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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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하비에르 카마라, 다리오 그란디네티
음악 :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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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속삭이라, 믿음으로 사랑으로

대저 ‘깊은 뜻’은 언어의 저 너머에 존재한다고 전해진다. 교언영색의 달콤한 꾸밈은 말 뒤에 숨은 칼날을 경계할 바이며, 구구절절한 장광의 변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를 무는 오해를 빚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부작용 없는 언어의 본질을 천착하기로 이심전심의 경지가 이야기되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제자들을 영산에 불러놓고 ‘한 송이 연꽃을 말없이 들어 보이자(拈華)’ 오직 가섭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微笑).’ 이에 석가가 가섭에게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 : 언어나 경전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뜻)’의 심법을 전해주었다. 저 유명한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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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마음에서 마음으로 무지개를 세운다 해도, 어쩌란 말인가. 알 듯 모를 듯한 상승의 경지가 비록 거룩하긴 하나, 가섭과 무릎을 맞댔던 석가의 수제자들도 넘지 못한 불립문자의 경지를 강파른 속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아가는 현대인이 어떻게 넘볼 수 있을 것인가. 설사 이심전심으로 텔레파시가 전해졌다 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바로 권력의 문제다. 가섭의 텔레파시는 절대자인 석가에게 전해짐으로써 소외를 극복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대중 속의 소외’가 극심한 현대사회에서는 어렵사리 텔레파시를 통한 상대가 권력과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일 경우 ‘다수의 횡포’로부터 ‘왕따’를 면키 어렵다.

영화 <그녀에게>는 이 미묘한 역설의 경계에 서 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불립문자의 레토릭으로 언어, 특히 음성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화의 원제목도 다. 알모도바르는 언어의 세계와 무언의 영역을 대립항으로 교차시키며 영화의 얼개를 짜나간다.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을 장식한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춤사위는 무언의 세계를 상징한다.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피나 바우쉬의 애절하고도 긴박한 <카페 뮐러> 안무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공연을 보던 한 남자가 감동을 못 이겨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데, 옆 자리의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가 그 모습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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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그노는 코마(혼수상태)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발레리나 알리샤(레오노르 발팅)가 그의 환자다. 베니그노는 자기가 본 공연이나 영화, 그 밖의 세상사를 쉴 새 없이 알리샤에게 들려준다. 베니그노의 ‘말 걸기’는 믿음이고 사랑이다. 말이, 말을 통한 사랑이 알리샤를 소생케 하리라는 믿음이다. 어느 날 알리샤의 옆방에 코마 환자가 새로 실려온다. 쇠뿔에 만신창이가 된 인기 투우사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와 그녀의 보호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베니그노는 마르코가 <카페 뮐러> 공연장에서 눈물을 흘리던 바로 그 남자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두 사람은 급속히 친해진다. 그러나 마르코는 베니그노가 권해주는 ‘말의 믿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언어와 무언의 경계에서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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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를 견인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사랑이다. 사랑 또한 염화미소의 개념에 속한다. 다정한 속삭임이 달콤하긴 하나, 내면 깊숙한 외로움이나 오해를 다 풀어주지는 못한다. 가족이나 친지 등 제3자까지 개입하는 갈등이라면 말은 이미 기능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지기 십상이다. 마르코에게 고백하기를, 베니그노는 짝사랑하던 알리샤를 돌봐주려고 간병인을 자청하여 4년째 남모르는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베니그노의 헌신적인 환자 수발은 그래서 남다른 데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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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힘’을 확신하지 못하는 마르코의 사랑은, 베니그노의 기이한 짝사랑과 상징적으로 대조된다. 이 씨줄과 날줄을 얼개로 삼아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를 한층 심오한 감성 속으로 밀고 들어간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상식으로 해독되지 않는 기이한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그 진정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뭇사람들의 상투성은 무시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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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 알리샤의 임신과 함께 플롯은 급물결을 탄다. 감옥에 수감된 베니그노는 마르코의 구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말 걸기의 믿음, 사랑의 힘을 증명하지 못한 채 영원히 무언의 세계로 입적하고 만다. 그러나 영화는 베니그노의 죽음과 함께 묵직한 감동의 아우라를 선사한다. 알모도바르 특유의 ‘모성의 유토피아’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장에 정겹고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도 더없이 절묘하게 조응한다. 이 대목에서 세계의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알모도바르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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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사우라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감독 알모도바르는 연출 초기부터 기괴한 성적 유머들, 양성애·동성애 혹은 도착적 욕망의 분방한 묘사, 죽음·부조리·혼돈의 자유로운 차용 등으로 비평계 일각에서 ‘악동’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알모도바르의 고집은 대표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에 이르러 “경계에 묶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솔직함이 배어나오는 ‘알모도바르 스타일’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으며 칸 영화제 감독상·심사위원특별상과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영화상을 30여 부문이나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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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모도바르는 <그녀에게>를 통해 거장의 반열로 훌쩍 뛰어올랐다. 특유의 스타일과 강렬한 원색의 영상미에 진솔한 예술의 향기를 흠뻑 가미한 것이다. 브라질이 낳은 세계적인 뮤지션 카에타노 벨로주의 <쿠쿠루쿠쿠 팔로마> 보컬은 심금을 파고들며 회상 시퀀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극중에 삽입된 7분여 분량의 무성 영화 <애인이 줄었어요> 테마는 알리샤의 임신과 베니그노의 죽음을 매개하는 득의의 상징으로 승화한다. 투우장, 무용학원, 전원 별장을 그린 시퀀스들과 장면마다 배경으로 잡힌 미장센들은 스페인의 문화를 탐미적으로 담아낸 영상미의 절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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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네 주인공의 캐릭터를 빚어낸 캐스팅과 연출력은 흔히 감상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다. 강하고 섬세한, 혹은 어눌하면서 신념에 찬 주인공들의 다중성격 연기가 진국이다. 시종 코마 환자로 자리보전을 해야 했던 ‘잠자는 미녀’ 레오노르는 연기의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이른바 ‘눈빛 연기’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절묘한 페이소스를 연상시키는 ‘피부 연기’ 차원이랄까. 이들을 카메라로 몰아가며, 때론 느리고 장중하게, 때론 가슴 저미게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감독의 메가폰에서 연륜이 뚝뚝 묻어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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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 기자 / 영화평론가

1990년부터 <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괴로운 글쓰기’의 업을 시작하였고, 1999년 영화전문주간지 <프리뷰>의 창간 편집장으로 숱한 밤을 새웠다. 2003년에는 중견 영화평론가 그룹 ‘젊은영화비평집단’의 회장을 맡아 비상업예술영화를 중심으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작은영화제>를 개최하였다. 2004년에는 각색을 맡아 작업했던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가 제34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MBC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영화평론집  『아웃사이더를 위한 변명』(2004, 심산)이 있다.

e-mail : bullwalk@naver.com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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