character kriktr)과 목적(purpose pːrps)에 자신의 삶(one’s life)을 일치시키는(conform knfːrm) 것입니다.’ 이 경건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장 2.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지식의 성향(WHAT IT IS TO KNOW GOD - TENDENCY OF THIS KNOWLEDGE)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For, first of all, the pious mind does not devise for itself any kind of God, but looks alone to the one true God; nor does it feign for him any character it pleases, but is contented to have him in the character in which he manifests himself always guarding, with the utmost diligences against transgressing his will, and wandering, with daring presumptions from the right path. 무엇보다도(first of all) 신앙심이 깊은(pious pis)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그 자체를 하나님의 어떤 종류로 궁리하지(devise diviz) 않고 한 참되신 하나님에게만 향합니다. 그것(하나님을 아는 것)을 좋아하는 어떤 성품(character kriktr)으로 가장하지도(feign fein) 않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transgress trænsgrs) 것을 아주(utmost tmust) 부지런히(diligence dldns) 그리고 감히(daring driŋ) 건방지게(presumption prizmpn) 올바른 길(path pæ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며(guard gːrd)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manifest mnfst) 그 성품 속에서(in the character)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합니다(content kntnt). 회심의 두 번째 사건에서 칼빈은 정신과 마음의 고통으로 말미암은 내적 분투의 오랜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Being exceedingly alarmed at the misery into which I had fallen, and much more at that which threatened me in view of eternal death, I, duty bound, made it my first business to betake myself to your way, condemning my past life, not without groans and tears. 영원한(eternal itːrnl) 사망(death deθ)을 생각하면(in view of) 내가 빠졌고 나를 아주 많이 위협했던 비참함(misery mzri)에 극도로 놀라게 된 나는 자신의 과거 생활을 비난하면서(condemn kndm) 반드시(duty bound) 신음하고 우는 게(not without groans and tears) 나의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And now, O Lord, what remains to a wretch like me, but instead of defense, earnestly to supplicate you not to judge that fearful abandonment of your Word according to its deserts, from which in your wondrous goodness you have at last delivered me그리고 오 주여, 나같이 비참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변호(defense difns)하는 대신에(instead of) 공적에 따라(according to its deserts) 주님 말씀의 무서운 유기(abandonment bndnmnt)로 심판하시지 말고 마지막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your wondrous goodness)로 거기에서 나를 제발 구원해 주시라고 열심히(earnestly ːrnistli) 애원할(supplicate splkit) 뿐이었습니다. Scholars have argued about the precise interpretation of these accounts, but most agree that his conversion corresponded with his break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Ganoczy 2004, pp. 910; Cottret 2000, pp. 6570; Parker 2006, pp. 199203; McGrath 1990, pp. 6972). 학자들이 이 두 사건에 대한 정확한(precise prisis) 해석(interpretation intːrprtin)에 논란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most moust) 칼빈의 회심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결별(break breik)과 일치한다(correspond kːrspnd)는 데 동의합니다(agree grː). The Calvin biographer Bruce Gordon has stressed that “the two accounts are not antithetical, revealing some inconsistency in Calvin's memory, but rather [are] two different ways of expressing the same reality”(Bruce Gordon, Calvin, New Haven; London 2009, p. 34.).칼빈의 전기 작가 고든(Bruce Gordon)은 “두 사건(account kunt)들이 칼빈의 기억과 어떤 불일치(inconsistency nknsstnsi)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정반대(antithetical æntiθtikl)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stress stres).” 이신칭의 교리를 발견하는 루터 칼빈의 회심은 사도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루터와 같이 자세하고 극적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또 언제 정확히 회심의 경험을 했느냐에 대해서도 기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시편 주석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회심에 대해 ‘돌연한 회심’이란 말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한 회심으로 오랫동안 완악했던 마음을 온순하게 길들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칼빈은 철저히 말씀에 순종하고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 하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된 대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생활을 위해서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며 통회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 근처에 사는 친구의 정원을 거닐며 로마서 13장을 읽을 때 변화되었습니다. 루터도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면서 성경을 읽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고 고백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날마다 성경의 묵상을 통하여 엘더스게이트에서 열린 작은 모임에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교훈은 성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엇을 믿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무엇을 믿든지 바르게 살기만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믿든 차이가 없다고 하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물을 길러온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인간이 바른 믿음이 없이도 바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8-10 둘째 교훈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올바른 행위와 실천의 열매와 결과가 없다면 참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우리는 무엇을 행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두 가지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믿음이 있는 사람의 행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020-07-27
    • G.QT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2020-07-27
  • 이야기 세계 교회사 12. - 로마성벽의 낙서
    The Fire of Rome by Hubert Robert (1785) 로마성벽의 낙서 그리스도인들은 한동안 전쟁에 나가지를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노예를 소유했지만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고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그들에게 주었다. 옛날에 노예였던 사람이 로마의 감독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본의 아니게 생긴 아이나 허약한 아이를 남몰래 숲에다 버린 뒤에 죽게 하거나 강도들이 밤 줍듯이 집어가게 하지를 않았다. 만일 그리스도인 여성이 이방인과 결혼을 해서 딸을 낳는다면 애 아빠는 아주 유들유들하게 『거 뭐 갖다 버리지 그래』라고 말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어머니에겐 그런 말이 전혀 씨가 먹혀들지를 않았다. 만일 그리스도인 부인이 죽는다면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묻힌 곳과는 동떨어진 카타콤에 동료 신자들에 의해 안장됐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습성과 관행이 이러다 보니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꽤 까다로운 별난 종자들 내지는 심지어 『인류의 적』이라고까지 생각했던 이유를 어림잡을 수도 있을게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가당치 않은 거짓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로마 전역에 소문이 퍼져 떠들썩하게 되었다. 하루면 너끈히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발 없는 이런 소문이 이방인들의 증오를 하루가 다르게 커지게 만들었다. 낳아주고 키워주고 황제 자리까지 애써서 안겨준 서태후 같은 어머니를 네로는 살해했다. 그는 이제 거칠게 없는 로마의 황제가 됐다. 네로가 신나는 황제 생활 십 주년 되던 해인 AD64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로마가 활활 탈 때 분잡을 떨기는커녕 황제 네로는 가뭇없는 불길을 바라보며 하프의 반주에 곁들여 시를 지어 읊조렸다고도 한다. 황제의 시심에 영감을 준 이 대화재는 로마시의 거의 반을 태웠다. 이 엄청난 재난의 방화주범은 황제라는 소문이 로마 장안에 차츰 퍼지기 시작했다. 시절이 하 수상해지다 보니 황제는 어떤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인 희생양이 아니라 예술적인 희생 모델을 찾아 나섰다. 왜냐하면 황제인 네로는 정치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네로는 로마 방화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로마 사회에 융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관습을 극구 고집하며 살던 터라 그들에 대한 반감이 로마인들에겐 어떤 대상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정치인이나 어떤 세력이 세모의 구원파와는 달리 전혀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네로에게는 로마 방화의 맞춤한 희생양이 되고 호시탐탐 벼르던 로마인들에게는 맞춤한 분풀이 대상이 되었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걸쭉한 비난과 죄명을 들씌우고 그들을 십자가에 꽝꽝 못을 박았다.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역청을 붓고 밤에 네로의 정원 뜰에서 저 어둠을 밝히는 관솟불 마냥 불을 붙여 태웠다. 그 밤에 네로의 정원에 초대받아 술들로 불콰해진 내노라 하는 로마인들은 불타는 그리스도인들을 적이 바라보며 잘코사니 했다. Nero's Torches 로마 시민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당나귀 대가리를 숭배한다는 어이없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이 맹랑한 소문을 로마의 성벽 한 귀퉁이에다 보란 듯이 낙서처럼 그림을 그려 휘갈겨 놓은 이방인도 있었다. 이 낙서에 있는 말의 뜻은 “알렉사메노소는 그의 신을 경배한다.”이다. 이 낙서의 언어는 헬라어이다. 그것은 헬라인들이 당시 아주 많이 로마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2020-07-25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7-25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 Lesson II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
    Lesson II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프랑스 작가와 정치가 앙드레 말로(Andr Malraux 1901년 11월 3일 ~ 1976년 11월 23일)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1919년 12월 3일)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두어 해 전 동양어학교에 다니던 청년 말로가 남프랑스의 지중해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이국적인 마르세유(Marseille)나 막 요란하기 시작한 칸느(Cannes 프랑스어)를 피해 굳이 이곳에 온 것은 고운 모래에 얕은 수심을 지닌 한적한 바다가 산악과 맞닿아 있어 훨씬 드라마틱했기 때문입니다. 여관의 벨보이가 알려주는 말에 말로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르누아르가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르누아르를 어쩌면 대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당시 말로는 한창 문학·미술·역사에 대한 관심이 불타올랐고 동양 문화를 탐사하기 위해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까지 훈련하는 중이었으며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하루는 아침 식사를 마친 말로가 해초 냄새로 뒤덮인 벼랑 끝 오솔길을 산책하다가 은빛 수염을 휘날리는 한 노인의 뒤통수를 봤습니다. 노인은 잔물결 이는 바다를 마주한 채 캔버스에 몰입하는 중이었습니다. 말로는 종업원이 일러준 그 대가임을 이내 알아챘습니다. 지난 세기의 역사를 한 몸으로 지탱하고 인상주의의 한 영역을 개척한 위인을 이런 휴양지에서 단둘이 조우하게 되다니 그야말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말로는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기 위해 조심조심 그의 등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의 집중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위대한 미술가의 제작 과정을 보기 위해서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말로가 그의 캔버스에서 본 것은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만나는 벅찬 놀라움은 차치하고 캔버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말로는 아연실색했습니다. 바다가 그려져야 할 캔버스엔 어느 계곡을 배경으로 목욕하는 소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말로는 시선을 여러 번 그 캔버스와 그 너머 바다를 오가며 바꾸어 봤지만 그려진 장면과 그 앞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 일화는 회화의 상상력을 이야기할 때 곧잘 인용되곤 합니다. 르누아르는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습니다. 열심히 대상을 집중해 그것과 다른 사실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 일은 르누아르의 의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물감과 붓질에 의해 상식의 질서와 전혀 다른 논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치 꿈과 같습니다. 칼빈의 신학은 그의 평생에 걸쳐 사실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강요』도 그 내용에 관한 한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시간은 기억의 시간, 믿음의 시간, 개혁의 시간입니다. 마지막 판 서문에서 그는 그 개혁의 시간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기독교강요』 저술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죽기 5년 전 1559년 8월 1일 쓴 그의 평생의 개혁주의(Protestantism prtstntizm) 회오(會悟)가 담긴 『기독교강요』 마지막 서문입니다. 뜻깊은 순간이니 기도하는 자세로 읽고 감동을 촘촘히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EPISTLE TO THE READER.[prefixed to the last edition, revised by the author.] 독자에게 드리는 서신[저자의 개정 마지막 판에 덧붙인 서문] In the first edition of this work, having not 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 which God, in his boundless goodness, has been pleased to give it, I had, for the greater part, performed my task in a perfunctory manner(as is usual in trivial undertakings); but when I understood that it had been received, by almost all the pious with a favor which I had never dared to ask, far less to hope for, the more I was sincerely conscious that the reception was beyond my deserts, the greater I thought my ingratitude would be, if, to the very kind wishes which had been expressed towards me, and which seemed of their own accord to invite me to diligence, I did not endeavor to respond, at least according to my humble ability.성공(success skss)의 아주 작은 기대(expectation kspektin)조차 갖지 않은 이 저작(work wːrk)의 처음 판(edition idn)에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 선하심(goodness gdnis)으로 기꺼이 그것(success)을 주셨습니다. 나는 거의 대부분 형식적인(perfunctory pːrfŋktri) 태도(manner mnr)로(평소 하찮은trivial trvil 일들을 하듯이) 내 일(task tæsk)을 수행했었습니다(perform prfːrm). 그러나 내가 감히 결코 요하지도 않았고, 아주 조금도 바라지 않았던 어떤 호의(favor fivr)를 거의 모든 경건한(pious pis) 사람들에게서 받게 된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대접(reception rispn)이 내 공적(desert)는 발음과 악센트 위치에 따라 뜻 다른데 여기서는 세 번째 것을 선택 (des·ert¹ dzrt 사막) (desert² dizːrt버리다) (desert³ dizːrt 공적)에 넘치는 대우라는 것을 정말 의식하면 할수록(more mːr the ~ ..., the ~ …하면 할수록 더욱 더 ― The ~ I know Jesus, the ~ I like him. 나는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좋아집니다) 내게 표현해 주었고 그리고 내가 노력하도록 그들이 자발적으로 부탁하는 것 같은 아주 친절한 소망들에 최소한 내 변변찮은(humble hmb) 능력에 맞는 보답이라도 하고자 노력하지(endeavor endvr) 않는다면 나의 더 큰 배은망덕(ingratitude ingrttjːd)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This I attempted not only in the Second Edition, but in every subsequent one the work has received some improvement. But though I do not regret the labour previously expended, I never felt satisfied until the work was arranged in the order in which it now appears.이것을 나는 제2판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다음(subsequent sbsikwnt) 판에서도 그 저술에 다소 개선(improvement imprːvmnt)이 이루어지도록 시도했습니다(attempt tmpt). 그러나 내가 이전에 들인(expend ikspnd) 노동(labour libr)을 후회하지는(regret rigrt) 않을지라도 그 저작이 현재의 모습으로 정리될(arrange rind) 때까지 만족한(satisfied stisfid)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Now I trust it will approve itself to the Judgment of all my readers. As a clear proof of the diligence with which I have laboured to perform this service to the Church of God, I may be permitted to mention, that last winter, when I thought I was dying of quartan ague, the more the disorder increased, the less I spared myself, in order that I might leave this book behind me, and thus make some return to the pious for their kind urgency. 이제 나는 그 책이 모든 나의 독자들의 판단(judgment ddmnt)에 스스로 입증하리라(approve prːv) 믿습니다(trust trst).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이 봉사를 실행하기 위하여 내가 기울인 노력의 명백한 한 증거로 다음의 것을 언급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합니다(permit pːrmt). 지난겨울 나흘마다 앓는(quartan kwːrtn) 오한(ague igjuː)으로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 질환(disorder disːrdr)이 더 심해질수록, 이 책을 내 사후에 남길 수 있고 그들 나름의 절박한 필요(urgency ːrdnsi)를 위해 경건한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보답하기(return ritːrn) 위하여(in order that) 나 자신을 더 아끼지(spare spεr) 않게 되었습니다. I could have wished to give it sooner, but it is soon enough if good enough. I shall think it has appeared in good time when I see it more productive of benefit than formerly to the Church of God. This is my only wish.나는 그것을 더 빨리(sooner suːnr) 주기를 바랄 수 있었지만 그러나 어지간히(enough inf) 좋다면 그것도 상당히(enough) 빠른 것입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교회에 이전보다(formerly fːrmrli) 더 생산적인(productive prdktiv) 이익(benefit bnfit)을 주는 걸 내가 보게 될 때 그것이 알맞은 시기에(in good time) 출판되었습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wish wi)입니다. And truly it would fare ill with me if, not contented with the approbation of God alone, I were unable to despise the foolish and perverse censures of ignorant as well as the malicious and unjust censures of ungodly men.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허가(approbation prbin)만으로 만족하지(content kntnt) 않고, 내가 믿음이 없는(ungodly ngdli) 자들의 악하고(malicious mls) 불의한 비난들뿐만 아니라 무지한(ignorant gnrnt) 자들의 어리석고 심술궂은(perverse prvːrs) 비난(censure snr)들도 무시할(despise dispiz) 수 없었다면, 그 일이 여의치 않았을(fare fεr It has ~d ill with him. 그는 일이 여의치 않았다) 것입니다. For although, by the blessing of God, my most ardent desire has been to advance his kingdoms and promote the public good, -although I feel perfectly conscious, and take God and his angels to witness, that ever since I began to discharge the office of teacher in the Church, my only object has been to do good to the Church, by maintaining the pure doctrine of godliness, yet I believe there never was a man more assailed, stung, and torn by calumny.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blessing blsiŋ)으로 나의 가장 열렬한(ardent ːrdnt) 갈망이 주님의 왕국(kingdom kŋdm)들을 전진시키고(advance ædvns) 공공의 선을 증진시키기(promote prmut) 위한 것이었고, 그 이후 내내 교회에서 교사(teacher tːtr) 직무(office (ː)fis)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내가 완전히 자각하고(conscious kns) 있음을 느끼고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천사(indl)들 증거(witness wtnis)에 전념하고(take teik ~ to study 연구에 전념하다), 경건(godliness gdlinis)의 순수한 교리를 옹호함(maintain meintin)으로써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object bdikt)이었습니다. 하지만(yet jet) 나만큼 비방(calumny klmni)으로 공격받고(assail sil) 찔리고(stung stŋ ‘sting stiŋ의 과거·과거분사’) 찢긴(torn tːrn ‘tear tεr의 과거분사’ 같은 단어이지만 발음의 차이로 뜻이 달라짐 ‘tear tir’ 눈물) 사람이 일찍이 하나도 없었다고(never nvr) 나는 믿습니다(believe bilːv). [as well by the declared enemies of the truth of God, as by many worthless persons who have crept into his Church - as well by monks who have brought forth their frocks from their cloisters to spread infection wherever they come, as by other miscreants not better than they]. 하나님의 진리의 공공연한(declared diklrd) 원수(enemy nmi)들뿐만 아니라(well wel ‘as well as’ He gave me money s ~ s advice. 그는 조언뿐만 아니라 돈도 주었습니다. ‘as ~ ... as _’ ―하느니 차라리 …하는 편이 낫다, One might s ~ throw money away s spend it in betting. 내기에 돈을 거느니 차라리 그냥 내다버리는 게 낫겠다.) 주님의 교회에 몰래 들어온 많은 무익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가는 곳마다 전염병(infection)을 퍼뜨리기(spread spred) 위해 그들의 수도원(cloister klistr)들에서 성직자 옷(frock frk 여기서 ‘성직’을 의미)들을 만들어낸(bring briŋ ‘~ forth 산출하다’)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그들이나 다름없는(not better than) 다른 이단자(miscreant mskrint)들에 의해서도 (비방을 받았습니다). After this letter to the reader was in the press, I had undoubted information that, at Augsburg, where the Imperial Diet was held, a rumour of my defection to the papacy was circulated, and entertained in the courts of the princes more readily than might have been expected. 독자에게 쓰는 이 편지가 신문(the press pres)에 실린 후에 제국(imperial impril) 의회(diet dit 식이 요법, Diet 의회: the Imperial Diet 제국 의회는 세 개의 계열로 나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이 참여한 신성 로마 제국의 입법 기관이자 자문 기관. 가장 유명한 의회로는 제국 개혁이 이뤄진 1495년 의회, 루터를 이단으로 선포한 1521년 의회)가 열리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내가 교황파(papacy pipsi)로 변절(defection difkn)했다는 소문(rumour rːmr)이 퍼졌고(circulate sːrkjlit) 그리고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쉽게(readily rdli) 군주(prince prins)들의 궁전(court kːrt)들에서 환대를 받았다는(entertain ntrtin) 확실한(undoubted ndautid]) 정보(information nfrmin)를 받았습니다. This, forsooth, is the return made me by those who certainly are not unaware of numerous proofs of my constancyproofs which, while they rebut the foul charge, ought to have defended me against it, with all humane and impartial judges. 이것(소문)은 정말이지(forsooth frsːθ) 내 지조(constancy kn -stnsi)에 대한 수많은(numerous njːmrs) 증거(proof pruːf)들을 확실히(certainly sːrtnli) 알지 못하는(unaware nwr) 자들이 나에 대해 지어낸 보고서(return ritːrn)입니다. 한편으로(while hwail) 그들이 비열한(foul faul) 비난(charge tːrd)으로 반박하면서도 그것에 반대하는 나를 아주 인도적(humane hjuːmin)이고 공평한(impartial impːrl) 재판관(judge dd)들과 함께 변호하는(defend difnd) 것이 당연한(ought ːt) 증거들 말입니다(대적자들의 비난으로 활용하는 증거들이 오히려 칼빈이 반대하는 주장들을 그들의 판사들과 함께 변호해 준다는 역설). But the devil, with all his crew, is mistaken if he imagines that by assailing me with vile falsehoods, he can either cool my zeal, or diminish my exertions. I trust that God, in his infinite goodness, will enable me to persevere with unruffled patience in the course of his holy vocation. Of this I give the pious reader a new proof in the present edition.그러나 마귀(devil dvl ‘교황 지칭’)가 모든 그의 패거리(crew kruː)와 함께 야비한(vile vail) 거짓말(falsehood fːlshd)들로 나를 공격하는(assail sil) 것으로 나의 열정(zeal ziːl)을 식히거나(cool kuːl) 내 노력(exertion igzːrn)들을 감소(diminish dimni)시킬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imagine imdin) 착각(mistaken mistikn ‘mistake’의 과거분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무한하신(infinite nfnit) 선하심(goodness gdnis) 가운데 내가 그의 거룩하신 소명(vocation voukin)을 수행하는 동안에(in the course of) 흔들리지 않는(unruffled nrfld) 인내로 견딜(persevere pːrsvr)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trust trst]). 이것에 대해(Of this) 나는 경건한(pious pis) 독자에게 『기독교강요』 현재(pres·ent prznt) 판에서 새 증거를 드리고자 합니다. I may further observe, that my object in this work has been, so to prepare and train candidates for the sacred office, for the study of the sacred volume, that they may both have an easy introduction to it, and be able to prosecute it with unfaltering step; for, if I mistake not, I have given a summary of religion in all its parts, and digested it in an order which will make it easy for any one, who rightlycomprehends it, to ascertain both what he ought chiefly to look for in Scripture, and also to what head he ought to refer whatever is contained in it. 더 나아가(further fːrðr) 나는, 이 저술에 있어서의 나의 목적(object bdikt)이, 성직(聖職) 후보자(candidate kndidit)들이 신성한(sacred sikrid) 두루마리(volume vljuːm) 공부를 위해 그것(성경)의 쉬운 개론(introduction ntrdkn)에 접할 수 있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unfaltering nfːltriŋ) 걸음으로 그것을 실행할(prosecute prskjːt) 수 있게 그들을 준비시키고(prepare pripr) 훈련시키기 위한 의견이라고 해도(observe bzːrv)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실수한(mistake mistik) 것이 아니라면, 기독교(religion)의 모든 분야의 개요(槪要)를 나는 제시해 주었고, 그리고 그것(성경)을 바르게 파악하는(comprehend kmprihnd) 사람을 위해 그가 성서(scripture skrptr)에서 주로 무엇을 찾아야 하고, 성경 속에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어떤 표제로 언급해야 하는지도 확인하게 해 주기 위하여 성경이 어렵지 않게 차례대로 요약해(digest daidst) 주었기 때문입니다. Having thus, as it were, paved the way, as it will be unnecessary, in any Commentaries on Scripture which I may afterwards publish, to enter into long discussions of doctrinal points, and enlarge on commonplaces, I will compress them into narrow compass. 이렇게 해버리고 나니, 이를테면(as it were), 불필요하게 될 것이지만, 내가 나중에 출판할 수도 있는 어떤 성경 주석서(commentary kmntri)들에서 다룰 교리적(doctrinal dktrnl) 논점(discussion diskn)들에 대한 긴 토론(discussion diskn)들에 들어가고 그리고 내가 좁은(narrow nrou) 범위(compass kmps)로 압축하게(compress kmprs) 될 인용구(commonplace kmnplis)들에 대해 상술할(enlarge enlːrd)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pave the way 길을 깔다). In this way much trouble and fatigue will be spared to the pious reader, provided he comes prepared with a knowledge of the present work as an indispensable prerequisite. The system here followed being set forth as in a mirror in all my Commentaries, I think it better to let it speak for itself than to give any verbal explanation of it. 이렇게 하여 경건한 독자는 많은 수고(trouble trbl)와 노고(fatigue ftːg)를 아끼게(spare spεr) 될 것입니다. 만일(provided prvidid) 그가 없어서는 안 될(indispensable ndispnsbl) 기초 필수 과목(prerequisite prirkwzit)으로 현재 저서『기독교강요』의 지식을 갖추고 온다면 말입니다. 모든 나의 주석들에서 거울에서처럼(as in a mirror) 분명하게 설명하게 될 다음의 체계(system sstm)는 그것에 대한 말의(verbal vːrbl) 설명(explanation ksplnin)보다 그것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게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Farewell, kind reader: if you derive any benefit from my labours, aid me with your prayers to our heavenly Father. 친절한 독자여 안녕(farewell frwl). 당신이 내 노작(labour libr)들에서 어떤 이익을 얻는다(prayer prεr)면 우리의 하늘의(heavenly hvnli) 아버지께 당신의 기도(prayer prεr)로 나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Geneva, 1st August 15591559년 8월 1일 제네바 이렇게 죽기 5년 전 『기독교강요』 마지막 판 서문에서 칼빈 자신의 모든 심정을 털어놓은 뒤 마지막 개정 서문을 쓰고 독자들에게 안녕(Farewell, kind reader)이라는 인사까지 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추신(追伸)과 더불어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쓰기 경구(警句)를 덧붙입니다. The zeal of those whose cause I undertook, has swelled a short defense into a book.내가 맡아서 돌보는 사람들의 주장(cause kːz)을 위한 열정(zeal ziːl)이 간단한 변호(defense difns)를 부풀려 한 권의 책이 되게 하였습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Augustine, Epist. 7. “나는 이익(profit prfit)을 얻음으로 글을 쓰고(write rait), 그리고 글을 씀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profess prfs).” -아우구스티누스 서한집 7. 칼빈의 추신은 믿음으로 신자들이 당하는 오해와 어려움을 변호하다보니 그게 한 권의 책이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진실하게 변호하고 옹호했으면 우리 개혁주의의 경전이 될 『기독교강요』를 저술해 이 세상에 남기고 전하게 됐을까요. 마치 르누아르가 망막한 바다에서 깊은 계곡을 상상했고 인간 부재의 환경에서 아리따운 소녀를 상상하고 상상한 그대로 천연덕스럽게 그렸는데 말로가 보기에도 놀랄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신학의 시조 칼빈 자신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어 믿음의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유익된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너무도 감동적인 경구라 다시 한 번 더 인용합니다. 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학이나 기업이 표방하는 모토 중에 영어로 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영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지성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듯 다른 사람에게 영어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들려준다면 그 사람은 감격하고 당신을 올려다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I profess to be one of those who, by profiting, write, and by writing profit.”“나는 이익을 얻음으로써(by bai profiting prfitiŋ ‘바이 프라휘팅’) 쓰고 그리고 씀으로써(by bai writing raitiŋ ‘바이 라이팅’) 이익을 얻는(profit prfit ‘프라휘트’) 사람들(those ðouz ‘도우즈’) 가운데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profess prfs ‘프러훼스’).” 『기독교강요 영어수업』을 읽는 여러분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이익을 얻음으로써(by profiting) 쓰고 씀으로써(by writing) 이익을 얻는’ 그런 목사나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하면서 성공의 아주 작은 기대(the least expectation of the success)도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개혁주의로 변화시키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아주 작은 성공의 기대도 없이 출발하실 수 있지만 칼빈처럼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열매를 얻기를 바랍니다. 2020-07-20
    • G.QT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2020-07-20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1_ 그리스도인의 삶
    The cathedra of the Pope in the apse of St. John Lateran, the cathedral of Rome 그리스도인의 삶 전도자는 말하고 있다. “자고로 해 아래 새것이 없노라.” 이 해 아래 새로운 인종이 생겨났다. 이 인종에게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예수의 제자 바나바가 다메섹 가는 길녁에서 회심한 사울을 굳이 데리고 안디옥에 왔다. 그들이 그곳에서 한 일 년간 하는 일 없이 묵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이 새로운 인종에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종 명이 부여됐다. 새로운 인종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새로움에 걸맞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혹자는 그리스도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쯤이야 별 해로울 게 있겠느냐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도 여의치를 못했다. 그 당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병원들이란 게 거의가 치료의 신이라는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입원해 침대에 누워 끙끙거리고 있을 때 사제가 병원 복도를 시계추 마냥 오르락내리락하며 환자들의 치료를 돕는답시고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소가 되새김질하듯 읊조리고 다녔다. Statue of Asclepius, exhibited in the Museum of Epidaurus Theatre. 혹자는 그리스도인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야 뭐 어려울 게 있었겠느냐고 생각하며 눈을 말똥거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그리스도인에게는 형편이 썩 좋지를 못했다. 이유인즉 당시의 교과서들이란 게 이방 신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기술함에 있어서 이야기들이 아니라 참된 사실로 넙죽넙죽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과 관련된 일들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혹시라도 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인 조각가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직업에 종사함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은 고객들이 원하는 조각품에는 너나없이 우상 새기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주문을 받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인 조각가는 못마땅하여 외면해야만 했다. 그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한사코 행하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검투사들이 아귀다툼하는 격투장에 가지를 않았다. 로마인들은 단순히 군중의 즐거움만을 위해 전쟁 포로들과 노예들을 격투장에서 어느 한 편이 죽기까지 서로 싸우게 했다. 어느 한 편의 검투사가 힘에 부쳐 땅에 코를 박고 쓰러지면 관중들은 열광하며 엄지를 곤두세웠다가 아래로 틀었다. 그러면 숨을 몰아쉬며 코를 벌름거리며 눈을 흡뜬 검투사는 쓰러진 검투사의 목을 칼로 찔렀다. 피가 울컥 솟아 땅을 흠씬 붉게 물들이면 관중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들 했다. 오늘날의 우리들이 자그만 바보상자를 통해 타이슨의 쇠뭉치 같은 주먹을 얻어맞고 쓰러지는 복서를 보고 좋아하듯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연극들이 잔인하고 조잡했기 때문에 극장에 가지를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힘에 겨운 일을 혼자 이루려고 온 힘을 다하면서도 법정에 가지 않았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다툼이 생기면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발전해 교회의 감독으로 하여금 분쟁의 잘잘못을 가리게 했다. 교회의 감독은 카세드라(Cathedra)라고 불리는 의자에 앉아서 교인들의 다툼을 심리했다. 나중에 이 의자가 교회 안으로 옮겨지게 되자 그 교회를 카세드럴(Cathedral)이라고 불렀다. 카세드라 위에 비둘기가 한 마리 앉아 있었는데 이것은 감독이 올바르게 결정하도록 가르치는 하나님의 성령을 상징했다. São Paulo Cathedral, a representative modern cathedral built in Neo-Gothic style. 2020-07-18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7-18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 Lesson I 칼빈은 누구
    Lesson I칼빈은 누구Who is Calvin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칠판도 없고 숙제도 없고 벌도 없는 주일학교였습니다. 교회와 집 사이는 후다닥 걸어서 가면 단 오 분 거리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걱정이 없는 늘 포근하고 선물도 심심찮게 주는 학교였습니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귀한 것들을 이 주일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주일 저녁 텅 빈 교회 마당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산 위에서 보면 교회가 나뭇가지에 달린 하얀 박꽃입니다. 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 참새 같은 아이들이 쏙쏙 얼굴을 내밉니다. 분반 공부 끝나면 오늘 외운 성경 한 절 오늘 배운 찬송 한 곡 오늘 받은 과자 한 봉지로 불룩한 마음 교회 창밖을 보면 벚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습니다. 주일학교엔 숙제도 시험도 없습니다. 고함 한번 치지 않는데 회초리 한번 들지 않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갖 꽃나무 어린 싹들 찬송하며 자랍니다. 그리고 때 되면 열매 맺어 서로 나누며 믿음의 제 몫을 합니다. 나는 교인 누구나 목사님의 말을 듣는 게 좋아서 목사가 되었고 새벽기도가 좋아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가진 것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목사님 그 한 마디가 좋아서 평생을 웃습니다. 믿음 향기가 가득한 교회에서. 제 동창 친구 하나는 대학에 갈 때 영어가 싫어서 수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다보니 교과서가 전부 영어 원서였습니다. 영어는 라틴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문법이 꽤 복잡합니다. 간단한 예로 be 동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복잡함에 머리가 아플 겁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⑴ 변칙(變則)동사(anomalous verb)의 하나로 어형(語形)변화에 특징이 있음.⑵ 의문문을 만드는 데 주어와 도치되며 조동사 do를 쓰지 않음: He is busy.→Is he busy?⑶ 부정문으로 할 때에도 do를 안 씀: That is nice.→That is not 〔isn’t〕 nice. 다만, 명령형에서는 흔히 do를 쓰며, do를 쓰지 않는 것은 옛 형태: Don’t be a fool.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마라. Be not afraid. 《고어》 두려워하지 말지어다.⑷ 강조할 때 do를 사용치 않고 be 동사를 세게 발음함: She is [-z-] kind, indeed. 그녀는 정말 친절합니다. 다만, 긍정(肯定) 명령형을 강조할 때에는 do를 씀: Do be gentle to them. 제발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해 주게나. be 동사의 문법 일부가 이러니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영어 공부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도 전에 이미 질려버립니다. 하지만 이 고비들을 잘 넘기고 복잡한 문법 체계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확실히 공부하는 훈련이 됩니다. 어렵고 미묘한 문제와 마주해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래 해보면 깨닫게 되겠지만 영어 공부는 평범한 두뇌를 공부에 최적화된 두뇌로 활성화시키고 사고 체계를 넓혀줍니다. 실제로 영어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영문 자료를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대략 5-10억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대부분 선진국 국민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각 나라의 엘리트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생산해 내는 정보입니다. 신문, 잡지, 도서, 학계, 인터넷 등을 통해 영어 사용 인구가 생산해내는 정보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엄청납니다. 그러니 우리가 현대를 살면서 영어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는 사람은 개혁주의 신봉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독교강요』를 영어 번역본을 통해 그 진수(眞髓)를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교계에서 지도적 입장에 있는 엘리트(elite eilːt) 개혁주의자이거나 그것을 지향하는 신자일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선구자(forerunner)는 누구입니까. 칼빈(John Calvin)입니다. 칼빈은 누구입니까. 인터넷 시대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5,693,164 영어 항목의 무료 백과사전 Wikipedia(하와이어로 빠른‘quick’을 의미하는 ‘wiki’와 백과사전을 의미하는 ‘encyclopedia’가 합쳐진 이름)는 칼빈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John Calvin(French: Jean Calvin; born Jehan Cauvin; 10 July 1509 27 May 1564) was a French theologian, pastor and reformer in Geneva during the Protestant Reformation. He was a principal figure in the development of the system of Christian theology later called Calvinism, aspects of which include the doctrines of predestination and of 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 in salvation of the human soul from death and eternal damnation, in which doctrines Calvin was influenced by and elaborated upon the Augustinian and other Christian traditions. Various Congregational, Reformed and Presbyterian churches, which look to Calvin as the chief expositor of their beliefs, have spread throughout the world. 칼빈(John Calvin: 프랑스 이름 쟝 칼빈 Jean Calvin; 兒名 제앙 코뱅 Jehan Cauvin; 1509년 7월 10일 1564년 5월 27일)은 개신교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 기간 제네바의 프랑스인 신학자(theologian θːludin) 목회자(pastor pstr) 개혁가(reformer rifːrmr)였습니다. 그는 나중 칼빈주의(Calvinism klvinizm)라고 불리는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발전시킨 주요 인물이 되었습니다. 칼빈주의는 죽음과 영원한 저주로부터 인간 영혼의 구원에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 pridstnin)과 절대(absolute bslːt) 주권(sovereignty svrinti) 교리들을 포함시키는 견해(aspect spekt)들입니다. 그 견해들은 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주의(Augustinian)와 다른 기독교 전통들의 영향을 받고 잘 다듬은 것들입니다. 세계로 퍼져나간 회중교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등의 여러 교파가 칼빈을 그들 신조(belief bilːf)의 대표(chief tiːf) 해설자(expositor ikspztr)로 생각합니다. Calvin was a tireless polemic and apologetic writer who generated much controversy. He also exchanged cordial and supportive letters with many reformers, including Philipp Melanchthon and Heinrich Bullinger. In addition to his seminal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alvin wrote commentaries on most books of the Bible, confessional documents, and various other theological treatises. 칼빈은 많은 논쟁을 일으킨 지칠 줄 모르는 논증(polemic plmik)과 변증(apologetic pldtik) 저술가(writer ritr)였습니다. 그는 조직신학자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개신교 최초의 독일 루터교 조직신학자)과 불링어Heinrich Bullinger(16세기 스위스 종교개혁가)를 포함해 많은 종교개혁가들과 서신들도 주고받았습니다. 칼빈은 가장 독창성이 풍부한(seminal smnl)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성경 주석(commentary kmntri)들과 신앙고백(confessional knfnl) 문서(document dkjmnt)들 및 다양한 신학 논문(treatise trːtis)들도 저술했습니다. Originally trained as a humanist lawyer, he broke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 around 1530. After religious tensions erupted in widespread deadly violence against Protestant Christians in France, Calvin fled to Basel, Switzerland, where in 1536 he published the first edition of the Institutes. In that same year, Calvin was recruited by Frenchman William Farel to join the Reformation in Geneva, where he regularly preached sermons throughout the week; but the governing council of the city resisted the implementation of their ideas, and both men were expelled. At the invitation of Martin Bucer, Calvin proceeded to Strasbourg, where he became the minister of a church of French refugees. He continued to support the reform movement in Geneva, and in 1541 he was invited back to lead the church of the city. 원래 인문주의(humanist hjːmnist) 법률가(lawyer lːjr)로 훈련받은 그는 1530년 경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는 대폭적인 격렬한 폭력 사태로 종교적 긴장이 촉발된 후 칼빈은 스위스 바젤로 피신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27살 되는)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을 발행했습니다. 같은 해 칼빈은 제네바 종교개혁에 동참하라는 프랑스인 파렐(William Farel)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빠지지 않고 주일 내내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시의회는 그들 사상이 시행(implementation)되는 것을 거부했고 두 사람을 추방했습니다. 부서(Martin Bucer 16세기 독일 스트라스부르의 종교개혁가)의 초청으로 칼빈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네바 개혁 운동을 계속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1541년 제네바 교회로 돌아와 지도해 달라는 청빙을 받았습니다. Following his return, Calvin introduced new forms of church government and liturgy, despite opposition from several powerful families in the city who tried to curb his authority. During this period, Michael Servetus, a Spaniard regarded by both Roman Catholics and Protestants as having a heretical view of the Trinity, arrived in Geneva. He was denounced by Calvin and burned at the stake for heresy by the city council. Following an influx of supportive refugees and new elections to the city council, Calvin's opponents were forced out. Calvin spent his final years promoting the Reformation both in Geneva and throughout Europe. 돌아온 뒤 칼빈은 그의 권위를 꺾으려는 그 도시의 몇몇 세도 가문들(several powerful families)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형식의 교회 정치(church government)와 예배 모범(liturgy)을 소개했습니다. 이 시기에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다 이단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삼위일체(the Trinity)론을 지닌 스페인 사람(Spaniard spnjrd)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가 제네바에 왔습니다. 그는 칼빈의 탄핵을 받고(denounce dinuns) 시의회의 이단(heresy hrsi) 판결로 화형을 당했습니다(burned at the stake). 우호적인 피난민들의 유입(influx nflks)과 시의회의 새 선거들이 이어져 칼빈의 반대자들이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칼빈은 종교개혁(the Reformation rfrmin)을 제네바와 유럽 전역에 촉진시키면서 만년(final years 1564년 5월 27일 55세 소천)을 보냈습니다. Geneva 돈키호테가 그의 충실한 시종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내 친구 산초.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유토피아도 광기의 행동도 아니야. 그건 정의라네.” 돈키호테처럼 저도 제 후배 목사와 신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여보게, 내 동료와 후배들. 칼빈이 개혁주의로 세상을 바꾼 것은 사상도 행동도 아니네. 그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Righteous God)이라네. 2020-07-12
    • G.QT
    • 기독교강요 영어수업
    2020-07-12
  • 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10_ 어느 총독의 편지
    Painting of Jan Hus in Council of Constance by Václav Brožík. 어느 총독의 편지 늘 똑같은 일과가 시작됐다. 아침에 눈을 뜨자 황제는 대충 머리를 빗고 세수를 했다. 그래도 붙어있는 눈꼽을 검지로 때어낸 뒤 아침을 거른 채 집무실에 들렀다. 자기 의자에 몸을 앉힌 황제는 오늘을 어떻게 보낼까 하며 눈을 껌벅거렸다. 그런 그에게 각종 결재서류가 듬직하게 전달됐다. 상을 찌푸린 그의 눈에 편지가 한 통 눈에 얼핏 띄었다. 이 편지는 어느 속주의 총독이 오현제의 한 사람이라 일컫는 트라야누스에게 괴이쩍은 사안에 대해 보고하는 편지였다. 총독은 어찌했으면 좋을지를 현명한 황제에게 여쭙고 있었다. AD 1백 년 경에 씌여 진 이 편지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폐하, 소신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소신은 그런 송사를 이제까지 접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년들과 소녀들을 어른들처럼 혹독하게 벌을 줄까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만으로 벌을 줄까요? 아니면 그리스도인이라도 실제로 어떤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 벌을 주어야 될까요? 피의자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하면 풀어줘도 될까요?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한 사람들의 경우에 소신이 처리해온 바는 그들을 로마시민이면 로마에 송치하도록 했고, 로마시민이 아니면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소신이 믿기로는 그들이 아주 고집이 세기 때문에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소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존엄하신 황제 폐하의 제단에 분향을 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세 번이나 주었습니다. 소신이 듣기로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정해진 날 새벽 전에 모여서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전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도둑질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합니다. 그들은 또한 주의 만찬이라고 하는 공동식사를 먹기 위해서도 모입니다. 그들이 비밀 집회를 금하는 소신의 명령이 내려진 뒤로는 이걸 자제해오고 있기는 할지라도 말입니다. 소신은 여집사라고 하는 여자 노예들을 몇 명 고문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정신 나간 사상에 빠져 있다는 이상의 어떤 나쁜 것을 전혀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은 사상에 감동을 받아 신전들이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엄격한 법의 금지로 사람들이 황제의 신전으로 서서히 돌아들 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조치는 매우 잔인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 위정자들의 조치에 대해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도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한다. 로마제국의 법과 평화 속에서 여느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행했던 많은 것들을 그리스도인들은 못마땅하여 외면했다. 그러한 일들이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이방 종교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릇된 것들이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태도는 위대한 로마 사회의 시민들에게는 그릇되고 괴이하고 화를 돋우는 것이 되었다. 2020-07-10
    • G.QT
    • 이야기 세계 교회사
    2020-07-1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