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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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계명 유일신
First Commandment
 
지난 2018년 7월 5일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었습니다. 그의 고향인 독일 트리어와 중국 공산당, 그리고 한국 일부에서 크게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의 공산주의는 그것을 따르는 사람에게 증오와 굶주림을 안겨줍니다. 그를 따르는 좌파 정권의 베네주엘라는 산유국(產油國)임에도 경제 붕괴로 망하기 일보 직전에 있습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1980년대 운동권 학생 책꽂이엔 주로 한 종류 책이 꽂혀 있었습니다. 마르크스 저작과 마르크스주의에 토대를 둔 ‘사회구성체론’과 ‘정치경제학’ 같은 책입니다. 서클 세미나에서 토론하려면 그런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 시대 청년 대학생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었습니다. 좌파 정권의 베네주엘라 지도자들처럼.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계 9:20-21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힌두교도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물경 3억 3천만에 달하는 신들과 여신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세대 당 여덟 신을 섬긴다고 합니다. 힌두교는 동물의 생명이 신성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비참하게 가난한 생활을 살면서도 동물들과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부양을 합니다. 동물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들의 집에서 하인을 둔 부자 주인 노릇을 하며 빈둥빈둥 살아갑니다. 인도의 4억 5천만 힌두교도들은 거의 7천 5백만에 달하는 소들을 경배하고 섬깁니다. 더욱이 그들은 그들의 농작물들을 먹어치우고 해를 주는 원숭이들과 쥐들과 여러 해충들까지도 내버려 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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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계명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하는 영역에서 시작합니다. 이 계명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힘을 다해 섬길 것을 요구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2-3). 이 말씀은 다른 신이나 현대의 무수한 우상들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섬기는 것도 이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또한 성공 소유 명예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요.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16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First Commandment.
I AM THE LORD THY GOD, WHICH BROUGHT THEE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BONDAGE.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제일 계명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16. The authority of the Law being founded and established, God delivers his First Commandment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The purport of this commandment is, that the Lord will have himself alone to be exalted in his people, and claims the entire possession of them as his own. That it may be so, he orders us to abstain from ungodliness and superstition of every kind, by which the glory of his divinity is diminished or obscured; and, for the same reason, he requires us to worship and adore him with truly pious zeal. The simple terms used obviously amount to this.
 
16. 창시되고 설립된 율법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그의 제일 계명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출 20:3)는 말씀으로 전하십니다. 이 계명의 의미(purport)는 여호와(the Lord)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에서 스스로 높임을 받으시고, 그리고 그들의 전체 소유를 그 자신의 것으로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That it may be so), 그는 모든 종류의 불신앙(ungodliness)과 미신을 끊을 것을(abstain æbstein)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그것으로(by which) 그의 신성의 영광이 감하거나(diminish) 흐려지게(obscure) 됩니다. 그래서 같은 이유로, 그는 참 경건한 열정으로 그를 경배하고(worship) 숭배하라(adore)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require). 명료하게 사용된 단순한 말씨(terms)가 결국 그 의미입니다(amount to this).
 
For seeing we cannot have God without embracing everything which belongs to him, the prohibition against having strange gods means, that nothing which belongs to him is to be transferred to any other. The duties which we owe to God are innumerable, but they seem to admit of being not improperly reduced to four heads: Adoration, with its accessory spiritual submission of conscience, Trust, Invocation, Thanksgiving.
 
왜냐하면 우리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embrace embreis) 않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으므로 이상한 신들을 갖지 말라는 금지(prohibition)는 그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든 어떤 다른 것에 결코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감당해야 할 의무들이 헤아릴 수 없지만(innumerable) 이것들을 네 가지로 줄인다고 해서 부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숭배(Adoration), 양심(conscience)의 보조적인(accessory) 영적 복종(submission)과 함께, 신뢰(Trust), 기원(Invocation), 감사(Thanksgiving)
 
By Adoration, I mean the veneration and worship which we render to him when we do homage to his majesty; and hence I make part of it to consist in bringing our consciences into subjection to his Law. Trust, is secure resting in him under a recognition of his perfections, when, ascribing to him all power, wisdom, justice, goodness, and truth, we consider ourselves happy in having been brought into intercourse with him. Invocation, may be defined the retaking of ourselves to his promised aid as the only resource in every case of need. Thanksgiving, is the gratitude which ascribes to him the praise of all our blessings.
 
숭배로 내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위엄(majesty)에 경의를 표할(homage) 때 우리가 그에게 바치는 존경(veneration)과 예배(worship)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숭배를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게 하는 요소로 생각하겠습니다. 지혜, 정의, 선, 및 진리 등의 모든 능력을 그의 것으로 돌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게(intercourse) 되는 것으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신뢰는 그의 완전하심(perfections)에 대한 인식(recognition) 하에 하나님 안에 머무는 보증(secure)입니다. 기원은 모든 종류의 필요의 유일한 자원(resource)으로 그의 약속의 도움에 우리 자신을 다시 맡기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모든 우리의 축복의 찬양(praise)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보은의 마음(gratitude)입니다.
 
As the Lord does not allow these to be derived from any other quarter, so he demands that they shall be referred entirely to himself. It is not enough to refrain from other gods. We must, at the same time, devote ourselves wholly to him, not acting like certain impious despisers, who regard it as the shortest method, to hold all religious observance in derision.
 
여호와께서 이것들이 어떤 다른 진영(quarter)에서 나오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는 것처럼 그는 그것들이 온전히(entirely) 그 자신에게만 돌려질 것을 요구하십니다(demand). 다른 신들을 삼가는(refrain rifrein)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을 완전히 헌신해야만 합니다. 모든 종교적 관례를 아주 헤식은 수단으로 우습게 아는 불경건한(impious) 조롱꾼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But here precedence must be given to true religion, which will direct our minds to the living God. When duly imbued with the knowledge of him, the whole aim of our lives will be to revere, fear, and worship his majesty, to enjoy a share in his blessings, to have recourse to him in every difficulty, to acknowledge, laud, and celebrate the magnificence of his works, to make him, as it were, the sole aim of all our actions.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의 마음을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 인도할 참 종교에 선행(precedence)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에 알맞게 젖게 될 때 우리 삶의 모든 목적이 그의 위엄을 존경하고(revere) 두려워하고 예배하게 될 것이고, 그의 축복의 한 몫(share)을 향유하고(enjoy) 모든 어려움에서 그를 의지하게(recourse) 되고, 그의 솜씨(work)들의 장엄함(magnificence)을 인정하고 기리고(laud) 경축하게(celebrate) 되고, 여호와를, 말하자면(as it were), 모든 우리 행위의 유일한(sole soul) 목적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Next, we must beware of superstition, by which our minds are turned aside from the true God, and carried to and fro after a multiplicity of gods. therefore, if we are contented with one God, let us call to mind what was formerly observed, that all fictitious gods are to be driven far away, and that the worship which he claims for himself is not to be mutilated. Not a particle of his glory is to be withheld: everything belonging to him must be reserved to him entire.
 
그 다음 우리는 미신을 조심해야(beware) 합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마음이 참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되고 많은 신들을 이리저리 쫓아다니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therefore) 우리가 한 하나님으로 만족한다면 앞에서 말했던 것을 회상하도록 합시다. 모든 가공의 신들은 멀리 쫓아버리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위해서 요구하신 예배가 훼손되어서는(mutilate)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의 영광의 한 미립자(particle)도 공제돼서는(withhold) 안 됩니다. 그의 모든 것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확보되어야(reserve) 합니다.
 
The words, “before me,” go to increase the indignity, God being provoked to jealousy whenever we substitute our fictions in his stead; just as an unfaithful wife stings her husband's heart more deeply when her adultery is committed openly before his eyes.
 
“내 앞에(before me)”라는 말은 무례(indignity)가 늘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가공물들을 그를 대신해 바꿀 때마다 질투를 일으키십니다. 마치 부정한 아내가 남편이 보는 데서 간음을 범할 때 그녀 남편의 심장을 아주 깊이 찌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Therefore, God having by his present power and grace declared that he had respect to the people whom he had chosen, now, in order to deter them from the wickedness of revolt, warns them that they cannot adopt strange gods without his being witness and spectator of the sacrilege. To the audacity of so doing is added the very great impiety of supposing that they can mock the eye of God with their evasions.
 
그러므로 그가 선택하신 백성을 그의 현존하는 권능과 은혜로 존중하신다고 선포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반역(revolt rivoult)의 불의(wickedness wikidnis)를 제지하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신성 모독(sacrilege)의 증인과 목격자가 되지 않고는 그들이 이상한 신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그들이 이상한 신들을 받아들이면 하나님 자신이 그 신성모독의 증인과 목격자가 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그런 짓을 하는 뻔뻔함(audacity)에 더해 그들의 핑계(evasion)들로 하나님의 눈을 속일(mock) 수 있다고 상상하고 아주 큰 불신앙(impiety)을 더합니다.
 
Far from this the Lord proclaims that everything which we design, plan, or execute, lies open to his sight. Our conscience must, therefore, keep aloof from the most distant thought of revolt, if we would have our worship approved by the Lord. The glory of his Godhead must be maintained entire and incorrupt, not merely by external profession, but as under his eye, which penetrates the inmost recesses of his heart.
 
이러기는커녕(Far from this)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구상하고(design dizain) 설계하고 또는 실행하는(execute eksikjuːt) 모든 것을 그가 환히 보고 계시다고 선포하십니다(proclaim proukleim).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의 찬성을 받는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면 우리의 양심은 그런 반역의 아주 먼 생각조차 계속 초연해야(aloof)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성(Godhead)의 영광은 외적인 신앙고백(profession)뿐만 아니라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으시는 여호와의 눈앞에서도 온전하고 청렴하게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칼빈의 이 가르침을 따르는 태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하나님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사귀고 일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분은 예수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러한 의무를 요구하시는가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는 말씀에 담겨있습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웨 엘로헤카(Yaweh Eloheka)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 계명을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참되신 하나님이시고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고 말씀하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유일한 신이십니다. 하나님을 존재하시게 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으시고 스스로 충족하십니다. 이렇지 못한 존재는 진정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무슨 신이라고 하는 열등한 존재들과 완전히 다르시기에 우리에게 최고의 예배를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다한 신들을 섬기기보다는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복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1-3
 
2019-01-09
나성열린문교회 박헌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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