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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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회 총회 끝나고 199,000원 내고 예약한 패키지여행 상품에 실려 마닐라에 도착했다. 저녁 먹고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마닐라 거리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차가 막힌 길에 배수로가 힘에 겨워 물을 게워내자 길가는 개울이 되었다. 차가 다니는 차창 밖 흐르는 그 개울에 아이들이 남녀가릴 것 없이 한 여름 뚝섬 야외 수영장처럼 뛰어들어 물놀이했다. 그 빗물은 하늘에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쏟아지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땅에서 그들의 기쁨을 위해 괴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안다. 비가 새는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걱정이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안다. 그런데 이 필리핀 마닐라의 아이들은 지붕이 없는 거리가 그들의 집이고 빗물은 그들의 샤워기다. 그래서 비가 새는 집이 없는 그들은 비오는 날이면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매년 그렇듯이, 10월 31일이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수없이 듣게 된다. 다소 촌스러운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는 아무리 거지같이 끝난 인연이라도 코끝 찡한 기억이 되게 한다. 그 노래는 들을 때마다 ‘지금도 기억하느냐’고, 꼭 그렇게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었냐고 묻게 만든다. 그러나 떨어지는 낙엽에 늙어가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만 기억해야 한다. 또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제101회 총회에서 75세 정년제도 결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다.

10월 31일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을 들어야 할 날 계룡시 금암동 홈플러스 앞에 있는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를 만나러 갔다. 점심시간이라 김상윤 목사는 나와 더굳뉴스 편집장을 맡고 있는 아내를 교회 바로 옆의 ‘맛나감자탕’ 식당으로 안내했다. 이 식당은 나중 알고 보니 감자탕을 파는 음식점인데도 스타벅스처럼 2014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56개 체인점이 있고 중국과 필리핀 등의 해외에도 진출했다. 창업자 이경섭 장로가 감상윤 목사에게서 은혜를 받고 그의 권면을 따라 1998년 1월 감자탕 양념소스 연구개발을 시작해 2002년 11월 맛나감자탕 개인 식당을 창업(천안, 쌍용동 30평 규모)했다. 감자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뭐 전공하셨어요. 

“나는 전자공학 했어요. 사업기질이 있어가지고 고2 때부터 특허내가지고 생산해내고 영업사원들 데리고 사업하는 게 좋았어요.” 

-그럼 목회는 어떻게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목회야 뭐 선조들이 계시니까 내가 3대째인데 안 할 수 있나요. 그런데도 신앙생활하기 싫어서 교회 안 다니고 도망갔다가 두 손 들고 회초리로 맞은 기억도 있어요.”

먹음직스러운 감자탕이 우거지와 함께 보글보글 끓었다. 

-이런 감자탕집이 많은데 이 집은 뭐가 다른 가요. 

“이 집 이 감자탕이 아주 특별합니다. 감자탕 관련 발명특허만 2개입니다. 잡숴보시면 맛이 전혀 다르다는걸 아시게 될 겁니다. 나도 이경섭 장로님에게 이 사업 해라 해 놓고 나도 옛날에 사실 감자탕을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원래 돼지고기 좋아하는데. 먹어보면 돼지고기 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요. 내가 천안에서 교회하고 있다가 10년 전에 계룡에 다시 개척한다고 내려올 때 이경섭 장로님이 따라 내려왔어요. 내가 가는 곳은 다 따라간다고 따라와서 두 가정 위해서 다시 개척한 거예요. 개척하게 된 동기는 사람들이 도무지 설교 듣고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나도 그랬지만. 꼭 성경공부를 해야만 되고 제자 교육을 해야만 되냐 이거예요. 설교만 들으면 좀 바뀌어야지.”

-그렇지요. 원래 그래야 되는 거죠. 

“그게 원안 아닙니까. 성경공부가 아니고 설교를 통해 변화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유가 뭔가. 설교만 가지고 한번 해 보자. 그래서 천안은 다른 목회자한테 주고 나는 이리 빈손 쥐고 이리 왔지요. 나는 빈손 쥐고 다녀요. 와가지고 10년 됐는데 지금 짓고 있는 게 세 번째 짓는 예배당이에요. 여기 짓고(감자탕식당 있는 건물에 교회가 있었다), 건너편에 지금 있는 교회 짓고, 그리고 저기 옆에 1540평 교회 지금 짓고 있어요. 아니 식당에서 뭘 찍어요.” 

-식당이지만 기념이니까 한 장만 찍어요. 

“나는 목사님 사진 찍는 거 보면 늘 힘들더라고요. 저는 하나님께 안 가고 사업을 하려고 그랬어요. 군대 생활을 8년 조금 넘어 했는데 퇴직금 340만원 갖고 얼마 안 되어 적지 않은 돈을 만졌습니다. 86년도였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사업하고 기획하고 이런 거는 좀 잘해요. 그런 게 저한테 좀 맞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신학은 몇 년도에 시작하신 거예요.

“벌써 21년 되었지요 원래. 저는 재건파 출신이에요. 저희 집안이 재건파입니다. 제가 해방둥이죠. 저희 할머니가 재건파 개척에 아주 선두적인 역할을 했죠.” 

-재건파 교인들은 아주 진득하죠. 

“진득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좀 모자라죠. 하나밖에 모르는 외곬입니다.”

-총신 총장 김영우 목사 때문에 제가 재건파 교회 다녔었죠. 김영우 목사가 총신 신학생 때 남대문에 있는 재건파 교회 담임 전도사가 된 인연으로 교사로 잠간 봉사했지요. 

“김영우 목사가 그런 경력도 있군요. 저는 총신은 편목 과정을 했지요. 104회죠. 식사기도 해 주세요. (내가 식사기도를 했다. 감자탕 요리는 김상윤 목사가 집게와 국자를 들고 조절을 했다.) 이건 제가 전문가입니다.” 

-마을이 아주 아늑하네요. 

“오래 되긴 했는데 발전이 안 되고 있어요. 여기 제가 10년 전에 왔을 때 허허벌판이었어요. 홈플러스도 10년 만에 들어온 겁니다. 먼저 국물을 좀 떠서 드세요. 고기를 양념장 찍어 드시면 맛있어요.” 

-감자탕 집에 교회 간판이 붙어 있어요.

“장로님이 저쪽에도 감자탕 집을 해요. 왜냐하면 돈이 없으니까요. 이쪽에 교회 지었을 때도 2층에 감자탕 집을 하다가 이 건물을 지었어요. 저한테 은혜 받고 저를 따라다녀서 제가 감자탕을 해보라고 권해서 감자탕 사업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 와서 장로님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 돈 제가 다 갖다 썼어요.”

-그 장로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경섭 장로님입니다.”

-그럼 목사님 만난 지 몇 년이 되신 겁니까. 

“29살에 나를 만나서 지금 51세니까 만 21년 됐네요.” 

-이경섭 장로님은 이 방면에 연구를 많이 하신 모양이죠. 

“이 감자탕 공장을 4개나 가지고 있어요.” 

-감자탕 식당을 하는데 공장이 필요합니까. 

“이게 그냥 식당이 아니고 기업이고 경영입니다. 연구 엄청 합니다. 여기에 딸려있는 공장이 고춧가루공장, 여기 들어가는 양념장공장, 커피공장이 있어요.”

-감자탕 사업을 이렇게 하실 줄은 아무도 생각 못했겠는 데요. 

“고춧가루도 전부 자체에서 농사지어 생산해서 해썹(HACCP) 인증을 정부로부터 받아서 합니다.”
 
-해썹(HACCP)이 뭡니까. 

“해썹(HACCP)은 정부가 인정하는 기준치입니다(해썹, HACCP은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s의 약자인데 생산-제조-유통의 전 과정에서 식품의 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해요소를 분석하고, 이러한 위해 요소를 제거하거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계에 중요 관리점을 설정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식품의 안전을 관리하는 제도). 그래서 식품류 이런 것들은 KS가 아니고 해썹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업체를 청정업체로 인증을 합니다.” 

-감자탕을 먹어도 이런 것은 새까맣게 몰랐네요. 

“일반 감자탕은 경쟁력에서 못 따라옵니다. 체인점(chain store)을 내줄 때 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경영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봅니다. 장사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게 아니라 경영능력을 봅니다.”

-그럼 본사에서 자재를 다 공급해 줍니까. 

“자재와 기술 노하우를 제공합니다.”

-그럼 맥도날드에 햄버거 학교가 있듯이 여기에도 감자탕 학교가 있습니까. 

“학교는 없지만 여기 와서 3주간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물도 알칼리수예요. 이거는 정수기가 아니고 의료기기예요. 이거는 보사부에서 인증하는 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가 이걸 가져가서 대장균 검사나 농약 검사를 하면 278가지가 제로로 나와요. 여기서 나오는 산성수가 다 씻어버리니까.” 

-이 감자탕 많이 알려졌겠네요. 

“그럼요. 저 밑으로는 경남 부산 이쪽으로는 아주 유명하죠. 서울에는 아직 없어요. 서울에 아직 올라가지 못한 이유가 인력이 없어서 못 갔습니다. 거기 올라가 체인점 막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감당을 못하니까요. 인력 구성이 어지간히 됐을 때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 뼈도 양돈업체에서 남는 거 가져오는 게 아니라 ‘맛나감자탕’에서 생산을 해내겠네요. 

“일반 양돈업체에서는 여기 물량을 댈 수가 없어요. 국내산이 아니고 캐나다에서 직접 들어오는 거예요. 돼지고기는 캐나다를 최고로 알아주죠. 한국 종돈이 거의 다 수입한 캐나다 종돈입니다. 돼지 파동이 나서 다 죽으면 캐나다에서 수놈을 다 들여옵니다. 국산보다 더 비쌉니다.”

-그럼 캐나다에서 뼈만 가져옵니까. 아니면 돼지 자체를 가져옵니까. 

“돼지 자체를 가져와서 서로 나누죠. 여기는 여기 필요한 거 여기서 쓰고 그래서 몸도 살이 많잖아요. 그리고 나머지는 딴사람들이 가져갑니다. 맛있지요. 이게 먹기가 편하지 않긴 하지만 참모총장님도 이거 먹으러 여기 옵니다. 회식하러 오고 정부 인수팀들이 국방부 내려오면 여기 와서 이거 먹으러 옵니다.” 

-이 ‘맛나감자탕’이 여기 특산물이겠네요. 

“아주 유명하죠. 뼈가 잘 떨어지죠. 소화가 빨리 됩니다 이게. 저희 교회가 호남 초입이다 보니까 호남 계신 분들이 내려가다 들리고 올라오다 들릅니다. 나만 있으면 들릅니다.”

-우리 집 근처에도 잘 되는 감자탕 집이 둘이나 있는데 비교가 안 되네요. 

“여기 감자탕은 살점이나 뼈나 국물이나 우거지나 맛이 똑같습니다. (면 사리를 넣었다.) 우리 조카 세 명이 다 엘리트예요. 영어 잘 하고 일어 잘 해요. 그런데 전부 회사를 그만두고 감자탕집해요. 근데 우리 큰 조카가 제일 많이 팔아요. 하루에 부산에서 700만원 800만원 팔아요. 그 식당들은 기업이에요. 주일날 쉬니까 한 달 매출이 거의 1억 6, 7천 돼요. 그런데 또 건물 하나 사가지고 울산에서 신규 점포를 또 하나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큰조카가 부산 경남지사, 둘째 조카가 울산지사, 막내 조카가 본사 파견 본부장입니다.” 

-결국 김상윤 목사님이 사업을 하고 계시는 거네요. 

“그 다음 여기 본사 총괄 본부장이 우리 큰아들입니다. 그다음 고춧가루공장 그 법인장이 우리 작은아들입니다. 얘들 연봉이 7000넘습니다. 31살에 삼성에서 연봉 7000받았어요. 근데 문제는 주일을 쉬지 못했어요. 작은애는 케이씨 구미 기획실에 있었는데 주일을 쉬지 못 하니까 사표 내버렸어요. 장로님이 그렇잖아도 우리 사람 필요하니까 너 사표내고 와라 한 겁니다. 큰아들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작은놈이 왔습니다. 세금이 워낙 많이 나오니까 법인을 여럿 만들었어요. 알칼리수 만드는 공장은 OEM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인재들이 모여 있네요. 

“그래서 여담이지만 이건 밥장사가 아닙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거죠. 애들이 한국 최고의 자기 분야에서 대기업에서 일하던 애들이요. 우리 조카도 연봉이 5000이 넘었어요. 대기업에서 선박회사에서 일하던 ‘맛나감자탕’에서 일하면서 조카 셋이 지금 화순에서 300평 교회 하나 짓고 있어요. 그 일은 우리 조카들에게 너희 돈 벌면 뭐 할래 하나님 일이나 하자고 해서 시작된 겁니다. 저희들이 필리핀에 교회 13개 지어놓았어요. 그리고 학교가 10개예요. 유치원 3개, 초등학교 3개, 고등학교 2개, 비인가 신학교 하나 엠디비 대학 하나를 세웠어요. 해마다 건물 짓고 있어요.”

-필리핀 선교하는 사람이 많은데 특별히 필리핀에 어떤 관심을 가지고 선교를 하십니까.

“그 나라 사람들은 성경이 있고 예수님 알고 하나님 알아요. 그러니 구원의 길만 가르치면 되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도하려고 접근하면 됐어요 이러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탕봉지만 들고 가면 어린아이들이 다 모여요. 벌려놓은 밥상이죠. 수저만 들면 잔칫상입니다. 이런 데를 안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점을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극동방송에서 필리핀에 있다 나온 선교사님이 필리핀 선교는 끝났다하는 겁니다. 그때 한참 그런 말이 돌았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아직 안 오셨는데 어떻게 선교가 끝났다고 선교사가 말할 수 있느냐. 그래서 필리핀에 가보자 하고 갔습니다. 가보니까 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하구나. 우리나라는 접촉점 때문에 세미나 사탕 화장지 별걸 다 동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필리핀은 접촉점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는 이미지 하나만 가지고 접촉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못하느냐. 그래서 영어공부를 위해 한국 선교사가 하는 영어 캠프에 지원을 했어요. 갔더니 이유를 알았어요. 접촉을 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할 선교사가 단절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요. 너는 필리핀 사람이잖아. 한국 사람이 먹는 밥상에 올라오면 안 돼. 너 필리핀인이니까 그 음식 먹어. 우리는 이거 먹을래. 스스로가 담을 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집일하는 여자가 주일에 교회 가냐고 하니까 갔다 안 갔다 한데요. 왜 안 가냐니까 우리처럼 손님이 오면 집에서 음식하며 시중들어야 하니까 못 간다는 겁니다. 문제점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가까이 있구나. 석 달 과정의 영어 공부하러 갔다가 두 달 등록금 포기하고 체류비만 받아 가지고 나와 마닐라 시립대학으로 다시 갔어요.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무시험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학이 800개나 되는데 그 대학은 상위권에 속하는 괜찮은 학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따갈로그와 영어를 익히게 됐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접근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제대로 필리핀 선교를 하게 된 거죠.”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과 같이 무어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마음 따뜻해지는 이런 종류의 기억을 심리학에서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향수' 혹은 '그리움'으로 번역된다.
   이 찬란한 가을에 잘 읽지도 않는 신학서적이 늘비한 당회장실에 틀어박혀 제100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가 실행위원회에서 남다른 부흥사 이승희 목사의 대독을 통해 규제하기로 통과시키고 결의한 각종 사설언론의 뜬금없는 이야기나 들여다보며 매번 믿음을 떠난 이야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성경 묵상이나 기도가 아닌 손바닥 만한 스마트폰에 온종일 머리 처박고 눈알 굴리지 말자.
   나름 성공한 목사들도 풍요로운 '노스탤지어'의 가을을 보내야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다.
   곧 추워진다. 계룡시를 지나는 길이면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에게 전화해 ‘맛난감자탕’의 뜨거운 돼지뼈 국물과 우거지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향수에 젖어 필리핀선교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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