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을 낚아서 싱싱할 때 회를 친다. 어선을 회 치니 총회는 말씀 칼 닿는 곳 너무 깊고 너무 아득하다. 바람이 인다. 어선이 흔들린다. 바람은 성령에게서 온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툴라의 작은 마을 ‘야스나야폴랴나’ 영지에서 태어나 팔십 평생 중 오십여 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광활한 녹색 대지와 생명으로 충만한 숲에 둘러싸여 거장은 집요하게 삶을 성찰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본질인가. 본질이 아닌 것이 모두 제거된 상황에서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참회록’을 기점으로 그의 거의 모든 저술은 이 문제의 답을 인간 내면에 있는 ‘신성’에서 찾는다.
제108회 총회장 후보 오정호 목사를 비롯해 총회 임원 후보들은 2023년 9월 5일 남부산교회(황인철 목사)에서 정견발표회를 가졌다.
제108회 당연직 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말씀합니다. 제108회 총회 슬로건을 ‘교회여 일어나라’로 정했습니다. 우리 교단의 가장 중요한 영적 자산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목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바깥에 보이는 모습과 제 속사람과 앞모습과 뒷모습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별히 저는 작년 부총회장에 출마했을 때 많은 분들이 저를 밀어주시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성원과 뜻을 가슴에 새기고 주님의 역사하심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총회가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일이라면 저는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깨끗한 총회장이 되겠습니다. 이권에 전혀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총회 위상이 높아지는 일이라면 저는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목회 계승 3대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제가 섬기는 새로남교회와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준 서대전노회와 대전의 네 개 노회와 총회를 위해서 이 한 몸, 주의 제단에 드려 민족의 복음화와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책이 앞서고 개혁적이며 모두를 환대하고 결과로 칭찬받고 질서가 세워지고 열매가 풍성한 개혁총회를 세워가겠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총회와 교회들이 통일 이후 재력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따라 이북에서 내려온 동포들을 먹이고 재우고 교육하는 사랑을 실천한다면 국가의 능력으로는 미처 감당하지 못할 여러 난제를 해결하여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자연스레 선교가 이뤄질 테니 개혁주의 총회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더욱 세가 확장되고 몇몇 부정적인 면모가 그 뿌리부터 일신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시간과 시련이 필요한 법이다. 이게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목사가 외치는 코람 데오의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놀라운 계획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존 칼빈(John Calvin) 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은 종교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의 개혁주의 신학자 및 종교개혁가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것과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은혜를 강조하였고 개혁주의라고도 불리는 기독교 사상 중 하나인 칼빈주의(Calvinism)의 시초를 놓았으며 마틴 루터, 츠빙글리가 시작한 종교개혁을 완성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칼빈은 상공업자들이 불리한 신분 사회에서 직업 소명설로 평등을 보장하였다. 신학자이며 스코틀랜드의 자유 교회의 공동 창립자 윌리엄 커닝햄(1805년 10월 2일 -1861년 12월 14일)은 칼빈이 사도 바울 다음으로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았다. 영국을 부흥으로 각성시킨 침례교 목사 찰스 해던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년 6월 9일 - 1892년 1월 31일)은 말했다.
"오래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칼빈이 만들어 놓은 체계가 완전에 가깝게 생각된다."
칼빈의 신학을 지배하는 원리는 인간론적이거나 구원론적이거나 교회론적이라기보다도 신학적이다. 튜빙겐 학파의 영향으로 신학적 발전을 이루었고 칭의 교리를 신학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았던 칼 홀(Karl Holl, 1866년 5월 15일 - 1926년 5월 23일)은 이렇게 지적했다.
“칼빈의 신학적 활동의 중요성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그 중심에 놓은 데 있다. 칼빈의 모든 개별적인 문제들은 하나님의 개념에서 절정에 이른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주석들과 설교들과 논문들을 검토해 보면 어디든지 칼빈은 하나님 중심 사상, 즉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기독교 강요'의 주제는 첫 문장에서 드러난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들에 대한 지식으로 나뉘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타고나거나 세계를 관찰해서는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선 성경을 이정표이자 교사로 삼아야 한다."
'기독교 강요' 1권의 마무리에서 칼빈은 섭리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강론했다.
"능력으로 그가 창조하신 세상을 품으시고 보존하시는데 섭리로 세상을 이루는 부분 모두를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나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좋든 나쁘든 항상 하나님의 뜻과 판단하에서 이루어진다."
제108회 총회장에 취임할 오정호 목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바로 칼빈의 사상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 김영우의 입발림 사이비 개혁주의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칼빈은 김영우처럼 혀놀림이 현란한 스페인 아라곤 출신의 의학자이자 신학자인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09년 혹은 1511년 9월 29일~1553년 10월 27일)의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조롱하는 행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이단으로 고발하고 제네바 시의회는 그를 극형인 화형에 처했다. 세르베투스가 죽은 후 칼빈은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칼빈은 제네바 대학교를 세우는 등 제네바와 유럽 양쪽에서 종교개혁을 추진하는데 말년을 보냈다.
칼빈은 1564년 5월 27일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제네바에 묻혔으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무덤을 보러 왔기 때문에, 다른 개혁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성인 숭배 사상을 배양했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했다. 결국 다음 날, 왕립묘지의 아무 표지도 없는 무덤에 묻혔다.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19세기에 칼빈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무덤을 표시하기 위해 석비 하나가 설치되었다. 칼빈 같이 오정호 목사도 신학의 정체성을 잃고 재정만 걱정하는 총신을 바로 세우고 통합 이후 이영수 목사 시대보다 못한 자칭 광대 소강석이 판을 치는 총회를 개혁주의로 이끄는데 헌신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성경은 말씀한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 27:54
2023-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