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25(목)
 

1949년 1월 29일 주일. 핍박을 피해 북한에서 내려온 10여 명의 신자가 서대문구 교북동의 한 창고에서 함께 드린 예배로 서대문교회는 시작되었다.


합동 측 서울노회는 제47대 총회장을 지낸 이환수 목사의 청암교회에서 통합과 결별하기 위해 1972년 5월 9일 제1회 정기회를 개최하며 창립했다. 앞서 2월에 열린 경기노회 제97회 1차 임시회에서 노회를 경기노회, 수도노회 그리고 서울노회로 분립한다는 결의가 발판이 됐다. 


서울노회는 창립 3년 만에 총회장을 배출했다. 1975년 제60회 총회에서 장성칠 목사(서대문교회)가 총회장으로 당선됐다. 이듬해 1976년 제61회 총회에서 또다시 서울노회 황금천 목사(서울홍성교회)가 총회장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서울노회는 근 반세기 50년 뒤 2025년 9월 22일 제110회 총회에서 서울노회 소속 서대문교회의 장봉생 목사가 세 번째 총회장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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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4일 서울노회는 서울서교회(이병렬 목사)에서 제108회 정기회를 통해 총회장 장봉생 목사와 함께 축하와 감사의 시간을 나눴다. 


미래로함께위원장 김봉수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서 교단과 교계 주요 인사들이 장봉생 총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며 영상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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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회장 정영교 목사,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 화종부 목사,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 등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서울노회 선배 목회자와 장로의 격려와 조언도 이어졌다. 증경노회장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는 말했다.


“총회장 아무나 합니까. 우선 장봉생 목사가 총회장이 된 것은 가문의 영광입니다. 두 번째로 총회장을 배출한 서대문교회에 영광입니다. 끝으로 우리 서울노회가 자축할 일입니다. 나는 장봉생 총회장이 우리 교단 역사에 길이 남는 총회장이 되길 바랍니다.”


제104회 총회회계를 지낸 이영구 장로(서현교회)는 말했다.


“장봉생 총회장이 공약을 실천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을 믿습니다. 또한, 다음 세대를 거목으로 키울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총회장이 될 것입니다. 110회 총회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교단 총회 역사에 길이 남을 총회장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그냥 지나가는 1년 총회장이 아니라 교단 역사에 크게 공헌하는 정책 총회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정치꾼들이 말하는 그런 총회가 아니라 정책이 총회를 주도하기를 바랍니다. 과감하게 흔들리지 말고 초심 그대로 아름다운 총회를 세우고 나아가는 그런 총회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 교단의 총회장은 단순히 우리 교단 안의 총회장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한국 교계를 선도하고 대표하는 교단입니다. 한국 교계 전체에 신학적 영향을 미치고 아름다운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노회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장봉생 총회장이 단상에 섰다. 장봉생 총회장은 묵직한 입을 열었다.


“우리 서울노회가 선거를 함께 치러주고 제110회 총회 4박 5일 기간에 같이 섬겨주셨고 총회 여러 분야에서도 1년 동안 많이 도와주실 것을 압니다. 잘하겠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잔잔한 박수를 치고 노회원들이 기립해 ‘축복의 통로’를 우렁차게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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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뜨거운 박수 뒤 총회장 장봉생 목사 사역을 위해 서울노회 헌신을 위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피아노 간주 속에 뜨거운 통성 기도가 2분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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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회 제110회 총회장 축하 예배 마침 기도를 위해 1976년 제61회 총회장 황금천 목사가 1958년 개척한 서울홍성교회 원로 이근수 목사가 단에 섰다. 이근수 목사는 총회신학교 이사, 교회갱신협의회 공동회장을 맡아 사역을 한 바가 있다. 조기 은퇴 모범을 보인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마침 기도자 순서임에도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기도하기 전에 잠깐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왜 이야기를 하냐면 서대문교회가 힘들었을 때 이신 장로님하고 박원순 장로님이 저희 교회 오셨습니다. 저에게 임시 당회장을 부탁했습니다. 제가 못 간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습니다. 이신 장로님 무서워 그런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꼭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갔습니다. 그런데 임시 당회장을 한번 한 게 아니라 세 번 했습니다. 그런데 장봉생 목사님 오실 때 분위기가 좋고 그래서 목사님을 서대문교회에 모시게 됐습니다. 제가 그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대문교회는 이신 장로님하고 장봉생 목사님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박수를 쳤어요. 제가 장봉생 목사님하고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어젯밤에 장봉생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안 나와요. 걱정이 되는 거예요. 기도가 안 되는 겁니다. 무슨 걱정을 했냐 하면 나라가 너무 어렵잖아요. 목사가 구속됐어요. 목사가 수색을 받아요. 교회가 수색을 받아요. 대통령이 탄핵이 됐어요. 정부와 정치가 좌우로 나뉘었어요. 저는 1987년도에 목회를 그만두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PD(People's Democracy Faction; 民衆民主派)이니 NL(National Liberation Faction, 民族解放派,)이니 이런 책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공부하고 교회도 시끄럽고 학교도 소란스럽고 목회가 너무 힘들었어요. 학생들이 구속되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목회를 마치고 은퇴를 하고 싶었습니다. 


(1947년생인 이근수 목사는 1986년 2월 40세에 장년 400여 명의 홍성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21년 뒤 2007년 12월 1,200석 규모의 이름을 바꾼 서울홍성교회 지하 4층, 지상 7층 규모의 4,300평 새 예배당 봉헌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5년 뒤 시무 26년 되는 2012년 12월 22일 65세에 조기 은퇴했다.) 


앞날이 염려가 돼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까 나라가 걱정이 돼요. 교계가 걱정이 돼요. 장봉생 목사님 축하만 받을 일이 아니라 너무 걱정이 돼요. 우리 교단이 큰 교단이라고 그러는데 장자 교단이라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기도가 되지 않고 잠이 안 와 두 시까지 잠을 못 잤어요. (회중을 둘러보며) 여러분 잘 주무셨어요?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년 2월 4일~1945년 4월 9일)라고 하는 독일 목사가 계세요. 그는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1945년 4월 30일)의 나치(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정권에 저항을 해 36살에 체포돼 1945년 4월 9일 39살에 처형당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20일 전에 교수형 당했습니다. 우리하고 신학은 달라요. 그의 신학은 자유주의라고 해요. 당시 나치를 추종하는 교인은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추앙을 했어요. 본 회퍼는 '아니다'라고 반대했어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악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악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말로 36세에 체포가 돼 3년 동안 구속됐다가 39세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잠이 안 오는 겁니다. 장봉생 목사 걱정이 되는 거예요. 총회장 이게 엄청 힘든 일입니다. 장봉생 총회장 정말 힘들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총회장이 됐는데 축하하고, 축하하고 이렇게만 해선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어요. 장봉생 목사를 앞에 내세워서 우리 증경 노회장과 우리 손님들이 모두 기도를 해 내보내서 이 총회를 그리고 한국 교계를 잘 인도하시게 합시다. 저는 개혁 아니 정책 총회를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패러다임의 전환)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지배적인 이론이나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해요. 한국 교계가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야 돼요. 


우리가 왜 총회장을 세우려고 했어요. 잘 하시라고 똑바로 하시라고 제대로 하시라고 총회장 되시라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 앞에 의자 갖다 놓으시고 장봉생 총회장님 그 의자에 앉으세요. 그리고 증경노회장들, 목사님, 장로님들 나오셔서 장봉생 목사님 몸에 손을 대고 파송을 합시다. 뭐라고 파송을 하느냐. 죽으라고 보내야 합니다. 교계를 위해서 죽고 나라를 위해서 죽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총회장이지. 지금 이 어려운 때에 축하만 받고 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제가 어젯밤 생각하고 붙든 것입니다."


강대상 앞에 의자가 놓이고 장봉생 총회장 앉고 목사 장로들이 둘러섰다. 피아노 간주가 울렸다. 이근수 목사가 말을 이었다.


"김윤배 목사님, 김경원 목사님 앞으로 오세요. 아우가 총회장이 됐잖아요. 걱정이 돼 잠이 안 오더라구요. 제가 장봉생 목사 당회장 세웠는데 또 총회장이 되셨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장봉생 목사에게) 의자에 앉으세요. 무릎 꿇지 않아도 돼요. 총회장 많았어요. 김경원 목사님 말처럼 총회장 지나가고 지나갔어요. 우리 교단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서울노회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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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마도 장봉생 목사를 총회 110년 역사에 총회 산하 노회에서 교단 총회에 총회장으로 파송하는 최초의 안수 기도식이 거행된 것 같다. 이근수 목사가 마침내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대한민국 선교 140주년입니다. 총회 새 스텝입니다. 서울노회 107회에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한 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합동 측 총회장으로 장봉생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책임이 큽니다. 너무 짐이 무겁습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그래서 총회장이 되었지만, 염려가 많습니다. 총회, 교단, 신학교, 패러다임 시프트가 패러다임 시프트 업(up)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200주년을 대비하고 한국교회 위상을 바로 세워서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교회를 만드는 총회장이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회중 큰 아멘)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우리 교단이 한국교단에서 제일 큰 교단이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모두 힘을 모아서 협력해서 우리 장봉생 목사님을 세웠사오니 후원하고 협력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귀한 성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7배나 더하여 주옵소서. (회중 큰 아멘) 스룹바벨 시대의 여호수아같이 사용해 주옵소서. 영육 간에 건강, 가족 간의 평강, 그리고 두 번씩이나 총회장을 배출한 서대문교회에 더 큰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 서울노회에 은혜를 주셔서 총회를 잘 섬기는데 앞장 서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큰 아멘) 임기를 마친 후 더 큰 감사 더 큰 축하를 받는 참으로 명예로운 장봉생 목사님 총회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회중 큰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회중 큰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회중 큰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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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교만에 찌든 권력은 반드시 실패한다. 일당독재를 통해, 강력한 독일, 뛰어난 혈통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히틀러의 오만과 교만에 찌든 국가관과 정치관 때문에 결국 독일은 일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사건의 피의자가 되었다. 1000년 왕국을 꿈꾸었던 나치당은 불과 10여 년 사이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악마성을 영원히 인정받아오고 있다. 한 시대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또한 선택한 그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갔다.


1945년 4월 9일 아침, 디트리히 본회퍼는 교수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간절한 기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새삶의 시작입니다.” 


20세기, 39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본회퍼의 신학 사상의 영향력은 컸다. 그러나 그의 삶을 통해 보여준 `교만한 권력에 굴하지 않는 용기`는 무엇보다 큰 감동으로 남는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치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한 순교자이기 이전에 뛰어난 신학자였다는 사실은 신학을 공부할 때에 시대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 곧 신학수업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역사적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단순히 돌팔매의 힘이 아니라 신앙의 힘이었다고 많은 사람이 해석한다.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설교는 신앙의 힘이 배제된 것이다. 


우리의 총회와 노회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총회는 노회와 잘 대화해야 하고 대화를 위해서는 경청해야 한다. 그러한 경청과 대화 속에서 원만히 총회와 노회는 추슬러질 것이다.


그렇게 추스르는 일이 바로 정치다. 질서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추스름을 통해 간신히 확보되는 아슬아슬한 연합 상태의 유지일 것이다. 사회학 성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의 법률가, 정치인,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년 4월 21일 ~ 1920년 6월 14일)는 정치를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정의했지만 말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7-9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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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이근수 원로목사 장봉생 총회장 총회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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