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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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와 같은 충청도 생긴 것도 비슷한 
반기문 ‘애매 화법’의 한국 1인자
미국인들 가장 싫어하는 욕 “거짓말쟁이(liar)”
서천읍교회 단 1년도 제대로 시무하지 않고 
총신총장도 별정직이라 이중직이 아니라는 
변명의 달인 김영우

전국을 둘러보면 전국 어디에나 교회가 있고 들어보면 어디에나 메시지가 있다. 설교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주위에 있다. 메시지가 반드시 내 안에 들어와 마음을 휘저어 놓고 나갈 필요는 없다. 인생을 진지하게 묻지 않는다고 메시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소한 메시지, 평범한 메시지가 그립기도 하고 그것이 잔잔히, 그러나 더 오랫동안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유태영(서광교회)이 능력 있는 목사라는 소문을 진즉에 들었다. 이제야 인연이 닿아 그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4월 24일 주일 전주에 있는 서광교회에서였다. 그가 들려준 메시지는 본문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제목 ‘길이 있습니다’였다. 

유태영의 메시지 자체는 단순하다고도 할 수 있다. 별다른 극적 사건도 없고, 생의 진리를 새삼 만나게 될 만한 기발한 사고 전환도 없다. 유태영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주제에 충실하면서 시종일관 조용하게 전하려고 애썼다. 그는 뜨거운 환호보다도 더 오래도록 가슴을 흔드는 잔잔한 마음의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그는 강조할 때도 부드럽게 말했다.

둘러보면 어디에나 메시지가 있고 들어보면 어디에나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항상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 메시지와 메시지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고,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로 만들며 우리 마음에 잔잔히,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메시지로 바꾸어 놓는 좋은 설교자가 있어야 한다. 그 순간 ‘길이 있습니다’는 어느새 나의 길이 된다. 그것이 목사의 힘이고 좋은 설교의 신비다. 듣기 좋은 중간 톤으로 전한 그의 메시지는 20분 남짓이었다.

야곱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에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인생의 길을 걷는데 내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 입니까.
...
길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 길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통행 수단으로서의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니고 차가 다니고 기차가 다니는 통행로를 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할 사람의 도리를 길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 윤리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총회에서 교정선교회라고 하는 상비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부산교도소에 갔습니다. 거기서 설교를 하기 전 찬양 순서가 있었습니다. 모두 너무도 열심히 찬양을 합니다. 교도소 안에 가게 되면 풍금을 치는 분, 기타를 치는 분, 찬양을 인도하는 분 여러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한 젊은 분이 너무나 잘 해서 제가 같이 간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저 청년 너무 잘 합니다.”
“저 청년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모르는데요.”
“구미 어느 교회 권사님 아들인데 생활금고를 털다가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그 청년과 악수를 하면서 말을 나누는데 “목사님,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고 하는 겁니다. 얼마 전에 순천교도소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친구 목사님 교회 다니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아니 한 2년 못 봤는데 여기 있었다는 말이냐. 어떻게 여기 왔느냐.”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는데 자기 길이 맞는 것 같고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것은 사망의 길이다...

여러분 길을 가는데 필요한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목적지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출발점이 있기 때문에 종착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 육신이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죠. 영혼은 하나님께로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정신없이 사는 사람은 목적지가 없이 삽니다...

여러분 인생의 종착지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천국가든지 지옥가든지 가봐야 알겠습니까. 우리 앞길에는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 마태복음 7장에서 말하는 길입니다. 좁은 길은 좁기 때문에 가기 힘들어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가면 갈수록 편해지고 축복의 길이 됩니다. 넓은 길은 넓고 평평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그 길은 어두워지고 절망과 멸망의 길이 됩니다. 여기서 좁은 길은 천국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넓은 길은 지옥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 말고 죄를 말하지 말고 헌금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빼면 어찌 되겠습니까.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교도소의 그 형제처럼 ‘내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말하겠습니까... 

인생길에는 안내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키르케고르는 ‘우리 인간은 불안이라는 열차를 타고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안내자 동반자가 누구이십니까. 어려서는 부모 나이가 들어서는 반려자 늙으면 자식들이 안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는 없습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내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와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시며 붙들어 주시며 위로해 주시며 격려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황혼이 다가옵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하리라’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나를 붙잡아 주실 분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와 보호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그 길‘이라는 위대한 선언을 해 주셨습니다...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고 행복한 사람이 더 행복해 질 수 있고 밀려난 사람들이 위로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있습니다. 

왜 사는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병들고 불행한 사람들이 고침 받고 새롭게 태어나는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 갈등과 증오와 불평이 사라지고 화해와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내가 그 길이다‘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길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길이신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길 되신 그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길을 찾으십시오. 여기서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길 되신 주님과 함께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내자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 느낌표로 끝난 내 영혼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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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의 메시지가 절대 필요한 김영우와 같은 충청도 출신이고 생긴 것도 비슷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애매 화법’의 한국 1인자다. 그런데 그런 화법의 일본 1인자는 단연 아베 신조 총리다. “지금 현재로선…” 같은 정치인 특유의 ‘조건부 어법’은 기본. 반 총장 저리 가라 할 ‘기름장어 화법’이 주특기다. 그런 아베 총리가 너무나 단호한 표현을 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1년 반 전인 2014년 11월 18일 저녁 관저 회견장에 선 아베 총리는 “원래 내년(2015년) 10월에 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리기로 약속했지만 연기하려 한다. 하지만 18개월 후(2017년 4월)에는 ‘반드시’ 올린다. 여러분께 분명히 ‘단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는 1일 또다시 소비세 인상을 2년 반 연기했다. 시무도 하지 않는 서천읍교회 시무목사면서 총신 총장직이 이중직이 아니라는 김영우처럼 아베도 “지금까지의 약속과는 다른 새로운 판단”이란 알 듯 모를 듯한 이유를 댔다. 근데 ‘2년 반’ 뒤면 그가 퇴임한 후다. 더 웃기는 건 핵심 인사들이 하귀호처럼 군소리 없이 “넵. 알겠습니다”를 복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베가 용의주도하게 여권 지도부 인사들을 하귀호나 주진만처럼 다독여 주었기 때문이다. ‘네마와시(사전 정지작업)’가 ‘약속’보다 상위 가치인 일본식 ‘배려 문화’의 일단이다. 그들에게 가장 심한 욕은 “예의(배려심) 없는 놈”이다.

한국은 어떨까. 반 총장 방한 당시 야당에서 나온 “노무현과의 의리를 지켜라”는 말에 답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에서 쪽박을 차면서도 손보려 했던 것도 ‘배신의 정치’였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친구, 회사, 심지어 연예인 섭외에서도 으뜸 가치는 의리다. 일부 총회 정치꾼들도 하나님의 믿음이 아니라 시정잡배들의 이해관계에 따르는 의리에 의지해 정치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총회 정치를 한답시고 부정선거의 금권, 납골당 기금, 아이티 구제 헌금 등을 나누어 가지며 불의한 의리를 다졌다. 

그러면 미국은 어떨까. 1987년 미국에 1년 살아보니 예의는 없어도 별문제 없다. 배려심이나 의리 따윈 더더욱 없다. 총회 정치권과 달리 다만 말을 뒤바꾸거나 거짓말을 하는 건 설 자리가 없다. 흥미로운 건 ‘막말 대장 트럼프’보다 ‘거짓말 대장 힐러리’에 대한 상대적 비호감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막말 100개보다 “(3만 개의 e메일이 있던) 내 개인 e메일 서버는 남편과 e메일을 주고받기 위한 것이었다(힐러리)→난 평생 단 두 통의 e메일밖에 쓴 적이 없다(빌 클린턴)”는 힐러리의 악의적 거짓말 1개에 더욱 분노한다는 말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욕이 “거짓말쟁이(liar)”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힐러리를 ‘부정직한 힐러리(Crooked Hillary)’라 명명해 공격하는 트럼프의 감각은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압권이다.

앞으로 5개월 남은 미 대선에서 분명한 건 주위 사람들이 하도 권해서 부총회장 후보로 나왔다는 김영우 같은 반기문의 ‘애매 화법’이나 총신 총장은 별정직이라 이중직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하귀호 같은 아베의 ‘기름장어 화법’ 같은 건 통하지 않는 진검승부의 전장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제 실제로는 서천읍교회도 제대로 시무하지 않았고 총신총장도 별정직이라 어느 법에도 걸리지 않는 변명의 달인 김영우는 이 찬란한 6월 총회 대들보 정용환과 섬뜩한 진검승부의 결투장 출전을 위해 6월 10일까지 거금 7000만 원을 내고 등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3개월 뒤 총회 현장에 후보이든 총회 결의 위반자이든 어떤 모습으로든 총회 현장에 반기문 얼굴과 혀로 서야 할 것이다. 그러면 유태영이 전하는 메시지가 그의 귀를 맴돌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는 황혼이 다가옵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하리라’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나를 붙잡아 주실 분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반기문과 아베 같은 김영우가 사법에 의지하는 가처분이나 정치꾼들을 전부 매수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총회 현장에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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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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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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