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소강석 목사
코로나
내가 왕관을 좋아하는지 어찌 알고
이 겨울에 화려한 왕관을 만들어
내게 찾아 왔는지
네가 준 왕관을 쓰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직 내겐 왕관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어디서든 사랑을 행하라고 외치던 내가
너를 사랑으로 영접하지 못해서도 미안하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않는 척 하였지만
너는 나의 떨림을 알고 있었겠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아직 왕관을 두려워한 것은
내게 사랑이 부족했던 거야
미안하다 부디 겨울까지만 머물다가
다시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다오
이 겨울에 화려한 왕관을 만들어
내게 찾아 왔는지
네가 준 왕관을 쓰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직 내겐 왕관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어디서든 사랑을 행하라고 외치던 내가
너를 사랑으로 영접하지 못해서도 미안하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않는 척 하였지만
너는 나의 떨림을 알고 있었겠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아직 왕관을 두려워한 것은
내게 사랑이 부족했던 거야
미안하다 부디 겨울까지만 머물다가
다시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다오
*성경 요한1서 4:18에 나오는 말씀
결국은
사랑하는 날도 없었지만
헤어졌던 날도 없었습니다
고백이 없었으니 안녕도 없었지요
헤어졌던 날도 없었습니다
고백이 없었으니 안녕도 없었지요
중년의 어느 날
당신이 누워있는 병실로 가서
젊은 날의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누워있는 병실로 가서
젊은 날의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모든 배려는 다 해 주면서도
차마 당신의 머리맡에 가서
이미 지나버린 아픔을 고백하지 못했지요
차마 당신의 머리맡에 가서
이미 지나버린 아픔을 고백하지 못했지요
너무 빨리 회복되어 다시 떠나버린 당신
하지만 내 옆엔 당신의
하얀 그림자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옆엔 당신의
하얀 그림자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은 언젠가 묻히게 될 당신의 무덤 앞에
시든 수선화 한 송이를 가지고 가서
메마른 눈을 적셔야 하나요
그래도 입은 열지 않겠어요
시든 수선화 한 송이를 가지고 가서
메마른 눈을 적셔야 하나요
그래도 입은 열지 않겠어요
대신 내가 죽으면 내 무덤 앞에
시들지 않는 하얀 백합 한 송이 던져주세요
시들지 않는 하얀 백합 한 송이 던져주세요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 소강석 시집에서
나름 시를 찾아다니긴 했지만 허기진 빈 마음이었다. 이 시를 읽기 가장 좋은 때는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가 아닐까. 발바닥은 아프고 몸은 물먹은 솜 같고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온통 코로나로 정신이 멍해질 때 이 시는 찾아왔다. 우리는 홀연히 멜기세덱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 서성이는 코로나를 현미경으로 본 그 모양 때문에 왕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사랑. 나는 사랑을 모르고 사랑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사랑을 행하라고 외치던 내가 너를 사랑으로 영접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랑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인가.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실 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떠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헤어지게 되었다. 요즘은 발병의 소문이 무성하고 마음이 소란스럽다. 매일이 걱정스럽고 내일이 불안하다고 다 같이 수군거린다. 타인은 두려운 이가 되었고 서로를 믿는 대신 외로움을 택하는 쪽이 늘어났다. 모두들 이건 병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 그저 병 때문이기만 할까. 병이 사라지면 우리는 우리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면서도 배척하는 것은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퍽 오래전부터 감지되고 겪어 온 아주 슬픈데다 흔한 일이기도 하다.
그는 담백한 듯 처연하고 발랄한 듯 무너지는 감정을 탁월하게 다루는 감성의 시인이다. 아니 능력이 아니라 믿음을 갈아 우려낸 감성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일어설 마음이 없을 때 나는 소강석 목사의 시를 떠올린다. 오늘의 시에서도 시인 소강석은 속삭이고 있다.
사랑하는 날도 없었지만
헤어졌던 날도 없었습니다
고백이 없었으니 안녕도 없었지요
그래서 그것이 몹시 슬프지만 안녕도 없었으니 절망할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소강석 목사 10번째 시집 ‘꽃으로 만나...’ 출간
한번은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직업의 하나가 목회자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언제 시를 쓰시나요.”
“장소와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뭔가 떠오르면 읊조리고 종이에 옮기고…”
그러면서 선선한 소강석 목사는 휴대용 녹음기를 꺼냈다. 거기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싯구는 물론이고 흥에 겨워 부른 노래까지 담겨 있었다. 고단한 목회자의 삶을 지탱해준 쉼터이자 보물창고였다.
유쾌한 시인 소강석 목사의 10번째 시집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가 최근 출간됐다.
꽃은 먼저 주고 돌은 마지막에 던져라
예수는 여인에게 꽃을 주고 돌을 던지지 않았다
사랑할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꽃을 주고
미워할 일이 있으면 마지막에 돌을 던져라….(‘꽃과 돌’ 중)
20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